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은 간다라 지역에서 꽃을 피운 조형예술로 유명하다. 간다라는 기원 후 처음 몇 세기 동안 번성했던 미술을 일컫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는데, 원래는 고대에 인더스강 서안(西岸)과 바조르, 스와트, 부네르 계곡을 아우르는 페샤와르 북서쪽의 지역을 지칭하는 이름이었다. 이 지역은 북쪽으로는 높은 산으로, 남쪽으로는 카불강, 그리고 서쪽으로는 스와트강으로 둘러싸여 있는 곳이다. 하지만 고고학적 발굴의 결과 간다라 미술은 이 지역을 넘어 인더스 남쪽 고대 탁실라와 마니얄라 지역에까지 퍼졌음이 밝혀졌다.
고대에 파키스탄 지역이 외래 정복자들의 치하에 놓여 있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수 세기동안 페르시아의 아케메네스 제국의 일부였던 이 지역은 기원전 326년 알렉산더의 침입으로 헬레니즘 문화의 영향을 받게 된다. 그후 얼마간 마우리야왕조의 통치를 받은 뒤 연이어 박트리아의 그리스인들, 샤카족, 파르티아인, 쿠샨족의 지배하에 있다가 기원후 5세기에는 훈족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다. 이러한 수 많은 변화 속에 불교가 출현하면서 불교의 성스러운 이야기들을 조각을 통해 표현하는 독특한 미술을 낳게 되었다. 불교의 이야기들이 이 지역 특유의 소재를 통해 독특한 형태의 조각으로 표현되었다.
일반적으로 이 간다라 지역에서 처음으로 붓다가 인간의 형상으로 조형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 아름다운 부처의 형상은 부처를 숭상하는 모든 나라에서 모방하여 제작되고 신성시 되었다. 부처의 형상이 불교를 믿는 온 세계의 절과 사원으로 퍼져나간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 독특한 미술 혁명이 일어난 곳이 바로 파키스탄 지역이었다. 이후 수세기에 걸쳐 이 아름다운 형상은 티베트, 미얀마, 태국, 중국, 한국 등으로 퍼져나갔다. 불교에 있어서 이 지역의 중요성은 이 엄청난 수의 조각들과 남아시아의 모든 불교 유적들을 합친 것보다 많은 이 지역의 역사 유적들로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수많은 불교 전설과 쿠샨 통치자들의 후원 속에 간다라는 불교의 성지가 되었다. 일부 중국의 순례자들은 불교의 본거지인 마가다 지방까지 순례할 필요 없이 간다라를 순례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게까지 되었다.
간다라 지역에는 장엄하고 아름다운 불탑과 사원들이 산재해 있었다. 성지 순례를 했던 중국 승려들에 의하면, 카니슈카왕은 겨울철의 수도였던 페샤와르 근처에 세계에서 가장 높은 탑을 세웠다고 한다. 지금의 샤지키데리가 카니슈카왕이 지은 사원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고 있다. 탑 속에는 카니슈카왕이 바쳤던 사리기가 있었다.
409년에 이곳을 방문했던 법현(法顯)이라는 중국의 승려에 의하면 페샤와르의 사원과 푸쉬칼라바타에 있는 불탑에는 700여 명의 승려가 있었다고 한다. 이 탑은 푸쉬칼라바티에서 보살(전생의 석가모니)이 자비를 베풀기 위해 그의 눈을 내놓았던 일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던 것이다.
5세기에 이곳을 방문했던 송운(宋雲)이라는 중국의 순례자는 지금 스와트 지역의 붓카라로 추측되는 타라(陀羅)라는 곳의 사원에 6천여 개의 금불상이 있었다고 전했다. 최근 붓카라에서는 많은 도금된 불상들이 발견되어서 그의 말이 사실임이 입증되었다. 몇몇 불상들은 아직도 표면의 금을 잃지 않고 있다. 송운은 샤바즈가르히에서도 금불상들이 눈을 부시게 할 정도였다고 적고 있다.
간다라에 왔던 중국의 승려들 중 가장 잘 알려진 현장에 의하면, 7세기에 간다라 지역에는 천여 개, 스와트와 그 인근 지역에 1,400여 개의 사원이 있었다고 한다. 탁실라 지역에도 비슷한 수의 사원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기록들을 통해서도 간다라 불교미술의 장관(壯觀)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스와트의 불교미술
스와트는 역사적, 지리적, 정치적, 종교적, 문화적으로 파키스탄의 역사에 있어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 지역은 북쪽으로는 히말라야의 언저리인 샨두르 산악지대, 서쪽으로는 디르지역, 남쪽으로는 말라칸드의 능선들, 그리고 동쪽으로는 인더스강에 접한 코히스탄 지역으로 둘러싸여 있다. 이곳은 동쪽의 중국 및 티벳과 서쪽의 로마의 연결하는 교통로상에 자리잡고 있어서 전략적으로 아주 중요한 곳이다. 이러한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많은 중앙아시아의 부족들이 이곳에 와서 정착하게 되었고 그들이 원주민들과 결합하면서 각각의 종교, 철학, 예술, 전통도 혼합하게 되었다.
기원전 326년에 알렉산더 대왕은 오늘날 우데그람으로 불리는 스와트의 오라(Ora) 지역에 왔다. 이 지역은 대대로 여러 주변 강국에 복속되어 있었다. 페르시아의 아케메네스 제국을 시작으로 박트리아인, 그리이스인, 파르티아인, 쿠샨 왕조 그리고 힌두.샤히 왕조가 뒤를 이었고, 11세기 초에는 이슬암교도인 가즈니 왕조의 침공이 있었다.
스와트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불교의 전래였다., 샤바즈가르히나 만세흐라 인근 지역에서 발견된 아쇼카왕의 석각칙령에서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바위에 새겨진, 정의에 관한 글은 대중에게 불교를 전파하여 그들이 불교의 가르침에 따라 행동하도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었다.
불교가 스와트에 전래된 것은 아쇼카왕에 의해서지만, 불교가 흥기한 것은 쿠샨 왕조의 카니슈카왕 때이다. 스와트의 붓카라, 사이두샤프리, 판르, 니모그람, 굼바투나, 발리그람, 쉬나샤, 암룩다라, 나지그람 등의 여러 곳과 인근의 디르와 부네르 지역에서도 수마노은 불탑과 사원이 세워졌다. 이 탑과 사원에서 발견된 조각과 유물들은 간다라 미술의 정수들이다. 그 유물들은 불교적인 내용을 묘사했지만 형태에 있어선 그리이스나 로마 그리고 페르시아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티라트에 남아있는 부처의 발자국과, 부처가 스와트 강을 건넌 후 옷을 말린 곳으로 알려진 바위는 특별한 관심을 끄는 곳이다.
스와트에는 오랫동안 많은 순례자들이 찾아왔다. 4세기경 스와트에 왔던 중국의 승려 법현은 이곳에 많은 사원이 있었다고 전한다. 5세기에 왔었던 송운은 타라에 있는 사원에는 천개의 불상이 있었다고 했는데, 그곳은 아마도 지금의 붓카라로 추측된다. 붓카라에서 발굴된 수많은 불상들이 이 추측을 뒷받침한다.
스와트가 순례자들의 흥미를 끌었던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스와트의 군주들이 석가모니 붓다가 속한 샤카족에 속한 것으로 믿어졌다는 것이다. 중국 승려인 현장의 기록에 의하면 스와트의 왕 중의 한 명인 우타라세나는 7세기경 싱게르다르의 사리탑에 그가 갖고 있던 붓다의 사리를 모셨다고 한다. 현장은 이곳에 1,400여 개의 불교사원이 있었고 자신이 붓카라의 사원과 제하나바드와 티라트의 불상들을 참배했다고 적고 있다. 그는 또한 오늘날의 밍고라인 몽게리에 대해서도 적고 있는데 거기서 가장 큰 불교사원을 보았다고 한다.
7,8세기에 소승 및 대승과는 별개 유파인 금강승파(金剛乘派)의 불교가 나타났는데 이들은 주로 제의와 주술에 의존하고 있었다. 이 시기에 특히 많은 순례자들이 티베트, 중국, 일본으로부터 스와트에 왔는데, 그것은 스와트가 ‘제2의 붓다’로 알려진 파드마삼바바의 출생지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 티베트인들은 스와트 지역의 종교적, 사회적 삶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사회적, 종교적 접촉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로 티베트 왕국이 절정기를 누렸을 때 그 영토는 라다크 뿐만 아니라 발티스탄과 길기트까지 이어졌다. 티베트인들에게 스와트 지역과의 접촉과 교류는 신성한 것으로 여겨졌다. 오늘날에도 이러한 믿음은 마찬가지이다. 이런 이유로 많은 순례자들이 스와트를 찾게 되었던 것이다. 이곳은 불교의 중심지로 여겨졌고 남아시아 전체의 불교도들의 성지가 되었다. 밀교가 성했던 이 시기동안 스와트는 악귀와 주술과 신비의 환상적인 이야기로 유명해졌다. 스와트의 인드라부티왕 자신이 뛰어난 주술사였으며 『우디나야 피타』라고 알려진 탄트라 주석서를 쓴 장본인이라고 믿어지고 있다. 훗날 불교 구전에 의하면, 인드라부티와 라즈 우팔라의 시기동안 스와트 왕국은 밀교의 중심지로서 유명했으며, 『우디나야 피타』에 따르면 인도의 네 곳의 탄트라 중심 가운데 하나로서 유명했다고 한다.
9세기에 이 지역을 힌두.샤히가 지배하게 되면서 불교는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11세기 초에는 이슬람교도인 가즈니 왕조의 마흐무드왕이 힌두.샤히 최후의 왕인 라자기라를 물리침으로써 이 지역을 차지하게 되었다.
불교성지라는 점 외에도 우디야나(스와트 계곡)에서는 간다라(페샤와르 계곡)와 벨로르왕국(길기트)으로 이어지는 여러 개의 중요한 길이 푸르고 기름진 대지 위로 통과한다. 이 길들은 호탄, 야르칸드, 카쉬가르, 박트리아 같은 곳으로 이어진다. 서력 기원 초기의 몇 세기 동안 이 길들을 따라서 불교는 중국, 중앙아시아, 티베트 그리고 한국까지 전파되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