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셔츠행동당의 옛 '당사'
솔직히 고백하건대 나는 '나이키'와 싸워서 이긴 적이 별로 없다. 나이키의 그 날렵한 기호는 늘 나의 축구화와 티셔츠로 옮겨와서 낙인처럼 찍혔다. 그것을 회피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었다. 티셔츠와 점퍼와 운동화에 그 어떤 로고도 없는, 차라리 진짜 명품이라서 그런 로고 바깥에 찍지 않는, 그런 것이라도 어떻게든 해볼까 싶었다. 불가능했다. 그래서 번번이 '나이키'한테 패했다.
나는 지금도 나이키를 비롯한 여러 브랜드의 로고가 큼직하게 새겨진 것을 우람하게 걸치고 다니는 사람들의 담대한 '용기'를 부러워하며 동시에 그 어떤 로고도 찍혀있지 않는, 정말로 아무렇게나 아무 셔츠나 입고 나온 사람들의 '염결성'을 진심으로 존경한다.
나는 적절한 심리적 타협책으로, 손가락 길이보다 큰 크기의 로고만큼은 절대 회피한다는 기준을 정하여, 그것을 십수 년 째 실천하고 있다. 도저히 '나이키'의 공세를 완벽하게 피할 수 없다면, 그 날렵한 로고가 옷의 구석에 작은 크기로 박혀 있는 것이어야 했다.
몇 해 전에 ‘티셔츠행동당’이 있었다. 흥미진진한 판이 벌어질 것으로 기대했었는데, 지금은 활동이 멈춘 상태다. 금세기 초의 일이었다. 동아시아 최대의 패션 ‘공화국’ 동대문에서 ‘티셔츠행동당 창당대회’도 연 적 있다. 펑크 밴드의 공연과 보드족의 퍼포먼스가 열렸고, 수십 종의 티셔츠가 휘날렸었다. ‘스타퍽스(Starfucks)’ 같은 티셔츠였다.
티셔츠행동당이 제작했던 '안티조선 티셔츠'
티셔츠는 현대의 일상에 딱 알맞은 복식이다. 간편하고 실용적이고, 일부를 제외하고는 상당히 저렴하다. 동시에 이 티셔츠는 대형 패션회사의 움직이는 광고판 역할도 한다. 아무런 무늬나 글씨가 없는 티셔츠도 있지만, 대개의 티셔츠에는 세계를 하나로 통괄해버리는 다국적의 로고와 글씨가 새겨져 있다. 그것이 비록 길거리에서 1만원에 살 수 있는, 짝퉁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입는 순간 우리는 ‘나이키’나 ‘폴로’의 움직이는 광고판이 되는 것이다.
‘티셔츠행동당’은 이같은 전지구적 규모의 획일성과 균질된 소비 패턴에 저항하는, 유쾌한 운동이었다. 당시 노동운동가 ‘단병호 티셔츠’도 있었고, 기존의 언어와 코드를 비틀어버린 유쾌한 상상의 티셔츠도 많았다. 요즘은 활동이 없는 듯하다.
굳이 ‘티셔츠행동당’이 아니라 하더라도, 우리는 1만 원짜리 티셔츠 하나에 나름의 감성과 심미안과 문화적 코드를 대입하게 된다. 대학가의 옷가게에서 티셔츠 하나를 고를 때, 그 앞면에 ‘I♥NY'이라고 적힌 것과 ‘커트 코베인’이라고 적힌 것을 달리 구매하는 것은 적어도 1g 정도의 미적 정치성이 담기는 행위가 된다. ‘티셔츠행동당’의 유의미한 도발이 어떤 이유에서인지 멈춰버린 것은 아쉽다.
체 게바라와 피델 카스트로
그럼에도 한두 가지 생각할 게 다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다름아닌 체 게바라 때문이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의사, 정치가, 혁명가, 게릴라 전투 지도자인 체 게바라는 이제 세계의 문화 아이콘으로 통하고 있다. 그의 생애와 신념과 피어린 전투의 과정에 대해 알지 못하거나 그런 것에 대해 무관심하면서도 체 게바라 티셔츠와 라이터와 머그잔은 곳곳에 널려 있는 것이다. 그가 1967년의 오늘, 10월 9일에 살해 당하였다.
체 게바라는 1928년 6월 14일,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나 의대 재학 시절에 이미 1952년의 볼리비아 인민운동에 가담하여 외국 자본 국유화 반대 투쟁에 나섰다. 오토바이를 타고 곳곳을 돌면서 자유의 꿈과 현실의 냉엄함을 체험했다.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가 그 내용을 다루고 있다.
1953년에는 부에노스아이레스 의대를 졸업한 후 과테말라 독재정치에 반대하는 투쟁을 벌였으며 1954년에 멕시코로 도피하였다. 이런 젊은 날의 행적을 둘고 ‘공산주의자 좌빨이로군!’하고 쉽게 말해서는 곤란하다. 그가 그렇지 않다는 게 아니다. 그러나 이렇게 단정 짓고 나면, 그 당시 대개의 모든 젊은이들이 그럴 수밖에 없었던 라틴의 현대사를 알 수 없게 된다. 역사는, 그리고 그 역사의 한복판에 있었던 인물은, 도저히 통조림 속에 우겨넣을 수 없는 유기체다.
총살 당한 체 게바라의 시신
체 게바라는 도피했던 멕시코에서 쿠바 출신의 사회주의 혁명가들과 교류하게 되고, 이로써 쿠바혁명 과정에 참여하게 된다. 1956년에 그는 피델 카스트로가 이끄는 혁명 집단과 함께 쿠바로 들어가 바티스타 독재정권을 타도하려는 군사 활동에 참여했다. 우여곡절 끝에 그 투쟁이 승리로 끝난 후 체 게바라는 국립은행 총재, 산업부장관, 통일혁명조직 전국지도부 등에서 일했으며 쿠바와 같은 처지에 있는 여러 대륙과 나라를 다니면서 활동을 했다.
체 게바라의 마지막 전투지는 볼리비아였다. 1965년 4월, 쿠바를 떠난 체 게바라는 볼리비아로 건너가 바리엔토스 정권을 타도하려는 게릴라전에 참여하였으나 1967년의 오늘, 10월 9일에 볼리비아 정부군에게 체포되어 총살 당했다.
1960년에 평양을 방문한 체 게바라
체포 당시에 대해 의견이 다르다. 카스트로는 “체의 무기가 고장 나지 않았다면 그는 생포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 적 있지만, 그 당시 직접 체 게바라를 붙잡았던 볼리비아의 프라도 장군은 그가 허기지고 병든 채 정글에 고립되어 있다가 “쏘지 마라. 내가 바로 '체'다"라며 순순히 투항했다고 말했다.
이런 증언은 ‘영웅’ 체의 모습을 일면 깎아내리는 셈이지만, 만약 그것이 현장 지휘자가 목격한 바의 사실이라면 그것은 그것대로 인정해야 하며, 그럴수록 더욱더 고립무원 상태에 빠진 ‘인간’ 체 게바라 모습이 생생해진다.
40여 년 전에 총살 당한 그가 여전히 기억되고 있고 커피잔이며 라이터, 티셔츠 등에 그의 얼굴이 널리 복제되고 있는 것은, 기본적으로 그가 투신했던 길의 정치적 아름다움 때문이다. 그 길은 목숨을 걸지 않고서는 한 순간도 버틸 수 없는 극한의 세계였고 견고한 신념과 철저한 생활 태도가 아니면 온전히 지탱할 수 없는 세계였다. 그런 세계에서 그는 패퇴하지 않았다. 그래서 기억되는 것이다.
프로축구 대전시티즌 서포터스 걸개 그림 속의 체 게바라
그런데 그런 ‘정치적’ 면모가 문화적 아이콘으로 되는 데는 단순히 철두철미한 신념과 행동 이상의 무엇이 있는 것이다. 물론 이는 체 게바라의 사상이나 생애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그저 ‘따라하기’ 정도의 유행병이기도 하다. 체 게바라의 본질이 아니라 그 이미지가 소비되는 한 모습이다.
하지만, 조금만 더 이런 풍경을 ‘여유 있게’ 바라보면, 왜 굳이 체 게바라일까 하는 긍정형 의문문이 가능하다. 레닌이나 마오쩌둥이 아니라 왜 체 게바라일까. 아무래도 그것은 체 게바라가 종국에는 결국 비극적인 실패로 삶을 마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그의 젊은 날이 자유롭게 비상하고자 하는 낭만적인 면모로 알려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평전이나 일기 그리고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는 그런 사실들을 충분히 제공하고 있다.
문화 아이콘으로 변주되고 있는 체 게바라
그래서 체 게바라는, 성공한 ‘좌빨’ 혁명가의 영웅 숭배 아이콘이라기보다는, 현세의 환멸과 치욕이 아니라 좀 더 자유로운 삶을 향한 욕망의 아이콘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이른바 비극적 소멸이 주는 낭만적 이미지이다. 그런 이미지가 라틴 현대사의 정치 상황이나 그의 사회주의적 신념하고는 일정하게 거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좌우를 막론하고 원칙론을 견지하려는 사람에게는 체 게바라 티셔츠가 못마땅한 문화 풍습으로 보일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좌빨’ 혁명가 얼굴을 새기고 다니는 게 볼썽 사납고 또 어떤 사람에게는 그의 투철한 신념과 행동은 소거되고 한낱 이미지 소비의 대상이 되는 게 불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화 아이콘의 생성과 그 확산의 흐름에서 보자면, 체 게바라가 밥 말리나 커트 코베인 같은 비주류 아웃사이더 예술가와 함께 대중문화의 아이콘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충분히 그 의의가 있는 것이다.
체 게바라 티셔츠
사실 ‘나이키’와 ‘캘빈 클라인’처럼 깔끔하고 맵시 나는 티셔츠 대신에 우중충한 실루엣으로 등장하는 체 게바라 티셔츠를 골라 입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정치적으로 문화적으로 너무 그 뜻이 강렬하게 드러나는 옷을 입고, 미팅을 나가거나 회의하러 가기도 민망할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시각적으로 너무 투박하게 드러내는 것도 어색한 일이다.
그래서 다른 셔츠를 골랐다가 '아니, 이런 정도 옷도 안 된단 말인가' 하는 생각이 다시 들고, 그래서 결국 입게 되는 것이다. 그 작은 틈새는 매우 정치적인 행동이다. 체 게바라는 그런 브랜드와는 다른 영역에 있는 것으로 그것을 선택하여 몸에 걸친다는 것은 최소한의 문화적 전략이 된다.
티셔츠에 뭐라도 쓰여 있거나 그려진 것을 한사코 피하려는 사람에게는 ‘나이키’나 ‘체 게바라’나 다 같은 이미지의 소비일 뿐인데, 바로 그렇기 때문에 유명 브랜드가 아니라 체 게바라를 골라 입는 것은 적어도 1g 정도의 문화적 실천 행위가 되는 것이다. 그런 일을 ‘티셔츠행동당’이 했었는데, 그들의 유쾌한 장난이 무수히 만발한 인터넷 시대의 이미지 놀이 속에서 흩어져 버린 듯하여, 아쉽다.
첫댓글 좋은 글 감사해요.명문이 있네요.<그래서 다른 셔츠를 골랐다가 '아니, 이런 정도 옷도 안 된단 말인가' 하는 생각이 다시 들고, 그래서 결국 입게 되는 것이다. 그 작은 틈새는 매우 정치적인 행동이다.>신념과 소신을 따른다는 게 많은 용기와 결단을 필요로 하는 대단한 일이라는 생각들을 합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렇네요.'작은 틈새' 바로 이것이로군요.잠자는 영혼으로 머물 것이냐, 깨어나 밖으로 나서 목소리를 낼것이냐의 사이에는 어쩌면 '작은 틈새'가 있을 따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우리 중에 따로이 열사가 없듯이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