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사전에서는 기이한 행적. 기적, 상식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기이한 일,로 정의하고 있다.
성경대사전에서는 초자연적인 능력이 외부에 드러나는 일로서 진리임이 증거 또는 묵시되는 일. 구신약에 있어서는 표적이라는 말이 종종 이적과 동의어로 씌어진 경우가 많은데, 이적은 초자연적인 능력에 의해 생겨나는 사건을 주로 가리키고, 권위의 증명이라는 의미에서 [표적](표징)으로 말해지는 바, 대개의 경우 [이적과 표적(기사)]이라는 표준적인 표현으로 되어 있다.
구약에 있어서 이것은, [기사](모-페-스tpewOmO(mopheth)), [표적](오-트), [기이한 일](펠레 al,P,(pele))로 말해진다. 특히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구출된 사건은 종종 [표적과 감계][이적과 기사][징조와 기사](신 28:46, 신 4:34 기타, 렘 32:20)라는 말로 표현되어 있다.
신약에 있어서도 이 두가지 말은 짝을 이루어 씌어져 있다(마 24:24, 행14:3, 롬 15:18, 히 2:4-표적과 기사). 물론 단독으로 씌어진 경우도 있다(출 8:23 표징, 기타,11:9 기사). 그러나 신약에 있어서는 [기사](테라스 tera"(teras))는 반드시 다른 말과 병용되어 있다.
R.C. 트렌치(Trench, Richard chenesix, 1807-86 영국의 신약학자)는 [표적과 기사]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기사]라는 말은, 어떤 일에 의해 생겨난 사건을 목격한 자의 놀라움이라는 것을 포함한다(막 2:12, 4:41, 6:51, 7:37, 행 3:10,11).
이 이적은, 목격자들을, 꿈꾸고 있는 듯한 몽롱한 상태에서 불러 일으키기 위해 행해진 것으로서, 그것 자체로는, 사람의 영에 호소하는 것은 아니나, 이제, 그에게 보여줄 영적인 일에 대하여, 눈 뜨게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행 14:8-18).
그러나 이적은 다만 [기사]만은 아니다. 그것은 다른 하나의 [표적]이다. 즉 하나님의 임재(지배)와 역사(일하심)가 가까와진 조짐을 보여주는 것이다. 기사라는 말에는, 거의 윤리적 의의가 포함되어 있지 않으나, [표적]이라는 말에는 명백하게 포함되어 있다.
이적은, 단순한 [기사]를 넘어서의 [표적]과 [보증]이다(사7:11, 38:7). 그 행해진 이적 그것에 중요성이 있다기보다, 그 행해진 분의 은혜와 능력을 보여주고 있는 일에 일층 중요한 뜻이 있다.
예수에 접한 많은 사람들은, 예수의 이적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표적을 보아 알았다(요 2:11, 3:2). 따라서 이것을 이해할 수 없는 자들과 다만 이상한 현상만을 구하는 자들에게는 예수는 표적을 주시기를 거부하셨다(마 12:33, 39, 16:1, 3, 4, 막 8:11, 12, 16:17, 20, 눅 2:12,34, 11:29,30, 요2:18, 3:2, 4:48,54, 6:2,14 기타). 하나님께 대한 예수의 순종, 십자가야말로, 참된 표적이익 때문이다(마12:39, 막15:39, 눅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