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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 단 | 사역을 시작한 해 | 현재 선교사수 | 개척한 교회수 | 이양한 교회수 |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 1992년 | 50명 | 36개 | 1 |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 1992년 | 39명 | ? | 1 |
기독교대한감리회 | 1994년 | 26명 | 22개 | 0 |
기독교한국침례회 | 1991년 | 16명 | 15개 | 0 |
기독교하나님의성회 | 2002년 | 6명 | 6개 | 0 |
반면에, 한국의 선교단체들(sodality)은 그 단체의 성격에 따라 이양이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교단선교회들과는 달리 이미 개척한 교회를 상당부분 현지인들에게 이양한 상태이며, 일부 “협력단계”에 있지만 대체로 제4단계인 “참여단계”에 와있다. 그러나 많은 경우, 자립(self-support)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것을 볼 수가 있다. 삼자원리의 관점에서 보면, 한국선교단체들의 이양 정도는 약 50% 정도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재, 선교단체들 중 예수전도단(YWAM), 전문인협력기구(HOPE), 인터콥(INTERCP)등과 같은 단체들은 그 단체의 운영이 몽골현지인들에게 이양된 상태이며 선교사들은 현지인지도자들에 대한 교육과 훈련, 그리고 현지인들을 선교에 동원시키는 사역으로 그 초점이 변화 되고 있다.
선교단체 | 사역을 시작한 해 | 현재 선교사수 | 개척한 교회수 | 이양한 교회수 |
인터콥 | 1993년 | 26명 | 24개 | 지도력이양 18개 완전이양 1개. |
두란노해외선교회 | 1998년 | 16명 | 13개 | 12개 |
예수전도단 | 1993년 | 6명 | 8개 | 7개 |
오병이어선교회 | 1993년 | 8명 | 3개 | 0개 |
<표2> 몽골에서 사역 중인 한국의 선교단체들 샘플, (2011년 11월 말 현재)
(3) 서양 및 국제 선교단체들이 개척한 현지인교회들의 상황
몽골현지인교회의 발전단계를 좀 더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한국의 선교기관들 외에 서양 및 국제선교단체들의 경우를 살펴보는 것도 필수적이다.
한 가지 언급하고 싶은 것은, 현재 몽골에 많은 서양 및 국제선교단체들이 활동하고 있지만 이들 중에는 목적 중심의 전문인사역을 하고 있는 관계로 교회개척사역을 하지 않는 단체들도 많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자면, 인터서브(Interserve) 같은 선교회는 주로 전문인 사역자들로서 현지인들과 성경공부를 하며 지도자 양육을 하는 멤버가 있기도 하지만 교회개척을 목적으로 활동하고 있지는 않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사실은 서양의 교단선교회(modality)나 국제선교단체들(sodality)의 경우에는 대체로 한국의 선교기관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지도자를 양육하며 교회를 개척하였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1994년 이후로 현지인들을 일선에 세우고 외국선교사들은 공개적인 종교활동을 삼가하면서 현지인지도자를 양육함과 동시에 그들을 통한 교회개척 형태를 취하였다. 그리고 대체로 비자 목적에 따른 활동을 통하여 전체적인 관점에서 몽골선교의 일익을 담당하는 것으로 그 역할을 수행하였다.
그러므로 랄프 윈터 박사의 발전단계로 평가하기에는 여러 가지 면에서 무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나, 결과적으로 현재 한국의 선교단체들과 서양의 교단선교회들, 그리고 국제선교단체들이 개척한 교회들의 경우에는 대체로 제4단계인 “참여자단계”로 평가되며, 지도자들에 대한 상담이나 훈련 등에 사역으로 한정되어 있고 대부분의 사역을 현지인들에게 이양한 상태이다. 가끔은 모든 사역을 몽골현지인들에게 이양하고 철수를 한 경우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삼자원리의 관점에서 볼 때, 자립의 문제가 깨끗하게 해결되지 않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때로는 교회 성도들의 숫자가 충분히 자립을 할 수 있는 경우임에도 불구하고, 현지인목회자가 외국선교회로부터 사례비나 다른 교회운영비를 받고 있는 경우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럴 경우, 현지인 목회자에게서 도덕적인 해이나 사치스러운 생활이 발견되기도 한다.
참고로, 서양교단선교회와 국제선교단체들이 개척한 교회들은 한국 선교사들이 개척한 360개의 교회와 몽골현지인들이 스스로 개척한 150개의 교회를 제외한 90여개 정도인 것으로 추산된다.
(4) 몽골인들이 자발적으로 세운 현지인교회들의 상황
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 현재 몽골에는 약 600개 정도의 현지인교회가 세워진 것으로 파악된다. 그리고 울란바타르에 개척된 300개의 교회들 중 약 10%인 30개의 교회들, 그리고 지방에 개척된 300개의 교회들 중 약 40%인 120개의 교회들, 도합 몽골 전체교회의 25%에 이르는 150개의 교회들이 외국인선교사나 외부의 지원 없이 몽골현지인들이 독자적으로 개척한 교회들인 것으로 추산된다.
이러한 교회들은 대부분 경제적인 영역이나 교회를 돌보고 교인들을 양육하는 목회의 모든 영역들에 있어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물론 모두는 아니지만, 이런 교회의 많은 지도자들은 목회자로서 받아야 하는 교육이나 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한 경우도 많이 있다. 그러므로 교회의 본질과 기독교신앙에 대해서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지도자들의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는 상황이다.
삼자원리의 관점에서 보면, 그야말로 개척 초기의 교회라 불러야 할 상황에 있는 교회들이 많이 존재한다. 뿐만 아니라, 현지인들에 의해 개척되었다고 하는 교회들은 때로는 “이런 모임도 교회라고 인정을 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을 일으키는 교회들도 상당히 많이 있는 편이다.
(4) 종합적인 평가
삼자원리의 관점에서 보자면, 먼저 몽골현지인교회의 자립 정도는 아직도 절대 다수의 교회들이 외부의 지원을 필요로 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최근 부쩍 속도를 높이고 있는 몽골의 경제발전으로 인하여 선교사들이 현지인교회를 후원함에 있어서 부담을 느낄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경제성장으로 인하여, 선교사의 보살핌 아래 있으면서도 자급이 가능하게 된 교회들이 점차 많아지고 있다는 사실은 상당히 고무적이다.
자전 역시 아직은 많이 미숙한 편이다. 특히 지방교회지도자들의 경우에는 이 부분에 대해서 전략적으로 지원을 해야 하는 과제가 남아있다.
마지막으로, 자치의 문제는 몽골현지인들이 가장 잘 수행해 내고 있는 분야일 것이다. 그러나 때로는 지나치게 민족주의적인 색채를 드러내는 경우가 있고, 행정만능주의로 흐르는 것처럼 보일 때도 없지 않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그 어느 나라의 교회지도자들에 못지않게 훌륭한 행정력을 보여주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랄프 윈터 박사의 “네 단계 발전이론”의 관점에서 보자면, 현재 몽골현지인교회는 전반적으로 삼 분화 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먼저, 한국의 교단선교회들(modality)이 개척한 현지인교회들의 경우에는 대체적으로 랄프 윈터 박사의 네 단계 발전이론에 따라 분석 가능하며 대부분 제2단계인 “부모단계”와 제3단계인 “협력자단계”에 걸쳐있다.
둘째, 한국 선교단체들(sodality)이 개척한 교회들의 경우에도 네 단계 발전이론에 따라 분석 가능하며 대체로 제4단계인 “참여자단계”에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서양의 교단선교회들(modality)과 국제선교단체들(sodality)이 개척한 교회들은 네 단계 발전이론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교회가 개척되었으며 결과적인 형태로 보아 전반적으로 제4단계인 “참여자단계”에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그런가하면, 외국선교사와 관계없이 몽골현지인들이 스스로 개척한 자생적인 교회들, 특히 지방과 시골의 교회들은 재정과 지도력 그리고 교인양육과 목회 전반에 걸쳐 절대적으로 외부로부터의 도움과 훈련을 필요로 하고 있는 상황이다.
2. 몽골현지인교회의 지도력에 관하여
(1) 초기 몽골민족교회의 지도력 생성
몽골선교의 특징들 중 하나는, 1991년 이후로 각국에서 많은 선교회들이 물밀듯이 들어와 선교를 시작하는 과정에서 서양과 한국 및 동양의 선교회들이 몽골교회지도자들과 함께 인터데브(Interdev)의 주재 아래 몽골교회의 미래에 관하여 꾸준히 논의를 하였다는 사실이다.
몽골복음주의연맹의 초대회장이었던 트므르호익(Mfbfjheau) 목사는 당시 인터데브의 역할에 대하여 이렇게 증언하였다.
“1994년부터 매년 1회 인터데브의 주재로 몇몇 몽골인 지도자들이 서양선교사들과 한국선교사들 그리고 동양선교사들이 같이 모여서 회의를 하였다. 우리는 어떻게 몽골에 복음을 전하고, 어떻게 복음과 성경이란 기초 위에 몽골교회를 세울 것인가에 대하여 많은 의견을 나누었다. 이때 모이던 사람들이 “전국협의회”(Oy;tvyna Pf.lfl)란 이름으로 몽골교회 5개년 계획 혹은 10개년 계획을 세워서 선교사들의 조언을 받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1997년 몽골복음주의연맹(MEA)이름으로 정부에 등록하였다. 몽골복음주의연맹이 정부에 등록한 후에도 아마 1998년까지 인터데브 주재의 회의모임이 계속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몽골교회는 자체를 조직하고 강화하는 과정에서 인터데브 외에도 세계복음주의연맹(WEA, World Evangelical Aliance)의 전신이었던 세계복음주의협회(WEF)의 도움을 받았다.
다시 한 번 트므르호익 목사의 말을 빌리자면 다음과 같다.
“1997년 “몽골복음주의연맹”을 정부에 등록하고 나서, 세계복음주의협회 사람들이 몽골에 와서 많은 도움을 주었다. 세계복음주의협회에서 파송 된 사람들은 우리와 같이 의논하고 점검하면서 몽골교회를 조직화 하는데 도움을 주었으며 재정적으로도 많은 힘이 되어 주었다. 그리고 1998년에는 세계복음주의협회에 몽골복음주의연맹을 가입시켜주었고, 비슷한 시기에 아시아복음주의협의회에도 가입시켜주었다.”
이렇게 세계의 각양 선교회 및 선교단체들, 그리고 교회조직들에 의해 1997년에 정식으로 국가에 등록된 몽골복음주의연맹은 이후 명실상부하게 몽골민족교회를 대표하는 기관으로 성장하였으며, 몽골 대내외적으로 기독교회의 입장을 대변하는 유일한 기관으로 성장하였다.
그리고 2011년 9월에는 몽골현대선교 2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몽골교회협의회를 설립하여 전체 몽골교회를 묶어세우고 비전을 제시하고자 조직을 신설하였다.
(2) 1993년에 발표된 “국가와 종교단체와의 관계법”과 몽골현지인교회의 지도력
1990년 이후로 몽골에서 활발하게 사역하기 시작한 기독교 선교단체들에 대해 즉각적인 반응을 나타낸 것은 청소년 내지는 청년층이었다. 이들은 새로운 문화와 사상 그리고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동경으로 기존의 사상이나 종교는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라 생각하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세대였다. 이들에게 있어서 창조주 하나님의 존재를 가르치며 다가온 기독교와 외부세계는 분명 아주 신선한 충격이었으며, 영적 공허감을 채워주고 새로운 비전을 심어주기에 충분하였다.
그러나 기독교가 국민의 단결과 문화의 역사적 전통을 해친다고 느낀 그룹도 있었다. 몽골국회는 1993년 11월 19일에 “국가와 종교단체와의 관계법”을 제정하고, 1994년 4월부터 그 법의 효력을 발효시키면서부터는 상황이 급변하게 되었다. 당시의 변화에 대해 마르꾸 쩨링은 이렇게 기록하였다.
“몽골인들이 자기 나라의 복음화를 잘 할 수 있다고 보았던 외국 기독교인들은 재빨리(그리고 정확하게) 뒷자리로 물러나 보조자 역할을 담당하였다. 1990~1993년 사이에서는 외국인들이 전도하고 조직하고 교회를 개척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었으나, 1995년부터는 몽골인들에 의해 교회가 움직여지고 있었고 ‘일선’에 있는 외국인들은 아주 소수였다. ‘국가와 종교단체와의 관계법’은 더욱 더 외국 기독교인들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만들었다.”
부연하자면, 몽골현대선교의 출발시점-“국가와 종교단체와의 관계법”이 제정되고 발효되기 이전-에는 외국 선교사들이 주도권을 가지고 교회를 개척하였다. 그러나 법이 제정되면서 외국 선교사들은 전략적으로 일선에서 후퇴하여 몽골현지인들로 하여금 직접 교회를 개척하고 목회를 하도록 하였다. 이로 인하여 몽골교회는 다른 선교지에서 볼 수 없는 “현지인 주도의 민족교회”가 유례없이 일찍이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그러나 이런 전략적인 “일선에서의 후퇴”는 서양선교사들과 국제선교단체 선교사들에게 국한된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한국선교사들은 “국가와 종교단체와의 관계법”에 의해 심리적인 위축을 경험하긴 하였지만, 실제적으로 현지인을 일선에 앞세우는 선교전략 내지는 선교방식을 거의 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그 법에 별반 큰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몽골선교에 있어서 1993-1994년은 그 이후에 서양선교단체 및 국제선교단체가 취하게 된 선교방식과 한국선교단체들이 취하게 된 선교방식을 구별 짓는 분기점이 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3) 몽골에서의 교회개척과 지도력개발의 두 양식
바로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1993년 11월 19일에 제정되고 1994년 4월에 시행된 “국가와 종교단체와의 관계법”은 그 이후로 취하게 된 서양 및 국제선교단체들의 선교방식과 한국선교단체들의 선교방식을 구별 짓게 하였다.
당시 왜 한국선교단체들은 이 법에 의해 그렇게 크게 영향을 받지 않았는지에 대해서는 별도의 연구가 필요하리라 여겨진다. 다만 여기서는 그로 인하여 나타나게 된 서로 다른 두 가지 지도력개발의 양식에 주목하고자 한다.
이 표에 서술한 두 양식의 특징들은 대체적인 경향을 나타낸 것이다.
<표3> 몽골선교지에서의 교회개척과 현지인 지도력 개발의 두 양식.
구분 | 한국선교사(특히 교단선교사) | 서양선교사, 국제선교단체선교사 |
사역 양식 | 직접목회, 현지인을 목회현장에서 양육하다가 일정한 자격과 조건을 갖추었을 때 사역을 이양함. | 현지인을 일선에 세우고, 선교사는 뒤에서 후원 혹은 양육하며 비자목적에 따른 사역에 집중함. |
장점 | 1. 현지인이 기독교신앙과 목회의 전반적인 분야에 대해 충분한 훈련을 받을 수 있다. 2. 소속된 교단의 신앙과 예전예식의 전통을 현장에서 익힐 수 있다. 3. 항상 멘토(mentor)가 있으므로 심리적으로 안정적이다. | 1. 현지인의 지도력이 처음부터 분명하게 발휘되고, 교회에 대한 책임감과 소신이 분명해진다. 2. 교회의 대표하여 활동함으로써 활동영역이 넓어진다. 3. 개인의 성향과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할 수 있다. |
단점 | 1. 현지인의 지도력이 선교사의 그늘 아래 가려지고, 책임감과 소신이 없어진다. 2. 교회를 대표하여 활동하지 못함으로써 활동영역이 선교사의 통제 범위 안에 머물거나 한 교회에 제한될 수 있다. 3. 스스로 사역을 계획하고 실행하기 보다는 선교사에 의해 사역이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 1. 교단의 특징과 전통이 희미해 질 수 있다. 2.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의 의미를 담고 있는 성례와 교회의 보편적인 가치와 신앙내용이 제대로 전수되지 못할 위험이 있다. 3. 목회를 구체적으로 지도해 줄 멘토(mentor)가 없어 혼란을 느낄 수 있다. |
현실상황 | 1. 한국선교사 밑에서 꾸준히 양육 받은 현지인 중에 몽골복음주의연맹이나 연합기관에서 영향력 있게 활동하는 사람들이 드물다. 2. 전통교회의 보편적인 가치를 수용하고 따르는 경향이 있다. | 1. 처음부터 독자적인 목회와 활동을 기반으로 하여 몽골교회 전체와 연합활동에서 두드러진 지도력을 행사한다. 2. 전통교회의 보편적인 가치보다는 몽골의 민족적인 특성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
위의 표에서 정리한 것처럼 어느 한 양식이 다른 양식보다 더 우월하고 효과적이라고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러나 한국선교사들과 같이 일하는 현지인지도자들은 다소 선교사의 그늘에 가려지는 경우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므로 우리 교단선교회의 입장에서는 앞으로 현지인지도자의 성향과 재능에 따라 전문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도록 적극 후원하고 세워줄 필요가 있다. 그리고 목회를 선교사가 직접 담당하고 있는 경우에라도, 몽골현지인들 사이에서는 현지인지도자를 명실 공히 교회를 대표하는 사람으로 세워주고 인정해 줄 필요가 절실하다.
II. 최근에 변화된 몽골의 상황과 추이에 대하여
1. “비자목적에 따른 활동” 강화정책
오랫동안 재몽골 선교사들은 비정부기관(NGO)이나 대학 혹은 병원과 같은 기관을 통하여 비자를 받아 사역하며 선교활동을 병행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2009년부터는 몽골정부가 그 동안 묵인해 오던 관행을 깨고, “비자목적에 따른 활동” 감시를 강화하고 있으며, 이 법을 어겼다고 판단될 경우 강제추방에 5년간 몽골입국금지를 시행하고 있다. 특히 선교사들의 경우에는 “종교비자”를 받지 않고서는 성경을 가르치거나 설교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2010년부터는 이러한 법을 어긴 이유로 선교사들이 강제 추방되는 경우가 심심찮게 생겨나고 있다.
그러므로 앞으로 몽골에서 선교사역을 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자신이 집중해야 할 주사역이 무엇인지를 미리 정하고 “비자의 종류”를 그 사역에 맞게 확보해야만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러나 이 “비자 목적에 따른 활동”이란 법은 차후 한국선교사들의 사역을 강제로 전문화시키는 순기능을 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막연하게 거부감을 가지거나 두려워할 필요는 없을 것이라 생각된다. 사실, 그 동안 한국선교사들은 서양선교사들이나 국제 선교단체 선교사들에 비해 방만하게 문어발식 사역을 해 온 경향이 강하였다. 이런 상황을 하나님께서 몽골정부를 통하여 강제로 정리하고 계신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오히려 몽골의 이런 비자정책에 적극적으로 부응하여 몽골정부의 시책에 따르면서도 자신의 전문사역을 분명하게 개척해야할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였다고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몽골선교사는 작금의 비자정책을 통하여 “내가 몽골에 남아있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무엇을 위하여 나의 시간과 열정을 바칠 것인가?”, “몽골에서 사역하는 동안 반드시 이루어야 할 과제는 무엇인가?” 자신에게 심각하게 질문하여 결단을 내려야만 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선교”라는 말로 두루뭉수리 이것저것 마음이 가는대로 사역을 하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는 뜻이다. 어쩌면 스스로 개혁하지 못하는 우리에게 몽골정부의 힘과 정책을 통하여 몽골선교를 개혁해 나가시는 하나님의 손길이라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2. 몽골 전통종교들의 반격
약 3년 전부터 몽골의 샤먼들은 “한 가정 한 무당” 만들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방법은 “신을 받고 무당이 되지 않으면 흉한 일들이 개인이나 가족들에게 일어날 것”이라고 말하는 방법들을 주로 사용하고 있다. 아주 조야한 방법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많은 수의 사람들이 무당이 되고 있다. 필자의 교인들 중에는, 길을 가다가 이런 말을 듣고서 마음이 심란하여 몇 달 동안 교회에 나오지 못하고 무당이 되어야 하는지 고민하다가 나중에 상담을 하고 기도를 한 후에야 마음을 놓고 교회에 다시 나오게 된 청년도 있다.
또한 몽골의 라마불교권에서는 최근 티벳의 “젭중담바”(Rt.poy;gbdg)을 몽골불교의 수장인 “제9대 벅드”(IX Dku;)로 삼아 불교의 중흥을 꾀하고 있다. 특히 환생을 믿는 그들이 “벅드”을 나이가 많은 티벳사람으로 선정한 것은 그의 사후에 몽골인으로 그 자리를 승계케 하여 불교를 중흥시킬 복안이 있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다.
3. 기독교 이단 사이비 종교들의 확장
현재 몽골에서 활동하고 있는 기독교 이단 사이비 단체들은 그 세력을 상당히 확장하고 뿌리를 내렸음은 확실하다. 그러나 이단 사이비들에 대해서는 대략적으로 어떤 이단들이 활동하고 있는지를 파악하고 있을 뿐, 구체적인 교세에 대해서는 믿을만한 정보가 아직은 없는 편이다. 단지 대략적으로 파악하고 있는 바로는, 몰몬교, 통일교, 여호와의 증인, 안식교, 신천지, 베뢰아, 이초석파와 같은 기존의 이단 사이비들 외에도 근자에는 이요한과 박옥수 계열의 구원파가 울란바타르는 물론 정통교단들의 교세가 상대적으로 약한 지방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며 뿌리를 내렸고, 몽골에서 “어머니 하나님 교회”(Ttr Dejhgy Xeelugy)라고 알려진 “안상홍 증인회” 이단도 교세를 확장하고 있는 중이다.
공식적으로는 몽골의 기독교인 숫자가 90,000~100,000에 이른다고 말들은 하지만, 거품을 빼고 객관적으로 계산하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은 약 40,000~50,000명 정도의 기독교인이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에 이단과 사이비까지 다 합하면 아마도 80,000~100,000명 정도가 될 지도 모른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지금 몽골의 교회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자료는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튼 몽골현대선교는 20주년을 맞이한 시점에서 이단 사이비 종교들이 부흥하고 있다는 사실은 기독교의 진리를 가르치고 전파하는 우리에게 경각심과 더불어 진리를 사수하는 일에 더 큰 관심과 열정을 쏟아 부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
III. 몽골선교전략
앞에서 분석한 몽골현지인교회들의 상황과 몽골에서 일어나고 있는 최근의 변화들, 그리고 몽골민족의 복음화와 선교자원으로의 동원이라는 관점에서 앞으로 본 교단 몽골현지선교회가 집중해야 할 선교전략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1. 몽골선교현장에 정보교류와 협력의 장을 마련하기: The Mongolia Mission Field
한국의 경우, 1885년에 시작된 개신교 선교가 20년이 되는 시점인 1905년 11월에 <코리아 미션 필드>(The Korea Mission Field)라는 선교잡지가 창간되어 1941년 11월에 폐간될 때까지 36년간의 한국선교 상황을 현장 이야기와 함께 생생하게 전해주었다. 이 선교잡지는 한국선교의 현황을 세계에 전하는데 크게 기여하였으며, 한국선교사들의 연합과 일치에 대한 열정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반면에, 몽골현대선교의 경우에는 20주년을 맞이한 시점에 서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교사들이 함께 하는 공론의 장은 고사하고, 선교전략을 세우는데 있어서 가장 기본이 되는 정보조차 진위를 확인할 수 없는 상황에 머물러 있다. 이러한 사실은 몽골현대선교 초기의 연합과 협력 사역이 퇴색하고 국가별, 단체별, 교단별로 산산이 분열된 가운데 각자의 할일만 열심히 하고 있다는 반증이 될 것이다.
이제라도 선교사들은 몽골현지인 교회지도자들과 더불어 서로 협력하여 몽골선교의 객관적인 상황과 정보와 전략을 공유하기 위한 작업에 들어가야 할 것이다. 앞으로의 몽골선교는 “과연 이러한 공론의 장을 마련할 수 있는가?”하는 것으로 그 미래가 결정될 수도 있을 것이라 사료된다. 그러므로, 몽골현대교회사를 현장에서 생생하게 기록해 가면서 정보와 전략을 공유하며 몽골토착화교회를 만들어 나가는 과제가 “The Mongolia Mission Field”라는 선교잡지를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함이 그 무엇보다도 급선무라 말하고 싶다.
2. 현지인을 앞세운 일선목회와 그들을 지원하는 전문선교사역으로 전환하기
“몽골에서의 교회개척과 지도력개발의 두 양식”을 다루며 언급하였듯이, 한국의 선교사들(특히 교단선교사들)의 교회개척과 현지인지도자 양성방식은 서양선교사나 국제선교단체들의 그것과 크게 차이가 있다. 이 둘 중 어느 하나가 더 낫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다. 두 양식 모두에 치명적인 단점이 있는가 하면, 장점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 교단선교회의 입장에서는, 그 동안 선교사들이 현지인을 품 안에 품고 있거나 아래에 묶어둠으로써 그들의 위상과 역할에 제약을 가한 측면이 분명히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앞으로는 좀 더 현지인을 목회일선에 내세우고, 교회의 대표자로 활동할 수 있도록 배려함이 요구된다 하겠다. 그리하여 우리의 손으로 양육하고 길러낸 현지인교회지도자들이 몽골전체교회를 주도해 나갈 수 있도록, 최소한 다른 선교회가 길러낸 현지인교회지도자들과 대등하게 사역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선교사들은 현지인교회지도자들이 목회사역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상담을 해주고, 자료를 제공하며, 비전과 전략을 제시하고, 미래의 몽골교회가 감당해야할 선교사역에 관심을 기울이게 하여 그에 적합한 교육과 훈련을 제공해 주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라 생각된다.
3. 지식인, 전문직 종사자, 그리고 상류층 대상의 선교사역을 개발하기
지금까지 20년 동안의 몽골현대선교는 그 대상이 주로 청소년과 청년대학생들, 가난하고 생활이 어려운 계층, 디아스포라 몽골인 등이었다. 그러므로 선교사들의 사역도 교회개척과 더불어 비정부기구(NGO)를 통한 구제 긍휼사역, 의료사역, 미용봉사사역 농장사역 등을 병행하였다. 대표적인 기구로는, 1991년부터 사역을 시작한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의 “사랑의 쌀 나누기”, 1993년부터 사역을 시작한 <국제기아대책기구 몽골사무소>, 그리고 <사마리아인의 지갑(Samaritan's Purse)> 등을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제는 몽골의 경제력이 높아지고, 소자본 자영업자들도 많이 생겨나서 의료사역이나 미용봉사와 같은 사역도 주민들로부터 긍정적인 반응만을 기대하기가 어려워졌다. 실제로 최근에는 행정관청에 민원이 제기되는 사례까지 발생하고 있다.
게다가, 몽골의 지식인과 상류층 사람들 중에는 “기독교회는 가난한 사람들이나 가는 곳이다. 기독교회는 가르쳐 줄 진리가 없어서 돈이나 밀가루, 옷가지들로 사람을 유혹한다”고 비난하는 사람들도 상당수이다. 필자가 목회하는 교회의 경우, 3개월에 한 번씩 교회 사업을 행정관청에 보고하면서 심지어는 행정담당자로부터 “밀가루를 나눠주는 일을 왜 교회가 합니까? 머리에 든 것을 좀 나눠주세요.”라는 핀잔을 듣기도 하였다.
찰스 크래프트(Charles H. Kraft)는 선교사역 가운데 나타나는 “세 가지 대결”에 대하여 정리하였다. 능력대결은 영적대결을 통하여 사탄의 세력에서 자유롭게 되는 것이며(감정적 체험), 충성대결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우리의 의지가 하나님의 의지에 굴복하여 그와 친밀한 교제를 나누면서 더욱 더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이며(의지적 체험), 진리대결은 지식과 진리에 근거한 가르침을 통하여 다른 두 대결들을 정확하게 해석하게 하는 이해를 갖게 한다(지성적 체험). 이 세 가지 대결들은 모두 인격적이고 경험적인 것으로서 함께 작용하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몽골현대선교는 주로 구제와 긍휼사역을 대대적으로 펼치는 가운데 능력대결과 충성대결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온 면이 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선교의 장을 “진리대결”의 구도로 만들어 기독교회의 신앙과 사역을 올바로 이해하게 하는데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 계층 내지는 전문직 종사자들에 대한 선교를 어떻게 할 것인가? 간략하게 그 대안을 제시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보다 많은 전문인선교사들이 필요하다. 각계각층 각 직업군 속으로 들어가서 전문직 종사자들을 만나고, 그들에게 기독교의 진리와 성경말씀에 따르는 삶의 양식을 보여줌으로써 그들에게 복음의 영향력을 끼칠 더욱 많은 전문인선교사들이 몽골에 들어와서 활동할 필요가 있다. 가능하면 이들은 각 직업군에 들어가서 “신우회”를 조직하여 신앙적인 영향력을 끼쳐야 할 것이다.
둘째, 몽골의 전문직 종사자들이 읽을 수 있는 기독서적들, 즉 “전문적이지만 삶에 적용 가능하도록 설명된 신학 자료들”이 출간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들을 대상으로 한 세미나와 강좌들이 개설되어야 한다. 지난 20년 동안 발행된 기독교 서적들은 성경을 포함하여 모두 600여종이 몽골어로 번역되었고, 몽골기독교인들이 몽골어로 쓴 서적들은 20여종에 이른다. 그러나 이 서적들 중에서 신학적인 내용의 서적들은 겨우 10여종에 불과하다. 설명하자면, 신학생들에게 필요한 서적을 몇 권 번역한 것이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각계각층의 전문직 종사자들의 시각으로 해석된 신앙서적들과 신학서적들이 필요한 상황이 된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지난 20년 동안 생겨났던 구제와 긍휼사역을 위한 비정부단체(NGO)의 숫자만큼 전문적인 분야의 많은 “연구소”들이 생겨나서 전문적인 시각에서 풀어 쓴 서적과 자료들을 출간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자면, 창조과학, 교회음악, 기독교예술, 교회사, 몽골교회사, 기독교 정치사상, 성경적 경세사상, 조직신학, 실천신학, 신약연구, 구약연구, 신학사상 등을 다루는 내용들의 서적들이 출간되어야 한다. 그리고 의사회, 변호사회, 교사회, 교수회, 실업인회 등과 같은 전문직 종사자들에게 적합하게 편집된 전문화 된 내용의 서적들이 출간되어야 한다. 한 사람, 한 기관에서 모든 것을 다 담당하려 하지 말고 다양한 연구소와 기관들이 많이 생겨나서 서로 협력하며 활동하는 전략을 취해야 할 것이다.
4. 지방선교와 관문선교의 전략개발
어림잡아 현재 수도 울란바타르에 선교사의 90%가 집중되어 있다. 그리고 지방교회의 약 90%는 몽골현지인 교회지도자들이 목회를 하고 있다. 자연히 교회지도자들에 대한 교육과 훈련이 울란바타르를 중심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또한 지방의 교회지도자들도 일단 울란바타르에 와서 생활하거나 교육받을 기회를 가질 경우, 다시는 지방으로 돌아가지 않으려 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지방의 도청소재지에 교육과 훈련을 위한 선교거점을 마련하는 일과 그곳으로 시골교회 지도자들까지 불러 모아 훈련시키는 순회선교사역을 제도화 해 놓을 필요가 있다.
본 교단 몽골현지선교회에서도 지난 2011년 9월 정기월례회에서 서부지방의 “옵스”(E.v)아이막(한국의 道에 해당)과 동부지방의 “더르너뜨”(:kjyk;) 아이막을 아웃리치 집중지역으로 선정하였다.
몽골의 지방선교사역은 그 지리적 특성으로 인하여 “관문선교”와 연계할 수 있는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는 바, 현재 몽골은 3,485km에 달하는 러시아와의 국경선에 9개의 관문(gateway)을 가지고 있고, 4,676.9km에 달하는 중국과의 국경선에 9개의 관문을 가지고 있다. 해당관계지역에 거주하는 주민은 그 관문을 통해서 일정기간 동안 중국이나 러시아를 비교적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 그러나 관문선교는 지방에 선교거점을 확실하게 구축한 상태에서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전략이기 때문에, 우선은 선거거점으로 활용할 수 있는 지역을 선정하고 그와 더불어 장기적으로 관문선교를 시행해 나가야 할 것이다.
5. 몽골교회를 세계선교사역에 동참하도록 동원하는 일:
중앙유라시아 범 몽골족선교, 중앙아시아선교
현재, 몽골교회는 약 13여명의 현지인선교사를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티벳 및 기타 국가로 파송하고 있다. 이는 몽골선교 초기부터 선교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선교사들의 조언과 비전을 잘 수용하여 열매를 맺은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몽골교회는 그 어느 나라의 기독교인들보다도 선교에 열정을 가진 교회가 될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몽골선교네트워크(Mongolian Mission Network)에서 2011년 11월 7일에 개최한 <몽골선교 20주년 기념 선교전략포럼>에서 논평자로 발제한 믕흐 에르덴 목사는 몽골인들의 선교사로서의 장점에 대해 이렇게 정리하였다.
첫째, 몽골인은 유목민의 유전자가 있기에 세계 각지로 이동하며 다른 문화에 적응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특히 영상60℃~영하60℃에 이르기까지 세계 어디든 적응할 수 있다,
둘째, 어떤 언어든지 빨리 배우는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
셋째, 그 어떤 민족보다 적은 비용으로 선교사역을 감당할 수 있다.
넷째, 몽골교회는 젊은 청년교회로서 선교열정이 뜨겁다.
다섯째, 과거 70년 동안 공산주의를 경험하였기 때문에 몽골을 둘러싼 공산주의권 민족을 잘 이해하고 있으며, 기독교를 모범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여섯째, 공산권 국가를 출입할 수 있는 비자를 쉽게 얻을 수 있다(북한, 중국, 러시아 등).
일곱째, 공산권 국가에 몽골 유학생들이 많다.
실제로 몽골교회는 다른 분야에 비해 특히 “해외선교”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안광표 목사의 선교학 박사학위 논문에서도 드러나듯이, 외국선교사들이 몽골현지인과 가장 동역하기를 원하는 부분이 “몽골교회의 해외선교”이며, 몽골교회가 외국선교사들과 가장 함께 하고 싶은 사역도 “해외선교사역”이다. 이것은 몽골교회를 세계선교사역에 동원하는 것이 몽골 내 외국선교사들의 사역들 중 가장 중요한 한 축이 되어야 함을 보여준다.
<표4> 몽골교회지도자들이 세계교회와 동역하길 원하는 분야
구분 | 선교사파송 | 기도 | 재정참여 | 신학교육 | 기타 | 무응답 |
수 | 45명 | 12명 | 7명 | 12명 | 3명 | 28명 |
<표5> 몽골선교사들이 몽골교회와 세계교회가 동역하길 원하는 분야
구분 | 선교사파송 | 기도 | 에큐메니칼 운동 | 복음주의 운동 | 재정참여 | 무응답 |
수 | 64명 | 19명 | 17명 | 28명 | 3명 | 3명 |
그렇다면 몽골인현지인을 선교사로 파송하기에 적합한 지역은 어디일까? 이 질문에 대해서는 다음 두 가지로 해답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1) 중앙유라시아 범 몽골족 선교
중앙유라시아(Central Eurasia) 지역에 살고 있는 족속들의 역사는 근대적인 의미의 민족이나 국가의 개념으로는 이해하기가 곤란하다. 중앙유라시아는 “동서로 서쪽의 볼가-우랄지방에서 동쪽의 대싱안링(大興安嶺) 산맥(몽골고원)까지, 남북으로 북쪽의 시베리아 남부의 삼림지대에서 남쪽의 티벳고원과 서남쪽의 이란 동북부, 그리고 아프가니스탄 북부에 이르는 지역”으로 지리적인 용어라기보다는 오히려 문화적인 개념이다.
<표6> 중앙유라시아 지역
그리고 유라시아 대륙의 초원지대는 동쪽의 대싱안링 산맥에서 서쪽의 헝가리 평원에 이르는 대략 8,000km에 달하는 광활한 공간으로 크게 동부(몽골고원과 알타이, 남시베리아), 중부(텐산산맥과 카자흐스탄), 서부(카스피 해와 흑해 연안, 도나우강 중하류 유역)으로 나눌 수 있다. 이 초원 세계의 역사는 유목민이 주축을 이루면서 정주민이 여기에 관여하는 형태로 전개되었다.
유목민은 경계가 확정된 국가를 형성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1924년에 소비에트 정권이 확정한 각 민족들의 경계나, 1947년에 생겨난 중국 내몽골자치구의 형태로는 중앙유라시아의 역사를 올바로 이해할 수 없다. 우리는 현재의 국경선들을 무시하고, 문화를 중심으로 하여 거시적인 관점으로 이 지역의 역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현재 칭기스칸 시대 이후로 중앙유라시아 지역에 흩어져서 살고 있는 범 몽골족은 중국에 약 4,545,000여명, 러시아에 약1,043,000여명, 아프가니스탄과 이란 그리고 파키스탄에 약 2,807,000여명, 모두 합하여 약840만 명 정도가 된다. 이는 2010년 12월 말 현재, 남자 1,351,700명, 여자 1,429,100명, 합계 2,780,800명에 불과한 몽골 국내 거주자들의 3배가 넘는 숫자다.
도날드 맥가브란(Donald A. McGavran)은 “그리스도를 향한 종족운동”(people movement to Christ)을 통해 기독교회가 성장해 왔음을 말하면서 같은 문화와 혈연관계를 가진 종족이 그들의 정체성과 종족적인 관계를 유지한 채 그리스도께로 돌아오게 하는 종족운동의 중요성을 역설한 바 있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아래와 같다.
“그들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할 수 있고, 다른 사회의 사람들과 물건을 사고 팔 수도 있지만, 그들의 실제의 내적 삶은 같은 족속의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동일한 계층에 속한 사람들은 대개 친근한 이웃들이기 때문에 그 계층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이 기독교인이 되거나 공산주의자가 되어도 별로 상관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과 같은 종류의 사람들이 기독교인이 되기 시작하면 그것은 그들의 삶 자체를 변화시킨다.”
한 마디로, 중앙유라시아 지역에는 현재 몽골에 거주하는 족속들과 문화가 같고 역사 속에서 동고동락해 온 동일성을 지닌 범 몽골족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그러므로 몽골교회를 일으켜 세워서 “종속운동”을 통한 세계선교, 특히 중앙유라시아 선교의 핵심세력으로 동원해 내는 일이 차후 몽골선교의 중요한 키포인트들 중 하나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중앙유라시아 범 몽골족들 외에도, 1990년 이후 유학이나 일거리를 찾아 외국으로 흩어진 “현대 디아스포라 몽골인들”을 선교하여 이들을 선교사역에 동원하는 전략도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현재 해외에 6개월 이상 거주하고 있는 몽골인들은 약 100,000여명이다. 그 중에서도 몽골인들이 가장 많이 찾은 나라는 한국이다.
<표6> 외국에 6개월 이상 거주하고 있는 해외몽골국민
합계 | 107,140명 |
대한민국 | 29,534명 |
미국 | 17,036명 |
체코공화국 | 7,274명 |
중국 | 7,273명 |
일본 | 5,401명 |
러시아 | 5,008명 |
독일 | 3,852명 |
영국 | 3,701명 |
프랑스 | 2,859명 |
터키 | 2,645명 |
그러므로, 우리가 가장 먼저 몽골현지인선교사를 파송해야 할 지역은 세계 각국에 흩어져 있는 고대 디아스포라 몽골인 “범 몽골족”과 “현대 디아스포라 몽골인들”이 거주하는 곳이어야 할 것이다. 어디를 가든지 서로 협력하고 단결하여 자신들의 공동체를 구성하는 몽골인들의 습성은 “족속운동”을 통한 선교사역에 있어서 큰 장점으로 기능할 것이 분명하다.
(2) 중앙아시아 선교
<표7> 중앙아시아 5개국 (협의의 중앙아시아)
<표8> 광의의 중앙아시아
중앙아시아는 중앙유라시아(Central Eurasia)의 일부이다. 중앙아시아란 전통적으로 세계강대국들이 각축을 벌이던 세계의 심장지대(heart land)로서 소비에트연방의 붕괴 이후 새롭게 등장한 신생 독립국들, 즉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등 5개국이 나타남으로 인하여 다시 한 번 강대국들의 각축전이 벌어지고 있는 지역이다.
중앙아시아가 강대국들의 각축장이 되는 이유로는 이 지역이 에너지 자원의 보고로서 각국의 경제적 이해관계와 안보, 영토, 종교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민족, 언어, 문화적인 문제들이 얽혀있어 이 지역의 문제 해법은 결코 만만치가 않다.
“CIS 국가들의 종교는 크게 정교 우세국과 회교 우세국으로 구분될 수 있는데, 러시아 우크라이나 몰도바 아르메니아 그루지야 벨라루시 등 6개국이 정교 우세국이며,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키르기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아제르바이잔 등 주로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회교 우세국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민족 언어 문화적 구분은 크게 슬라브계, 투르크계, 페르시아계로 구분이 될 수 있는데, 슬라브계는 러시아 우크라이나 몰도바 아르메니아 그루지아 벨라루시 등 6개국이, 투르크계는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아제르바이잔 등 5개국이 해당되며, 타지키스탄은 페르시아계에 속하고 있다.”
그러므로 중앙아시아 지역에 대한 선교는 그저 간단하게 신앙적인 열심으로만 추진할 문제가 아니다. 조동진 박사는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패권을 다투는 국가들의 정치적 음모에 걸리지 않도록 교회가 선교전략을 세움에 있어서 주의를 기울일 것을 강조하며 중앙아시아가 21세기의 새로운 선교전략지로 부상하고 있음을 다음과 같이 천명하였다.
“1980년대 말 서구 선교세력은 아프리카의 사하라 남쪽과 아시아 대륙의 동북과 동남아 지역, 곧 북위 40도부터 10도까지를 <10/40 Window>라는 이름으로 지리정치학적 선교전략을 설정하고, 소위 미전도종족입양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동유럽과 소련의 공산세력이 붕괴된 1990년대 초부터 유라시아 대륙의 중심지대인 중앙아시아를 지정학적 선교전략지로 설정하고 <35/40 Turkic Window>와 <40/70 Quin's Dominion Window> 라는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하였다. AD 1000년대까지 동로마제국의 콘스탄티노플에서 당나라의 장안에 이르는 정치, 경제, 문화, 종교의 대로였던 실크로드의 핵이었던 중앙아시아는 또 다시 세계 지배 전력의 지리정치학적 핵으로 등장하였다.”
특히 이들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이슬람은, 1990년대 초기 한 때 이슬람 원리주의가 나타나기는 하였지만 전통적으로 샤머니즘과 불교가 혼합된, 민속적 생활 속의 이슬람 양식이다.
그런데 몽골의 경우, 1993년 11월 19일에 제정되어 1994년 4월부터 발효된 “국가와 종교단체와의 관계법”에서 “불교의 주도적 위치를 존중한다” 선언하였으며, 그 외 샤머니즘과 이슬람을 더하여 몽골국가의 3대 종교로 인정하고 있다. 말하자면, 종교적으로 몽골은 중앙아시아 여러 국가들과 매우 친밀한 종교와 문화를 가지고 있으며 서로 거부감이 없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몽골은 러시아에 이어 1921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몽골인민정부”를 수립하여 사회주의국가가 된 나라이다. 이처럼 역사적으로 사회주의를 경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몽골은 20년이란 짧은 기간 동안에 기독교를 순조롭게 수용하여 부흥을 경험하였다는 점에서 중앙아시아를 품고 복음화 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하겠다.
더 나아가, 몽골은 넓은 의미의 “중앙아시아”에 속한 나라로서 자연환경과 더불어 생활양식에 있어서도 그 지역의 여러 나라들과 공유하고 있는 면들이 많다. 그리고 그 민족의 기원과 유목문화에 있어서도 상당한 근접성을 가지고 있는데, 바아바르(Dggdgj)는 몽골과 중앙아시아 지역의 국가들에 대해 이렇게 묘사하였다.
“기원전 209년 오늘날 몽골 땅에는 처음으로 국가체제가 등장했다. 흉노의 근원이 몽골족인지 투르크족인지 아니면 혼혈인지는 지금까지 결론이 나지 않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역사상 존재했던 셀주크, 훈, 투르크, 거란, 대몽골, 킵차크, 오스만, 금나라, 티무르제국 등의 나라와, 그리고 오늘날 존재하고 있는 몽골,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터키, 아제르바이잔, 투르크메니스탄 등과 같은 나라들은 유목민 최초의 국가인 흉노의 직계자손들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들을 감안하여, 우리는 몽골교회가 역사적인 측면과 더불어 종교와 문화, 생활양식 등 모든 면에서 중앙아시아 지역을 선교하는데 가장 적합한 조건을 가졌다고 말할 수 있다. 게다가 몽골교회는 젊고 선교의 열정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므로 세계교회는 이러한 몽골의 특징을 최대한 활용하여, 몽골 기독교인들을 중앙아시아의 선교첨병으로 일으켜 세우고, 더 나아가 중앙유라시아의 선교사로 파송하고, 또한 세계를 향해 복음을 들고 나가는 선교동역자로 일으켜 세우는 일에 온 힘을 쏟아 부어야 할 것이다.
혹자는 이제 몇 년 후면 선교사들이 몽골에서 철수를 해야 할지 모른다고 말하기도 한다. 단지 몽골의 경제성장만을 따지자면 그렇게 판단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앙유라시아와 중앙아시아 그리고 세계 선교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면, 진정한 몽골선교는 이제부터라고 말할 수 있다.
IV. 결 론
몽골현대선교 20년 동안, 몽골교회는 우리의 기대와 예상을 뛰어넘어 괄목한 만한 성장을 이루었다. 이처럼 급속하게 성장한 몽골교회를 바라보며, 우리는 세상의 모든 족속들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몽골은 유목민의 나라이다. “유목민”이라는 단어에는 국경선이나 현대적인 민족개념으로는 이루 다 형용할 수 없는 많은 내용들을 담겨 있다. 예로부터 이들의 삶의 무대는 중앙유라시아 초원과 산맥 그리고 사막이었다. 몽골현대선교 20년을 즈음하여, 이제 몽골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들과 이들을 후원하는 세계 각국의 교회들은 이 유목민들로 하여금 복음을 들고 세계로 달려 나가게 해야 할 사명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지금까지의 몽골선교는 이 유목민들의 눈을 뜨게 하는 것에 불과하였다. 이제부터 세계교회는 이들을 선교의 동반자들로 삼아 동서의 문물이 오가던 그 실크로드를 통해 중앙아시아로, 중앙유라시아로, 또 세계를 향해 달려 나가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하여 더욱 시급한 일은, 몽골의 전통종교들과 이단 사이비의 도전을 몽골교회가 성경과 건강한 신학으로 극복케 할 수 있도록 우리가 지원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능력대결과 충성대결 일변도에서 벗어나 진리대결로 몽골교회의 신앙관을 확대해 나가는 일이다.
이를 통하여 우리는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복음사역을 함께 감당해 나갈 “선교의 동반자”인 몽골교회와 함께 세계문물교류의 중심이었던 실크로드를 통하여, 특히 전통적으로 유목민들이 문물교류의 통로로 이용하였던 초원길을 통하여 복음을 힘 있게 전파할 수 있을 것이다.
첫댓글 우리 나라에 기독교가 들어온지도 130년이 되었고...그동안 한국교회가 많이 성장하여 복음을 역수출하는 나라가 되고...선교사를 두번째로 많이 파송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그러나 복음의 본질이 희미하고 신학부재 현상으로 한국교회와 강단은 위기를 맞이하여 성도가 감소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잇음을 부인할 수가 없음에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오래전 몽골을 방문하여 몽골민족의 복음에 대한 뜨거운 감격과 열정이 있음을 보고 놀란 적이 있습니다...모두가 선교사들의 눈몰의 수고와 기도의 결과이겠지요...하지만 복음의 본질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다면 우리나라의 전철을 그대로 밟지나 않을려는지...
그런 면에서 황선국 선교사님의 그동안 복음의 뿌리를 내리기 위해 수고한 사역들을 지켜본 바...선교사님의 수고로움과 열정에 찬사를 보내며 하나님께 영광 돌립니다...선교사님의 말씀대로 몽골 교회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고 전세계를 향해 달려갈 수 있는 영적 파워를 가진 몽골사역자와 선교사들이 나오도록 함께 기도해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선교사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