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서 전
임영조(1943~2003)
1943년 10월 19일 밤
하나의 물음표(?)로 시작된
나의 인생은
몇 개의 느낌표(!)와
몇 개의 말줄임표(……)와
몇 개의 묶음표(< >)와
찍을까 말까 망설이다가 그만둔
몇 개의 쉼표(, )와
아직도 제자리를 못 찾아 보류된
하나의 종지부(. )로 요약된다.
--------------------------------------------------------------------은유의 천재 임영조 시인이 떠난 지도 몇 년 되었다. 세상을 떠나기 20여 일 전, 아파트 현관 앞에서 "정형, 잘 가!"하고 웃으면서 손을 흔들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야윈 얼굴에 번지던 천진한 미소가 새삼 그립다. 결국은 마침표 하나 찍기 위해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시만 쓰며 살아왔는가. 임영조 시인만큼 시 쓰는 일을 필생의 소중한 과업으로 생각한 시인도 드물다.
일찍이 문장부호가 왜 생겨났는지 비로소 알겠다. 문장부호가 인생을 위해 태어난 것이다. 죄 많은 자서전을 쓰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일찍이 문장부호는 태어나, 누구나 공평하게 특별대우 없이 우리의 자서전을 대필해 주고 있다. 감사한 일이다. 언젠가는 마침표는 찍을 것이므로, 가능한 한 느낌표와 말줄임표와 쉼표를 들여다 보자. 그리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자. 인생이 깊어갈수록 그 무엇보다도 말줄임표가 중요하다.
정호승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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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살아야 하는지 모른 채 태어나(?),
살다보니 기쁜 일, 슬픈 일도 만나고(!),
민망하거나 당혹스러워서 차마 말을 잇지 못하는
절벽 앞에 서보기도 하고(......),
그렇게 아등바등 산 인생을 돌아보니
제자리를 맴돌던 한순간이더라(<>),
맺고 끊어야 할 때(,)
미련을 버리지 못해 인생은 어느새 만연체가 되어
나는 물론 날 보는 이들을 무던히도 숨차게 했다.
그러면서도 난 내 욕망이 이끄는 대로 가고 있다.
스스로 종지부(.)를 찍을 수 없는 인생이란 걸 모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