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글은
남명선생의 마지막 체백을 묻은 묘소로부터 시작하여 생가터로 이어집니다.
삶을 거꾸로 들여다보게 되네요.
답사코스가 그리 되었습니다^^;;

남명기념관 옆으로 돌아 뒷산에 오릅니다.
선생께서 생전에 직접 정한 자리라 합니다.
동시대를 사셨던 퇴계선생과 비슷한 점이 참 많으십니다. 마지막 누우신 자리까지...






한국전쟁 당시에 총탄을 맞아 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 비석들.....
선생의 묘소 아래에 이렇게 모아뒀네요.

기념관 건너편에 있는 산천재로 발길을 다시 옮겼습니다.
덕천 물가에 아담한 집을 짓고 학문에 힘쓰신 남명선생의 생각을 만나게 되는 곳입니다.


예전에는 이 사진에 담긴 곳이 물이었다는군요.
산천재 아래로 덕천의 큰 도랑물이 흘렀다 하니 산천재의 모습이 참 꿈만 같이 멋지게 느껴집니다.

왼편에 있는 나무는 산청의 삼매 중 하나라 일컫는 남명매....봄날에 와야 제맛을 아는데^^;;

여기서 공부한 남명의 제자들은
선생의 정신 그대로 임진왜란 시 의병을 일으켜 국난 극복의 선봉이 되었습니다.
정인홍, 곽재우....등등
정인홍선생의 멸망(?)과 함께 남명선생의 문중은 멸망(?)하다시피 했다가
500년의 세월이 흘러 다시 부활하게 된 역사에는
아이러니하게도 남명선생의 제자였던 조상을 둔 전상희선생(전두환 전대통령의 삼촌)의 힘이 컸다는 야사가 있군요.

산천재의 벽화를 눈여겨 보는 분이 과연 얼마나 있을지?
인터넷세상입니다. 이 벽화에 얽힌 이야기는 검색을 통해^^

이제 성재권교수님의 말씀을 통해 다시한번 산천재에서 마지막 삶을 보내신 남명 조식선생을 그려봅니다.

삼가 토동마을(외토리) 회관마당에 차를 세웠습니다.
이곳은 선생의 생가터가 있는 곳입니다.
해가 저물고 있어 마음이 바쁩니다만...

마침 대문밖을 나오신 아지매께 길을 물어 동네안으로 들어섭니다.
"거 아무것도 없다~" 하시네요.

가다가 오른편 골목으로 꺾습니다.

또 사진이 흔들렸습니다. ㅠㅠ
표지판에서 설명하듯, 이곳에 살던 민가는 헐리고 빈 터만 덩그러니 남아 있습니다.

집터가 의지하고 있는 작은 동산(?)에 올라 사진에 담습니다.
세월이 쓸쓸하게 담겨져 있네요. 가을이라서 그런가요?
밟고 선 땅은 예전엔 대밭이었고...
선생께서 태어나 4살때까지 자라신 외가는 저렇게 휑하니 비어 있습니다....
그러나 남명선생을 만난 우리들의 마음은 무엇인가로 채워지고 있었답니다.
2011년 11월 17일 목요일의 현장실습이었습니다.
아, 어떤 내용이냐구요?
경상대학교 평생교육원 '진주문화전문해설가과정'학생들의 진주문화현장 실습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