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안 땅의 시내산을 찾아, 그 7년의 기록.
1990년 초반부터 하나님은 택한 백성들을 부르셔서 수천 년을 감추어 두셨던 하나님의 산, 성산을 조금씩 나타내기 원하셨다. 그럴수록 사우디아라비아는 더욱더 철두철미하게 그 산을 지키고 있다. 미사일과 레이더와 신무기들을 배치해 놓고, 그것도 모자라 베두인에게 총칼을 들려서 지키고 있다.
나는 이번 탐험을 통해 타복의 광범위한 지역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생활에서 남긴 수천 장의 암각화와 유물들을 찾아냈다. 그리고 지금 미국 고고학회에서 그것을 해독 중이다. 며칠 전에는 ‘야훼(YHWH)’라는 단어와 ‘모세’라는 단어를 해독하는 데 성공했다는 급보를 받았다. 이스라엘 백성이 남긴 40년 광야생활의 발자취는 이제 하나하나 학자들에 의해 해독될 날을 기다리고 있다.
시나이반도의 시내산이 진짜 시내산이 아닌 9가지 이유
1 시나이반도는 당시에 애굽의 땅이었다.
애굽에서 탈출하고자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백성이 다시 애굽 영토인 그곳으로 돌아가서 11개월을 살았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만약 전승되어 온 것처럼 시나이반도에 있는 무사산이 시내산이라면, 이스라엘 백성들을 홍해를 건너 미디안 땅에 왔다가 다시 홍해를 건너오든지 아니며 아카바로 돌아와야 한다는 억지 가설을 만들어야 한다.
2 이스라엘은 이집트에서 조상들의 흔적을 찾아내지 못했다.
이스라엘은 6일 전쟁으로 시나이 반도를 15년(1967-1982) 동안 다스렸다. 이스라엘은 그 15년동안 시나이반도에서 여러 가지 지질 조사와 군사 훈련을 펼쳤으나 가장 중요한 프로젝트는 조상들의 흔적을 찾는 것이었다. 시나이반도를 고고학자와 지질학자들이 바둑판 쪼개둣 면밀히 뒤졌으나 광야생활 40년의 흔적은 하나도 발견하지 못했다 더욱이 그들은 무사산을 시내산이 아니라고 단정 짓기에 이른다(The Jewish Encyclopedia,vol.14).
3 시나이반도의 시내산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나이반도를 지나기 3천여년 전부터 ‘신(=시나)’라 불렀다.
4 시나이반도의 시내산은 기원후 527년 순례객들을 충족시키기 위해 급조된 성지일 뿐이다.
성경고고학의 대가였던 요세푸스는 성경 말씀에 근거(출2:15-16,3:1,4:19,18:1,민10:29,22:4,7,25:6)해서 아라비아의 미디안 땅에 시내산이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로마 교황청은 시내산을 순례하고자 하는 그리스도인의 성화에 못 이겨 기원 후 527년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때 무사산의 북서쪽 언덕빼기에 케더린 성당을 세운다. 거기를 성지로 정하고 아무 근거도 없이 시내산으로 명명하여 공포해 버린 것이다. 그때 이후로 줄곧 역사가 왜곡되어 온 것이다. 주후 5세기 이전에는 그 어느 기록에도 거기를 시내산이라 부르거나 기록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5 출애굽해서 십계명을 받기까지 11개월 5일동안 애굽 땅에 있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이스라엘 백성이 유월절 밤에 출애굽해서 홍해를 건너고 엘림과 신 광야를 지나 시내 광야에 들어와서 십계명 받고 떠날 때까지의 기간은 정확히 11개월 5일이다. 애굽 군사들이 뒤쫓아 오는 상황에서 11개월 5일동안을 애굽 땅에 있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6 애굽 왕자로서 애굽 땅을 잘 아는 모세가 애굽 군인들이 많은 곳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데리고 갔을 리는 없다.
시나이 반도의 무사산에는 지금도 구리와 터키석을 비롯한 광산이 있다. 예로부터 광산이 있는 곳에는 군인들이 지키고 있기 마련이다.
7 시나이반도는 르비딤과 호렙산 사이가 48km나 떨어져 있어 성경과 다르다.
르비딤에 당도한 후 마실 물이 없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를 돌로 쳐 죽이려 했을 때, 하나님은 모세에게 호렙산 반석을 치라고 하셨다(충17:6).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실 정도라면 르비딤과 호렙산은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어야 하는 것이다.
8 시나이반도의 무사산 앞에는 250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앉을 만한 광야가 없다.
하나님이 성산에 임재하실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모습을 보며 떨었다(출19:16-20). 그렇다면 성산 앞에는 250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들어앉을 수 있는 광야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시나이반도의 성산 앞은 온통 협곡들로 가득해 눈을 씻고 찾아봐도 만 명조차 들어가 앉을 광야는 없다.
9 기존의 출애굽 경로에 의하면 홍해를 건널 필요가 없다.
고센에서 무사산까지는 육로로 올 수 있는 길이다. 홍해를 건널 필요가 전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경의 홍해를 건넌 사건이 거짓이란 말인가?
진짜 시내산이 미디안 광야에 있는 8가지 이유
1 현재 사우디아라비아 북서부 땅은, 예로부터 미디안 땅이라고 불려 왔다.
미디안 땅은 수천 년이 지난 지금도 미디안이라고 불리고 있으며 고지도에서 명시되어 있다. 여기는 지금도 수천 년 전의 나바테아인의 유적이 수도 없이 산재해 있는 곳이다. 나바테아인은 아브라함이 애굽 여인 하갈에게서 낳은 이스마엘의 장자 이름이고, 한국어 성경에 ‘느바욧’이라 표기되어 있다(창25:13).
2 하나님은 구약 시대부터 이미 아바비아와 미디안에 관해서는 명명백백하게 구분해 말씀하신다.
구약 성경이든 신약 성경이든 오래 전부터 이미 아라비아나 미디안, 그리고 애굽을 분명하게 표기하고 있다. (아라비아:왕상10:15, 미디안:창25:2,출2:15)
3 애굽 왕자 모세가 애굽 사람을 죽이고 도망간 곳이 성경에 시나이가 아닌, 미디안이라고 분명히 명시되어 있다.
4 하나님은 모세에게 모세가 살고 있는 미디안 땅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데려오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출3:12). 미디안 땅은 아라비아에 있는 것이 확실하며 시나이반도에 있을 수 없음은 자명한 일이다. 또한 시나이가 한 번도 아라비아에 포함됐거나 미디안에 포함된 적이 없었다. 이 말씀을 새겨 볼 때 시내산은 바로 미디안 땅에 있는 산인 것이다.
5 홍해를 건너 그들이 수르 광야로 들어가 물을 찾아 사흘 길을 헤매다가 마라의 쓴 물을 달게 마시는 장면을 생각해 보라.
아라비아 홍해 변에 수르라는 족장이 이 땅을 소유하고 있어서 그 지역을 수르 광야라 하며 그는 미디안 사람이었고, 미디안은 아라비아 반도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죽임을 당한 미디안 여인의 이름은 고스비니 수르의 딸이라 수르는 미디안 백성 한 종족의 두령이었더라”(민25:15).
6 모세의 장인 이드로는 분명히 아라비아 사람이요 미디안 땅에 산다고 했지 시나이에 산다고 한 적이 없다.
이드로의 집터는 지금도 사우디아바비아 북서쪽에 바드라고 불리는 곳에 있다. 그런데 이스트 테네시 주립대학 도서실에서 놀랄 만한 지도가 발견되었다. 바로 바드 옆에 이드로라 표시된 지도였다. 또한 이슬람 경전에서는 모세의 장인을 이드로라고 명시해 놓았다.
7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아말렉족과 전투를 벌였다고 했는데, 아말렉족은 미디안 광야 인근에 살던 아라비아인이다.
이들이 어떻게 그 막강한 애굽 군사들이 진치고 있는 시나이반도에 들어와 이스라엘 백성들과 싸움을 하 룻 있단 말인가.
8 사도 바울은 시내산의 위치를 아바비아에 있는 산으로 정확하게 기록했다.
“모세가 이 말을 인하여 도주하여 미디안 땅에서 나그네 되어 거기서 아들 둘을 낳으니라”(행7:29).
분명히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산으로 명시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갈4:25,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산은 지금 예루살렘과 같은 데니--”
(저자는 시내산이 아라비아에 있는 라오스산이 확실하다는 많은 증거들과 성경적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일독을 권한다. 읽고 나면 그의 주장에 확실한 근거가 있음을 수긍하게 된다. 놀라운 사실이다. 1,500년 가까이 카톨릭의 완전 사기에 놀아나다니, 그 많은 순례객들의 헛발질과 시간과 금전의 낭비를 어이할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