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적 성서해석의 등장 이유
심리학과 성경해석? 이 두 단어를 들으면서 혹자는 아마 “도대체 아덴과 예루살렘은 어떤 관계가 있는가?”라는
질문이 생각날 것이다. 심리학은 인간에 대한 연구이고 신학은 하나님에 대한 연구가 아닌가? 그러니 심리학과 신학이 서로 아무 관계없는, 때로는
적대적이기까지 한 “아덴과 예루살렘”에 비유되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상호 적대적이었던 이유는 심리학이라는
학문 역사의 일천함에도 있다. 인간의 행동이나 정신에 대한 연구는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학문으로서의 현대 심리학은 19세기에서야 비로서
확립되었다. 이때의 심리학 방법과 원리와 이론들은 덜 발달되었으며 또한 어설프기까지 하였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해 나가면서 자신의
원래 뿌리인 종교나 철학으로부터 자신을 분리하려 하였다. 독립적인 실증학문으로 인정받으려 하면서 특히 종교를 적대시하였다. 그들은 종교를 다만
착각이나 인간정신의 투사정도로 보았다.
다른 과학자들에 비해 심리학자들이 유난히 비기독교적인 학자들이 많은 것도 아마 이 때문일
것이다. 나아가 그들은 성경의 많은 인물들을 병리학적인 용어로 설명하였다. 특히 예수에 대하여는 과대망상적, 자아도취적, 신경과민적 인물로
묘사해 놓았다. 그러니 신학자들의 마음에 들리 만무였다. 프로이드와 같은 심리학자들의 성경해석을 접하게 된 신학자들은 “심리학적 성경주석은 나쁜
주석이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러나 요즘 심리학과 신학(성경해석) 사이의 관계가 갈등이나 무관심의 관계를 넘어 상호보완과 대화의
관계로 접어드는 듯 하다. 한때는 개와 고양이처럼 으르렁대다가 한때는 서로 소 닭 보듯이 애써 무관심 하더니 요즘엔 서로 대화에 앞장서고 있는
자연과학과 신학처럼 말이다.
6, 70년대 이전만 해도 간헐적으로 등장하던 심리학적 성경해석이 요즘, “성서학 내에서 상당한
지위를 누리고 있고”, 심지어 그 방법의 지지자들에 의해 성경해석의 하나의 대안으로 여겨지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킬(D.A.Kille)의 대답을 빌린다면, 그 이유는 “심리학 이론과 방법의 발전과 성숙, 서구문화의 심리학화, 성서학 내의 역사비평적 방법의
지배력 퇴조”, 이 세 가지다.
현대심리학의 기초를 세운 분트(Wundt)이후 심리학은 많은 변화를 겪었다. 감각과정과 지각,
학습이론, 인지, 발달, 심리치료, 생리학 등의 여러 하부분야와 기능주의, 행동주의, 심층심리학, 현상학, 형태심리학 등과 같은 여러 학파들로
분화되고 확대되었다. 연구 방법론과 대상뿐 아니라 심지어는 심리학의 정의에 대해서도 수많은 논의가 진행되었다. 1992년에 이르러 미국
심리학회에는 42개의 전문분야가 생겼고 각 분야마다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다양한 하부그룹들이 생길 정도였다.
킬에 의하면 이때
심리학적 성서해석을 가능케 하는 두 가지 의미 있는 변화가 심리학 내에서 나타나게 되었다. 첫째는, 심리학의 초점이 개인에 대한 관심에서 좀더
해석학적이고 관계이론적으로 옮겨갔다는 점이다. 성경 자체가 구전과 편집과정을 통해 형성되었고 다양한 시대와 집단의 신학과 신앙고백을 담고 있기
때문에 심리학적 관점을 단순히 성경의 개별적 인물에만 적용시켜 연구한다는 것은 성경을 단순화시킨다는 느낌을 주었다.
이전의 방법은
주로 개인심리학의 관점들을 성경의 개인인물에 적용하는 정도였다. 그런데 심리학이, 어떤 인식과 세계관의 형성에 중요한 사회심리학적 상호행동,
공동체와 전승들의 역할, 그리고 특히 텍스트와 현대 독자들 사이의 관계 등에 관심을 가지면서 성경 연구에 훨씬 더 유익한 틀과 도구들을 제공해
주었고, 그 결과 성경의 집단적 성격, 사회심리학적 성격, 공동체적 성격, 텍스트와 독자와의 관계 등에 대한 새로운 해석들을 도출할 수 있게
되었다.
둘째는, “심리학도 결국 하나의 해석학적 체계이다”라는 발견이다.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라는 연구는 과학은
실증적, 객관적 학문이라는 생각을 깨뜨리는데 큰 영향을 주었다. 과학의 발전은 결국 패러다임의 변화, 해석학적 틀거리의 변화라는 것이다. 단순히
말하면 관점의 변화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관점이 형성되면 그 관점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게 되고 이전과는 사물이 달라 보인다는 것이다.
사랑에 빠지면 온 세상이 달라 보이듯이. 그러나 세상이 달라진 것이 아니라 세상을 보는 그 사람의 시각과 안경이 달라진 것이다.
마찬가지로, 어떤 관찰방법과 대상과 자료들을 선정하느냐, 그리고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해석자들의 심리학적 패러다임이나 관점에 따라 달라지며 그에
따라 다른 심리학적 결론이 나타나게 된다. 현재 심리학 이론들이 많은 것은 어느 한 이론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패러다임의 다양성,
해석학적 틀거리의 다양성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해석에 영향을 주는 컨텍스트나 문화나 경험에 따라 심리학적 연구의 결과와
의미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다양한 심리학적 이론들과 방법들은 성경의 텍스트들을 다양하게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그들은 다른 관점들과 방법에 자신들을 열어놓으면서도 자신들의 관점으로 텍스트를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이것은 달리 말하자면 어느
한 방법만이 어느 텍스트의 모든 면을 다 설명할 수 있다는 생각을 바꾸어 놓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성경의 이런 면은 어느 이론이, 다른
면은 또 다른 이론이 해석의 적절한 틀일 수 있음을 알게 해준 것이다.
예를 들어 드레버만이나 롤린스는 융의 이론을 통해서 보다
적절히 성경을 해석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역으로 말하자면 성경의 다양한 성격에 심리학의 다양한 이론들을 대응시킬 수 있었다는 것이다.
심리학적 성경해석이 생동력을 얻고 있는 두 번째 이유는 서구 문화에 심리학이 상당한 영향을 주었고 심리학적 전문 용어들이 서구
사회에서 일상화되었기 때문이다. 한때 전문 용어들이었던 프로이디안 슬립(얼떨결에 본심을 드러내는 실언), 무의식, 오이디푸스 컴플렉스, 투사
등의 용어들이 일상의 대화나 문학작품이나 영화 또는 텔레비전에 자주 등장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우리 행동은 우리의 의식 이면에 존재하는
감춰진 그 무엇에 의해 형성된다는 심리학적 사고를 일상 속에서 자주 접하게 되었다.
비록 단순하기는 하지만, 이러한 일상생활 속에
나타나는 심리학적 이론 때문에 성경을 심리학적으로 이해하는데 대한 거부감이 없어지고 오히려 성경의 인물들의 무의식이나 행동의 동기들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하였다. 실제로 성경의 저자들을 현대 심리학의 용어들을 차용하거나 그 결과들을 의식하고 성경을 저술한 것은 분명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정서나 동기, 의지나 선택 등의 인간의 행동을 심리학적으로 파악한다면 더 잘 이해될 수 있는 요소들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현대 성서학자들은 심리학화된 현대 문화 속에 사는 현대인들에게 성경의 본문을 보다 더 잘 이해하게 하기 위하여
심리학적 성경해석을 시도하게 되었던 것이다.
킬이 지적한 세 번째 이유는 심리학적 이유가 아니라 성경 연구 내에서의 변화이다.
앞에서 언급한대로 지금까지 성경 해석의 절대적인 위치와 권위를 누려온 방법은 소위 역사비평학이다. 이성과 합리를 주장하며 인간이 만물의 척도라고
주장하던 계몽주의의 유산인 이 방법은 여전히 주 성경해석방법으로 맹위를 떨치고 있기는 하지만, 감성과 신비를 보다 더 중시하고, 어떤 것의
절대적 권위를 인정하지 않으며, 과학과 역사 실증주의를 거부하는 포스트모던 시대에 접어들면서 점차 그 권위와 힘을 잃어가고 있다. 이 방법만이
성경을 이해하는 유일한 방법이며 도구라는 생각이 점차 희석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성경해석 내에서는 구조주의적, 수사학적,
사회학적, 독자반응적, 텍스트내적, 이념적, 여성적 성경해석과 같은 새로운 성경해석 방법들이 등장하였다. 이러한 새로운 방법들의 등장은 심리학적
성경해석이 환영받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었다. 물론 심리학적 성경 해석 역시 하나의 방법일 뿐 절대적인 방법은 아니다. 여러 약점들과 제한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리학은 성경을 해석하고 오늘날의 독자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많은 요소들을 제공해 줄 것임은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