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의 역할 중 “언약의 자녀를 양육하는 일”이란?
언약의 자녀를 교육하는 책임 주체 - 가정에서 부모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고백하는 ‘성도’와 ‘그들의 자녀’로 구성됩니다. 이 자녀들을 가리켜서 흔히 ‘언약의 자녀’라고 표현합니다(대한예수교 장로회 (고신) 총회 헌법(2011년판) 교회정치 제2장 제12조 (각 개체 교회); 교회정치문답조례 48문답).
그렇다면, 이 언약의 자녀를 양육할 책임이 누구에게 있을까요? 가장 1차적인 책임은 ‘부모’입니다. 신명기 6:7과 에베소서 6:4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언약의 자녀에 대한 양육 책임은 부모에게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에게 주신 언약의 자녀를 그 부모가 양육하도록 맡기셨습니다.
이러한 생각에 근거하여 장로교회는 역사적으로 유아세례를 베풀어 왔으니, 그것은 언약의 자녀들이 그 부모로부터 언약을 전수받는다는 사실을 잘 이해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장로교회에 속한 성도들은 자녀가 유아세례를 받을 때에 서약한 것처럼(고신총회 헌법 예배지침 제5장 제21조 (유아세례식) 제3항. 유아의 서약), 부모로서 자기의 자녀를 하나님의 언약의 자녀임을 인식하여야 합니다. 자녀에 대한 하나님의 언약을 확신하고 자신의 구원을 위해 진력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녀에게 거룩한 진리의 도를 가르쳐야 하고,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해야 하며(엡 6:4), 그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자녀에 대한 신앙교육의 책임이 부모에게 있음을 하나님 앞에 강하게 가져야 합니다.
언약의 자녀를 교육하는 책임 주체 - 교회에서 누구?
그런데 위와 같은 언약의 자녀를 양육할 책임이 교회에게도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도 하나님께서 교회에 맡기신 언약의 자녀를 양육함에 있어서 그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이 때 1차적 주체가 ‘부모’라는 사실을 잊지 않고 교회가 그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교회’라 할 때에 그 주체는 누구입니까?
흔히 많은 이들이 그 교육의 책임이 주일학교 교사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일학교 교사’라는 직분은 2000년 교회 역사에서 아주 최근에 나타난 직분이지 성경이 명령하고 있는 직분은 아니라는 점에서 좀 더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참고. 에베소서 4:11에 언급된 ‘교사’라는 직분은 오늘날의 주일학교 교사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서 말하는 ‘교사’는 ‘목사’입니다.).
사실 ‘언약의 자녀’를 양육해야 할 책임은 교회에서는 ‘장로’에게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이 글을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바입니다. 이 사실은 다음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장로교 헌법이 명시하고 있는 장로의 직무 중 독특한 것 하나
대한예수교 장로회(고신) 헌법(2011년판) 교회정치 제6장 제66조 ‘장로의 직무’에 보면 여러 가지 직무 중에 독특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제6항에 나오는 “언약의 자녀들을 양육하는 일”입니다(이에 대해서는 1992년판 헌법에도 동일하게 언급되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다른 교단의 헌법에서는 이 직무를 잘 찾아보기 어려운데, 통합측이나 합동정통, 개혁국제 뿐 아니라 한국의 장로교 헌법 중에 상당히 우수하다고 할 수 있는 합신측 헌법에도 나와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당연히 (합신측 헌법을 기초한) 박윤선 목사의 『헌법주석』(영음사)에도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 다만, 대한예수교 장로회(합동)의 경우에 헌법(2000년판) Ⅳ. 정치 제5장 제4조 ‘장로의 직무’ 제3항에 보면 “교우를 심방하되 특별히 병자와 조상자를 위로하며 무식한 자와 어린아이들을 가르치며 간호할 것이니.....”라고 해서 조금은 다른 표현으로 언급하고 있을 뿐입니다.
장로교 헌법이 명시하고 있는 장로의 직무 중 “언약의 자녀들을 양육하는 일”에 관하여
그렇다면, 대한예수교 장로회(고신) 헌법은 왜 이런 직무를 언급하고 있을까요? 이것은 유아세례를 베푼 주체인 당회가 부모들이 언약의 자녀를 잘 양육하고 있는지 그 책임을 살피는 것과 관련있으며, ‘언약의 자녀’라는 표현에 잘 나타나 있는 것처럼, 자녀들의 양육은 단순히 성경에 대한 지식을 가르치는 교육이 아니라 ‘언약’을 상속하는 것이라는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앞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고백하는 ‘성도’와 ‘그들의 자녀’로 구성된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표현에는 교회란 ‘언약을 상속해 나가는 공동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에 속한 언약의 자녀들을 교육하는 것은 단순한 주입식 교육이 아닙니다. 성경지식을 가르치는 것 정도가 아닙니다. 요리문답의 내용을 가르치는 것 정도가 아닙니다. 보다 본질적으로 언약을 상속하는 일입니다. 이러한 사실에 근거하여, 교회의 당회는 소속된 교회의 회원인 부모들이 자신들의 자녀를 유아세례 때에 고백한 대로 말씀을 따라 제대로 교육하고 있는가를 감독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리고 당회의 회원인 장로는 앞서 언급한 교회정치 제6장 제66조 ‘장로의 직무’ 제6항에 근거하여 “언약의 자녀들을 양육하는 일”의 책임을 맡았습니다.
그래서 장로들은 1차적 주체인 부모의 역할에 보조하여 2차적 주체로서 언약의 자녀들을 양육할 책임이 있습니다.
위 원리에 따른 헌법규정들
위 원리에 근거한 구체적인 실천 방법에 대해서는 이미 우리 헌법에 잘 명시되어 있습니다. 대한예수교 장로회(고신) 헌법(2011년판) 권징조례 제1장 제7조 (교인의 자녀관리)에도 보시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아래에 그 내용을 옮겨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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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조 (교인의 자녀 관리)
1. 보이는 교회 내에서 출생한 모든 자녀들은 교인이다.
2. 자녀들에게 세례를 받게 하고 교회의 보호 아래 두어 정치와 권징에 복종하도록 양육하여야 한다.
3. 자녀가 성장하면 교회의 모든 의무를 이행하도록 관리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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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내용이 헌법 구성의 ‘관리표준’ 중에서도 ‘권징조례’에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 시사하는 바가 있음을 생각한다면 그 의미가 더욱 분명해 집니다. 당회는 위 조항에 근거하여 언약의 자녀들에 대한 양육을 감독합니다. 그리고 교인 중 부모들이 자녀들을 바르게 양육하지 않을 때에 ‘권징’(권면과 징계)해야 합니다.
이 외에도 고신총회 헌법에 의하면, 주일학교 교육은 당회의 직무 중 하나입니다. 그렇기에 거의 대부분은 당회장인 담임목사가 주일학교의 교장을 맡습니다(예장 고신 헌법 예배지침 제9장 제37조 주일학교의 책임자). 그리고 고신 헌법 예배지침 제9장 제35조 ‘주일학교의 예배’에 관한 부분에는 “.....초등 예배 및 청소년 예배를 따로 드리게 되었을 경우 당회의 지도하에 인도하여야 한다.”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그런데 사실 이 부분이 1992년판에 보면 “....유년 예배를 따로 드리게 되었을 경우 반드시 당회원이 출석하여 인도하여야 한다.”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이 직무에 대한 이해가 없는 이유
하지만, 성경과 헌법에 명시된 장로의 직무 중 상당부분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는 오늘날의 현실 속에서, 위에서 다룬 “언약의 자녀들을 양육하는 일”이라는 직무를 수행하고 있는 교회나 장로를 거의 찾기 힘들고, 그 직무에 대한 이해를 가진 분들조차 거의 찾기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이해가 부족할까요? 그것은 언약의 자녀가 무엇인지, 그 자녀를 양육한다는 것의 개념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해가 없기 때문입니다. 많은 분들이 언약의 자녀를 양육하는 일을 단순히 성경공부시키는 것, 요리문답 가르치는 것으로 이해합니다만, 좀 더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이해를 가져야 하겠습니다.
소위 ‘주일학교 교사’ 라는 직임이 의미하는 것
그렇다면, 오늘날 한국교회 현실 속에서 소위 ‘주일학교 교사’라고 하는 직임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주일학교의 교사는 당회로부터 위임받았을 뿐이지, 그 책임은 당회에 있습니다. 가르치는 행위 자체는 주일학교 교사가 하는 지 몰라도, 그 직임은 당회와 장로로부터 위임받은 것일 뿐입니다. 사실은 장로가 직접 그 일에 관여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전적인 책임은 장로에게 있습니다.
주일학교 내 대학생 교사, 청년 교사들에 관하여
그러면서 가장 지적하고 싶은 것은 오늘날 많은 교회들의 주일학교나 중고등부 교육을 대학생이나 청년들이 맡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매우 심각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직 미성숙한, 성경에 대한 이해도 부족하고 요리문답에 대한 이해도 부족할 뿐만 아니라 기독교 신앙을 자신의 삶에서 내면화하는 일에 초보단계인 대학생이나 청년들에게 이 일을 맡긴다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그들은 ‘언약을 상속하는 일’에 적합한 이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자녀들에게 ‘경건의 본’을 보이기에는 아직 부족하며(고신총회 헌법 예배지침 제5장 제21조 (유아세례식) 제3항. 유아의 서약), 오히려 그들은 교육의 주체가 아닌 교육의 대상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교회교육의 책임을 맡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각 가정에서 고등학생 자녀의 수학공부나 영어공부를 대학생 형(혹은 누나, 언니)에게 맡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자녀의 ‘양육’은 대학생 형(혹은 누나, 언니)에게 맡기지 않습니다. 부모가 맡습니다.
교회교육은 단순히 성경지식을 가르치는 일이 아닙니다. 몸으로 체화된 신앙을 전수하는 일입니다. 언약을 계승하는 일입니다. 그렇기에 언약의 자녀를 양육하는 일은 오직 2가지 직분에게 허락되어 있으니 하나는 ‘부모’라는 직분이요, 또 하나는 ‘장로’(목사와 장로)에게 맡겨진 일입니다. 언약의 자녀들은 가정에서 부모로부터 교육을 받아야 하고, 교회에서 장로로부터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교회에서 언약의 자녀들은 가정에서 부모로부터 신앙에 관한 교육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고, 교회에서 장로의 얼굴도 보지 못합니다. 부모들은 유아세례 때에 약속한 언약의 책임을 다하지 않고, 교회에서 장로들은 교회의 자녀들이 누구인지 이름도 신앙도 확인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러한 안타까운 현실들이 속히 개선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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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http://cafe.daum.net/hgpch/SXQg/11 에 써둔 글인데, 조금 수정하여 개혁정론에 기고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