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은둔자들 사이에서 수 천년 동안 비밀리에 전해 내려온 비법이 세상 가운데서 그 활동을 시작한 지 벌써 30년, 미국에서는 이미 GM사나 AT&T사등 대기업에서 신입사원 채용과정에 활용하고 있을 만큼 그 보급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에니어그램이 새로운 밀레니엄이 열리기 시작하는 이 무렵 우리나라에서 활기를 띠시 시작한 것은 우연일까. 황지연 신부를 만나 에니어그램의 전부를 들어 본다.
에니어그램(enneagram)의 역사와 개념에 대해 소개해 주십시오.
에니어그램은 약 2000년 전 아프가니스탄에서 생겨났다고 합니다. 그 후 이슬람 국가 대부분에 보급되었지요. 고대 그루나 수피들에 의해 영적 지도와 상담에 사용되었던 에니어그램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얼마 안됩니다. 이들은 리더를 딱 두 사람만 키웠습니다. 그리고는 한 사람에게만 그것을 사용하도록 허락했죠. 다른 한 사람은 지도자가 사망했을 때를 대비해 맥을 잇기 위한 존재였을 뿐이였어. 에니어그램은 전적으로 구전되던 비법이었는데, 1970년대에 천주교 예수회 수사 한 사람이 인도에서 에니어그램을 배우면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70년대 들어와서 복원이 되고 80년 중반부터 보급 되기 시작했는데 90년대 와서 상당히 크게 확산이 되었습니다.
에니어그램은 희랍어인데 현대 사람들한테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용어입니다. 희랍어에 에니아스의 아홉이라는 뜻과 그라마라는 단위를 나타내는 단어를 합성한 말입니다. 그래서 에니어그램을 직역하면 아홉 가지의 무게라는 뜻이죠. 미국이나 다른 곳에서는 에니어그램을 아홉 개의 점, 또는 아홉 개의 선으로도 풀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것은 직관을 통해서 사람의 무게를 보는 직관적인 학문인데 사람의 무게에 따라서 그 사람의 성향이 결정된다고 보는 거죠. 즉 에니어그램은 아홉 가지 인간의 성격, 성향을 뜻한다고 보면 됩니다.
스타일이나 유형이라고 표현하지 않고 굳이 무게라고 표현한 것에는 어떤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에니어그램에서 말하는 아홉 개의 무게는 사람이 갖고 있는 각자의 기운을 의미합니다. 그것을 무거운 순서대로 구분해 보면 가장 무거운 형에서 가장 가벼운 형까지 아홉 가지로 구분할 수가 있습니다. 여기서 무게라는 것은 동양의 기(氣) 개념으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결국은 기의 무게에 따라서 사람의 성격이 결정된다고 보는 거죠. 더 정확하게 구분하려면 열여섯 가지로도 구분이 가능하지만 굉장히 복잡하고 또 비슷한 면들이 많아 아홉 가지로 구분해서 활용하고 있습니다.
동양의학에서 체질이라는 단어는 익숙한 반면 무게 개념은 아직까지 생소한 느낌입니다. 그렇다면 아홉 가지 무게는 무엇을 기준으로 구분됩니까.
아홉 가지로 나누는 기준은 의식의 힘의 중심이 어디에서 나오느냐에 따라 구분됩니다. 사람마다 무슨 일을 하거나 특별한 상황에서 힘의 중심이 어디에서 나오느냐가 결정이 되는데, 힘의 중심이 머리에서 나오는 사람이 있고, 두 번째는 심장에서 나오는 사람이 있고, 세 번째는 장에서 나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머리에서 나오는 사람이 기의 무게로 생각했을 때 가장 가벼운 사람이고 장에서 나오는 사람이 제일 무거운 사람에 해당됩니다.
수많은 다양한 사람들을 아홉 가지의 정형화된 틀로 구분짓는다는 것은 어떤 측면에서는 보편성이 결여된 것 같습니다.
다양한 사람들을 전부 아홉 가지로 구분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사람을 이루고 있는 가장 밑바닥의 기본 성향이 같다는 것을 의미하는 거예요. 같은 3번이라고 해서 똑같은 성격이나 취향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닙니다. 조금씩 다 틀린데 제일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몸 전체를 이루고 있는 틀, 그 사람을 전체적으로 이루고 있는 성격의 보편적인 그릇은 같다고 보는 거죠.
그렇다면 자신에 해당되는 무게를 어떻게 찾을 수 있습니까?
찾는 방법은 각 무게의 특성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본인이 장 중심인지 심장 중심인지 머리 중심인지를 먼저 찾은 후 그 장 중심에서도 몇 번에 해당하는지 찾는 겁니다. 장형은 무게 중심이 하복부, 소화관과 복강신경총에 있습니다. 동양적으로 표현하면 단전에 있다고 볼 수 있죠. 에니어그램의 아홉 가지 유형 중에 8번, 9번, 1번이 여기에 속합니다. 이들은 무의식적으로 내면에서부터 힘과 정의에 대해서 관심이 많습니다. 그래서 데모나 민주화 운동을 하는 사람들 중에 이런 유형이 많고 공공연하게 혹은 은연 중에 공격적이며 자기 영역를 요구합니다. 가정에서 남편이나 아내가 장형인 경우는 주도권 싸움이 치열하죠. 장 중심의 사람들은 현재에 살고 과거를 기억하며 미래에 대해 많은 것을 희망합니다.
어떤 일을 할 때 상당히 진지하고 진행 중인 일을 파악하는데 아주 빠른 감을 가지고 있어서 직감이 강하다고 볼 수 있죠. 그리고 냉혹한 현실을 만났을 때 질서 회복을 위해 본능적으로 대응하는 면도 있습니다. 어떤 일을 결정할 때 인간적인 면이나 개인의 감정을 고려하지 않으면서 객관적이고 원칙적입니다. 이때의 객관적, 원칙적이라는 것은 머리형들이 가지고 있는 그런 객관적, 원칙적인 것 같은 보편성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장 중심의 사람들은 대개 신체적으로 체격이 튼튼하고 건장한 편입니다. 주로 담력이 있고 용감하죠. 우리나라는 장형이나 심장형이 많습니다. 기분에 따라서 움직이는 사람들이죠.
그렇다면 심장형의 특성은 어떻습니까?
심장형들은 힘의 중심이 가슴에 있는 사람들, 즉 의식의 출발점이 심장과 순환기 계통에 있습니다. 체격은 동글동글한 것이 특징이죠. 심장형들은 대개 매력적으로 잘 생겼고 미소와 용모가 부드럽습니다. 장형들이 상대방에 대해서 직관적이라면 이들은 상황 파악에 있어서 직관적으로 잘 봅니다. 사람 위주로 일처리를 하기 때문에 어떤 일을 결정하는데 있어서 친한 사람들과 관련되어 있으면 그들에 의해서 영향을 받습니다. 친한 사람들에 대한 편견이 심하죠.
심장형의 좋은 점은 사람을 매우 존중한다는 겁니다. 항상 관심이 타인에게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즉 타인을 향해서 자신의 에너지가 움직인다고 표현할 수 있죠. 이들의 정신 상태는 상당히 주관적인 감각 상태에서 살고 촉각이나 미각이 발달해 있습니다. 이들은 또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자신이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혼자 있는 것을 힘들어 합니다. 여러 사람과 관계를 맺고 있을 때 자신의 존재 가치를 인식하고 홀로 독립되어 있을 때는 자신의 존재 가치가 없다고 인식합니다. 장형은 주의가 내면과 밖을 자유롭게 왔다갔다 하는데, 심장형은 자신의 관심이 밖에만 있습니다. 종교인으로 볼 때 심장형들은 내적인 기도를 따분하고 힘들다고 느낍니다. 이들이 만약 어떤 종교를 선택한다면 자신과 친분 있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가는 겁니다. 이들은 또한 어떤 권위나 이미지, 즉 명예에 관심이 많습니다. 장형은 내가 이 단체에서 얼마만큼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느냐를 중요하게 인식하는데 심장형은 지배보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권위있게 보여지는 것, 존중이나 존경받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머리형은 어떤 특성이 있는지요?
머리형들의 의식이 나오는 신체 기관, 즉 관제탑은 뇌와 중앙 신경 조직입니다. 5번, 6번, 7번 유형을 포함하는 머리형들은 두뇌에서 모든 힘이 나옵니다. 체격을 보면 몸이 허약하고 가냘픈 편이며, 여자의 경우 가슴이 편편합니다. 목이 길고 빈약한 근육 발달 등이 이들의 특징입니다. 그 이유는 어떤 상황을 만났을 때 이들은 모든 에너지를 머리로 쓰고, 오지 않은 상황을 머리로 미리 생각을 하다보니까 에너지가 다 빠져나가서 근육으로 갈 틈이 없습니다. 그래서 먹어도 찌지 않는 편이기 때문에 다이어트를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죠. 성격은 부끄러움을 타고 소심해서 수줍음을 많이 탑니다. 자아의 세계가 확고하게 자리잡혀 있는 반면 그 세계가 작은 것이 특징이죠. 원대하거나 크지 못합니다. 반면에 상당히 논리적이고 합리적입니다. 그래서 관찰, 분석, 비교, 대조하는 사고의 과정을 통해서 상황을 파악합니다. 어떤 상황을 만났을 때 절대로 먼저 판단분별하지 않습니다. 대체적으로 어떤 일을 결정할 때도 논리적이고 이성적이면서 타당성이 있는지 여부를 많이 따집니다. 그리고 자신의 상사와 자신이 속한 단체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는지에 마음을 많이 씁니다. 머리형들은 대체적으로 전통과 관습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권위있는 사람들의 의견을 존중합니다. 그것은 자기의 내적인 기준이 없는 데서 오는 문제라고도 볼 수 있죠. 무슨 일이 터지면 머리형은 성찰을 위해서 한 걸음 뒤로 물러서는 자세를 취합니다. 예를 들어 누가 쓰러졌을 때 들쳐업고 뛰는 사람은 장형이고 나와 가까운 사람이 쓰러진 것에 대해 슬퍼서 울고 앉아 있는 사람은 심장형이고, 한 발짝 물러나서 이 상황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생각하고 앰블런스를 부른다든가 하는 사람이 머리형이죠. 긴급한 상황이 되면 냉정해지는 사람이예요. 그리고 머리형들의 모든 정보 수집 경로는 눈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종교 생활에서도 눈에 보지 않은 것은 믿기 어려워 합니다. 기본적으로 종교를 가지기 가장 힘든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죠. 왜냐하면 자기의 세계가 작고 그 작은 세계에서 모든 것이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것으로 차 있기 때문에 종교라든가 신이 파고들 자리가 없습니다. 그리고 머리형은 명령이나 의무에 대해서 굉장히 감각이 발달해 있습니다. 현대 사회는 논리적이고 합리적이고 생각한 후에 행동으로 옮기는 머리형 사람들의 사회라고 할 수 있죠.
제 자신을 적용해 보면 한 가지 유형에 들어맞기 보다는 여러 유형이 섞여 있는 것 같은데요.
물론 섞여 있습니다. 에니어그램에서 머리형, 장형, 심장형으로 구분하지만 그 이전에 이 세 유형이 한 사람 안에 다 있습니다. 다만 어느 부분이 우세하느냐의 문제이고, 우세한 부분이 있다는 것은 결국 균형이 깨져 있는 것이죠. 세 유형이 같은 퍼센트, 즉 33%씩 존재한다면 그 사람은 통찰이 잘 되는 사람이고 전체 상황에 따라서 힘을 써야 될 때는 힘을 쓰고, 마음으로 끌어들여야 할 때는 정을 쓰고, 또 머리를 써서 아이디어를 내야 될 때는 머리를 쓰는 그런 이상적인 사람입니다.
에니어그램의 진행 방식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십시오.
에니어그램은 이틀 동안 진행되는데 첫째날은 에니어그램에 대한 강의를 하고 둘째날은 워크샵으로 진행됩니다. 첫날 강의에서 머리형, 심장형, 장형을 찾는 방법과 1번에서 9번까지 아홉 가지 유형에 대한 설명을 해주면 그 중에서 자신이 제일 많이 속해 있는 부분들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1번에서 9번 중 어느 한 성향과 가장 많이 일치된다고 해서 그 성향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거의 100% 1번 유형에 가깝다 하더라도 리더가 봤을 때 그가 1번’처럼’ 하고 있을 때는 다르다는 겁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어릴 때 자신의 성격으로 되돌아 가서 찾아내야 됩니다. 기본적으로 어릴 때 취했던 행동 방식들을 가지고 자신의 성향을 찾아내고 그 다음에 현재의 자기를 찾아내면 어떻게 자신의 성격이 변천되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 변화 과정을 봄으로써 자신을 이루고 있는 틀이나 부정적인 것으로서 신경증적 문제나 열등감, 성격적 결함 등을 고칠 수 있는 거죠.
둘째날 워크샵은 어떻게 진행이 됩니까?
첫째날 자신의 유형을 찾은 다음 둘째날은 같은 유형끼리 모여 토의을 통해 자신을 확인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만이 세상에서 유일하고 독특한 인간이고 자신의 성격은 혼자만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같은 유형들이 3,4명씩 모여서 대화를 해보면 스스로를 더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됩니다. 토의를 할 때 여러 사람들로부터 자신을 확인받으니까 상당히 많은 도움이 됩니다. 토의가 끝난 후 1번부터 9번까지 발표를 하는데, 발표하는 이유는 같은 번호끼리는 이해가 되면서 동시에 다른 번호를 들으면서 사람이 각각 다 틀리다는 걸 가슴으로 느끼게 되는 거죠. 발표가 끝나면 2단계에서는, 내면 깊은 곳에 자기가 가지고 있는 가장 본질적인, 예를 들면 종교 차원에서 얘기하면 죄고 심리학적으로 얘기하면 심리 장애가 있는데, 그 장애를 찾아내서 극복시키는 거죠. 그렇게 되면 사람이 상당히 자유로워집니다. 자기 자신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거죠.
자신의 본질적인 장애는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설명해 주십시오.
결국 깨진 균형을 복원시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자신이 가지고 있는 어떤 큰 부분을 포기하고 모자란 부분을 다른 성향에서 보충하는 것으로 균형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8번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2번의 성향을 키워나가야 되거든요. 8번은 폭력적인 기질이 강한데, 사회에서 8번에게 비폭력적인 태도를 가르켜 놓으면 8번은 폭력적이지 않으려고 결심하지만 그것에 억눌려서 나중에는 더 큰 폭력을 쓰게 됩니다. 이런 경우 애니어그램에서는 폭력성은 그대로 두고 2번이 가지고 있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연민과 돕고자 하는 마음을 8번 안에 키워 놓으면 폭력적인 기질은 자동으로 내려가게 됩니다. 2번은 남을 도우려는 욕구가 강하거든요. 이러한 변화가 단시일 안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의 제 경험으로 봤을 때 자기가 자기를 올바로 앎으로써 이미 반 이상 해결이 됩니다. 아주 습관적으로 깊이 몸에 뿌리가 박혀 있는 것들도 몇 개월만 노력하면 해결할 수 있구요. 같은 8번이라도 8번이 8번으로 있는 사람이 다르고, 8번이 5번이 되거나 2번이 되었을 때 다른데 이런 부분들을 2단계에서 다뤄줍니다. 프로그램에 참가해서 방법론만 익히고 나면 일상 생활 속에서 자신의 부족한 부분만 키워나가면 됩니다. 산 속에서 도를 닦을 필요없이 사회 안에서 도를 닦는 것과 같다고 보면 됩니다.
8번 유형의 사람이 폭력적이므로 2번의 성향을 키워놓는다는 것에 대해서 말로는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만 실제 어떻게 체험이 되는지 궁금합니다.
한 사람 안에 단점이 있으면 그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다른 성향이 함께 있습니다. 그것이 다만 눌려 있는 것뿐이죠. 예를 들면 8번은 폭력적인 기질과 함께 그 안에는 다른 사람한테 따뜻하고 부드럽게 대해주고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 그런데 8번의 경우 항상 나는 강해야 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립니다. 강해야 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다 보니까 누군가에게 따뜻하고 부드럽게 대해주는 것은 약해지는 것이이라고 인식합니다. 그래서 계속 강한 척하려고 하다보니까 폭력을 쓰게 되고 남을 지배하게 되는 거거든요. 에니어그램을 하고 나면 지금까지는 내면에서 아주 작게 들리던 소리, 즉 다른 사람에게 부드럽고 따뜻하게 대해주는 것도 좋은 것이라는 소리에 관심을 갖기 시작합니다. 결국 그 소리의 메시지가 2번 성향이예요. 그래서 처음에는 남한테 따뜻하고 친절하게 대하는 것이 굉장히 어색하고 쑥스럽게 느껴지는데 그 어색함을 깨고 몇 번만 행동으로 실천하면 거칠고 강한 행동이나 말투가 부드러운 상태로 돌아가는 거죠.
스스로 자신의 무게를 못찾는 경우도 있을텐데요?
에니어그램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본인 스스로 자신을 찾는 것입니다. 자기가 자기를 찾아야만 제대로 이해가 되고 체험이 되거든요. 그것이 끝까지 안 될 때는 리더가 ‘당신은 이런 부분에 대해 한번 깊이 생각해 보시오.’ 하고 권합니다. 거꾸로 자기를 발견할 수 있게 도와주는 방법이죠.
에니어그램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관심이 있는 사람들한테는 굉장히 큰 호응을 받지만 자신에 대해서 합리화하거나 감추려고 하고 자신으로부터 피하려고 하는 사람한테는 아무런 도움이 안됩니다. 자신의 성향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어떠한 인격의 성숙도 이루어내지 못합니다. 에니어그램 그룹 활동을 해보면 회피하던 사람들도 옆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문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을 보면서 자극을 받아 자기를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되기도 합니다.
기존의 심리 프로그램과 에니어그램과의 차이점이 있다면--
기존의 프로그램들은 심리학을 바탕으로 출발했습니다. 그러나 에니어그램은 초심리학(super psychology)이라고 할까요. 체계적인 학문이라기보다는 직관으로 사람을 느끼는 거죠. 심리학이 발달되어 있는 지금 상태보다도 2천5백년 전에 도를 닦는 사람들이나 은수자(隱修者)들이 하늘과 직관을 통해 서로 통교가 된 상태에서 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너무 신비적이라고 하겠지만, 사실 신비적인 경향이 강합니다.
기존 심리 프로그램도 나름대로의 장점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에니어그램은 직관으로 인간의 내면을 꿰뚫고 있어서 균형을 찾도록 합니다. 특히 에니어그램은 자신의 문제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전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릅니다. 정신과에서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에니어그램을 적용한 상담을 통해서 해결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우울증과 신경증으로 20년 이상 정신과 약을 복용하던 할머니가 있었는데 약을 끊는 것이 자신에게는 죽음이라고 여길 정도로 약을 신뢰하고 계셨어요. 그래서 에니어그램을 개괄적으로 설명하고 할머니가 8번에 해당되기 때문에 2번 성향을 키우도록 조언했습니다. 그랬더니 3개월 만에 좋아져서 약을 끊게 되시더군요. 사실 그녀는 8번이면서 5번상태에 있었거든요. 8번이 5번이 되었다는 것은 자기가 자기를 싫어한다는 거예요. 자기 자신에 대한 폭력성이나 또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어떤 성향들에 대해서 거부 반응을 나타내는 건데, 내 자신이 8번인 것을 인정하고 그 다음에 2번으로 나아가면 상당히 긍정적이고 여러 사람과 어울릴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에니어그램은 이런 방식으로 성향에서 오는 정신적인 많은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에니어그램이 추구하는 목적은 어디에 있습니까?
에니어그램의 목적은 첫째 자아발견이고, 둘째 우리가 서로 다르다는 걸 알게 하는 데 있습니다. 먼저 자기 자신에 대해서 깊이 알게 되면 자신을 뜻대로 관리할 수 있게 되겠죠. 두 번째 우리가 서로 다르다는 걸 알면 더 이상 갈등을 일으킬 필요가 없게 됩니다. 인간 관계에서 싸움이란 마치 감나무와 배나무가 있는데 감나무가 배나무한테 너는 왜 감이 안 열리냐고 따지는 것과 같다는 걸 깨닫게 되는 거죠. 아홉 가지 성향의 사람들이 우리는 이런 사람들이다 하고 발표하면, 거기서 사회나 가정에서 일어나는 인간의 갈등 문제가 많이 해결됩니다. 상대가 나와 다른 성향의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만으로도 이혼하려고 했던 사람들이 마음을 바꾸고, 또 자녀들을 자신의 성향으로 끌고 가서 동일화시키던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맞는 가장 옳은 방향으로 성장하도록 도와주는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
신부님 설명을 듣고보니 에니어그램은 특별한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뿐 아니라 일반적으로 인간관 계 속에서 갈등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프로그램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말을 이해하는 사람이면 누구든 다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정신과 의사들이나 그밖에 상담 분야에서 전문적으로 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유용하죠. 그리고 가정 생활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부부들이나 자녀, 진로 문제나 자신의 성격에 대해서 열등감을 가지고 고민하는 학생들, 도를 깨치고 싶어하는 사람들, 아봐타나 어떤 의식개발 프로그램에서 학생들을 잘 안내하고 싶어하는 마스터들한테도 유용한 프로그램입니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들한테도 좋을 것 같습니다만--
어느 초등학교 교사 한 분이 반 아이들 50명을 대상으로 에니어그램을 가르쳐서 학생들로부터 왕따 당하는 학생들을 반원으로 포용하는 문제에 적용하고 있습니다. 올 1년 임상 실험을 하고 있는데, 좋은 결과가 나오면 교직에도 쓸 수 있겠죠. 그리고 어린이들, 중고생 캠프나 인성 교육에 활용하면 친구들을 이해하게 되니까 왕따 같은 사회문제를 많이 해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얼마전 TV에서 직장에서 따돌림당한 사람이 자살했다는 뉴스가 보도될 정도로 최근 따돌림 문제는 심각한 사회 문제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에니어그램을 잘 활용하면 이런 사회 문제도 해결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외에 에니어그램이 활용될 수 있는 분야가 있다면?
사회 어느 분야에서나 다 쓸 만큼 에니어그램의 활용도는 광범위합니다. 뱀과 돼지는 서로 상극인데, 돼지는 뱀을 보면 잡아먹고 뱀이 돼지를 보면 물어버립니다. 에니어그램에서도 상극이 나옵니다. 어떤 사람은 태어나서 처음 보는데도 끌리고 좋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마주 보기도 싫은 상태를 경험하게 되죠. 그러면 왜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지 자기 자신을 알면 거기서부터 탈피할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결국 자기 문제거든요. 내가 가지고 있는 어떤 성향이 그 사람의 성향과 반대되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자기 자신을 방어하고 있는 건데, 그것을 모르고 있으면 스스로 상처입기도 하죠. 그런 경우에도 에니어그램은 활용됩니다.
미국의 대기업에서는 일반적으로 에니어그램을 폭넓게 활용하고 있을 정도로 일반화되었다고 들었습니다.
미국 사회에서는 굉장히 일반화되어 있습니다. 미국의 많은 대기업이 신입사원 선발이나 직원 재교육에 에니어그램을 쓰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GM이나 AT&T 등 다수의 대기업체들이 프로그램을 실시해서 큰 성과를 얻고 있습니다. 그리고 스텐포드 대학교, 로욜라 대학, 워싱턴 DC의 타우슨 대학교에서도 에니어그램을 연구하면서 세미나를 열고 있습니다.
언제부터 에니어그램을 해오고 있으며, 에니어그램을 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
91년도 필리핀에서 공부할 때 처음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후로 10년이 지났는데 주로 수녀원이나 카톨릭 내에서 자아 완성으로 가는 교육에 많이 사용을 해왔습니다. 그리고 신자들 대상으로 그들의 가정이나 직장에서 겪는 여러 가지 인간 갈등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도 많이 적용해 오고 있죠.
신부님께서 현재 운영중인 프로그램이 있습니까?
저는 매월 첫 일요일 에니어그램 부부모임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보통 결혼 생활 10년에서 20년 된 주부들이 배우자의 성격을 이해할 수 없고 그들로부터 너무 많은 피해를 받았다, 희생 당했다, 그런 얘기들을 합니다. 함께 산다는 게 너무 힘들고 사소한 일로 계속해서 다툼이 일어나니까 못살겠다고 하던 사람들이 에니어그램 부부모임에 서너 번만 나오면 배우자를 다 이해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혼하려던 사람들도 다시 이해하고 사는 방향으로 가게 되죠. 한달에 10번 싸우던 부부들이 에니어그램을 하고 나면 처음에는 조금씩 줄어들다가 거의 다투지 않고 지내게 됩니다. 이성적으로 이해한 것을 몸으로 체득하기까지 시간이 조금 걸리지만 우리는 서로 다른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만 하면, 그리고 자기의 문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결국에는 자기가 바뀝니다.
성향이라는 것은 마치 술래잡기 하는 것과 같거든요. 그래서 자기의 성향을 정확히 꿰뚫어 보고 나면 그 성향으로부터 풀려납니다. 꼭 노예 생활에서 풀려난 것처럼 자유로워지는 거죠. 거기서 풀려나지 못했을 때는 자기 성향에 묶여 노예 생활을 계속 하게 됩니다. 성경에 사도 바오로가 ‘인간은 죄의 노예다’ 라고 했는데, 여기서 죄라는 것은 결국 성향입니다. 죄는 각자가 가지고 있는 극복하지 못한 성향이죠. 그러한 성향들을 에니어그램 강사들은 바로 볼 줄 알아야 됩니다.
에니어그램은 그야말로 자유의 문을 여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강사로서 갖춰야할 조건이 있다면--
에니어그램은 학문이 아니기 때문에 공부해서 석사, 박사학위 받는 과정이 없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각 무게를 찾는 방법과 각 성향에 대한 깊은 이해만 있으면 누구든지 할 수 있습니다. 좀 더 나아가 전문적이 되려면 사람을 보고 그가 몇 번 성향이라는 걸 느낄 수가 있어야 됩니다. 동양적으로 표현하면 기감 훈련 같은 거죠. 몇 번인지를 정확히 알아 낼 수 있어야 완전한 리더라고 할 수 있죠.
그래서 강사는 직관력이 강한 사람이나 정신 세계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삶에 대한 통찰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적합하겠지요.
2천년 이상의 오랜 역사에도 불구하고 비밀리에 전수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러시아의 구지예프도 에니어그램을 접하고 연구했는데, 그는 에니어그램을 철학자의 돌에 비유하면서 ‘에니어그램을 아는 것은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이 그것을 아는 것을 비밀로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만큼 강력하다는 거지요. 에니어그램은 잘 사용하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좋은 도구이지만 사용하는 사람들의 의도에 따라서 악용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회사에서 어떤 특정한 성향의 사람들만 뽑으면 노동조합 같은 것은 생길 수가 없습니다. 그런 식으로 쓰일 때는 인간이 도구가 되는 거죠. 제가 볼 때는 그런 이유 때문에 2천 년 동안 밖으로 나오지 않고 내부에서만 구전되면서 도 닦는 사람들, 종교인들이 썼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세상에 나와서 빠르게 보급되고 있는 것은 밀레니엄과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닐까요.
지금까지 인간의 삶은 물질적인 면에 치우쳐 있었습니다. 그런데 2000년대는 정신적인 면이 크게 열리는 시대가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에니어그램은 자아 완성을 가로막는 장애, 즉 각 성향의 문제를 인식하게 해주고 자아의 깨어진 균형을 바로 잡아주는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제나름대로 에니어그램을 해보고 난 뒤에 내린 결론은 정신세계로 들어가는 모든 분야의 통과문이라는 겁니다. 지금 현대 사회가 물질주의와 황금만능주의에 물들어 인간성을 완전히 상실했는데, 에니어그램은 많은 사람들한테 다시 정신 세계를 열어놓는 계기가 될 거예요.
모든 정신 세계로 들어가는 제대로 된 것들의 공통점은 채움이 아니라 비워내는 겁니다. 인간이 정말로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어떤 것이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 본성 자체가 우주를 다 가지고 있는 상태이므로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비워내기만 하면 됩니다. 비우는 작업에서 가장 기본적인 것은 내가 비워야 할 어떤 성향을 가졌는지 먼저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저는, 에니어그램을 가지고 먼저 자신의 성향을 비워야 그 다음 단계로 깊이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사람들은 물질이나 밖에 있는 것을 더 많이 채우는 방식으로 행복을 찾으려고 하는데 저는 그런 사람들한테 있는 것을 밖으로 버려서 행복을 찾아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제가 앞으로 일반인을 대상으로 에니어그램을 보급하고 싶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에니어그램의 보급에 대한 계획을 구체적으로---
7월부터 일반인들 대상으로 적극적으로 보급할 계획입니다.
지금까지 에니어그램에 참가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그냥 이틀 동안 듣기만 했는데도 의식이 굉장히 넓어졌다, 세상에 대해서 뭔가 쫓기는 듯한 느낌에서 탈피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에니어그램을 깊이 듣고 한번 이해만 해도 그런 현상이 일어납니다. 일상에서 다른 사람의 사소한 행동에 대해서 시비판단이 있었는데 이걸 알고 나면 그게 없어집니다.
제가 여러 해 동안 상담을 해오고 있는데, 상담에서 느끼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인간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얘기합니다. 인간 관계가 힘든 이유는 자기의 기준, 즉 성향을 가지고 다른 성향을 가진 상대방을 보고 자기 성향에 맞추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을 잘 알고 그의 기준으로 보았을 때 우리는 상대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거죠. 그리고 에니어그램은 어린 시절과 자신의 내면의 심리적 흐름에 의해서 모든 삶이 결정되었기 때문에 자기 자신이 인생의 책임자다, 결국 내가 묶었으니까 내가 풀어야 된다 즉 결자해지라고 하는 그런 관점이기 때문에 누구든 한번 해보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에니어그램이 널리 퍼져서 인간을 획일적으로 만드는 사회 관념에서 벗어나서 다양성을 인정하는 세상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지금까지의 인류역사가 등수와 차별, 경쟁을 추진력으로 지구 문명과 사회의 발전을 이룩해 왔다면 앞으로 다가오는 세기는 그야말로 차이와 다양성을 원동력으로 조화로운 지구 문명을 창조해 가는 세상이 되어야겠지요. 그런 세상을 여는데 일조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에니어그램은 새로운 천년을 맞는 시점에서 차별의 세상에서 차이의 세상, 다양성의 세상으로 나아가는 멋진 관문이 될 듯하군요. 지금까지 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