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한시백일장 파일.hwp
第9回 忠州全國漢詩紙上白日場 要綱
1. 趣旨
2016 제9회 忠州 全國漢詩白日場을 下記와 같이 지상백일장으로 개최하오니, 이에 관심을 가진 全國의 漢詩 同好人 여러분께서 많은 참여를 바랍니다.
2. 詩稿 마감 : 2016년 11월 15일 도착분
3. 主催/主管 : (사)해동연서회충주지부/中原吟社
4. 參加對象 : 한시창작 가능자
5. 詩題 및 押韻:
1) 詩題 : 祝忠州市昇格 60週年
2) 押韻 : 基, 辭, 池, 怡, 期 <支 韻目>
6. 作詩上 유의사항 : 違簾.對不合.疊字.疊意외 일반관례에 준함.
7. 考選 : 斯界 權威者에게 委囑, 嚴正, 考選함.
8. 入賞者 發表 : 2016년 12월 초 個別通知
9. 施賞 : 壯元 1人 상장및 부상 칠십만원
次上 2人 상장및 부상 각 사십만원
次下 3人 상장및 부상 각 이십만원
參榜 15人 상장및 부상 각 일십만원
佳作 25人 상장및 부상 각 오만원
10. 施賞式 : 2016년 12월 10일 오후2시 충주문화회관
11. 送稿處 :우편번호 27422
충주시 중원대로 3379(럭키@108동 503호)
(사)해동연서회충주지부/중원음사
12. 問議處 : ☎ 043-844-5456 팩스 043-855-5456
010-8727-5456 徐東亨
(社)海東硏書會忠州支部/中原吟社
第9回 忠州全國漢詩白日場 簡介
忠淸北道 忠州市는 우리나라의 중앙부를 차지하며 북동쪽으로는 제천시, 서로 음성군, 남으로 괴산군과 경상북도에 면하고, 북으로 경기도와 강원도에 면한다. 충청북도에서는 북동부에 치우쳐 위치해 있다. 또한 남동쪽으로 小白山脈의 餘脈인 鷄鳴山 · 南山(錦鳳山) · 大林山 · 月岳山 , 서쪽으로 國望山, 북쪽으로 天登山 등 비교적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산간 분지이다. 그리고 漢江과 達川 및 요도천이 충주시를 관통해 예로부터 水運이 편리하며, 忠州湖와 彈琴湖의 건설로 水資源이 풍부한 內陸 盆地이자 湖畔都市이다.
三韓시대에 충주지역은 馬韓연맹체에 속했는데, 삼국시대에 들어 백제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백제의 영역에 편입되었다. 특히, 삼국은 충주를 차지하는 나라가 강국이 된다고 믿어 쟁탈전을 극심하게 벌였고, 이로 인해 충주는 백제·고구려·신라의 지배를 두루 받아야 했다. 삼국의 충주 지역 쟁탈전은 고구려의 광개토대왕 · 장수왕 · 문자왕의 남진정책으로 더욱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이때 고구려는 충주에 國原城을 설치하고 수도 다음 가는 도시로 승격시켜 남한강 유역 일대의 경영과 신라 정벌을 위한 책원지로 삼았다. 이 무렵 고구려 남진정책의 성공을 기리는 척경적 의미를 지닌 충주 高句麗碑를 충주에 건립하였다.
고구려의 영토가 된 충주는 70여 년 후 신라의 영토로 바뀌었다. 충주가 신라의 지배에 들자 진흥왕은 친히 국원을 순행하고 계속 북진하였다. 신라는 557년 국원성을 國原小京으로 개칭하고, 다음해는 신라 중앙귀족의 자제와 6부의 豪民을 충주로 士民시켜 군사·정치·문화의 중심도시로 위상을 높여 삼국통일의 전초 기지로 삼았다. 이 무렵 인물로는 强首 · 于勒 · 니문 · 계고 · 법지 · 만득 등이 있었다. 强首는 가야계 출신으로 백제·고구려를 평정하기 위해 당나라에 請兵할 때 외교문서에서 공이 컸다. 于勒 역시 가야계 사람으로 伽倻琴의 大家로 명성을 떨쳤다. 삼국시대의 충주에는 백제·고구려·신라·가야의 문화유산이 공존하고 있다. 백제의 薔薇山城, 고구려의 忠州 高句麗碑, 鳳凰里 磨崖佛像群, 신라의 무암리 古墳, 탑평리 7층 석탑(中央塔), 우륵의 彈琴臺 등은 이러한 공존을 보여주는 문화유산이다. 삼국통일 후 충주는 영토의 중심에 위치한 명실상부한 부도로서 정치·군사·문화의 도시로 발전하였고, 673년(신라 문무왕 13)에는 국원소경을 中原京으로 개칭했다.
고려시대 충주 지역의 위상은 지역의 명칭이 940년 中原에서 忠州로 개칭되었다. 특히 주목을 끄는 변화는 충주가 국내 분쟁의 거점 지역에서 벗어나고 거란·홍건적·몽고·왜구 등의 이민족의 침입이 있을 때마다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투쟁하여 忠節의 고장으로 인정받았다.
조선시대에 충주민의 국가 보위를 위한 애국심은 강하여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한말 의병전쟁 때도 그러했다. 임진왜란 때 탄금대 전투에서 8천여 병사와 함께 순절한 申砬 장군, 500명의 의병을 이끈 의병장 조웅, 병자호란 때 활약한 林慶業 장군 등은 충주의 우국충절을 돋보이게 하는 인물들이다. 1882년 임오군란 때 明成皇后가 충주(노은면 가신리)로 피신하여 2개월 동안 있다가 환궁하였다.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충주 지역민의 삶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내륙 물류 경제의 중심지였던 가흥창이 폐지되고, 경부선과 중앙선이 충주를 벗어나 개통되었고, 특히 1908년 충청북도 道廳이 淸州로 이전되고 郡守가 배치되었다. 1917년 읍내면이 충주면으로 개칭되고 1913년 4월 1일 충주가 읍으로 승격되었다. 1949년 「지방자치법」이 공포되어 같은해 8월 15일 시행되었다. 忠州邑은 1956년 7월 8일 忠州市로 승격되었다. 忠州郡은 中原郡으로 개칭되었고, 1963년 1월 1일 괴산군의 상모면(현 수안보면)이 중원군에 편입되었다.
충주시와 중원군은 1995년 1월 1일 「도시와 농촌의 복합형태의 시 설치 등에 관한 법률」(제477호) 시행에 따라 새로운 충주시로 통합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인구는 22만 명에 달하며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중부내륙고속도로의 개통, 국도 3호선의 4차선 완공, 안중-충주-삼척을 잇는 동서고속도로 공사, 중부내륙철도 개설, 기업도시 유치 등 지역 발전의 새로운 기반 시설들이 정비되어 가고 있다.
2016년은 忠州地名 誕生 1076년이 되는 해이며, 7월 8일이 충주시 승격 제60주년이 되어 충주 시민의 날로 제정되어 기념하고 있다. 한편 2017년에 제98회 전국체육대회와 제37회 전국 장애인체육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