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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1등공신 판삼사사 전보문(全普門)
[요약정보]
시호 안경(安敬)
생년 ?(미상)
졸년 1366(공민왕 15)
시대 고려 후기
활동분야 관료 > 관인
[상세내용]
전보문(全普門)에 대하여
미상∼1366년(공민왕 15). 고려 후기의 관인. 공민왕이 세자로 원나라에 있을 때 수종(隨從)한 공로로
1352년(공민왕 1)
1등공신에 올랐고 판도판서(判圖判書)가 되었다.
그뒤 전리판서(典理判書)에 제수되었고,
1354년
동지밀직사사(同知密直司事)를 거쳐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로 승진하고 나서 곧 원나라에 하정사(賀正使)로 파견되었으며, 귀국 후 판밀직사사(判密直司事)가 되었다.
1356년
삼사우사(三司右使)로 천직되었다가 관제를 구제도로 바꾸었기 때문에 수사공 우복야(守司空右僕射)로 고쳐 제수받았다.
1358년
문하평장사(門下平章事),
1363년
경상도도순문사,
1365년
판삼사사(判三司事)에 올랐다.
이듬해 원나라에 하정사로 갔다가 이곳에서 한림시강학사 지제고 동수국사(翰林侍講學士知制誥同修國史)를 제수받고 귀국하였다. 시호는 안경(安敬)이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집필자]
이희덕(李熙德)
[출처]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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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삼사사 [ 判三司事 ]
①고려 시대 삼사의 으뜸 벼슬. 정원은 1인이었고 재신이 겸하였음. [참고어]삼사(三司).
②조선 시대 초기 삼사(三司)의 종1품 벼슬. 태종 원년(1400)에 삼사를 사평부로 고치고 판사평부사라 하였음.
▷지제고 [知制誥]
고려시대에 국왕이 반포하는 조서(詔書) ·교서(敎書) 등의 글을 지어 바치는 일을 맡아보던, 한림원(翰林院) ·보문각(寶文閣)의 관원이 겸직하던 관직.
한림원 ·보문각의 관원이 이를 겸직할 때는 내(內)지제고, 다른 관서의 관원이 겸직할 경우에는 외(外)지제고라 하였다. 특히 문장에 뛰어난 사람을 뽑아 이 직책을 맡겼는데, 성종 때에는 50세 미만의 문관으로 지제고를 역임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한림원에서 달마다 시(詩) ·부(賦)를 출제하여 문학을 장려하였고, 말기에도 지제고가 시험관이 되어 문관들의 문학 실력을 시험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이를 지제교(知製敎)로 개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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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
공민왕 원년(1352) 임진년
6월 초하루 임인일.
왕이 원나라에 있을 때 호종했던 공신들[燕邸隨從功臣]을 다음과 같이 녹훈(錄勳)했다.
찬성사(贊成事) 조일신(趙日新), 첨의평리(僉議評理) 김보(金普), 판밀직사사(判密直司事) 김일봉(金逸逢), 전 대언(代言) 유숙(柳淑), 상호군(上護軍) 정환(鄭桓), 환관 대호군(大護軍) 신소봉(申小鳳) 등을 일등 상 공신으로 임명했다. 또한 평해부원군(平海府院君) 손기(孫琦), 판삼사사(判三司事) 이몽가(李蒙哥), 전 찬성사(贊成事) 조익청(曹益淸),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 정오(鄭䫨), 전 동지밀직사사(同知密直司事) 홍유도(洪由道), 판개성부사(判開城府事) 한가귀(韓可貴), 전 평양윤(平壤尹) 홍원철(洪元哲), 밀직부사(密直副使) 강천유(姜千裕), 밀직제학(密直提學) 이제(李濟), 판도판서(版圖判書) 이종(李宗)·전보문(全普門)1), 지신사(知申事) 최덕림(崔德林), 응양군(鷹揚軍) 상호군(上護軍) 김용(金鏞), 판사복시사(判司僕寺事) 차포온(車蒲溫), 대호군(大護軍) 정세운(鄭世雲), 중랑장(中郞將) 목인길(睦仁吉), 낭장(郞將) 김서(金湑)·전이도(全以道) 등을 일등공신으로 임명했다.
상호군(上護軍) 이에센테무르[李也先帖木兒]·강중경(姜仲卿),36) 대호군(大護軍) 손습(孫襲), 친종(親從) 이양(李陽), 중랑장(中郞將) 정진(鄭鎭), 시승(寺丞) 왕석(王碩), 별장(別將) 임석(任碩)·임용(任用) 등을 이등공신으로 임명했다.
판사(判事) 김원(金元), 호군(護軍) 현근(玄瑾), 감찰장령(監察掌令) 허유(許猷), 중랑장(中郞將) 정선(鄭璇), 소부주부(小府注簿) 신렴(辛廉) 등을
삼등공신으로 임명하고 모두에게 전민(田民)을 내려주었다.
각주
1) 전보문(?~1366) : 일등공신으로 책봉된 후 판도판서(判圖判書)와 전리판서(典理判書)를 거쳐 관직이 판삼사사(判三司事)에 이르렀다. 원나라에 하정사로 다녀왔으며 공민왕 15년에 사망하자 안경(安敬)이라는 시호를 내려주었다.
[原文]
六月 壬寅朔 錄燕邸隨從功臣. 以贊成事趙日新, 僉議評理金普, 判密直司事金逸逢, 前代言柳淑, 上護軍鄭桓, 宦者大護軍申小鳳等, 爲一等上. 平海府院君孫琦, 判三司事李蒙哥, 前贊成事曹益淸, 知密直司事鄭䫨, 前同知密直司事洪由道, 判開城府事韓可貴, 前平壤尹洪元哲, 密直副使姜千裕, 密直提學李濟, 版圖判書李宗·全普門, 知申事崔德林, 鷹揚軍上護軍金鏞, 判司僕寺事車蒲溫, 大護軍鄭世雲, 中郞將睦仁吉, 郞將金湑·全以道等, 爲一等. 上護軍李也先帖木兒·姜仲卿, 大護軍孫襲, 親從李陽, 中郞將鄭鎭, 寺丞王碩, 別將任碩·任用等, 爲二等. 判事金元, 護軍玄瑾, 監察掌令許猷, 中郞將鄭璇, 小府注簿辛廉等, 爲三等, 並賜田民.
[출처] 국역 고려사 경인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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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절요 제26권
공민왕 1(恭愍王一)
갑오 3년(1354), 원 지정 14년
○ 채하중을 영도첨의로, 염제신(廉悌臣)을 우정승으로, 유탁(柳濯)을 좌정승으로, 강윤충(康允忠)ㆍ원호(元顥)를 찬성사로, 최천택(崔天澤)ㆍ기륜(奇輪)을 각각 삼사우좌사로, 김신(金臣)ㆍ김경직(金敬直)ㆍ이진(李珍)을 평리로, 강지연(康之衍)을 평리상의(評理商議)로, 박수년(朴壽年)을 지도첨의로, 기완자불화(奇完者不花)를 판밀직사사로, 박지춘(朴之椿)을 밀직사사로, 강순룡(康舜龍)ㆍ강중상(姜仲祥)을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로, 강석(姜碩)ㆍ전보문(全普門)을 동지밀직사사로, 활재가(闊宰哥)ㆍ박정(朴頲)ㆍ최용자(崔用滋)ㆍ박군정(朴君正)ㆍ지찬(池贊)을 밀직부사로, 안보(安輔)를 밀직제학으로 삼았다. 완자불화(完者不花)는 기원(寄轅)의 아들이었다.
ⓒ 한국고전번역원 ┃ 안병주 (역) ┃ 1968
고려사절요 제26권
공민왕 1(恭愍王一)
병신 5년(1356), 원 지정 16년
○ 왕이 곡연(曲宴)을 베푼다는 구실로 재추(宰樞)들을 불러 모두 대궐에 모이게 하고는, 판밀직(判密直) 홍의(洪義)에게 명하여 태사도(太師徒) 기철(奇轍)과 아들 찬성사 유걸(有傑), 조카 소감(少監) 완자불화(完者不花), 태감(太監) 권겸(權謙)과 아들 만호 항(恒), 사인(舍人) 화상(和尙), 경양부원군(慶陽府院君) 노책(盧)과 아들 행성낭중(行省郎中) 저(渚) 등을 불러오게 하였다. 철(轍), 겸(謙)이 먼저 부름을 받고 왔는데, 밀직(密直) 경천흥(慶千興) 황석기(黃石奇), 판사(判事) 신청(申靑) 등이 몰래 왕에게 아뢰기를, “두 사람은 이미 왔으나 그 나머지 자질(子姪)들과 노책의 부자가 아직 오지 않았는데, 만일 일이 누설되면 어떤 사태가 일어날지도 모르니, 빨리 도모하는 것만 같지 못합니다." 하여, 왕이 옳게 여겨 곧 밀직 강중경(姜仲卿), 대호군 목인길(睦仁吉)ㆍ우달적(亏達赤)ㆍ이몽고대(李蒙古大) 등에게 명하여 장사를 매복시켜 두었다가 불의에 기철을 철퇴로 내리치니, 철이 즉시 넘어져 죽었고 권겸은 피하여 달아나는 것을 쫓아가 자문(紫門)에서 죽이니 피가 궁문에 낭자하였다. 철과 겸 두 사람을 죽이자, 기씨ㆍ권씨 휘하의 사람들은 낭패하여 사방으로 흩어지니, 금위(禁衛) 4번(番)의 군사가 일시에 모두 쏟아져 나와 칼날이 길에 가득하였다. 중경(仲卿) 등은 군사를 이끌고 노책의 집에 몰려가서 그를 잡아 죽였다. 유걸ㆍ완자불화ㆍ항ㆍ화상 등 모두 달아나니 경성(京城)에 계엄을 내렸다. 드디어 정지상(鄭之祥)을 석방하여 순군제공(巡軍提控)으로 삼아 궁궐을 시위하도록 하고, 홍언박(洪彦博)을 우정승으로, 윤환(尹桓)을 좌정승으로 삼고, 원호(元顥)를 판삼사사(判三司事)로, 허백(許伯)ㆍ황석기(黃石 奇)를 찬성사로, 전보문(全普門) ㆍ한가귀(韓可貴)를 삼사우좌사(三司右左使)로, 김일봉(金逸逢)ㆍ김용(金鏞)ㆍ인당(印璫)을첨의평리(僉議評理)로 삼았다.원호는 유걸의 장인인데 언박(彦博)을 대신해서 권력을 쥐고자 하여, 일찍이 언박이 다른 뜻을 품었다고 참소하더니, 이때에 이르러 또 가귀(可貴)와 면성군(沔城君) 구영검(具榮儉)이 권, 노의 잔당을 쫓아가 잡지 않았다고 참소하였다. 이에 세 사람을 옥에 가두어 대질하게 하였는데, 왕이 평소에 호를 미워하였던 까닭으로 이몽고대(李蒙古大)를 시켜 옥중에서 죽이고, 또 명하여 가귀와 영검을 저자에서 목베게 하였다. 영검의 후처 장(張)씨가 추행 때문에 버림당하였는데, 장씨는 연줄을 타서 왕의 총애를 받게 되어 왕에게 영검을 참소하였기 때문이다. 왕이 조금 뒤에 그 죄없는 것을 알고 뒤쫓아 그의 처형을 중지시켰으나 미치지 못하였다. 영검의 그전 이름은 정(貞)이었다. 이때 가귀 등이 참소를 당해 죽음을 당하니 사람들이 의심하고 두려워하였다. 또 중외에 명하여 유걸(有傑) 등을 수색하여 잡고, 기ㆍ권ㆍ노 세 집의 노비를 의성창(義成倉), 덕천창(德泉倉), 유비창(有備倉) 등의 노비로 삼았다.
ⓒ 한국고전번역원 ┃ 안병주 (역) ┃ 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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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
공민왕 12년(1363) 계묘년
5월 갑오일.
전보문(全普門)을 경상도 도순문사(都巡問使)로, 전이도(全以道)를 안동도 병마사(安東道兵馬使)로, 안극인(安克仁)을 동경도 병마사(東京道兵馬使)로, 유유(柳濡)를 상주도 병마사(尙州道兵馬使)로, 임견미(林堅味)를 진주도 병마사(晉州道兵馬使)로, 안즙(安楫)을 전주도 병마사(全州道兵馬使)로, 성원규(成元揆)를 나주도 병마사(羅州道兵馬使)로, 김한귀(金漢貴)를 광주도 병마사(廣州道兵馬使)로, 장천지(張天志)를 부평수원도 병마사(富平水源道兵馬使)로, 권희(權禧)를 홍주도 병마사(洪州道兵馬使)로, 조사민(趙思敏)을 공주도 병마사(公州道兵馬使)로, 성원완(成元完)을 청주도 병마사(淸州道兵馬使)로, 옥천주(玉天柱)를 충주도 병마사(忠州道兵馬使)로, 권장수(權長壽)를 교주도 병마사(交州道兵馬使)로 각각 임명해 군사를 징발하게 했다.
[原文]
五月 甲午
以全普門爲慶尙道都巡問使, 全以道爲安東道兵馬使, 安克仁爲東京道兵馬使, 柳濡爲尙州道兵馬使, 林堅味爲晉州道兵馬使, 安楫爲全州道兵馬使, 成元揆爲羅州道兵馬使, 金漢貴爲廣州道兵馬使, 張天志爲富平水原道兵馬使, 權禧爲洪州道兵馬使, 趙思敏爲公州道兵馬使, 成元完爲淸州道兵馬使, 玉天柱爲忠州道兵馬使, 權長壽爲交州道兵馬使調兵. 乙未 流密直商議金希祖于順天. 丙申 以密直副使朱思忠爲德興君內應, 殺之. 思忠謇直, 累建功, 初下獄, 大言曰, “我本無罪, 二三執政, 無功驟貴, 逼人如此!” 及死, 人惜之.
[출처] 국역 고려사 경인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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霽亭先生文集卷之四
附錄
摭錄
舊譜
公初諱達中。玄陵以御筆改以衷字。位端誠輔理翊贊三重大匡政堂文學。鷄林府院君。號霽亭。案高麗官制。政堂文學。文宗定一人。秩從二品。忠烈王改參文學事。十六年。復改文學。忠宣王罷。後復置之。 辛禑十一年甲子八月卒。贈諡文靖公。葬交河北里山。或云墓在齊陵北洞。其後子孫得墓於廣州南門外炭洞子坐原雙墳。 初室靖和宅主趙氏。再室忠州安氏。四男。長竴。密直,戶曹典書。次竱。宰臣,同知密直。月城君。次䇕。贈純忠補祚功臣,資憲大夫,工曹判書,鷄林君。行嘉善大夫,判江陵都護府使。次竑。四女。長尹發。內侍尹。次方甸。一作恂判事。次金明理。安東人判典校寺九容之子。上洛君昴之孫。 次尹承烈。
高麗史
忠穆王四年三月丁酉朔。以張沆及僉議參理金允誠,軍簿判書李衍宗,前典法判書朴元桂,前成均祭酒李達衷,前右司議尹糖等。爲吏部都監判事。
恭愍王元年壬辰。以高仲瑞爲開城尹。李達衷,全普門爲典理判書。車蒲輪,安祐爲軍簿判書。
二年春正月戊子。以洪彬爲右政丞。曹益淸爲左政丞。洪彥博,柳濯,李公遂爲贊成事。李達衷爲監察大夫。
七年夏四月丙戌。以戶部尙書李達衷爲東北面兵馬使。
十四年。以妖僧遍照爲師傳。是爲辛旽。貶崔瑩,李龜等十餘人。罷柳淑,李達衷。皆旽譖也。
益齋先生傳
李益齋齊賢。嘗病國史不備。與白文寶,李達衷作紀年傳。齊賢起太祖至肅宗。文寶,達衷撰睿宗以下。
高麗史節要 卷之二十六
恭愍王[一]
[甲午三年 元 至正十四年]
春正月,宴群臣于延慶宮。○以蔡河中,爲右政丞,廉悌臣,爲左政丞,姜千裕,判三司事,李仁復,爲政堂文學。○元,遣宦者院使金光秀,僉院迦剌撥皮,賜王楮幣萬錠,黃金一錠,白銀九錠。○二月,德寧公主,還自元。○以蔡河中,領都僉議,廉悌臣,爲右政丞,柳濯爲左政丞,康允忠,元顥,爲贊成事,崔天澤,奇輪,爲三司右左使,金信,金敬直,李珍,爲評理,康之衍,爲評理商議,朴壽年,知都僉議,奇完者不花,判密直司事,朴之椿,爲密直司使,康舜龍,姜仲祥,知密直司事,姜碩,全普門,同知密直司事,闊宰哥,朴頲,崔用滋,朴君正,池贊,爲密直副使,安輔,爲密直提學,完者不花,轅之子也。○三月癸亥朔,日食。○遣僉議評理金敬直,如元賀節日。○夏四月,倭掠全羅道漕船四十餘艘。○五月,以旱,禁酒減膳,召監察大夫金㺶,典法判書洪仲元,問民間冤枉。○元,遣大府監少監宦者安童,來求紋苧布及毛皮。○遣密直使李也先帖木兒,如元,獻皇后誕日禮物。○慶陽大君盧頙,納女于元。○六月,平康府院君蔡河中,還自元,傳丞相脫脫言曰,兩國,相好已久,今漢賊大起,吾受命南征,王,宜遣勇銳以助之,河中,在元,謀復爲相,會,元征紅巾等賊,旁求勇士,河中,請還國出兵助征,乃薦政丞柳濯,廉悌臣等,有勇略,遂與李壽山,先元使以來,壽山,宣帝旨於王曰,河中,諳鍊可使,河中,亦傳帝旨曰,壽山穎悟,王其用之。○以年饑,發有備倉粟,減價以市民。○以蔡河中,僉議政丞,李壽山,康仲祥,僉議評理,廉悌臣,爲曲城府院君,柳濯,爲高興府院君,監察司,不署河中告身,累月乃出。○漢陽府院君韓宗愈,卒,宗愈,自幼瞻視異衆,魁顏偉幹,望之儼然,知其爲公輔器,其未達也,與一時名士相往還,群飮無虛日,醉則起,垂袖爲舞,歌楊花詞曰,待如晦,淸風飛揚,到黃閣中,識者,皆異之,性寬厚且重,處事接物皆有餘裕,諡文節。○元,遣吏部郞中哈剌那海等來,脫脫丞相,以帝命,召柳濯,廉悌臣,權謙,元顥,羅英傑,印璫,金鏞,李權,康允忠,鄭世雲,黃裳,崔瑩,崔雲起,李芳實,安祐等,四十餘人,及西京水軍三百,且募驍勇,期以八月十日,集燕京,將以討高郵賊張士誠,又遣工部寺丞朴賽顏不花,賫寶鈔六萬錠,賜赴征將卒。○以印璫,爲碩城府院君,李權,爲五原府院君,羅英傑,爲錦城君,孫佛永,爲敦城君,金鏡,爲義城君,金鏞,爲安城君,安祐,爲鼇城君,崔源,爲龍城君,印安,爲延城君,崔安守,爲咸城君,具貞,爲沔城君,趙忠信,爲祥原君,其餘將卒,並加爵秩,自募者,皆超三等,授職,諸司三四品,皆添設,六部判書,摠郞,除政曹外,皆倍數,添設,四十二都府,每領,又添設中郞將,郞將,各二人,別將,散員,各三人,以授之,謂之賞軍政,添設之職,始此。○令百官及各宗僧徒,出馬有差,使軍士,平價以市,時,赴征軍官,奪民馬,或多抑買,行省,禁之不止。○發有備倉米五百碩,以濟飢民。○全羅道萬戶印璫,獻倭俘。○秋七月,柳濯,廉悌臣等,四十餘人,率軍士二千餘人,如元,王,幸迎賓館,親點送之,及至鴨綠江,康允忠,謀於衆曰,吾等,離親戚去墳墓,以就死地,何日而旋歸乎,欲以精騎五十,還入京,斬始謀發兵者,乃告廉悌臣,悌臣曰,非計也,吾君天也,天可逃乎,且忠臣義士,豈有反側之言乎,遂與濯等,間道疾行,時,元所召四十餘人,皆將相之有名望者,且精兵銳卒,並皆從征,宿衛空虛,王,疑懼,募弓手于西海道,以備不虞。○元,遣中尙監丞崔濡,來督赴征軍士,兼求槍幹,濡,嘗逃奔于元,及王卽位東還,扈駕行至遼陽,還逃入元。○以康舜龍,朴賽顏不花,爲贊成事,崔濡,爲三司右使,姜千裕,爲河城府院君,奇輪,爲德山府院君,奇完者不花,爲德陽府院君。○蔡河中,議罷糾正分臺,監諸倉庫,王,嘿然。○以康允忠,判三司事,洪彥博,尹桓,金敬直,爲贊成事,康得龍,李壽山,朴壽年,爲評理,柳之淀,爲三司左使,李仁復,兼監察大夫,李承老,知密直司事,申仲佺,同知密直司事,孫就,徐臣桂,姜仲卿,權恒,並爲密直副使。○冬十月,元,遣使來宴榮安王大夫人李氏,王與公主,幸其第。○以宦者申小鳳,爲親禦軍上護軍。○前右政丞廉悌臣,還自元,時,王,遣使請還悌臣,帝曰,悌臣,高麗大臣,其禮而遣之。○十一月,遣處仁君李珍,如元賀千秋節。○全羅道都巡問使申仲佺,獻倭馘。○以金敬直,林淑,爲三司右左使,金仁浩,爲贊成事,李承老,爲政堂文學,洪元哲,判開城府事,全普門,王梓,知密直司事,池贊,同知密直司事,金元富,崔伯,石抹時用,爲密直副使。○印安,還自元,言,太師脫脫,領兵攻高郵城,柳濯等赴征,將士及國人在燕京者,摠二萬三千人,以爲前鋒,城將陷,韃靼知院老長,忌我國人專其功,令曰,今日暮矣,明日乃取之,麾軍而退,其夜,賊,堅壁設備,明日攻之不克拔,會,有人譖脫脫,帝,流脫脫于淮安,自後南賊日盛,我軍,陷六合城,又移防淮安路,李權,崔源等,六人戰死,崔瑩,力戰身被數槍。○十二月,遣贊成事金普,知密直司事全普門,如元賀正。○敎曰,沿海守令,職兼防禦,誠難其人,奉翊以下,代言以上,各擧淸白有武才者二人。○以蔡河中,領都僉議司事,李齊賢,爲右政丞,洪彥博,爲左政丞,姜仁伯,判三司事,崔天澤,爲贊成事,康得龍,洪元哲,爲三司右左使,韓可貴,爲評理,尹忱,知都僉議司事,李春遇,判開城府事,全普門,判密直司事,金成寶,知密直司事,安輔,爲密直提學,姜仲卿,徐臣桂,同知密直司事,車蒲溫,爲密直副使,李齊賢,辭不允。
高麗史節要 卷之二十六
恭愍王[一]
[丙申五年 元 至正十六年]
春二月,元,賜王功臣號曰,親仁,保義,宣力,奉國,彰惠,靖遠,平章奇轍,上詩以賀,不稱臣。○遣福昌府院君金永煦,如元謝功臣號。○飯僧普愚于內佛堂,普愚,卽普虛,寓廣州管內迷元莊,白王,陞迷元爲縣,置監務,主號令,監務,但進退而已,廣占田園,牧馬滿野,皆以內乘稱,雖害禾穀,人不敢逐。○三月,王及公主,奉大妃如奉恩寺,聽普愚說禪,施幣,銀鉢繡袈裟,積如山丘,士女奔波,猶恐不及。○以孫湧,爲監察大夫,從元太師汪家奴之請也。○我桓祖,來朝,王曰,撫綏頑民,不亦勞乎,時,奇氏族,倚后勢暴橫,人有密告奇轍,潛通雙城叛民,結爲黨援謀逆,王,諭桓祖曰,卿宜歸鎭吾民,脫有變,當如吾命。○夏四月,王,邀普愚于延慶宮,行師弟禮,其儀衛,擬於鹵簿,又引入內殿,太妃公主,喜慶泣下,侑茶果,公主,遺琉璃盤,瑪瑠匙等物,時,僧徒求寺者,皆附愚干請於王,王曰,自今禪敎宗門,寺,社住持,請師注擬以聞,寡人,但下除目爾,於是僧徒,爭爲門徒。○五月,元,遣奇完者不花,來冊榮安王,爲敬王。○王,託以曲宴,召宰樞,皆會于闕,命判密直洪義等,召太司徒奇轍,及子贊成事有傑,姪少監完者不花,太監權謙,及子萬戶恒,舍人和尙,慶陽府院君盧頙,及子行省郞中渚等,轍,謙,先赴召,密直慶千興,黃石奇,判事申靑等,密白王曰,二人已至,其餘子姪及盧頙父子未至,若事洩,變起不虞,不如早圖,王,然之,卽令密直姜仲卿,大護軍睦仁吉,亐達赤,李蒙古大等,伏壯士,出不意,椎擊轍,應手而仆,謙,走避,追殺于紫門,血濺宮門,遂殺轍,謙從二人,奇權麾下,狼狽四散,禁衛四番軍士,一時俱發,兵刃盈路,仲卿等,率兵至頙家,捕殺之,有傑,完者不花,渚,恒,和尙等,支黨皆逃,宮城戒嚴,遂釋鄭之祥,爲巡軍提控,仍許侍衛,以洪彥博,爲右政丞,尹桓,爲左政丞,元顥,判三司事,許伯,黃石奇,爲贊成事,全普門,韓可貴,爲三司右左使,金逸逢,金鏞,印璫,爲僉議評理,顥,有傑之妻父也,欲代彥博,執權柄,嘗譖彥博有異志,至是,又譖可貴及沔城君具榮儉,不爲追捕奇權盧支黨,於是,下三人獄辨對,王,素惡顥,使李蒙古大,殺于獄中,又命斬可貴,榮儉于市,榮儉後妻張,以穢行見棄,張,寅緣近幸譖於王,王,尋知非辜,追止之不及,榮儉,古名貞時,可貴等,被讒見殺,人皆疑懼,又命中外,搜捕有傑等,沒入三家奴婢于義成,德泉,有備等倉。○罷征東行中書省理問所。○以評理印璫,同知密直,姜仲卿,爲西北面兵馬使司尹辛珣,兪洪,前大護軍崔瑩,前副正崔夫介,爲副使,攻破鴨江以西八站,以密直副使柳仁兩,爲東北面兵馬使,前大護軍貢天甫,前宗簿令金元鳳,爲副使,收復雙城等處,翼日,璫,先發郊外,中卿,被酒後至使氣,璫,止之不聽,又至餞亭,亦如之,璫,目辛珣援劍斬之,遂報王曰,仲卿有二心故,處以軍法,國家莫知其故,物議紛紜。○敎曰,恭惟我太祖,創業垂統,設官立法,上下相保,式至于今,我忠憲王,歸款元朝,世祖,許其不改舊俗,以存恤之,我國,亦恪修職貢,未嘗小違臣節,今有奇轍,盧頙,權謙等,不念元朝存恤之意,先王創垂之法,席勢以陵君,肆威以毒民,罔有限極,予以連姻帝室,於其所言,一皆勉從,猶爲不足,潛圖不軌,欲危社稷,幸賴天地祖宗之靈,轍等俱已伏辜,兇黨之在逃者,奇有傑,完者不花,盧渚,權恒,和尙等,罪在不原,韓可貴,具貞等,不從國令,故從反者,是用俱置典刑,有能捕告反者,以本人家財,量功充賞,外餘人所犯,一切除之,轍等,奪占人口土田,許人陳告,各還本主,尋獲有傑,完者不花,渚,和尙,斬之,恒,以素不挾勢,免死流濟州,轍妻金氏,携幼子賽因,祝髮而逃,亦被擒繫巡軍,賽因尋死,流其黨金寧君金普,密直副使李也先帖木兒,行省員外趙萬通,同僉洪翊,贊成事黃河衍,評理李壽山,密直王重貴,代言黃河晏,護軍黃河湜,前代言洪開道,杖,前密直任君輔等數人,翊及河衍,尋賜死。○六月,印璫,引兵到鴨綠江,攻破婆娑等三站。○雙城人趙都赤來朝,賜金牌,授高麗雙城地面管軍千戶。○元,使直省舍人,賫奇轍太司徒宣命印章來,西北面兵馬副使辛珣,遇諸道,奪宣命印章,囚舍人,殺傔從三人,舍人夜逃。○王,聞前護軍林仲甫,欲奉釋器,潛圖不軌,卽繫巡軍按治,辭連前政丞孫守卿,前密直洪峻,監察大夫孫湧,黃淑卿,典校令鄭世功,前判事金成,洪桂等十餘人,悉逮繫獄,獄官,詰仲甫曰,汝識孫湧乎,對曰,不知遂釋之,斬守卿,桂,仲甫,成,放釋器于外,貶贊成事康允忠,爲東萊縣令,杖漢陽尹洪仲元,及鄭世功,薛起宗,姜贊,張萬林,朱雲等,蓋以黨守卿也。○赦,敎曰,奇轍等,憑震主之威,撓爲邦之法,選調隨其喜怒,政令由之伸縮,人有土田則攘之,人有民則奪之,幸賴祖宗之靈,叛逆若轍,頙,姦回若守卿等,旣置典刑,脅從罔理,自今伊始,修明法令,整頓紀綱,期與一國更始,遂停至正年號。○秋七月,復舊官制,以洪彥博,爲門下侍中,尹桓,守門下侍中,柳濯爲門下侍郞,同中書門下平章事,許伯,爲中書侍郞,同中書門下平章事,黃石奇,爲門下平章事,金鏞,爲中書平章事,金逸逢,印璫,參知政事,全普門,鄭珚,守司空,左右僕射,慶千興,判樞密院事,崔仁遠,爲樞密院使,安祐,知樞密院事,裵天慶,黃裳,同知樞密院事,柳仁雨,李春富,爲樞密院副使,金希祖,簽書樞密院事,柳淑,爲樞密院學士。○東北面兵馬使柳仁雨等,率兵次登州,去雙城二百餘里,逗遛十餘日,時,雙城摠管趙小生,千戶卓都卿等,召龍津人趙暾,謀欲拒之,暾,不從,乃與素善狹客趙都赤,言曰,今兩豎,所以敢拒命者,以汝爲腹心也,汝本高麗人,爾祖與吾祖,皆自漢陽而來,今背本國從逆豎,獨何心哉,都赤,擧手指天曰,叔父,活我矣,公且先,吾從之,一夜,馳二百里,詣仁雨營曰,二豎,勢窮將北走,雙城人,皆竄伏山谷,今大軍遽至,必駭不下,淸野無食,爲公計,莫若先遣吾長子仁璧,往彼招集,仁雨然之,乃使仁璧,徇雙城,雙城人,聞其來,皆喜相告曰,趙別將,來吾屬更生矣,相率來降,犒迎官軍曰,高麗王,眞我主也,初,王,聞仁雨逗遛,授我桓祖少府尹,遣兵馬判官丁臣桂,諭令內應桓祖,聞命,卽銜枚就行,與仁雨合兵,仁雨等,遂進兵攻破雙城摠管府,趙小生,卓都卿,棄妻子,逃入伊板嶺北,立石之地,於是,按地圖,收復和,登,定,長,預,高,文,宜州,及宣德,元興,寧仁,耀德,靜邊等鎭諸城,蓋咸州以北哈闌,洪獻,三撒,本爲我疆,自高宗戊午,沒于元,凡九十九年,今皆復之。○元,遣中書省斷事官撒迪罕,詔曰,高麗,自我世祖,混一之初,灼知天命,擧國臣服,爰結婚親,于今百年,邇者,姦民遽生邊釁,越我封疆,擾我黎庶,焚我傳舍,阻我行人,揆諸天憲,討戮何疑,尙慮蕞爾賊徒,或得罪爾邦,逋逃嘯聚,或從他國,妄稱汝民,盜用兵戈以間世好,若不詢問情僞,大兵一臨,玉石俱焚,誠所不忍,爾其毋生疑貳,發爾士卒,就便招捕,或約我天兵,倂力夾攻,期於靖國安民,永敦前好,具悉奏聞。○斬西北面兵馬使印璜,附表撒迪罕,奏曰,竊惟小邦,邈處東極,隨唐之盛,羈縻而已,世祖龍興,灼知天命,首先歸附,世著微勞,東漸恩澤,日新月盛,不意賊臣奇轍,與盧頙,權謙,謀爲不軌,生我禍階,切詳轍等,連姻掖庭,假威大朝,氣焰熏天,脅制國主,人有人民,不奪不已,人有土田,不奪不饜,臣畏天朝,一不敢問,群黎百姓,怨豈在明,轍等,自知罪盈惡積,人所不容,而又妄意天下擾攘,甲兵方熾,一朝勢去,身不能保,乃謀自安,務固其權,中外官司,皆置親黨,凡曰要職,無非腹心,擅造兵器,閑習射御,公然爲之,不小隱匿,扇動訛言,惑亂衆聽,今年五月十八日,召集無賴,一時俱起,舟載兵器,已至江口,又令數輩,詐爲天使,稱有詔旨,已至宮門,將欲殲我君臣,以逞己欲,安危死生,間不容髮,尙賴聖德,粗能應變,旣獲賊徒,恐有他變,不暇申聞,俱致於法,誠惶誠恐,無地措躬,又慮邊鄙之民,乘釁妄動,或有姦人往來,亂我情實故,置關防,以謹出入,而其吏士,過江劫掠,實非本意,考其罪人,已正邦典,伏望弘天地之仁,霽雷霆之怒。○八月,流蔡河中于順天,印承旦于保安,貶鄭珚,爲淸州牧使。○九月,以廉悌臣,爲西北面都元帥,金之順,柳淵等,副之,賜貂裘金帶,有差,授鉞遣之。○都堂,令百司議幣,諫官,獻議曰,本國,近古,以碎銀,權銀甁之重,以爲幣,而以五升布,翼以行之,及其久也,不能無幣,銀甁日變而至于銅,麻縷日麤而不成布,議者欲復,用銀甁,愚等以爲一銀甁,其重一斤,其直,布百餘匹,今民家,蓄一匹布者尙寡,若用銀甁則,民何以貿易哉,或議曰,宜用銅錢,然,國俗,久不用錢,一朝遽令用之,民必興謗,或曰,宜用碎銀,然,散出民間而無標誌,則貨幣之權,不在於上,亦爲未便,今銀一兩,其直八匹,宜令官,鑄銀錢,錢有標誌,隨其兩數輕重,以准帛穀多寡,比之銀甁,鑄造易而用力少,比之銅錢,轉輸輕而取利多,官民軍旅,庶幾有便,凡產銀之所,復其居民,令採納官,其國人所蓄銀器,悉令納官,鑄錢以與之,幷用五升布則公私便矣。○千戶丁臣桂,領兵過伊板嶺,與女眞軍戰,我軍大捷,斬獲甚多,虜其魁帖木兒,傳首于京。○閱兵于毬庭。○以我桓祖,爲大中大夫司僕卿,賜第一區。○冬十月,元,復遣撒迪罕等,詔曰,昔我世祖,混一區夏,爾高麗國,率先效順,建爲東藩,請婚帝室,帝亦允從,今將百年,錫貢相望,靡有間言,玆夏,爾國游兵,入我疆域,毀我驛置,邊人不寧,是用遣使,往告厥由,使還,附奏具稱,近者境上,乘間侵軼之徒,已正其罪,又言事釁之生,在於倉卒,志圖靖難,不及稟命,其間應變之狀,中書,悉以告朕,肆朕,察其事情,追惟我祖宗憫下之惠,先臣慕義之誠,詎以一眚,輒虧舊恩,然,裁以至公,若爾初獲首事,具罪以聞,善善惡惡,朕與天下共之,奚肯徇私,以紊大法,如云倉卒,不遑陳奏,事定之後,盍先馳聞,事旣已往,況能悔罪陳情,玆示寬容,特釋爾咎,自今伊始,小心敬愼,率順彝章,勿替朕命。○遣政堂文學李仁復,如元上表謝,又上書曰,竊惟世皇征東,令國王爲丞相,行省官吏,委國王保擧,不入常調,非他行省比,其後,續立都鎭撫司,理問所,儒學提學司,醫學提擧司,比來,省官,皆托婦寺,濫受朝命,擅作威福,小邦,有監察司,典法司,掌刑聽訟,糾正非理,而省官,聽人妄訴,拘取諸司所斷文券,以是爲非,莫敢誰何,人疾之如狼虎,況今省官,有與逆賊謀者,願自今,其左右司官,令臣保擧,勿蹈前弊,其理問所等官司,一切革去,世皇東征日本時所置萬戶,中軍,右軍,左軍耳,其後,增置巡軍,合浦,全羅,耽羅,西京等萬戶府,並無所領軍,徒佩金符,以誇宣命,召誘平民,妄稱戶計,勒令縣官,不敢差發,深爲未便,如蒙欽依世祖皇帝舊制,除三萬戶,鎭守日本外,其餘增置,五萬戶府,及都鎭撫司,乞皆革罷,朝廷使臣,及府寺院監司,所差人吏,多是小邦之人,不務宣上德意,專要誇耀鄕閭,威福自恣,恩讎必報,屈辱宰相,陵犯國主,經年不還,增娶妻妾,無惡不爲,金剛山諸寺,歲再降香,勞民生事,反戾陛下求福之意,亦宜停罷,雙城三撒,元是小邦之境,先臣忠憲王時,趙暉,卓靑等,犯罪懼誅,誘致女眞,乘我不虞,殺戮官吏,繫縲男女,皆爲奴婢,父老,至今言之流涕,指爲血讎,比來逆臣奇轍,盧頙,權謙等,交結酋長,召集逋逃,及其謀逆,約爲聲援,轍等旣死,支黨多奔于彼,故令搜索,彼反用兵助逆,勢不獲已,以致行師,其總管趙小生,千戶卓都卿,今在逃竄,竊恐構釁生事,恭惟朝廷,薄海內外,莫非王土,尺寸不毛之地,豈計彼此哉,伏乞歸我舊疆,雙城,三撒以北,許立關防,祖王以來,庶孼之子,必令爲僧,所以明嫡庶之分,杜覬覦之萌,今有塔思帖木兒,自謂忠宣王孼子,亦嘗剃髮,及長還俗,奔于京師,誘致本國群不逞之徒,扇起訛言,眩惑人心,若此人者,其於朝廷,豈有小益,乞將此人及其黨與,發還本國。○濟州,加乙赤忽古托等,叛殺都巡問使尹時遇,牧使張天年,判官李陽吉。○遣樞密院使金希祖,如元賀太子千秋節。○十一月,洪彥博,免,流尹桓,許伯,柳濯,以李齊賢,爲門下侍中,廉悌臣,守門下侍中,慶千興,參知門下政事,李千善,參知中書政事,李仁復,爲政堂文學,兼御史大夫,安祐,知門下省事,李齊賢,辭不允。○西北面都元帥,守侍中廉悌臣,上箋辭不允。○廉悌臣,上箋論軍務曰,食爲民天,兵藏於農,令軍士,有事則操兵,無事則屯田,則轉餉省而軍食足矣,軍師之盛,在於儲㣥,今師興有日,而輓輸之路阻脩,如選其精强,分屯要害,移其餘卒,就食安州等處,觀變而動,則,輓粟之勞,減而養兵之勢張矣,又戍邊之法,以時而代,今軍士,盛夏北來,淹至冬月,無衣無褐,何以禦寒,設使驅而納諸矢石之間,豈竭其力乎,徒充兵額,糜費糧儲而已,請以半年,爲一期番上,又軍中,雖値親喪,不免行伍,其在人子之情,何可忍也,自今凡遭喪者,許以人代之,如無代者,計日給假則民心悅而孝悌興矣,悌臣,又辭不允。○十二月遣參知政事李千善,吏部尙書李壽林,如元賀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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