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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http://www.ohmynews.com/ 예전처럼 흔하진 않지만 아직도 요즘처럼 무더위가 시작될 때 한적한 시골에 가면 커다란 느티나무 아래서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따각거리며 장기 두는 걸 구경할 수 있다. 평소 할아버지의 근엄함은 어디로 갔는지 할아버지들끼리 물려달라 안 된다며 티격태격 말싸움이라도 하는 광경을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분명 그 사람이 그 사람인데 서는 자리에 따라 장기실력이 천차만별이 된다. 그렇게 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해로부터 자유로울 땐 누구나 시야가 넓어지고 판단력도 명료해진다. 그러나 자신이 이해에 얽매이게 되면 판단력도 불분명해질 뿐 아니라 소소한 것에 얽매여 진작 봐야할 것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현상은 비단 장기판에서만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친구나 가깝게 지내던 이웃이 어떤 고민거리를 상담해 오면 아주 이성적인 지혜의 결단에 넉넉하다고 해야할 여유까지 보여준다. 그러나 막상 본인이 그런 고민의 주인공이 되면 인사불성이 되어 이해는커녕 스스로를 옭아매는 어리석은 판단을 하게 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런 현상은 까탈처럼 따라붙는 작은 이기를 버리지 못해 번번이 빠져드는 어리석음의 늪 때문이지만 누구도 쉽게 그 늪에 다시는 빠지지 않을 거란 호언을 하진 못할 듯하다. 언제나 정말 뚜벅뚜벅 여유 있는 마음으로 산사를 다녀오리라 다짐하며 집을 나서지만 몸뚱이만 뚜벅뚜벅 게으름을 피울 뿐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종종걸음으로 조급증은 버릴 수 없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산사에 들러 단청문양을 보면 어렵지 않게 세 개의 점이 그려졌거나 조각된 것을 보게 된다. 절에 모든 것에는 의미가 있고 뜻이 있다. 그러니 그 점의 숫자인 3에도 무슨 뜻이 있을 듯하다. 몸을 낮추어 하게되는 절도 때와 장소에 그 수가 달라진다. 생존해 계신 부모님이나 어른들께 절을 올릴 때는 한 번 절하는 것으로 끝난다. 그러나 제사를 지낼 때나 상가에서처럼 돌아가신 분들께 절을 올릴 때는 두 번을 절하게 된다. 그런데 절에 가서 절을 하게되면 최소한 세 번은 해야 한다.
한 번쯤 '절에선 왜 절을 세 번이나 하는가'에 대해 의문을 가져본 사람도 적지 않을 듯하다. 절에서 하는 세 번의 절 중 한번은 부처님(佛)께 올리는 절이며 또 한 번은 부처님의 커다란 가르침(法)에 대한 절이고 나머지 한 번은 스님(僧)께 드리는 절이다. 불교와 인연이 있던 없던 '삼보사찰'이란 말을 한번쯤은 들어봤으리라 생각된다. 여기서 말하는 삼보란 불교에서 보배롭게 여긴다는 세 가지를 말하는 것으로 세 번의 절에서 알 수 있듯 부처님과 가르침 그리고 스님이 삼보로 꼽히는 불교의 세 가지 보물이다. 그러기에 절에 있는 건축물이나 문양에서 삼보를 의미하는 세 개의 점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게되는 것이다. 절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야단법석에 빠트리지 않고 등장하는 의식 중 하나가 '삼귀의례'다. 삼귀의란 부처님과 가르침 그리고 스님께 내 모든 것을 다해 따르며 귀의하겠다는 예를 나타내는 것으로 여기에 등장하는 3이란 숫자도 삼보를 의미한다. 통도사는 한국 불교 세 보물 중 으뜸
반복되는 얘기지만 한국에는 수만 개의 절이 있다. 그 수만 개의 절 중 한국불교의 세 보물이라 할 삼보사찰로 명명된 절이 있다. 경남 양산에 있는 영축산 통도사는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불보사찰이며 합천 가야산에 있는 해인사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담고 있는 팔만대장경이 있는 법보사찰이다. 그리고 전남 순천에 있는 조계산 송광사는 수많은 국사(國師)와 대덕고승을 배출한 승보사찰이니 이 세 사찰을 일컬어 삼보사찰이라 한다. 전국 방방곡곡에 부처님 말씀을 전하고 출가자들이 수행하는 공간인 사찰 어느 곳이 귀하지 않고 청정도량이 아닌 곳이 있겠냐마는 그래도 한국불교의 세 보물로 불리는 곳이 이곳들이니 한국불교의 세 보물 중 그 첫 번째가 부처님의 진신사리와 가사를 봉안한 불보사찰 통도사다. 가 본 사람은 알겠지만 불교에서 통도사가 차지하는 중요성이나 역사성에 앞서 우선 그 규모에 놀란다. 매표소부터 시작되는 아름드리 소나무 그늘과 길옆 바위에 새겨진 글자들이 빛 바랜 역사책 한 페이지를 보는 듯하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법화경을 설한 곳으로 유명한 인도의 영축산과 같은 이름을 가진 산이기도 하지만 산세 또한 인도 영축산과 통한다 해서 통도사라는 절 이름을 갖게 되었다 하니 부처님을 모신 성지로 손색이 없는 모양이다. 통도사가 있는 영축산 계곡은 절 골이다. 입구부터 시작된 산 내 암자들이 촌락을 이루고 있다. 비록 속가의 촌락처럼 다닥다닥 붙어있지는 않지만 부처님을 뵙겠다는 마음만 있으면 어렵지 않게 닫을 수 있을 만큼 거리에 20여 암자들이 수행공간으로 기도처로 들어서 있다. 통도사를 목적으로 하던 영축산을 둘러보겠다는 마음으로 가던 산문을 들어서면 제일 먼저 맞게되는 곳이 통도사다. 일주문을 지나며 오른쪽으로 맞게되는 부도군이 통도사의 역사와 무게를 말해 준다. 수십인지 수백인지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의 부도가 군을 이루고 있다. 크기와 형태도 여러 가지지만 부도에서 흘러온 세월을 느끼게 된다. 처음엔 또렷하였을 조각이 불분명할 만큼 오랫동안 그곳에 있었을 부도가 있다. 검버섯 핀 할아버지 피부처럼 이끼를 안고 있는 부도도 보이지만 아직 그 숨결이 들릴 만큼 젊은이 피부처럼 뽀얗고 광택 나는 새 부도나 비석도 보인다.
그런 부도군과 불이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게 되면 사방에 둘러선 전각에서 전설이 쏟아지고 백발수염 성성한 도인들의 좌담소리가 들릴 듯 하다. 전각들마다 묵직한 뭔가가 있다. 여느 절들 특정 전각에서 느끼던 그런 고색이 통도사엔 만연해 있다. 어떤 석수장이도 어떤 목수도 흉내내지 못할, 오로지 세월만 담아낼 수 있는 그런 오묘함과 편안함을 펼쳐내는 곳이 통도사다. 여느 산사처럼 이 전각 저 전각 다 들려 참배라도 하려면 반나절은 족히 걸려야 할 듯하다. 그렇게 웅장함에도 가지런함이 있다. 돌담길을 걷듯 그렇게 걸어도 좋고 숲길을 산책하듯 그렇게 걸어도 좋을 그런 곳이다. 원체 유명한 곳이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분주하게 왕래를 하지만 어느 곳이고 들여다보면 마음 한 자락 걸치고 쉴만한 안락함이 있는 곳이다. 통도사는 그 자체 가람의 크기와 전각의 수, 수많은 탑과 비석, 산 내에 20여개의 암자를 거느렸다는 규모도 규모지만 이런저런 상징성 또한 가히 한국 불교 으뜸이다. 우선 삼보사찰 중 제일이라 할 불보사찰이며 5대 적멸보궁 중 하나다. 뿐만 아니라 8대 총림(叢林) 중 하나며 제 15교구 본사이기도 하다. 불보사찰이란 이미 언급했듯 부처님의 진신사리와 가사를 봉안하였기에 일컫는 말이며 총림(叢林)이란 나무가 우거진 수풀에 비유할 만큼 승려와 속인들이 모여드는 도량이라는 뜻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승려들 참선수행 전문도량인 선원(禪院)과 경전 교육기관인 강원(講院) 그리고 계율 전문교육기관인 율원(律院)을 모두 갖춘 사찰을 총림이라고 하며 삼보사찰과 백양사와 수덕사가 한국 5대 총림이었는데 최근(2012.11.05)에 쌍계사, 동화사, 범어사가 추가되어 8대 총림으로 바뀌었다.
주차장에 차를 놓고 한참을 올라가면 영지를 우측으로 끼고 일주문을 들어서 너댓 문을 지나야 주법당인 대광보전 앞마당에 들어서게 된다. 이 법당 뒤로 돌아가면 아주 가파른 계단을 올라서야 하는데 이 계단을 올라서면 그곳이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장경각이다. 빙 둘러 장방형 미음(ㅁ) 자 구조를 하고 있는 장경각 안에는 유구한 세월동안 부처님 가르침을 담고 있는 목판의 팔만대장경이 가지런하게 보관되어 있다. 통풍을 위해 만들어 졌을 나무 창살 사이로 꽂혀있는 대장경이 보인다. 그 오랫동안 목판이 별다른 자연적 손상 없이 대장경을 보관할 수 있었던 건 현대의 기술과 과학성을 능가하는 선조들의 놀랄만한 지혜의 산물임에 분명하다. 눈은 떴으나 보지 못하니 그 뜻을 알지 못해 깨우침을 얻을 리 없건만 나무창살 사이로 보이는 대장경에서 분명 뭔가를 얻게 된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지만 가슴에 와 닿는 무언가는 삭막한 세대를 사느라 각박해진 마음에 온기를 주고 잠시 잃어버렸던, 동심에서 느끼던 그런 삼매에 들게 하니 이 또한 해인삼매의 또 다른 삼매가 아닐는지 모르겠다.. 많은 큰스님 배출한 송광사 18명의 큰스님들이 나셔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널리 펼 절이라는 뜻이 담겨있다는 승보사찰 송광사엘 가면 항상 가슴이 두근거린다. '송(松)'이 곧 '十八(木)+公'을 가리키는 글자로 18명의 큰스님을 뜻한다고 하나 지금껏 16분의 큰스님만 일컬어지고 있으니 후세에 18에 포함된 큰스님을 뵙게 될지도 모른다는 몽상가 같은 기대감 때문이다.
송광이란 절 이름이 부처님 가르침을 널리 펼칠 18분의 큰스님을 의미하던, 솔개의 사투리인 '솔갱이'에서 유래되었던 당대는 물론 후세 대대로 추앙되는 큰스님을 유달리 많이 배출한 송광사야말로 법당 중의 법당인 듯하다. 집안에 가풍이 있고 학교에 가풍이 있듯 절 또한 나름대로 어떠한 풍이 있을 테니 송광사의 그 풍이야말로 법을 빌어 깨우침의 반야에 들게 하는 승가의 진풍이 아닐는지 모르겠다. 역대 수많은 고승들이 구도의 길을 걷겠다고 모여든 몇몇 곳 중의 한 곳이 바로 송광사니 고승들의 큰 뜻과 흔적이 담겨진 곳이기도 하다. 한 때 밥통으로 사용되었다는 엄청난 크기의 구유에서 송광사서 구도의 길을 찾겠다 모여들었던 스님들의 숫자와 규모를 어림할 수 있다. 이리 보고 저리 보아도 송광사 또한 삼보에 걸맞는 뭔가가 있다.
지금껏 둘러 본 600여 곳의 절 중에서 삼보사찰은 불교만의 세 보물이 아니라 한국의 보물일 수도 있다. 그리고 불교에서도 한국에서도 빼 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보물은 역시 처사니 보살로 불리는 불자며 국민이다. 지금껏 이 글을 읽어 주신 님께서도 불가의 보물이며 한국의 보물이라 생각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