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방일과 불방일 ⑤
지난 법문시간에 틈이 있는 알아차림은 방일이고 틈이 없는 알아차림은 불방일이라 했습니다. 환자와 같이 천천히 행동하면서 틈없이 알아차려 나가면 하나의 알아차리는 마음이 바로 뒤의 알아차리는 마음과 바로 붙어서 이어지면서 여러분의 수행은 향상될 것입니다. 바로 이 알아차림의 끊어짐없는 연결은 아주 중요합니다.
경전을 보면 방일과 불방일에 대한 다음과 같은 설명이 나옵니다. 쉬지 않는 행위(atthitā kiriyā)와 도중에 쉬는 행위(anatthitā kiriyā)입니다. 도중에 쉬는 행위란 가다가는 쉬고 가다가는 쉬는 행위입니다. 즉 마음챙겨 알아차리다가는 쉬고, 다시 마음챙겨 알아차리다가는 쉬는 것을 말합니다. 쉬지 않는 행위란 쉬지 않고 자신의 목적지로 계속 나아가는 것 즉 마음챙겨 알아차리는 일이 끊어지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이 두 말은 틈이 없는 알아차림과 틈이 있는 알아차림과 매우 유사하지만, 약간의 차이가 있다면 가다간 쉬고 하는 행위에는 쉬려고 하는 마음 즉 쉬기를 원하는 마음이 있어서 알아차림이 끊어지게 되는데 비해 틈이 있는 알아차림에서는 이처럼 일부러 틈을 만든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두 가지 행위(틈이 있는 마음챙김과, 가다가 쉬는 마음챙김)는 틈이 있다는 점에서는 같습니다. 여러분들은 이번 우안거(雨安居, vassa) 동안에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항상 마음챙기는 일을 놓쳐서는 안됩니다. 여러분들이 이곳에서 해야 할 다른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눈을 뜨는 순간부터 잠이 드는 순간까지 마음을 챙겨야 합니다. 적절한 수면은 휴식을 위해 필요합니다. 하지만 잠드는 순간까지 마음챙김을 놓치거나 놓아 버려서는 안됩니다. 이것이 수행 안거에 동참한 수행자들의 의무입니다.
최전선에서 싸우는 병사는 쉴 수가 없습니다. 만약 병사가 싸우기를 멈추고 쉬게 되면 언제 적의 손에 의해 죽음을 당하게 될지 모릅니다. 따라서 병사들은 매우 주의깊게 주변을 살펴야 하고, 마음을 기민하게 써야 합니다. 그래야 적이 오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병사들은 마음챙김(sati)을 지니고 있어야 하며 또한 죽을 때까지 싸우겠다는 각오가 있어야만 합니다. 수행자들도 이와 마찬가지 입장에 있습니다. 좌선할 때나 걷는 수행[行禪]을 할 때, 피곤을 느끼면 쉬고 싶은 마음이 일어날 것입니다. 이때 일부러 마음챙기는 일을 놓아 버리고 쉬면 안됩니다. 만약 마음챙김을 놓아 버리고 쉬게 되면 바로 번뇌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거친 번뇌는 금방 일어나지 않더라도 최소한 어리석음[無知, moha]이라는 번뇌가 생겨날 것입니다.
마음챙김을 놓쳐 버린 상태에서 좋은 소리가 들리면 더욱 듣고 싶은 욕심[貪心, lobha]이 생겨날 것이며 듣기 싫은 소리가 들리면 바로 싫어하는 생각[瞋心, dosa]이 일어나게 됩니다. 따라서 이런 번뇌들이 생기지 않게 하려면 마음챙기는 일을 결코 놓쳐서는 안됩니다. 일부러 잠시 쉰다는 생각으로 마음챙김을 놓아버리고는 쉬게 되면 바로 번뇌가 여러분을 옭아맬 것입니다.
예를 한번 들어보겠습니다.
차를 타고 비탈이 심한 산길을 오른다고 합시다. 오르는 도중에 차를 멈추면 브레이크도 제대로 안듣고 엔진이 꺼지게 될 수도 있습니다. 이런 문제에 부딪치지 않으려면 쉬지 않고 목적지까지 곧바로 올라가는 것이 최선의 방법입니다. 차를 비탈진 길 위에 세우면 뒤로 미끄러질 것입니다.
수행자들도 이와 같습니다. 마음챙기는 일을 쉬게 되면 바로 수행에서 퇴보하게 됩니다. 1분 쉬면 1분 퇴보, 10분 쉬면 10분 퇴보, 1시간 쉬면 1시간 퇴보하게 되는 것입니다. 쉰 후에 다시 앞으로 나아가려면 즉 다시금 마음챙기는 일을 시작하려면 다시 많은 시간이 걸리게 되며,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가다가 쉬는 일을 계속 반복하게 되면 마음집중(samādhi)은 성숙되지 않게 될 것이며, 따라서 꿰뚫어 보는 앎을 얻기란 더욱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마음챙겨 알아차리는 일을 쉬는 것은 방일이고, 쉬지 않고 계속해서 알아차려 나가는 것은 불방일입니다.
수행이란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일과 같습니다. 배를 타고 강물의 흐름을 따라 하류로 내려가는 일은 아주 쉽습니다. 물결의 흐름에 맡겨 버리면 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마음 속에 번뇌가 일어나도록 하는 일은 아주 쉽다는 말이 됩니다. 세상살이는 바로 번뇌의 흐름에 순응하며 살고 있고, 따라서 별로 힘들지 않게 그럭저럭 살아갑니다. 번뇌가 일어나도 그냥 내버려둔 채 말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번뇌의 흐름을 거슬러 오르는 수행을 하고 있습니다. 즉 강물을 거슬러 상류로 오르고 있는 중입니다.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려면 배의 키를 먼저 상류 쪽으로 향하게 해놓고 배를 젓는 일을 쉬어서는 안됩니다. 상류로 뱃머리가 향하도록 키를 조정해 놓고 계속해서 배를 저어야 강물을 거슬러 오를 수 있는 것입니다. 만일 젓는 일을 잠시라도 쉬게 되면 쉰 만큼 배는 아래로 흘러 내려갈 것입니다. 수행자는 먼저 기필코 상류로 올라가고야 말겠다는 강한 마음을 지녀야 합니다. 즉 모든 번뇌를 소멸시키고 말겠다는 강한 의욕이 먼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순간 순간, 어떤 감각대상이 나타나도 바로 마음챙겨 알아차리고 말겠다는 결의를 굳게 다져야 합니다. 이것은 마치 배의 키를 올바른 방향으로 바로 잡는 일과 같습니다. 키를 바로 잡아 놓지 않으면 언제 물살이 센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 들지 모릅니다. 강물을 거슬러 오르다 보면 물살이 센 곳도 있고 특히 물이 소용돌이치며 돌아가는 곳도 있습니다. 이런 곳에서 배를 젓는 일을 쉬게 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큰 위험에 빠지게 되지 않겠습니까. 마음챙김을 놓아 버리면 바로 번뇌의 소용돌이에 빠지게 되는 것도 이처럼 위험한 일입니다. 처음 강물을 거슬러 배를 저어 가려고 할 때는 많은 어려움에 부딪칠 것입니다. 노젓는 방법이나, 키 잡는 방법이 서툴러 걸핏하면 물살에 휩쓸리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좌절하지 않고 계속해서 경험을 쌓게 되면 점차로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일이 쉬워질 것입니다. 또 도중에 기쁨이나 고요함 등을 체험하면서 이 일에서 이익을 얻게 되면 거슬러 올라가는 일에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될 것입니다. 열심히 노를 저으면 그 만큼 자신에게 이로울 것이며, 이로움을 느끼게 되면 스스로 원해서 배를 저으려고 할 것입니다. 이렇게 부지런히 배를 저어 가면 소용돌이치는 거센 물살의 위험에서 벗어나 고요(tranquility)하고 평온(peace)해질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1분 동안 끊이지 않고 마음을 챙겨 나타난 대상을 제대로 알아차리면 1분 동안 번뇌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번뇌에서 벗어난 마음은 고요해지고 평온을 얻을 것입니다. 그러니 번뇌라는 파도에 얻어 맞지 않으려면 배를 젓는 일 즉 마음챙기는 일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폭풍우를 뚫고 파도치는 바다를 항해하고 있다고 합시다. 이때 배의 엔진을 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배는 파도와 폭풍우의 힘을 견디어내지 못해 침몰하고 말 것입니다. 배가 침몰하는 것을 막으려면 엔진을 끄지 말고, 폭풍우를 거스르는 방향으로 키를 잡고 계속 가야 합니다. 그러면 배는 무사히 파도와 폭풍우의 위험에서 벗어나게 될 것입니다.
수행자들도 바로 거친 번뇌의 파도가 휘몰아치는 바다를 항해하고 있는 중입니다. 수행자들은 언제 높은 번뇌의 파도를 만날지 모릅니다. 이 번뇌의 높은 파도가 항상 수행자의 마음을 치고 흔들어 놓습니다. 이 번뇌의 파도가 부딪쳐 올 때 마음과 육신의 힘으로 맞서서 싸워나가야 합니다. 마음과 육신으로 진정한 노력을 기울일 때, 번뇌의 파도를 이겨낼 수 있는 것입니다.
중국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강의 상류에서 항해를 시작한 배가 있습니다. 이 배는 긴 강을 통과해 바다 건너 섬으로 가는 것이 목적입니다. 강을 따라 항해할 때에 이 배는 부딪쳐오는 파도를 헤쳐 나아가야 합니다. 이렇게 강을 무사히 빠져 나오니 망망대해가 눈앞에 펼쳐집니다. 그런데 바다에는 강에서 보다 더 높고 거센 파도들이 일고 있었습니다. 항해사는 이때, 겁을 먹으며 차라리 왔던 곳으로 돌아가 버릴까 하는 생각을 일으킵니다. 허나 곰곰히 생각해 보니 강에 파도가 없었던 것도 아니고 뒤로 물러나는 일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만약 여기서 뱃머리를 돌려 강으로 다시 들어간다면 이는 자기의 처음 목적을 포기하고 마는 일입니다.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목적지에 이를 때까지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부딪쳐올 파도를 강인한 정신력 그리고 육신의 힘으로 이겨낼 각오를 다지고 키를 단단히 잡고 험한 바다를 헤쳐나가야 합니다.
이 이야기는 수행자들에게 아주 중요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수행하는 도중에 몸과 마음이 피곤해지고 힘들어 지치는 때가 있을 것입니다. 몸과 마음의 상태가 낮아지는 때입니다. 이때 노력하는 일을 놓아 버리고 수행을 그만두어서는 안됩니다. 만일 노력을 놓고 수행을 쉬게 되면 반드시 가지 각색의 번뇌가 일어나게 됩니다. 그러면 수행에 대해서, 스승에 대해서 의심이 생겨 향상을 이루기가 더욱 어려워집니다. 몸과 마음이 지쳤을 때에는 오히려 더 분발해야만 합니다. 어떤 때는 너무 힘들어 차라리 집으로 돌아가버릴까 하는 생각도 해볼 것입니다. 이 정도면 여기 온 목적을 충분히 얻었어 하는 생각이 날지도 모릅니다. 이런 생각은 금물입니다. 일단 여기 와서 수행을 시작한 이상 목적을 이룰 때까지 열심히 노력해야 합니다. 수행의 목적을 이룬 다음에는 쉬어도 좋습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수행자(Yogi)라는 말의 뜻을 이해했다면 즉 수행자의 삶(Life of Yogi)을 이해하고 있다면 도중에 퇴굴심을 내어 되돌아서서는 안될 것입니다. 수행을 처음 시작할 때의 법문에서 수행자의 의미를 세 단계의 노력을 하는 사람이라고 정의내렸습니다. 즉,
1 단계 : 처음 노력을 시작하는 단계
2 단계 : 장애를 극복하고 나아가는 단계
3 단계 : 목적을 이룰 때까지 나아가는 단계가 그것입니다.
이 세 가지 노력을 갖추고 수행의 목적을 이룰 때까지 정진해 간다면 그 어떤 것도 수행자들을 괴롭히지 못할 것입니다. 강의 상류라는 목적지에 이르기 위해 강물을 거슬러 배를 저어 올라가는 것과 같이, 수행 도중에 부딪치는 어려움을 수행의 목적을 생각하면서 이겨내고 굳센 마음으로 목적지에 이를 때까지 마음챙김을 이어 나가야 합니다.
비행기를 타고 가는 비유를 들어 보겠습니다. 처음 이륙할 때부터 목적지에 이를 때까지 조종사는 비행기의 엔진을 꺼서는 안됩니다. 공중을 날아가고 있는 도중에 엔진을 꺼버린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어떻게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겠습니까. 어떤 때는 기체의 고장으로 엔진이 저절로 꺼지는 때도 있습니다. 이때는 속수무책입니다. 수행자는 수행해 나가는 도중 노력이라는 엔진을 꺼서는 안됩니다. 감각기관에 나타나는 모든 대상을 알아차리려는 노력이 엔진을 계속 가동시키는 일입니다. 어떤 때는 마음챙기는 노력이 줄어드는 때도 있습니다. 몸과 마음이 지쳤을 때입니다. 하지만 이런 때에도 다시 마음을 가다듬어 엔진에 강한 힘을 가해 주어야 합니다. 목적지에 이를 때까지 수행자는 끊임없이 마음챙기는 노력을 해야 하며 도중에 쉬어서는 안됩니다. 쉬게 되면 바로 번뇌라는 허공으로 떨어지고 맙니다. 공중에서 엔진을 끄면 바로 아래로 떨어지는 것과 같습니다. 번뇌의 허공으로 떨어지도록 노력을 늦추어서는 안됩니다. 만약 노력을 멈추지 않으면, 즉 몸과 마음으로 쉬지 않고 정진해 나간다면 이것도 바로 미세한 형태의 불방일입니다. 그 반대는 방일입니다.
경전을 보면 가다가 쉬는 일(stop-go)을 카멜레온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이 도마뱀은 먹을 것을 보면 곧장 그곳까지 한번에 가는 적이 없습니다. 몇 걸음 가다가는 멈추어 두리번거리고, 다시 몇 걸음 가다가는 멈추어 두리번거리기를 여러 차례 반복합니다. 이 카멜레온의 경우처럼 많은 사람들이 5계․8계를 잠시 지니고 지켜 나가다가 잊어버립니다. 또 법문 듣는 일도 기분이 좋을 때는 와서 듣고, 그렇지 않을 때는 듣지 않습니다. 수행자들도 이런 카멜레온 같은 행위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조금 잘 되고, 마음이 날 때는 마음챙겨 알아차리고, 쉬고 싶으면 마음챙김을 놓아 버리고는 쉬든가 이야기하든가 다른 일을 합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이런 식의 수행 자세를 버리고 항상 쉬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방일에서 벗어나 불방일을 굳게 지니고 정진을 이어 나가기를 바랍니다.
위빠사나 수행의길 2002c_147-210.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