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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교회성장이란 무엇인가?
<성경적 교회성장의 개념과 원리, 목회와 신학(1993.7)>
/ 변종길 교수(고려신학대학원, 신약학)
교회성장이란 무엇인가? 요즘 많은 사람들이 교회성장에 관심을 가지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교회성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분명하지 않을 때가 많다. 대개는 수적 증가를 의미한다. 그런데 이 수적 증가가 정확하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분명치 않다. 그 교회의 세례교인 수를 말하는지, 등록교인 수를 말하는지 아니면 주일 오전예배에 출석하는 사람 수를 말하는지, 그리고 이 후자의 경우에도 학생들, 어린이들 그리고 방문객들이 포함되는지 여부가 불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교회성장에 대해 계속 이야기하며 어떤 교회가 단기간 내에 크게 성장했다고 하면 모두 경이의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교회성장이란 무엇일까? 제한된 지면 내에 여러 복잡한 측면들을 다 다루는 것은 무리이다. 그래서 성경 안에서 기독교 초대교회의 탄생, 성장, 발전을 기술하고 있는 사도행전을 중심으로 교회성장의 개념과 원리를 살펴보고자 한다. 물론 구약성경에도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교회가 존재했었고(행 7:38 참조) 예수님이 이 지상에 계실 때에도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과 무리가 있었지만, 오순절 날에 약속하신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의미에서의 기독교회가 탄생하고 성장, 발전해 나갔던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누가는 사도행전을 기록하고 있으며, 오순절 날에 탄생한 초대교회가 어떻게 성장, 발전하고 있는지에 대해 상당한 관심을 보여주고 있다(행 2:41,47, 4:4, 5:14, 6:1,7, 9:31, 11:21,24, 12:24, 13:48-49, 14:1, 16:5, 19:20 등).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누가의 기록을 통하여 교회성장에 대하여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바 의미와 교훈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고자 한다. 우선 사도행전에서 교회성장의 일반적 원리에 대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그 다음에 그러한 교회성장을 위한 우리 인간의 준비와 노력에 대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가. 교회성장의 일반적 원리
1. 교회성장에는 질적 측면과 양적 측면이 있으며 이 둘은 상호 연관되어 있다.
사도행전에서 누가는 교회성장에 대해 기술할 때 제자들의 수가 많아지는 것에 대해 상당한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행 2:41,47, 4:4, 6:1, 9:31, 11:21,24, 14:1, 16:5). 단순히 숫자라고 해서 무시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어 구원받는 제자의 수가 더하는 것이며, 예루살렘에서 시작한 기독교회가 확장, 발전되어 가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가가 단지 양적 성장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와 동시에 또한 질적으로 그들의 믿음이 자라가는 것을 말하고 있다. 사도행전 2:41-47에서는 오순절 날 당일에 제자의 수가 3천이나 더했을 때,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썼다고 말하고 있다(행 2:42). 뿐만 아니라 그들이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모이기를 힘쓰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다(행 2:43-47). 이는 곧 오순절 날에 탄생한 예루살렘 교회는 양적으로 크게 부흥했을 뿐 아니라 질적으로, 영적으로도 큰 부흥이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사도행전 6장 7절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라고 함으로써 하나님 말씀의 왕성(곧 질적 성장)과 양적 성장이 서로 밀접히 관련되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12장 24절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흥왕하여 수가 더하더라”고 함으로써 교회성장에는 역시 하나님 말씀의 흥왕이 중요함을 말하고 있다(행 13:49 참조). 위 두 구절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왕성하다’라고 할 때 ‘자라다, 성장하다’의 뜻을 가진 ‘아욱싸노(auxan?)’란 헬라어를 사용함으로써 질적 성장 과 양적 성장이 서로 밀접한 관계에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9장 31절에서는 온 교회가 ‘평안함’과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질적 성장) 수가 더 많아졌다고(양적 성장) 기술하고 있다. 그리고 16장 5절에서는 교회가 ‘믿음이 굳어지는 것’이 또한 교회성장의 한 모습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상에서 볼 때 교회의 질적 성장과 양적 성장은 상호 연관되어 있으며 이 둘은 서로 배척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성경은 교회의 질적 성장이 있을 때 양적 성장이 따름을 말하고 있다. 양적 성장 그 자체는 질적 성장을 증거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정상적인 경우에 질적 성장에는 양적 성장이 따르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 질적 성장이란 주로 하나님 말씀이 흥왕한 것과 믿음이 견고해지는 것과 평안함과 주를 경외함 등이다.
2. 교회성장보다 더 중요한 것은 복음전파이며 교회성장은 복음전파에 종속한다.
사도행전에서 누가가 교회성장에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관심은 복음전파에 있음을 우리가 인정하지 아니할 수 없다. 사도행전 전체의 초점은 유대인들이 예수를 나무에 달아 죽였으나 부활하셔서 온 세상의 심판주가 되신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행 11:34-43). 따라서 사도행전 전체의 주제는 1장 8절에 있는 바와 같이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신 말씀에 있다. 즉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온 세상에 전파하여 나가는가 하는 것이 사도행전의 가장 중요한 주제요 관심이다. 사도행전의 제일 마지막 구절도 “담대히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께 관한 것을 가르치되 금하는 사람이 없었더라”고 끝맺고 있다.
이러한 각도에서 볼 때 교회성장은 중요한 주제이기는 하나 복음전파에 비하면 오히려 이차적이다. 따라서 사도들은 최대한 열심히 복음을 전하고 권면하되 그래도 듣지 아니할 때에는“너희가 버리고 영생 얻음에 합당치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고 하면서 발길을 돌렸다(행 13:46). 복음을 전할 때에 듣는 사람도 있었지만 듣지 않고 비방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 때에 사도들은 교회성장이라는 목표에 얽매어서 복음의 내용을 변질시키거나 어떻게 하든 그들을 얻으려고 저자세를 취하지 아니하고, 담대하고 복음을 전하고 최대한 노력한 후 그래도 안 되면 하나님께 맡기고 다른 곳으로 향하였다(행 18:6, 19:8-9, 28:23-28).
뿐만 아니라 누가가 관심을 가지는 교회성장이란 한 개교회만의 성장이 아니라 그 당시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퍼져 나가고 있는 전체 교회의 성장이었다. 따라서 한 지역에서 핍박이 일어나 흩어지더라도(즉 일시적 교회감소) 다른 지역에서 복음이 전파되면 전체교회로서는 유익이고 손해가 없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스데반의 순교 후에 예루살렘 교회에 큰 핍박이 일어나서 사도들 외에는 다 흩어졌지만(요즘 말로 하면 소위 엄청난 마이너스 성장이요 목회실패이다), 누가는 이것을 실패나 문제 상황으로 보지 않고 있다(행 8:1-4).
왜냐하면 이로 말미암아 흩어진 사람들이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서 복음을 전파하였기 때문에 주님께서 명령하신 복음전파(행 1:8)가 이루어지며 또한 전체 교회 측면에서 교회성장에 손실이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로 말미암아 사마리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게 되고 전체적으로 교회성장에 큰 기여가 되었다(행 8:4-25, 9:31).
3. 교회성장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시는 결과이다.
이와 관련하여 또한 중요한 것은 교회성장이란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란 사실이다. 우리 인간이 계획하고 노력하여서 인간의 힘으로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이 함께 할 때 이루어지는 것이다. 사도행전 11장 21절에 보면 어떤 흩어진 사람들이 안디옥에 이르러 주 예수를 전파할 때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다한 사람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고 하여 이 사실을 잘 나타내고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바로 행할 때 하나님께서 제자의 수를 더하게 해주시는 것이 교회성장이다.
사도행전 2장 41절에 “이 날에 제자의 수가 3천이나 더하더라”고 되어 있는데 헬라어 원어로는 ‘더하여졌다(proseteth?san)’로서 수동태이다. 즉 하나님께서 더하게 해주셔서 수가 더하여졌다는 뜻이다(신적 수동태). 그리고 이어서 47절에는 “주께서 날마다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고 하여 하나님의 주권적 사역을 분명히 하고 있다. 여기서 ‘더하게 하다’라는 단어의 원어는 ‘프로스티떼이미(prostith?mi)’로서 ‘... 에게 덧붙이다, 추가하다’라는 뜻이다.
이는 곧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바로 행하고 교제하며 하나님을 찬송할 때에(행 2:42-47) 하나님께서 그 대가로 축복해 주실 때 교회성장으로 나타나게 됨을 뜻한다. 따라서 교회성장이란 그 자체가 우리의 목표가 된다기보다 오히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좇아 범사에 바로 행할 때, 즉 전혀 기도에 힘쓰며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히 전하며 순수한 성도의 교제를 나누며 살아갈 때에 주어지는 결과이다. 즉 교회성장이란 그 자체가 우리가 추구해야 할 목표라기보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말씀을 좇아 최선을 다해 바로 행할 때에 축복으로 주어지는 결과이다.
4. 교회 성결의 유지는 교회성장에 도움 된다.
교회에서 올바른 권징을 시행하여 교회의 성결을 유지할 때 그것은 교회성장에 도움 된다. 이것을 우리는 사도행전 5장의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사건에서 볼 수 있다. 물론 이 사건은 초대교회 창설 후 초기에 나타난 사건으로서 어느 정도 특수성을 지니긴 하지만 또한 교회성장과 관련하여 중요한 교훈을 주고 있다. 이 사건은 초대교회에 들어온 최초의 시험으로서 거짓과 속임수를 용납하고 관용할 것인가, 아니면 단호하게 대처하여 교회의 성결을 유지할 것인가의 기로에 선 사건이었다.
이때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였던 베드로는 성령의 특별하신 인도와 간섭 가운데 단호히 대처함으로써 교회의 성결을 유지하는 것을 선택하였다. 따라서 이것은 권징이라기보다 오히려 성령의 직접적인 간섭으로 인한 심판이라고 보는 것이 더 옳을 듯하다. 이것은 인간적으로 보면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이었지만 탄생한지 얼마 안 되는 초대교회의 성결과 진실성을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였음을 보여주고 있으며 오고 오는 후대 교회들에게 큰 교훈을 주고 있다(수 3:5 참조).
어쨌든 이렇게 함으로써 초대 예루살렘 교회는 요즘의 교회성장의 관점에서 보면 교인 두 명의 감소라는 마이너스 성장을 맛보게 된다. 대개 오늘날의 교회는 이러한 것을 두려워하여 권징을 제대로 시행하지 못하고 있지만, 사도행전은 오히려 이러한 권징의 실시가 교회성장에 도움이 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즉 그 때에 “믿고 주께로 나오는 자가 더 많으니 남녀의 큰 무리더라”(행 5:14)고 누가는 기록하고 있다. 왜냐하면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죽은 후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 하였으며(행 5:11), 사도들을 통하여 표적과 기사가 많이 행해졌기 때문이다(행 5:12).
여기서 이 둘은 서로 상관이 있다. 올바른 권징이 실시될 때에 성도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의 권위가 크게 높아진다. 이렇게 하나님의 이름이 높임 받고 존귀하게 될 때에 성도들은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게 되고 이 때에 또한 하나님의 표적과 이적이 많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요즘의 교회성장의 관점에서 따져보더라도 교인 둘을 잃고 ‘남녀의 큰 무리’가 더하게 되었으니 올바른 권징의 실시는 교회의 질적, 양적 성장 모두에 유익함을 알 수 있다.
5. 합당한 제도와 규례는 교회성장을 촉진한다.
다음으로 사도행전은 또한 교회가 합당한 제도와 규례를 따를 때에 교회가 더욱 성장함을 보여준다. 우리는 이것을 두 군데서 알 수 있는데 첫째는 사도행전 6장에 나와 있다. 초대교회에 헬라파 유대인들과 히브리파 유대인들 사이에 ‘식탁봉사’ 문제로 문제가 생겼을 때 사도들이 지혜롭게 대처하였다. 그들은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 ‘일곱’(the Seven: 오늘날의 집사에 해당하는지 장로에 해당하는지 또 다른 무엇에 해당하는지 정확히 말할 수 없는 특수한 직분)을 선택하도록 하여 맡기고 사도들은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였다.
이렇게 일이 복잡해질 때에 지혜롭게 대처하여 업무분담을 하고 제도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였을 때에 누가는 하나님의 말씀이 더욱 왕성하고 교회가 성장하였음을 말하고 있다. 사도행전 6장 7절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고 하고 있다. 이것은 분명히 바로 앞 구절들에 기록되어 있는 제도적 보완을 통하여 사도들이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에 전무한 결과로 주어진 축복이다. 여기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결론은 좋은 제도적 보완은 교회성장을 촉진시킨다는 것이다.
물론 교회조직을 제도적으로 완벽하게 정비한다고 교회성장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교회성장에 장애되고 있는 부분을 잘 파악하여 그것을 제도적으로 지혜롭게 해결한다면 그것은 분명히 교회성장에 도움이 될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또 배울 수 있는 것은 그 제도 개선의 방향은 교회의 지도자(교역자)들로 하여금 가능한 한 기도와 말씀전파에 전무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교리와 생활 문제에 대하여 합당한 규례를 정하여 지킬 때에 또한 교회성장에 도움이 되는 것을 성경은 말하고 있다. 사도행전 16장 4-5절에 보면 사도 바울과 그 일행이 “여러 성으로 다녀 갈 때에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의 작정한 규례를 저희에게 주어 지키게 하니 이에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 굳어지고 수가 날마다 더하니라”고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 사도와 장로들의 작정한 규례란 할례 문제로 인하여 생긴 분규를 해결하기 위하여 예루살렘 총회에서 모여 결정한 것을 말한다. 즉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하라”는 것 외에는 아무 짐도 지우지 않기로 한 것을 뜻한다(행 15:28-29). 이처럼 합당한 총회의 규례를 지킬 때에 교회들의 믿음이 더 굳어지고 수가 날마다 더하는 축복이 있었다.
이상에서 살펴볼 때 합당한 제도나 교리나 윤리상의 규례는 교회성장에 도움이 되며 유익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제도나 신학은 교회성장과 상관없다는 주장은 성경에서 비춰볼 때 옳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나. 교회성장을 위한 인간의 준비와 노력
그렇다면 사도들과 초대교회 성도들이 교회성장을 위하여 인간 편에서 어떠한 준비와 노력을 기울였는가? 물론 오늘날 우리가 그들을 흉내낸다고 교회가 성장할 것이라고 보장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때와 오늘날 사이에는 2천년이란 세월이 흘렀고 여러 가지 시대와 상황의 차이가 존재하며 또한 교회성장이란 아주 복합적인 요인들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2천 년 전의 그들의 준비와 노력을 살펴보는 것은 오늘날 우리가 교회성장을 위하여 우리 인간 편에서 어떠한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필요한지를 생각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1. 그들은 무엇보다도 성령의 능력에 의지하였다.
사도행전은 사도들과 예수님의 제자들이 무엇보다도 자신의 능력으로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 아버지께 로서 보내주신 성령의 능력으로 행하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사도 바울이 말한 대로 그는 자기의 말과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였는데(고전 2:4), 이것은 다른 사도들도 다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영광 받으신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것은 인간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하고 오직 진리의 영이신 성령께서 오셔서 역사하실 때에 가능하다(요 14:16,17, 15:26, 16:13,14).
따라서 그들은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을(행 1:4, 8) 기다렸으며, 오순절 날에 성령이 오시자(행 2:1-3), 그들은 성령의 충만함을 입고(행 2:4) 방언을 말하며 또한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복음을 능력 있게 증거하였다. 그 때에 베드로의 설교와 권면으로 말미암아 3천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회개하고 예수를 믿게 되었던 것이다(행 2:14-42). 또한 백성들의 여러 관원들 앞에서도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복음을 전하였다(행 4:8). 또한 모든 성도들이 모여서 간절히 기도했을 때에도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다.”(행 4:31) 이처럼 사도행전은 사도들과 또 초대교회 성도들이 어떻게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성력의 능력으로 담대히 복음을 증거 하였는가를 기술해 주고 있다.
2. 그들은 전혀 기도에 힘썼다.
이러한 성령의 능력을 입기 위해 그들은 무엇보다도 기도에 전심전력하였다. 오순절 이전에 예루살렘의 다락방에 모여서 전혀 기도에 힘쓴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그 후에도 계속해서 기도에 힘썼다. 이 기도가 그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는 비결이었으며(행 4:31), 담대히 복음을 전하게 한 원동력이었다. 그들은 시간을 정해 놓고서 기도하였다. ‘제9시 기도 시간’에 사도들이 성전에 기도하러 올라갔었으며(행 3:1), 또한 ‘제6시’에 베드로는 기도하러 지붕에 올라갔다(행 10:9).
이처럼 그들은 시간을 정해 놓고서 규칙적으로 기도하였을 뿐 아니라 특별한 때에는 모여서 밤새 기도하였으며(행 12:12), 경우에 따라서는 금식하며 기도하기도 했다(행 13:2-3). 그들은 개인적으로 기도할 뿐만 아니라 모여서 합심 기도를 많이 하였으며 또한 그들은 기도할 때에 마음을 모아서 전혀 기도에 힘썼다. 사도 바울이 그의 서신들에서 보여주고 있는 바와 같이 그들은 ‘항상 기도’하였으며(롬 1:9, 고전 1:4, 엡 1:16, 빌 1:4, 골 1:9 등), ‘쉬지 않고 기도’하였다(살전 5:17, 골 4:2, 엡 5:18 등).
그들은 자신을 위해서 뿐 아니라 성도들을 위한 간구를 많이 하였으며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힘있게 전파되도록 열심히 기도하였다(엡 5:18-19, 골 4:3, 살전 5:25, 딤전 2:1 등). 초대교회의 능력 있는 복음전파와 강력한 성령의 역사 배후에는 이러한 뜨거운 기도가 뒷받침되었던 것이며 이러한 기도 없이는 교회성장을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3. 그들은 기회 있는 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기회 있는 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다. 처음에는 사도들 분만 아니라 모든 성도들이 기회 있는 대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다. 그들은 무엇보다도 성경 말씀에서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증명하였으며(행 2:25-36, 3:18-26), 예수의 하나님 아들 되심과 그리스도 되심을 전파하였다(행 9:20, 22). 그들은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였다.”(행 5:42)
특별히 사도 바울은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거하였다.”(행 18:5) 그는 두란노 서원에서 두 해 동안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에 대해 강론하였다(행 19:8-10). 이처럼 그들은 관원들에게 붙잡혀서도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감옥에 갇혀서도 복음을 전하였으며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다. 그리할 때에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어 갔던 것이다(행 19:20).
4. 그들은 전적으로 그리스도에게 헌신되었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지적한다면 그들은 전적으로 헌신된 사람들이었다. 즉 그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아까워하지 않을 정도로 온전히 바쳐진 사람들이었다. 사도들은 예루살렘의 관원들과 장로들과 제사장들 앞에 잡혀서도 담대히 복음을 전하였으며 그들의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기탄없이 말하였다(행 4:1-22, 5:17-32). 그들은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채찍질 당하는 것도 억울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능욕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였다(행 5:41).
그야말로 예수님께서 산상보훈에서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마 5:11-12)고 말씀하신 대로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핍박을 즐거워하였으며 순교도 각오하였던 것이다. 사도 바울은 옥에 갇히기도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죽을 뻔하였으나 오히려 주님의 교회를 위하여 날마다 염려하였다(고후 23-28).
그는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을 불러 모아놓고서 작별할 때에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4)고 하였다. 이처럼 초대교회 성도들은 전적으로 주님께 헌신된 사람들이었으니 이 세상 사람들이 어찌할 수 없었으며 그들의 복음전파를 막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주님의 교회가 성장, 발전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이상에서 우리는 사도행전에서 초대교회의 성장, 발전을 살펴봄으로써 교회성장의 일반적 원리와 또 우리가 갖추어야 할 준비와 태도들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이상의 것들은 초대교회의 모습에서 살펴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누가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에서 살펴본 것이기 때문에 오늘날의 교회를 향하여, 또 우리들을 위하여 주는바 의미와 교훈이 크다고 생각된다. 오늘날의 우리 한국 교회가 교회성장에 대해 생각할 때에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서 교회성장의 원리를 끌어내고 적용할 때에 적지 않은 유익이 있으리라 믿는다.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