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재 때는 진현현이었고, 신라 경덕왕때 진령현으로 바뀌었다.
고려때는 진잠현으로 개칭되었다가 현종때 공주부에 속하게 되었다.
이후 조선시대 초 진잠현이 되었다가 고종때인 1895년 진잠군으로 변경되었다.
1914년에는 대전군 진잠면으로, 1935년에는 대덕군 진잠면으로 바뀌었다.
1983년 2월 15일 대전시 구역확장에 따라 중구 원내동이 되었다.
1989년 진잠 1동과 진잠 2동으로 나뉘었고, 다시 진잠동으로 통합되었다.
읍내
현재 진잠 초등학교부터 진잠 4거리에 이르는 양쪽 지역이다
현이 있었던 곳으로 요즈음도 읍내라 불리운다. 하지만 도시 개발에 따라
주변 지역에 구획 정리가 이루워 지는 등 지리적 여건이 크게 변하고,
외지인이 대거 유입되면서 읍내라는 명칭이 거의 사라져 가고 있다.
원내동
대전시에 편입될때 다른 지역에 내동이 있으므로 내동리를 원내동으로 바꾸웠다.
이 명칭은 과거 내동리 지역을 지칭하는 명칭이지만 한때는 진잠면 전역을
지칭하기도 했었다. 현재 진잠 동사무소와 파출소, 충남방적, 진잠타운,
샘물타운, 한아름아파트, 서일고, 서일여고, 진잠중학교, 진잠초등학교,
대전공고등이 있는 지역이다.
빈향골(빈상골,변상골)
서대전 인터체인지 자리에 있었던 골짜기 이다. 옛날에 진잠향교가 이곳에
있었다가 현재의 자리로 이전한 후 향교가 비어 있는 곳이라 빈향골이라 불렀다.
우뜸(웃뜸)
진잠초등학교의 남쪽에 있는 마을, 읍내 마을의 윗쪽에 있기 때문에 우뜸으로
부르고 있다. 진잠초등학교에서 우뜸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에 우뜸샘이 있었는데
동네에서 공동으로 사용했으나 지금은 없어 졌다.
장판재
진잠초등학교 서쪽에 있는 고개로 절터로 갈때 넘던 고개이다.
향청재(상청재)
읍내 마을에서 돌샘골로 넘어가던 고개이다. 지금은 야산이 깍여지고 주변에
주택이 많이 들어서 옛모습을 찿을수 없다. 중앙빌라와 우당빌라 북쪽이다.
과거에는 이 고개에서 정월 대보름날 읍내 마을과 돌샘골, 향교말과 솔마루가
편을 나누워 낯에는 투석전을 벌이고 밤에는 쥐불놀이를 하였다.
풍굿재
진잠농협 앞은 옛날에는 야트막한 고개였다. 이 곳이 풍굿재인데 도로를 내면서
깍아 내렸기 때문에 낯아져 고개의 형태가 없어졌다.
솔마루
마을 뒷쪽에 소나무가 우거져 있어 솔마루라 불렀다. 교촌.원내지구 택지 개발로
울창한 소나무 숲이 일부만 남게 되었다.
망골
충남방적이 있는곳에 있던 마을. 와우형 명당이 있었다고 하는데 70년대
충남 방적이 건립되면서 마을이 없어졌다.
암소바위
망골 동쪽 산등성이에 있던 돌로 작은 구멍이 여러게 나 있어 암소바위라 했다.
신석기 시대의 지석묘로 1977년 충남방적 정문 앞으로 옮겼으며, 현재는
충일여고 앞에 보존돼 있다.
돌샘골(돌샴골)
진잠초등학교 북쪽에 있는 마을. 마을에 큰 돌샘이 있었고, 1980년 때까지 마을의
공동 우물로 사용했으며 해마다 우물재를 지내기도 하였으나 지금은 물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 옛날에는 석정리라 불렀다.
교촌동
돌샘골 북쪽에 진잠 향교가 있었으므로 이 마을을 교촌이라 불렀다.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돌샘골,향교말,새터말,칠성댕이를 합쳐서 교촌동이라 부른다.
향교말(행교말)
진잠향교가 있는 마을. 진잠향교 앞에 하마비가 있었으며 하마비 앞길을
하마비 거리라고 한다.
새터말(새타말)
향교말 북동쪽에 있는 마을. 새로 생긴 동네라는 뜻에서 새터말이라 불렀다.
칠성댕이(칠성당이)
향교말 북쪽에 있는 마을로 웃뜸(서쪽)과 아래뜸(동쪽)으로 나뉜다. 마을 뒤쪽에
북두칠성 모양으로 7개의 바위가 있는데 이것이 청동기 시대의 지석묘이다.
이 마을에서는 해마다 칠월칠석에 당제를 지내왔다.
한절골(한사곡)
칠성댕이 마을 앞에서 남서쪽으로 길게 뻗어 있는 들이다. 들판 가운데는 마을에서
공동으로 이용하던 샘이 있다.
쌍암리
칠성댕이 서쪽 호남고속도로 위쪽에 잇는 마을이다. 동네 뒷산과 마을 앞에 바위
두개가 쌍을 이루고 있었다. 마을 앞에 있던 바위들은 경지정리 사업때 없어졌다.
대정동
옛 대정리에 2개의 큰 우물이 있어서 한우물(큰우물:큰대 우물정)이라 불렀다고 한다.
궉말 북쪽 길가엔 팽나무가 서 있는 팽남샘이 있었고 한우물 남쪽 가운데에
한디샘이 있었다.
원댕이(원당이)
한우물 동쪽에 있는 마을. 소원 성취를 비는 원당이 있었기 때문에 원당이라 불렀다.
용머리
한우물의 북서쪽에 있는 마을로 옛 용우리이다. 마을 뒷산의 모양이 용머리
같다고해서 붙인이름이다. 진잠==>유성 국도에서 볼때 왼쪽이 벌리고 있는
용의 입이고 오른쪽이 용의 뿔을 닮았다고 한다. 이 용은 서쪽에 있는 용바위에서
내려왔다고 믿는다.
씨앗골
한우물 북쪽에 있는 마을이다. 옛날부터 버드나무가 많아 동네 앞에 있는 내를
유계라 불렀다. 또 마을 지형이 소가 누운 형국이라서 소윗골 쇳골로도 불렀다.
주루바위
옛 대정리3구 마을의 서남쪽 산에 있는 바위가 주루바위 이다. 바위가 줄지어
있어서 주루바위(줄바위 또는 치마바위)라 했고, 동네 이름으로 불렀다.
용계동
칼재울 서쪽에 있는 마을로 용계, 미리머리, 밀머리라고 부른다.
이 마을의 뒷산 모양이 용을 닮았다 하여 부르는 이름이다.
계산동
학하동 서쪽에 있는 마을로 빈계산(암닭 같이 생겼다 해서 붙은 이름,415mm)이 있어서
계산이라 불렀다. 이곳은 삼한시대 마한의 한 국가 였던 신흔국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계산동에는 원계산,대정말,동막골,사기막골,외딴집 등의 마을이 있다.
학하동
진잠과 유성을 잇는 도로가 지나가는 학하동은 빈계산 동쪽에 있으며, 여러개의
자연부락이 형성돼 있다. 학이 내려 앉은 형상이라 하여 학하동이라 불렀다.
방동
이 지역의 지형이 풍수지리상 꽃봉우리처럼 생겼다고 해서 방동 또는 방골이라 부른다.
방동에는 계방골(지방골,나뭇골,방죽골,삼한이,안삼한이,샅골,삿갓집,새우내,새터말,
윗방죽골,아래방죽골,예방들,장승뱅이,하시동등 크고 작은 자연마을이 많다.
성북동
방동저수지 위쪽에 있는 마을로 성북산성의 뒤쪽에 있다해서 성북이라 불렀다.
우리말로는 잣뒤이다. 성북동의 자연마을은 건너뜸,굿개말,동편말,서편말,세집매,
신촌,잣뒤,아래잣뒤,윗잣뒤,양지뜸,주막거리 이다.
송정동
대전 논산간 국도의 오른쪽에 위치한 마을로 동네 앞에 정자처럼 소나무가 서 있어서
송정이라 불린다. 동네 이름으로 갱이,과캐,괴바우,반송미,대숲말,벌말,선창이,소정이,
일반뜸,한배미들,텃골 등이 있다.
세동
방동의 하세동에서 중세동을 거쳐 북쪽으로 올라가면 상세동이 나온다. 이 지역은
좁은 골짜기로 이어져 있기 때문에 가는골 즉 세동이라 불렀다. 마을은 구억들,사봉,
새뜸,선창이,양새터골,양달뜸,음달뜸,장승거리,중세동,상세동 등이 잇다.
첫댓글 백남순(준)회원입니다!유래를보니....옛날 생각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는군요.........
이글 쓰느라고 독수리 타법이라 2박3일 걸렸읍니다
한우물서 퍼온것 같은디요......
성북1통 마을이름이 빠졌군요 .윗동네가 새뜸이고 아랫동네는 신뜸이죠 유래는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