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의 사진 주인공은 까까머리 시절에 나의 두 여신중 한 명이다. 다른 한 명은 영원한 나의 여신인 오드리 헵번이다. 어린 시절에 내 여신으로 정한 이후 지금까지 한 눈을 판 적이 없었다. 비록 나의 영원한 여신인 오드리는 93년에도 이 세상을 떠났지만, 여전히 나의 여신으로서 굳건히 지키고 있다.
사진의 주인공은 70년대 중반 청춘명랑영화 즉 하이틴영화를 통해 뭇 남학생들을 설레이게 한 강주희라는 배우이다. 이 여배우를 알게 된 것은 77년 1월에 극장에 상영된 고교얄개라는 영화이다. 이승현과 짝을 이루어 소위 "얄개시리즈"를 통해 수많은 남학생들 팬을 확보한 누나부대의 원조격이 아닐까 싶다.
이 당시 하이틴영화는 영화적 소재가 극히 제한적인 상황에서 영화판 자체를 끌고 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70년중반이후 영화창작에 필요한 소재의 극심한 제한은 박정희 유신정권에 의해서 이루어져 하이틴 영화의 전성시대를 열수 있었고 심지어는 영화판 자체를 유지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문여송감독이 만든 75년 이덕화와 임예진의 "진짜 진짜 사랑해"는 하이틴영화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렸다고 할 수 있다. 이 영화는 70년대 암울했던 시대적 상황에서 10대의 욕망과 분출을 다루는 영화로서 상당한 흥행을 이루었던 영화이다.
난 석래명의 고교얄개에 열광했다. 사실 영화내용에 열광했던 것이 아니라 여주인공 강주희에 빠져 버렸다. 영화라는게 그렇지 않은가, 머리 좋으면서도 마음씨 착하고 거기에다가 미모까지 받쳐주는 여학생에게 빠져들거나 아니면 반항적이면서도 감히 근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를 내뿜는 여학생에게 빠져드는 것은 까까머리 남학생들의 공통점이 아닐까 싶다.
어째든 오드리 헵번만을 나의 여신으로 삼기로 한 약속을 불가피하게 깼다. 그 약속을 깨게 한 것은 바로 강주희라는 배우로 인해서이다. 이후로 강주희가 나오는 영화는 몽조리 다 봤다. 물론 영화를 보기 위해서 신문배달을 마다하지 않았으니까.
요즘 성형미인이 넘차고 있지만, 이 당시에 성형이라고 해봐야 쌍꺼풀 수술 그리고 코대 세우기 정도였던 시절인 것을 감안한다면, 강주희는 천연미인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이 여배우의 연기력은 그다지 높은 점수를 줄 순 없지만, 어째든 알콩달콤한 연기를 하는데 개성있는 연기력이 필요한 것이 아니니 그렇게 문제로 삼을 필요가 있을까 싶다.
석래명의 고교얄개로 아역스타로 이름을 알린 이승현, 그리고 이승현의 여신인 강주희 커플을 중심으로 김정훈, 진유영이 패키지로 나오는 고교얄개는 하이틴 영화의 최전성기를 구가했다. 소위 하이틴영화의 트로이카 감독으로 불리는 문여송, 석래명 김응천가 만들어 낸 하이틴 영화가 76년도에만 약 26편이 만들어졌다고들 한다.
경제적으로 부유한 탓에 철딱서니가 좀 부족하면서 장난기가 도를 넘어 사고뭉치이지만 인간적인 면을 늘 유지하는 캐릭터의 이승현, 마쵸적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캐릭터의 진유영, 공부 잘하는 모범생이지만 몸이 허약한 캐릭터의 김정훈. 이들 네 명은 석래명과 김응천의 영화에 거의 고정적으로 나오고 또 한 명의 배우가 있는데(이름은 기억나지 않음) 이 배우도 단골로 나온다.
표현의 한계 그리고 무자비한 검열의 시대에서 영화적 완성도나 작품성을 하이틴 영화에서 찾는다는 것은 무의미한 것이 아닌가 싶다. 영화계에서 하이틴 영화로 소재의 돌파구를 찾긴 했지만, 시대적 상황을 탓하면서 영화의 작품성을 높이기 위한 작가정신은 위축되거나 전혀 찾아 볼 길이 없다.
참 재미있는 것은 77년 1월에 고교얄개가 개봉되었고 두 달 뒤에 김응천의 고교우량아가 3월에 개봉되었다. 감독은 다르지만 나오는 배우들은 같다. 고교얄개에 이승현, 강주희 커플, 김정훈이 나오고 진유영이 조연급으로 나온다. 2개월 뒤에 개봉된 고교우량아에도 이승현-강주희에 김정훈, 진유영이 등장한다.
2개월을 시차를 두고 개봉한 영화이긴 하지만 대단하다고 할 수 밖에. 이는 저예산으로 인기에 편승한 영화만들기에 지나지 않은 것이다. 어째든 난 이 두 영화를 봤음은 두말한 잔소리이다. 왜, 나의 여신 강주희를 보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이 영화로 통해서 덤으로 볼 수 있는 행운이 하나 있었다. 그건 당대에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여배우 트로이카중 한 명인 정윤희를 볼 수 있다는 거.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성인영화 배우인 정윤희가 하이틴 영화에 나온다는 것은 이 영화의 흥행성이 담보되었다는 걸 의미하는 것이다.
어째거나 난 정윤희는 관심 밖이었다. 물론 몇년 뒤에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