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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이의 진실6 – 연어와 새우가 등장한 무대 뒤의 풍경
첫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이 지나니 밭에 남아있던 푸른 빛들이 스위치를 내린 듯 일제히 꺼졌습니다. 어디 엉덩이 붙일 짬이 없이 바쁘던 수확철도 능선을 넘은 것 같습니다. 푸른 빛을 버리고 원색으로 물드는 가을이 아름다운 건 풍경 때문이겠지만, 배고픈 사람의 눈에라면 그건 아름다움이 아니라 서러움이겠지요. 가을이 아름다운 건 진정 풍성함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가을의 풍성함은 땅에만 베풀어지는 건 아닙니다. 원래대로라면 가을은 바다에도 그 풍성함을 넉넉하게 마련해두고 있었습니다.
저는 줄곧 도시에서만 자랐습니다. 그런 도시아이가 계절을 경험하는 건 시장이었습니다. 지금과는 달리 계절과 함께 가는 자연의 변화가 그대로 좌판에 진열되던 시절이었지요. 어렸을 적 엄마를 따라 드나들던 가을 시장의 풍경들이 잡힐 듯이 떠오릅니다. 가을 시장에서 단연 돋보이는 것은 가지가지 울긋불긋한 과일들이었지만 제가 더 또렷이 기억하는 건 생선전의 생선좌판들입니다. 아마 생선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식성 때문이었겠지요.
생선전은 남북으로 길게 뻗어있는 시장 본 통로 중간쯤에서 서쪽으로 난 샛길로 꺾어들어간 통로 맨 끝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생선전에 가까이 다가가면서 풍기던 그 퀴퀴한 비린내를 지금껏 잊지 않고 있지요. 뭐 결코 향기로운 냄새는 아니지만 상추쌈에 싸먹는 고등어조림에 회가 동하는 아이에게만큼은 아마 특별한 의미를 갖는 것이었을 겝니다.
바닷가 포구만큼은 아닐지라도 도시 시장의 생선전도 이맘때부터 겨울까지는 활기로 흥성였습니다. 어떤 날은 고등어가, 어떤 날은 가자미가, 또 어떤 날에는 도루묵이 좌판 가득가득 쌓여있곤 했지요. 아이스박스 같은 것도 없던 시절, 생선을 운송해온 건 거칠게 켠 얇은 송판으로 얼기설기 짜낸 납작한 나무궤짝이었지요. 비워진 궤짝들이 얼음조각들과 함께 혹은 키가 넘도록 쌓여있고 혹은 여기저기 뒹굴어있고 그랬습니다.
우리 어머니 장보는 요령이야 제가 일찌감치 터득했듯이 항상 오늘의 생선, 또는 오늘의 채소, 오늘의 과일이었지요. 그게 뭐냐하면, 그 날 시장에 나온 가장 싼 품목입니다. 저장시설이 현대화되기 전이라 산지의 출하량이 거의 그대로 시장에 반영되던 시절이니, 그 날 제일 많이 출하된 것에다 가장 잔챙이들을 모아놓으면 우리 어머니가 예외없이 선택하는 ‘오늘의 품목’이 되었던 것이지요. 그 때도 큼직하고 멋들어진 고급 생선들이 좌판에 있었겠지만 그런 것들이 통 기억에 없는 것은 어머니 장보기를 터득한 눈에는 남의 떡이라 안보였던 탓이었으리라 여겨집니다.
어쨌든 잔챙이 고등어 한 무더기에 한 마리를 더 달라 안된다, 한 마리 큰 걸로 바꾸자 곤란하다 하는 흥정이 오갈 때면 제 간은 콩알만큼 오그라들었습니다. 흥정이 깨져 어머니가 저걸 안사고 돌아서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조마조마해졌던 거지요. 마침내 흥정이 성사되어 고등어 한 무더기가 잽싸게 거둬져 커다란 나무등걸 같은 육중한 통나무 도마 위에 드러누워, 길이와 높이가 거의 같은 두툼한 칼날 아래서 툭툭 시원스럽게 토막쳐질 때의 안도감과 기대감이란 참 살맛나는 것이었습니다. 무거운 장바구니를 들고 1시간을 넘게 걸어도 집에 돌아오는 길이 힘든 줄 몰랐지요.
다 옛날 얘기입니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먹먹해지는 옛날얘기입니다. 대다수 사람들이 고기라고는 명절 때나 되어야 구경할 수 있었던 그 시절에, 생선은 가난한 어부들의 생계였고 가진 것 없는 도시서민들의 축복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런 것들을 먹고 자랐던 우리 세대야말로 복받은 세대였다고 해야 할 겁니다.
어느 순간 다 사라졌습니다. 지금 시장의 생선전이란 참으로 빈약하고 볼품없지요. 슈퍼마켓이 등장하고 대형 마트가 구석구석 상권을 독점해가면서, 참치통조림이 가지가지 메뉴로 진열대를 채워가면서 모든 것이 변해버렸습니다. 우리 어머니의 얇은 지갑조차도 무시하지 않았던 ‘오늘의 생선’ 같은 것은 이제 없습니다. 대신에 말끔하게 발려진 오렌지색 두툼한 연어와 믿을 수없이 커다란 왕새우, 육면체로 깔끔하게 정돈된 냉동참치 그런 것들이, 시장 좌판이 아니라 마트 진열대에 깨끗하게 포장되어 나타났습니다. 서민들의 일용할 단백질이었던 흔하고 흔한 꽁치, 고등어, 도루묵, 가자미, 명태 같은 생선들도 지금은 귀하디 귀하신 몸이지요.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요? 고급 어종들을 식탁에 올릴 수 있게 되었으니 이것이 바로 발전이라고 말해도 되는 것일까요? 이러한 변화의 뒤에는 ‘남획’과 ‘양식’이라는 두 가지 풍경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리고 보다 근본적으로는 ‘오염’이라는 두려운 진실이 도사리고 있지요.
인류가 수백만년 동안 지속되었던 사냥과 채집이라는 생존방식을 떠나 농사와 목축이라는 생산방식으로 들어선 것은 대략 1만년 전의 일이었습니다. 인류역사에서 가장 크고 근본적인 변화로 일컬어지는 이 신석기 혁명으로 인간은 자연에 대한 더 큰 통제력을 얻었고 막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신석기 혁명의 생태적 귀결은 길들인 것이 야생의 것을 몰아내는 되돌릴 수 없는 변화였지요. 하지만 육지에서 길들일 품종을 선택하고 개량하는 농사와 목축의 끊임없는 과정들이 진행되어온 지금까지도 사냥과 채집이라는 인간의 고유한 생존방식이 남아있는 영역이 있으니, 바로 바다입니다.
바다에서의 식량을 얻는 방법은 배와 낚시바늘과 그물이라는 기본적인 도구에 의존해 있습니다. 이 단순한 도구들은 신석기 시대에 벌써 나타났지요. 이러한 도구에 의존해 바다의 물고기를 잡아들이는 수렵과 채집의 방법은, 산업혁명 이후 동력선과 플라스틱 그물이 출현하고 그것이 대형화, 자동화된 오늘날까지도 기본적으로는 동일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먹는 물고기가 모두 야생종이었던 시대는 20세기 초까지 계속됩니다. 농업과 같이 품종을 골라내고 개량하고 먹이를 주어 기르는 양식의 방법이 등장한 것은 1960년대부터지요. 그 후 50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의 식탁은 절반 이상을 양식된 물고기가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엄청난 속도의 변화입니다.
양식으로 물고기를 생산하게 된 이유는 한 마디로 어류의 고갈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보다 나은 방식으로의 이행도 아니며 발전도 결코 아닙니다. 고갈의 상황에서 이윤창출의 기회를 재빨리 발견한 산업체들의 선택이었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고갈에 대해 살펴봐야 합니다.
오일피크라는 말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석유생산의 정점을 말하지요. 가용량의 정점을 지난 품목은 빠르게 고갈된다는 논리적 귀결이 가리키는 위기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이 말을 물고기에 대입해보면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한 채 ‘피쉬피크’를 지나쳐버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난 50여년간 세계의 어획량은 6배 이상 증가했습니다. 이 같은 놀라운 증가는 고기잡이의 산업화로 인해 일어난 것입니다. 통통배가 대형 트롤선으로 바뀌어 바다 밑바닥을 싹쓸이하고, 산업형 선단이 대형 유자망으로 어종을 불문하고 닥치는 대로 잡아들이면서, 고기잡이가 어업으로, 어업이 수산업으로 바뀐 것을 산업화라고 합니다.
현재 바다에서 잡아들이는 물고기는 년간 9천만톤에 달합니다. 산업형 선단에서 사용하는 대형 유자망은 매년 350만 킬로미터의 합성그물을 사용하는데 이것은 지구를 88바퀴 돌 수 있는 길이라 합니다. 이런 현대화된 장비를 장착한 산업화된 어업이 불러온 것이 남획입니다. ‘남획’이란 지나치게 많이 잡아들인다는 것뿐 아니라 몰상식하게 잡아들인다는 의미까지 포합합니다. 즉 이런 선단에서 사용하는 대형유자망에 걸린 물고기의 50%는 상업적 가치가 없는 200여종의 물고기입니다. 바닥을 모조리 긁어올리는 트롤선단의 그물에 잡힌 대다수 물고기들 또한 상업적 가치가 없는 어종이거나 표준화된 시장포장규격에 맞지 않는 물고기들이라고 합니다. 이 물고기들은 잡은 즉시 버려지는데, 산업적 어업에서 폐기처분되는 물고기들이 연간 2,700만톤에 달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보고된 전 세계 상업형 어업 총 어획량의 1/3을 넘는 양이랍니다.
어처구니 없게도 베링해의 붉은 대게는 실제로 잡은 게의 5배 이상이 버려지고, 노르웨이 대구어업에서는 한 철 동안 10만톤의 물고기가 폐기되며, 심지어는 알래스카 어장에서 대구잡이 선단의 그물에 걸린 무려 12만마리의 연어가 잡어로 버려진 일도 있습니다. ‘산업’이라는 말 속의 함정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일화입니다. 소형어선을 운영하는 어부들에게 잡혔다면 대구는 대구대로, 연어는 연어대로 팔려 누군가의 밥상에 올라갔겠지요.
특정 어류의 숫자가 줄어드는 것보다 더 심각한 일은 어종이 줄어드는 것입니다. 새우어업은 다른 어떤 어업보다도 많은 바다생물을 폐기처분하고 있는데, 대략 년간 1,600만톤을 폐기한다고 합니다. 일부에선 새우 1톤을 건져올리기 위해 15톤의 물고기가 버려진다지요. 이렇게 버려지는 다양한 어종들은 전통적인 어민들의 생계유지를 위한 경제적 토대이자 해양환경을 유지하는 생태적 토대입니다. 소수 대기업의 산업화된 어업에 의해 전 세계 2억명 이상의 어민들의 삶이 황폐해지고 있는 것이지요.
망망한 바다로 나가면 아무리 큰 배도 쪽배처럼 보입니다. 바다는 무한하게 넓고 깊으며 바닷속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무리 쓸어담아도 돌아서면 또 채워지는 화수분이라고 착각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결과로 불과 4~50년만에 지구상의 황금어장들이 대부분 파괴되었고 야생의 연어도, 농어도, 대구도, 명태도 거의 사라졌습니다. 과도하게 자본화된 어업은 이미 곳곳에서 무너지고 있습니다. 현재 세계 주요어장에 분포되어있던 해양어족의 70%가 남획되어 완전히 고갈되었거나 거의 고갈상태에 있다고 식량농업기구도 시인하고 있습니다.
이런 고갈을 배경으로 출현한 것이 물고기 양식입니다. 녹색혁명을 차용하여 ‘청색혁명’이라는 말을 붙였지요. 1960년대 노르웨이에서 시작된 연어양식을 출발점으로 하여 빠르게 확산된 산업적 어류양식은 이미 시장에 나온 물고기의 50% 이상을 점유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만나는 광어, 우럭, 돔류, 넙치, 고등어, 장어, 메기, 송어, 잉어, 가물치 등에다 수입된 연어, 새우, 농어 등의 대부분이 양식어류들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이 바람직한 일일까요?
산업형 어류양식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양식업을 정당화하는 두가지 근거를 들이대기 좋아합니다. 수산자원 고갈의 위기를 완화시킨다는 것과, 제3세계 가난한 사람들을 식량과 영양의 위기에서 구한다는 것이지요. 인구증가와 식량위기는 당연한 배경으로 깔립니다. 하긴 이 근거들은 낯선 것이 아닙니다. 녹색혁명도, 유전자 조작도 모두 똑같은 이유를 내걸었지요. 먹을 것들에 시도하는 모든 작위적 행동들이 들고나오는 단골메뉴입니다. 이거면 만사형통이다 그거지요.
믿지 마세요. 여지껏 새우와 연어가 배고픈 이들의 굶주린 배를 채워준 적은 없었거니와 앞으로도 없을 것입니다. 새우든 연어든 그것은 선진국의 부자들이 즐기는 사치품일 뿐이니까요. 우리나라의 중산층도 맛볼 수 있는 품목이라구요? 하지만 어디까지나 가끔씩일 뿐이니 사치품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또한 양식업이 어류고갈을 막는다는 말은 거짓말 중의 특급 거짓말입니다. 어류의 고갈에 박차를 가한 것은 남획뿐 아니라 양식업 확산의 공적이기 때문입니다. 산업적 양식업은 녹색혁명과 마찬가지로 그것들이 생산하는 것보다 더 많은 자원을 소모합니다. 0.5kg의 연어살을 얻는 데에 1.5kg의 자연산 물고기가 들어갑니다. 2000년, 아시아에서 약 570만톤의 물고기를 양식으로 생산하기 위해 대략 110만톤의 사료가 소요되었습니다. 문제는 이 사료를 만들기 위해서 무려 550만톤이라는 엄청난 양의 물고기가 들어갔다는 사실이지요. 사료용 어분을 만드는데 사용하는 물고기잡이에는 어족을 고갈시키는 것으로 유명한 트롤선과 후릿그물 어선이 동원됩니다. 1년 동안 9천만톤의 어획량을 다 먹어치운 것이 사람들인 것만은 아니지요. 이만하면 우리가 어렸을 적에 먹던 흔하고 값싼 생선들이 사라진 이유를 알 것도 같습니다.
이걸로 끝이 아닙니다. 어분가격이 차츰 상승하면서 배합사료가 등장합니다. 배합사료는 말 그대로 복잡한 성분으로 구성되는데 우리는 이미 닭사료에서 그 어이없는 명성을 확인하였지요. 배합사료의 원료로 첫 번째 등장하는 것은 에네르기 사료라는 이름을 붙인 옥수수입니다. 역시 안빠지는군요. 거기에 단백질 사료라 이름붙은 어분, 골분과 두병(콩찌꺼기=두박), 목화씨찌꺼기, 그리고 각종 광물질과 첨가제가 들어갑니다. 대번에 의심스러운 것들이 눈에 뜨입니다. 유전자조작 혐의 99%에다 농약 뒤범벅인 옥수수와 두병, 목화씨찌꺼기, 그리고 소 돼지 등 공장식 축산의 부산물이 틀림없는 골분, 각종 질병예방용 화학약품들로 이루어졌을 첨가제, 이런 걸 먹여 기른 물고기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요?
양식업에서 비롯되는 환경오염은 거기서 자라는 물고기는 물론 주변 생태계와 어민, 농민들의 생계에까지 악영향을 미칩니다. 좁은 가두리 양식장에서의 밀집사육은 배설물과 부패한 사료들로 자연상태와는 비교할 수없이 물을 극도로 오염시킵니다. 오염된 물에서 살아가는 물고기들이 갖가지 질병에 노출되고 기생충에 감염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공장식 축산시스템에서 사육되는 가축들의 환경과 조금도 다를 바 없지요. 게다가 오염된 물에서 생장하는 세균과 바이러스, 기생충들로 인한 질병을 막기 위해 대량으로 살포되는 각종 항생제와 살충제들도 2차로 물을 오염시킵니다. 몇 달 전에 방송되었던 <노르웨이 연어의 두 얼굴>이라는 프로를 보면, 연어양식장에 폭발적으로 퍼져나간 바다 이를 잡기 위해 ‘디플로벤주론’이라는 금지된 농약을 살포하더군요. 양식장에 접근하는 상어도 죽고 다른 물고기들도 모두 죽는데 연어만 살아남는답니다. 리포터가 양식업자에게 이 연어를 먹냐고 물으니 자기는 안먹는다는군요.
공격적인 수출로 확산일로에 있는 동남아의 새우양식 상황은 많은 것을 보여줍니다. 미국과 서구 국가들은 수익성 높은 새우양식장을 가지고 있지만 결코 늘리지는 않습니다. 대신 그들은 멕시코 에콰도르, 그리고 인도, 필리핀, 태국, 스리랑카, 방글라데시와 같은 나라들의 새우양식 사업에 대규모 투자를 합니다. 새우의 주된 소비자들이 자기들과 같은 부유한 나라의 사람들인데 하필 제3세계 국가의 새우양식장 확대에 투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집약적인 새우양식의 불안정성과 더불어 새우양식이 극심한 환경파괴를 불러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양식새우의 생산과 시장가격은 질병발생에 의해 좌우될 정도로 불안정합니다. 1988년 대만 새우양식업의 붕괴, 1993년 중국의 생산성 급감, 1994년 인도의 새우양식 휴업은 모두 치명적인 바이러스 감염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또 새우양식장은, 폭풍우를 막아주고, 침식을 방지하고, 바다생물들의 서식처가 되어주는 맹그로브 숲을 사라지게 함으로써 해안 생태계를 대규모로 파괴합니다. 스리랑카, 베트남, 에콰도르, 태국의 해안에 자리했던 맹그로브 숲들의 어마어마한 면적이 새우양식장의 건설로 사라졌지요. 맹그로브 숲의 파괴는 해양 수산자원의 고갈로 이어지고 거기에 기대어 살아가는 소규모 어업공동체의 생계를 파탄시켰습니다.
또한 1헥타르당 소요되는 4~6톤의 먹이는 단지 17%만이 새우로 변하고 나머지는 모두 폐기물이 되어 살포된 농약, 항생제들과 함께 흘러가 땅과 바다를 오염시킵니다. 새우양식장에 끌어들인 바닷물의 염분조절을 위해 필요한 물 공급은 인근의 지하수를 고갈시키고, 다시 땅으로 스며든 바닷물은 지하수를 염류화시켜 농업용수는 물론 식수마저 깡그리 없애버립니다. 사람들이 생계를 이어온 터전은 파괴되고 주민들은 결국 마을을 떠나야만 합니다. 새우양식업에 드는 총비용은 실로 천문학적입니다. 다만 이윤은 업자들이 독점하고 비용은 가난한 주민들과 죄없는 바다 생물들이 치르고 있을 뿐이지요.
그럼에도 물고기양식에 대한 집착은 물불을 가리지 않고 확산되어 끝내 ‘제2의 청색혁명’이라는 유전자조작 물고기를 만들어내는 데까지 나아갑니다. 캐나다의 아쿠아바운티테크놀러지사는 곱절로 빨리 자라는 유전자조작 연어의 상업적 생산 승인을 미국 식품의약국안전청(FDA)에 요청했습니다. FDA의 제안서가 백악관에 제출되어 유전자조작 연어의 시판이 임박했다는 뉴스가 이미 지난 봄에 타전되었습니다. 아쿠아바운티사와 미국 FDA측은 환경위해성과 식품안전성 등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GM 연어가 자연계로 방류되더라도 번식을 하지 못하도록 전 암컷불임 개체만을 생산한다거나, 내륙의 2중으로 밀폐된 공간에서 양식한다는 등의 대책을 마련한다고 합니다. 엄격하고 보수적이어야 할 FDA가 오히려 나서서 인체에 해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누가 알겠습니까? 46억년 지구역사에서 그런 것을 먹어본 생명체는 없었습니다.
이미 바다 생태계의 오염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육지의 모든 쓰레기와 폐수, 화학물질들이 마지막으로 쌓이는 곳이 결국 바다입니다. 바다 물고기들의 몸체에 납, 수은, 카드뮴 같은 중금속과 폴리염화비페닐(PCB), 다이옥신같은 치명적인 독성물질이 쌓여 우리 입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캘리포니아 주정부는 수은중독의 위험을 알리기 위해 슈퍼마켓에 경고문을 써붙이도록 했답니다. “임신부나 아이들은 황새치, 상어, 왕고등어, 참치, 옥돔을 먹지 마시오.” 라구요. 지구상에서 가장 많이 소비하고, 가장 많은 쓰레기를 배출함으로써 가장 많은 오염을 발생시키는 제국다운 발상입니다. 이런걸 아이러니라고 하지요.
한 쪽에서는 산업형 어업으로 어장들을 끝장내면서 한 쪽에서는 그걸 틀어막는답시고 온갖 편법으로 물고기를 가두어 양식합니다. 1kg의 물고기 양식을 위해 5kg의 자연산 물고기를 잡아서 투입합니다. 온갖 오염물질을 내다버리고 그것이 고스란히 쌓인 물고기를 잡아다 먹습니다. 인구증가와 식량위기에 대한 위협을 배경으로 하여 오늘날 일어나는 일이 바로 이겁니다. 높은 데서 이 모든 것들을 한꺼번에 조망해보는 누군가가 있다면 참으로 꼴갑한다고 하지 않겠습니까?
2012년 11월 개마고원에서
첫댓글 양식물고기...... 일단 맛이 없죠. 회를 먹으면 사료냄새가 나고......
유전자조작연어도 예전에 다큐에서 문제가 많다고 하던데 잘 기억이 나질 않네요.
우리나라의 대하양식도 마찬가지죠. 바이러스감염때문에 항생제살포하고 배합사료먹이고......
그런것들이 먹이사슬을 따라 상위포식자에게 축적되는 오염물질들이 자연과 사람에게 해를 입히고......
예전에 한국계의 여성기자가 참치캔만 먹으며 스스로 실험대상이 되어 실험을 하다가
건강에 치명적이라는 의사의 강력한 권고로 중단된 적이 있었다고 하네요.
연어 새우뿐만 아니라 우리가 싸게 먹는 양식횟감들도 죄다 그모양이고......ㅠㅠ
농사지은 채소나 부지런히 뜯어다 먹고 살아야겠네요. 갈수록 먹을것이 줄어들어서 서운합니다. 개마고원 편지를 통해 늘 새로운 진실들을 알게되어 감사합니다.
어쩐지...지난주말에 ,외식을 안하는데, 자꼬만 은솔아빠가 조개찜집에 가자고 해서 다녀온 뒤 은솔익 감기가 더 심해졌어용~
은솔이는 조금 먹다가 속이 안좋다고 관뒀구, 전 다 먹고나서 다음날까지도 속이 안좋았어요...뭔가 기분나쁘고 안 좋은 것이 들어있는 느낌이었습니다. 으~~~먹을 것이 점점 없어요. 전 꾸러미 없으면 금방 병이 날 것같습니다.
퍼갑니다. 뒤늦게...
그럼 생선먹고 싶을땐 어디서 사야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