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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치료(Movie Therapy)
상담심리학이나 정신의학에서 치료의 기제별로 다양하게 분파된 치료요법들이 나타나고 있다.
음악을 체계적으로 사용하여 신체와 정신기능을 향상시켜 행동의 변화를 가져오게 하는 '음악치료'(music therapy), 미술이라는 예술의 장르를 통해서 새로운 기법으로 접근하는 '미술치료'(art therapy), 동작을 심리치료 기제로 사용하여 개인의 감정과 정신을 온전하게 하는 ‘무용치료’(dance therapy), 미술, 음악, 무용, 놀이, 연극 등 두 가지 이상의 예술매체를 적용하는 통합적인 형태의
'표현예술심리치료'(expressive psychotherapy), 독서를 통해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정신건강을
증진시키는 '독서치료'(biblio therapy) 등이 그것이다. 이외에도 정신의학과 한의학 분야에서 향기를
통해 육체와 정신을 치유하는 ‘향기치료’ (aroma therapy)가 널리 알려진 치료요법에 속한다.
최근에는 영화가 환자들의 치료 기제로 활용되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영화치료법은 수년전부터
시나리오에서 연출에 이르기까지 할리우드의 영화제작에 심리학 및 정신분석학 전문가들이 참여하
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정신질환자들의 심리치료를 위한 ‘영화치료법’(movie therapy; cinema therapy; film therapy)의
대표적인 주창자는 미국 Northridge Hospital Medical Center의 Walter E. Jacobson 박사인데,
그는 상담을 통해 환자의 심리상태를 파악한 뒤 적당한 영화를 추천해주고 환자는 영화를 본 뒤
영화 속의 인상적인 장면이나 메시지 등에 대해 간단한 보고서를 제출하고 의사와 토론한다.
자신의 환자들을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환자들이 영화 속의 인물과 동일시하면서 비슷한 상황을
이해하고 극복하는데 도움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의 임상사례에 따르면, 부정적인 사고방식 때
문에 고민해온 환자에게 영화 스타워즈 시리즈의 ‘제국의 역습’(1980)을 추천하여, 영화의 ‘요다’
캐릭터가 “사람들은 스스로 변화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에 실패하는 것”이라며
적극적 사고를 기르도록 고무하여 환자에게 효과를 보았다고 한다.
또 캘리포니아의 많은 주민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려온 환자에게 배우 제임스 스튜어트가
천사의 도움으로 새 삶을 얻는 과정을 그린 ‘멋진 인생’(1946)을 추천하였다. 한 남자가 목숨을
끊으려 하자 천사가 나타나 만류하고, 천사는 그 남자가 살아오면서 베푼 선행으로 이 세상이 보다
살기 좋아졌음을 상기시키며 그에게 삶의 용기를 불어넣어 준다는 내용의 영화인데, 자아존중감이
사라진 환자들에게 매우 효과적이었다고 한다.
캘리포니아주립대 심리학과의 Stuart P. Fischoff 교수도 영화치료법의 지지자 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영화치료는 지난 1930년대 유행했던 독서요법이 시대변화에 맞게 자연스레 발전된 것이라고
하였다. 영화가 20세기 후반의 문학이나 다름없는 자리를 차지하면서 요즘은 사람들이 읽는 책에
대해서보다는 본 것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한다는 것이다. 그는 “영화란 영혼에 놓는 주사와 같아서
환자들이 너무 고통스러워 얘기하지 못하는 주제까지 포괄한다”며 영화를 통해 환자의 심리상태를
보다 쉽고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고 하였다. LA의 많은 치료사들은 그들의 환자들로 하여금 어려운
고난을 극복하는 것을 도와주기 위하여 영화를 권장하고 있다고 한다.
영국의 영화치료전문가로서 ‘The Movie Therapist'란 웹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는
Bernie Wooder는, 영화란 제3자의 시각으로 보는 것이기 때문에 질환자가 무의식적이고 억눌린
느낌을 쉽게 털어놓을 수 있으므로 영화치료는 매우 이상적인 요법이라고 하였다.
이에 반해 핀란드에서 정신보건 간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Pekka Makipaa는, 우리는 이미 우리의
삶에서 영화를 자기치료(self-cure), 자기치유(self-healing)를 위해 활용하고 있으며, 따라서 영화
치료의 99%는 우리의 일상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자가요법(self-therapy)이라고 한다. 우리는 대부
분의 자기 문제와 어려움을 자기 스스로 치료해야 하며, 치료사는 단지 ‘가이드’의 역할을 할 뿐이라
고 하였다.
Karin Leonard & Associates 재단의 Karin Leonard는, 영화는 관객이 등장인물을 자신과 동일시
할 때 영감을 주고 영향을 미치며, 또한 우리들로 하여금 삶의 커다란 가치를 확인시켜 준다고 한다.
영화는 관객이 등장인물을 자신과 동일시 할 수 있게 하고, 유사한 환경에서 타인은 어떻게 문제를
해결하였는지 또는 실패하였는지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데, 이를테면 ‘브리짓
존스의 일기’(2001)와 같은 로맨틱코미디, ‘세익스피어 인 러브’(1998)나 ‘물랑루즈’(2001)와 같은
로맨틱드라마들은 우리들 자신의 연애나 실연, 또는 새로운 희망을 위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영화
이며 ‘브레이브 하트’(1995)나 ‘글래디에이터’(2000)와 같은 영화들을 통해 우리는 영화의 지도적인
영웅들과 동일시함으로써 용기와 희망, 그리고 목적의식이 더욱 견고해질 수 있다고 보았다.
우리나라의 경우, 부산정신병원에서 영화를 통해 각종 인생 문제와 심리문제, 가족문제를 해결해
주는 영화치료 클리닉을 운영하고 있다. 인간의 고뇌와 희열 그리고 다양한 사람들의 번민과 삶의
보람을 그 모든 것에 생각을 열 수 있는 반면에 공유할 수 없는 부딪치는 부분도 있는데, 영화를 통
하여 자신의 삶이 다른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 속에 하나로서 함께 호흡 할 수 있으며 영화 속의 인
물과 동일시하면서 비슷한 상황을 이해하고 극복하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영화치료에 대한 반박도 없지 않다. 캘리포니아대 가족심리학자인 Irene Golden-
berg 박사는 심리치료에 좋다는 영화를 특별한 지침 없이 보여준 뒤 이들 환자가 영화의 함축된 뜻을
깨닫고 마침내 효과를 나타내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고 지적한다.
예를 들어 ‘트루리 매드리 디프리’(1991)라는 영화의 경우 어떤 사람에게는 이별에 따른 상실감을
극복하는 데 도움을 주지만 또 다른 사람에게는 현실감을 갖는데 방해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는 “영화는 미숙한 심리학자들이 자신의 한계를 드러내는 수단일 뿐”이라며 영화치료법의 효과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였다. 또 기독교 영화 및 TV위원회 관계자들도 영화치료는 헐리우드 영화의 경우
지나치게 오락적이어서 영화치료는 트릭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치료는
환자들의 심리안정에 어느 정도 기여한다는 점에서 곳곳에서 지지를 받고 있다.
그렇다면, 시네마테크가 아닌 이상, “도대체 도서관이 영화와 무슨 관계인가?” 라는 의문을 품을 수
있을 것이다. 과연 도서관과 영화는 전혀 상관없는 사이인가? 실상은 그렇지 않다. 공공도서관만 해
도 영화나 비디오를 상영하는 곳이 얼마나 많은가. 1994년을 기준으로 우리나라 공공도서관이 가장
많이 개설하는 문화프로그램은 서예(80.7%), 꽃꽂이(57.9%), 영화?비디오상영(54.4%), 외국어(50.9%), 각종 전시회(47.4%)의 순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공공도서관이 개설하는 각종 문화프로그램이 비판받는 이유 중의 하나는 그 목적이
모호하다는 점이다. 가령 서예나 꽃꽂이 등의 프로그램은 다른 문화센터나 사회복지관 등에서 개설
하는 일반적인 교육 프로그램과 중복되며 차별성도 없다. '영화상영'도 마찬가지인데, 교육을 위한
상영인지 상영을 위한 상영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상영의 목적이 명확하지 않다.
영화상영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대부분의 공공도서관이나 대학도서관에서는 보다 많은 관람객
확보(?)를 위해 주로 흥행작 위주로 상영하고 있으며, 조금 신경을 쓴 흔적이 있는 곳에서는 주제
영화상영 예컨대, 법정영화, 전쟁영화, 일본영화 등으로 월/주별 단위로 주제를 선정하여 상영하고
있는 정도이다. 도서관이 문화프로그램이라는 미명으로 흥행작이나 무조건 이용자들이 원하는
영화만 상영한다는 것은, 마치 도서관에서 소위 베스트셀러만 제공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혹자는, 영화는 정신의 치유를 위해 적합한 기제가 아니라고 할지도 모른다. 아닌 게 아니라 너무나
많은 영화들이 폭력성 등 반사회적인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수많은 영화들 중에서 옥석을 가려내는 일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
도서관이 영화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당위성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서정교회의 장헌권 목사는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기존의 “비디오는 무가치한 것이다”라는 분리주의적 문화관을 경계하고 “좋은
비디오를 보아야 한다”는 개혁적 문화관을 지지하여, 심성을 밝히고 영혼을 정화시킬 수 있는 영화를
통해 우리의 생활을 건강하게 하는 ‘비디오도서관’을 모든 교회에 만들자고 제안한 바 있다.
도서관에서는 비도서자료 영역에서 이미 영상매체를 다루어 왔지만 상대적으로 활자매체에 비해
관심이 소홀했던 것이 사실이다. 도서관에서 독서지도와 독서치료가 요구되듯이, 매체환경의 변화에
따라 이제 영화지도와 영화치료가 요구된다. 영화는 독서에 비해 수동적인 해득력을 요구하므로,
바꿔 말해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진 기제라 할 수 있다. 특히, 영화의 내러티브나 전달
하고자 하는 멧시지는 책의 그것과 별반 차이가 없다. 따라서 독서치료의 원리 즉, 등장인물의 성격,
감정, 행동, 태도를 이상상으로 하여 그것을 자기의 내면에 섭취하여 그와 같은 감정을 증대시키는
‘동일화’(identification), 등장인물의 감정, 사고, 성격, 태도에 대한 감상을 문장으로나 말로 표현시
키는 ‘카타르시스’(catharsis), 등장인물의 행동을 스스로 깨닫도록 함으로써 자기 자신의 동기 조성
이나 욕구를 달성할 수 있는 카타르시스를 동반한 감정적 통찰력을 갖게 하는 ‘통찰’(insight)의
원리는 영화치료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
흔히 도서관에서 '권장도서'나 '추천도서' 목록을 만드는 일이 넓은 의미의 독서치료활동에 해당
되듯, 사서들이 교육의 목적이나 개인의 성장과 재활에 도움이 되는 ‘권장영화’나 ‘추천영화’를 개발
하는 것은 도서관에서 영화치료를 위한 시작점이 될 수 있다. 도서관에서 영화라는 기제를 통해
영화와 이용자, 이용자와 이용자간의 매개체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첫째, 현실문제에 대한 의식을 깨우치기 위하여 영화를 소재로 삼는 방안이다. 이를테면 '풀 메탈
자켓'(1987), '굿모닝 베트남'(1987), '야곱의 사다리'(1990) 등을 통해 전쟁으로 인한 폐해를,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1998), '트루먼 쇼'(1998) 등을 통하여 전자감시에 의한 인권침해에 대해, '멀티플리시티'(1996), '6번째 날'(2000) 등을 통하여 인간복제의 문제점에 대해 생각하고 토론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영화 자체를 한 권의 위인전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한 권의 책을 통해 한 사람의 인생이 바뀔 수 있듯이, 한 편의 영화를 통해 역시 한 사람의 인생에 교훈이 될 수 있다. 영화의 주인공이 살아간 삶은
현실의 위인 못지않은 귀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교사를 꿈꾸는 학생들에게는 '죽은 시인의 사회'
(1989)나 '홀랜드 오퍼스'(1995)를, 의사를 꿈꾸는 이들에겐 '닥터'(1991)나 '패치 아담스'(1998)를,
미술가를 꿈꾸는 이들에겐 '폴락'(2001)을, 검사나 변호사를 꿈꾸는 이들에겐 '어 퓨 굿맨'(1992),
'타임 투 킬'(1996) 등을 권하면 좋을 것이다.
셋째, 영화를 심리치료의 도구로 활용하는 방법이다. 좋은 영화는 인간에게 정서적으로 안정을 주고
감동과 즐거움을 준다. 예컨대, 2001년 1월 6일 인천 가천문화회관에서 개최된 “청소년 좌절증후군의
상담 치료를 위한 새로운 접근” 세미나에서 인하대 김흥규 교수는 “영화치료법을 통한 청소년 지도”
를 소개하였다. 남자 친구 때문에 고민하는 여학생들에게는 여성의 꿋꿋한 모습을 그린 ‘델마와 루이스’(1991)가, 이성 친구에게 과도하게 집착하는 경우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1961)나 ‘로미오와 줄
리엣’(1968)이 좋고, 이뤄질 수 없는 첫사랑으로 상처를 받은 여학생은 ‘푸른 눈동자의 소녀’(1964)의
주인공 게이트를 보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며, 남학생이 연상의 여인을 짝사랑하다 상처를
입었다면 ‘가정교사’를 통해 사랑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고 여자는 앞으로 다시 사귈 수 있다는 것을
배울 수 있고, 외모에 자신이 없어 하는 여학생에게는 ‘고양이와 개에 관한 진실’(1996)이나 뚱뚱한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뮤리엘의 웨딩’(1994)이 적당하다고 하였다. 낙방으로 의기소침한 수험생
의 경우 ‘마스크’(1994)나 ‘쿨 러닝’(1993)을 보면 기분이 나아질 것이고, 무일푼의 스포츠매니저가
역경을 딛고 성공하는 과정을 그린 ‘제리 맥과이어’(1996)는 청소년의 힘을 복돋워 주는 영화로 소개
했다. 마음이 약간 우울한 상태라면 ‘쉰들러 리스트’(193)나 ‘토머스 크라운 어페어’(1999) 등 전투를
다루지는 않지만 영웅이 등장하는 영화가, 주위 사람들에게 혹시 버림받게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사람 만나기를 싫어하는 청소년이라면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1994)이나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1997) 등이 효과적이라고 하였다.
책이라는 도구를 영화로, 독서라는 방법을 감상으로 치환하면 영화회 활동 즉, 정기적으로 모임을
가지면서 영화토론, 영화감상문 발표 등의 활동을 하는 새로운 프로그램 개발이 가능하다. 가령 ‘래리
플린트’(1996)로 표현의 자유의 대해, ‘데드 맨 워킹’(1995)을 통해 사형문제 라는 사회적 이슈에 대해
열띤 토론이 이루어질 것이다.
아동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할 때 이들의 수준에 맞는 적절한 내용을 선정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
하며, 감상회가 끝난 후에 토론회를 가지면 효과적이다. 또한 영화회는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영화
자체에 대한 비판적 수용능력(media literacy)을 길러주기 위하여 필요하다.
예컨대, 영화 ‘라스트 모히칸’(1992)에서는 아메리카 원주민의 입장을 살린 원작소설과는 달리
영화에서는 철저히 백인 중심의 내러티브를 깔고 있으며, 모히칸족과 휴런족이 영국군과 프랑스군의
대리전 양상으로 싸우게 되는 비극도 영화에서 배제되고 있다. 따라서 이 영화를 북미에서의 식민지
전쟁을 배경으로 한 비장한 러브스토리쯤으로 받아들이는 건 곤란하며, 비판적으로 헐리우드 영화를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아무튼 책이라는 활자매체에 심한 거부감(?)을 가진 청소년들에게 영화
회는 매우 흥미로운 관심사로 다가설 수 있으며, 때에 따라서는 독서회로 유도, 발전할 수 있는 계기
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