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오만아 마을 |
천천히 걸어야 한다. 라오만아(老曼俄) 마을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펼쳐진 수백 년 된 고차수다원(古茶樹茶園)을 두루 살펴보려면 하루 종일 해발 1200m와 1650m 사이의 능선을 무시로 오르내려야만 한다. 마음이 바쁘다고 잰걸음을 하다가는 연거푸 이어지는 오르막을 감당할 수 없다. 한족(漢族) 안내인은 고개를 하나 넘더니 산행을 포기하고 주저앉고 말았다. 우기에 더욱 험악해진 부랑산(布朗山) 길을 긴장하며 온 탓에 라오반장(老班章)에서 10㎞에 불과한 거리를 2시간 넘게 걸려 왔다. 하지만 원시림과 더불어 사는 고차수 군락지를 보자 피로는 사라지고 힐링(healing)이 찾아왔다.
수령 100년에서 500년 사이의 풍채 좋은 고차수가 산기슭에 고루 분포되어 있는 라오만아의 차산은 역시 원조다운 풍치와 양질의 생태환경을 잘 유지하고 있었다. 라오반장의 유명세에 가려 덜 알려진 덕에 오히려 잘 보전된 차산 생태환경이 돋보였다.
라오반장과 유사한 맛에 가짜 라오반장차를 만들 때 라오만아차를 많이 섞어 사용했다는 오명도 한때 있었다. 지금은 라오만아의 모차(毛茶) 가격도 충분히 비싸기 때문에 짝퉁을 만들기 위한 소재로 쓰기에는 타산이 맞지 않다. 고수차의 품질과 시장 논리에 의해서 라오만아의 모차도 이미 고가에 거래되고 있다. 고수차(古樹茶)를 전문으로 만드는 차창들이 좋은 차나무들을 선점한 표시로 입간판을 차산 곳곳에 세워놨다. 마을에 세워진 유명 차창의 초제소(初製所)와 신축 중인 초제소를 보고 짐작은 하였지만 불과 2년 전에 비하여 지금은 모차 수매 가격이 괴로울 정도로 많이 올라 있다.
윈난(雲南)의 원시림을 누비고 다니다 보면 산야에서 뿜어내는 기운이 너무 강하여 사람을 압도하는 느낌을 종종 받는다. 소설 ‘삼국지’에 나오는 제갈량의 군대가 윈난에 와서 풍토병에 시달렸다는 이야기에 공감이 갔다. 두통과 안질에 시달리던 그의 군대를 질병에서 구한 것이 바로 ‘차’다. 5000여년 전 삼황(三皇) 중 하나인 신농(神農)이 독초에 중독된 몸을 차로 해독했다는 설화를 비롯하여 약용으로 사용된 기록을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약용으로 출발한 차가 식용을 거쳐 이제는 음용으로 주로 사용되지만 차산의 소수민족은 아직도 식용으로 자주 사용한다. 라오만아의 부랑족(布朗族)도 물에 살짝 데친 찻잎을 죽통 안에 넣어 황토 속에 묻어두었다가 2년 만에 꺼내 먹는 전통 발효음식인 죽통산차(竹桶酸茶)를 지금도 즐겨 먹는다. 그 밖에도 신선한 찻잎으로 만든 다양한 요리는 지금은 차산에서만 누릴 수 있는 호사(豪奢)다.
인류 최초로 차를 재배하였다는 고대 민족 복족의 후예인 부랑족이 모여 사는 라오만아는 부랑산의 중심부 분지처럼 평평한 곳에 넓게 자리 잡고 있다. 차산은 마을을 중심으로 병풍처럼 둘러져 있다.
라오만아는 부랑산의 고차수 차산 중에서도 17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터줏대감이다. 고수차의 대명사인 라오반장을 비롯하여 부랑산의 유명 차산에 심어진 차나무의 대다수가 라오만아에서 분양받아 나갔음을 주장하며 원조로서의 자부심이 대단하다. 1000여년 전부터 사용하던 우물과 여러 고증을 통해 보면 라오만아가 부랑산에서 가장 오래된 고차수 마을인 것은 사실이다. 치솟는 인기로 투기의 표적이 되어 전국 최고의 몸값을 받는 라오반장을 부러워하기는 하지만 시샘하지 않고 맏형다운 자부심과 자신감으로 자신들이 라오만아의 부랑족인 것을 대단히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불심 깊은 차농(茶農) 덕분에 사찰에서 스님이 내어주는 차를 마시며 쉬고 있는 안내인을 다시 만났다. 사바세계와 거리를 둔 불가의 스님도 고수차를 얘기할 때는 부락주민과 똑같은 자부심이 가득 담겨 있어 그 역시 라오만아 토박이인 게 확실했다. 안면 있는 고차수 전문 제조 차창의 사장을 사찰에서 우연히 만났다. 도회(都會)가 아닌 산속에서 그를 보니 새삼 반가웠다. 그가 짓고 있다는 초제소 건설 현장을 가보았다. 예전에는 차농들이 자기 집에서 각자의 방법으로 모차를 만들어 판매를 했었다.
차산의 가옥 구조를 보면 대체로 1층은 사람이 주거하지 않는 빈 공간이다. 방목하는 돼지와 닭의 잠자리와 창고로 사용된다. 사람은 2층에 주거하며 실내에는 항상 불을 피워놓고 모든 취사를 실내에서 해결한다. 주거공간에 살청(殺靑)을 위한 화덕을 설치하거나 1층에 커다란 무쇠솥과 화덕을 만들어 차농들이 직접 1차 가공을 하여 모차를 만들어왔다. 이런 가공 방식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다. 생엽(生葉)에서 모차로 만드는 과정에서 우선 비위생적 환경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또 차농의 기술에 편차가 커서 균일한 품과 맛을 유지하기 힘들다. 완성된 모차의 보관에도 몇 가지 기술과 요령이 필요하지만 차농이 준수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많다. 차창에서 현지 차농에게 기술을 가르쳐 모차를 생산하게 하는 경우는 품과 맛은 일정한 수준을 유지할 수 있지만 제조 과정에서의 청결과 보관시설의 미비는 피할 수 없다. 요즘에는 전문 차창에서 차산에 초제소를 지어 1차 가공을 현지에서 직접 하는 것이 대세다. 차창에서 설계하여 건설한 초제소에 차창의 전문 인력이 상주하며 차를 만드는 전문화된 초제소를 운영하려면 적지 않은 초기투자와 운영비가 소요된다. 라오만아의 차가 소비자에게 인정받는 것은 환영하지만 모차 가격은 내년에도 상승할 수밖에 없는 여러 정황에 발걸음이 가볍지 않다.
1956년 부산 태생. 유현목·이두용 감독 밑에서 영화를 배운 뒤 1984년 영화감독으로 데뷔. 1980년 무렵 보이차에 입문. 중국 윈난성 보이차 산지를 탐방하는 등 조예가 깊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