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잡지 10월호 원고
지루하십니까? - ‘피로사회’ 속의 오늘의 신앙 (2)
송용민 신부
피곤한 세상과 지루한 세상
우리 사회가 전통적인 규율사회에서 긍정성의 과잉으로 인해 피로감이 넘치는 이른바 ‘피로사회’로 들어섰다는 말을 했다. 과거에는 ‘해서는 안 되는 것들’이 명확했던 반면에 오늘날에는 ‘해도 괜찮은 것들’이 너무 많아진 세상이다. 상대적 가치관이 시대의 흐름을 이끌면서 자유를 가장한 방종의 문화가 해도 되는 것들의 과잉, 즉 ‘긍정성의 과잉’을 불러와 우리 사회를 피곤한 일로 가득 찬 ‘피로사회’로 만들고 있는 셈이다.
피로감이란 하고 싶은데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느끼는 분노나 좌절과는 다른 것이다. 그것은 해야 할 것이 너무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지만 그런 것을 다 수용할 수 없는 현대인들이 겪는 심리적 압박감이자 우울증을 일으키는 병리현상을 말한다. 솔직히 현대인의 입에 달린 가장 흔한 말 중에 하나가 ‘피곤해’란 말이란 점을 생각하면 더 그렇다. 현대인들은 사색이나 자기 성찰의 시간을 피곤해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일이 아니라면 중요한 일이라도 뒤로 미루거나 분주한 삶 속에서 우울증이나 집중력 장애와 같은 병리현상을 느낀다.
긍정성의 과잉은 피곤한 현대인들이 일상의 지루함을 견딜 수 없게 만들기도 한다. 피곤함은 쉼을 갈망하게 하지만, 현대인들은 쉼의 갈망마저도 수다와 유희, 오락과 만취 등의 일상의 일탈욕구로 대신하려 하기 때문이다. 쉬고 싶으면서도 쉬지 못하고, 일상의 지루함을 피해 ‘활동과잉’의 자기모순에 다시 빠지기 일쑤다. 지루함은 자기를 변화시키기 위한 노력이나 삶의 의미를 발견하기 위한 사색이 없어진 자리를 현대의 세속문화로 채우지 못할 때 생기는 현대인의 병적 현상이 되기도 한다.
신앙생활의 지루함
신앙생활도 피로 사회 속에서 또 다른 형태의 지루함을 낳는다. 신앙은 그야말로 하느님의 현존 체험이 일상 안에서 끊임없이 발견되는 과정이지만, 변화에 익숙하고 일탈적 욕구를 느끼는 현대인은 신앙이 지키고자 하는 가치들을 고리타분한 규율이나 시대에 맞지 않는 또 다른 규율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짙다. 그래서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한 사람일수록 믿음 생활에 대한 피로감은 물론이거니와 반복되는 교회 생활이나 봉사에서 지루함을 느낀다.
신앙에 피곤함과 지루함이 생긴다는 것은 신앙을 하나의 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기도하는 것을 힘들어하고, 지루해하는 것도 기도가 하나의 일이 되어서 내 일상에 또 다른 노동적 가치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밥을 먹고, 운동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 즐거움을 느끼는 시간에는 아낌이 없지만,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고 하느님께서 주시는 평화와 감사를 드리는 기도 시간은 지루해한다. 피곤함과 지루함은 기도든 봉사든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들이 하느님을 향한 믿음의 깊은 체험이 없을 때 생기는 교회의 병리적 현상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톨릭 신앙은 대개 형식화된 전례와 성사생활을 통해서 지탱되기 때문에 그 신앙의 맛을 보지 못하면 교회가 요구하는 믿음 생활이 일상생활과 부딪히는 피곤한 일이 될 수 있다. 미사참석과 성사생활, 특히 성체성사와 고해성사의 경우에는 그 뜻과 의미를 깨닫지 못하면 믿음 안에서 지루한 습관으로 전락될 위험이 크다. 은총에 대한 체험이 없으면 그 은총이 아무리 커도 내게는 무관한 일이 되기도 하고, 형식 속에 담긴 풍요로운 신앙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면 늘 분심과 잡념 속에서 의무적이고 형식화된 신앙생활에 머문다.
사제로서 느끼는 지루함
사제들에게도 일상의 지루함이 느껴지는 때가 있다. 성직자들이 의무로 바치는 성무일도나 성체조배가 성사집행이나 활동의 분주함으로 대치되면 기도하는 것이 지루해진다. 미사를 봉헌할 때 고민거리가 많거나 분심이 들면 미사 중에 듣는 독서 말씀이 지루하고, 바쁜 일이 있으면 미사에서 습관적으로 바치는 성찬기도들이 지루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어떤 신부님은 주일미사를 19분 만에 ‘해치웠다’는 무용담(?)을 늘어놓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다.
신자들과의 면담 시간도 지루함을 느끼게 해주는 전형적인 시간이 되기도 한다. 미사 전에 신자들의 고해를 듣다보면 짧은 시간에 넋두리를 하는 신자들의 말을 들어줄 여유는 없다. 뭐에 바쁜 건지는 모르겠지만 신자들과 면담을 하다가도 그들의 가슴 속에 담긴 삶의 애환과 아픈 이야기들을 끝까지 들어주기에 피곤함과 지루함이 느껴질 때도 있다. 대부분 일상에서 신자들이 겪는 다양한 애환을 공감해줄 능력이 부족한 사제들의 이기적인 생활 습관에게 오는 공허감일 수도 있다.
하지만 사제로서 가장 심각한 지루함의 체험은 내가 사제로 살아가는 기쁨을 느끼지 못하는 현실 감각의 부재에서 온다. 사제직이 하나의 기능직이 되기 시작하면 미사와 성사집행, 신자들과의 만남과 그들의 영적생활에 대한 배려, 그리고 공동체 활성화와 은사 계발을 위한 사제의 적극적인 노력과 동참 없이는 자칫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말대로 사제직이 갖는 세속적 매력만을 찾는 퇴행을 나을 수 있다. 그러면 정작 주객이 전도되어 사제직 자체의 기쁨보다는 사제직의 기능적인 직무에서 오는 지루함에서 일탈하려는 욕구만 남기 마련이다.
지루함 없는 신앙을 위한 제언
신앙생활이 피곤하거나 지루하지 않기 위해서는 지루함을 만드는 이유를 되새겨보는 노력이 중요하다. 신앙행위를 자신의 일상과 대치되는 또 다른 일이라고 생각하기 전에 내 삶의 원동력으로 만들어가려는 ‘일상의 수행’이 필요하다. 미사참례를 의무로 채우기 보다는 한주간의 삶을 재충전하는 충전소로 생각하고, 미사 시간보다 좀 이르게 성당에 도착해서 양심성찰을 하고, 성체를 모실 준비를 하는 것도 좋다. 미사 후에 바쁘게 집으로 돌아오기 보다는 교회 안팎을 둘러보거나 잠시 교회활동을 하면서 친교를 나눠도 좋고, 성당을 내 집에 온 것처럼 여유 있게 머물며 차 한 잔의 여유를 즐기는 것도 좋다 .
기도할 시간이 없다면 운전 중에 묵주기도를 하거나, 성가나 성경말씀을 차에 틀어놓고 듣는 것도 좋다. 자기가 좋아하는 기도문이나 성경구절을 눈에 잘 보이는 책상이나 일상공간에 붙여 놓고 자주 읽어보고 묵상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성호경을 자주 긋고, 화살기도를 수시로 바치며 하느님과 둘이서 속삭이는 ‘혼잣말식 대화’도 신앙의 큰 수행이 부담이 된다면 지루함을 넘어서는 작은 일상의 수행이 시작되는 자리가 될 수 있다.
작은 생각의 변화가 삶을 바꿀 수 있듯이 신앙생활도 나의 습관화된 신앙에서 벗어나 건강한 일탈을 찾으면 선사되는 은총생활이 될 수 있다. 성경읽기나 신심서적읽기 등에 맛을 들이거나, 본당에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작은 봉사를 찾아하는 일도 지루한 신앙생활을 넘어서는 지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첫댓글 복잡 다양한 세상에 신앙생활하면서 한두번쯤은 방황을 하게 되는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같은 경우 냉담의 시작이 제 자신을 성찰하고 주님 앞에서 반성하면서도 자꾸 엉뚱한곳으로 마음이 튀이는(미움) 것을 깊지 않은 믿음과 제 의지로 어떻게 할수없음을 정말 주님앞에 부끄러워 나설수 없음을 ,,,냉담이라는 결과에까지 갔던것이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얼마나 부끄럽고 한심한 결과를 초래했는지..세삼 어리석었음을 알게 됬답니다~그래서 전 솔직해지자,,입니다~
제 의지가 약해 힘에 부치면 제 모습 그대로.. 부족한 모습 그대로..못난 모습 그대로..이뿐 일을했을땐 방실 방실 웃으며 저~잘했지요??..하며 친찬해주셔요,,라며
제 방식대로 주님겪에 딱 붙어 있으려 합니다...
주일 미사 참례 가는길에 묵주기도 드리며 성당으로 향ㅎ하는길이 행복합니다...
하지만 늘 기쁨만 가득하진 않습니다~그럴때도 주님께 제 맘을 솔직히 말씀 드리며 도움을 청하니 참으로 든든하고 저를 지켜주시는 그분이 함께 게시니 제 믿음에 기쁨 생활 보람된 생활 삶의 의미가 됩니다^^~
미사 때마다 가슴이 벅차고 눈시울이 시큰해지거나 기쁨이 순간 솟구쳐 올라 혼자 웃고 혼자 울고 하는 이 은총을 아는 이는 다 압니다. 그래서 미사 고픈 것은 절대 못 참습니다. 이 천상의 진미를 내가 사랑하는 모든 이들과 나누려고 언제나 주님사업체에 몸담고 영업을 뜁니다.^^
세상일로 바쁠 때 잠시 주님을 기억하고 기도를 하면 머리가 맑아짐을 느낌니다.
제 영혼이 주님께 가까이 가고자 하는 열망이 솟아오르면
깊은 묵상을 자주 해야겠다 라는 생각이 들어요.
세상속에 영성생활~ 밭에 뭍힌 보물을 아는 것~
5일간 세속에 젖다가 주일에 미사참례후에 얻는 영적인 것들로
힘을 얻고 다시 세상에 들어가 살고..
때로는 무덤덤하고 정신은 딴데 가있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사 후에 얻는 기쁨은 신비합니다~
급변하는 현대 문명와 문화가 우리의 말초신경만을 자극하여...보여지는 것에만 너무 신경을 쓰게하고
따라서...보이는 것에만 열광하고 치중하게 합니다.
보이고...보여지는 것은.. 순간적이며 찰라적이기에...끊임없이 다른 것, 강렬한 것, 또 다시 새로운 것을 찾아 헤매게 합니다.
보이는 것과 보여지는 것은 시시각각 변하고 변덕스럽기에...만족이란 절대없는 신기루와 같고
타는 목마름만을 유발시키는 욕망의 허상입니다.
비판없이 무의식적으로 시대문화에 편승하다보면...현란한 불빛에 빠져들어 죽어가는 불나방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살아가면서 보여지는 외형, 즉 외적인 것에 치중하다보면...내면의 것을 놓치기 쉽고
내적 가치를 지닌 것들을 소외시키게 됩니다.
어느 시대를 살든지...흘러가는 시대의 조류를 따라...아무 생각없이 편승하지 말고
자기 나름대로의 판단의식과 건전한 비판정신이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보이지 않는' 것...사랑 배려 관심 인내 친절 양보......등의 가치가 더욱 소중한 때입니다.
우리 삶에 넓이를 주고 깊이있게 숙성시키는 것은... 바로 이런 보이지 않는 것의 가치에서 비롯됩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것이 우리의 신앙입니다.
보여지는 전례의 형식과 성사, 그리고 미사 중에...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찾고 그분을 믿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사랑은 성사와 기도생활 안에서 찾고 발견하여 ..기뻐하는 자의 몫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아..그것을 찾고 발견하여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다 팔아 사는 것처럼
미사 전례 중에 감추어진 '하느님 나라'라는 보물은...자신의 마음과 몸을 총동원하여
집중하며 찾는 것입니다.
보여지는 전례의 형식과 성사, 기도 안에 깨어있을 때...비로서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사랑이 ...느껴지고 보이고 만져지는...실체이심을 깨달아 가는 것입니다
우리 캐톨릭 신자들은
형식화된 전례속에서 풍요로운 신앙의 의미를
깨달아 분주한 삶의 가운데 신앙생활을 일상의 수행으로
받아들여 신앙의 지루함을 잘 극복할수 있도록 작은 실천부터
찾아 나서는 행복한 신앙인으로 거듭나야함이 필요한 시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사제로써, 훌륭한 목자로 살아냄이 주변의
많은 변수와 요인으로 인해 얼마나 어려운지를 새삼 느끼게 된답니다.ㅠㅠ
신부님을 항상 응원합니다.^^
좋은글 고맙습니다^^*~~
신부님의 좋은 글 잘 읽고 모셔갑니다.* 신앙 생활에 지루함을 느끼지 않도록 노력하는 삶을 살겠습니다.
성호을 그으며 감사에 아침을 맞이하고
하루의 생활 마감할때
감사한 마음으로 성호을 그을때
내면에서 흘러 나오는 그 기쁨 주님께 감사 드립니다
저의 용량을 모르고 불러주시는 곳에 무조건 네~ 하고 달려갔지요. 요즘은 슬슬 한계가 옵니다. 너무 분주히 자신을 돌아볼 시간도 없이 달리기만 한것 같아요. 오늘 드디어 엥꼬가 났습니다. 힘겹다, 힘겹다 하던것이 오늘 몸이 병나고 말았어요. 오전 스케줄 겨우겨우 마치고 오후에 못견뎌 조퇴하고 병원 들렀다 집에서 넉다운 됐습니다. 어떤게 제일 힘든지 차근차근 생각해보고 정리좀 해야 될것 같아요. 그래도 성시간 전례는 절대 놓칠수 없어 겨우 일어나 저녁미사 참례하고 왔습니다.
귀한 신부님의 말씀이 모두 저를 두고 한말씀 같습니다.어쩜 이렇게 제 마음을 꿰뚫어 보시는지 ㅎㅎ
밋밋한 본당에서의 신앙생활에 사실 답답함을 느꼈고,가끔은 뜨거움에 대한 갈증으로 힘이 들었거든요.
우리가 먹는 음식에도 외식이 필요하듯 영적으로 채워줄 뭔가의 목마름이 넘 간절했습니다.
신부님의 은혜로운 말씀으로 저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고 다시금 힘을 낼께요^^
사랑합니다.신부님~
지루함과 무력함과 나태가 가장 저에게도 적입니다.
오늘 하루를 항상 새날처럼 살 수 있도록 긴장감을 주고 살아야겠습니다.
신부님 좋은글 감사 합니다.
제게는 신앙은 지루함이 아니라 신비입니다.
모든것이 감사 기쁨 이지요.
주님이 계시기에 하루하루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지요.
신자들에게 성령체험이 무엇보다 중요한것 같습니다.
체험신앙이 영성을 갖게 만들고 신앙생활을 키워주는것 같습니다.
오소서 성령님
신부님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