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禮 節 問 答(예절문답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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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문; 우리나라 전통 예절서적은 주로 어떤 것이 있습니까? |
1답; 많은 사람이 많은 책을 썼으므로 일 일이 다 말할 수는 없습니다. |
그러나 가장 많이 읽히고 알려진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
(1)國朝五禮儀(국조오례의);조선조 4대 세종대왕때 왕명을 받은 許稠(허조1369~1439) |
등 古今(고금)의 禮書(예서)와 洪武禮制(홍무예제)을 참작하고 두씨통전(杜氏通典)을 |
본떠서 편찬에 착수했고 7대 세조때 강희맹(姜希孟1424-1483)등 이 이어서 |
길 가 빈 궁(吉 嘉 賓 君 凶禮)등 五禮중에서 실행해야 할 것을 택해 圖式(도식)을 |
편찬 탈고한 실행해야 할 것을 택해 圖式(도식)을 편찬 탈고한 것을 1474년 |
성종때에 신숙주 정척(申叔舟 鄭陟)등이 왕명을 받아 완성 했습니다. |
내용은 주로 왕가의 제례의식인 길례(吉禮) 혼례의식인 가례(嘉禮) 연회(宴會) |
접빈(接賓) 의식인 빈례(賓禮) 군사 의식인 군례(軍禮) 상중(喪中) 의식인 흉례(凶禮) |
등으로 되어 있으며 일반 사대부(士大夫)의 관혼 상제와 飮 酒禮(음 주례)등을 |
간략하게 첨가 했습니다. 따라서 일반 사가(私家)에서는 참고하기가 어려운 |
왕가의례(王家儀禮) 서적이라 할수 있습니다. |
(2) 家禮楫覽(가례즙람):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 선생이 1599년 52세때인 조선조 |
선조 32년 중국 송대(宋代)의 학자 주자(朱子)의 가례(家禮)를 바탕으로 가정의례(家 |
庭儀禮) 전반에 걸처 그때까지의 여러 학설과 풍속 및 자기의 의견 등을 곁들여 |
우리나라의 예설(禮說)을 집대성한 예의 이론서로서 모두 11권 6책으로 되었으며 |
특히 제1권에 의례전반에 대한 도설(圖說)을 실어 이용에 편리 합니다. |
내용은 조상의 위패를 모시는 가묘(家廟)제도와 성년의식인 관례(冠禮) 결혼의식인 |
혼례(婚禮) 초상 치르는 상례(喪禮) 제사의식인 제례(祭禮) 등 일반가정의 의식절차에 |
대해 자상하게 밝히며 그렇게 해야하는 이유와 여러 가지 학설등을 비교 수록했고 |
우리나라에서 행하는 습속(習俗)등 도 곁들였습니다. |
가정의례에 대해 이론적인 연구나 원류(原流)을 아는데 필수적인 책 입니다. |
(3) 上禮備要(상례비요): 가례즙람을 저술한 김장생(金長生)선생이 36세때인 선조 |
16년에 완성한 1권으로된 간편한 책입니다 |
내용은 주로 초상(初喪)부터 치장(治葬)까지의 절차를 상세히 서술하고 상중제례에 |
대해서도 소상히 밝혔습니다. 상례에 있어서는 이 상례비요가 지역이나 가문에 |
관계없이 널리 참고자료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
(4)사례편람(四禮便覽): 가정의 관 혼 상 제에 대하여 조선조 숙종때에 李縡 (이재 |
1680~1746)가 편찬한 것을 1844년에 그의 증손 이광정(李光正)이 간행했고 1900 |
년에 황필수(黃泌秀) 지송욱(地松旭) 등이 이것을 증보하여 증보 사례편람이라 |
했습니다. 가례즙람의 이론을 따라 행하기에 편리하게 찬술한 것이 특색으로 모두 |
8권 4책으로 되어있습니다. |
2문: 우리나라의 대표적 예학자로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선생을 이르는데 그 |
까닭이 어디에 있습니까? |
2답: 사계선생은 1548년 조선조 명종 3년에 출생하여 인조 9년에 84세를 일기로 졸 |
했습니다. |
13세때 구봉 송익필(龜峰 宋翼弼) 선생에게 사사(師事)해서 근사록(四書近思錄) |
을 배웠고 20세에 율곡 이이(栗谷 李珥) 선생에게 사사해 수제자가 되었으며 |
평생을 경서(經書)와 예문(禮文)을 탐구해 많은 저서를 남겼습니다. |
학문하는 태도가 간절하고 정밀 겸허해서 의심나는 점을 적출해 해석하는데 힘써 |
으므로 저서의 제목에도 경서변의(經書辨疑) 근사록석의(近思錄釋疑) 전례문답 |
(典禮問答) 의례문해(擬禮問解)등과 같이 擬와 문등의 문자를쓰고 변(辨) 석(釋) |
답(答) 해(解)등과 같이 궁금증을 해석하는 성의를 보이고 있습니다. |
이 밖에도 상예비요(喪禮備要) 가례즙람(家禮楫覽)등 예서(禮書)을 저술해 우리나라 |
가정의례에 바탕을 세웠고 제자를 가르치는 데 힘써 그 문하에서 김집(金集) 송시열 |
(宋時烈) 송준길(宋浚吉) 장유최명길(張維崔明吉) 송국택(宋國澤) 김유등 거유가나고 |
모두 285명의 후학을 배출했습니다. 특히 성균관과 지방 향교등 문묘(文廟)에 |
모셔진 우리나라 유현(儒賢) 18인중 사계(沙溪) 신독재(愼獨齋) 우암(尤庵) |
동춘(同春)등 본인과 문하에 4인이 종사됐다는 사실이 주목됩니다. |
1717년 조선조 숙종 43년에 문묘(文廟)에 종사하는 교지(敎旨)에 선생을 일러 깊고 |
오묘한 예문(禮文)과 어렵고 의심나는 학문(學問)은 또한 자세하게 해석(解釋) 하였고 |
길(吉)한 일과 흉(凶)한 일의 예절(禮節)은 모든 사람의 의논을 절충하지 않음이 없어 |
크고 작거나 높고 낮거나 한 모든이가 다같이 혜택을 입으니 그 높고 큰모습이 세상에 |
태산(泰山)과 북두(北斗)같이 높고 해와 달이 온 누리를 비추는 것 같도다. 했으니 더 |
설명할 필요가 없으며 근대의 석학인 육당(六當) 최남선(崔南善)선생이 지은 |
조선상식문답(朝鮮常識問答)에도 선생을 일러 朝鮮禮學의 宗이라 했으니 우리나라가 |
으뜸이라 하겠습니다. |
* 자기부모는 높이지 말아야 |
3문; 자기의 부모를 남에게 말할때 아버지 아범님 애비를 어떻게 구분해야 합니까? |
3답; 남의 부모를 말 할때는 높이지만 자기의 부모를 남에게 말 할때는 높이지 |
않습니다. 따라서 아버님 어머님과 같이 님을 붙이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
아버지 애비를 골라써야 하는데 대화상대에 따라 달라짐니다. |
부모의 윗대(上代)인 조부모 종조부모 외조부모에게 말할때는 애비 애미라하는 것이 |
옳습니다. 나에게는 부모지만 그분들에게는 자식이기 때문에 낮춰 말함니다. |
기타의 다른 사람에게 말할때는 아버지 어머니라 하는것이 옳습니다. 설사 부모의 |
어른이라도 부모 형이나 누님 촌수가 먼 방계의 윗대 분에게 말할대도 아버지 어머니 |
가 맞습니다. 옛스럽게 호칭하려면 아버지는 家親이 통상적이고 어머니는 慈親이다. |
*지방 편지에는 님을 붙여 |
4문: 부모에게 님자를 붙이지 않는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정의례준칙의 |
지방쓰는 법에 아버님 신위 어머님 신위라 한것은 잘못된것이 아닌지요? |
4답: 옛부터 부모를 문서(文書)에 쓸때는 님을 붙였습니다. |
편지에 부주전(父主前) 상서(上書)라 썼는데 主는 임금주로서 님이란 뜻입니다. |
고례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위패에도 현고학생부군(顯考學生府君)이라 썼는데 군은 |
임금군으로서 역시 님이란 뜻입니다. 따라서 神主(지방)에 아버님 어머님이라 |
쓰거나 편지에 아버님 보세요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
*겹 존대는 피해야 좋아 |
5문: 상무님에게 저의 과장님을 말할때 저의 과장님께서 이렇게 하셨습니다라고 |
말했다가 꾸중을 들었습니다. 자네는 자네 할아버지에게 아버지를 말할때 |
아버님이라 말하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
직장에서 직근 상급자를 그분의 상급자에게 말할때는 어떻게 말합니까? |
5답: 그런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과장도 상급자이고 상무는 과장의 상급자인 |
것입니다. 이런 경우 몇가지 유형을 생각할수 있습니다. |
(1)과장님께서 이렇게 하셨습니다. (2)과장께서 이렇게 하셨습니다. |
(3)과장이 이렇게 하셨습니다. (4)과장이 이렇게 했습니다. |
(5)과장님께서 이렇게 했습니다. (6)과장님이 이렇게 했습니다. |
(7)과장께서 이렇게 했습니다. |
위와같은 경우 하셨습니다는 우선피해 그냥 했습니다가 좋습니다 대화상대자의 |
아랫사람의 행위를 극존대어로 말하는 것은 일단 옳지 못합니다. |
다음 과장님께서는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님과 께서를 쓰면 2중의 존대가되어 |
그분의 웃어른이 듣기 거북합니다. |
그럼 과장님을 고려해 보면 님은 과장의 직급을 존칭하는 것이되어 과장보다 |
상급자에게 합당하지 못합니다. |
그렇다고 혈연관계가 없이 인격대 인격의 직장관계에서 과장이라고 해버리기엔 |
상급자인 과장에 대한 지나친 비하라 하겠습니다. 과장께서 이렇게 했습니다라고 |
과장의 동태의 일부분에 약간의 존댓말을사용 합니다. |
*敬(경)과 親(친)의 구별이다. |
6문; 남편은 자기부모를 아버지 어머니라 하는데 며느리는 아버님 어머님이라고 |
부르는 것은 남존여비의 관습적 호칭이 아닌지요? |
6답: 옛날부터 친 자녀가 자기의 부모를 아버님 어머님이라고 부르지 않고 아버지 |
어머니라 부르게 한 것이 바로 며느리의 호칭과 혼동되지 않게하기 위한 것이라고 |
이해해도 됩니다. |
친자녀가 부모를 부를때는 禮과 경(敬)보다 親함이 앞서고 며느리는 혈연관계가 아닌 |
결연(結緣) 즉 인척관계 임으로 친보다 공경과 예절이 앞서야 하기 때문에 님을 |
붙이는 것이지 남존여비 관념이 아닙니다. |
친 자녀는 친함이 앞서기 때문에 님을 붙이지 않습니다. |
며느리와 딸이 함께 앉아서 똑같이 어머님이라 부르면 누가 딸이고 누가 며느리인지 |
대화를 듣고는 분간하지 못합니다. |
그러나 며느리는 어머님이라 부르고 딸은 어머니라 부르면 금방 식별이 됩니다. |
*아버지는 하늘 어머니는 땅 |
7문: 고례의 상례(喪禮) 복례(服禮)에 상장(喪杖)을 왜 짚으며 대나무 오동나무 또는 |
버드나무로 만드는 까닭은 무었입니까? |
7답: 대개 아버지의 상을 당해서 입는 참쇠복(斬衰服)에는 대나무 지팡이를 |
짚고 어머니의 상을 당해서는 입는 제쇠복(齊衰服)에는 오동(동(桐))이나 버들 |
류(柳)로 된 지팡이를 짚습니다. |
부모의 상을 당하면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듯한 지극한 슬픔으로 음식을 전폐 |
하고 오로지 호천망극할 따름입니다. 때문에 건강을 상하고 몸을 지탱하지 못하게 |
될 것이며 또한 지극한 효자는 병을얻는 수가 많습니다. |
그래서 몸을 의지해 장례절차를 마치려면 지팡이를 짚지 않을 수 없어서 입니다. |
부모상에 지팡이를 짚지않으면 그만큼 슬픔이 지극하지 못한 것이 된다. |
아버지의 상에 대나무 지팡이를 짚은 것은 (1) 아버지는 아들의 하늘이고 |
하늘은 둥근데 대나무는 안팍이 둥글어 하늘을 상징하고 (2) 대나무는 안팎으로 |
마디가 있는바 슬픔 또한 안팎이 찢어지듯이 아프며 (3) 대나무는 4계절 푸른바 |
아들이 아버지를 위함이 춥고 더움을 가리지 않기 때문이며 (4) 밑동이 아래로 가게 |
짚는 까닭은 나무의 서있는 이치를 따름이니 부모의 죽음이 자식에게 큰 슬픔이 |
되는 것도 이치입니다. |
어머니의 상에 오동나무 지팡이를 짚는것은 (1) 동(桐)은 같다는 뜻의 同자와 음이 |
같아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슬픔이 아버지의 죽음과 같다는 뜻이고 (2) 오동나무는 |
겉에 마디가 없는바 한가정에는 어른이 둘일 수 없고 어머니는 아버지 다음이므로 |
마디가 없는 나무를쓰며 (3) 밑동을 四각으로 깍는 까닭은 어머니는 땅이고 |
땅은 각(天圓地方) 졌다는 상징입니다. |
오동나무가 없으면 버드나무(柳)로 대신쓰는 까닭은 류(柳)는 한가지라는 뜻의 |
류(類)자와 같은 음이므로 오동나무와 같다는 뜻입니다. |
*남자도 큰절 평절 있어 |
8문; 여자의 절에는 큰절과 평절이 있는데 남자에게도 큰절과 평절이 있습니까? |
8답: 禮書에 보면 여자의 절을 肅拜 라고만 했지 큰절 평절의 구분이 없고 숙배는 |
큰절을 의미합니다. 오히려 남자의 절에 계수배(稽首拜 큰절) 돈수배(頓首拜 평절) |
공수배(控首拜 반절)의 구분이 있습니다. |
그런데도 여자의 절에 큰절과 평절이 행해지는 까닭은 생활습속으로 지방에 따라 |
행해지던 여러가지 절의 모습에따라 보다 정중하고 깊은 절을 큰절로 간편한 |
절을 평절로 구분해 절을받는 어른이 절을하는 아랫사람을 편하게 해 주려고 |
간편한 동작을 절을 허용한것이 평절로 굳어진 것으로 짐작됩니다. |
1599년 저술된 우리나라의 예서(禮書)인 가례즙람(家禮楫覽)에 보면 우리나라의 절로 |
숙배(큰절)가 소개됐고 평절로는 주자(朱子-중국 송대 학자)의 말씀으로 평절과 |
닮은 절의 모습을 소개하고 있음을 미루어 큰절에 우리나라의 원절이고 평절은 고대 |
중국의 절이 아닌가 생각 됨니다. |
*男左(남좌) 女右(여우)는 과학이다. |
9문: 어떤이는 여자가 공수(拱手) 할때에 왼손은 위로 간다며 그 이유를 여자는 일을 |
하는 오른손은 거칠고 왼손은 고우므로 고운 왼손으로 거친 오른손을 덮는 것이라고 |
말하는데 맞는 말입니까? |
9답: 전통적으로 우리나라 생활예절을 모르는 사람의 말입니다. 남좌여우(男左女右) |
남동여서(男東女西)라고 해서 남자는 왼손 여자는 오른손이 위로가게 맞잡는 것이 |
우리의 유구한 생활문화를 통해 정착된 것이며 또한 과학적인 근거에의한 것입니다. |
그 이유는 인간은 예나 지금이나 남향(南向)하는 것이 생명보전을 위한 가장 현명한 |
방법이고 그렇게 하면 뒤가 北이고 앞이 南이며 좌측이 東이고 우측이 西가 됨니다. |
동쪽은 해가 뜨고 밝음이 오니 陽이고 서쪽은 해가 지고 어둠이 깃드니 陰이며 남자는 |
양이고 여자는 음입니다. 양인 동쪽이 좌측이므로 양인 남자는 좌측을 승상해 왼손을 |
앞세우는 것이고 음인 서쪽이 우측이므로 음인 서쪽이 우측이므로 음인 여자는 |
우측을 승상해 왼손을 앞세우는 것이다. |
* 한국인끼리는 김양(孃) 박양(孃) |
10문: 전에 신문에서 보니까 어떤 저명인사가 직장에서 여직원을 김양 박양이라 |
부르니까 어쩐지 어색하게 느껴저서 미스김 미스박이라 부른 다고 했습니다. |
그것이 옳습니까? |
10답: 한국내의 한국인이 직장에서 한국인 끼리 서양 호칭을 쓸 까닭이 없습니다. |
김양 박양이 어색하다는 그 분은 외모는 한국인이라도 정신은 서양인이 아닌지 |
모르겠습니다. 한국인이라면 마땅히 미스 김미스 박이 더 부끄럽게 느껴 저야 할 |
것입니다. 누가 뭐라 하든 김양 박양은 우리말입니다. 孃은 여자의 존칭이며 순수한 |
우리말로 아가씨와 통합니다. 한국인 끼리의 호칭에 한국어를 쓰는것이 어색해서 |
되겠습니까? |
* 할아버지 보다는 어르신네 노인어른 |
11문: 저는 50대 후반으로 더러 할아버지라는 호칭으로 불려집니다. 저보다 나이가 |
많은 모르는 분을 어떻게 부를지 곤란합니다. 역시 할아버지라고 불러도 될까요? |
11답: 모르는 노인을 할아버지라 부르는 것은 바로 호칭이라기 보다는 하나의 |
애칭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즐겨 사용한 호칭이 있는데 굳이 그것을 쓰지않고 딴 |
호칭을 찾을 필요가 어디에 있습니까? |
자기보다 5살이내의 사람이면 형씨 5살에서 10살 정도면 형장(兄丈) 또는 선생 10살 |
에서 15살이면 어르신네 또는 노인장이 좋습니다. |
*시누이는 작은아씨가 옳아 |
12문: 저는 시누이와 함께 시장에가서 물건을 사는데 시누이를 아가씨라고 불렀더니 |
시누이와 점원 아가씨가 함께 예 하고 대답했습니다. 이런 혼동이 없게 하려면 |
어떻게 할까요? |
12문; 아가씨란 말은 현제 친척이 아닌 남의 처녀를 부를때 쓰여지고 있습니다. |
또 본래의 시누이의 호칭은 아가씨가 아닌 작은아씨 입니다. |
시장에서 작은아씨라고 불렀더라면 점원이 대답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
*아빠라는 호칭은 쓰지 말아야 |
13문: 시부모에게 남편을 말하기가 곤란합니다. 아이가 있으면 아빠라고 하는것이 |
일반인데 저는 아이도 없습니다. 남편도 아내인 저를 부를줄을 모릅니다. |
13답 설사 아이가 잇더라도 아빠라 하면 안됩니다. 아빠는 자기의 어린 |
아이에게 남편을 말할때나 쓰는 것입니다. |
시부모에게 남편을 말하려면 사랑이라 하는 것이 옳습니다. 부부간에는 거처(居處)로 |
말하니까 사랑에 있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
어른에게 아내를 말할때는 제댁이라 합니다. 저의 집사람이란 뜻입니다. |
* 여보 당신이 우리의 부부 호칭 |
14문: 결혼하기 전에는 ○○씨라고 서로 불렀습니다. 막상 결혼을 하고 나니까 호칭이 |
궁색합니다. 좋은 호칭을 가르쳐 주십시오 |
14답: 한국인이 한국인의 호칭을 놔두고 무슨 호칭을 알려고 하십니까? |
직접 부를때는 여보이고 대화중에서 지칭(指稱)은 당신이라고 우리 조상 대대로 |
불러왔습니다. 더 점잖게 부르려면 아내를 부인이라고 하면 됩니다. |
여보는 여기보세요의 준말이고 당신은 그 대부인이란 뜻입니다. |
젊은 부부가 어른스럽게 여보 당신이란 말로 부르려니 까 부끄럽다고도 합니다만 |
당연한 호칭을 쓰지 않는것이 더 부끄러운 일입니다. |
*결혼한 시동생은 서방님 |
15문: TV에서 보니까 결혼한 시동생을 아주버님이라고도 하고 서방님이라 |
고도 합니다. 어떤것이 맞습니까? |
15답: 남편의 형제에 대한 호칭이 서방님과 아주버님인데 남편의 형은 아주 |
버님이고 결혼한 시동생은 서방님입니다. 결혼하기 전에는 도련님입니다. |
* 親(친)과 禮(례)을 구분해야 |
16문: 시부모님 앞에서 친정부모를 아빠 엄마라고 했더니 엄마 아빠가 뭐냐고 |
걱정하셨습니다. 아버지 어머니라고 하자니 시부모는 아버님 어머님이라 하면서 |
친정부모는 낮추는 것 같아 기분이 나쁨니다. 어떻게 말해야 옳습니까? |
16답: 남녀간에 자기를 낳으신 부모를 말 할때 아버님 어머님이라 하지 않고 아버지 |
어머니라 합니다. 님은 상대를 높혀부르는 禮스러움 보다는 부자(父子)간에는 예보다 |
親함이 앞서기 때문입니다. 시부모를 아버님 어머님이라고 님을 붙이는 것은 친보다 |
禮가 앞서야 하기때문 입니다. 그래서 시부모 앞에서 친정부모를 말할때는 친정아버지 |
친정 어머니라고 하는것이 무난 합니다. |
* 미스 미스타는 우리호칭 아니다. |
17문: 친구 미스박이있는 회사에 전화를 걸어 미스박(朴) 좀 바꿔주세요라고 했더니 |
우리회사엔 미씨(氏)가 없습니다 고 탁 끊어 버렸습니다. 기분이 나빴습니다. |
17답: 상대방이 불친절했군요. 그러나 그 불친절을 새길 필요가 잇습니다. |
한국 사람끼리의 호칭에 서양식을 했으니까 그런 반응이 나온 것입니다. |
상대방은 한국인의 주체사상이 철저한 분이신가 봅니다. 앞으로는 朴○○양이 |
있으면 바꿔주세요 라고 말해 보세요. 친절하게 바꿔드릴 것입니다. |
* 家禮輯覽(가례즙람) 은 禮書(예서)의 종(宗)이다. |
18문: 가례즙람(家禮輯覽)에 대해서 자상하게 알려 주십시요, |
18답: 문묘에 종사된 우리나라의 18현중에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과 김집(金集) |
신독제(愼獨齊)부자분이 계십니다. 두분이 대를 이어 예학에 끼친 업적이 지대합 |
니다만 특히 사계선생을 우리나라 예학(禮學)의 종장(宗長)이라 추앙 하고 있습니다. |
그 사계선생께서 52세때인 1599년에 저술한 禮書가 가례즙람입니다. 모두 11권에 5책 |
으로 된바 제1권에 의례전반에 관한 도설(圖說)이 실려 있어 이해에 편리합니다. |
내용은 우리나라의 조야(朝野)에서 궁산중행하든 중국 宋대의 학자인 주자(朱子)의 |
가례(家禮)를 해설하는 형식을 취했습니다만 우리나라의 풍습으로 행해지던 각가 |
지 습속과 여러 학자의 학설 및 당신의 견해를 곁드려 한국 주체적인 색체가 |
농후한 것이 특징입니다. |
우리나라의 예서(禮書)가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만 민간본으로 완벽한 이론서로서 |
이것이 처음이며 기타 예서(禮書)는 거의가 가례즙람 이후에 간행되었기 때문에 그 |
논거(論據)를 여기에 두고있어 가위 禮書의 종(宗)이라 할 것입니다. |
* 酒道(주도)는 더욱 禮스러워야 |
19문: 술을 마시는 데도 예절이 있습니까? 주도(酒道)을 말씀해 주십시요. |
19답: 우리가 음식을 먹는 데에 禮가 따르는 것은 다 알고 있습니다. 술은 마시면 |
취하고 취하면 정신이 혼미하고 몸을 가누지 못하는 특성이 있으므로 더욱 예절이 |
엄격 합니다. |
우리나라의 주도(酒道)는 향음주례(鄕飮酒禮)로 대표됩니다. 향교 사원 관아(官衙) 등 |
에서 춘추(春秋)로 관내의 선비들이 엄격한 음주 예절을 하나의 의식으로 행했습니다. |
이런 의식절차가 평소의 음주에도 예절을 바르게 할 것이라는 배려라 하겠습니다. |
술은 처음에 사람이 술을 마시지만 거듭되면 술이 술을 마시고 지나치면 술이 사람을 |
마셔 망신 시키고 못참으면 술이 처자(妻子) 까지도 마시게 되어 패가 합니다. |
술이 술을 마시는 단계에 이르지 않도록 사람이 술을 마시는 단계에 머므는것이 |
주도(酒道)의 으뜸입니다. |
* 수고했습니다와 수고하세요는 달라 |
20문: 저는 어른에게 수고하십시오 라고 인사했다가 꾸중을 들었습니다. |
20답: 수고하십시오 는 일을 하라는 말이 됩니다. 아랫사람이 어른의 일을 해드리지 |
못할 망정 일을 하라고 하면 되겠습니까? 예를들어 상사 보다 먼저 퇴근하면서 |
수고하십시요하면 저희는 먼저 가면서 나보고만 일을하란다고 언짢아 할 것입니다. |
저 먼저 가겠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등이 좋을 것입니다. |
그러나 어른에게 일이 끝난뒤에 수고하셧습니다라고 인사하는 것은 수고를 위로하는 |
인사라 괜찮습니다같은 수고라는 말도 미리 말하면 하라는 뜻이고 뒤에 말하면 |
위로의 뜻이 되겠습니다. |
* 손아래 매부와 손위 처남은 친구간 |
21문: 저의 손아래 매부(누이동생의 남편)가 저보다 나이가 많습니다. 호칭과 말씨를 |
가르쳐 주십시오 |
21답: 사위는 처가의 어른이 직계존속(장인 장모)이고 기타는 일반 사회적 관계이다. |
질문의 경우 손위 처남이기는 하나 나이가 자기보다 적으니까 형님이라 부르기도 |
어색하고 그렇다고 반말을 하자니 손위라 난처하며 질문자의 처남의 위치에서도 |
반말을 하자니 매부가 나이가 많고 존대를 하자니 손아래라 역시 난처할 것입니다. |
그렇다고 남매간인데 어색하게 지낼수도 없고 대책이 있어야 겠습니다. |
원칙적으로 배우자의 친척과 나의 관계는 배우자와의 관계로 설정됩니다. |
손아래 매부와 손위처남은 남매간이지만 처가의 어른은 직계존속뿐이라는 전재로 |
그냥 친구입니다. 따라서 10년 이내의 차이라면 자네 ○서방(이름) 호칭이고 하게 의 |
말씨를 쓰면 됩니다. |
* 어른의 꾸중 야단은 걱정이다. |
22문: 아버지가 야단쳤어요 말했다가 버릇없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
22답: 같은 뜻의 말이라도 어휘 선택을 잘해야 합니다. 아버지가 야단쳤다는 말은 |
아버지가 밥먹었다는 말과 같습니다. 질문자가 생각해도 아버지가 밥 잡수셨다. |
아버지께서 진지 잡수셨다. 중 어느쪽이 더 좋은 어휘인지 짐작 될 것입니다. |
밥은 진지 먹었다는 잡수셨다가 좋지 않습니까?야단쳤다 보다는 걱정하셨다가 맞는 |
말입니다. 내가 잘못해서 어른이 근심(걱정)을 하시는 것이지 내 잘못한 것을 꾸중하신 |
것은 아닙니다. 어른은 아랫사람이 잘못하면 근심 걱정을 하십니다. |
* 부지런하게 공경하겠다는 뜻 |
23문: 시집가는 신부가 시부모에게 드리는 폐백에 밤 대추 닭 술을 준비하는 이유는 |
무엇입니까? |
23답: 일반적으로 시아버지에게는 밤과 대추를 올리고 시어머니에게는 닭을 올리고 |
있습니다. 예서(禮書)에서 보면 시아버지에게는 대추 밤 육포(肉脯)을 올리고 |
시어머니에게는 옷을 지어 올리거나 비단을 드린다고 했습니다.(곡례(曲禮)) |
육포대신 꿩을 쓰기도 했고 근래에는 꿩대신 닭으로 쓰는 것이 관례로 되었으며 밤과 |
대추는 시아버지 닭은 시어머니에게 드립니다. |
대추와 밤을 폐백으로 쓰는 이유는 대추는 부지런하다는 뜻이고 밤은 두려운 마음 |
으로 공경하다는 뜻(가례집람(家禮輯覽)) (안춘추운(按春秋云))이므로 시부모에 대한 |
며느리의 서약이라 하겠습니다. |
술은 며느리가 시부모에게 올리는 폐백이 아니고 폐백을 받는 시부모가 며느리를 |
맞는 禮로서 술을 내리는 것입니다.(구고례지(舅姑禮支)) |
며느리가 시부모에게 술을 따라 올리는 일은 잘못된 일입니다. |
* 함을 판다는 것은 천박한 폐단이다. |
24문: 근래 혼인 전날에 신랑측에서 채단이 든 함을 신부측에 보내는데 그 것을 함 |
사라 외치며 실랑이가 심합니다. 전통예절에 그런 법이 있습니까? |
24답: 채단이란 신랑이 아내를 맞기위해 신부댁에 드리는 폐백입니다. 정결한 아낙은 |
禮가 아니면 가지 않는다.(정결지녀(正潔之女) 비례측비행(非禮厠非行))고 했습니다. |
신랑이 신부측에 드리는 함이나 신부가 시부모에게 올리는 폐백이 엄격한 의미에서 |
같은 성격의 것입니다. |
신랑이 함을 판다면 신부도 폐백을 팔아야 할 것입니다. 근원적으로 예물인 함을 |
어떻게 팔겠습니까? 참말로 근절해야 할 천박한 폐단입니다. |
* 제사는 돌아가신 날에 지내는 것 |
25문: 근래 저상의 제사를 초저녁에 지내는 경우가 흔하게 잇습니다. |
만약 초저녁에 지내려면 돌아가신 전날의 초저녁에 지내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
25답: 그런 질문을 하시게 된 동기는 전통예법상에 제사가 돌아가시기 전날에 |
밤중에 지냈으니까 초저녁이 지낼때도 전날의 초저녁이 맞는다고 생각해서 입니다. |
그러나 전통제례도 준비는 돌아가시기 전날 밤중에 했지만 실제 제사를 지내는 |
시간은 돌아가신 날의 첫새벽이라는 점에 유의해야 합니다. |
결정적인 초점을 돌아가신 날이 다시 돌아오니 휘일복임(諱日復臨)라고 쓴다는 |
사실입니다. 따라서 제사는 지내는 시간이 낮이든 밤이든 반드시 돌아가신 날에 |
지내야 합니다. 초저녁에 지내려면 돌아가신 날의 초저녁에 지내야 합니다. |
* 四禮(사례)란 冠(관) 婚(혼) 喪(상) 祭(제)을 말하는 것 |
26문: 혼인 의례에도 사례(四禮) 가례(家禮)도 四禮라고 말하는데 四禮라하면 혼례 |
입니까? 아니면 가정 의례입니까? |
26답: 혼인에서의 사례(四禮)란 원례의 육례(六禮)인 주육례(周六禮)가 번잡하다고 |
주자(朱子)가 사례(四禮)로 조정한 데서 연유됩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四禮라고 |
말할때는 혼례(婚禮)가아닌 가정의례를 말합니다. |
가정의례는 줄여서 가례(家禮)라고 말하며 성년의식인 관례(冠禮) 결혼절차인 혼례 |
(婚禮) 초상을 치르는 상례(喪禮) 죽은이를 기리는 제례(祭禮)등 크게 四禮로 되어 |
있습니다. 엄격히 말하면 가례(家禮)에도 조상의 위폐를 모시는 사당례(祠堂禮) |
일상생활의 기준예절인 거가잡의(居家雜儀)가 있어 육례(六禮)라고 말 할수도 |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가례(家禮)에서는 사당례(祠堂禮)는 가례(家禮)의 |
일부분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
* 택시의 上席(상석)과 자가용의 上席 ? |
27문: 어른을 모시고 택시나 자가용등 승용차를 탈때 문제가 있습니다. |
어른이 타고 내리기에 편리하게 인도(人道)쪽으로 모시려면 아랫사람이 먼저타야 |
하니 실례이고 어른을 먼저 타시게 하면 내릴때는 아랫사람이 먼저 내리게 되면 |
죄송합니다. |
27답: 승용차는 운전기사의 옆자리인 앞에 한사람 뒤에 세사람 모두 네사람이 |
탑니다. 그런데 어디가 上席 인지는 택시와 고용 운전사가 운전하는 자가용은 같고 |
자가운전하는 자가용은 다릅니다. |
자가 운전하는 자가용의 경우는 운전석의 옆자리인 앞이 제일 上席인(1)번이고 |
뒷자석인 인도쪽이 우측이(2)번이고 차도쪽 즉 안쪽이 (3)번이고 뒷좌석의 가운데가 |
(4)번 좌석입니다. 네사람이 탈때 제일 아랫사람이 여자일 경우는 여자를 (3)번 좌석에 |
앉히는 것이 예의입니다. 그 이유는 차의 구조가 가운데는 높은축이 있어 발을 벌리 |
고 앉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자가운전이 아닌 자가용이나 택시의 경우는 뒷좌석이 |
우측인 인도쪽이 제일 상석인(1)번좌석이고 좌측이고 안쪽인 차도쪽이(2)번 좌석이고 |
뒷자리의 가운데가 (3)번 좌석이며 앞자리인 운전기사의 옆자리가(4)번 좌석입니다. |
역시 차례대로 앉을때 여자가 뒷자리의 가운데 앉게 될때는 앞자리나 차도쪽 자리와 |
바꾸는 것이 예의 입니다. 만일 승용차가 찝 차라면 자가운전이 아니라도 운전기사의 |
옆자리인 앞이 상석(上席)인 (1)번 좌석이 됩니다. 그러나 찝 차의 경우는 자가운전 |
하는 승용차와 같이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
* 사돈 사이에도 사행(査行)이 있다. |
28문: 사돈과 사장어른과는 어떻게 다릅니까? |
28답: 사돈이란 혼인으로 인해서 맺어진 인척(姻慽)관계를 말합니다. 같은 사돈 |
이라도 일가간의 항열(行列)이 있듯이 사돈의 항열 즉 査行이 있어 그 호칭이 |
달라집니다. 시집간 아낙의 시부모와 친정부모는 같은 世代인 同行이므로 사돈 |
이라 말합니다다만 안사돈이 바깥사돈을 부르려면 사돈 어른이라하고 바깥사돈이 |
안사돈을 부를때는 사돈어른 또는 사부인이라 부릅니다. |
그러나 시집간 아낙의 시조부와 친정아버지는 세대가 달라서 할아버지와 아버지 |
이므로 父子의 항렬에 해당합니다. 그래서 사장(査丈)어른이라고 말해야 합니다. |
형수의 동기간이나 누님의 동기간은 같은 세대니까 사돈이지만 형수나 누님의 |
시부모나 친정부모는 사장어른 입니다. 역시 査行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
* 學德(학덕)으로도 位階(위계)분명 |
29문: 학생시절에는 한 학년만 위라도 깍듯이 형이라고 합니다. 직장에서 1-2년만 |
먼저 입사한 선배도 형이라고 깍듯이 존대해야 됩니까? |
29답: 사회생활은 위계질서가 분명히 지켜져야 혼란이 없습니다. 옛 성인 맹자의 |
말씀에 조정에서는 벼슬의 높낮이로 사회생활엔 나이가 많고 적음으로 세상을 이롭 |
게하고 사람들을 키우는데는 학덕이 있고 없음으로 위계를 삼는다라고 했습니다. |
직장은 조직사회이고 맹자께서 말씀한 조정에 해당합니다. 직장에서의 위계질서는 |
첫째 직급의 상하(上下)이고 둘째 동료간에는 연령의 고하(高下)이고 셋째 선후배 |
관계가 위계확립의 조건이 될 것입니다. 선배사원은 신입사원인 나보다 확실히 직장 |
에서의 학덕이 많은 사람이니 존대해야 합니다. 그러나 선배가 후배에게 친구로 |
지내기를 양해할때는 그 때부터 동료가 되는 것입니다. |
* 다 좋지만 노인어른이 가장 적격 |
30문: 버스를 타고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하려고 하는데 노인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 |
망설여 졌습니다. 할아버지 어르신네 노인장 노인어른 어느것이 맞습니까? |
30답: 근래 바깥노인을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이 일반화 되었다고는 하나 썩좋은 |
호칭은 아닙니다. 할아버지란 손자나 손자뻘 되는 사람이 할아버지나 할아버지뻘 |
되는 친족간의 호칭이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남을 할아버지라 부릅니까? |
질문하신 경우와 같이 禮스러운 호칭을 사용하려면 노인장(老人丈)이 좋습니다만 |
장(丈)은 어른이란 말이므로 순수우리말로 노인어른이라 부르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
어르신네는 일반적으로 부모의 친구를 부를때 쓰는 것이 적절하기 때문입니다. |
* 祭祀(제사)와 茶禮(차례)는 상차림 절차가 달라 |
31문: 각종 간행물에 보면 한식 추석 설날 등에 조상을 받드는 예를 제사라고 하는데 |
있는가 하면 차례(茶禮)라고도 하는데 어떤 것이 맞습니까? |
31답: 제사(祭祀)와 차례(茶禮)는 지내는 경우와 상차림 지내는 절차등이 엄연히 |
다릅니다. 祭자를 쓰는 제사는 조상이 돌아가신 날에 지내는 기제사(忌祭祀)와 |
제사 받드는 한계가 지난 웃조상(오대조상이상(五代祖上以上))이 세일사 |
묘제(歲一祀, 墓祭)와 조상의 사당을 모시는 경우의 시제(時祭)라고 해서 춘하추동 |
4계절의 가운데 달에 지내던 제사만을 말합니다. 기타의 설날 동지날 매월 초하루와 |
보름에 사당에 참배하는 정지삭망참(正至朔望參)과기타 명절에 계절식을 받들어 |
올리는 속절즉헌이시식(俗節卽獻以時食)은 茶禮라고 합니다. |
제수(祭羞) 상차림도 제사에는 메(제사밥)와 갱(제사국)을 쓰지만 차례에는 메와 갱을 |
쓰지않고 계절특식을 쓰는 것입니다. |
설차례를 떡국차례 라하고 추석에는 송편을 쓰는 것과 같습니다. |
지내는 절차는 제사는 술을 세번 올리고 반드시 祝文을 읽는 삼헌독축(三獻讀祝)이고 |
차례는 술을 한번만 올리고 일반적으로 축문을 읽지 않는 단헌무축(單獻無祝)입니다. |
이제 제사와 차례를 구분해서 말해야 되고 지내는 절차와 상차림도 격에맞게 해야 |
되겠습니다. |
* 꼭 나쁠건 없지만 불편이 많아 |
32문: 한식과 추석이 차례를 산소에서 지내듯이 설차례도 산소에 가서 지내도 |
됩니까? |
32답: 원래의 차례는 장자손(長子孫)이 조상의 신주를 모신 사당에서 지내는 것을 |
원칙으로 했었는데 근래 사실상 사당을 모시지 않는 집이 많아 지면서 기왕에 성묘를 |
하는 길에 산소에서 습속이 생겼습니다. |
그러나 한식이나 추석은 일반적으로 마른(건(乾))음식으로 상차림을 하고 춥지 않으 |
니까? 산속에서 지내는 것이 당연시 되었지만 설차례는 떡국을 올려야 하므로 |
식어서는 아니될 것이고 날이 추워 산속에서 지내기가 쉽지 않아 집에서 위폐 사진 |
지방을 모시고 지내는 것이 관례로 되었습니다. |
* 남자 동서간은 사회적 사귐으로 |
33문: 저는 딸만 3자매 중에서 둘째 딸의 남편입니다. 저보다 3살위인 손위 동서를 |
형님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해서 형님이라 부르고 대접했습니다. |
처제가 결혼하면 처제의 남편에게서 형님이라 불리고 대접받을 것을 기대했습니다. |
그런데 막상 처제가 결혼을 했는데 그 남편인 손아래 동서가 저보다 1살 위입니다. |
여자는 시댁의 윗동서가 나이가 적더라도 형님이라 하니까 저의 손아래 동서도 |
처형의 남편인 저를 나이가 적더라도 형님이라 불러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
33답: 결론부터 말씀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엄격히 말하면 귀하가 3살위인 손위 |
동서를 형님이라 부르는 것도 우리의 전통예절에 맞는 것은 아닙니다. |
사위는 백년 손님이라는 속담이 거저 생긴 것이 아닙니다. 사위에게 있어 처가의 |
어른은 아내의 직계존속 뿐입니다. 기타의 아내의 친척은 모두 사회적 사귐이지 |
서열을 따져서 위계질서를 따지지 않습니다. 처남이나 처형 처제의 남편인 |
동서들과는 아내와의 관계에 때라서 형님 동생하지 않고 나이에 따라 대접합니다. |
3살 정도 손위라면 당연히 자네라고 부르게 해야합니다. |
귀하의 경우 한살이 위인 손아래 동서와도 당연히 벗을 터서 친구같이 지내야 합니다. |
* 10 년까지는 벗을 할 수 있어 |
34문: 어른들 대화중에 벗을 튼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아마도 나이에 따라 |
친구같이 지내는 한계가 있는것 같은데 몇살까지 벗을터서 친구가 될 수있습니까? |
34답: 동양의 고전인 論語에 보면 나이가 배가 되면 아버지 같이 섬기고 년장이배 |
즉부사지(年長以倍卽父事之) 10년이 위이면 형님으로 모시고 십년이장 즉형사지 |
(十年以長卽兄事之) 5년이 많으면 어깨를 나란히해서 따른다. 오년이장 즉후수지 |
(五年以長卽厚隨之)고 한 것이 나이로 상대를 대접하는 기준이 되었습니다. |
나이가 배가 된다는 것은 성인의 경우를 기준으로 하는 것이고 성인이되는 나이는 |
15세에서 20세까지 관례(冠禮)(성인의식)을 치르는 법도로 보아 최소한도 15세는 |
되어야 성인이 되는 것이니까 자기보다 15세이상 많은 사람은 아버지 같이 모셔야 할 |
것입니다. |
둘째, 자기보다 10년이상 15년 까지는 형님으로 모셔야 하니까 같이 걸을때 한발 |
뒤에서 따라야 도리에 맞습니다. 아버지로 모실 나이는 안이고 10년이 넘어서 친구로 |
지낼수도 없는 사이를 노소(老少)간이라 하고 老兄 少弟라 부르게되어 있습니다. |
5년이 연상이면 10년까지의 나이차가 문제입니다. 이른바 벗을 튼다는 말도 엄격한 |
의미에서 이 경우에 해당됩니다. |
물론 형님 동생의 경우도 아니고 그렇다고 당연한 친구일 수도 없으므로 당사자간에 |
친구같이 지내기를 결정하면 벗을 튼것이 되고 그렇지 않으면 서로 존대하며 |
지내야 합니다. 벗을 튼다는 것은 연장자가 친구 그러니까 벗이 되기를 양해한다는 |
말입니다. 10년까지는 벗 할수 있다는 말이 여기서 나온 것입니다. |
* 行列(항렬)이 낮더라도 나이를 대접해야 |
35문: 저의 일가인 조카가 저보다 나이가 훨씬 많습니다. 어떻게 대접해야 할까요? |
35답: 그런 경우를 연고행비(年高行卑 ) 나이는 많은데 항열은 낮다의 경우라고 |
합니다. 조카뻘이면 당연히 조카 대접을 해야 할텐데 나이가 많아서 |
그렇게 할 수 없는 경우입니다. 부를때는 조카님 이라고 하고 말씨는 존댓말을 써야 |
합니다. 상대방 위치에서는 귀하가 아무리 나이가 적더라도 아버지와같은 서열이기 |
때문에 깍듯이 아저씨라 부르고 역시 존댓말을 써야 합니다. 그러니까 서로 위해야 |
되는 것입니다. 세대와 나이를 모두 대접하기 때문입니다. |
* 복장은 행사의 성격에 맞아야 |
36문: 저의 결혼식때 한 친구가 더럽고 남루한 옷을 입고와서 창피해 혼났습니다. |
뿐만 아니라 모두가 눈살을 찌푸려 잔치 분위기를 망쳤습니다. |
그 친구가 잘못입니까? 저의 생각이 잘못입니까? |
36답: 있을법한 일입니다. 좋은 행사에 참석 할때는 화사한 옷을 입고 슬픈 행사에 |
참석할때는 역시 슬픔을 나타내는 의복을 입는 것이 손님의 예절입니다. |
그러나 그만한 준비가 없다고해서 인사를 안가는 것은 더욱 좋지 못한 일입니다. |
색깔은 걸맞지 않더라도 떨어진 곳은 꿔매고 더러운 옷은 빨아서 정결하게 했더라면 |
귀하가 창피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초상집에 울긋 불긋한 원색의 옷차림으로 가는 |
것도 실례이고 잔칫집에 어두운 복장으로 가는것도 실례입니다. |
* 부부의 말씨는 서로 존대해야 |
37문: 요사이 부부간의 말씨가 남편은 아내에게 반말을 하고 아내는 남편에게 |
존댓말을 하는것이 상식화 됐습니다. TV나 라디오의 드라마를 보아도 거이가 그렇게 |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지 아내에게 존댓말을 하는 것이 어색하게 들립니다. |
37답: 근래 각급 교육기관의 수준을 평준화 한다고 하더니 말씨도 |
평준화해서인지 엉뚱한 장면들이 연출되고 있는것이 사실입니다. |
기왕에 평준화 하려면 下向평준화보다는 上向평준화가 바람직 합니다. |
부부간의 말씨만 해도 그렇습니다. 옛날이나 현대나 수준높은 가정에서는 반드시 |
부부간에는 서로 존댓말을 쓰는데 영세 서민층에서는 남편은 반말 아내는 존댓말을 |
하는 것이 일반적 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모두 상향평준화해서 부부간에 존댓말을 |
써야 합니다. 남녀평등은 부부대화의 말씨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입니다. |
* 성년이 되었으면 성년의 대접을 |
38문: 저는 직장에 다니는 20대 중반의 청년입니다. 초등학교 동창회 모임에 갔더니 |
어떤 선생님은 우리를 자네 하게 하시는데 다른 선생님은 야 너 해라를 하셨습니다. |
선생님은 어떻게 불러야 합니까? |
38답: 아무리 코흘리개때 가르친 제자라도 성인이 되면 성인의 대접을 하는 것이 |
옳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로는 만 20세를 기준해서 그 이전에는 애들로 취급해 |
야 너 해라하는 것이 당연합니다만 일단 성년인 그 이후에는 자네 여보게 하게을 |
하는 것입니다. |
지금은 별로 성년의식이 행해지지 않습니다만 冠禮를 하던때는 관례를 하기 전에는 |
아이로 대하다가 관례만 끝나면 그 자리에서부터 어른대접을 했습니다. |
* 10년까지는 벗을 틀 수 있다. |
39문: 전에 어른들을 보면 나이차이가 10년이 가까워서 벗을 텄다면서 서로 자네 |
하게 하면서 친구로 지냈는데 요사이는 약간만 나이가 많아도 깍듯이 선배로 대접 |
받으려고 합니다. 벗을 할수 있는 기준을 말씀해 주십시오. |
39답: 그런 경우로 인해 다투는 사람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먼저 결론을 말씀하면 |
나이가 5년차이 까지는 당연히 벗을 하며 친구로 지낼수 있고 6년부터 10년까지는 |
나이가 많은 사람이 양해하면 서로 벗을 터서 친구같이 지낼수 있으며 11년부터 |
15년까지는 노형 소제라고 해서 깍듯이 형님의 대접을 해야하고 16년이 넘으면 |
아버지와 같은 존장으로 모셔야 합니다. |
이런 기준은 오랜 생활풍습으로 정립된 것이고 문헌상의 근거로는 論語에있는 |
년장이배즉칙부사지(年長以倍卽則父事之) 십년이장칙형사지(十年以長則兄事之) |
오년이장칙견수지(五年以長則肩隋之)라는 글귀입니다. |
* 배우자와 남매간이면 나와도 남매간 |
40문: 남매(男妹)간이란 남자와 여자 동기간을 말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처남과 |
매부사이를 남매간이라 말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
40답: 어찌 처남과 매부사이 뿐이 겠습니까? 올케와 시누이 사이는 같은 여자인대도 |
남매간이라 합니다. 일반적인 남매간은 남자와 여자 동기간을 말하는 것이고 |
배우자의 동기간과 나 사이도 배우자의 관계로 말해 남매간이라 합니다. |
처남과 매부는 처남의 위치에서 보면 매부가 남매간인 누이의 남편이니까 남매간이고 |
매부의 위치에서 보면 처남이 아내와 남매간이니까 자기와도 남매간입니다. |
올케와 시누이도 올케의 위치에서 보면 시누이가 남편과 남매간이니까 자기와도 |
남매간이고 시누이의 위치에서 보면 올케가 자기와 남매간인 오빠나 남동생의 아내 |
이니까 자기와도 남매간인 것입니다. |
* 항렬을 쓰는 것이 더 편리해 |
41문: 우리나라의 이름에는 거개 항렬자를 쓰는데 요새 번지고 있는 한글이름의 경우 |
어떻게 하는것이 좋겠습니까? 또 한문 이름이라도 항렬자를 꼭 써야 합니까? |
41답: 전래는 항렬자 제도는 한문식 이름 일때 사용했습니다. |
한문글씨의 모양에 甲乙丙丁이나 一二三이나 金水木火土등의 순서를 따졌습니다. |
그래서 이름자만 봐도 그 성씨에서 몇 세대쨰 자손인가를 분간할 수 있었고 일가끼리 |
만나면 항렬만 보고도 아저씨벌인지 할아버지가 되는지 그 세대를 알수 있었습니다. |
그러나 한글 이름일 경우는 아직 그런 제도가 정립되지 않아서 곤란할 것입니다. |
여하간 항렬을 넣어서 이름을 짓는 것이 위에 말한대로 더 편리한 건 사실입니다. |
* 여자도 조상제사 참사한다. |
43문: 저는 얼마전에 결혼했습니다. 친정에서는 조상의 제사에 여자도 참사했기 |
때문에 시댁의 제사에 참사하려고 했더니 배우지 못했다고 걱정을 들었습니다. |
여자는 시댁 제사에 참사하지 못하는 것입니까? |
43답: 며느리는 그집의 혈손이 아니라 제사에 참여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
모양입니다. 그러나 큰 잘못입니다. 제사에 술을 세번 올리는데 둘째 잔인 |
아헌(亞獻)은 며느리인 주부(主婦)가 하게 되었습니다. |
그리고 삽시정저(揷匙正著)라고 메(제삿밥)에 숟가락을 꼽고 시접에 젓가락을 바르게 |
걸치는 일도 주부가 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리고 제사때의 자손들의 配席에 신위의 |
우측앞인 西쪽이 여자자손의 자리입니다. 오히려 딸보다 며느리가 상석입니다. |
그런데 왜 여자가 참석하지 못한단 말씀입니까? 반드시 참사해야 합니다. |
* 초상집에 使者(사자)밥은 필요없어 |
44문: 초상집 문전에 상을 펴고 짚신 밥 나물 더러는 돈까지 차려놓은 집이 있습니다. |
그렇게 해야 하는 것입니까? |
44답: 그것은 使者밥이라고 해서 죽은이의 영혼을 데리고 갈 저승의 사자에게 후이 |
대접해야 조상이 고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그렇게 하는사람이 더러 있습니다. |
그렇다면 자기의 부모를 잡아가는 저승 사자가 그렇게 고마워서 후이 대접한단 |
말입니까? 따라서 사자밥을 차리는 것을 보고 제 부모가 돌아가시기를 기다린 |
사람들 이라고 혹평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여하간 禮書에는 사자밥을 차려놓는 |
의식이 없습니다. 공중도덕 환경문제등도 그렇고 조상을 잡아가는 사자를 대접하는 |
일도 우스운 일이니 안하는 것이 옳습니다. |
* 남의 남편은 바깥어른 주인어른이 좋아 |
45문: 어떤 부인에게 그 남편을 말하려면 무었이라고 해야 합니까? |
아빠가 쓰이는데 어색해서 묻습니다. |
45답: 요사이 부부간의 호칭이 정립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
그러나 전래의 좋은 호칭을 두고도 쓰지않는 것이 더문제입니다. |
아빠는 아이들의 아빠이지 부인의 아빠가 아닌데 어떻게 부인보고 아빠는 |
무었하십니까 라는 식으로 말하겠습니까? 부인이 자기의 남편을 남에게 말할때 |
바깥양반 주인 양반이라고 하는것이 우리들의 호칭이니까 그 부인에게 남편의 |
존칭을 붙혀서 바깥어른 주인어른이라고 하면 좋습니다. 바깥어른은 어디가 셨나요? |
주인어른은 연세가 어떻게 되셨나요? 얼마나 좋습니까? 한문식으로 말하려면 |
부군(夫 君)이 좋습니다. 부군께서는 직장이 어딥니까? 참 부드럽지 않습니까? |
* 남녀간에 다리를 괴고 앉는 자세는 좋지 않아 |
46문: 버스나 전차 속에서 여자가 발을 괴고 앉는 경우가 많습니다. |
더러는 어떤 행사장의 단상의 점잖으신 분이 발을 괴고 있습니다. |
단하의 참석자를 무시하는 것 같아 보기가 싫은데 그게 맞습니까? |
46답: 남녀간에 다리를 괴고 앉는 자세는 禮스러운 자세가 아닙니다. |
친구간이나 아랫사람과의 좌석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이라면 편한 자세가 좋을 수도 |
있지만 대중 앞이나 의식행사 기타 정중해야할 좌석에서는 다리를 괴고 앉는 것은 |
옳지 않습니다. 다리를 괸 자세는 건방지고 안하무인(眼下無人)한 무례로 비춰집니다. |
* 말씀을 낮추세요 미성년입니다. |
48문: 성인과 같은 복장에 머리도 길렀지만 분명히 미성년 입니다. |
그런데 존댓말로 말을 합니다.이봐요 여기가 어디죠? 지금 몇 시입니까? |
자리를 양보하면 고맙습니다 라던가 더러는 한창 대화할때도 있는데 계속 경어를 |
씁니다. 미안한 마음이 큽니다. 이럴때는 어떻게해야 합니까? |
48답: 미성년은 미성년의 대접을 받아야 마음이 편하고 성년은 성년의 대접을 받아야 |
제몫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년인지 미성년인지 분간할 수가 없어서 어른들이 |
성년 대접을 하고 보는 것입니다. 자기가 미성년 인데도 아무말 없이 성년 대접을 |
받으면 아이들이 분수없이 어른을 능멸하는 것입니다. 어르신네 저는 미성년 입니다. |
말씀을 낮추세요. 라고 자기가 미성년임을 밝히는 것이 떳떳한 禮스러움입니다. |
* 처남댁 ○○자친이 좋다. |
49문: 처남의 부인을 어떻게 불러야 합니까? 아주머니 라고 부르고 있습니다만 |
아무래도 어색해서 바른 호칭을 알고 싶습니다. |
49답: 예절에 관심을 갖고있는 사람도 난감한 질문입니다.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
생활관습으로는 내외(內外)법이 엄격했고 따라서 시누이 남편이 처남의 부인을 직접 |
부를 일이 없었던 것입니다. 전통적인 호칭은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친근하게 |
만나고 지내는 현대에도 적당한 호칭이 정립되지 못한다면 일상생활에 불편이 많을 |
것입니다. 하지만 아주머니는 곤란합니다. 형의 부인이나 부모와 같은 항렬이나 |
서열(위계)인 부인을 부르는 호칭을 처남의 부인에게 쓸 수는 없습니다. |
처남의 부인이 아직 아이를 낳지 않았으면 처남댁(妻男宅) 처남의 집사람이란 뜻)이 |
좋고 아이가 있으면 아이의 이름을 위에 붙혀 아무게 어머님 또는 아무게 자친(慈親) |
이 좋겠습니다. |
* 孺人(유인)은 곤란하고 夫 人(부인)이 더 좋아 |
50문: 부모님이 다 돌아가셔셔 제사를 지내는데 아버지는 공무원 서기관을 지내셨기 |
때문에 지방에 顯考 書記官○○部 ○○課長府 君 神位라고 씁니다. |
그런데 어머니는 顯妣孺人 ○○氏 神位라고 씁니다. 아버지는 벼슬을 쓰면서 어머니 |
는 孺人이라고 쓰니까 잘못된 것 같습니다. 어떻게 써야 합니까? |
50답: 귀하뿐 아니고 많은 분들이 고심하는 부분입니다. |
古禮에는 부인들도 남편의 직급에 따라 봉작(封爵 벼슬을 줌)했으니까 당연이 지방 |
(紙榜)에 봉작된 명칭을 썼지만 현대는 일체 부인의 봉작 제도가 없으니까 어떻게 |
쓸지 난감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남편은 서기관으로서 중앙부처의 과장인데 부인은 |
유인(孺人)으로 쓴다는 것은 더욱 곤란한 일입니다. |
원래 유인(孺人)은 최말직(最末職)인 정9품과 종9품의 벼슬아치의 부인에게 봉작 |
하는 직첩이지만 선비로서 벼슬하지 못한 학생(學生)의 부인들에게도 孺人을 |
쓰도록 양해 묵인된 것으로 일반적으로 남편이 벼슬을 못했을때 그 부인에게 |
쓰는 명칭입니다. |
서기관이면 대게 5품관 정랑급(正郞級)으로서 그 부인은 공인(恭人)의 직첩을 받을 수 |
있으나 직첩을 받지 못했으니까 恭人으로 쓸수도 없습니다. |
남편의 벼슬이름을 서기관이라고 쓰는데 부인을 벼슬이 없는이의 아내같이 孺人이면 |
실례고 직첩을 받지 못했으니 恭人으로 쓸수도 없으니 夫人이라 쓰는것이 무난할 |
것입니다. 顯妣 夫人○○氏 神位가 좋다고 생각됩니다. |
* 큰아들이 죽으면 아버지가 主喪(주상) 이어야 |
51문: 아버지가 살아있는데 아들이 먼저 죽었습니다. 부고 축문등에 주상(主喪)을 |
죽은 사람의 큰아들로 합니까? 아니면 아버지로 합니까? |
51답: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죽은 아들이 큰아들이면 죽은 사람에게 아들이 |
있더라도 주상(主喪)은 아버지가 됩니다. 따라서 부고도 ○○의 장자 ○○가 사망 |
했다고 쓰고 지방이나 축문에도 망자수재(亡子秀才)○○라고 씁니다. |
죽은 아들이 큰아들이 아니면 죽은 사람에게 그아들이 있으면 그아들이 주상(主喪) |
이되고 미혼이면 아버지가 主喪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큰아들과 작은 아들의 |
차이를 두는 까닭은 큰아들은 아버지의 가통을 이어갈 아들이기 때문이고 작은 |
아들은 분가하는 아들이기 때문에 그 아들이 주상이 되는 것입니다. |
* 생신(生辰)에 祢祭(니제) 지내면…. |
52문: 아버지의 제사에 어머니를 함께 지내고 어머니의 제사에 아버지를 함께 지내기 |
때문에 1년 두 번 제사를 지내게 되는데 저는 부모님의 제삿날이 한달이라 1년에 |
한번밖에 못지 냅니다. |
죄송한 마음 금할 길이 없는데 1년에 두번지내는 방법은 없을까요? |
52답: 古禮에 의하면 음력으로 9월15일에 祢祭라고 해서 부모의 제사를 지내는데 |
그 유래는 어떤이가 아버지의 생신이 9월15일인데 그날을 그냥 보내기가 죄송 |
스러워 제사를 지낸일이 유래가 되었습니다. |
미루어 굳이 1년에 두번을 제사 지내고 싶으면 아버지의 생신날을 택해서 그날도 |
제사를 지내면 죄송한 마음을 덜수 있지 않겠습니까? 9월15일에 니제(祢祭)을 |
지내는 방법도 좋을 것 입니다. |
* 양자간 아들은 생가의 祭主(제주) 될 수없어 |
53문: 저의 큰형님은 백부에게로 양자 나갔습니다. 당연히 조부모와 백부모의 제사는 |
큰형님이 지냅니다만 저의 부모님 제사도 큰형님이 장자라면 서 당신이 지냅니다. |
예법대로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
53답: 생가의 큰아들이라 하더라도 양자 나갔으면 생가의 큰아들 역할을 못합니다. |
귀하의 질문의 경우 백부에게로 출계해서 조부모와 백부모의 제사를 받드는 것은 |
조부모의 장손(長孫)이고 백부모의 장자(長子)가 된것입니다. |
남의 뒤를 이었으면 생가의 뒤를 이을수 없음은 너무도 당연합니다. 따라서 생가의 |
제사는 둘째 아들이 장자(長子)가 되어 부모의 제사를 받들어야 합니다. |
* 어리더라도 長子孫(장자손)의 이름으로 지내야 |
54문: 저의 큰형님의 큰아들이 저의 부모님과 큰형님 내외분의 제사를 모시다가 |
죽었습니다. 죽은 조카의 아들이 어리기 때문에 저의 큰형님의 둘째 아들인 작은 |
조카가 저의 부모님과 자기의 부모의 제사를 지내고 있습니다. |
장자손(長子孫)이 어려서 작은 자손이 지낼 바에야 저의 부모님 제사는 작은 아들인 |
제가 지내고 싶고 작은 조카의 부담도 덜어줄겸 모셔오고 싶습니다. 어떻게 |
해야 되겠습니까? |
54답: 예법(禮法)에 어긋나는 효도는 오히려 불효가 된다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
제사는 장자손이 지내는 법이고 그것은 가통(家統)을 중시해서 입니다. 죽은 조카 |
의 아들이 어리더라도 당연히 그 이름으로 조상의 제사를 모셔야 합니다. |
귀하의 작은 조카가 자기의 어린조카인 장손의 이름으로 지낸다면 장성할 때까지 |
대행하는 것이니까 나쁠것이 없고 바람직합니다. |
만일 작은 조카가 자기의 이름으로 지낸다면 귀하는 그것을 장자손의 이름으로 |
지내도록 바로잡으시고 작은 조카의 부담을 덜어주고 싶으면 제사비용을 보태는 |
것도 현명합니다. 가통을 무시하고 제사가 형편을 쫒아 왔다 갔다하면 마침내 |
제사지낼 사람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
* 어머님의 시신은 아버지의 좌측에 모셔야 |
55문: 3년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현제 어머니께서 노환이 위중 하십니다. |
어머니께서 돌아가시면 아버지 산소에 합장하려 하는데 어느쪽에 모셔야 합니까? |
55답: 현대인들은 매장시의 남녀위치가 혼동되어 장래 문제가 애기될 것입니다. |
산 사람은 남자가 동쪽이고 여자가 서쪽입니다만 죽은 사람은 남자가 서쪽이고 |
여자가 동쪽입니다. 동(東)은 상좌(上座)의 좌(左)측이고 서(西)는 우(右)측을 |
말하므로 여자는 남자의 좌측에 위치해 야 합니다. 묘지의 비석에 보면 여자를 |
표기한 밑에 부좌(祔左) 라고 새기고 있는데 그것은 남자의 좌(左)측에 |
붙였다는 뜻입니다. |
* 부모상의 인사는 얼마나 망극하십니까? |
56문: 사회생활을 하려니까 상가에 인사갈 일이 많습니다. 직장의 상사나 동료에게 |
물어봐도 인사법을 잘모르고 상가에서 보아도 우물쭈물하고 맙니다. 어떻게 |
인사해야 맞습니까? |
56답: 문상을 간 사람이 부모상을 당한 상주에게 인사하는 말은 얼마나 망극 |
하십니까? 상사말씀 무었이라 여쭈리까? 라고 하고 상주는 망극할 따름입니다라고 |
대답합니다. 만일 조부모나 백숙부모 형제상을 당한 사람에게 인사하려면 |
복제말씀 무었이라 여쭈리까? 얼마나 슬프십니까? 라고 인사하고 상을 당한 사람은 |
슬플 따름입니다. 라고 대답하면 됩니다. |
* 처남과 매부사이는 친구간이다. |
57문: 제가 장가를 갔는데 손위 처남이 저보다 나이가 아래입니다. 아내의 |
오빠이니까 형님이라고 불러야 할텐데 저보다 나이가 적은 사람을 어떻게 |
형님이라 부를지 곤란합니다. 그래서 처남과 제가 만나면 서먹해서 대화가 |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
57답: 여자는 혼인을 하면 시댁의 가족이 됩니다만 남자는 장가를 가도 처가의 |
가족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여자는 남편의 형의 아내인 손위동서가 나이가 적어도 |
남편들의 위계를 따라 형님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
그러나 남자는 처가쪽 사람들과 아내와의 서열에 따라 대접하지 않고 자기 자신과의 |
연령차이로 상대합니다. 다시 말해서 아내의 직계존속인 장인 장모는 나이에 관계 |
없이 부모같이 모시지만 기타의 아내 친척과는 사회적 사귐입니다. |
따라서 손위 처남이나 처삼촌 손위의 동서라도 나이가 친구같이 지낼 정도이면 |
친구로 사귑니다. 귀하의 경우 형님이라고 부를 생각은 아예 말고 나이가 10년 이내의 |
차이라면 그 처남과 벗을 하셔야 합니다. |
* 茶(차)는 대중화된 상용음료가 아니어서 |
58문: 명절에 지내는 차례(茶禮)는 글자로 보아 다(茶)을 올려야 할텐데 우리 |
나라의 제례에 다(茶)을 쓰지않고 술을쓰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
58답: 차례 라는 말은 중국에서 유래되었고 중국에서는 간략한 명절의 제례를 |
다례(茶禮)라고 했습니다. |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茶가 대중화된 상용음료가 아니었기 때문에 茶를쓰는 대신 |
술(淸酒)을 쓰면서도 제례의 명칭은 차례(茶禮)라고 그대로 쓰고 있습니다. |
* 술이 있기 전에는 정화수를 썼었다. |
59문: 제사때 주가(작은상)위의 술병옆에 정화수를 담은 현주병을 놓습니다. |
제상에 올리지도 않는 정화수를 왜 준비합니까? |
59답: 우리나라에 술이 들어오기 전에는 조상을 받드는 제사에 우물에서 첫새벽에 |
뜬 정화수를 지금의 술대신 썼었습니다. |
비록 술이 들어와서 술을 쓰지만 고예(古禮)에 사용했던 방법을 가려서 정화수를 |
준비하는 것입니다. |
* 축문의 연호에 단군기원 쓰면 좋다. |
60문: 전통제례의 축문식을 보면 년호(年號)을 쓰게 되었는데 근래에 보면 연호 |
를 쓰지않고 간지(干支)로 그해의 세차(歲次)만 씁니다. 전통의례를 행하면서 왜 |
연호를 쓰지 않습니까? |
60답: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통치를 받기 전에는 우리나라의 연호를 썼습니다. |
그러다가 국권을 빼앗기니까 우리나라에는 연호가 없어굳이 연호를 쓸려면 日帝의 |
연호를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차마 적의 연호를 쓸 수없어 연호를 쓰지않게 |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는 광복했고 우리의 연호 단군기원이 있으니까 |
유(維) 단군기원(檀君紀元) ○○○○年이라고 써야 합니다. |
참고로 말씀 드리면 성균관의 석전에서도 檀君紀元을 쓰고 있습니다. |
* 기제사 날짜를 양력으로 해도 무방 |
61문: 전통적으로 기제사는 음력으로 돌아가신 날에 지내고 있습니다. |
그런데 공식적으로 양력을 쓰고 있고 또 양력이 더 정확하니까 양력으로 날짜를 |
찾아서 지내는 것이 더 합리적이 아닙니까? |
61답: 전통적으로 음력으로 해왔고 현제도 음력이 없어진게 아니고 존속하니까 |
음력으로 지내고 있는 것입니다. |
귀하의 의견처럼 음력은 3년에 1개월이 틀리고 달의 大小도 일정하지 않아 문제점이 |
많은데 양력은 4년에 1일만이 틀리며 그것도 2월에 극한해서 못 박았고 달의 大小도 |
일정하기 때문에 양력이 더 정확한게 사실입니다. |
기제사란 돌아가신날에 지내는 제사이기 때문에 음력이든 양력이든 그달의 그 날짜에 |
지내면 되겠지만 보다 계절적으로도 걸맞는 양력으로 지내더라도 망발은 아닙니다. |
* 양력으로 할 때는 간지(干支) 안써도 돼 |
62문: 축문에 제사달의 초하루와 제삿날의 일진을 쓰는데 근래에는 아무런 |
의미가 없는것 같습니다. 특히 양력으로 제삿날을 차릴때는 더욱 그렇게 생 |
각되는데 어떻습니까? |
62답: 옛날의 문헌이나 역사 기록들을 보면 날짜를 숫자로 않쓰고 간지(干支)로 |
기록한 경우가 많습니다.그 습관과 관례에 따라 간지(干支)을 쓴 것으로 이해됩니 |
다.그리고 택일해서 지내는 제례는 대게 정(丁) 일이나 해(楷)일을 택일하도록 했고 |
상중(喪中)의 우제(虞祭)나 졸곡(卒哭) 등도 일진의 강유(剛柔)을 따저서 했기 때문에 |
일진을 쓰는 것이 합리적 이었습니다. |
그러나 엄격히 말해서 기제사의 일진을 쓰더라도 실제 돌아기신 날의 일진과 |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문제점으로 남는것도 사실입니다(예 :실제 돌아가 |
신 날의 일진은 갑자(甲子)였는데 금년의 제삿날의 일진은 임술(壬戌)일 수도 있다) |
그래서 음력으로 제사를 지낼때는 전통방식에 의해 간지(干支)을 쓰더라도 양력 |
으로 제사를 지낼때는 간지(干支)을 안써도 무방하다고 생각 됩니다. |
* 절의 횟수에 반 번은 없다. |
63문: 어떤 사람은 제사때나 상가의 빈소에서 절을할때 두번 반이라고 합니다. |
반 번의 절을 하려면 어떻게 합니까? |
63답: 그런 말을 더러 듣게 되는데 절의 종류에 반절(半拜)은 있어도 횟수에 반번은 |
있을 수 없습니다. 절의 종류에 반절이란 아랫사람의 절에 대해 어른이 답배(答拜)할 |
경우 정중하게 하지 않고 간략하게 하는 경우입니다. 그러나 반번은 없습니다. |
생각컨데 남자의 배례에 읍(揖)을 하는 것을 그렇게 표현하거나 아니면 부인들이 |
절을 한 다음에 공경하고 사양하는 뜻으로 약간 허리를 굽히는 것을 그렇게 말하는지 |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읍이나 허리를 굽히는 것은 禮의 표시이지 절(拜)은 아닙니다. |
* 예절은 바로 건전한 상식입니다. |
64문: 저는 돌아가신 어머니의 산소를 조상의 산소 옆으로 옮기려 합니다. |
상식적으로 생각할때 어머니께서는 어른께서 살아게시는 근처로 이사를 했다면 반드 |
시 어른께 인사를 여쭐 것입니다. 산소를 옮길때도 그냥 옮길 수는 없지 않습니까? |
그리고 어머니는 지금 산소를 팔 때와 새로 산소를 뫼신뒤에 아무런 의식도 행하지 |
않는다면 도리에 어긋날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해야 됩니까? |
64답: 참으로 좋은 생각이십니다. 귀하의 건전한 상식과 도리대로 하는것이 바로 예절 |
입니다. 우리의 전통예절은 건전한 상식이며 당연히 해야 할 일들을 어떻게 하는 |
것인가를 오랜 생활관습에 의해 정립한 것들입니다. |
조상의 산소옆에다른 산소를 쓸려면 간략하게 제수를 차리고 동강조선묘고사 |
(同岡祖先墓告辭)을 읽어 고하고 전의 묘지를 팔때는 계묘고사(啓墓告辭)를 하고 |
새로 모신 곳에서도 간략한 제수를 차려 일우축문(一虞祝文)을 지어 읽어 산소를 |
쓰는 일이 끝났음을 고하는 것입니다. 귀하의 건전한 상식과 전통예절은 일치 합니다. |
* 49일재(齋)는 불교의식 입니다. |
65문: 저의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며칠후면 49일이 됩니다. 주위에서 49일 제(祭)를 |
지내야 한다고 하는데 전통예절에도 49일제가 있습니까? |
65답: 일반적으로 말하는 49일재란 祭 가 아니고 재(齋)입니다. 즉 죽은지 49일만에 |
지내는 제사란 말이 아니고 불교에서 사람이 죽어 49일이 되면 일곱번의 생사를 거쳐 |
각 과보를 감지하고 三果 六道에 가서 태어난다고 해서 7일씩 7번이 되는 49일에 |
불교의식을 행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전통적인 의례절차인 제례로서는 49일제가 |
없고 불교의 종교의식으로 49일 재가 있습니다. 혼동이 없으시기 바랍니다. |
그러므로(제가 아니고 재이므로) 49일재는 가정에서 치르는 것이 아니고 |
사찰에서 불교의식으로 치릅니다. |
* 집안의 큰 일은 조상에게 고한다. |
66문: 저의 아버지께서 생전에 손자보시기를 무척 기다리셨는데 돌아가신 |
후에야 제가 아들을 낳았습니다. |
돌아가신 아버지께 어떤 방법으로 이 사실을 알려드려야 합니까? |
66답: 어찌 아들을 낳은 일 뿐이겠습니까? 집안에서 있었던 큰 일은 조상에게 |
고하는 절차가 유사즉고(有事則告)라고 정해저 있습니다. |
원래는 사당을 뫼신 큰 집에서 고하는 축문(고사(告辭))을 지어 고했는데 현대는 |
사당이 안계시지만 조상의 위패(신위(神位))을 임시로 뫼시고 간략한 제수를 차린 |
다음 사실대로 고할 수있습니다. |
귀하의 경우도 기제사를 지낼때 같이 신위를 모시고 간략한 제수를 차린 다음 아이를 |
데리고 누구의 아내 ○○성씨가 ○월○일 아들을 낳았기에 고합니다라고 하면된다. |
*祢祭(니제)의 방법에 따라야 할 것이다. |
67문: 돌아가신 아버지의 회갑이 가까웠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아버지의 옷을 |
지어 태우고 잔치를 해야 한다고 하십니다.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
67답: 고예(古禮)에 의하면 돌아가신 父母의 생신에 관한 의식이 두가지가 있습니다. |
하나는 이제(祢祭) 인데 일반적으로 음력 9월15일에 사당에서 부모(父母)의 위패 |
만 모시고 지내는 제사로써 원래의 유래는 처음 (이제)를 지낸이의 아버지의 |
생일이 9월 15일이었다는데에 여유합니다. |
또 하나는 사당에 생신제고사(生辰祭告辭)를 하는 것인데 사당에 뫼신 모든 신위의 |
생신제로써 이퇴계(李退溪)선생은 禮가 아니라고 했고 김사계(金沙溪)선생과 |
송우암(宋尤菴) 선생은 인정의 발로라고 했습니다. |
효성이 지극한 자손이 조상의 생신에 잊지않고 의식을 갖는 일이 나쁘다고 할 수는 |
없습니다. 예를 들어 저명한분의 탄신 百주년 행사를 사회적으로 치르기도 하는데 |
돌아가신 자기 아버지의 회갑을 그냥 지나치기에는 인정상 차마 어려운 일입니다. |
마땅히 (이제) 지내듯이 위패(신위)를 뫼시고 가까운 친척이 모여 제사를 지내며 |
추모한 다음 함께 음복하면 자연이 추모하는 경건한 잔치로 될것입니다. |
그러나 의복을 지어 태우는 일은 俗設일 수는 있으나 전통의례에는 없는 일입니다. |
*祝文(축문)을 한글로 지어도 나쁘지 않다. |
68문: 직장에서 사무실을 이전하는데 고사를 지내기로 했습니다. 의당 축문을 |
읽어야 하는데 한문서식을 알지도 못할 뿐 아니라 무슨 뜻인지도 모릅니다. |
마침 글 솜씨가 있는 동료직원이있어 우리말로 축문을 지을까 하는데 괜찮겠습니까? |
68답: 나쁜 생각이 아닙니다. 현행되는 각종 축문이니 고사가 한문식으로 된 것은 |
그런 서식이 정립된 시기가 한문전용시대 였고 그렇게 써서 읽어도 알아들었기 |
때문에 자연스럽게 한문서식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한글세대의 제례행사에 |
한글로 된 우리말 축문을 지어 읽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라고 할 것입니다. |
다만 제사나 고사의 취지가 분명히 담기고 조상이나 만물을 주재하는 천지 |
신명에게 고경을 다하는 내용이면 되겠습니다. |
* 共通禮節(공통예절)은 논리적인 설득력이 있어야 |
69문: 문화민족 일수록 전통문화가 많다고 들었습니다. 특히 예절에 있어서는 더욱 |
그렇다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근래의 시중에 나오는 예절책을 보면예의 바르다고 |
정평이 있던 우리집의 방법과 너무도 다릅니다. 아무리 가가례(家家禮) 라지만 |
이럴 수가 있습니까? |
69답: 우리나라는 가가례(家家禮)라고 해서 집집마다 또는 고장마다 예절에 차이가 |
있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그러나 현대는 그 가가례(家家禮)를 방치해 |
둘 수만은 없습니다. 높은 산이나 깊은 강에 막혀서 왕래가 수월치 못해 사투리가 |
생길 정도로 생활 양식이 서로 다르던 때와는 다릅니다. |
당연히 어느 쪽이든 통일된 의식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이런때에 우리 집에서는 |
이렇게 한다고 고집하면 통일이 안됩니다. |
논리적인 근거에 의해서 모두가 따라올 수있는 방법이어야 하겠습니다. |
* 東棗西栗(동조서율)과 棗栗枾梨(조율시이) 어떤 진설법이 맞는가? |
70문: 근래 방송이나 신문잡지등의 보도에 보면 제상을 진설하는데 있어서 西쪽에 |
밤 東쪽에 대추를놓는 방법과 대추 밤 감 배의 순서로놓는 방법이 섞여서 소개 됩니다. |
전통의식을 배워서 하고 싶어도 어떤 방법이 옳은지 몰라 당황하게 됩니다. |
70답: 제례에 있어서 가가례(家家禮)라는 양상이 두드러진 부분이기도 합니다. |
대추 밤 감 배 죽 조율시이(棗栗枾梨)의 순서를 주장하는 이유는 대추는 씨가 하나 |
니까 임금이고 밤은 한송이에 세톨이 들었으니까 3정승이고 감은 씨가 여섯 개니까 |
6판서고 배는 씨가 여덟 개니까 8도 관찰사에 해당해 벼슬에 높이에 맞춰 임금 정승 |
판서 관찰사의 순을 놓는다고 합니다. 이 주장이 옳다고 가정하면 개인의 제사에 |
임금을 상징하는 대추를 쓴다는 것이 불경스러우며 관제(官制)가 바뀌면 그 비유가 |
맞지않을 수도 있어 불합리 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
반면 밤을 서(西)쪽 대추를 동(東)쪽에 놓고 붉은 것을 東쪽 흰 것을 西쪽에 놓는다는 |
동조서율(東棗西栗)과 홍동백서(紅東白西)의 주장은 한문적인 논리에 의한 것입니다. |
밤은 서(西)쪽의 나무(율(栗))라고 쓰며 두렵다(율(慄))는 뜻이 있고 신주(神主)도 |
밤나무로 깍으므로 음(陰)방 즉 西쪽에 해당하고 대추의 붉은색은 하늘 즉 양(陽)을 |
뜻하며 혼례에 폐백을 대추로 하는 의미가 아침 일찍 일어나 부지런 하다는 뜻이므 |
로 동서남북(東西南北)중 양(陽)방은 동쪽이고 또 동쪽에서 해가 뜨므로 부지런하다는 |
의미와 합치해 대추는 동쪽에 해당되며 제사 음식은 현란한 색깔을 피하므로 |
붉은 대추가 놓인 동(東)쪽에서부터 붉은색의 과일을 놓고 흰밤이 놓인 서(西)쪽에 |
서부터 흰색의 과일을 놓는다는 홍동백서(紅東白西)가 되는 것입니다. |
두 가지의 주장을 비교할때 동조서율(東棗西栗) 홍동백서(紅東白西)가 조율시이 |
(棗栗枾梨)보다 더논리적임을 알수 있습니다. |
* 東頭西尾(동두서미)와 西頭東尾(서두동미)등과 배 |
71문: 제수 진설법을 보면 머리와 꼬리가 있는 생선등을 어떻게 놓는가에 문제가 |
있는것 같습니다. 누구는 동두서미(洞頭西尾)라 하고 어떤이는 서두동미(西頭東尾) |
라고 합니다. 또 생선을 놓을때 등과 배를 어느쪽이 신위쪽을 향하게 놓는가도 |
문제인것 같습니다. 어떻게 해야 맞는 것입니까? |
71답: 예서(禮書)에는 고기나 생선을 놓는 위치는 정해졌지만 머리와 꼬리 등과 |
배를 어느쪽을 향하게 한다고 정해진 곳을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원칙이 없이 놓을 수도 없는 문제라 여러 가지 속설이 있어 |
다르게 행해지고 있습니다. |
비록 예서(禮書)에는 정해진 데가 없지만 전통예절의 총본산인 성균관의 석전대제 |
에서는 동두서미(東頭西尾) 즉 머리가 東쪽이고 꼬리가 西쪽이 되게 진설합니다. |
그 이유는 신위가 북(北)쪽에 계시니까 동서(東西)로 길게 놓아야 할 텐데 동(東)이 |
양방(陽方)으로 상(上)이기 때문에 머리를 동(東)쪽으로 가게 놓는 관습이된 것으로 |
믿어집니다. 등과 배는 배가 신위쪽으로 가게 놓는 것이 일반화 되어있습니다. |
그 이유는 등은 밖이고 배는 앞이며 앞과 안쪽을 신위쪽으로 하는 것이 타당해서 |
입니다. 또 등을 보이면 나가는 것이고 배를 보이면 들어오는 것이므로 배를 신 |
위 쪽으로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 합니다. |
* 정성스러우면 격식도 잘 안다. |
72문: 우리의 전통예절은 격식이 중요시 되는것 같습니다. 특히 제례는 조상을 |
추모하는 정성이 있으면 된다고 생각되는데 왜 격식이 그렇게 중요시 됩니까? |
72답: 인간이 표현하는 표정과 언어 행동이 모두 격식에 의해서 이루어지면 상대가 |
행위를 알아차리게 됩니다. 격식이란 그 사회에서 공통된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
우리가 아침에 잠에서 깨어 잠자리를 걷고 소제하고 세수하고 면도하고 밥먹고 옷을 |
챙겨입고 신을 신고 대문을 나설때 까지의 절차를 순서대로 기록한다면 제례(祭禮) |
절차보다 더복잡하겠지만 복잡하다거나 까다롭다고 하지않고 일상적으로 수월하게 |
행합니다. 그 이유는 격식이 있는 절차를 알고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의례절차를 |
복잡하다거나 까다롭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 절차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
그래서 정성스러운 사람은 격식을 알아서 그대로 행합니다. |
우리가 먹는 상차림도 밥 국 수저 간장 김치 찌개등 놓는 자리가 격식이 있습니다. |
우리가 양식을 먹을때도 스푼 나이프 포크를 쥐고 쓰는법등 격식을 따라서 |
행합니다. 그런데 왜 조상을 위하는 제상의 차림은 아무렇게나 해야 된다고 생각하며 |
모든 의식절차를 안지켜도 된다고 생각합니까? |
그것은 격식을 모르는 사람의 변명이고 그런 변명을 하는 사람은 정성이 모자란다고 |
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
*신혼여행에서 돌아올때 친정들려서 시댁으로 가는것이 합리적이다. |
73문: 신혼여행에서 돌아올때 신랑과 신부가 친정과 시댁중 어디로 먼저 |
가야 할까요? 이문제로 옥신 각신하는 예가 많습니다. |
73답: 친정으로 먼저가면 이제 우리집 사람인데 왜 친정부터 가느냐고 시댁에서 |
괘씸하다고 말하고 시댁으로 먼저가면 평생 살 것인데 친정줌 다녀가면 안되느냐고 |
친정에서 서운해 합니다. |
고예(古禮)대로 친영례(親迎禮)을 하면 신랑집에서 례(禮)을 올리니까 문제가 없고 |
전통관습을 되로 하면 신부집에서 례(禮)을 올리고 첫날밤을 차린 뒤에 시댁으로 오는 |
우례(于禮)을 하니까 그 절차가 확실한데 신식혼례에는 신랑댁이나 신부댁이아닌 |
어중간한 예식장에서 예식을하고 첫날밤도 치르기전에 신혼여행을 떠나니까 |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
첫째 분명히 말해서 혼인예식이란 궁극적으로 첫날밤 즉 합궁(合宮)이라고 해서 |
남녀가 몸을 합치기 위한 절차입니다. 따라서 첫날밤을 차리는 격인 신혼여행은 |
우리 전통관습에 의할때 신부댁에서의 절차적 행사라 할 것입니다. |
둘째는 남녀가 합치는 첫날밤은 여자에게 있어서 중대한 변혁적 행사이므로 그 후에 |
같은 여성이며 규방(閨房)의 례(禮)을 가르친 어머니와의 대화가 절실할 것이니 |
그 기회가 있어야 합니다. |
셋째는 아무리 혼수를 미리 시댁으로 보낸다 하더라도 비밀스럽고 자질구례한 |
신변잡품들을 신부가 직접가지고 가야 할 것이기 때문에 친정에 있을것입니다. |
넷째 딸을 마지막 보내고 생소한 시댁에 보내면서 아무리 예물을 보냈다고 하더라도 |
어떻게 그냥 빈손으로 보낼 수 있겠습니까? |
이상과 같은 연유로 해서 신혼여행에서 돌아오는 신랑과 신부는 신부댁으로 가서 |
한밤을 지낸 뒤에 시댁으로 들어가는 것이 합리적 입니다. |
* 回甲(회갑)때 남자는 두번 여자(女子)는 네번 절해야 |
74문: 남녀(男女)간에 어른에게 절할때 평소에는 한 번씩 하고 제사지낼때는 |
남자는 두번 여자는 네번 하는데 회갑(回甲)때는 몇번씩 해야 합니까? |
한번씩 하자니 너무 가벼운 것 같고 제사때와 같이 하자니 산 어른에게 제사의 절을 |
할 수없어서 그럽니다. |
74답: 고예(古禮)에 보면 절을 많이 할수록 극진한 공경이라고 생각했습니다. |
그러나 절의 기본횟수는 남자의 양(陽)이기 때문에 최소양수(最小陽數) |
인 1회이고 여자는 음(陰)이니까 최소음수(最小陰數)인 2회입니다. |
그것은 전통혼례에서 신랑은 2번 신부는 4번 절하지만 각기 기본 횟수인 신부가 2번 |
신랑이 한번의 절을 두차례 하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
제사의 절을 극진한 공경일뿐 아니라 상대가 음부(陰府 )로 가신 귀신이니까 남자가 |
음수(陰數)의 절을 하기위해 2번하고 그것이 기본횟수의 배이기 때문에 여자도 |
기본횟수의 배인 4번을 하는 것입니다. |
회갑(回甲)도 평소와 다른 의식(儀式)이며 극진한 공경을 나타내는 것이므로 남자는 |
2번 여자는 4번해야 할 것입니다. 폐백때의 절도 신부는 4번씩 하게 됩니다. |
그러나 절을 받으실 어른이 절의 횟수를 줄이라고 명하시면 말씀에 따라하는 것이 |
례(禮)에 맞는 것입니다. |
* 男左女右(남좌여우)의 좌우(左右)란 上座(상좌)의 左右이다. |
75문: 남좌녀우(男左女右)란 말을 많이 쓰고 실제 좌석배치에도 원칙이 된다고 생각 |
합니다. 그런데 좌우(左右)란 좌우(左右)로 위치를 잡아야 할 자신들의 左右입니까? |
아니면 상대방이 볼 때의 좌우(左右)입니까? 예를 들어 신랑 신부가 설때나 회갑에서 |
부모가 앉을 때 자기의 左右인가 아니면 손님이 볼때의 左右인가 말입니다. |
75답: 매우 중요한 질문입니다. 실제로 누구의 左右인가 혼동이 되고 있습니다. |
당사자의 左가 보이는이의 右가 되기 때문이지요. |
그러나 左右란 당사자의 左右도 아니고 보는이의 左右도 아닙니다. 예절(禮節)에 |
있어서 누구 어디의 기준을 정해서 좌우(左右)를 말할때는 당연히 그 특정 기준의 |
左右이기 때문에 혼동이 없지만 특정기준이 없이 左右라고 하면 문제가 생기기 |
때문에 특정기준이 없을때의 일반적 기준이 정해져 있습니다. |
그 일반적 기준은 상좌(上座)입니다. 左右에서의 左는 東이고 右는 西를 의미하며 |
상좌(上座)는 북(北)이기 때문에 당연히 논리입니다. 상좌(上座)가 북(北)이라는 것은 |
관혼상제(冠婚喪祭)의 사례(四禮)에서 공통괸 것이고 그 상좌(上座)의 좌(左)과 동(東) |
이며 남자(男子)이고 상좌(上座)의 右가 西이며 여자(女子)입니다. |
회갑(回甲)잔치에서는 헌수를 받는 당사자가 앉은 자리가 상좌(上座)이기 때문에 |
부모(父母)가 상좌(上座)에 앉으면 좌측인 동(東)에 부(父)가 앉고 우(右)측인 |
西에 모(母)가 앉게 됩니다.혼인예식에서는 병풍을 친곳 즉 주례석이 상좌(上座)이기 |
때문에 주례의 좌측인 동(東)에 신랑이 주례의 우측인 西에 신부가 서야 합니다. |
전통혼례에서 신랑의 자리는 東쪽이고 신부의 자리는 西쪽이라고 명시되어 있고 |
이때의 동서(東西)는 상좌(上座)의 좌측이 東이고 右측이 西가 되는 것입니다. |
제례에서 신위(神位)를 뫼신곳이 상좌(上座)이기 때문에 신위의 左가 東이고 右가 |
西입니다. 따라서 남자자손은 신위(神位)의 左측인 東쪽에서 北향해서고 여자자손은 |
신위의 右측인 西쪽에서 北향해 서는 것입니다. |
* 한복에 구두는 나쁘지 않아 |
76문: 요사이 명절에 한복을 입는 사람이 많아서 흐뭇합니다. 그런데 한복을 입고 |
구두를 신은 것을 보면 양복입고 갓을 쓴것 같아 개운치 못합니다. |
76답: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한복에는 미투리나 짚신을 신어야 걸맞는다고 생각 |
하기가 쉽군요. 그러나 우리가 양복을 입기전 그러니까 한복이 유일한 우리의 의상일 |
때도 서민들은 미투리나 짚신 아니면 나막신을 신었지만 사대부나 여유있는 상류층 |
에서는 가죽신도 신었고 가죽신에 징을 박은 집신도 신었습니다. |
가죽신과 지금의 구두 모양은 약간 다르지만 가죽신이라는 데는다를 것이 없습니다. |
* 목도리는 끌려야 禮(예) 스러워 |
77문: 금년 설날에 TV를 보았더니 각 정당이나 단체의 신년하례식이 방송되는데 |
한복두루마기에 목도리를 두룬체 의식에 참석한 저명인사들이 많았습니다. |
목도리도 우리 한복의 정장에 속하는지 궁금합니다. |
77답: 목도리는 방한하는 장신구이지 통상복장의 일부는 아닙니다. 비단 한복 뿐 |
아니라 양복을 입었을때도 실내에 들어가면 목도리를 풀러야 깍듯한 예절이라고 |
하겠습니다. |
신년하례식 같은 의식행사에 한복에 목도리를 두른체 참석한다면 방한장비를 한체 |
의식에 참석한 것이 됩니다. 당연히 실내나 의식행사에서는 목도리를 풀러야 합니다. |
* 절 받으세요는 옳지 않아 |
78문: 곧 설이 됩니다. 아랫사람이 어른에게 절을 하기 위해 절 받으세요. |
앉으세요. 라고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게 옳은 것인지 궁금합니다. |
78답: 좋은 질문입니다. 절은 공경의 뜻을 나타내는 동작입니다. 자기가 공경하는 |
대상에게 공경의 동작을 하면서 어른보고 절 받으라 앉아라 라고 수고를 시켜서는 |
아니 됩니다. 공경해야 할 어른을 보는 즉시 공경의 예를 올리는 것입니다. 어른이 |
앉으면 더욱 좋겠지만 서 계시면 어떻고 누워 계시면 어떻습니까? 절을 받기 위해 |
수고를 시키지 말고 절을 올리는 것이 옳습니다. |
* 성년의 절에는 답배해야 |
79문: 저는 아직 20대의 신입사원입니다. 지난 신정에 중학교때 각별히 사랑해 |
주시던 선생님과 직장에 아버지 같은 상사에게 세배를 갔었습니다. |
선생님과 상사가 무척 반기며 고마워 하셔서 보람을 느꼇습니다. 그런데 두분이 |
모두 저의 절을 그냥 앉아서 받으셨습니다. 그래도 되는 것인지요? |
79답: 절을 하는 예절도 중요하지만 절을받는 예절도 깍듯해야 합니다. |
아무리 어릴때 가르친 제자라도 성년이 되어서 하는 절에는 반드시 반절로 답배를 |
해야 합니다. 직장의 상급자도 하급자가 미성년이 아닌 성년이라면 그 절을 답배해야 |
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관습에 의하면 애 너 해라 하며 절을 그냥 받던 |
아랫사람이라도 관례(성년례)을 올리고 나면 자네 하게를 하며 반드시 그 절을 |
맞아 주었습니다. 근친관계가 아니면 성년의 절은 반드시 답배를 해야 합니다. |
* 설 차례는 집에서 지낸다. |
80문: 제가 알기에는 명절의 차례가 설 한식 추석 등 세 차례라고 생각 됩니다. |
한식과 추석의 차례는 산소에 가서 지내는 것이 일반화 되었는데 설의 차례도 |
산소에 가서 지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
80답: 차례(茶禮)란 조상에게 명절의 특식을 먼저 드리는 제례입니다. 그러니까 |
설에는 떡국 추석에는 송편 한식에는 화전을 올린다고 하겠습니다. |
전에 사당에 조상의 위패를 뫼시던때는 사당에서 차례를 지내고 산소엔 그냥 성묘만 |
하는것이 일반적인 방법이었고 더러는 어떻게 산소에 빈손으로 가겠느냐면서 간단한 |
간단한 제수를 준비해서 산소에서도 지냈습니다. 결국 자손의 정성이 지극하면 두번 |
차례를 지내는 결과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사당이 없어지고 산소만 있으니까 |
집에서 지내지 않고 산소에서만 지내는 것이 근래의 풍속입니다. |
한식은 언 땅이 녹을때이고 추석은 초목이 자라고 장마 끝이라 산소의 안위가 궁금해 |
반드시 성묘를 해야 합니다. 그래서 산소에서 차례를 지내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
그러나 설은 추운때라 성묘하기가 마땅치 못하며 설의 특식인 떡국은 국물이 있고 |
뜨겁게 끓여야 하기 때문에 산소에서는 마련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
그래서 설의 차례는 집에서 신주 지방 사진등 위패를 모시고 지냅니다. |
*세배돈은 절값이 아니다. |
81문: 저는 설날만 되면 세배돈 때문에 고민이 됩니다. |
세배돈을 몇 살까지주며 얼마나 줘야 합니까? |
81답: 세배돈은 절값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절하는 법을 가르치고 칭찬하기 위해서 |
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것 저것 분별하는 나이가 되면 세배돈을 주는것이 |
오히려 어린애 취급 같아서 불쾌한 것입니다. |
어린아이에게 형이나 누이에게도 절하는 것이라고 가르치고 나이를 먹더니 |
어른스럽고 절을 잘한다고 칭찬하면서 다과나 세배돈을 주는 것이니까 부담이 되는 |
액수라면 더욱 곤란합니다. |
아이들이 부담없이 즐겁게 받고 쓸 수있는 적은 돈이어야 합니다. |
*공식으로는 哀子(애자)쓸일 없어 |
82문: 상주가 자기를 말할때 고자(孤子) 애자(哀子) 고애자(孤哀子)등을 쓰는 데 그 |
세가지가 어떻게 다릅니까? |
82답: 어머니는 계시고 아버지만 돌아가셨을 때는 고자(孤子)이고 아버지는 |
살아계시고 어머니만 돌아가셨을때는 애자(哀子)이며 누가 먼저이든 두분이 다 돌 |
아가시면 고애자(孤哀子)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상주가 자기를 자칭(自稱)하는 것만 |
보아도 누구의 상(喪)을 당했는지 알수있습니다. |
그런데 애자(哀子)는 공식적으론 상가(喪家)를 대표해서 쓸일이 없습니다. 아버지는 |
계시고 어머니만 돌아가셨을때 애자(哀子)인데 그런 경우의 상가의 주상(主喪)은 |
아버지인 남편이기 때문입니다. |
그러므로 부고나 장사 지낸 후의 인사장 등에 애자(哀子)라면서 아들의 명의로하면 |
주상인 아버지를 제처놓은 일이며 심하게 능멸하는 것이 됩니다. |
주의해야 합니다. 다만 사신(私信)등에 애자(哀子)를 씁니다. |
*제상에 과실차림 원칙은 없어 |
83문: TV나 예절책에 소개되는 제상에 과실차림을 보면 대추 밤 감 배의 순서로 |
西쪽에서부터 놓고 기타 조과나 유과를 그 다음 東쪽에 놓기도 하고 東쪽에 대추 |
西쪽에 밤을 놓고 東쪽에서부터 붉은색 西쪽에서부터 흰색의 생과를 놓고 중앙에 |
조과나 유과를 놓기도 합니다. 또 과실의 접시수도 어떤이는 짝수이고 누구는 |
홀수입니다. 어떻게 해야 맞습니까? |
83답: 결론부터 말씀 드리면 과실을 놓는 위치는 어느 예서(禮書)에도 명시된 곳 |
이없고 접시 수도 율곡(栗谷)선생은 상당한 이유의 설명이 없이 홀수를 예시했고 |
퇴계(退溪) 사계(沙溪)선생은 과실은 음(陰)인 땅에서 나므로 陰수인 짝수로 한다는 |
이유가 제시된 짝수가 합리적이라 할 것입니다. |
놓는 위치도 대추 밤 감의 순서를 주장하는 사람은 대추는 씨가 하나니까 임금이고 |
밤은 한송이에 세 톨이 들었으니 삼정승이고 그러므로 벼슬의 높 낮이에 맞춘다는 |
속설이 있습니다. 그러면 일반 민가의 제례에 임글을 상징하는 대추를 어떻게 쓸수 |
있는지 논리적인 근거가 박약합니다. 그러나 대추는 東쪽 밤은 西쪽은 신부가 폐백에 |
밤과 대추를 가져가는 까닭이 대추는 아침 일찍 부지런 하라는 뜻이므로 아침 즉 |
東쪽에 해당되고 밤은 서쪽에 해당되어 합리적이다. |
그리고 제사음식은 현란한 색깔을 피함으로 붉은 대추를 동(東)쪽에서부터 붉은색 |
깍아서 흰밤을 놓는 서(西)쪽에서부터 흰색을 놓고 중앙에 조과나 유과를 놓되 역시 |
홍동백서(紅東白西)로 놓는 것이 합리적이라 할 것입니다. |
*좌석배치는 상하(上下)의 구분이 있어야 |
84문: 새로 취임한 대통령이 권위주위를 청산하기 위해 각종 모임에서 상하(上下) |
석의 좌석구분을 없애고 있어 각 단체나 사회적 모임에서도 좌석배치에 논란이 |
많습니다. 上下석의 구분은 있어야 합니까? 아니면 없애야 합니까? |
84답: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좌석배치에 있어서의 상하(上下)석의 구분은 |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이고 설사 없애려해도 없어지지 않습니다. |
비록 같은 모양의 의자를 둥글게 놓았다 하더라도 같이 앉아야 할 사람 중 최상급 |
자가 앉는 자리가 상석이 되는 것이고 그 상석을 기준으로 차례가 지어 집니다. |
그래서 의자가 같다든가 둥글게 좌석 마련을 하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
오히려 그렇게 좌석준비를 해 놓으면 하급자들이 어디에 앉아야 할지를 몰라 더욱 |
혼란하고 몸둘바를 모르게 됩니다. 또한 원탁이란 같은 계급의 사람들이 계급을 |
염두에 두지않고 모두 같다는 인식을 하는 배치인데 상급자와 하급자가 원탁에 |
앉았다고 같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 上下급이 이런 식으로 해서 구분이 |
없어진다면 우리사회는 혼란과 무례(無禮)의 늪에 빠지고 말 것입니다. |
*예식장의 신랑 신부는 죽은이의 위치에 섰다. |
85문: 예식장에서의 신랑 신부 위치가 잘못 되었다고 합니다. |
전통 혼례나 종교의식에 비추어 보아도 잘못 되었는데 왜 고치지 않는지요? |
85답: 누구나 알 수있는 상식인데도 혼인예식장에서는 신랑과 신부를 죽은이의 |
위패나 묘지의 시체매장 위치에 세우고 있습니다. 예식장에서 고치지 않는다면 |
혼인하는 신랑 신부 당사자가 제자리를 찾는 슬기를 발휘해야 합니다. |
조상의 제사를 지낼때 모시는 신주나 지방을 보면 西쪽에 남자 東쪽에 여자 조상을 |
씁니다. 묘지에 시체를 매장할때도 西쪽에 남자 東쪽에 여자의 시체를 묻습니다. |
그런데 현행 예식장의 상태가 신랑이 西쪽이고 신부가 東쪽이라 죽은이와 같은 |
위치입니다. 신랑과 신부들이 전통혼례나 모든 의식에서와 같이 산사람의 위치에 |
서려 면 주례의 좌측인 東에 신랑이 서고 주례의 右축인 西에 신부가 서야 합니다. |
*남편의 친구 선생님 氏(씨)가 좋아 |
86문: 혼인한지 얼마 되지 않습니다. 남편 친구들과 함께 집에 와서 대접하는 일이 |
가끔 있는데 남편의 친구들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
86답: 남편의 친구와 대화를 하거나 불러야 할 일이 많을 것 입니다. |
남편의 상급자나 또 사회적 직급이 있으면 그 직급을 불러도 됩니다. |
만일 직급명이 없으면 선생님이 가장 좋습니다. 젊은 사람들끼리 선생님이라고 |
말하기 어색하다고 생각되시면 氏도 좋습니다. 그러나 씨를 붙일때는 성만말해 |
김씨 박씨라고 하면 안되고 반드시 성명을 다 말해야 합니다. |
예를 들면 김갑동씨 이몽룡씨라고 말입니다. |
*직계존속에게 먼저 절한다. |
87문: 아버지와 큰아버지 그리고 큰아버지보다 손위인 고모부 세분이 함께 |
계신 자리에서 누구에게 먼저 절을 해야 합니까? |
차례 대로라면 고모부 큰아버지 아버지의 순서인데요. |
87답: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걱정할 일이 아닙니다. 여러 어른이함께 계실때 |
절하는 순서에 원칙이 있습니다. 그 순서는 직계존속의 최 상위자부터 남여(男 女) |
다음은 방계친척의 상위세대 순으로 하되 같은 세대에서는 촌수가 가까운 순서의 |
남여(男女) 그 다음이 친척이 아닌 사람은 연령순으로 절하면 됩니다. |
귀하가 질문하신 경우는 직계존속은 아버지뿐이므로 아버지에게 먼저 절하고 다음이 |
친족인 큰아버지 마지막으로 고모부에게 절해야 합니다. |
절의 순서에 대한 원칙은 고예(古禮)의 복제(服制)의 경중(輕重)에 따르는 것입니다. |
그러므로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경우도 원칙은 아버지에게 먼저 해야 되지만 아버지 |
직계존속보다 아버지에게 먼저 절하면 아버지가 불편해서 직계존속은 윗세대에서 |
부터 합니다. 만일 연령순으로 증조할머니 증조할아버지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친구 |
큰 아버지 고모부 아버지 당숙 아버지의 친구 형님 등 열분이 한자리에 계시고 전부 |
절을 하려면 1) 할아버지 2) 아버지 3) 증조할아버지 4) 증조할머니 5)큰아버지 6)당숙 |
7) 모부 8)형님 9)할아버지의 친구 10)아버지의 친구순으로 할 것입니다. |
*일가 란 동성동본 혈족의 총칭이지만 |
88문; 어떤 책을 보면 10촌 이내를 일가라 하고 다른 책에서는 8촌이 넘어야 일가라 |
한다고 했습니다. 일가의 범위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
88답: 일가란 엄격한 의미에서는 동성동본(同姓同本)의 혈족(血族)을 총칭하는 |
것이고 더러 혈족남자의 배우자를 일가의 범주에 넣기도 합니다. 그러나 귀하의 질문 |
취지는 엄격한 의미에서 일가가 아니라 일반적 대화중 호칭(呼稱)으로서의 일가에 |
대한것이라 이해 됩니다. 대화중에 저분은 저의 일가 입니다라고 말하는 일가를 10촌 |
이내라고 말할 수는 없으며 또 10촌이라는 한계기준이 모호합니다. 일반적으로 |
친족의 친소를 구분하는데는 8촌을 한계기준으로 하는 바 그 이유는 8촌 은 죽을때 |
복을 입는 유복지친(有服之親)의 한계이기 때문입니다. |
그렇다고 8촌이내를 일가라 말하는가 아니면 8촌이 넘어야 일가라고 하는것이 |
문제입니다. 8촌이내는 근친으로서 남에게 말할때의 호칭이 특정되어 있습니다. |
8촌형제면 삼종입니다. 6촌형제면 제종입니다. 라고 말하지 일가라고는 않습니다. |
따라서 일가라고 말하는 경우는 8촌이 넘어 특정의 호칭으로 말하기가 곤란한 혈족을 |
말하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
*죽은 아버지의 회갑잔치는? |
89문: 저의 아버지께서는 회갑이 되기 전에 돌아가셨는데 이번에 어머니의 회갑을 |
당해 조촐한 잔치를 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주변에서 말하기를 돌아가신 부(父)의 |
회갑잔치도 같이 해야 된다고 합니다.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
89답: 살아계신 어머니의 회갑잔치에 돌아가신 부(父)의 회갑잔치를 겸한다면 |
얼른 보면 극치 효성스러운 것 같지만 깊은 의미로는 불효라 할 것 입니다. |
생사(生死)가 다른 두 분을 함께 뫼시고 잔을 드리는 헌수(獻壽)를 한다는 말인데 |
살아계신 어머니 옆에 죽은 아버지의 위패(位牌)를 뫼셔야 하니 살아계신 어머니가 |
얼마나 슬프 시겠습니까? |
원래 돌아가신 부모의 생신에는 이제(祢齊)을 지낼 수 있으므로 죽은 부(父)의 회갑 |
에는 이제를 성대히 지내고 손님을 청해 부(父)의 유덕을 기릴 수는 있습니다. |
그러나 살아계신 모(母)의 회갑잔치는 어머니에게만 헌수하고 잔치도 어머니의 |
회갑잔치만 해야 합니다. |
*회갑잔치의 부모(父母)위치는 부동모서(父東母西) |
90문: 부모(父母)님의 회갑에 헌수를 할때 자손이 향해서 왼쪽에 부(父) 오른쪽에 |
어머니를 앉으시게 하는가 본데 맞는지요? |
90답: 회갑잔치의 좌석배치는 병풍 앞에 당사자가 앉고 그 앞에 상을 차린 |
다음 자손들이 당사자를 향해 서게 됩니다. |
그러면 예절(禮節)의 동서남북(東西南北)은 병풍친것이 북(北)쪽이고 자손(子孫)들은 |
남(南)쪽에서 북(北)쪽을 향해서는 것이 됩니다. 이런 방위로 보아 귀하가 말씀하신 |
부모(父母)님의 위치는 아버지가 서(西)쪽이 되고 어머니가 동(東)쪽이 된다는 |
말입니다. 즉 남자가 西쪽 여자가 東쪽에 위치한다는 것은 죽은 사람의 위치입니다. |
제사때 지방은 병풍을 향해서 왼쪽인 서(西)에 남자 오른쪽인 동(東)에 여자의 |
신위(神位)를 쓰고 묘지에 시체를 매장(埋葬)할때도 신주와 같이 西쪽에 남자 東쪽에 |
여자가 묻입니다. |
그런데 살아계신 부모(父母)님을 사자(死者)의 위치에 모신다면 그런 불효가 어디에 |
있습니까? 당연히 부(父)를 자기들의 오른쪽인 東쪽 어머니를 자기들의 왼쪽인 |
西쪽에 뫼셔야 합니다. |
고예(高禮)에 보면 시부모가 새며느리의 폐백을 받을때 구동고서(舅東故西) 즉 |
시아버지는 東쪽 시어머니는 西쪽에 앉는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예절(禮節)에서의 |
동서남북(東西南北)은 상좌(上座)를 北으로 간주해 상좌의 좌측이 東이고 우측이 |
西쪽이 되는 것이며 생자(生者) 東쪽을 상으로 해 남자가 東쪽으로 가고 사자(死者)는 |
西쪽을 上으로해 이서위상(以西爲上) 남자가 西쪽으로 가는 것입니다. |
*이조(李朝)는 이씨조선(李氏朝鮮)의 준말 |
91문: 이조(李朝)란 말이 자주 나오는데 이는 조선으로 고쳐 주십시오 이조(李朝)란 |
일제(日帝)가 우리나라를 얕잡아 보기 위해 이씨(李氏)의 부족국가(部族國家)란 |
뜻으로 쓰인 것 한국인이라면 쓸 수없는 낱말입니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전통예절을 |
바로 잡는 책에 우리나라를 멸시하는 이조(李朝)란 용어는 쓸 수 없는 것 아닙니까? |
91답:우리나라는 조선(朝鮮)이란 국호를 사용한 시대가 단군(檀君)의 조선(朝鮮) |
위만(衛滿)의 조선이씨(朝鮮李氏)가 왕이었던 조선(朝鮮)이 있었고 지금은 북한이 |
조선(朝鮮)을 쓰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냥 조선(朝鮮)이라고 하면 어떤 조선(朝鮮) |
인지 분간하기가 곤란하다. 때문에 역사학자(歷史學者)들은 단군(檀君) 기자(箕子) |
위만(衛滿)의 3조선(朝鮮)은 고대조선(古代朝鮮)이라 하고 이씨(李氏) 왕이었던 |
조선(朝鮮)을 근세조선(近世朝鮮)으로 구분하고 또 고대조선(古代朝鮮)을 왕조별 |
(王朝別)로 나눌 때 건국왕조(建國王朝)의 성(姓)을따라 구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
있습니다. 일제(日帝) 이전에는 이씨(李氏)가 왕이었던 조선(朝鮮)을 그냥 아조(我朝) |
라고도 했습니다. 즉 우리나라(조정)란 뜻이 되겠습니다. 일반적으로 아조선(我朝鮮) |
이라고 널리 쓰였지요. 그러나 이조(李朝)라고 표기하는 경우는 우리나라라는 뜻이 |
아니고 이씨왕조(李氏王朝)의 조선(朝鮮)이란 뜻으로 쓰여지고 있고 그것을 줄여서 |
이조(李朝)라고 쓰였습니다. |
*시누이의 남편은 ~서방님이 좋아 |
92문:시댁 시누이의 남편을 어떻게 불러야 합니까? 근래에 고모부라고 흔히 |
말하는데 아무래도 바른 호칭이 아닌 듯해서 묻습니다. |
92답: 고예(古禮)에는 처남댁과 시누이남편 사이는 엄격한 내외법이 있으므로 |
서로간에 직접 부를 일이 없었는데 요사이는 내외법이 엄격하지않아 서로 부를경우 |
가 많은데 호칭의 혼란이 야기되고 있습니다. 요즘 궁여지책으로 고모부라고 |
부르는데 고모부란 자기의 자녀를 부르는 호칭이지 처남의 아내인 자기가 부르는 |
호칭은 아닙니다. |
물론 시누이 남편을 자기의 자녀에게 말할때는 너의 고모부라고 하는 것이지만 말 |
입니다. 옛날에 시누이 남편을 말하는 경우란 제3인칭으로 말할때가 전부 였습니다. |
그 때는 시누이 남편의 성을 붙혀 김(金)서방 이(李)서방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
직접 부를 때는 님을 붙여 김서방 이서방이라 부르는 것이 좋습니다. |
*나를 이용하는 고객은 손님이좋아 |
93문: 저는 택시 기사입니다. 택시를 이용하는 손님은 성별 직업 연령 등이 다양한데 |
손님에 대한 호칭을 구분하기가 어려운때가 많습니다. 좋은 호칭이 있습니까? |
93답: 나이가 어린 학생이라고 해서 애 너 할수도없고 남녀 연령은 천태만상의 |
고객을 격에 맞추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걱정할 것없습니다. |
어찌 택시 뿐이겠습니까? 음식점 접객업소 기업체 은행 병원 상점 등 자기 사업을 |
이용하는 고객을 맞는 업소는 모두 어려움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 경우에는 남녀노소 |
가릴 것 없이 손님이 제일이다. 손(客)은 고객이 란 뜻이고 님은 그 손을 높이는 |
말이니까 고객(顧客)을 우리말로 손님이라하면 적격입니다. 어린아이든 노인이든 |
신분이야 어떻든 손님이라 불러서 기분 나쁜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
*남좌여우(男左女右)란 남동여서(男東女西)란 말이다. |
94문: 남좌여우(男左女右)란 남자는 왼쪽 여자(女子)는 오른쪽이란 말이 아닙니까? |
그러면 예식장에서 신랑과 신부가 주례를 향해 섰을때와 하객에게로 돌아서 인사 |
할때는 서로 위치를 바꿔야 하는 것입니까? |
94답: 가장 많은 질문이 남좌여우(男左女右)에 관한 것입니다. 첫째 남좌여우 |
(男左女右)의 좌우(左右)는 어떤 의식장소에 참석한 사람들 각자의 좌우를 말하는 |
것이 아니고 상좌(上座)의 좌우를 말하는 것입니다. 예서(禮書)에도 좌우(左右)란 |
존장 상좌(上座)의 좌우(左右)라고 못이 박혀 있습니다. 혼인예식장의 상좌는 |
주례석입니다. 그러니까 혼인 예식장 안에서의 좌우는 주례의 왼쪽이 좌(左)이고 |
주례의 오른쪽이 우(右)가 됩니다. 신랑과 신부가 방향을 바꿀 때마다 위치를 고칠 |
필요는 없습니다. 주례를 향할때나 하객을 향할때나 모두 신랑은 주례의 왼쪽 신부 |
는 주례의 오른쪽에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
둘째 좌우(左右)란 동서(東西)라는 뜻입니다. 예절에서는 상좌(上座)를 북(北)으로 |
간주하는데 그 이유는 북(北)쪽이 제일 높고 북(北)쪽에서 남(南)향해야 햇볕을 |
가장 많이 받기 때문에 언제든지 어른이 북쪽에 남(南)향해야 햇볕을 가장 많이 |
받기 때문에 언제든지 어른이 북(北)쪽에서 남(南)향 하라는 것입니다. |
그런데 장소의 형편상 어른이 자연의 북(北)쪽에 위치할 수 없을 때는 편한대로 |
아무 쪽에서나 위치하더라도 어른이 계신 상좌(上座)를 북(北)쪽으로 간주합니다. |
그러니까 상좌(上座)의 좌(左)측은 東쪽이 되고 우(右)측은 서(西)쪽이 됩니다. |
그러므로 남좌여우(男左女右)란 남동녀서(南東女西)라는 의미입니다. |
*初喪(초상)은 初終(초종)과 초사(初死)의 중간이다. |
95문: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삶이 끝나는 것인데 초상(初喪)났다고 처음 이란 |
뜻의 초(初)자를 쓰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
95답: 참으로 좋은 질문을 하셨습니다. 왜 죽음에 초(初)를 쓰냐는 것이군요. |
예서(禮書)에 보면 군자(君子)의 삶은 도(道)를 행하는 것이므로 군자(君子)의 죽음은 |
바로 도(道)를 마침(종(終))이 시작된다 고 초종(初終)이라고 하고 소인(小人)의 삶은 |
육신(肉身)에 삶이 있는 것이므로 소인(小人)의 죽음은 바로 육신이 죽어 썩음을 |
의미해 사(死)라고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소인(小人)의 죽음은 초사(初死)라 |
해야 옳을 것입니다. 상(喪)은 도(道)가 끝나는 종(終)도 아니며 육신이 썩는 사(死)도 |
아닌 중간의 의미라 하겠습니다. 그저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죽은 이를 군자 |
(君子)냐 소인(小人)이냐를 구분하지 않고 중간 의미인 없어짐의 시작되었다는 |
뜻으로 초상(初喪)이라고 합니다. |
*아내가 죽은 부고에는 남편을 써야 |
96문: 요사이 신문에 나는 부고를 보면 남편이 죽었을때도 아들보다도 앞에 |
미망인(未亡人)이라 쓰고 부인의 이름을 쓰는데 부인이 죽었을때는 아무데도 |
남편의 이름을 쓰지않는 경향입니다. 부인이 죽었을때의 남편의 이름은 어디에 |
쓰는것이 옳습니까? |
96답: 남편이 죽었을때는 부인은 일단은 주부(主婦 )가 되지만 그 주부의 자격도 |
큰며느리에게 물이게 되었습니다. 예서(禮書)에 의하면 부고에 이름을 쓰는사람 |
은 주상(主喪)에 국한 되었습니다. 그런데 근래는 부고 자체가 죽은이의 친척과 |
친지에게만 보내는 것이 아니고 상주들의 친지에게도 보내는 것이기 때문에 |
상주의 이름을 모두쓰는 것이 상식화 되었습니다. |
만일 미망인을 제일 먼저 쓰려면 부고의 서식도 아무게의 아버님누가…,라고 하지 |
말고 아무개의 남편 누가…,라고 써야 합니다. 그런데 부고는 아무개의 아버님 |
누가…,라고 쓰면서 미망인의 이름을 제일 먼저 쓰는것은 옳지 못합니다. 당연히 |
주상(主喪)인 큰아들이나 큰손자를 먼저쓰고 그 다음에 미망인을 써야 할 것입니다. |
부인이 죽었을 때는 장성한 아들이 있더라도 살아있는 남편이 주상(主喪)입니다. |
그래서 부고도 아무개의 부인 누가…,라고 시작되고 이름을 쓸때도 제일먼저 |
주상(主喪) 부(夫) ○○○라고 쓰고 그 다음에 아들의 이름을 써야 옳습니다. |
*사진의 리본은 성복후에 걸쳐야 |
97문: 상가(喪家)에 인사를 가서 보면 옛날과 달라 성복(成服)을 했는지 아닌지를 |
알 수없습니다. 어떻게 해야 성복(成服) 전후를 알게 할 수 있겠습니까? |
97답: 사실 문제가 많습니다. 옛날과 같이 상복을 챙겨 입는 것도 아니고 혼백을 |
접거나 명정을 거는 경우도 별로 없으니 성복(成服)여부를 알기가 어렵다. |
그래서 누구든지 영좌(靈座)에 망인의 사진을 뫼시니까 그 사진에 검은 리본을 |
걸쳤는가 아닌가로 구분하게 하는 것이 제일 편리할 것입니다. |
즉 염습을 해 입관하기 전에는 망인의 사진에 검은 리본을 걸치지 않고 입관을 |
한 다음에 검은 리본을 ∧자로 걸치는 것입니다. |
조문하는 손님이 망인의 사진을 보면 성복 여부를 금방 식별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상주는 몸을 초토(草土)에 둔다는 뜻 |
98문: 상가(喪家)에서 상주들은 거적자리를 깔고 짚벼개를 옆에 놓고 있습니다. |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
98답: 상주는 왜 거적자리에 앉고 짚벼개를 베는지 그 의미도 모르고 흉내만 낸다면 |
진정한 예절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원래는 짚벼개가 아니라 흙벼개를 베개 되었습 |
니다. 거적자리를 풀밭을 의미하고 흙덩어리의 베개는 맨땅을 의미합니다. |
부모가 돌아가셨으니 자식들은 큰 죄인이며 차마 몸을 편안하게 할 수 없습니다. |
그래서 멘 땅 풀밭에서 흙 덩어리를 벤다. 즉 초토(草土)에 몸을 둔다는 의미입니다. |
참으로 갸륵한 효도(孝道)의 표시 입니다. 그런데 근래 방석까지 깔고 앉는 상주들이 |
있음을 생각할 일입니다. |
*상가(喪家)에는 弔客錄(조객록)이나 弔慰錄(조위록)이 있어야 |
99문: 얼마 전 저의 어머니께서 돌아가셨을때 밤샘까지 한 친구가 아버님 |
당했습니다. 돌아가신 어른이 저의 아버지와 친구분이라 저는 아버지 상(喪)을 |
모시고 조상을 갔었습니다. 부의금은 아버지의 명의로하고 저는 바쁜일이 있어서 |
조상만하고 바로 왔었습니다. 다음에 상주인 친구가 나는 너의 어머니가 돌아 |
가셨을때 밤샘까지 했었는데 너는 우리아버지 돌아가셨는데 인사도 안 왔다고 |
서운해 했습니다. 부의록에 저의 이름이 없으니 참으로 변명할 여지가 없었습니다. |
99답: 그래서 상가에 부의록만 있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부의금을 기록하는 |
장부니까 부의금을 내지 않는 조상객은 알 수없습니다. 때문에 상가에는 반드시 |
조객록(弔客錄)이나 조위록(弔慰錄)이 부의록 외에 따로 있어서 부의금에 관계없이 |
모든 조문객을 기록해야 합니다. 조객록(弔客錄)은 남자(男子)가 죽었을때 |
조상객(弔喪客)을 기록하는 방명록이고 조위록(弔慰錄)은 망인이 여자(女子)일때 |
조문객(弔問客)을 기록하는 방명록입니다. |
귀하의 경우 조객록(弔客錄)이 있었다면 그런 오해는 생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
*혼인한 여자(女子)의 호칭은 여사(女士)가 좋아 |
100문: 평소에 양(孃)이라고 부르는 동년배의 여직원이 혼인을 해 기혼녀가 |
되었습니다. 호칭을 어떻게 하는것이 좋을까요? 갑자기 그것도 동년배인데 |
여사라고 부르기가 쑥스러워서 그럽니다. |
100답: 여사라고 부르는 것을 쑥스럽게 생각할 까닭이 없습니다. 미혼인 여자를 |
양(孃)이라 불렀으니까 기혼인 여성은 당연히 여사라고 불러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
여사에도 두가지의 뜻이 있음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여사(女士) 여사(女史)입니다. |
여사(女史)는 여자인 사관(史官)이란 뜻으로 옛날 왕실에 여자의 사관을 두어 왕후에 |
측근이 있으면서 왕후의 언어와 동정을 기록하는 직책이 있습니다.(주례周禮) |
여사(女士)는 성년례(成年禮)인 계례(筓禮)을 치른 성인인 여자를 높이는 호칭 |
입니다(가례家禮) 여사(女史)는 기 미혼에 관계없이 사회적 활동을 하는 여자를 |
이르는 호칭이라고 할 것이고 여사(女士)는 성년 즉 기혼여성을 부르는 호칭이라 할 |
것 입니다. 그러나 동년배라도 기혼여성이니까 女士라고 부르는 것이 당연합니다. |
*공수법(拱手法)은 신분에 관계없이 같은방법 |
101문: TV에 방영되는 역사극에서 궁중장면을 보면 상궁이나 비빈(妃嬪)들이 큰 |
절을할때 공수법이 궁중과 민간은 원래가 다른 것인지요? 즉 상궁이 비빈에게 |
비빈이 왕에게 절을할때 왼손이 위로가게 공수 하는데 맞는 것인지 의문입니다. |
101답: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과 TV등에서 보여주는 내용이 다를때 학생들이 |
격는 갈등이 보통이 아닐 것이니 특히 교육자로서 알아야 할 일입니다. |
공손한 자세를 취할때의 손 모습 즉 두손을 모아 포개어 잡는 방법은 궁중과 |
여염이라고 다를 것이 없습니다. 평상시 남자는 왼손 여자는 오른손이 위이고 |
사람이 죽어서 부터 졸곡(卒哭) 직전까지의 흉사시에는 그 반대로 하면 됩니다. |
*탈상후의 혼인은 예절에 맞는다. |
102문: 저의 어머니께서 2001년 11월에 돌아가셔서 작년 11월3일 탈상했고 |
금년 11월3일이 첫 번째 기제사(忌祭祀)가 됩니다. 그런데 저의 혼인 날짜가 11월5일 |
입니다. 일부 집안의 어른들께서는 어떻게 제사 지내고 바로 혼인을 하느냐면서 |
혼인을 연기하던지 제사를 지내지 않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
102답: 예서(禮書)에 보면 혼인 당사자나 혼주(昏主)가 1년 이상의 복(服)을 입고 |
있거나 9개월의 복에 해당하는 상을 당하고 장례를 치르기 전에는 혼인하지 않는다고 |
했습니다.그런데 귀하는 재쇠삼년(齋衰三年)의 복을 입었으나 이미 작년에 탈상 |
했으므로 해당이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제사 지내고 불과 3일만에 혼일을 할 수 |
있는가?라는 문제도 걱정할일이 아닙니다. 원래 혼인하는 남녀는 예식날 아침에 |
조상의 위패를 모시고 오늘 아무게의 자손(子孫)이 누구와 혼인(婚姻) 하옵기에고 |
하나이다라고 아뢰는 제례를 올리게 되어있습니다. 혼인날 아침에 일부러 제례를 |
올리는 것인데 3일전에 어머니 제사를 모시는 것이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
귀하께서는 이번 어머님 제사때에 더욱 간절히 슬퍼하며 어머님께 은혜를 감사하고 |
혼인 사실을 마음깊이 아뢰며 행복하게 살 것을 맹세하십시오. |
*이름 씨 제주(祭酒)는 움직씨로도 쓰인다. |
103문: 한국전례연구원에서 예의생활요강에 보면 제사지낼 때 모사에 제주한다고 |
했습니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
103답: 제사(祭祀) 지낼때 제사상에 올리는 술을 제주(祭酒)라고 합니다. 이때 제주는 |
명사(名詞)입니다. 신위 앞에 드렸던 술잔을 퇴해서 헌작자가 모사(茅沙)나 |
묘제(墓祭)에서는 땅바닥에 조금씩 세 번을 지우는일을 삼제우지(三除于地) 뢰주 |
(酹酒) 또는 祭酒 한다고 합니다. 이 때의 제주는 동사(動詞)로 쓰이는 것입니다. |
제주(祭酒)가 동사로 쓰이는 경우는 제례 외에도 관례(冠禮)와 초자 녀례(醮子 女禮) |
등에 어른이 내린 술잔을 바닥에 조금씩 세 번을 지우는데도 쓰입니다. |
즉 제례(祭禮)와 초례(醮禮)에 술을 바닥에 지우는 일을 제주라고 합니다. |
*처남은 친구 형님이 아니다. |
104문: 저의 아내의 오빠가 저보다 나이가 적습니다. 주위에서는 아내의 형이니까 |
저도 형님이라고 해야 한답니다. 나이가 적은 사람을 어떻게 형님이라 합니까? |
104답: 여자는 시댁의 손위 동서가 나이가 적어도 남편의 서열에따라 형님이라 |
합니다. 그러니까 남자도 처가의 가족은 아내의 서열에 따라야 한다고 생각해서는 |
안됩니다. 출가외인(出嫁外人) 즉 여자는 시집가면 친정과 인연이 끊어집니다. |
그러므로 남편이 처가의 가족에게 아내의 서열을 따지지 않습니다. 처의 가족은 |
아내의 직계존속(장인 장모)만 인척으로서의 위계가 있고 기타 나이에 따라 사회적 |
사귐으로 대접하는 것입니다. 귀하의 경우 아내의 오빠인 처남과 서로 말을 놓아 하게 |
를 쓰며 친숙하게 지내는 친구사이 입니다. 이름을 부르고 벗을 하십시오. |
*祭酒(제주) 관명(官名)인때는 좨주로 읽어 |
105문: 실천예절에서 동춘당(同春當) 송준길(宋浚吉)선생에 대한 내용을 잘 읽었 |
습니다. 그런데 성균관(成均館)에 제주(祭酒)라는 자리를 만들었다면서 성균관의 |
제주가 생긴 유래이니…,라고 했고 제주(祭酒)가 관명(官名)으로 쓰일 때는 제주가 |
아니라 좨주라야 하지 않습니까? |
105답: 제수(祭羞)로서의 술이나 바닥에 세 번의 술을 지우는 일을 말하는 |
제주(祭酒)는 제주라 읽지만 관명(官名)일때는 좨주라고 읽습니다. |
좨주라는 벼슬은 고려의 국자감(國子監)에 종3품의 벼슬로 있다가 25대 |
충열왕(忠烈王)때에 전주(典酒)로 고쳤고 공민왕(恭愍王)때에 사성(司成)으로 |
고쳤었는데 조선조(朝鮮朝)에 다시 제주(祭酒)로 환원 했다가 태종(太宗)때 사성 |
(司成)으로 고쳤었습니다. 이 때는 정3품관 이었는데 동춘당(同春當) 송(宋)선생이 |
성균관 祭酒(좨주)로 될때는 관계(官階)에 상관없이 학덕(學德)을 예우(禮遇)하기 |
위해 마련했다는 점에 특징이 있다 하겠습니다. 뒤에 祭酒山林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
*壇碑(단비)는 신위(神位)보다 지단(之壇)이 좋아 |
106문:조상의 묘(墓)를 실전(失傳)하여 설단(設壇)하려면 그 비(碑)에 신위(神位) |
라고 써도 되는지요? |
106답: 조상 묘를 실전(失傳) 하였으면 자손들이 정성을 다해 단(檀)을 설치하고 |
묘지를 정성것 단(檀)을 수호(守護)합니다. 단(檀)은 묘지 대신이지 위패(位牌)를 |
모시는 사당(祠堂)이 아닙니다. |
따라서 묘지(墓地)의 묘석(墓石)을 ○○ 지묘(之墓)라고 하듯이 단(檀)의 표석은 |
○○지단(之檀)이라고 해야 할 것 입니다. |
*侑食(유식)에는 添酌(첨작)을 해야 |
107문: 제례의 절차중에 유식(侑食)이 있습니다. 유식(侑食)이란 먹는 일을 돕는다는 |
뜻이므로 숟가락을 시접에 걸치는 揷匙正箸(삽시정저)만 하면 될텐데 왜 술잔을 |
채우는 첨작(添酌)을 합니까? |
107답: 제례에서의 절차의 명칭이 그 취지와 자의(字意)가 꼭 일치한다고 볼 수 |
없습니다. 그러나 유식(侑食)의 경우는 그 취지 행위와 자의가 일치합니다. 유(侑)란 |
돕는다(좌(佐))는 뜻도 있지만 권한다(권(勸))는 뜻도 있습니다. |
삽시정저는 조상께서 진지를 잡수시는 일을 돕는 뜻도 있지만 권하는 의미도 되고 |
첨작은 술좀 더드시지요하고 권하는 의미라 하겠습니다. |
때문에 술잔을 가득 채워서 술을 따르는 것입니다. |
*玄酒(현주)는 빈틈없는 정성의 표시 |
108문: 제례에 쓰지도 않으면서 술병 옆에 정화수(井華水)를 담은 현주(玄酒)를 |
놓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
108답: 정화수란 새벽일찍 남이 우물에서 물을 푸기전에 제일먼저 떠올린 물입니다. |
옛날에 술이 생기기 전에는 정화수로 제례를 올리다가 술이 생긴 이후에 술을쓰기 |
시작 했습니다. 술로 제례를 지내지만 옛날의 제례용이었던 정화수를 갖춤으로써 |
이렇게 정화수도 마련했습니다라는 정성의 표시라 하겠습니다. |
정화수를 뜨려면 남보다 일찍 일어나야 할 것이므로 조상을 섬기는 정성이 없으면 |
뜰 수 없습니다. 조상 섬기는 정성의 표시입니다. |
*꼭지가 위로 가야 익은 과실이다. |
109문: 제사 때마다 생과(生果)의 꼭지가 위인지 아래인지 의론이 분분합니다. |
과실을 접시에 담을때 꼭지가 위입니까? 아래입니까? |
109답: 과실의 덩치가 작아서 아래위를 가릴수 없는 밤 대추 잣 은행등 가려서 쓸수 |
없지만 감 배 사과 등 덩치가 큰 과실을 괴거나 담을때는 꼭지가 위로가야 옳습니다. |
나무 과실을 보면 아직 여물지 않은 과실은 꼭지가 아래에 있지만 잘 익은 과실은 |
꼭지가 위로 가서 달립니다. 따라서 꼭지가 위로 가게 담아야 익은 과실이 됩니다. |
*상대를 존경할 구실을 찾아야 |
110문: 저보다 나이가 작은 아저씨가 나이가 많은 조카뻘인 저를 함부로 |
이름을 부르고 말을 낮춰 합니다. 듣기가 싫은데 그래도 되는 것입니까? |
110답: 속담에 일가 고약한 것이 항렬높은 것이란 말이 있습니다. 질문과 |
같이 상대가 항렬은 높으나 나이가 작은 경우를 행고년비(行高年卑)라 합니다. |
반대로 볼때는 나이는 많으나 항렬이 낮기 때문에 년고행비(年高行卑)라고 합니다. |
어떤 경우이든 대인관계가 원만 하려면 상대를 존경할 구실을 찾는것이 |
가장 현명합니다. 상대가 나이는 작지만 항렬이 높으면 항렬로 대접해 존경하고 |
항렬은 낮지만 나이가 많으면 나이로 대접해 존경해야 합니다. |
귀하의 경우 상대는 조카인 귀하를 나이로 대접해 존경해야 하는 것입니다. |
*시아버지와 며느리 사이는 舅婦間(구부간) |
111문: 가족관계에서 시어머니는 며느리 사이가 나뿐것을 고부간의 갈등 |
이라고 표현합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를 왜 고부간이라하며 시아버지와 |
며느리 사이는 어떻게 말합니까? |
111답: 고부간의 고(姑)는 시어머니 고자이고 부(婦 )는 며느리부자 입니다. |
그래서 시어머니(姑)와 며느리(婦 ) 사이간(間) 란 뜻으로 고부간(姑婦 間)이라 |
합니다. 시아버지와 며느리의 사이는 시아버지란 뜻의 한문글씨가 시아버지 |
구(舅)이므로 舅婦間(구부간)이라 합니다. |
혼례에서 새며느리가 시부모에게 폐백을 드리고 뵈옵는 禮를 현구고례(見舅姑禮) |
라한다. 이것이 시아버지와 시어머니에게 뵈옵는 禮란 뜻입니다. |
*분향(焚香) 회수는 세 번이나 한번 |
112문: 공개적인 영결식이나 추모행사에서 내빈들이 향을 사르는 방법을 |
보면 구구합니다. 몇번이 맞으며 향을 들고 기도하듯 하는 것이 옳은지요? |
112답: 예서(禮書)에 보면 분향을 삼상향(三上香)이라 했습니다. 이것은 향을 세번 |
집어서 향로에 넣어 사른다는 말인데 세 번인 까닭은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 또는 |
일월성(日月星) 삼광(三光)에서 유래 된 것으로 보입니다. 만일 세 번이 아니면 |
한번이라 한 것으로 보아 삼광보다는 삼재에 연유한다고 보여집니다. 천지인(天地人) |
삼재는 하나에서 분화(分化)되고 다시 하나로 귀일(歸一)한다고 해석하기 때문 |
입니다. 따라서 분향은 3회 아니면 1회 여야 할 것 입니다. |
제례(祭禮)의식에서 분향하는 까닭은 향취를 피워 천상에 계신 혼령의 강림(降臨)을 |
기원(祈願)하는 것이므로 향을들고 기도하듯 하지 않아도 무방합니다. 그러나 혼령 |
의 강림을 기원하는 행위이니까 정성드려 기구(祈求)하는 것도 구태여 나쁘다고 |
할 수 없습니다. |
*祭冠(제관)의 梁(양)은 品階(품계)의 표시 |
113문: 제례에 쓰는 官帽(관모)에 몇량(梁)이란 말을쓰는데 무슨 뜻입니까? |
113답: 량(梁)이란 상복을 입을때 건의위에 쓰는 굴건(屈巾)에 산(山)의 모양으로 |
뾰족하게 덮어쓰는 것을 말합니다. 제복(祭服)을 입을때 쓰는 제모(制帽)도 이마에서 |
뒤통수 쪽으로 넓직하게 넘겨지는 평평한 부분을 몇조각으로 보이게 하느냐에 |
따라 몇량이라고 합니다. |
선이 하나도 없으면 단연히 1량관(梁冠)이고 선을 한가닥 그으면 2량관(梁冠) 두가닥 |
이면 3량관(梁冠) 세가닥 이면 4량관(梁冠) 제일 많은 네가닥 이면 5량관(梁冠)이 |
됩니다. 몇 량관(梁冠)을 쓰는가는 품계에 따라 다른데 1품관(品官)은 5량(梁) |
2품관(品官)은 4량(梁) 3품관(品官)은 3량(梁)4~6품관(品官)은 2양(梁) 7~9품관(品官) |
은 1제관(祭冠)을 쓰다가 근세에 와서는 당상관(堂上官)(정(正)3품(品) 통정대부 |
(通政大夫)이상)은 5양(梁) 당하관(堂下官)(正3品 통훈대부(通訓大夫) 이하)은 |
3량관(梁冠)을 썼습니다. |
*묘지의 시체는 남서여동(男西女東)이다. |
114문: 저의 선친 내외분의 산소를 이장하게 되었습니다. 두분을 합장 할경우 그 |
위치를 어떻게 뫼셔야 합니까? 비문(碑文)에 보면 남우여좌(男右女左)라 하더라도 |
묘지를 등지고 좌우(左右)인지 아니면 묘지를 향해서 좌우(左右)인지 모르겠습니다. |
114답: 결론부터 말씀 드리면 男右女左란 묘지의 左右 즉 묘지를 등지고 |
右 남자 左 여자란 말입니다. 예절(禮節)의 동서남북(東西南北)은 상좌를 북(北)으로 |
간주해서 상좌는 묘지 자체를 말하므로 용미 있는쪽이 북(北)이고 제절이 남(南)이며 |
묘지를 등지고 좌(佐)가 동(東)이고 우(右)가 서(西)쪽입니다. |
사례편람(四禮便覽)에도 묘지가 어디를 향했던 북(北)쪽에서 남(南)향한 것을 간주해 |
방위를 정한다고 되어있습니다. 때문에 남우여좌(男右女左)란 남서여동(男西女東) |
이란 말입니다. 우리가 알고있는 남좌여우(男左女右)란 바로 남동여서(男東女西)란 |
말로써 산 사람의 경우이다. 산 사람은 양계(陽界)에 있기 때문에 양방(陽方)인 동(東) |
쪽으로 양(陽)인 남자(男子)가 가지만 죽은사람은 음부(陰府)에 갔으므로 음방(陰方) |
인 서(西)쪽으로 남자(男子)가 가는 것입니다. 묘지는 용미쪽이 북(北)이고 제절쪽이 |
남(南)이므로 묘지를 등지고 서보면 좌(佐)측이 동(東)쪽이고 우(右)측이 西쪽입니다. |
묘지를 등지고 보면 남우여좌(男右女左) 즉 오른쪽인 서(西)쪽이 남자(男子) 왼쪽인 |
동(東)쪽에 여자(女子)가 묻혀 있습니다. 조상 산소에 비문에 보면 여자조상을 기록한 |
끝에 왼쪽에 붙였다고 부좌(祔左)라 썼는데 이것은 여자를 남자의 왼쪽에 붙였다는 |
뜻입니다. 그러므로 자손위주가 아니고 묘지에 묻힌 조상을 위주로 생각해야 합니다. |
*축문(祝文)에 숫자로 쓰면 간지(干支)는 필요없어 |
115문: 축문에 보면 월(月)을 표시하는데 초하루의 일진을 써서 예컨대 십월(十月) |
임인삭(壬寅朔)이라 합니다. 이것은 위에 그 해의 태세간지를 쓰고 아래에 그 날의 |
일진간지를 쓰는 것으로 보아 월건 간지를쓰는 것이 옳지 않습니까? 혼인 에서의 |
사주(四柱)에도 생년(生年) 생월(生月) 생시(生時)를 간지(干支)로쓰는 것으로 미루어 |
축문(祝文)에도 달표시에 초하루의 일진을 쓰지 않고 월건을 써야 한다고 보는데요. |
115답: 년월일(年月日)의 기재를 필요로 하는 역사기록을 보면 월(月)의 표시는 |
숫자로 했는데 일(日)의 표시는 간지(干支)로 했습니다. 때문에 무자(戊子) 십월(十月) |
임인(壬寅)라면 戊子年 十月 甲辰日이라 하지만 몇 일 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
그러나 十月 壬寅朔이라 쓰면 十月 초하루가 壬寅日이니까 乙巳日은 初四日이 |
된다는 것을 금방 알수 있습니다. 즉 그날이 몇 일 인지를 알기 위해 초하루의 일진을 |
쓰는것 입니다. |
따라서 날짜의 표시를 숫자로 한 경우에는 초하루의 일진이 필요없고 年月日을 모두 |
숫자로 쓸 때는 祝文에 干支를 쓰는 것이 무의미한 것입니다. |
*月建(월건)과 시(時)의 간지(干支) 정하는 법 따로있다. |
116문: 사주팔자(四柱八字)란 말은 생년(生年) 생월(生月) 생일(生日) 생시(生時)를 |
두자식 간지(干支)로 써서 모두 여덟자가 된다는 말인데 생년(生年)과 생일(生日)의 |
간지(干支)는 알수 있지만 생월(生月)과 생시(生時)의 간지(干支)는 어떻게 |
정합니까? 예를들어 낮 12시를 오시(五侍)로 알고 있는데 옛날의 사주(四柱)를 보면 |
병오(丙午)로 쓰기도 했으니 말입니다. |
116답: 해의 간지(干支)인 태세(太歲)는 언제부터 첫 간지인 갑자(甲子)를 쓰기 |
시작한지는 모르겠으나 태고(太古)부터 순차(順次)적으로 간지(干支)로 쓰어져 |
금년이 계미가 됩니다. 달의 간지(干支)인 월건(月建)은 1월을 인(寅)월로 해서 2월은 |
묘(卯)월이 되게 순산하는데 태세(太歲)의 천간(天干)이 기축(己丑)의 해의 1월은 |
병인월(丙寅月)이고 을(乙) 경(庚)의 날의 첫시간은 병자(丙子) 시(時)이고 |
병신(丙辛)의 날은 戊子時이고 丁 壬의 날은 庚子時이고 戊 癸의 날은 |
壬子時로 해서 順産합니다. |
단군기원 4341년 음력 03월 27일 낮 12시를 간지(干支)로 쓰면 무자(戊子) 병진(丙辰) |
계유(癸酉) 무오(戊午)가 됩니다. |
*祝文(축문)의 某封(모봉)은 夫人의 爵號(작호) |
117문: 축문(祝文)의 서식에 보면 할머니나 어머니를 모봉모씨(某封某氏)라고 예시 |
했는데 모봉(某封)이란 무슨 뜻이며 아버지는 성씨를 쓰지 않으면서 어머니는 왜 |
성씨(姓氏)를 쓰라고 합니까? |
117답:어머니의 모봉(某封)이란 어머니의 내외명부(內外命婦)의 작호(爵號)가 |
무엇인가를 쓰라는 말인데 옛날에는 부인도 남편의 벼슬에 따라 상응한 작호(爵號)를 |
내렸습니다. 예) 정일품(正一品)과 종일품관(從一品官)의 부인은 정경부인(貞敬夫人) |
정종이품(正從二品)은 정부인(貞夫 人) 정삼품당(正三品堂) 상관(上官)인 통정대부 |
(通政大夫 )는 숙부인(淑夫 人) 같은 정삼품(正三品)이라도 당하관(堂下官)인 통훈대부 |
(通訓大夫 )와 종삼품(從三品)은 숙인(淑人) 정종사품(正從四品)은 령인(令人) 오품 |
(五品)은 공인(恭人) 육품(六品)은 의인(宜人) 칠품(七品)은 안인(安人) 팔품(八品)은 |
단인(端人) 구품(九品)은 유인(孺人)인데 벼슬하지 못한 사람의 부인(夫人)도 유인 |
(孺人)이라고 씁니다 어머니의 성씨를 써야하는 이유는 아버지는 한 분이니까 성씨 |
(姓氏)을 쓰지 않아도 되지만 어머니는 부(父)가 재취했을 경우 둘이 될수 있기 |
때문에 성씨(姓氏)를 써야 어느 어머니인지 구분이 되기 때문입니다. |
*妻家(처가)는 結婚(결혼)관계이나 外家(외가)는 血緣(혈연)이다. |
118문: 처가에 대해서는 아내의 직계존속(直系尊屬) 만이 어른이고 기타는 사회적 |
사귐이라고 들었습니다. 부(父)의 처가인 외가(外家)는 어떻게 되는 것 입니까? |
118답: 처가는 아내와 인연을 맺어 부부가 되었기 때문에 결연(結緣)관계이므로 |
사실상 상하(上下)를 따질 필요가 없지만 외가(外家)는 자기가 어머니의 피를 받았기 |
때문에 혈연(血緣) 관계이다. 피가 섞이지 않은 처가와 피가 이어진 외가(外家)를 |
같은 것으로 알면 안 됩니다. |
따라서 어머니의 형제자매는 아버지의 형제자매와 같고 기타의 외가 가족은 친가의 |
가족에 준합니다. |
*장인 장모의 제사는 사위가 아닌 딸이나 외손자가 지내야 |
119문: 저는 처남이 없습니다. 장인과 장모의 제사를 사위인 제가 지내도 됩니까? |
119답: 엄격히 말하면 지낼 수 없습니다. 혈손인 딸이 있는데 왜 엉뚱한 사위가 |
지냅니까? 귀하의 부인인 딸이 제주가 되어 지내다가 귀하의 아들인 외손이 장성하면 |
외손이 지냅니다. 그러나 귀하가 서양자(壻養子)로 입양했다면 봉제사해도 |
무방하지만 그런 경우라도 딸이 제주가 되는 것이 순리입니다. |
*예절은 정치권력으로 안되는 것 |
120문: 월간 실천예절을 읽고 예식장의 신랑 신부 위치가 잘못 되었다는 확신을 |
가졌습니다. 정부에서는 왜 이런 것을 고치지 않습니까? |
120답: 법으로 정한 가정 의례준칙이 행해지지 않는 것과 같이 예의범절은 정치 |
권력으로 되지 않습니다. 대중이 옳게 행하면 되는 것입니다. |
신랑 신부가 바르게 서도록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
*사자(使者)의 위치를 생각하면 생자(生者)의 바른 위치를 알수 있어 |
121문: 실천예절이 펼치는 캠페인 신랑 신부를 바른 위치에 세웁시다에 공감하여 |
예식에 주례를 서면서 신랑 신부를 남동여서(男東女西)의 바른 위치에 세웠더니 |
다른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고 다른 사람이 하는데로 하면 될것 이라고 |
말합니다. 쉽게 이해시키는 방법은 없을까요? |
121답: 생자(生者)와 사자(死者)의 위치는 정반대라는것은 누구라도 아는 사실입니다. |
우리나라에 제례(祭禮)에서 신위(神位)를 지방으로 쓸때 남서녀동(男西女東)으로 |
쓴다는 것은 통일 된 방법입니다. 또 묘지에 시체를 매장 할때도 남자(男子)가 |
서(西)쪽이고 여자(女子)가 동(東)쪽입니다. |
신주나 묘지는 사자(死者)이기 때문에 남서여동(男西女東)임은 아무도 부인하지 |
못합니다. 예식장의 신랑과 신부의 위치가 남서여동(男西女東)이라면 그것이 바로 |
사자(死者)의 위치 라는 사실은 금방 이해가 됩니다. 예식장의 신랑 신부가 |
전통혼례의 위치와 반대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으로도 충분히 알게됩니다. |
*제례의 生物(생물)은 犧牲(희생)을 쓰는 경우에만 쓴다. |
122문: 제사 지낼때의 적(炙)은 날 것으로 쓰고 있습니다. 왜 쓰는지요? |
122답: 가정에서 지내는 기제사(忌祭祀) 묘제(墓祭) 사당제(祠堂祭) 시제(時祭) |
차례(茶禮)등에는 날 것으로 쓰지 않습니다. 일부 지방이나 가정에서는 날 것으로 |
쓰는 모양이나 예서(禮書)에 보면 제례기구에 화로(火爐)을 준비하도록 된 것으로 |
보아 날 것을 쓰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
그러나 종묘대제(宗廟大祭) 석존대제(釋尊大祭) 서원(書院) 사우(祠宇)의 향사(享祀) |
등과 같이 희생(犧牲)을 쓰는 경우에는 날 것을 씁니다. |
제수(祭羞)의 명칭에 어육(魚肉)을 탕(湯) 전(煎) 적(炙)이라 하는데 탕(湯)은 끊이는 |
것이고 전(煎)은 찌는 것이며 적(炙)은 굽는 것입니다. |
*의식에서의 초(燭)는 밝을때는 쓰지 않아도 된다. |
123문: 전통혼례 제례에 촛불을 썼기 때문에 현재도 전기불 아래에서나 예식장에서 |
촛불을 켭니다. 밝은 곳에서도 촛불을 켜는 이유가 있습니까? |
123답:촛불은 어둠을 밝히기 위해서 켜는 것입니다. 때문에 예서(禮書)에도 날이 |
밝으면 촛불을 끈다고 했습니다. |
전통혼례는 혼례(婚禮)라고 해서 날이 저무는때에 예식을 올렸기 때문에 불을 켜 |
야했고 제례는 첫새벽 어두울때에 지냈기 때문에 불을 켰던 것입니다. |
그것이 습관이 되어 의식행사에는 촛불을 켜는 것으로 습속이 된 것입니다. |
따라서 현대의 촛불은 필요 해서라기 보다는 의식행사 형식이 된 상태이다. |
*칠순 잔치의 축하금 봉투도 壽筵(수연)이 무방 |
124문: 회갑잔치의 경하금 봉투는 축수연(祝壽宴) 축수연(祝壽筵)이라 하는데 |
칠순에는 어떻게 씁니까? 그리고 (대자리연)筵과 (잔치연)宴은 어떻게 다릅니까? |
124답: 筵은 자리라는 뜻이고 宴은 잔치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壽筵이라면 어른의 |
생신을 기리고 만수무강을 비는 자리라는 뜻이고 壽宴이라하면 어른의 생신잔치라는 |
뜻입니다. 어른의 생신을 경하해 드리는것은 돈도 있지만 물품도 있습니다. 또 생신 |
잔치를 않더라도 경하금품은 드릴 수있습니다. 그러므로 壽宴보다 壽筵이라 쓰는 |
것이 더 바람직 합니다. |
그리고 수연(壽筵)이란 꼭 회갑에만 쓰는 것이 아니고 어른 생신에는 모두 쓸 수 |
있습니다. 예컨대 칠순을 구태여 희수연(稀壽筵)이라 한다면 회갑은 반드시 회갑연 |
(回甲宴)연(筵) 화갑연(華甲宴)이라 해야 할 것 입니다. 따라서 어른의 생신을 기려서 |
드리는 금품에는 어떤 생신이든 축수연(祝壽筵)이라 쓰면 될 것입니다. |
*배우자의 직계존속은 자기의 직계존속으로 간주된다. |
125문: 직계존속이나 직계비속은 혈통이 같은 직계를 말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그러면 시아버지와 며느리는 직계입니까? 아닙니까? |
125답: 시부모와 며느리의 관계는 혈통상으로는 직계가 아님이 분명하고 혼인으로 |
인해 친척관계가 발생하는 것이므로 엄격한 의미에서는 인척(姻戚)이라 할 것 입니다. |
그러나 법률상으로나 예절(禮節)의 측면에서는 남편의 부모와 자녀의 배우자는 |
직계존비속(直系尊卑屬)으로 간주 됩니다. 상례(喪禮)의 복제(服制) 형사법(刑事法) |
상의 존속(尊屬)에 관한 범죄 요건 등이 그렇습니다. |
*祭主(제주)인 자손이 병중이라도 제사는 지낸다. |
126문: 할아버지의 제삿날이 되었는데 큰손자인 제주가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
그래도 할아버지 제사를 지내야 합니까? |
126답: 제주가 입원했더라도 다른 자손이 있으면 당연히 제사를 지내야 합니다. |
다른 자손이 지내더라도 입원한 큰손자의 명의로 지내는 것입니다. |
손자가 입원해서 증손자가 대신 지내더라도 지방은 증조할아버님 신위가 아니고 |
할아버님 신위라 씁니다. 다만 축문에 손자 ○○는 병으로 입원했기 때문에 아들 |
○○를시켜 할아버님 신위께 아뢰나이다로 고쳐 쓰면 됩니다. |
*주인과 손님은 주인이 상석(上席)이다. |
127문: 어떤 기관 단체간에 자매결연을 한다거나 회사간에 계약 조인등을 할때 |
대등한 기관장이나 대표의 좌석배치는 어떻게 합니까? |
127답: 원칙적으로 주인이 상석이고 손님이 하석(下席)입니다. 구태여 상하(上下)를 |
구분 할것없이 우리나라 전통관습에 의한 위치는 주동객서(主東客西)였고 동서(東西) |
에서는 생자(生者)는 동(東)이 상(上)이고 서(西)가 하(下)이기 때문에 주인(主人)이 |
상석(上席)이고 객(客)이 하석(下席)이라는 말입니다. 대등한 자매결연이나 계약 |
행위에 있어서는 주객(主客)의 구분으로 행사 장소의 주인을 주(主)로 하는 방법이 |
있고 문서에 먼저 쓰이는 즉 갑(甲)을 주인(主人)이라 할 수 있습니다. |
*기관장실의 표찰의 님은 필요없어 |
128문: 구청장(區廳長)이 집무하는 방에 표시를 할때 구청장실(區廳長室) 과 |
구청장임실(區聽長任室)중 어느 것이 맞습니까? |
128답: 하급자가 상급자의 방에 말할때는 ○○님실이라 해야 합니다. 자기의 |
직급보다 위의 직급에는 님을 붙이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
반대로 상급자가 하급자의 방을 말할때는 ○○장실(長室)이라 해야 합니다. 상급자가 |
자기보다 하급인 직급명에 님을붙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구청장은 구청내의 |
최고기관장이니까 구청장님 실이라 써야 한다는 발상도 있을 것입니다. |
그러나 방에 붙이는 표찰은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것입니다. |
그 표찰을 보는 사람은 구청장에 대한 호칭도 일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
그러므로 그냥 구청장실(區廳長室)이라 써야 합니다. |
*국기게양 방법은 법에 정해진 대로 |
129문: 우리나라의 국기게양 방식은 서(西)쪽을 상(上)으로 해서 정해져 있습니까? |
129답: 위치에서의 상하(上下)는 중앙과 양단(兩端)에서는 생사(生死) 모두 중앙이 |
상(上)이고 동서(東西)에서는 생자(生者)는 동(東)이 상(上)이고 사자(死者)는 서(西) |
가 상(上)인 것이 우리나라 전통관습상의 위치의 상하(上下)입니다. |
우리나라의 국기게양 방식은 사자(死者)의 경우에 해당 됩니다. |
때문에 그래서 되겠느냐?라는 의문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
물리적(物理的)으로 볼때는 국기는 분명히 무생물(無生物)입니다. 그리고 존엄한 |
조상도 돌아가시면 윗대 조상을 서(西)쪽을 상(上)으로 해서 뫼십니다. |
현재의 게양방식에 대한 시비(是非)를 논하려면 국기에 대한 정의를 생(生)과 |
사(死)의 문제로 확정해야 할 것입니다. 현행 대한민국 국기에 관한 |
규정 (1984. 2. 21 대통령령 제11361호)에 의해 하는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
*폐백 절차는 폐백 받는 시부모의 뜻대로 |
130문: 옛날에는 혼인 예식날 실행하지 않고 따로 신부우례를 했기 때문에 상관 |
없었지만 현대 혼인에서 예식이 끝나고 바로 신부의 폐백을 받습니다. |
그러므로 시부모는 폐백을 받기위해 손님접대가 소홀 할 수도 있습니다. |
예식장에서의 신부폐백을 간소화 한다면 어떻게 하는것이 좋겠습니까? |
130답: 근원적으로 말한다면 예식장 에서의 견구고례(見舅姑禮)는 혼인에 |
이치에 맞지 않는 것입니다. |
혼인이란 男女(신랑 신부)가 몸을 합치는 것이므로 신방(합궁(合宮))을 차린 후가 |
아니면 신랑도 처가에 대해 인사를 않고 신부도 시댁에 대해 인사를 안했습니다. |
그런데 신식혼인에서는 예식만 끝나면 폐백을 드리니 이치에는 맞지 않습니다. |
그러나 집안 어른들이 혼인예식장에 모인 기회에 상면인사를 하도록 하고 있는 |
것이니 이해 할 만한 일입니다. |
이상의 경우들을 종합해서 생각할때 집안 어른에 대한 상면인사는 하도록하고 |
시부모에 대한 폐백은 신혼여행지에서 돌아와서 한다면 매우 합리적일 것입니다. |
부모가 손님접대에 소홀하지 않으려면 정식폐백은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
다음에 견구고례(見舅姑禮)을 올리는 것이 합당합니다. |
*신혼여행에서는 친정으로 먼저 가야 |
131문: 근래 신혼여행에서 돌아오는 신랑과 신부가 어디로 먼저 가는 것이 |
좋을지를 몰라 문제가 생기고 있습니다. 어디로 먼저 가는 것이 옳은가요? |
131답: 우리나라의 전통관습 혼인은 첫날밤을 신부의 집에서 치릅니다. |
따라서 신혼여행지는 신부의 집의 연장이라 보아야 합니다. 당연히 신부의 |
집으로 먼저가야 할 것입니다. |
시부모를 처음 뵈옵는 시기는 신방을 차린뒤가 맞습니다. 그것을 속칭 폐백이라 |
하는데 시부모에게 예를 올리려면 친정에가서 폐백을 가지고 가야할 것입니다. |
대게 혼수를 미리 시댁으로 보내는 경우도 신변잡품은 신부가 가지고 가야 할 |
것입니다. 그런것을 챙겨서 시댁으로 갈려면 당연히 친정으로 먼저가야 할 것입니다. |
이와 같이 예절의 본뜻으로 보나 사실적인 문제들로 보아 신혼여행지에서 돌아온 |
신랑 신부는 신부의 집에가서 하루 밤을지낸 다음에 시댁으로 가는것이 맞습니다. |
*忌祭祀(기제사)는 돌아가신 날에 지내면 된다. |
132문: 저는 예절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각종 예절지도 서적을 보았던 바 기제사의 |
날짜에 대해 구구각각 이었습니다. |
가정 의례준칙에는 사망일에 초저녁이라고 했는데 다른 책에는 사망 전날의 |
초저녁이라 했습니다. 기제사의 제일과 시간을 말씀해 주십시오. |
132답: 야간통행금지 제도 하에서 초저녁 제사를 지내던 습관과 여러가지 생활 |
여건의 변화로 초저녁 제사를 지내면서 기제일자에 혼동이 오고 있습니다. |
먼저 기일(忌日)에 대해 말씀 드리면 조상이 돌아가신 날에 지내는 뜻으로 |
기일제사(忌日祭祀)라 합니다. 축문(祝文)을 쓸때도 돌아가신 날짜를 쓰고 |
휘일복임(諱日復臨)(돌아가신 날이 다시 돌아오니)라 쓰는 것도 기제사는 |
돌아가신 날에 지내기 때문입니다. |
그런데 돌아가시기 전날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옛날에 忌日이라면 으레히 돌아가신 |
전날이었다고 주장합니다만 잘못된 생각입니다. |
옛날의 돌아가시기 전날을 기일이라 한 까닭은 기제사 준비를 시작하는 입제일 |
(入祭日)을 말한 것이고 실제로 제사를 지낸 시간은 돌아가신 날의 첫새벽이었다는 |
점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다음은 돌아가신 날에 지낸다면 새벽이 옳으냐 아니면 |
초저녁이냐는 문제입니다. (1) 정통예절서대로 지낼려면 돌아가신 날에 먼동이 밝을 |
때 지내기 시작해서 밝을 무렵에 끝내고 (2) 우리 전통습관대로 지낼려면 돌아가신 |
날에 첫 닭이울기 전에 지내야 할 것입니다. |
그러나 근래는 초저녁 제사가 널리 행해지고 있고 그다지 잘못 된 일이라고 할 수는 |
없습니다. 그러므로 초저녁에 지내려면 돌아가신 날에 초저녁 즉 일몰 후 |
자정(子正)전에 지내야 1)위일복임(暐日復臨)이라는 축문(祝文)과도 합치됩니다. |
결과적으로 돌아가시기 전날에 제사를 지낸다면 날을 받아서 지낸 택일제(擇日祭) |
는 되어도 돌아가신 날에 지내는 기제사(忌祭祀)는 지내지 않는 것이 됩니다. |
*사자(死者)의 이서위상(以西爲上)과 신주(神主)의 昭穆(소목)을 구분해야 한다. |
133문: 모든 예문(禮文)에 사자(死者)는 이서위상(以西爲上)이라해서 신위를 모실때 |
윗대 조상을 서(西)쪽에 모시고 아랫대 조상을 동(東)쪽에 모시는 것으로 되었습니다. |
향교 대성전(大成殿)의 성인의 위패를 보면 상위(上位)인 안자(顔子)와 자사(子思)가 |
동(東)쪽이고 하위(下位)인 증자(曾子)와 맹자(孟子)가 서(西)쪽입니다. |
그 이유(理由)는 무엇입니까? |
133답: 좌석의 순차에 있어서 동(東)과 서(西)에서는 생자는 동(東)이 상(上)이고 |
사자(死者)는 서(西)가 상(上)임은 말씀하신 대로 입니다. |
북(北)과 남(南)에서는 생사자(生死者)가 중앙(中央)이 上이고 양쪽 끝이 하(下입니다. |
그래서 대성전(大成殿)의 공자위(孔子位)는 중앙(中央)이며 북(北)쪽에 모셨습니다. |
이 제도는 가묘(家廟)의 배치(配置)에서 시조(始祖)를 모실때 중앙(中央)에 북(北) |
쪽에 모시는 것과 같습니다. 이 제도는 열성조(列聖祖)의 종묘(宗廟)에서도 |
태조(太祖)를 중앙(中央)에 북(北)쪽에 모시는 고제(古制)와 같은 것입니다. |
이렇게 최상위(最上位)를 중앙(中央) 북(北)쪽에 뫼실 때는 배향(配享)하는 신위 |
(神位)을 소(昭)(東) 목(穆)(西)의순서로 모시는데 그 이유(理由)는 중요한 의미를 |
갔습니다. 만일 공자를 중앙(中央)에 안자(顔子)을 서(西)쪽이고 삼위(三位)가 동(東) |
쪽이라 이서위상(以西爲上)에도 맞고 중앙위상(中央爲上)에도 맞습니다. |
그러나 공자(孔子)와 안자(顔子)만을 보면 안자(顔子)가 서(西)쪽이고 공자(孔子)가 |
동(東)쪽이 되어 오히려 안자(顔子)가 공자(孔子)보다 상석(上席)이 됩니다. |
신위를 모시는 순서는 윗대 신위부터 뫼셔야 하기 때문에 공자(孔子)를 먼저 모시고 |
다음에 이위(二位)인 안자(顔子)을 모시는데 안자(顔子)을 공자의 상(上)석인 서(西) |
쪽에 모실수 없기 때문에 상석(上席)인 동(東)쪽에 뫼시고 삼위(三位)인 증자(曾子)를 |
서(西)쪽에 뫼심으로써 공자(孔子)를 중앙상석(中央上席)에 위치하게 하는 것입니다. |
따라서 공자(孔子)는 孔子와 안자(顔子)만 보면 서(西)쪽이니까 상석(上席)이고 |
증자(曾子)까지보면 중앙(中央)이라 상석(上席)이 되는 것입니다. 자사(子思)의 |
맹자(孟子)도 같은 이치로 뫼셨겠습니다. |
*印章(인장)과 署名(서명)은 같은 의미이다. |
134문: 상 하급자(上下級者)가 서류에 결제를 할때 상급자는 인장(印章)을 사용 |
하는데 하급자는 싸인을 하면 실례가 아닙니까? 또 같은 인장이라도 하급자의 인장이 |
상급자의 인장보다 크면 실례입니까? |
134답: 인장(印章)과 싸인은 같은 것이니까 실례가 될 것은 없습니다. 우리나라 |
왕조때 고문서(古文書)를 보면 수결이라 해서 싸인을 했습니다. 인장은 주로 |
기관(機關)의 표징으로 썼습니다. |
인장(印章)의 크기는 가급적이면 하급자의 인장이 상급자의 인장보다 작아야 할 |
것입니다. 직관인(職官印)제도를 보아도 하급직관인(下級職官印)이 상급의 |
그것보다 작게 규정되었습니다. |
*나이가 적어도 行列(항렬) 예우해야 |
135문: 나이가 30살이나 적은 고조항(高祖行)인 상대를 어떻게 불러야 합니까? |
135답: 아무리 나이가 적어도 윗대 항렬이면 일가문중(一家門中)의 호칭은 항렬에 |
따라야 합니다. 질문의 경우 대부(大父)라고 불러야 하고 나이가 적은 대부는 |
나이가 많은 손자를 일가어른 또는 족장어른이라 불러야 합니다. |
*뢰주(酹酒)는 삼제(三祭) 삼제(三除)모두맞아 |
136문: 제례에서 신위에 올렸던 술을 지사가 들고오면 헌자가 모사에 세번을 조금씩 |
지우는데 그것을 삼제(三祭)라 합니까? 아니면 삼제(三除)라 합니까? 그리고 |
그렇게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
136답: 제례에서의 잔지움은 제주(祭酒)라고도 하고 뢰주(酹酒)라고도 합니다. |
강신 할 때 세번을 지우는 것은 뢰주(酹酒)이고 신위에 올렸던 술을 퇴하여 세번 |
지우는것은 제주(祭酒)라고 합니다. 뢰(酹)는 강신할 뢰라고 좨(祭)는 땅에 |
제사 지낼 좨입니다. |
세번 지우는 것을 三祭(삼좨)라 하면 세번 땅에 제사 지내는 것이되고 삼제(三除)라면 |
세번 덜어내는 것이 되어 삼제(三祭)는 목적의식을 뜻하고 삼제(三除)는 행위를 |
말해 모두 틀리지 않습니다. |
그러므로 뢰주(酹酒)와 제주(祭酒)를 함께 말할때는 상제(上除)가맞고 제주 할때나 |
말 할때는 삼제(三祭)가 맞습니다. |
*茶禮(차례)는 略禮(략례)이므로 祭酒(좨주) 안해 |
137문: 기제사(忌祭祀)에는 제주(祭酒)를 하는데 차례(茶禮)에는 않으며 헌작(獻酌) |
도 기제사(忌祭祀)에는 헌자가 잔을 들고 집사가 따른 다음 헌자가 올리는데 차례 |
(茶禮)에는 헌자가 주전자를 들고 제상위에 盞盤(잔반)에 직접 술을 따르는 이유는 |
무엇입니까? |
137답:기제사(忌祭祀)에는 헌작(獻酌) 祭酒(좨주) 進炙(진적)의 절차가 초(初) 아(亞) |
종헌(終獻)의 세번을 행하는데 차례(茶禮)는 술을 한 번만 올리는 單獻(단헌)이며 |
제주(祭酒) 진적(進炙)의 절차가 없습니다. 기제사(忌祭祀)는 삼헌(三獻)하는 정제 |
(正祭)이고 차례(茶禮)는 단헌(單獻)만 하는 략례(略禮)입니다. 차례(茶禮)는 사당 |
(祠堂)에서 지내는 원칙에 비추어 볼때 여러 위를 동시(同時)에 지내므로 절차를 |
약식화(略式化)한 것입니다. |
*湯의 진설위치는 제수진설(祭羞陳設)의 취지로 보면 3열이 맞아 |
138문: 제수진설에 있어서 탕(湯)의 위치가 2열로 예시되기도 하고 3열로 예시 |
되기도 합니다. 어느 것이 맞습니까? |
138답: 제사음식에 있어서의 탕(湯)은 우리나라의 대표적 예서(禮書)라고 할 수 있는 |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상례비요(喪禮備要) 사례편람(四禮便覽)에는 없고 율곡 |
(栗谷)의 제의(祭儀)초에만 탕(湯)이 보인다. 탕(湯)이 없는 예서(禮書)의 진설도에는 |
탕(湯)의 열(列)이 없고 율곡의 진설도에는 3열에 탕(湯)을 진설하는 것으로 |
되었습니다. 제수진설을 유난스럽게 가가례(家家禮)라 하여 구구한 주장이 많은데 |
탕(湯)이 없는 타예서(他禮書)를 준용하는 경우에는 탕(湯)을 제 2열의 면(麵)과병(餠) |
의 중앙에 진설하는 경향입니다. 진설도의 취지를 보면 동서(東西)의 균형과 제수의 |
중요도 및 신위(神位)가 흠향하기 편리하게 하는데 있습니다. 비교적 그릇의 높이가 |
낮으면 국물이있는 탕(湯)을 제 2열의 올리고 중심제수라고 할 수 있는 적(炙)을 상의 |
중심인 3열 중앙(中央)에 올리고 전(煎) 간남(看南)류를 적(炙)의 동서(東西)인 3열에 |
진열하는 것이 진열 취지에 맞는다고 여겨집니다. |
*석존례(釋尊禮)는 성균관(成均館)의 석존대제(釋尊大祭) 홀기(笏記)에 의(依)해야 |
139문: 저희 향교에서는 홀기(笏記)에도 없는 절차(節次)를 행하여 전교(典敎)가 |
교체 될때 논잡(論雜)이 되곤 합니다. 지방관례(地方慣例)대로 해야 될까요? 아니면 |
타향교(他鄕校)와 같이 하는것이 옳은가요? |
139답: 사가(私家)의 제례(祭禮)라면 가가례(家家禮)라 해서 가전지례(家傳之禮)가 |
흉이 될것이 없겠습니다만 향교(鄕校)의 춘추석존례(春秋釋尊禮)는 당연히 성균관 |
(成均館)의 석존대제홀기(釋尊大祭笏記)에 의(依)해야 할 것입니다. |
*양복(洋服) 양장(洋裝)의 정장(正裝)에는 코트가 없어 |
140문: 한국(韓國)의 정장(正裝)은 남자(男子)는 두루마기가 포함되지만 여자(女子)는 |
두루마기가 방한복이지 정장이 아니라고 알고 있습니다. 양복이나 양장의 정장에서 |
코트는 어떻게 취급됩니까? |
140답: 양복에 있어서는 男女 모두 코트가 방한복이지 정장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