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가 왜 조선인가 (중원을 찾아서 본기: 대풍가와 조선태조 其 一)
고문진보전집(古文眞寶前集) 181_歌類(卷八)
대풍가-유방(劉邦)
大風起兮 : 큰 바람이 일어남이여
雲飛揚 : 구름이 날아 떨치는구나
威加海內兮 : 위세가 온세상에 떨침이여
歸故鄕 : 고향으로 돌아가는도다
安得猛士兮: 어찌하면 날랜 장사 얻어
守四方 : 사방을 지킬까
대풍가는 한고조 유방이 반란군을 토벌하고 자신의 고향 풍폐로 돌아오면서 지은 시라고 전한다. 그런데 현 전주시 한옥마을에 있는 누각 오목대에는 대풍가 현판이 걸려있다. 교과서에는 1380년 우왕6년 9월에 지리산 자락에 있는 황산에서 왜구를 토벌하고 개경으로 환도하는 길에 전주에서 불렀다고 전한다. 태조는 왜 하필 남의 나라 조상이라는 한고조가 부른 대풍가를 불렀을까?
실상은 한고조가 천하를 통일하고 그로부터 약 일천 오백년 후에, 함흥의 매 리성계는 북방을 거의 장악하고 지리산에서 마지막 발악을 하고 있는 왜구를 토벌하고 고려 조정(남송)을 완전히 장악했다는 자신감에 부른 이 노래를 부른것이다.
그때 종사관(從事官)로 정몽주가 따라갔는데, 그의 시가 있다.
등전주망송대(登全州望宋臺)
千仞崗頭石逕橫 천길 뫼 뿌리 돌길 가로 했는데
登臨使我不勝情 올라가니 나로 하여금 감정을 이길 수 없게 하네.
靑山隱約扶餘國 푸른 산은 은근히 부여국임을 약속하고
黃葉續紛百濟城 누른 잎은 어지러이 백제성에 떨어지네.
九月高風愁客子 9월의 높은 바람은 나그네를 근심케 하고
十年豪氣語書生 10년의 호탕한 기운은 서생임을 말해 주네
天涯日沒浮雲合 하늘가 해가 지고 뜬구름이 합치는데
翹首無由望玉京 고개 들어 까닭 없이 서울만 바라보네
리성계가 왜적을 소탕하자, 정몽주가 천심이 리성계에 이미 기울었음을 인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마지막 두 구절에 잘 나타나 있다.
天涯日沒浮雲合 하늘가 해가 지고 뜬구름이 합치는데
翹首無由望玉京 고개 들어 까닭 없이 서울만 바라보네
태조 리성계의 시를 인용한다. 〔http://blog.chosun.com/casy/3651498 〕
조선 숙종 때 학자 홍만종(洪萬宗: 1643∼1725)이 쓴 ‘소화시평(小華詩評)’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조선조 태조 이성계가 지금의 경복궁 뒷산인 백악(白岳) 북악산(北岳山)에 올라,
‘突兀高峰接斗 우뚝한 높은 봉우리 정했는데
漢陽形勝自天開 한양의 명승이 하늘로부터 열렸네
山盤大野擎三角 북악산은 큰 들에 서리어 삼각산을 받들고
海曳長江出五臺 바다는 긴 강을 끌어 오대산에서 나오네
라는 시를 읊었는데 이 시의 필력(筆力)이 호장(豪壯)하여 한나라 고조(高祖)의 ‘대풍가(大風歌)’와 더불어 그 웅장함을 다툴 만하다.’
[이 시의 필력(筆力)이 호장(豪壯)하여 한나라 고조(高祖)의 ‘대풍가(大風歌)’와 더불어 그 웅장함을 다툴 만하다.]
홍만종은 동명 정두경의 제자이다. 당대 조선 최고 선비가 태조의 시에 대해 이러한 평을 하고 있다. 제후국을 자청했다는 조선과 그 선비들이 감히 어떻게 중국 한고조의 대풍가와 조선 태조를 비교를 할 수 있을까? 이것은 기존학설에 정 반대되는 표현이자, 태조가 한고조와 업적이나 행적이 비슷하고 그 지위가 같아야 가능하다.
잘 알려진대로 리성계의 본관은 전주다. 지금의 전북 전주시라 한다. 리성계는 영흥에서 태어났고 함흥에서 활동하고, 거병했다. 실록이나 문집에서 함흥을 풍폐지향 혹은 풍폐라고 한다. 그런데 전주에서 태조가 대풍가를 불렀다면, 전주가 함흥이고, 풍폐라는 이야기로 밖에는 설명이 안된다. 남북 이산가족으로 수대를 살았는데 함흥에서 전라도 전주까지 와서 왜 쓸게 빠진 사람마냥 대풍가를 불렀을까? 실록과 조선의 문사들은 하나같이 함흥을 풍폐라 하는데. 부르고 싶거든 자신의 근거지인 함흥에서 불러야 이치에도 맞고 명분에도 맞는 것 아닌가? 즉 전주가 함흥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행위다. 이렇게 조선의 중국 , 기방천리의 지명을 둘로 쪼개서 반도에 고정시킨 것으로 의심되는 것은 한 둘이 아니다.
Ⅰ.전라도: 전주, 남원, 순천,
Ⅱ.경상도: 함양 대구 영천
Ⅲ.함경도 ; 함흥 영흥 종성 안변
Ⅳ.강원도 강릉. 삼척. 태백
Ⅴ.충청도 청주 공주 연기
전주는 풍폐지향이라 하고, 전주리씨의 본관이다. 남원은 명상 황희의 고향이고 순천은 실록에 나오는 중국의 순천부와 같고, 함흥은 북방의 요해지로 전주와 함께 풍폐지향이라 하며, 강릉은 중국지명과 같으며, 태조의 선조들이 도망간 곳이며, 신사임당의 고향이고 태조는 동북면 삭방 강릉도 도통사를 지낸 적이 있다.
창왕(昌王)이 태조를 동북면 삭방 강릉도 도통사(朔方江陵道都統使)로 삼고 충근 양절 선위 동덕 안사 공신(忠勤亮節宣威同德安社功臣)의 칭호를 내렸다.
[ 昌以太祖爲東北面朔方江陵道都統使, 賜忠勤亮節宣威同德安社功臣之號。]조선왕조실록 태조 총서
현 중공에 있는 강릉이라는 지명이 동북면 , 삭방도 인가? 현 중공대륙의 강릉은 남방 호북성에 있다.
충청도 청주, 공주, 연기 :
현재의 반도지형으로 보면, 연기의 조치원과 청주 ,공주 는 서로 붙어있으며, 특히 연기의 한자는 燕岐다. 燕 의 岐 지방이 아닐까? 연경과, 주나라의 기(岐), 청주 한(韓)씨 한확, 한명회, 한명회가 세운 한양교외에 세운 압구정. 이것은 청주나 연기나 같은 지방이라는 것이며, 조선의 중국(中國) 즉 기전산하 사방천리 에 있는 지명이라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경상도의 함양, 대구:
함양은 秦의 수도 咸陽과 대구는 진의 선조 非子의 봉지 大邱와 이름이 같다. 또한 지리산이 경상도 함양과 전라도의 남원의 경계에 있다. 남원에서 운봉 함양 사이에 있는 산이 荒山인데, 1380년 태조가 왜구랑 싸운 곳이 바로 그곳이라고 설명한다. 이 왜구는 누굴까? 그리고 전라도와 경상도의 경계에 있는 지리산과 남원, 함양, 연기까지 침입한 합단과, 송악까지 쳐들어온 홍건적... 반도로 설명할 수 있을까?
또한 태조의 작전 반경과 시간 등을 고려해보면, 왜구는 몽골잔당과 홍건적일 가능성이 높으며 홍건적 또한 중원의 혼란을 틈타 천하를 어지럽힌 도적떼일 뿐이다. 그 수괘중 하나가 주원장이다. 그러한 말세에 가까운 혼란기를 리성계가 평정한 것이다. 태조가 지리산에서 격파한 왜구는 홍건적일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비슷한 지명은 충청도 진천이 있다.
반도의 진천은 震川 중국 진나라의 진천은 秦川 震과 秦 발음도 같다.
진천秦川은 위수渭水가에 있다고 한다.
見渭水思秦川(견위수사진천) -岑 參(잠 삼)
渭水東流去 위수가 동쪽으로 흘러
何時到雍州 어느 때나 옹주에 이를까.
憑添兩行淚 두 줄기 눈물을 더하여
寄向故園流 고향으로 흘러 보내리.
渭水와 秦川 秦都 咸陽 특히 진천은 진의 수도 함양의 경내를 흐르는 하천이자 지명이며 장안과 같은 곳이다.
진천은 진나라 수도 함양에 있고 김만중은 구운몽16장 양승상등고만원에서 종남산 꼭대기에 올라보면 진천 팔백리가 손바닥처럼 보인다고 하고 있으며. 촉한의 명재상 제갈공명은 진천을 공략하는 북벌을 시도했다. 즉 진천= 함양= 장안=서경이다. 진이 새롭게 개척한 중원중의 중원이며 전한(前漢)과 수(隨),당(唐)의 도읍이었다, 그 곳에서 巴蜀으로 내려가는 길목에 진령(秦嶺)이 있다.
한고조 유방이 파촉으로 도망갈 때 모사 장량(張良)의 의견을 받아들여 잔도(棧道)를 불살라 버렸다. 잔도는 관중에서 진령(秦嶺)을 넘어 남쪽으로 한중(漢中)과 파촉(巴蜀)땅으로 이어지는 고대 교통의 요지로... 류예지음 , 김인지 옮김 <헬로우 귀곡자> 미래사 91P
만겹의 산이 두르고 있어 자연적으로 요새가 되어 한명의 병졸로도 만명의 군대를 상대 할 수 있다는 진의 수도 함양 關中 ,진령, 조선사의 진령,한양이 과연 현 서안일대일까? 필자의 생각은 '아니올씨다.' 이다.
조작자들은 한반도 크기의 해내지역을 현 중공대륙으로 바꿔놓고, 현 중공대륙을 중국대륙의 명산으로 맞춰야 했던 것이다. 조선팔도는 해내와 대황까지의 사방삼천리 화하지역을 가리키는 것이지 현 중국대륙처럼 어마어마한 땅덩어리 크기가 아닌 것이다.
안록산이 아무다리아 북쪽에서 거병하여 장안을 점령하자 현종은 파촉으로 도망가는 루트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秦嶺은 현 아프가니스탄의 중심에 뻗어있는 흰두쿠시 산맥 중앙에 자리잡고 있는 고대 실크로 교통의 중심지 바미얀과 카불사이의 험준한 고개를 말하는 것으로 바미얀주 바미얀석불 근처에 있는 Ak-Robat pass 혹은 바미얀과 카불사이의 Salang pass로 보인다.
바미얀에서 카불까지 구글어스로 경로측정한 거리(직선거리가 아니다.)는 약 181마일 292km이다. 카불에서 잘랄라바드까지 131km 잘잘라바드에서 페샤와르까지 123km 로 바미얀에서 페샤와르까지 총 거리는 약 546km 이다.
다음으로 바미얀에서 발흐까지의 거리는 사망간주를 경유하는 코스로 계산하여 약 388km가 된다.
바미얀과 힌두쿠쉬 산맥을 중심으로 북으로는 발흐까지 남동으로는 페샤와르까지 남북으로 각각 천리가 된다. 태조는 이 지역들을 중심으로 나하추. 왜적과 싸웠다. 힌두쿠시에서 동북면이면 현재의 아프칸 쿤두즈에서 케시미르와 길기트 일대이고, 그곳이 목조 이안사가 옮겨 갔다는 삼척으로 보인다. 바닥샨 지역이다. 그런데 발흐와 쿤두는는 매우 가깝고 여기서 또 옮겨갔다는 영흥도 현재의 우즈벡 케쉬 일대로 별로 멀지 않은 지역들이다. 전주인 발흐에서 쿤두즈로 갔다가 케쉬로 이주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조선의 한양이 장안이고 함양이고 종남산 자락에 있었다. 이 진령을 기준으로 령남, 령동을 관동, 관북, 관서를 구분했다. 關中이 곧 秦嶺인 셈이다. 즉 이곳 바미얀을 기준으로 하여 사방천리 안에 지리산 및 조선의 명산대천이 있다는 것으로 봄이 합당하다. 지리산은 조선의 오악이중 하나이고, 조선의 오악(五嶽)은 백두산 금강산, 묘향산, 지리산, 계룡산이다. 그리고 지리산이 함양과 남원 사이에 있다는 것은 경상도, 전라도, 경기도, 충청도 ,강원도. ,황해도, 평안도 함경도의 주요지명들은 원래 경기지방의 지명인데, 지명을 못 알아보도록 잘나내서 옮긴 것으로 봐야 한다. 그러한 관점에서 지리산도 힌두쿠쉬와 바닥산 혹은 남악이라 했으니, 바미얀과 페샤와르 사이의 산에서 찾아야 된다.
계룡산은 충청도에, 삼각산은 한양에 묘향산은 평안도에, 백두산은 함경도와 평안도 사이에 , 금강산은 강원도에 지리산은 전라도와 경상도에 반도의 명산에다 가져다 붙였지만(그렇다고 해서 평안도의 지명이 평안도에 있는 것이 아님, 전주가 함흥이며, 전라도와 함경도로 나누어져 있듯이), 중국이 천자직할지로 기전산하 사방천리와 점과 기전을 감싸고 있는 조선팔도는 대군들과 왕족, 공신들의 봉지이니,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라는 말이 결코 어색하지 느껴지지 않게 된다. 무궁화 삼천리 화려 강산은 조선의 중국지방의 명산대천을 뜻하는 노랫말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