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960년대 안압지 모습 *

* 현재 안압지 *

* 안압지에서 출토된 주사위 *
<안압지 이름 유래>
안압지. 雁-기러기안, 鴨-오리압, 池-연못지. 경북 경주시 인교동(仁校洞)에 있는 신라 때의 연못.
안압지는 신라 제30대 문무왕이 삼국을 통일한 뒤 674년에 궁궐 안에 만들어 놓은 연못으로서, 당시의 이름은 월지였다. 이 월지는 통일신라가 망한 뒤, 세월이 흘러 이곳이 폐허가 되자 못 주변의 흙이 흘러 들어, 못에 갈대가 자라고 기러기와 오리들이 날아드는 것을 보고 조선시대의 묵객들이 안압지라고 부른 것으로 추정된다.
<안압지의 궁중건물>
기록에 의하면 안압지에는 태자가 거처하는 동궁이 있었고, 그 동궁은 '월지궁'으로불렸다고 한다.
안압지에 태자가 거처하는 동궁이 있었다면, 당시 이곳에 있던 건물들은 상당히 화려하고 아름다웠을 것이다.
안압지 발굴당시에 서른 한 곳의 건물터와 8곳의 담장터가 발견되었다.
그리고 거기에서 출토된 유물을 통해서 당시 건물을 추정해 볼 수 있었다.
<안압지 조경의 비밀>
안압지는 일반적인 연못과는 달리 아주 독특하게 꾸며져 있다.
열 두개나 되는 낮은 봉우리들이 연속적으로 펼쳐져 있고, 연못 안에는 크기가 각각 다른 세 개의 섬이 있다.
하지만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시키는 안압지는 단지 관상용으로만 아름답게 꾸민 것은 아니었다.
안압지의 조경에는 또 다른 비밀이 숨어있다.
안압지는 바라보는 기능으로 만들어진 궁원이다. 지척에 있는 무산 12봉이 아득하게 보이도록 협곡을 만들고,
못 속에 섬이 세 곳 있는데, 세 섬의 크기가 각기 다르고 윤곽선 처리가 자연스럽다.
발해만의 동쪽에 있다고 하는 삼신도(방장도, 봉래도, 영주도)를 본 딴 듯하다. 이와 같이 삼신도와 무산 12봉 등 선경을 축소하여 피안의 세계처럼 만들었다.
<통일신라의 운명과 함께 한 안압지>
674년 안압지를 조성할 당시 백제와 고구려는 멸망했지만,
신라는 당나라를 상대로 피나는 전쟁을 치르고 있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시기에 문무왕은 정궁인 반월성이 있었는데도 안압지 건설이라는 대형공사를 시작한다.
안압지는 다가올 통일을 자신했던 문무왕의 전승기념물로 출발했던 것이다.
통일을 기념하기 위해 연못을 파고 화려한 동궁을 세웠던 안압지는 훗날에는 사신을 접대하고 연회를 즐겼던 공간이었다. 그리고 안압지는 통일신라의 마지막 장에서도 빠지지 않는다.
<안압지 발굴 과정>
안압지는 경주종합개발계획의 일환으로 1974년에 준설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기와 등 유물이 드러나 1975년부터 1976년까지 문화재연구소에서
연못과, 서남쪽의 건물 터를 발굴 조사하게 된 것이다.
그 결과 안압지 서쪽 연못가 석축에 바로 접하여 세워진 다섯 군데의 누각자리등 건물자리 26곳, 담장터 8곳, 배수로시설 두 곳, 입수구 시설 한 곳 등이 밝혀졌으며, 3만여 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유물들은 당시 왕과 신하들이 이곳에서 잔치할 때 못안으로 빠진 것들과,
신라가 멸망하여 동궁이 폐허가 된 뒤 홍수 등으로 쓸려 들어간 것들로 추정되는데,
주로 누각 자리를 중심으로 못 안쪽 반지름 6m 거리 안의 바닥 토층인 뻘층에서 출토되었다.
이들은 지금까지 경주의 고분에 출토된 유물들, 곧 껴묻거리와는 달리 당시 신라시대 궁중 생활을 알 수 있게 하는 실생활용품들이라는 점이 특징이며 그 종류도 다양하다.
아울러 이 유물들은 통일신라문화의 실체를 밝혀줄 뿐 아니라,
그 당시 당 및 일본과의 문화교류상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
출토 유물은 금속공예품 1,152점 . 목제품 920점. 철제품 603점 . 와전류24,353점. 토기류 3,388점 . 기타 2,171점등,
총 32,587점에 이른다.
<신라인의 놀이문화>
1975년 안압지를 발굴할 당시 각 면마다 흥미로운 내용이 적혀있는 참나무 주사위가 출토되었다.
정사각형 면이 6개, 육각형 면이 8개. 총 14면체인 이 주사위는 일반적인 6면체에 비해 만들기도 상당히 어려웠을 것이다. 게다가 각 면마다 흥미로운 내용들이 적혀 있다. 이 주사위는 신라인의 풍류의 한 단면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신라시대 술자리에서도 원샷을 했다>
주령구(酒令具) 즉 나무주사위에는 갖가지 술자리 벌칙이 적혀있다.
그 중 하나가 삼잔일거(三盞一去) 이다.
'일거'란 단숨에 술을 들이킨다는 뜻으로, 삼잔일거는 석 잔씩이나 연거푸 원샷을 한다는 말이다.
또 양잔즉방(兩盞則放)은 "술 2잔이면 즉각 마셔버리기'란 뜻인것 같은데,
술상 앞에 2잔 이상을 놓지 말아라!
요즘 술자리에서 흔히 하는 술을 마시지 않고 술잔을 남겨두는 즉 안경쓰지마라는 말과 통합니다.
<안압지에서 출토된 나무주사위 - 주령구(酒令具)>
안압지에나오는 주사위(놀이에이용)에 새겨진 벌칙 14가지. 14면 주사위의 구성 : 정사각형 6면, 육각형면 8면.
각 면에 적힌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 4각형인 여섯 면의 벌칙
1.금성작무 (禁聲作舞) : 소리없이 춤추기 /음악없이 춤추기 2.중인타비 (衆人打鼻) : 여러사람 코 두드리기 /옆 사람한테 코맞기 3.음진대소 (飮盡大笑) : 술 한잔 다 마시고 크게 웃기 /'원샷'하고 크게 웃기 4.삼잔일거 (三盞一去) : 한번에 술 석 잔 마시기 /석잔 "원샷" /술 석잔 마시고 한 걸음 가기 5.유범공과 (有犯空過) : 덤벼드는 사람이 있어도 가만히 있기 /통과 6.자창자음 (自唱自飮) : 스스로 노래 부르고 마시기 /노래 부르고 '원샷'
※ 6각형인 여덟 면의 벌칙
7.곡비즉진 (曲臂則盡) : 팔뚝을 구부려 다 마시기 /옆사람과 '러브샷' 8.농면공과 (弄面孔過) : 얼굴 간질러도 꼼짝 않기 /간지럼 참기 9.임의청가 (任意請歌) : 누구에게나 마음대로 노래시키기 /다른사람 노래시키기 10.월경일곡 (月鏡一曲) : 월경 한 곡조 부르기 /'달'들어가는 노래부르기 11.공영시과 (空詠詩過) : 시 한수 읊기 /시 한수 읊기 12.양잔즉방 (兩盞則放) : 술 두 잔이면 즉각 마시기 /받은 술잔 남겨놓지 말고 빨리 돌리라. 13.추물막방 (醜物莫放) : 더러워도 버리지 않기 /못난이 흉내내기 14.자창괴래만 (自唱怪來晩) : 스스로 괴래만을 부르기 /최신 유행가 부르기
통일신라의 안압지에서 연회를 더욱 흥에 넘치게 했을 주사위,
신라인의 풍류를 짐작케 한다.
그러나 아쉬운 한가지는
출토 당시의 참나무 주사위를
보전처리 하는 과정에 전기 과열로 불이 나서 원품은 소실되고,
지금 보관중인 주사위는 모사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