어린 스승
불교방송에서 본 해인스님의 사무량심과 사섭법에 대한 부처님 말씀 중에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도량이 바다처럼 넓고 심원하며 가믐에 온 들판을 적시는 빗줄기처럼 서늘하게 가슴을 울리며 범종이 산야를 넘어 들리는 듯하여 삼가 올려봅니다.
어느 재가불자가 부처님을 찾아와서 잘 살 수 있는 방법에 대하여 여쭈었습니다. 그때도 지금의 우리들처럼 잘 살기를 소원하고 또 잘 살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참답게 알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그런 중생들의 간절한 마음을 꿰둟어 밝게 아시는 법의 체현자 부처님께서는 그에게 사무량심인 자비희사(慈悲喜捨)와 사섭법인 보시 애어 이행 동사를 실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무량심의 첫째 자(慈)는 널리 자애로운 마음을 가지라는 것, 둘째 비(悲)는 불쌍한 사람을 보면 가엾이 어기고 도우라는 것, 셋째 희(喜)는 남이 잘 되는 것을 시기하지 말고 함께 기뻐하라는 것, 넷째 사(捨)는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어도 댓가를 바라지 말고 평등하고 평온한 마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섭법의 첫째 보시(布施)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법과 재물과 몸으로 돕고 베푸는 것이며, 둘째 애어(愛語)는 부드럽고 온화한 말을 하는 것이며, 셋째 이행(利行)은 남을 이롭게 돕는 것이며, 넷째 동사(同事)는 서로 협력하며 함께 일하는 것입니다.
들쥐를 잡아서 애완용의 뱀에게 먹이로 던져주는 것과 같은 애증을 동반하는 편협된 사랑이 아니라 태양이 만물을 차별하지 않고 평등하게 비춰주듯이 널리 자애로운 마음으로 불쌍한 사람을 보면 가엾이 생각하여 도움을 주고 베풀며, 늘 따뜻하고 온화하고 친절하게 말하며, 남이 잘 되는 것을 시기하거나 질투하지 않고 좋은 일에 함께 기뻐하며, 베풀어도 베풀었다는 교만함이 없는 평등한 마음으로 서로 협동하고 화합하며 기쁨과 슬픔과 고통과 행복을 함께 한다면 누가 싫어하겠습니까?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사무량심과 사섭법을 일상생활에서 실천하면 모든 사람들이 그를 좋아하고 찬탄할 것이며 복이 익어 부귀영화가 넝쿨처럼 굴러올 것입니다. 참으로 잘 살 수 있는 법이니 거룩하고 위대한 성자다운 바르고 훌륭한 말씀입니다.
해인스님은 사섭법을 설명하는 중에 교훈적이고 감동적인 일화를 들려주었습니다.
어느 부유한 집에 장자의 부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자 장자는 가정과 아이를 돌볼 새로운 아내를 맞아들여야했습니다. 새 부인이 될 사람의 조건은 전처와의 사이에 낳은 자식이 하나 있는데 그 아이를 내 자식처럼 잘 돌봐주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부유하고 훌륭한 가문이라 지원자가 구름처럼 몰렸는데 어느 빈곤한 집안의 용모단정한 낭자가 그러한 조건을 쾌히 수락하고 부인으로 채택되었습니다. 대궐집의 안주인이 된 여인은 약속한 바대로 전처의 아이를 마치 친자식처럼 보살피고 돌보아주었습니다.
오손도손 화목하게 살면서 어느 듯 세월이 흘러 새부인에게서 두 명의 자녀가 태어났습니다. 첫째 아이가 태어났을 때만 해도 전처의 아이와 차별하지 않고 잘보아주었는데 둘째 아이가 생기자 마치 눈에 가시처럼 생각되었습니다. 전처의 자식이 자기 아이들보다 잘 생긴 것이 못마땅하고 또 공부를 잘하는 것도 못마땅했습니다.
점차 계모의 본색을 드러내어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전처의 아들은 심부름을 보내고 없는 틈에 자기가 낳은 아이들에게만 주고 전처의 아이는 맛이 없고 거친 음식을 주며 마치 하인처럼 일을 시키고 부려먹으면서 욕하고 구박하기 일쑤였습니다. 그러나 아이는 불평 한마디 없이 시키는대로 고분고분 새어머니의 말에 순종했습니다.
남편이 보는 앞에서는 전처의 아이를 자기 아이들과 똑같이 잘 돌보는 시늉을 하므로 장자는 감쪽같이 속고 있었는데 그러던 어느 날 멀리 출장을 갔다가 오랜 만에 집에 돌아왔습니다. 예정보다 일찍 돌아오게된 장자는 불현듯 아이들이 보고 싶었습니다. 이미 밤중이라 식구들을 깨우지 않고 아이들 방으로 조용히 들어가서 세 아이가 자고 있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습니다.
그런데 새 부인이 낳은 아이들 둘은 편안하게 자고 있는데 전처의 아이는 혼자 옹크리고 떨면서 자는 것을 보고 아이들을 깨워서 어쩐 일인지 살펴보니 전처의 아이는 갈대로 만든 옷을 입고 갈대꽃으로 만든 이불을 덮고 자고 있었으며 새부인이 낳은 자식은 보드랍고 따뜻한 솜옷을 입고 포근한 솜이불을 덮고 자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대노하여 자고 있는 새부인을 깨워서 왜 이렇게 했느냐고 호통을 쳤습니다. 새부인은 잘못했다며 다시는 안 그러겠노라고 손발이 닿도록 싹싹 빌었으나 분기충천한 장자는 당장 집에서 나가라고 불호령이었습니다.
전처의 아이는 아버지가 새엄마에게 나가라고 고함을 치는 걸 보며 아버지에게 새어머니를 내쫓지 말라고 사정하며 애걸했습니다. 그러나 감쪽같이 속인 새부인에게 화가 나고 감쪽 같이 속은 것에 화가 머리 끝까지 치솟은 장자에게 아이의 말이 귀에 들어올리 없었습니다.
아이를 모질게 구박하던 새엄마가 아버지의 불호령에 마지못해 보따리를 싸들고 쫓겨나가자 새엄마의 발을 붙잡고 나가지 말라고 애원했지만 분노한 남편의 말을 거역할 수가 없어서 후회의 눈물을 뚝뚝 한없이 떨어뜨리면서 밖으로 쫓겨나갔습니다.
그러자 아이가 울면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모재일자한(母在一子寒) 모출삼자한(母出三子寒)"
어머니가 집에 있으면 한 자식만 추위에 떨면 되지만 어머니가 집을 나가면 세 자식이 모두 추위에 떨게 됩니다. 그러니 어머니를 쫓아내지 마세요 라고 아버지에게 애절히 호소하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바르게 기억하고 있는지 모르나 이와 같은 내용인 것만은 틀림이 없는데 어버지는 아이가 울면서 부르는 노래를 뼈저리게 느끼고 새부인을 불러들여 다시는 전처의 아이를 차별하지 말고 잘 키우도록 당부했습니다.
그러자 보따리를 싸들고 쫓겨났던 여인은 아이를 꼭 붙잡고 울면서 말했습니다.
"그동안 너무나 미안했구나. 난 네가 이렇게 똑똑하고 훌륭한 인품을 지녔는지 미쳐 몰랐구나. 이 못난 어미를 용서해다오. 이제는 어느 누구보다 너를 더 아끼고 사랑해주마."
그날 이후로 전처의 아이를 자기 자식들보다 더 극진하게 보살펴주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아, 이 어린아이가 나의 스승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동안 아이는 얼마나 상심이 크고 고달펐을까요. 먹는 것 입는 것 차별 받으며 하인처럼 심부름하고 궂은 일을 도맡아 했으니 매우 힘들고 외로웠을 것입니다. 보통 아이들 같으면 새엄마가 자기를 구박하고 핍박한다며 아버지에게 고자질했을 것이고 또 새엄마가 아버지에게 호되게 꾸지람 받으며 쫓겨나면 고것 봐라 아주 잘 됐다 고소하구나 라고 쾌재를 불렀을 텐데 오히려 쫓아내지 말라며 새어머니가 있으면 자기 혼자만 추위에 떨게 되지만 새어머니가 집을 나가면 또 다른 새 어머니를 두게 될 것이고 그러면 두 동생을 포함한 세 명의 자식이 모두 추위에 떨게 된다고 진언하니 그 마음이 참으로 갸륵하여 하늘과 같고 바다와 같습니다.
그런 도량이라면 어찌 나이가 어리다고 해서 철없는 아이의 대접을 하리오! 전생부터 수행이 깊은 이가 분명하니 스승으로 삼아도 결코 모자람이 없을 것입니다. 난 어린 스승의 가르침에 감동하며 자비와 참음과 지혜를 마음에 한 땀 한 땀 수놓습니다.
각우 윤철근
첫댓글 ()()()아이라고 깔보며 존중하지 않는 어른이 되면 안됩니다.*^^*
그럼요. 아이라도 베울 것이 있다면 기꺼이 배워야지요.
배움의 문은 항상 열어두어야 합니다,, *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