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ceman
1991년 티롤 알프스에서 하이킹을 하고 있던 독일 커플이 외츠탈러 알프스의 시밀라운 빙하 근처의 얼음에서 황갈색의 인간 시체를 발견했다. 아이스맨, 시밀라운맨, 또는 '외치'라고 명명된 이 시체는 선사시대로부터 가장 오래 완벽하게 보존된 인간이다.
3,200미터 이상의 고도에 누워 있던 이 시체는 조악하게 발굴되었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도 이 시체의 연대나 중요성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발견 후 이 시체는 오스트리아의 인스부르크대로 옮겨졌다. 이후 근처에서 발견된 많은 소지품과 의복은 보존을 위해 독일 마인츠로 옮겨졌따. 측정해보니 원래 시체가 이탈리아 국경 안쪽 93미터 지점에 있었던 것이 증명되었기에 1998년에 외찌는 볼차노 박물관으로 옮겨졌다. 그곳에서 이 아이스맨은 그의 모든 복원 장비와 함께 지속적인 습도와 영하 6도의 온도가 유지되는 방에서 현재까지 전시 되고 있다.
아이스맨의 도끼에 대한 첫 평가는 그 도끼날이 청동기시대의 날이라는 점과 그 몸체는 약 4천 년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후의 조사로 금속이 거의 순수한 동이었고, 몸체, 의복 안의 풀, 유물에 대한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을 통해 아이스맨이 약 5,350년에서 5,100년 전에 살았음을 알게 되었다. 이때 이 지역은 구리시대(후기 신석기시대)였다.
<1991년 시밀라운 빙하 근처의 발견된 장소에서 아이스맨의 건조된 몸을 촬영한 모습>
옷과 연장통
아이스맨의 잘 보존된 장비와 의복에 대한 분석을 통해 선사시대 생활에서 사용된 광범위한 재료와 기술에 관해 많은 것을 밝혀냈다. 예를 들어 나무의 18가지 형식을 70개의 유물에서 식별했다.
여기에는 풀을 짜 만든 칼집 안에 물푸레나무 자루의 돌 단검과 마무리되지 못한 상록수나무로 만든 긴 활 등이 포함된다. 60센티미터 길이의 아이스맨의 도끼는 상록수나무의 손잡이와 박달나무 송진과 가죽 끈으로 붙인 동날로 되어 있었다. 사슴 가죽활 통에는 가막살나무와 층층나무로 만든 14개의 화살이 들어 있었다. 그 끝에는 사슴뿔 조각을 박아 넣은 린덴나무로 짧은 지팡이를 만들어 부싯돌 작업에 사용했다. 또 2개의 꿰맨 박달나무 통에 잿불을 담아 불을 지피는데 사용했다. 가죽 조각에 붙어 있는 2개의 박달나무 진균이 들어 있는 원형 통은 일종의 의약용 목적으로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가운데 구멍이 뚫려 있는 대리석 원반이 가죽 조각과 가죽 끈 솔에 붙어 있었다. 아이스맨은 또한 개암나무와 낙엽송나무의 틀로 만든 가죽 배낭이라 할 수 있는 것을 지니고 있었다.
연장 표면을 현미경으로 살펴본 결과 동물의 털, 피, 조직의 흔적을 발견했다. 이는 아이스맨이 당시 섀미, 야생염소, 사슴 같은 많은 동물을 사냥했거나 도살했다는 증거다. 도끼날 위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 부분적으로 요리되었거나 열이 가해진 녹말가루의 잔재는 그의 마지막 행위 중 하나가 죽을 먹는 동안 기둥을 수리하거나 수선했었음을 암시한다.
아이스맨의 옷은 보온을 위해 풀로 채워져 있던 여러 번 수선한 (곰 가죽 밑창과 사슴 가죽 덮개로 된) 가죽 신발, 염소 가죽 각반과 허리에 두른 띠, 송아지 가죽 허리띠와 주머니, 풀과 갈대로 엮어 짠 어깨 망토, 무두질한 염소 가죽 조각과 동물의 근육으로 꿰맨 코트, 그리고 곰 가죽 모자로 이루어져 있었다. 배낭으로 추측되는 가방 안에는 사실상 눈신 한 짝의 잔해가 있었다.
<보온을 위해 풀을 채운 그의 닳은 신발 등 아이스맨의 잘 보존된 소유물들은 선사시대 사람이 사용한, 유기물질로 만든 여러 종류의 물건을 담은 독특한 타임캡슐이 되었다>
그는 어떻게 죽었나?
아이스맨의 정체와 그의 죽음의 원인에 대해 많은 추측이 난무한다. 그의 창자 안에 있던 내용물들에 대한 DNA 분석은 그의 마지막 식사가 붉은 사슴고기와 시리얼이었을 것라고 밝혀냈다. 그 전에 그가 야생염소 고기를 먹었음도 알아냈다. 위 안의 서어나무 꽃가루는 그가 아마도 6월에 죽었음을 보여준다. 그의 도구 중 일종의 부싯돌과 꽃가루(그가 죽기 전 약 여섯 시간 동안 호흡해 들이마신)는 그가 이탈리아 남쪽의 카타리나베르크 지역에서 왔음을 보여준다.
그의 나이는 40대 중반에서 후반으로 추정되며(당시로서는 꽤 늙었다), 검은 피부를 지녔고 약 1.57미터의 신장에 약 50킬로그램의 몸무게가 나갔다. 그는 좋은 상태는 아니었다. 그의 폐는 불의 연기 때문에 검게 되었고, 동맥은 굳었다. 그의 치아는 닳았다(아마도 거칠게 간 곡식 때문일 것이다). 그의 발가락은 동상의 흔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의 갈비뼈 몇 개는 부러졌다 붙었다. 그의 등 밑, 무릎, 발목, 왼쪽 손목에 있던 짧은 선과 십자가 모양의 작은 문신은 작은 상처에 목탄을 문질러서 만들었다. 이들 마크는 아마도 관절염을 완화하고자 치료했던 흔적으로 보인다.
아이스맨의 손톱 중 하나는 복원되어 있었는데, 그 안의 검은 라인은 그 남자가 몇 개의 질병으로 규칙적으로 고통받았거나 그의 죽음 전 몇 달간 영양실조(손톱의 성장에 영향을 끼친다)로 고통받았음을 드러낸다. 그래서 그는 이미 쇠약해 있었고, 아마도 산의 폭풍에 발목이 잡혔고, 그 폭풍우에 굴복했던 것이다.
2001년에 이루어진 CT 촬영을 통해 아이스맨 왼쪽 어깨 위에서 돌화살촉의 흔적이 드러났다. 그러나 이 화살촉이 그의 죽음에 영향을 크게 끼쳤는지 아닌지는 불확실하다. 만약 그랬다면 화살대는 어디에 있는가? 그의 화살은 아름답게 보존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왜 이 화살대는 사라졌을까?오래된 사냥 사고의 자취가 아니었을까?
그가 죽기 직전에 심각한 상처의 원인이 된 2개의 깊은 상처가 아이스맨의 오른쪽 손과 손목에서 발견되었다. 날카로운 어떤 것이 그의 오른쪽 엄지 손가락의 밑동을 관통했던 것처럼 보인다. 이들은 주먹 대 주먹의 싸움에 관한 추측을 불러 일으켰다.
간단히 말해서, 심지어 15년간의 연구가 있었지만, 아이스맨은 여전히 우리에게 수수께게와 놀라움으로 등장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여전히 정확히 왜 그가 죽었는지, 그가 무엇을 했는지는 물론이고 왜 그가 산에 갔는지조차도 알지 못한다.
폴 반 엮음(원형준 외), 2008,『고고학의 모든 것』, 루비박스, pp.275~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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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찌, 즉 아이스맨에 대한 재밌는 추가 정보가 있길래 여기에 더 적어 봅니다. 엮은이가 글의 말미에 적은 것처럼 15년간의 연구가 진행되면서 새로운 사실들이 추가적으로 확인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그가 누구인지', '그가 왜 그 곳에서 죽었는지' 와 같은 우리가 정말 알고 싶어하는 사실들 혹은 기본적인 의문점들은 해결되지 않고 있다. 주인장이 저 위에 빨간색 굵은글씨로 표시한 것을 보면 알겠지만, 아이스맨이 지니고 있던 수많은 장비가 정말 다양한 나무들로 만들어진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일반적으로 목기(木器)를 보면, 단일한 나무로 만들어졌겠지~하는 생각에 그 수종 분석까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이는 연구자(물론 관련 전공자에게는 아니겠지만)들도 그렇고, 일반인들도 마찬가지 같다. 암튼 아이스맨이 보유했던 도구들에서 알 수 있듯이 당시 사람들도 기능에 따라 다른 도구를 만들때는 서로 다른 재료를 활용했음을 다시 한번 알 수 있었다.
그나저나 주인장이 조금 놀란 것은 아이스맨의 위 속에서 찾아낸 꽃가루를 통해 그의 사망 시기와 그가 어느 지역에서 왔는지를 알 수 있다는 점이었다(위에 파란색 글씨 부분). 우리나라에서도 미라가 종종 확인되는데(물론 조선시대 미라가 대부분이지만) 그 위 속에 들어있는 물질들을 분석해서 이와 같은 결론을 도출해냈던 자료는 쉽게 보지 못 했다. 이런 것이 일종의 '발상의 전환' 혹은 '고정관념 탈피' 등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비록 아이스맨 한명에 대한 조사가 이뤄지지만, 그 결과는 당시 아이스맨의 주변 환경을 해석하는데도 크게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이와 같은 연구는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과학이 점차 발달하면서 이전에는 몰랐던 사실들이 새롭게 등장하고, 이전에 알려진 사실들이 자꾸 수정되고 있는데 이는 정말로 보기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이스맨과 같은 옛날 미라(인골이야 가끔 확인되지만)가 발견될 날이 오겠냐만은 정말 그렇게 된다면 그때 우리는 아이스맨을 다뤘을 때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실수없이 처리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한편으로는 신석기시대 후기나 청동기시대 초기 인류의 삶을 묘사할때 이런 자료들을 기반으로 고증을 하는 것도 나쁘진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댓글 재미있어요^^
재밌게 보셨다니 다행입니다. ^^
질 읽고 보았습니다
아~도움되셨다니 다행입니다. ^^
짧은 시간이나마 5000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시간여행을 했네요. 잘 읽었습니다. ~~~~~~
네 도움되셨다니 다행입니다. ^^
외치의 사인은 머리의 부상...이미 전투나 폭력이 일상화된 사회에서 치명상을 입고 헤매다가 사망한 듯...
http://m.media.daum.net/m/media/digital/newsview/201306121337158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