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통신 14보> - 과연 상하이 엑스포는...
일요일 아침에 늦잠을 잤다.
학창시절이나 지금이나 수업이 없는 휴일에 꿀 같은 늦잠을 자기는 매 한가지다.
여느 때처럼 벌써 일어나 있던 벗씨가 옆에서 한 마디 거든다.
“그만 일어나지. 홍구공원에 산책이나 가자. 날씨가 참 좋네?”
나는 마지못해 눈을 비비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런데 갑자기 내 얼굴을 본 벗씨가 눈을 동그랗게 뜬다.
“드디어 터졌구먼. 터졌어. 입술이 당나발이 되었네, 뭐······. 그런 약한 몸으로 무엇을 한다고. 쯔쯧······.”
“잉? 정말이네. 에이~! 그놈의 엑스포가 뭔지. 어쩐지 어제부터 증상이 이상하더라고······.”
그저께 상하이 엑스포에 다녀온 것을 두고 한 말이다.
“아이고, 안 그래도 한국관을 못 본 게 원통해 죽겠는데 입술까지 터지다니. 그 한국인 아르바이트생이 미워 죽겠네.”
이건 또 뭔 말이냐 하면, 한국 기업연합관에서 일하고 있던 젊은 아르바이트생을 탓하고 있는 것이다.
그날 사람들이 너무나 많아서 어떻게 하면 줄 안서고 한국관을 볼 수 있느냐를 문의한 적이 있다.
그런데 그 학생 왈, ‘여기서 일하고 있는 우리도 줄 서서 봐야 해요’, 뭐 이런 식으로 대답하면서 그냥 줄 서서 보란다.
그런데 한국관을 관람하려면 최소한 네 시간을 줄서서 기다려야 한다.
나 같은 성질에 어디 가당키나 한 말인가.
결국 그 날 줄을 서는 전시관은 하나도 보지 못 하고 줄 서 있는 사람만 구경하고 말았다.
(입장하자마자 하루 관람의 일정을 잘 짜야 한다. 하지만 잠시 후 그 계획은 헛빵이 되고...)
그런데 그 다음날 학교에 가서 학생들끼리 여차여차한 엑스포 얘기들로 꽃을 피우고 있는데 내 염장을 지르는 몇 가지 말들이 오고 갔다.
누구는 재발라서 스무 개 정도의 관을 봤다고 한다.
또 누구는 아는 사람이 있어서 VIP 티켓을 발급받아 제일 인기 있는 전시관을 열세 개나 봤다고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 속을 뒤집어 놓은 것은 한국관에는 한국인은 줄 안서고 바로 입장을 할 수 있어서 보고 왔다는 것이다.
아니, 이럴 수가.
그럼, 그 아르바이트생이 한 말은 무엇이란 말인가.
엑스포 관람을 하겠다고 한 달을 별러서 겨우 들어갔는데, 그 많은 전시관 중에서 제대로 된 전시관은 하나도 못 봤다.
더욱이 한국인인 나는 한국 전시관을 들어가 보지도 못 하고 주위만 맴돌다 왔는데.
그러니 우리에게 제대로 된 정보를 알려주지 않은 그 아르바이트생이 원망스럽지 않겠는가.
게다가 지금 내 입술은 당나발이 되어 있지 않은가?
중국 상하이 엑스포.
내가 이곳에 어학연수하러 온 이후로 제일 많이 접한 정보가 바로 엑스포에 관한 것이다.
시내 어느 곳을 가더라도 온통 엑스포에 관한 홍보물로 넘쳐난다.
모든 관공서나 공공기관, 학교 등에 상하이 엑스포를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모든 공원 안에는 엑스포 마스코트인 하이빠오(海宝, 상하이의 보배란 뜻)가 커다랗게 설치되어 있다.
심지어 어떠한 상점이나 건물 및 아파트단지에 가더라도 엑스포 포스터가 붙어 있다.
그리고 매일같이 시민들이 타고 다니는 지하철 모니터에는 엑스포에 관한 뉴스를 내보내고 있고, TV나 신문, 잡지에도 도배를 하다시피 하고 있다.
그러니 내가 이곳에 와서 제일 먼저, 그리고 가장 많이 접한 것이 상하이 엑스포에 관한 소식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모든 전시관 앞에는 각종 이벤트가 벌어지고, 인산인해를 이룬다. 재미있어 죽는다. 히히.)
소문에 의하면 5월부터 10월말까지 6개월 동안 개최되는 상하이 엑스포에 관람객을 7천만 명, 혹은 8천만 명 이상 입장시키겠다는 계획이 서 있단다.
도대체 얼마나 규모가 크고 성대한 준비를 했으면 그럴까.
내가 직접 경험해 본 바에 따르면 과연 중국답다는 말밖에 나오질 않았다.
지금부터 17년 전, 우리나라의 대전엑스포가 그간 사상 유례없는 대 성황을 이루며 마친 적이 있다.
그리고 얼마 전에 끝난 독일 엑스포가 규모면에서 또 한 번 최고치를 갈아치운 적이 있다.
그러면 이곳 상하이 엑스포는 어떨까?
일단 규모부터가 비교가 안 된다.
참가국이 200여 개 국가에 이르고 전시관만도 250여 개에 이른다.
얼마나 그 규모가 컸으면 내가 직접 세워 본 출입구만도 여덟 개가 넘는다.
그 출입구도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어느 공원 같은 정문을 생각하다간 큰코다칠 터.
적어도 모든 출입구의 넓이가 백 미터는 족히 넘으니깐.
그리고 전시관을 배치한 면적도 여의도 크기의 3분의 2정도란다.
그러다 보니 걸어다니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해서 엑스포공원 내에서는 셔틀버스를 타고 다녀야 한다.
황푸강을 사이에 두고 동쪽과 서쪽에 각각 A, B, C구역과 D, E구역을 배치해 뒀는데, 이 강을 건너다니며 관람을 하다가 보면 하루, 아니 며칠이 걸려도 다 못 볼 정도다.
이런 엑스포 구역을 드나들기 위해서 기존의 지하철과는 별도로 공원 안과 밖을 연결하는 별도의 지하철을 세 개 노선이나 만들어 두었다는 것만 봐도 말을 다 했을 것이다.
(자, 줄 서는 연습부터 해 볼까요? 보통이 네 시간. 사우디관은 여섯 시간. 미쳤지, 미쳤어.)
그 날 나와 벗씨는 엑스포의 모든 전시관 앞에 너무나 긴 줄들이 서 있는 것을 보고는 그만 관람을 포기하고 말았다.
"우리 이럴 게 아니라, 사람 구경이나 하고 가자. 어떻게 조금만 인기가 있다고 하면 네다섯 시간, 심지어 여섯 시간씩이나 줄을 설까?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단 말이야."
그래서 우리가 한 일이란 것이 그만 각 전시관마다 유별나게 만들어진 외관을 감상하는 것과, '여기는 몇 시간 기다려야 하고, 저기는 몇 시간 기다려야 하고' 하면서, 줄 서 있는 사람들 구경하는 것이 되고 말았다.
각 전시관마다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의 줄 맨 끄트머리에 친절하게 안내되어 있는 '여기서부터 ㅇㅇ시간' 하는 안내간판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면서 말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 대전 엑스포 관람객이 1,450만 명, 독일 엑스포 관람객이 1,750만 명이나 되었다며 떠들썩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곳 상하이 엑스포 관람객이 7,8천만 명으로 계산하고 있다니 그저 입을 다물지 못 할 뿐이다.
옆에서 사람 구경만 하고 다니던 벗씨가 그 많은 인파에 진정머리가 났는지 자꾸 중얼거렸다.
"여기 이렇게 사람이 많은 것은 6개월 이상 상하이에 산 시민들에겐 가족 당 한 장씩 공짜표를 줘서 그래."
얼마 전에 인터넷에서 확인한 내용을 보고 하는 말이다.
어쨌든 우리는 인기 있는 전시관에는 들어가 보지도 못 했다.
하지만, 볼 것도 많고, 즐길 것도 많은 엑스포 현장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입장권 값이 아깝다며 돌아다니다가, 오후 7시가 되어서는 그만 퍼져버렸다.
아침 9시부터 그 시각까지 이곳을 헤맸으니 어찌 퍼지지 않고 베기겠는가.
(그렇게도 멋있다는 한국관 앞에서... 네 시간은 난 못 기다려...외관만 구경하고 말지, 뭐. )
이런 엑스포에 대해 매스컴은 연일 떠들어 댄다.
상하이 엑스포는 실패작이라고.
당초 목표했던 입장객만큼 들어오지 않고 있다고.
그것도 하루 15만 명 이상이나 들어오는데도 말이다.
욕심도 참 과하다.
나는 이러한 평가에 대해 반대 의견을 보낸다.
사람들에게 충분한 볼거리를 만들어 줬다고.
관람객들을 충분히 동원했다고.
엑스포 원래의 목표 달성에 충분히 기여했다고.
그래서 대 성공이라고······.
아직도 침대 위에서 입술을 만지작거리며 꾸물대고 있는 나에게 벗씨가 또 한 마디 건넨다.
"그날 사람 구경한다고 그 넓은 공원을 하루 종일 돌아다닐 때부터 알아봤다니깐. 엑스포 두 번만 갔다간 사람 잡겠다. 홍구공원 산책은 고사하고 그냥 잠이나 계속 자라."
어이구, 이번 달 말에 한국에 있는 우리 막내아들 바다가 방학이라고 상하이 엑스포 구경 오기로 했는데 큰일 났다.
입술 또 터지게 생겼으니······.
2010년 6월 7일
상하이에서 멋진욱 서.
추신 :
1. 한국관 입장에 한국인은 줄 안 서도 된다는 소문에 대해 아직 진실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2. 외국인도 줄 서야 한다. 다만, 여행단 소속으로 올 경우에는 미리 예약을 하면 줄 안 서고 입장할 수 있다.
3. 그곳에 근무하는 직원 중 아는 사람 있으면 만사형통. 줄 안서고 바로 직행 가능하다. 끝.
첫댓글 그곳에 근무하는 직원 중 아는 사람 있으면 만사형통. 줄 안서고 바로 직행 가능하다(한국하고 비스무리 하네요..^^)
그게 다 우리가 퍼뜨린 문화일지도... 히히.
이사님~ 벌써 14번글이네요~ 역시.. 글솜씨는 장난 아니셔.. 바로 옆에 계신 것 처럼 가까이 느껴져요.. 사모님도 얼굴 더 좋아지신 것 같구~ .. 정말 부러워요..
빨리 한국 오세요 ㅋㅋ상하이 전문가 되게 자주 글 올려 주세요 ~
디게 바쁘군요. 아무쪼록 회사 일 열심히 하소. 영어 공부 많이 하고요. 히히.
숙제를 재빨리 해주시어 감사합니다....입장료도 장난이 아닌데 그 많은 돈 주고....전시관 내용 구경한 것이 아니라 엑스포 광장과 사람구경하고 오신 내용이 주류 ㅎ ㅎ ㅎ
인기있는 관은 보통내기는 못 봅니다. 보통 서너 시간은 줄 서야 하니까요. 다만 줄 안 서고 볼 수 있는 곳 수십 관만 보고 말았지요. 그래도 250여 관이나 되는 것을 외관만 보는 것도 엄청 재미있었습니다. 그냥 사람들과 어울리면 되니까요. 히히.
ㅋㅋ 입술터진 이사님.. 생각만 해도 웃깁니다..ㅎㅎ 6월말에 또 입술터진 이야기 기다릴께용~ 그리고 이미 한번 다녀오셨으니깐.. 바다와 함께 하실 때에는 앞서 관람하실 때 보다는 조금 수월하게 움직이시길 바래용~ 히히~
그때 터진 입술 아직 덜 나았어요. 상처가 진하게 남아 있으니깐요. 바다 오면 살살 다녀야겠어요. 입장료 아깝다고 무리하면 또 터지니깐요. 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