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이야기 : 유레카 3
1부. 우주
2장. 우주 프로그래밍
17. 본질의 이해
근본을 이해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전체를 보는 방법이고, 또 하나는 부분을 보는 방법이다. 숲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숲의 전체 모양과 크기 등도 알아야하지만, 숲을 이루고 있는 나무와 풀, 벌레와 흙 등의 내부의 모습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우주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별과 은하와 같이 우주를 구성하는 큰 세계의 움직임도 알아야 하지만, 분자, 원자와 같이 미시 우주를 구성하는 입자의 세계도 알아야할 필요가 있다. 사람에게 있어 거시우주는 너무 크고 미시우주는 너무 작다. 우리는 거시와 미시의 중간쯤에 존재해 두 세계의 영향을 다 받고 있는 것 같다. 우리는 지금 물리학을 이해하려는 게 아니고, 물리 현상이 의미하는 철학적 의의를 찾으려 하는 것이므로, 과학은 너무 어렵다고 미리 겁먹지 말고 편안한 마음으로 소풍을 가듯이 즐겁게 이 글을 읽어내려 갔으면 좋겠다. 소풍 길에 만나는 꽃들과 나무의 이름을 다 알아야 할 필요는 없듯이, 여기서 나오는 생소한 용어들을 다 이해할 필요는 없다. 나 역시도 다 이해한 것은 아니다. 모르면 모르는 데로 그냥 넘어가고, 정 궁금하면 인터넷에 단어 하나 입력하고 찾아보면 되는 것이다.
인터넷은 인류의 만물 상자가 되었다. 세상의 모든 물이 바다로 모이듯, 세상의 모든 지식은 인터넷의 바다에 모여든다. 인터넷이 시작된 지 겨우 십 수 년이 지났지만 인터넷의 바다는 지식과 정보로 가득 차 출렁인다. 그 바다에는 옳음과 그름, 선과 악, 아름다움과 추함의 정보를 가리지 않고 출렁이고 있다. 책을 찾으러 도서관에, 스승을 만나러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열린 것이다. 그렇다고 도서관이나 선생님이 필요 없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결정적 노하우나 최첨단 기술, 깔끔한 손 맛 같은 것은 인터넷이나 컴퓨터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잘못하면 '키스를 글로 배웠어요, 요리를 글로 배웠어요.'하는 코미디 꼴이 될 수도 있다. 아무리 디지털이 편리해도 사랑하는 이의 머리카락을 만지듯 감각적이며 감성적인 것이 없는 세상은 참으로 무미건조할 것이다.
감각한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감각은 생각과 더불어 나의 존재를 인식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나는 감각(感覺)한다. 고로 나는 존재(存在)한다."
데카르트의 유명한 명언을 이렇게 바꾸어도 별로 이상하지는 않아 보인다. 보고, 듣고, 맛보고, 냄새 맡고, 느끼는 오감을 우리는 감각이라 표현한다. 감각은 나와 세상 간의 접촉이다. 그러면 우리는 물리적으로 세상의 무엇을 감각하는가? 물질과 에너지이다. 물질과 에너지는 공간과 시간으로 형성된 우리 우주를 구성하는 전체요소이다. 그러면 물질과 에너지가 우주의 본질일까?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물으면 'YES'라고 답할 것이고, 플라톤에게 물으면 'NO'라는 답이 돌아올 것이다. 마찬가지로 율곡에게 물으면 'YES'이고 퇴계에게 물으면 'NO'일 것이다. 그것은 물질을 우리 우주의 전부로 생각하는지, 아니면 물질 이외에 다른 무엇이 있고 그것이 사실은 우주의 본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과의 차이이다. 그런데 물질을 이루는 질량에 문제가 생겼다. 신(神)의 입자라 불리는 힉스 때문이다.
(신길역과 여의도를 잇는 샛강다리에서. 우리 우주도 이렇게 멋진 설계를 한 누군가의 작품일까? 아니면 그냥 어찌어찌 생겨난 우연일까? 그런데 이 멋진 다리를 만약 지구에 인류나 생명이 있는지 없는지를 모르는 어느 외계인이 우주선을 타고 가다가 하늘 위에서 본다면 우연히 만들어진 것인지 누군가가 만든 것인지를 어떻게 구분할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