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고양에 올 때 나는 1500cc 세단에다
컴퓨터와 책 몇권과 수저와 옷 몇 조각을 싣고 왔다.
행신동 햇빛마을 뒤 가라산 아래 한 칸 짜리 방을 얻어 집으로 삼고,
행주대교 위에서도 한강은 훤희 드러났다.
갈매기 날으는 다리 위
중앙선도 흐릿한, 가까운데 서울이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다리를 건널 때마다 시선은 용감하게 뛰어 내렸다.
맞은 편 낮은 산이 그 유명한 행주산성을 지고 엎드렸는데
아는 거라고는 집까지 가는 길 뿐이었다.
일을 마치면 종종, 아는 사람없는 새벽을 데리고 혼자
가라산 모퉁이에 산에 덧 댄 지붕아래, 지금은 타이어가게가 산을 파먹은, 포장마차를 들렀고
가을이면 한강이 밀어올리는 무대효과같은 안개에 잠겨 감상을 피워 올렸다.
늦은 귀가는 주차공간을 허락하지 않았고 집에서 10분 거리는 양호했다
덕분에 개구리주차 솜씨가 늘었다.
전세 2년에 조금 못 미쳐서 원당으로 집을 옮겼다.
새집증후군이 만발하던 이른 봄, 창문을 온통 열어 두고 자야했고
어느 그믐날에는 택시에 열쇠 꾸러미를 놓고 내리는 바람에
애궂은 소방차 신세를 지기도 했던 그 집에 살 때 결혼을 했다.
원당시장은 장을 둘러보는 쏠쏠한 재미가 있는 곳이었다.
재개발 되기 전 주공아파트에는 1층부터 끝 층까지 문열어 놓고 사는 이웃이 있었다.
이네들은 가끔 맞은 편 체육공원에서 삼겹살을 굽기도 했다.
원당역과 나란한 의정부가는 길에서 집으로 바로 연결되었다
그때쯤은 어디든 차로 다녔고 내 몸을 받들어 모시던 이 놈은 이제 20만키로를 더 달렸다.
잠바와 면바지차림의 거꾸로 읽는 세계사의 저자로만 알았던 유시민을 만난 것도 이무렵이다.
보궐선거 지원 모임같았는데 2차로 옮겨 마신 술집 이름이 아프리카였던가.
물론 우루루~
달이 높은 날에는 공양왕릉까지 산책을 갔다.
소주 한 병을 들고 한 사직의 최후를 몸으로 감당해야 했던 비운의 주인공이라
왠지, 빈 손으로 가면 안될거 같다기보다는 그러한 정취에 오히려 술 없이 내가 버티기 힘들거 같아서
물론 술은 그와 나누었다. 가끔 그렇게 풀냄새 가득하고 지뢰가 있으니 조심하라는 군부대의 경고문이 나붙은
그의 용포자락에 누워 취해보는 것도 낙이었다.
이런 동네에 집 하나 있었으면... 실행할 용기는 없이 주절거렸다.
철길을 건너면 식당들이 모인 사거리 안쪽으로 몇집이 모인 동네를 지나는 길은 또한
달빛을 받거나 구수한 소똥냄새를 맡기에 참 좋았고 옆지기도 차로 가는 것은 흔쾌하므로
사연이 있을 것 같은 낮은 언덕을 넘어 원당역으로 나오는 짧은 드라이브를 즐기기도 했던 것 같다.
물론 자유로 덕분에 조용한 북쪽땅과 달리는 차머리를 때리는 대북방송을 길바닥에서 듣기도 했다.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장관도 보고 임진강으로 밀려드는 서해바다를 벅차게 안아보기도 했다
유순한 강아지처럼 엎드린 강매산과
덕양산 꼭대기에서 내려다보는 한강 - 이 한강은 도시를 가로지르는 강으로는 전지구적으로 유례가 없는 수로이다 - 또한 도시와 자연과 분단과 사람을 생각케하는 멋진 선생님이다.
점차 고양이 내안에 들어왔다.
노무현선생이 대통령에 당선되고 봄이 되자 전세기한이 도래했다.
내게는 서울로 나가는 통로일뿐이었던 능곡이 이젠 7년째 붙어사는 우리 동네가 되었다.
능곡에서 태어난 아들이 넘치는 개구짐을 발산할 수 있는 공원이 있고, 정확한 수질을 알수 없지만 동네 사람들과 떠다 먹는
지하수는 특히, 술 먹은 다음 날 내게 보약 같다. 떨어지기만 하는 빌라를 샀다고 먹었던 욕을 뉴타운에다 다 게워내고 있다.
딱 대출만큼만 올랐는데 내 딴에는 기막힌 재테크를 한 셈이다. 소가 뒷발로 쥐를 잡은 셈이다.
그럭저럭 고양 덕분에 나는 어딘들 타향이랴는 생각을 하고 있다.
고양은 인구가 100만에 육박한다.
사람들은 서울보다 공기가 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호수공원이 주는 이미지는 고양보다는 일산을 잘나가는 신도시로 인식시키기에 충분했다.
고양은 녹지가 많다고 알고 있고 고양은 호수공원과 킨텍스덕에 가히 국제적인 도시가 되어간다.
고양에 발 디딘 10년간 고봉산 주변이 개발되었고
외곽순환도로가 개통되었고
강매산에 걸쳐질 도로가 계획되고
무언지 알 수 없는 다릿발도 대곡역을 가로지를 태세다
원당에서 식사동 쪽 얕은 고개 왼쪽의 섬 같은 녹지엔 골프장이 소방도로까지 내며 건설되었다.
그 유명한 백마애니골에는 휘황한 간판들이 먼저 달려 나오고
애니골 뒤 쪽에는 넓은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다.
차차 추억이 되는 기억을 반추할 장소들이 사라지고 있다.
물론 작금의 대한민국에서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현상들이다.
그러나 지방자치제도하에서 각 도시의 특성에 대한 고려 없이 무수한 삽질만 해대는 것은
가끔 억장이 무너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내가 변함 없이 살 수 있는 것은 나의 환경이 변함 없이 유지 될 때이다.
삽질행정이 누군가는 배불려 주겠지만 최소한 나 같은 사람에게는 아니올시다이다.
어디든 애정을 가지면 그 행정에 고삐를 채울 수 있지 않을까.
삽질도 도시와 시민들을 봐가면서 해야할 것이다.
자유로에서 보는 겨울철새는
행주대교에서 보는 갈매기는
디엠지와 똑같은 표정의 장항습지는
가라뫼와 고봉산과 정발산은
쉬이 쫓아내고 만만하게 밀어버릴 무엇은 아니다.
감성있는 행정이 필요하다, 일개정당이 전국적 지방독재를 해서는 안된다, 생각없는 삽질은 이제 그만두어야 한다.
세금을 걷자고 수요도 없이 짓는 아파트는 그만두어야 한다.
사람들에게 촉촉한 고양이 되기를 바란다.
이들이 모두 '어딘들 타향이랴'는 생각하게끔 하는 고양이기를 바란다.
첫댓글 한편의 서정시를 눈으로 보는 느낌입니다. 그리고 개발에만 정신이 없는 사람들에게 한번쯤 뒤돌아 보게 하는, 그리고 잠시 쉬어가며 생각하게 하는 좋은 글입니다. 앞으로도 좋은글 많이 부탁 드립니다.
고양이 감성이 살아 있는 도시가 되기를 바라는 맘입니다. 김수영님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