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Riccardo Chailly
리카르노 샤이는 1953년 이태리 밀라노에서 작곡가인 루치아노 샤이의 아들로 태어난다.
지휘자 정명훈보다는 한 달가량 늦고 발레리 게르기에프보다는 3달 빠른 시간적 차이로 태어난 동연배다.
아버지에게 음악이론과 작곡을 배우고 페루지아와 밀라노 음악원에서 삐에로 구아리노에게 지휘를 시에나 음악원
에서 프란코 훼라라에게 지휘를 배운 후 20세인 1973년 고향인 밀라노 라 스칼라에서 클라우디오 아바도의
어시스턴트로 들어가 오페라 전문 지휘수업을 받는다.
1978년 라 스칼라에서 데뷔 한 그는 빈 오퍼,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코벤드 가든 오페라, 뮌헨 바이에른
오퍼 등에 객원 지휘를 하며 신예 오페라 지휘자로 명성을 얻는다. 27세 때인 1980년 빈 필과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을 데카와 출반을 하여 콘서트 지휘자로도 가능성을 보여준다. 29세인 1982년 베를린 룬트풍크
오케스트라의 수석 지휘자로 발탁되어 1989년까지 재직한다. 런던 필의 수석 객원지휘자로 볼로냐 오페라의
지휘자로 겸직하며 30대 중반까지 광폭의 활동을 이어가던 샤이는 1985년 데뷔연주를 한 RCO의 수석
지휘자로 1988년 임명되어 약관의 35세 때 세계 최상급 메이저 오케스트라를 맡는다. 거장 하이팅크의
세계 10대 교향악단 명성의 이 오케스트라를 맡아 견고한 앙상블의 오케스트라로 만들어 마리스 얀손에게
바톤을 넘겨 이 오케스트라가 세계 최상의 오케스트라라는 명성을 이루는 데 일조를 한다.
암스텔담 콘서트 게보 오케스트라는 이를 기려 명예 지휘자의 명칭을 그에게 부여한다.

Riccardo Chailly na Pražském jaru: Royal Concertgebouw Orchestra /30.5.2001/
2004년 퇴임한 후 2005년 라이프치히 게반트 하우스 오케스트라에 카펠마이스터와 라이프치히 오퍼의
총감독으로 임명돼 계약 갱신을 거듭하여 2013년 2020년까지 연장하였으나 2016/2017년 시즌까지만
하기로 하고 안드리스 넬손에게 바톤을 이어주기로 한다.
2017년 에서 2022년까지 5년간 고향인 밀라노 라 스칼라의 음악감독으로 계약을 마친 그는 클라우디오 아바도
후임으로 루체른 음악제의 음악감독에 지명돼 2016년 시즌부터 5년간의 계약이 이루어진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그는 그가 맡은 오케스트라나 오페라단 외 다른 오케스트라의 객원지휘를 거의 하지 않아 폭넓게
그의 공연을 볼 수 없다는 점 일이다.
리카르도 샤이는 30대 중반부터 세계 최상급 오케스트라인 로열 암스텔담 게보를 맡아 이 오케스트라가
전 세계 음악인들로부터 세계 최고의 앙상블이라는 찬사를 받는, 오케스트라 발전에 초석을 만들었고
마주어와 브롬슈테트의 후임으로 라이프치히 게반트 오케스트라를 맡아 이 오케스트라가 세계
음악인들에게 존중받는 오케스트라로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한다.
20대 초반부터 지휘자의 길을 확고한 목표로 라 스칼라에서 아바도에게 음악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오케스트라의 생리, 오페라단의 운영 등 클래식 음악 공연에 기초가 되는 모든 시스템을 익히고 이미
30세가 되기 전 준 메이저급의 베를린 룬트풍크를 지휘를 맡았고 35세 약관의 나이에 RCO를 맡아
지휘자로서는 가장 이상적인 이력을 쌓아 나간다. 암스텔담에서 그의 지도력은 빛을 발휘해, 어딘가
연약한듯한 느낌의 오케스트라를 무게 있고 중후한 앙상블로 바꾸어 놓는다. 오케스트라의 칼라를
바꾸는 작업은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인내를 요구하는 어려운 작업이다. 그의 이런 작업이 꽃을 피워
바톤을 이어받은 마리스 얀손의 탁월한 조련과 음악적 깊이가 더해져 RCO는 베를린 필, 빈 필을
제치고 세계에서 가장 존중받는 오케스트라가 된다. 30대 중반에서 16년간 장시간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을 함께한 암스텔담 게보에서 그가 만들어낸 결과물은 그가 세기의 지휘자로 존중받을만한
대단한 것이다.
암스텔담 게보 오케스트라는 네델란드라는 나라의 지리적으로 인한 특수한 성격의 문화를 그대로
반영하여, 깊이에 치우쳐 너무 딱딱한 독일과 밝음만을 강조하다 보니 깊이의 밀도가 부족한 영국,
이 두 문화의 장점들을 고루 받아들여 이상적인 앙상블을 유지해왔다.
샤이는 이에 단계를 더 높여 더욱 깊고 웅장하고 맑고 밝은 오케스트라 칼라를 완성해 나간다.
금관 섹션에 단단함과 깊이 있는 밝음을 첨가해 오케스트라 음량을 확장 시켜 표현의 폭을 넓혔고 부
지휘자 에도 드 발트가 오랜 시간 가꾸어 놓은 목관 파트의 조직적인 앙상블에 독일 스타일의 묵직함을
더해 견고한 목관으로 금관 파트와 대등한 발란스를 만들었고 스트링 파트 역시 확장되고 정리된 소리로
폭을 넓혀 모든 파트의 짜임세 있는 발란스를 이루어내 하이팅크 시절의 RCO와는 모든 면에서
사이즈가 커진 오케스트라로 변모시킨다. 또 오페라에 애착이 있는 그는 RCO를 네델란드 오페라의
공연에 참여시켜 연주력을 확장했고 그 전통은 그대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30대 중반 미완의 타국 지휘자를 불러들여 오케스트라를 맡긴 암스텔담 인텐단트의 慧眼을 높이 평가
해야 할 결과는 대단히 성공적이었고 샤이 또한 이 오케스트라를 맡음으로써 세계적인 지휘자 반열에
오른다.
그의 음악은 엄청난 에너지를 바탕으로 선명한 리듬, 과감하게 정리돼 주제를 살려 만들어지는 명료한
프레이즈, 오케스트라의 칼라를 책임지는 목관 섹션의 임무 비중을 떨쳐내고 직접 스트링과 금관 속에
들어가 어우러져 만들어지는 앙상블, 스트링과 금관까지도 다양한 칼라를 이루어내게 하여
오케스트라의 전체적인 발란스에 집중되는 앙상블을 만든다. 견고한 발란스와 에너지 넘치는 앙상블로
이루어내는 커다란 그림의 해석은 말러와 부르크너의 작품과 베토벤, 브라함스, 힌데미트,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메시앙 등의 작품에서 특히 빼어난 빛을 발휘한다.
그는 로시니, 베르디, 푸치니의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들을 발굴해 공연과 음원 출반으로 세상에
알리는데 힘을 쏟았고, 부르크너의 초기 작품, 말러의 유작인 심포니 10번의 데릭 쿡 연주회용
보관판도 과감히 연주 하고 음원으로도 남긴다. 말러에 의해 재 오케스트레이션 된 슈만 교향곡을
공연하거나 2011년 라이프치히에서 국제 말러 음악제를 개최하여 세계 각국에서 모인 10개의 다른
오케스트라가 말러를 연주하는 경이로운 작업을 이끌어 세계음악계에 신선함을 선사한다.
스트라빈스키, 힌데미트, 메시앙, 바레즈 (Edgard Varèse) 등 근현대 음악가의 작품을 조명하여
녹음과 보급에도 힘을 쏟는다.
62세의 리카르도 샤이는 이제 남은 인생의 여정을 고향인 밀라노로 돌아가 처음 오페라 지휘자로 출발
했듯이 오페라에 전념할 것으로 보인다. 그의 음악 여정에서 항상 에너지 넘치는 모습으로 세계
음악인들에게 성실하고 깊이 있는 삶을 각인시켜준 그가 고향에서 펼칠 새로운 모습을 기대하면서
글을 마친다.
ps. 리카르도 샤이와 정명훈은 1953년 한 달 간격으로 태어난 동년배의 지휘자다. 이 두 지휘자가 음악적으로는
다른 시각의 많은 차이를 보이지만 20대 초반부터 지휘자의 길을 걷고 세계 음악계에 많은 결과물을 내놓았고,
오로지 음악밖에 모르는 바쁜 삶을 산 이력, 서로의 음악적 해석에서는 많은 차이를 보일지라도 음악을 대하는
태도, 방향, 무게감, 깊이에서는 같은 사고를 하고 있다고 보인다.
필자가 이 동년배 지휘자 삶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가장 가슴 아프게 생각되는 점이 지휘자 정명훈의 삶속에
타인으로 인해 생긴 세상의 오해와 질타이다. 바스티유 오페라를 떠나면서 불거졌던 문제점이 지휘자 정명훈의
발목을 잡아 더 넓은 세상으로의 비상에 방해를 받았고, 타인에 메니지먼트를 맡겼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문제점
들이 친족의 잘못으로 그가 평생을 바쳐 일구어놓은 명예까지 짓밟히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는 우리나라의
지휘자를 떠나 세계 음악계의 좋은 자질을 갖춘 지휘자에 닥친 시련이었기 때문에 더욱 안타까운 일이었다.
이 두 지휘자는 음악 여정에 그리 많지 않은 시간을 남겨두었다. 고향으로 돌아간 샤이나 고향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정명훈이나 좋은 음악가로 우리들의 가슴에 남을 수 있기를 기원해 본다.
Ehrungen
franciscopaik.
첫댓글 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