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깨 농사를 지으면 깻잎이 덤으로 따라온다. 밭 귀퉁이에 너댓 포기만 심어놔도 한 가족이 먹기에 충분한 잎을 얻을 수 있다. 여름철 온 가족이 텃밭에 나가 땀 흘려 일하고 선선한 그늘에 앉아 삼겹살에 쐬주 한 잔 걸칠 때, 뚝뚝 따다가 쌈을 싸먹으면, 채소가게에서 사다 먹던 깻잎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오랫동안 입안에 여운을 남기는 강렬하고 진한 향과 맛을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 햇볕을 받고 비를 맞으며 자랐기 때문이다.
보통 들깨는 씨알을 얻기 위해 농사를 짓는다. 들깨를 털어서 잘 모셔 뒀다가 겨울철 군것질로 강정을 만들어 먹기도 하고, 가루를 내서 조미료로 쓰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기름을 짠다. 수확한 들깨를 잘 씻어서 말린 뒤 방앗간에 들고 가면 기름을 짜 준다. 적당히 볶아서 짜는데 막 짜내는 들기름의 그 감미로운 향은 맡아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들기름의 참 맛과 향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중국산 농산물이 범람하는 요즘은 더욱 그렇다.
문제는 들깨가 적어도 한 말은 나와야 들기름을 짤 수 있다는 것인데 땅이 넉넉치 않은 주말농사에서 한 말 들깨를 얻을 방법이 없다. 그러나 아주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두 세 집이 힘을 합쳐서 ‘두레 밭’을 만들어 함께 농사를 짓는 방법이 있다. 한번쯤 시도해볼 만하다. 힘을 합쳐서 농사를 짓고 들기름을 짜서 나누면 된다. 대략 300평에서 80 킬로그램 정도를 수확하니까 20평정도 심으면 된다. 들깨 한 말(5kg)로 2리터 안팎의 들기름을 짤 수 있다. 들기름 짜면서 나온 깻묵은 또 좋은 거름이 된다.
들기름에는 불포화지방산이 많아, 혈중 콜레스테롤을 저하시키고 항암 효과, 당뇨병 예방, 시력 향상, 알레르기 질환 예방 등에 좋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옛날 어른들은 들깨를 들고 다니며 심심풀이로 두세 줌씩 집어 먹으면 절로 건강해진다고 했다. 잡곡밥에다 뜸 들일 때 두세 방울 씩 떨어뜨려 먹으면 밥맛도 좋고 건강에도 매우 좋다.
들깨의 독특한 향은 농사에도 아주 유익하게 쓰인다. 고추밭에 군데군데 심어 놓으면 고추에 생기는 담배나방이의 피해를 예방할 수 있다. 또한 길가나 밭두둑에 심어놓으면 향 때문에 동물에 의한 피해를 막을 수 있다.
재배법
따가운 햇볕이 쏟아지기 시작할 때 땅으로 들어가고, 한 여름 땡볕에서 자라, 가을 햇살 아래서 꽃을 피워 열매를 맺는 들깨는, 태양빛의 자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만큼 생명력이 엄청나게 강하다. 웬만한 잡초와 경쟁해도 지지 않는다. 모를 낼 때 시원찮아 보여서 골에 내버린 녀석들도 땅에 물기만 있으면 뿌리를 내리고 자라 오른다. 장마철에 한창 자랄 때는 하루가 다르다. 크는 게 눈에 보일 만큼 쑥쑥 자란다. 한낮 햇볕이 너무 강렬하면 잎을 축 늘어뜨리고 딴청을 피우지만, 맑고 경쾌한 새들의 지저귐 속에 아침 해가 떠오를 때면 어김없이 싱싱한 긴장감으로 이슬을 떨구며 아침을 맞는다.
들깨는 봄에 땅을 갈지 않으면, 전년 가을에 땅에 떨어진 깨알이 싹이 터서 올라온다. 좀 더 일찍 들깻잎을 먹고 싶으면, 가을에 들깨를 한 줌 집어서 그냥 밭에 술술 뿌려두면 된다. 더 간단한 방법도 있다. 밭 한 귀퉁이에 들깨를 조금 심어 놓고 잎만 따서 먹고 가을에 거두지 않으면 된다. 마치 잡초처럼 매년 올라오고 또 올라온다. 이렇게 거의 야생으로 방치한 들깨알은 돌처럼 딱딱해지는데 그래서 돌깨 혹은 돌들깨라고 부르기도 한다. 들깨는 이렇게 생명력이 강하기 때문에 밭에서 모를 키우고 뿌리에 흙을 묻히지 않은 채 옮겨 심는다.
밭 준비
들깨 심을 밭은 특별히 골과 이랑을 만들지 않아도 된다. 물 잘빠지고 바람 잘 통하게 120cm 간격으로 살짝살짝 배수로만 만들어 줘도 충분하다. 길가나 밭두둑에 심어 짜투리 땅을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도 있다. 콩과 함께 심거나 콩밭 둘레에 심으면 좋다. 밀과 보리를 심었던 이랑 사이에 심어도 좋다. 또한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고추밭에 듬성듬성 심으면 들깨 향으로 고추에 생기는 해충을 예방할 수도 있다. 마늘을 수확한 후 그 밭에 심으면 마늘의 연작피해를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된다.
씨앗뿌리기 모키우기
300평에 심을 경우 20평 정도에 모를 키운다. 파종 시기는 5월 중순이나 하순이다. 너부 배게 심어서 잎과 잎이 마주치면 솎아준다. 본잎이 5~6매 정도 나오면 옮겨 심는데, 씨앗 뿌리고 나서 30일 정도 걸린다. 본 밭에 옮겨 심을 때는 6월 중순이나 하순 쯤, 비 오기 전날 옮겨 심는 게 좋다. 모판에 물을 흠뻑 주고 모종삽을 이용해서 쑥쑥 잡아 뽑으면 된다.
옮겨심기
초보자들은 꼿꼿이 세워서 심고 경험이 있는 사람은 눕혀서 심는다. 세워서 심으면 쓰러졌다가 다시 일어나고, 눕혀서 심으면 그냥 일어난다. 심을 때는 한 사람은 60cm×50cm 간격으로 길쭉하게 들깻모 길이만큼씩 흙을 파고, 한 사람은 흙 파 놓은 자리에 물을 채우고, 또 한 사람은 비슷한 크기의 모를 한 구멍에 두세 개씩 떨구고 지나가면, 마지막 사람이 흙을 덮어준다. 혼자서 일 할 때는 순서대로 1인 4역을 하면 된다. 이렇게 일을 순서대로 나눠서 하면 흙 묻은 손으로 모를 만지지 않아도 된다.
흙을 팔 때는 뿌리가 들어갈 부분은 좀 깊게 하는 게 좋고, 흙을 덮을 때는 잘 자란 잎이 3-5개 나오도록 하고, 짧은 것과 긴 것을 함께 심을 때에는 잎 끝을 맞춰서 심는다.
가꾸기
들깨는 흙 표면 바로 위의 줄기에서도 뿌리(막뿌리)가 나기 때문에 되도록 북돋아주기를 한다. 북주기를 하면, 더 튼실하게 자라 장마나 태풍 때 쓰러짐을 방지할 수 있고 열매도 더 맺히게 한다.
워낙 들깨가 힘이 좋고 빨리 자라며 향도 있기 때문에 풀은 그리 크게 걱정할 일이 없다. 모종한 후에 한번쯤 매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되도록 북주기를 할 때 같이 해 주면 일을 덜 수 있다.
북주기와 풀매기를 한 후 웃거름으로 깻묵을 발효시킨 액비를 주거나 여의치 않으면 오줌을 주어도 된다.
들깨는 성장이 매우 좋아 곁가지가 금방 나오는데, 밑의 가지를 따면 더 잎을 크게 키울 수 있다. 그냥 내버려 둬도 별 지장은 없지만, 쌈용으로 먹을 때나 잎을 반찬으로 따 먹을 때 가능하면 밑의 것을 따주면 일석이조의 효과를 꾀할 수 있다.
수확
들깨는 보통 10월이 되면 익기 시작하는데, 흰들깨나 조생종은 9월 중순이 지나면 익기 시작한다. 거두어 들일 때에는 밑의 잎과 열매의 맨 밑 꼬투리가 노랗게 익으면 베는 게 좋다. 밭에서 다 익어버리면 알들이 절로 떨어지거나 낫으로 벨 때 그 충격으로 많은 알들이 땅으로 다 떨어질 수 있다. 그리고 벨 때는 약간 비가 온 다음 바로 하거나 아니면 이슬이 맺혀 있는 이른 아침이나 오후쯤이 좋다. 그래야 알들이 떨어지는 것을 줄일 수 있다.
낫으로 벨 때는 한 포기를 한꺼번에 베지 말고 줄기 하나씩 비스듬히 밑에서 위로 베어 베어 충격을 줄이도록 한다.
벤 것은 비니루나 장판 위에 깔아 놓고 말리고, 꼬투리 전체가 누렇게 되었을 때 긴 막대기나 도리깨로 두드려 씨앗을 받는데, 두세 번에 걸쳐 해야 한다. 한번에 알들이 다 빠지지 않기 때문이다.
비닐 바닥에 깔린 알들은 껍질과 섞여 있기 때문에 체로 거른 다음 키질로 까발려 깨끗하게 알을 고른다.
이용
깻잎을 이용한 요리로는 깻잎쌈에서부터 잎에다 밀가루나 찹쌀가루를 묻혀 기름에 튀기는 깻잎부각, 깻잎김치, 깻잎짱아찌가 있다. 깻잎김치로는 젖국물을 넣어 갖은 양념과 함께 층층히 쌓아 먹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소금물에 돌을 눌러 놓아 삭힌 다음 물엿을 섞은 갖은 양념에 재어 놓아 먹는 것이 일품이다.
깨알을 짜서 만드는 들기름은 옛날에는 등화용이나 칠 대용, 또는 그을음으로 먹을 만들기도 했지만 지금은 식용으로 먹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텃밭에서 약간만 재배하는 경우는 기름으로 짜먹을만큼 양이 충분치 않기 때문에 깨알을 이용한 음식을 해 먹는 게 좋다. 깨알은 갈아서 죽을 먹는 것과 들깨를 볶아 갈아서 그냥 물에 타먹기도 한다.
들깨는 혈액순환, 신진대사 등 생리활동에 좋아, 일상적으로 장기 복용하면 체질을 개선하는 데에도 효과가 뛰어나다. 그래서 일상적으로는 그냥 알 자체를 군것질로 먹거나 들기름을 밥에 넣어 먹는 것도 좋고, 좀더 맛있고 영양 있게 먹으려면 인삼이나 땅콩, 잣 등과 함께 깨죽을 만들어 먹으면 더욱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