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은숙 소장] 우리집의 동물이야기
사과나무와 아름다운 가정은 가정의달을 맞이해
자녀와의 생활을 담은 황은숙 소장의 특별기고글을 실었습니다.
잡지명: 사과나무 2008년 5월호 '나와 미니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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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의 동물 이야기
최근 인터넷의 보급이 늘어나면서 어린 아이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개인 블로그나 홈페이지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런 열풍의 영향을 받았는지 나도 개인 홈페이지를 갖고 있다. 경제적인 형편이 그리 넉넉하지 못하다 보니 홈페이지 제작에 드는 비용을 줄이고자 다음 카페에 개인 홈페이지를 오픈했다.
“동물을 학대하면 안돼요”
내 홈페이지는 한국한부모가정연구소 메인화면에서 "황은숙 박사와의 만남'이란 배너를 클릭하면 자동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장치를 해둔 것이다. 내 홈페이지는 여러 가지 목적으로 사용된다. 하나는 한부모가정연구소 사업을 홍보하는 것이고, 다음은 대학 강의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참고자료를 올려놓는 강의실로 활용되며, 끝으로 내 개인적인 취향을 엿볼 수 있는 테마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말이 테마지 애완동물, 동물보호운동, 인종차별반대 등 인간과 동물에 관련된 내용들이 주를 이룬다. 생명체에 대한 나의 주된 관심은 인간이나 동물 모두 귀한 생명을 지닌 존재로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생명의 소중함은 인간에게만 주어진 특권이 아니며 모든 동물들에게 동일하게 주어진 값진 선물이다. 이런 생각에 따라 나는 인간에 대한 차별(성차, 인종, 사회계층, 가족구성 등)은 물론 동물에 대한 학대(굶기거나 때리는 것, 또는 보신탕 등)까지도 절대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내가 이렇게 동물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하여 특별한 활동을 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동물이 좋고, 그 동물을 보호하는 것이 우리 인간의 책임이란 생각을 갖고 있을 뿐이다. 물론 살아오면서 동물보호협회를 창설할까 하는 생각도 해봤고, 수의사가 되어 아픈 동물들을 찾아 전국을 돌며 치료를 해 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러나 동물을 사랑하는 내 마음은 한부모가정을 향한 깊은 애정에는 미치지 못하는 듯하다. 한부모가정을 위해서는 10여년간 소명감을 갖고 헌신해 온 반면 동물을 위해서는 뒷전에서 학대자들의 인격을 모독하며 학대 행위를 비난하는 선에 그쳤다.
신 동물의 왕국
동물보호에는 소극적이었지만 나는 동물을 좋아한다. 쉰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동물과 떨어져 지낸 기간이 3-4년에 불과하다보니 나와 동물은 뗄래야 뗄 수 없는 존재인 듯 싶다. 네셔널지오그래픽에 나오는 '신동물의 왕국'과 같은 동물 이야기가 세상에서 가장 좋은 프로그램으로 인식되고, 아프리카나 인도의 밀림에서 서식하는 사자, 호랑이, 표범, 치타, 원숭이, 악어 그리고 심지어 뱀에 이르기 까지 동물이라고 하면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어 보일 정도로 동물은 나에게 특별한 존재처럼 느껴진다.
생과 사의 기로에서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이고, 권력다툼을 하다 죽어가는 동물들을 보면 인간사 흥망성쇠에 마음이 무거워지고, 자식으로부터 부양받을 것은 기대도 하지 않으면서 홀로 어린 새끼를 키우기 위해 사냥에 나서는 암 표범을 보면 인간보다 진한 모성애에 감동을 받는다. 힘센 숫사자가 있으면서도 사냥할 땐 늘 암사자들이 투입되고, 사냥이 끝난 후에야 제일 먼저 먹겠다고 달려와 암사자들을 물리치는 숫사자의 횡포(?)를 보면 동물이나 인간이나 남성의 권위적인 작태는 다를 바가 없구나 하는 생각에 기분이 씁쓸해 지기도 한다. 이쯤되면 ‘동물의 왕국’은 동물이 세계가 아닌 이미 나의 ‘삶의 현장’으로 변해 있음을 느낀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호랑이, 사자, 원숭이, 팽귄, 뱀 등 동물의 모습을 본 것뿐인데 난 유명 배우나 연예인이 출연한 어떠한 텔레비전 프로보다도 더 깊은 감동을 받는다. 이런 감동은 인간들이 등장하는 어떤 창작물과 비교할 수 없는 아주 특별한 것이다. 이러한 동물이 주는 안락과 평안은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만찬과도 같다. 나는 특별히 한부모가정의 부모와 자녀를 이 만찬에 초대하고 싶다.
미니핀과의 만남
나는 18년 전 이혼하고 홀로 자녀를 키우고 있는 한부모이다. 내가 한부모가정연구소 소장으로서 어려운 한부모가정을 지원하고, 우리 사회의 한부모가정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개선하는 데 노력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하나뿐인 내 아들에게는 대부분 소홀할 때가 많았다.
엄마와 충분한 시간을 보낼 수 없었던 아이는 대인관계 기술이 부족해 학교생활에 어려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런 와중에 할머니의 지나친 청결교육이 이어지면서 아이는 깨끗한 것을 지나치게 집착하는 결벽증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아이는 하루에도 몇 번씩 수시로 손을 닦아댔다. 학교에 다녀올 때나 식사를 할 때는 물론이고 심지어는 책상이나 옷, 책 등 일상적인 물건을 만지고도 손에 먼지만 묻었다고 세면대로 달려가곤 하였다. 아이의 지나친 결벽증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그러던 중 이모가 3개월 된 닥스훈트 강아지를 데려왔다. 그 외모가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러웠던지 우리는 '강아지를 키워야겠다'는 무언의 합의를 하였다. 그러나 함께 살고 있는 부모님의 반대가 걱정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보약을 먹는 것보다 동물을 키우는 것이 건강에 더 좋다고 한다'고 부모님을 속여(?) 드디어 허락을 받아냈다.
우리는 애견샵에 가서 닥스훈트를 찾았다. 그러나 마침 그 애견삽에는 닥스훈트가 없었다. 꿩 대신 닭이라고 닥스훈트처럼 검정색 털을 가진 강아지 몇 마리가 서로 뒤엉켜 자고 있는 것이 보였다. 바로미니핀이었다. 우리는 미니핀이 어떤 개인지도 모르고 검정색 털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암컷 한 마리를 선택했다.
홍숙이? 홍순이? 소피!
우리는 컵보다도 작은 미니핀를 보면서 그 귀여운 모습에 마냥 행복해 했다. 우리는 강아지의 이름을 두고 논쟁을 벌였다. 나는 아들에게 "홍준, 네가 홍준이니까 동생이름은 홍숙이라고 하자"라고 제안하였다. 그러자 아들은 "엄마, 홍숙이가 뭐야. 사람이름 같잖아 싫어"라고 대꾸했다. 그래서 나는 또 "그럼, 홍순이라고 할까? 할머니 이름도 순자로 끝나잖아"라고 하니 아들은 "싫어, 홍숙이나 홍순이나 뭐가 달라"라고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런 논쟁 끝에서 우리는 미니핀의 이름을 '소피'로 부르기로 결정했다. 이유인 즉, 아들이 1-2살 되던 때에 집에서 기르던 푸들 견이 있었는데 무려 13년동안 장수한 적이 있었다. 우리는 어린 미니핀이 오래오래 살기를 바란다.
'소피, 이리 온'
'소피 딸아. 어디 있니?'
그 후 우리 집에는 여기저기에서 소피를 부르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소피를 입양한 후 우리 집엔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먼저 늦게까지 연구소에서 일만하던 내가 소피를 보기 위해 가능한 일찍 집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집에 돌아와서는 엄마를 잃은 연약한 소피를 침대 위에 올려놓고 친엄마처럼 온갖 사랑을 쏟았다. 그런 사랑 덕분인지 소피는 건강하게 자라 특유의 긴 다리로 껑충껑충 집안을 뛰어다녔다. 우리는 동그란 검은 눈동자와 사슴같이 긴 다리를 가진 소피의 재롱을 보며 함께 웃고 즐거워했다. 소피의 존재는 우리에게 웃음거리를 안겨줬고, 특별한 여가를 즐길 겨를이 없던 나에게 안식처가 되어 주었다.
결벽증, 사라지다
소피는 나에게 큰 선물을 주었다. 소피의 출현은 우리 아이의 삶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소피가 오기 전에는 손에 먼지가 묻었다며 10분도 채 안 돼 세면대로 달려가던 아들이 소피를 만나면서부터 그런 이상행동을 멈추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소피를 안아주면서 "손 더러워질텐데"라며 주저하던 아들이 며칠도 지나지 않아 소피를 쓰다듬고, 안아주면서 언제 '결벽증'이 있었냐는 듯이 손 닦는 습관을 완전히 버린 것이다.
소피, 애완동물이 아니라 우리의 가족이다
소피와 생활한지 어언 5년. 이제 소피는 애완동물이 아니라 우리의 가족이 되었다. 나는 소피의 엄마이고, 소피는 나의 딸이 되었다. 그리고 우리 아들은 소피의 오빠가 되었다.
언젠가 텔레비젼에 자신의 재산을 키우던 강아지에게 상속한 한 할머니의 사연이 보도되었다.
나 역시 재산이 있다면 얼마간은 소피에게 남겨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미국의 할머니를 떠올리면 아들을 불러놓고 말했다.
"아들아, 엄마가 돌아가시면 엄마 재산의 약 95%는 네가 갖고, 나머지 5%는 소피에게 주어라".
그러자 아들은 "엄마, 소피한테 95% 주세요. 저는 5%면 돼요"라고 대답한다.
나는 전 재산의 95%를 포기하는 아들을 의아해 하며 "소피한테 그렇게 많이 주려고? 너무 많이 주는 것 아니야?"라고 물었다. 그러자 우리 아들 왈 "엄마는 -통장 쓰잖아요. 빚만 있는데 상속을 받으면 더 손해잖아요. 소피나 95% 주세요. 전 5%면 충분해요"라고 말한다.
우애가 깊은 형제(?)의 모습을 보며 나는 소피를 입양한 날을 떠올린다. 주먹만한 크기에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해 반쯤 감긴 눈으로 나를 처다 보던 어린 강아지. 그 강아지가 이런 큰 변화를 안겨줄지 그 누가 알았겠는가?
새로운 관계 형성을 위해
한부모가정의 자녀들 중에는 우리 아들과 같이 심리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이 참 많다. 특히 한부모들은 직장 생활을 하기에 늦게 귀가하는 경우가 많아 자녀 혼자 집을 지키는 경우가 잦다. 아무도 없는 집안에서 하루종일 홀로 외로움을 견디다 보니 게임이나 비디오 같은 것에 몰입돼 있는 아이들도 많다. 심지어는 대인기피증으로 학교도 가지 않고 몇 달씩 집안에서 은둔 생활을 하는 아이들도 있다. 자신의 가정환경과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겪는 한부모가정 아동들에게 애완동물의 입양을 권하고 싶다. 아이들이 동물과 함께 쉼쉬고 만지고 대화하다보면 친구들과 친하게 지낼 수 있는 방법을 배우게 되고, 서로의 마음을 주고받거나 존중하는 자세를 갖게 될 것이다. 동물과의 관계가 친근해 지면 질수록 부모, 형제, 친척, 이웃들로부터 받은 상처나 불신감도 회복할 수 있는 힘과 용기도 얻게 될 수 있을 것이다. 동물은 우리에게 평안과 안정을 주는 최고의 명약이며 치료의 마술사이다. 우리가 애완동물을 친구나 가족으로 받아들인다면 동물은 우리에게 삶의 변화와 풍요로움을 안겨줄 것이다.
내가 아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 있다.
"너는 엄마에게 있어 용약이야. 그리고 소피는 매일 매일 먹어야 하는 비타민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