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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력으로 아빕월 9일, 양력으로는 7, 8월에 해당하는데, 이날은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날이다. 유대인에게 최대의 슬품의 날이다. 이날은 성전이 파괴된 것을 대대적으로 슬퍼하는 날이다. 유대인들은 전통적으로 아빕월 9일을 전후해서 3 주 동안 유대인들은 결혼식을 하지 않으며 파티를 열지 않는다. 이날은 대속죄일과 성격이 같다. 음식은 물론 물도 마시지 않는다. 세수와 목욕은 물론 일체의 화장도 하지 않는다. 화려한 옷과 가죽신을 삼가고 부부관계도 하지 않는다. 이날엔 성경도 공부하지 않는다. 일로 여겨지는 것은 일체 하지 않는다. 소리내서 웃지 않으며 낮은 의자에 앉는다. 회당에서는 주로 예레미야애가서를 읽으며 애통의 기도문을 읽으며 성전파괴를 슬퍼하는 날이다. 오늘날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은 통곡의 벽으로 몰려들어 밤을 새워 철야를 하며 성전이 파괴된 것을 통곡하며 기도한다. 아마도 통곡의 벽에 연중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모여 기도하는 날일 것이다. 이날에 원근 각처에서 몰려온 유대인들은 넓은 통곡의 벽 광장을 가득 메우고 삼삼오오 가족 단위로 모여 않아 밤을 세워 기도하며 철야를 한다. 오늘날 유대인들에게 가장 거룩한 성지라면 바로 통곡의 벽이다. 솔로몬이 지었던 성전 서쪽을 감쌌던 외벽이었기에 서쪽벽이라고도 불린다. 다윗 왕의 부와 권력을 물려받은 솔로몬은 지금부터 3천여년 전에 예루살렘 모리아 산에 성전을 지었다. 이 성전은 유대인에게는 물론 멀리 이방인들의 세계에도 수많은 화제거리가 되었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솔로몬의 예루살렘 성전은 주전 586년에 바벨론 느브갓네살군에 의해 파괴되었다. 포로에서 돌아온 유대인들은 우여곡절 끝에 다시 옛 성전에 버금가는 제2의 성전을 재건했다. 그러나 이것마저 주후 70년 로마의 디도장군에 의해 재차 파괴되고 말았다. 그런데 묘하게도 첫 번째 지은 성전과 두 번째 지은 성전이 파괴된 날자가 유대력으로 같은 날이다. 아빕월 9일인 것이다. 성전이 파괴되고 유대땅에는 이방의 세력이 살면서 유대인들은 전세계를 떠도는 나라 없은 민족이 되었다. 옛 솔로몬의 성전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옛 성전 터를 바라볼 수 있는 최적의 장소 감람산에 오르기 시작하면서 이 감람산이 유대인의 성지가 되어갔다. 이곳에서 성전산을 바라보며 기도하던 유대인들은 죽어서도 성지를 바라볼 수 있기를 소망한 유대인들은 감람에 묻히는 것이 최고의 영광이 되었다. 그러나 이것도 잠시, 1948년 감람산을 포함한 동예루살렘이 요르단 영토로 나뉘면서 유대인들이 더 이상 접근할 수 없었다. 동쪽에 성전산을 바라볼 수 없게 되자 이번에는 서쪽에서 성전산을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방편을 모색했다. 그곳이 서쪽벽(통곡의 벽)이었다. 이후 유대인들은 비좁은 서쪽 벽에 다가가 기도하는 최고의 명소가 되었다. 그러나 요르단은 유대인들의 자유로운 접근을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성전이 파괴된 이 날 만큼만 공식적인 방문을 허락하였다. 국내는 물론 전세계 유대인들이 이날 서쪽 벽에 접근하여 기도하였다. 그러나 이것도 때로는 정치적인 이유로 금지시키곤 해 일년동안 기다려온 발걸음을 되돌리는 때가 있었다. 그러니 서쪽벽에서 기도하는 것은 그 이상의 감격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성전파괴일날 서쪽벽을 찾은 유대인들은 두가지 습관이 있었다. 하나는 성전이 파괴되고 나라를 잃고 떠도는 자신들의 처지를 생각하며 기도하는 유대인들에게 통곡하며 기도하게 마련이었다. 그래서 서쪽벽은 울음바다가 되었고, 이는 곧 서쪽벽의 이름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통곡의 벽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두 번째가 기도문을 써 넣고 가는 습관이다. 오늘 통곡의 벽을 방문하면 일년 후에나 다시 올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다시 올 수 있을때까지 기도를 적은 쪽지를 꽂아 놓고 갔고, 심지어 함께 방문하지 못한 가까운 이들의 기도문을 받아와 대신 꽂아놓고 가게 된 것이다. 이것이 전례가 되어서 오늘날 통곡의 벽에는 기도문이 빽빽히 꽂혀있게 되었다. 2000년 3월 26일 통곡의 벽을 방문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도 그의 기도문을 꽂아 놓았다. 성전은 파괴되지 않을 수 있었다 - 한 성난 로마병사의 실수로 성전은 전소되었다 그런데 하나 아쉬운 것을 역사에서 찾을 수 있었다. 어쩌면 성전이 파괴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당시의 기록을 요세프스의 기록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요세프스는 애초 로마군은 성전을 파괴할 계획이 아니였다는 것이다. 당시 총 지휘관이였던 디도 장군의 명령을 무시한 흥분한 한 로마병사의 실수로 성전이 파괴된 것이였다. 당시 로마군의 장교로 현장을 목격한 유대역사가 요세푸스는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예루살렘 성전을 포위하고 로마군과 성전을 장악한 유대인들이 필사의 저항을 하고 있었다. 당시 총 사령관인 디도 장군은 성전이 파괴되기 전날 6명의 최고 지휘관과 그외 군단 지휘관들의 회의를 소집했다. 곧 정복할 예루살렘에 대한 작전과 더불어 성전을 파괴할 것인과 말것인가에 대한 논의를 했다. 의견은 두 갈래로 나뉘어 졌다. 일부 지휘관들은 성전을 파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쟁에 법칙에 따라 성전을 파괴하는 것이 최선책이다. 오래전부터 성전은 유대인들의 집결장소로 이용되었기 때문에 성전이 서 있는 한 유대인들은 결코 반역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반면 다음과 같은 제안도 있었다. 유대인들이 성전을 떠나 더 이상 성전에 무기를 쌓아 놓지 않는다면 성전을 보존해야 한다. 그러나 계속 성전을 장악하고 전쟁을 그치지 않는다면 성전을 불살라야 합니다. 모든 의견을 모은 디도장군은 다음과 같이 결정을 내린다. 비록 유대인들이 성전을 점거하고 그 곳에서 우리에게 공격을 해 오고 있으나 잘못을 저지른 사람 대신 생명이 없는 건물에 복수를 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나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이같이 웅장한 건물을 전소시킨다는 것은 반대다. 그대로 두면 로마 제국의 장식이 될 수도 있는 것으로 파괴한다는 것은 곧 로마제국의 손해를 자초하는 일이다. 유대인은 섬멸하되 성전은 파괴하지 않고 보존한다는 결정을 내리고 회의는 종결되었다. 그런데 성전이 불탄 발단은 유대인에게 있었다. 성전안뜰에 옹기종기 타는 불을 끄고 있는 로마병사들을 유대인들이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에 로마병사가 역공격을 하고 마침에 유대인들을 추격하며 성전까지 진격하였다. 이때 성난 한 병사는 상관의 명령를 기다리지도 않고 성전창문살에 불을 질렀다. 이에 화염이 치솟자 유대인들은 고통에 찬 함성을 지르며 불을 진화하기 달려나왔다. 불길속에 유대인과 로마군의 싸움이 격렬해졌다. 마침 장막에서 쉬고 있던 디도 장군은 한 병사로부터 성전에 불이 붙었다는 보고를 받았다. 급히 일어나 성전으로 달려간 디도 장군은 큰소리로 고함을 치며 불을 끄도록 명령하였다. 그러나 유대인과 로마군이 뒤썩인 싸움터에서 들릴리 만무였다. 디도의 명령을 받은 장교들이 불을 끄라는 명령을 내렸지만 성난 병사들은 들은체도 안했다. 기세를 잡지못한 디도장군이 직접 화제진압에 나섰다. 아직 불이 지성소까지 가지 못했다. 성급히 지성소 안으로 들어간 디도장군은 순간적으로 이방인들이 성소에 관해 이야기한 것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유대인들의 자랑거리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성소 내부는 온통 금으로 되어있었다. 그러나 발빠른 성난 로마병사는 디도장군과 휘하 지휘관들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이미 지성소 안으로 불을 던졌버렸다. 이에 지성소 마저 불길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웅장한 건물, 정교한 구조, 막대한 공사비, 그리고 신성한 성전으로 수많은 화제를 낳았던 예루살렘 성전이 전소되어가고 있었다. 유대인들은 고통스런 애통이 변해 허탈해 졌, 로마인들에게도 막상 아쉽움이 찾아왔다. 그러나 이미 모든 것은 끝났다. 성전 전소와 함께 로마군은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닥치는데로 유대인들을 학살하였다. 이날에만 만여명의 유대인이 살해되었다. 불타는 성전 연기의 소용돌이 속에 죽어가는 유대인들의 신음소리가 예루살렘을 메아리 쳤다. 그런데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사실이 하나 있다. 주전 586년 바벨론은 예루살렘 정복과 함께 솔로몬의 성전을 불태웠다. 바로 바벨론에 의해 예루살렘 성전이 불탄 날과 동일한 달 동일한 날에 다시한번 로마인들에 의해 성전이 불탄 것이다. 솔로몬에 의해 성전이 지어진지 1,130년 75개월 15일 만에 유대인의 예루살렘 성전은 이 지구상에서 자취를 감춘것이다. 디도장군의 명령를 어긴 한 성난 로마병사에 의해.
출처 :이스라엘 투데이 이 강근 목사님 유대력으로 아빕월 9일, 양력으로는 7, 8월에 해당하는데, 이날은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날이다. 유대인에게 최대의 슬품의 날이다. 이날은 성전이 파괴된 것을 대대적으로 슬퍼하는 날이다. 유대인들은 전통적으로 아빕월 9일을 전후해서 3 주 동안 유대인들은 결혼식을 하지 않으며 파티를 열지 않는다. 이날은 대속죄일과 성격이 같다. 음식은 물론 물도 마시지 않는다. 세수와 목욕은 물론 일체의 화장도 하지 않는다. 화려한 옷과 가죽신을 삼가고 부부관계도 하지 않는다. 이날엔 성경도 공부하지 않는다. 일로 여겨지는 것은 일체 하지 않는다. 소리내서 웃지 않으며 낮은 의자에 앉는다. 회당에서는 주로 예레미야애가서를 읽으며 애통의 기도문을 읽으며 성전파괴를 슬퍼하는 날이다. 오늘날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은 통곡의 벽으로 몰려들어 밤을 새워 철야를 하며 성전이 파괴된 것을 통곡하며 기도한다. 아마도 통곡의 벽에 연중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모여 기도하는 날일 것이다. 이날에 원근 각처에서 몰려온 유대인들은 넓은 통곡의 벽 광장을 가득 메우고 삼삼오오 가족 단위로 모여 않아 밤을 세워 기도하며 철야를 한다. 오늘날 유대인들에게 가장 거룩한 성지라면 바로 통곡의 벽이다. 솔로몬이 지었던 성전 서쪽을 감쌌던 외벽이었기에 서쪽벽이라고도 불린다. 다윗 왕의 부와 권력을 물려받은 솔로몬은 지금부터 3천여년 전에 예루살렘 모리아 산에 성전을 지었다. 이 성전은 유대인에게는 물론 멀리 이방인들의 세계에도 수많은 화제거리가 되었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솔로몬의 예루살렘 성전은 주전 586년에 바벨론 느브갓네살군에 의해 파괴되었다. 포로에서 돌아온 유대인들은 우여곡절 끝에 다시 옛 성전에 버금가는 제2의 성전을 재건했다. 그러나 이것마저 주후 70년 로마의 디도장군에 의해 재차 파괴되고 말았다. 그런데 묘하게도 첫 번째 지은 성전과 두 번째 지은 성전이 파괴된 날자가 유대력으로 같은 날이다. 아빕월 9일인 것이다. 성전이 파괴되고 유대땅에는 이방의 세력이 살면서 유대인들은 전세계를 떠도는 나라 없은 민족이 되었다. 옛 솔로몬의 성전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옛 성전 터를 바라볼 수 있는 최적의 장소 감람산에 오르기 시작하면서 이 감람산이 유대인의 성지가 되어갔다. 이곳에서 성전산을 바라보며 기도하던 유대인들은 죽어서도 성지를 바라볼 수 있기를 소망한 유대인들은 감람에 묻히는 것이 최고의 영광이 되었다. 그러나 이것도 잠시, 1948년 감람산을 포함한 동예루살렘이 요르단 영토로 나뉘면서 유대인들이 더 이상 접근할 수 없었다. 동쪽에 성전산을 바라볼 수 없게 되자 이번에는 서쪽에서 성전산을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방편을 모색했다. 그곳이 서쪽벽(통곡의 벽)이었다. 이후 유대인들은 비좁은 서쪽 벽에 다가가 기도하는 최고의 명소가 되었다. 그러나 요르단은 유대인들의 자유로운 접근을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성전이 파괴된 이 날 만큼만 공식적인 방문을 허락하였다. 국내는 물론 전세계 유대인들이 이날 서쪽 벽에 접근하여 기도하였다. 그러나 이것도 때로는 정치적인 이유로 금지시키곤 해 일년동안 기다려온 발걸음을 되돌리는 때가 있었다. 그러니 서쪽벽에서 기도하는 것은 그 이상의 감격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성전파괴일날 서쪽벽을 찾은 유대인들은 두가지 습관이 있었다. 하나는 성전이 파괴되고 나라를 잃고 떠도는 자신들의 처지를 생각하며 기도하는 유대인들에게 통곡하며 기도하게 마련이었다. 그래서 서쪽벽은 울음바다가 되었고, 이는 곧 서쪽벽의 이름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통곡의 벽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두 번째가 기도문을 써 넣고 가는 습관이다. 오늘 통곡의 벽을 방문하면 일년 후에나 다시 올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다시 올 수 있을때까지 기도를 적은 쪽지를 꽂아 놓고 갔고, 심지어 함께 방문하지 못한 가까운 이들의 기도문을 받아와 대신 꽂아놓고 가게 된 것이다. 이것이 전례가 되어서 오늘날 통곡의 벽에는 기도문이 빽빽히 꽂혀있게 되었다. 2000년 3월 26일 통곡의 벽을 방문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도 그의 기도문을 꽂아 놓았다. 성전은 파괴되지 않을 수 있었다 - 한 성난 로마병사의 실수로 성전은 전소되었다 그런데 하나 아쉬운 것을 역사에서 찾을 수 있었다. 어쩌면 성전이 파괴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당시의 기록을 요세프스의 기록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요세프스는 애초 로마군은 성전을 파괴할 계획이 아니였다는 것이다. 당시 총 지휘관이였던 디도 장군의 명령을 무시한 흥분한 한 로마병사의 실수로 성전이 파괴된 것이였다. 당시 로마군의 장교로 현장을 목격한 유대역사가 요세푸스는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예루살렘 성전을 포위하고 로마군과 성전을 장악한 유대인들이 필사의 저항을 하고 있었다. 당시 총 사령관인 디도 장군은 성전이 파괴되기 전날 6명의 최고 지휘관과 그외 군단 지휘관들의 회의를 소집했다. 곧 정복할 예루살렘에 대한 작전과 더불어 성전을 파괴할 것인과 말것인가에 대한 논의를 했다. 의견은 두 갈래로 나뉘어 졌다. 일부 지휘관들은 성전을 파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쟁에 법칙에 따라 성전을 파괴하는 것이 최선책이다. 오래전부터 성전은 유대인들의 집결장소로 이용되었기 때문에 성전이 서 있는 한 유대인들은 결코 반역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반면 다음과 같은 제안도 있었다. 유대인들이 성전을 떠나 더 이상 성전에 무기를 쌓아 놓지 않는다면 성전을 보존해야 한다. 그러나 계속 성전을 장악하고 전쟁을 그치지 않는다면 성전을 불살라야 합니다. 모든 의견을 모은 디도장군은 다음과 같이 결정을 내린다. 비록 유대인들이 성전을 점거하고 그 곳에서 우리에게 공격을 해 오고 있으나 잘못을 저지른 사람 대신 생명이 없는 건물에 복수를 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나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이같이 웅장한 건물을 전소시킨다는 것은 반대다. 그대로 두면 로마 제국의 장식이 될 수도 있는 것으로 파괴한다는 것은 곧 로마제국의 손해를 자초하는 일이다. 유대인은 섬멸하되 성전은 파괴하지 않고 보존한다는 결정을 내리고 회의는 종결되었다. 그런데 성전이 불탄 발단은 유대인에게 있었다. 성전안뜰에 옹기종기 타는 불을 끄고 있는 로마병사들을 유대인들이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에 로마병사가 역공격을 하고 마침에 유대인들을 추격하며 성전까지 진격하였다. 이때 성난 한 병사는 상관의 명령를 기다리지도 않고 성전창문살에 불을 질렀다. 이에 화염이 치솟자 유대인들은 고통에 찬 함성을 지르며 불을 진화하기 달려나왔다. 불길속에 유대인과 로마군의 싸움이 격렬해졌다. 마침 장막에서 쉬고 있던 디도 장군은 한 병사로부터 성전에 불이 붙었다는 보고를 받았다. 급히 일어나 성전으로 달려간 디도 장군은 큰소리로 고함을 치며 불을 끄도록 명령하였다. 그러나 유대인과 로마군이 뒤썩인 싸움터에서 들릴리 만무였다. 디도의 명령을 받은 장교들이 불을 끄라는 명령을 내렸지만 성난 병사들은 들은체도 안했다. 기세를 잡지못한 디도장군이 직접 화제진압에 나섰다. 아직 불이 지성소까지 가지 못했다. 성급히 지성소 안으로 들어간 디도장군은 순간적으로 이방인들이 성소에 관해 이야기한 것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유대인들의 자랑거리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성소 내부는 온통 금으로 되어있었다. 그러나 발빠른 성난 로마병사는 디도장군과 휘하 지휘관들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이미 지성소 안으로 불을 던졌버렸다. 이에 지성소 마저 불길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웅장한 건물, 정교한 구조, 막대한 공사비, 그리고 신성한 성전으로 수많은 화제를 낳았던 예루살렘 성전이 전소되어가고 있었다. 유대인들은 고통스런 애통이 변해 허탈해 졌, 로마인들에게도 막상 아쉽움이 찾아왔다. 그러나 이미 모든 것은 끝났다. 성전 전소와 함께 로마군은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닥치는데로 유대인들을 학살하였다. 이날에만 만여명의 유대인이 살해되었다. 불타는 성전 연기의 소용돌이 속에 죽어가는 유대인들의 신음소리가 예루살렘을 메아리 쳤다. 그런데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사실이 하나 있다. 주전 586년 바벨론은 예루살렘 정복과 함께 솔로몬의 성전을 불태웠다. 바로 바벨론에 의해 예루살렘 성전이 불탄 날과 동일한 달 동일한 날에 다시한번 로마인들에 의해 성전이 불탄 것이다. 솔로몬에 의해 성전이 지어진지 1,130년 75개월 15일 만에 유대인의 예루살렘 성전은 이 지구상에서 자취를 감춘것이다. 디도장군의 명령를 어긴 한 성난 로마병사에 의해.
출처 :이스라엘 투데이 이 강근 목사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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