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도서 파노라마
주제 : 하나님이 해주신 교리와, 성도들이 해야할 의무
디도서와 디모데전서는 바울에 의하여 거의 같은 시기에 믿음의 아들들에게 보내진 목회서신입니다. 바울은, “어떤 사람들을 명하여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게”(딤전 1:3) 하기 위해서 디모데를 에베소에 머물게 하였고, “부족한 것을 바로 잡고 각 성에 장로들을 세우게”(딛 1:5) 하기 위해서 디도를 그레데에 머물게 했습니다.
디모데전서의 절반 분량인 디도서는, 디모데전서의 요약이라 할 수가 있습니다. 이처럼 짧은 목회서신임에도 불구하고
디도서의 두드러진 특징은 하나님이 해주신 핵심적인 교리를 담고 있다는 점입니다.
바울이 이렇게 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이 해주신 교리에 입각해서,
“그러므로 우리는 어떠한 삶을 살아야만 하는가”
하는 인간의 책임을 말씀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디도서를 통해서 말씀하려는
주제가, “하나님이 해주신 교리에 입각해서, 선한 일에 열심 하는 하나님의 친 백성이 되게 하라”(2:14)가 될 수가 있습니다.
은혜와 영광과 사랑의 나타내심
디도서에는 핵심부분이 두 곳이 있는데,
㉠ 2:11-14절과, ㉡ 3:4-7절입니다.
이 핵심부분을 통해서 하나님이 해주신 복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를 해석하는 열쇠는 세 번(2:11, 13, 3:4) 등장하는
“나타나심”을 이해하는 일입니다.
① 첫 번 나타남은,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나타남”(2:11)입니다. 이는 주님의 성육신의 나타남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은혜가 나타났다”는 표현 속에는 주님의 “탄생과, 죽으심과, 다시 사심”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대속을 통해서만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심”이 가능하여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은혜”가 나타났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② 두 번째 나타나심은,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의 나타나심”(2:13)입니다. 이는 주님의 재림을 가리킵니다.
이처럼 주님의 초림과, 재림을 말씀하는 바울 사도의 의도가 무엇인가?
이는 초림과 재림 사이를 살아가는 성도들이
어떤 삶을 살아야만 마땅한가를 말씀해주기 위해서입니다.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2:12) 합니다.
③ 세 번째 나타남은, “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을 나타내심”(3:4)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째서 이렇게 해주셨는가를 말씀함입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자격이나 공로가 있어서가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하심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변화된 신분과 지위
이처럼 “은혜와, 영광과, 사랑”을
나타내심으로 우리에게 무엇을 해주셨는가? 크게 세 가지를 말씀합니다.
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2:14)하여 주셨습니다.
“구속”이란 대신 값을 지불하고 자유케 해주심을 가리킵니다.
우리는 죄 값에 팔린 사탄의 노예였습니다.
이를 구속해준다는 것은 죄 값인 사망, 즉 대신 죽음으로만이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셨다”(2:14상)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신구약을 막론하고 죄 값에 팔린 자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방도는 “구속”을 통해서뿐임을 명심한다는 것은 중요한 요점입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구약시대 성도들은 그림자인 유월절 양의 피를 통해서 그리스도를 바라봄으로 구속을 받았다는 점뿐입니다.
② “중생”(重生), 즉 거듭남(3:5)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개선(改善)되는 것이 아닙니다. 옛사람은 죽고 새사람으로 다시 태어남으로 되는 것입니다. 이는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음으로 많은 열매를 맺음같이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가능해진 것입니다.
③ “의롭다 함”(3:7상)을 얻었습니다. 이는 의롭게 되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직접 보시게 되면 모든 사람이 죄 아래 있고, 심판 아래 있게 됩니다. 오직 우리를 대신하여 정죄를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를 통해서 보실 때에 의롭다고 여겨주실 수가 있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칭의교리는 우리를 정죄감에서 자유하게 해줍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게 해줍니다.
④ “후사”(3:7하)가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후사란 대를 이을 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해주신 일은, “구속 중생, 칭의”가 끝이 아닙니다. 이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그렇게 해주신 목적은 “후사”가 되게 해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성경은 구원 얻은 성도들을 “후사”(後嗣), 또는 유업(遺業)을 이을 자라고 말씀합니다. 탕자의 비유에서 아버지가 큰아들에게,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눅 15:31) 한 상속자란 뜻입니다.
이는 인간이 들을 수 있는 최고 최대의 축복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게 됩니다.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게 될 자들입니다.
⑤ 우리 몸의 “영화”를 암시해주고 있습니다.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실”(2:13) 때,
즉 재림 때에 우리는 어떻게 되는가?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고전 15:52)고 말씀합니다.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빌 3:21) 말씀합니다.
이를 염두에 두고 말씀하기에, “재림”이라 하지 않고 “영광의 나타나심”이라고 표현하고 잇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변화된 신분과 지위입니다.
이는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 하심을 좇아(3:5), 저의 은혜를 힘입어”(3:7) 되어진 일입니다.
선한 일에 열심 하는 친 백성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만 하는가?
어찌하여 우리는 “선한 일에 열심 하는 친 백성”이 되어야만 하는가?
바울은 이 원리에 입각해서 권면합니다.
① 우리는 “구속”을 받아 하나님의 친 백성이 되었기 때문에(2:14), 선한 일에 열심 해야 합니다.
② 우리는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을”(3:5) 받았기 때문에 새로운 삶을 살아야만 합니다.
③ 우리는 “저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3:7) 얻었기 때문에 의로운 삶을 살아야만 합니다.
굳세게 말하라
성경은 “이 말이 미쁘도다 원컨대 네가 이 여러 것에 대하여 굳세게 말하라”(3:8) 하십니다.
하나님의 친 백성, 하나님의 후사들이 교회입니다.
교회는 이들을 맡아 교훈하며 훈련하는 특수학교입니다.
말하자면 하나님의 자녀들, 왕세자들을 돌보는 유일한 기관입니다.
이를 알았다면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야 마땅하겠습니까?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이 되라”고 권면합니다.
디도가 그레데 교회에 머물면서 바로잡아야할 일과,
힘써야할 일은 무엇인가?
이것이 목회자들이 감당해야할 적용부분입니다.
① 첫째는 교회에 침투한 이단의 가르침을 막는 일입니다. “저희의 입을 막을 것이라 이런 자들이 더러운 이를 취하려고 마땅치 아니한 것을 가르쳐 집들을 온통 엎드러치는도다”(1:11) 합니다.
② 이단과는 반대로 “바른 교훈”(2:1)을 가르쳐 성도들을 바로 세우는 일입니다.
③ 이 일을 지속적으로 감당할 “각 성에 장로를 세우는”(1:5) 일입니다.
형제여, 다시 요약해서 말씀드립니다.
먼저 하나님이 해주신 일을 굳세게 선포해야만 합니다.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친 백성이 되고, 중생과 의롭다하심을 얻어 하나님의 후사가 되었습니다.
이를 먼저, 더 많이, 역설(力說)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하노라면 자발적인 순종이 뒤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거듭나고, 의롭다 함”을 얻은 우리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말씀이 훼방을 받으시게 해서야(2:5) 되겠습니까?
“후사가 되고, 영화롭게 될” 자녀들로 말미암아 아버지의 이름이 모독을 받으시게 해서야 되겠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의 친 백성들은 어떠한 삶을 살아야만 하는가?
“이는 범사에 우리 구주 하나님의 교훈을 빛나게 하려 함”(2:10)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교훈을 빛나게 하십시다.
이 세상사는 동안 근심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살아가면서
두 번째 나타나심을 사모하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