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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죽향, 담양 대나무골! 그곳에 가고 싶다.
사철 푸르름을 잃지 않는 게 있다. 비바람과 눈보라에도 오로지 위로 곧게 뻗어 그 푸르름을 자랑하는 대나무. 대나무골 담양 속으로 오늘 조심스레 한 걸음 내딛어본다.
못 ‘潭’ 볕 ‘陽’ 담양, 물이 풍부하고 볕이 가득한 땅이라 일컬어지는 대나무골 담양. 그런 만큼 담양은 태고의 문화유적이 가득한 역사의 땅, 깨끗한 자연과 넉넉한 남도 인심이 정겹게 우리를 맞는 고장, 정직하고 아름다운 사람들의 삶이 있는 풍요의 고장으로 옛부터 인심 좋고 살기 좋은 “의향”,“예향“, ”죽향“의 고장으로 널리 알려져 왔다.
천혜의 자연환경과 다양한 문화가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담양은 오랫동안 대쪽같이 올곧은 선비정신을 이어 받은 사람들이 불합리하고 모순된 현실정치를 참지 못하고, 자신들의 큰 뜻이 이루어지지 않음에 남쪽으로 내려와 무등산 정기 어린 담양 일원에서 누(樓)와 정자(亭子)를 짓고 빼어난 자연 경관을 벗 삼아 시문을 지어 노래하였다. 이들은 수신(修身)과 후진 양성에 힘쓰다가 나라의 부름을 받아서는 충성하고, 국난이 있을 때에는 분연히 일어나 구국에 앞장섰다. 조선 중기 한문이 주류를 이루던 시대에 국문으로 시를 창작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가사문학이 크게 발전하여 꽃을 피웠던 곳으로 송순의 면앙정가, 정철의 성산별곡, 관동별곡, 사미인곡, 속미인곡 등 18편의 가사가 전승되고 있어 담양을 가사문학의 산실이라고 부른다.
한국가사문학관은 본관과 부속건물인 자미정, 세심정, 산방 등이 있으며 전시품으로는 가사문학 자료를 비롯하여 송순의 면앙집과 분재기(分財記), 정철의 송강집 및 문청공연행일기, 백세보중 등 친필 유묵 등 총 500여점의 진품을 전시하고 있으며, 특히 자료실에 비치되어 있는 5,000여권의 가사문학 관련 자료들은 명실상부한 한국의 가사문학관으로 우리 가사의 멋과 발자취를 함께 만날 수 있다.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은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가로수길로 설정 된 이 숲길은 도로변을 터널처럼 장식하고 있어 아무리 더운 여름이라도 숲이 빽빽하게 우거져 마치 시원한 숲속 동굴을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게 하고, 가을이 되면 타오를 듯이 붉게 물든 갈색 낙엽과 굵직한 가로수 몸통의 나열이 마치 동화속 병정들의 열병식을 보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하며, 겨울이 되면 마치 화사한 눈꽃이 피어나서 지나가는 이의 발길을 멈추게 만든다. 또한, ‘화려한 휴가‘ 등 CF와 영화 촬영지로도 각광받는 곳이기도 하다. 특히 이곳은 산책도 산책이지만 사진 찍기에 좋은 곳이다. 나무 터널사이로 곧게 뻗은 길은 셔터만 눌러도 웬만한 전문가의 작품처럼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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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쇄원(瀟灑園)은 스승 정암 조광조가 기묘사화 이후 능주로 유배된 후 사약을 받고 죽음을 당하자 제자였던 처사 양산보가 벼슬에 대한 꿈을 버리고 자연속에서 살기 위해 조성하기 시작하여 3대 약 70여 년간의 세월에 걸쳐 조성된 조선시대 대표적인 민간정원이다. ‘마치 물 위에 떠 있는 것 같아 옷깃을 열어젖히는’듯한 역동적인 광풍각(光風閣)과 ‘달빛이 저절로 밝아지는 방’을 나타내는 정적인 제월당(霽月堂)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조선시대 원림문화의 중심지이며, 원림건축의 백미인 소쇄원은 자연과 인공의 조화를 이루고 있어 흔히 소리와 그늘과 시의 정원이라 불리 우고 있다. 소쇄원 입구에 펼쳐진 대나무숲과 상하 연지(蓮池)의 전원(前園), 오곡문과 광풍각, 위교(危橋) 등 시냇물쪽의 계원(溪園), 제월당과 매대(梅臺)의 후원(後園)으로 구성된 소쇄원은 신비스럽고 상쾌한 기운이 가득한 정원으로 문학전공자, 조경가, 건축가 등 전문가들이 꼭 들려야 하는 필수코스가 된지 오래다
죽녹원은 천연 대나무 숲을 이용해 조성한 죽림욕장으로 5만여 평의 부지에 분죽, 왕대, 맹종죽 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대나무 잎에서 떨어지는 아침 이슬을 먹고 자란다는 죽로차(竹露茶)가 자라고 있다. 산속에 들어가면 머리가 맑아지고 심신이 안정되는 느낌을 누구나 경험해 보았을 것이다. 산림욕보다 더 효과가 있다는 죽림욕은 일반 산림욕보다 음이온이 2배 이상 발생하여 심신이 맑아지고 공기 정화력도 탁월하여 그 명성이 자자하다. 대숲은 밖의 온도보다 4~7도 정도 낮은데 이는 산소 발생량이 높기 때문이며, 운수대통 길, 사랑이 변치 않는 길, 선비의 길 등 오솔길이 잘 다듬어져 있어 여름철 대숲 사이로 부는 바람에 사각사각 댓잎 스치는 소리는 시원함을 더해 준다. 또한, 죽녹원내에는 대바구니, 죽부인은 물론 대잎차, 죽초액, 비누 등 대나무 관련 제품이 대나무 분재 및 생태전시관에 전시․판매되고 있으며, 부채, 방석, 베개 등 현대적 감각의 채상작품이 채상장 전수교육관에 전시되어 있어 담양의 발전상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면앙정(俛仰亭)은 ‘땅을 굽어보고 하늘을 쳐다본다’는 뜻으로 아무런 사심이나 꾸밈이 없는 넓고 당당한 경지를 바라본다는 송순의 여유로운 마음을 담고 있는 달관과 관용의 풍류공간이다. 송순은 만년에 관직에서 물러나 퇴계 이황을 비롯하여 강호제현과 학문을 논하며 후학을 양성하여 문인들이 신평선생(新平先生)이라 불렀다. 이러한 선생의 인품과 관련하여 유명한 일화로 송순선생의 과거급제 60년을 축하하기 위한 회방연이 면앙정에서 열렸는데 송강 정철의 제의로 고경명, 임제 등이 직접 가마를 맸다는 일화가 있다. 여기서 잠시 시 한수 읊어보자
「십년을 경영하여 초가삼칸 지어내니,
한칸은 청풍이요 한칸은 명월이라,
강산은 들일데 없으니 둘러두고 보리라」 - 면앙정 송순의 시 중에서 -
시조의 문구처럼 면앙정은 달이 한 칸, 청풍이 한 칸을 차지하고 있으며, 넓게 펼쳐진 들과 들판을 가로지는 강줄기, 주변의 아름드리 참나무가 어우러져 감탄할 만한 풍취를 자아낸다.
식영정(息影亭)은 주변 경치가 너무나도 아름다워 그림자도 쉬어간다고 하여 식영정이라 하였다. 1560년 서하당 김성원이 장인인 석천 임억령을 위해 지은 정자로 여기에서 송강 정철의 4대 가사중의 하나인 성산별곡이 탄생하였다. 자연이 쌓은 것만 같은 돌계단을 하나둘 밟아 올라가노라면 이곳 경치에 푹 빠져 주거니 받거니 풍류를 즐겼던 선인들의 마음을 감히 헤아릴 것만 같다. 자미탄(紫薇灘)은 사라졌지만 소나무 사이로 보이는 광주호의 전경이 운치를 더해준다.
송강정(松江亭)은 1584년 송강 정철이 대사헌을 지내다 당쟁으로 물러난 후 창평으로 내려와 죽록정(竹綠亭)을 중수하고 송강정이라 불렀다. 송강 정철이 4년간 머물면서 선조에 대한 그리움을 「사미인곡」과 「속미인곡」이라는 가사를 비롯한 많은 작품을 남겼던 곳이다. 멀리 무등산의 그림자까지 수려하게 보이는 송강정은 빽빽이 들어찬 소나무 숲과 대나무로 둘러싸여 있어 가족 나들이 공간으로 안성맞춤이다.
명옥헌원림(鳴玉軒苑林)은 목조기와로 지어진 정자 앞에 계곡물을 이용해 연못을 만들고, 주변에 적송과 백일홍나무를 심은 소박한 정원이다. 계곡사이로 수량이 풍부했을 때에 “물이 흐르면 옥구슬이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하여 명옥헌(鳴玉軒)이라 불리워 졌으며, 오이정의 호가 장계이기 때문에 장계정(藏溪亭) 또는 도장사가 있다하여 도장정(道藏亭)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여름부터 초가을까지 백일홍으로 붉게 물드는 명옥헌은 이때가 가장 아름답다. 크고 작은 붉은 꽃송이로 가득한 명옥헌은 소박하지만 화려한 멋이 돋보여서 규모는 작아도 전통정원 양식을 갖추고 있어 소쇄원과 함께 민간 정원의 대표적인 장소로 손꼽힌다.
독수정원림(獨守亭苑林)은 고려조 충신이였던 서은 전신민이 고려가 멸망하자 두 나라를 섬기지 않을 것을 다짐하며 아침마다 조복을 입고 송도를 향해 곡을 하며 절했다는 고사가 전해지는 장소로 독수정(獨守亭)이란 명칭은 이백의 시에 나오는 ‘백이숙제는 누구인가. 홀로 서산에서 절개를 지키다 굶어 죽었네’에서 따온 것으로 은사의 고절을 나타낸 것이다. 독수정은 임금이 계신 송도를 그리워 북향으로 지었으며, 충절을 보이고자 정자 앞에는 소나무를, 뒤에는 대나무를 심었다.
무등산 서북쪽 원효계곡에서 광주호로 흘러내리는 계곡 주변과 인접 산언덕에는 이들 정자 이외에도 환벽당, 풍암정, 취가정, 관수정, 동강조대, 소산정, 만옹정 등 약 70여개의 정자가 건립되었다. 이들 정자는 단순한 휴식 및 위락 기능을 넘어서 당시 소외되었던 호남 사림들이 학문과 사상을 논하고 정치적 기반을 다지는 정신적 지주가 되었다. 면앙 송순, 석천 임억령, 사촌 김윤제, 소쇄처사 양산보, 하서 김인후, 서하당 김성원, 고봉 기대승, 제봉 고경명, 송강 정철 등 학연과 혈연, 지연 등으로 얽히고 설킨 이들의 관계가 학문, 사상, 문화 등의 발전요소가 되었음을 어느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관방제림(官防堤林)은 영산강 상류인 담양천의 물길을 다스리기 위해 1648년 성이성 부사가 제방을 축조하고 나무를 심었으며, 그 뒤 황종림 부사가 제방을 중수하고 숲을 조성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 선조들의 지혜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우리의 소중한 자연문화유산이다. 현재 이 제방에는 300여년 이상 된 느티나무, 푸조나무, 팽나무, 이팝나무, 개서어나무 등이 약 2km에 걸쳐 거대한 풍치림을 이루고 있는데 그 풍치의 아름다움이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숲으로 선정된 곳이기도 하다. 관방제림의 사계절은 모두 아름답다. 벚꽃 흐드러진 봄날의 화사함, 참매미 자지러지게 우는 여름날의 시원스런 여유로움, 낙엽으로 온 산책로가 뒤덮여 버리는 가을날의 호사스러움, 적막감 도는 겨울 숲 설경의 호젓함으로 우리를 유혹한다. 세상의 모든 근심을 이곳에서 확 풀어버리자!
금성산성(金城山城)은 장성의 입암산성, 무주의 적상산성과 함께 호남의 3대 산성으로 불린다. 금성산성은 철마봉, 노적봉, 시루봉, 운대봉을 잇는 포곡식 산성이자 내성과 외성의 중복식 성곽으로 담양에 읍성이 없기에 읍성적 성격을 지닌 산성으로 볼 수 있다. 금성산성내의 주요 건물은 동학농민운동, 한국전쟁을 거치면서도 소실되었으나 지금도 동, 서, 남, 북의 성문과 성벽이 그대로 남아 있다. 일단 산성안으로 들어가면 아직도 곳곳에 우물이나 절구통 같은 유물들을 찾아볼 수 있으며, 산성의 동문 밖은 전라북도 순창군의 강천사와 연결되고 서쪽으로는 담양호가 있어 등산코스나 호반 유원지로서 각광을 받고 있다.
해발 731m의 추월산은 전남 5대 명산중의 하나로 담양읍에서 보면 스님이 누워있는 형상으로 와불산이라고 불리우며, 추월산 정상 가파른 절벽위에 세워진 보리암은 고려때 보조국사가 지리산 천왕봉에서 나무로 만든 매 세 마리를 날려보내 앉은 자리에 사찰을 지었다고 하는데 장성 백양사, 순천 송광사 그리고 담양의 보리암이라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사찰이다. 산 중부의 울창한 숲을 지나 추월산 정상에 오르면 기암절벽이 장관을 이루고 산 아래에 널찍하게 펼쳐지는 담양호와 한데 어우러져 그야말로 장관을 이룬다. 삼인산은 사람인(人)자 3자를 겹쳐놓은 형국이라 하여 삼인산이라 이름하였고, 병풍산은 수북면 소재지에서 산을 바라보면 왜 병풍산이라 했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오른쪽 투구봉에서 시작하여 우뚝 솟은 옥녀봉, 중봉, 천자봉을 거쳐 정상인 깃대봉과 신선대까지 고르게 뻗은 산줄기는 한눈에 보아도 틀림없는 병풍으로 호남정맥의 지맥에 위치한 산 중 가장 높은 산으로 사시사철 등산 마니아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명산중의 명산이다.
그 외에도 영산강의 시원지인 가마골의 용소폭포와 용연폭포, 푸른 송림사이에 기암괴석이 어우러져 한 폭의 산수화를 연상케 하는 한재골과 용흥사 계곡은 한여름의 더위를 식혀줄 뿐만 아니라, 가을 단풍과 겨울 설경은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기이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어 휴양레저 관광지로서도 각광을 받고 있다.
이처럼 담양은 맑고 깨끗한 자연생태계가 그대로 보존되어 풍요로움과 인정이 넘치는 살아 있는 땅이자 문화와 역사, 우리의 전통이 살아 숨쉬는 고장 담양은 눈길 머무는 곳, 발길 닿는 곳마다 수려한 아름다움으로 찾는 이의 발길을 붙잡는다.
첫댓글 넘 멋지네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