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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방을 품는 예배자
(대구동신교회 청년부예배학교 강의..)
Ⅰ. 예배와 선교
시67:3
“하나님이여 민족들로 주를 찬송하게 하시며 모든 민족으로 주를 찬송케 하소서”
미국 미네소타주 베들레헴 침례교회의 담임목사인 존 파이퍼는 “Let the nations be glad(열방이여 기뻐하라)”라는 유명한 책을 썼다.
그 분의 책에 보면 이런 이야기들이 나온다.
교회의 궁극적인 목표는 선교가 아니라 예배이다.
선교가 존재하는 이유는 예배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남는 것은 선교가 아니라 예배이다.
왜냐하면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이 세대가 끝나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무리가 하나님의 보좌 앞에 엎드릴 때, 선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선교는 잠깐 동안 필요하지만 예배는 영원히 남는다.
그러므로 예배는 선교의 동력원이자 목표이다.
선교의 목표는 민족들이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기뻐하는 것이다.
선교는 예배에서 시작해서 예배로 끝난다.
저는 1998년 국제오엠선교회 소속으로 영국에서 사역하면서 이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그 때 이 책은 저에게 너무나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 이전까지 저는 선교와 예배를 연관지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저는 선교는 예배를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 이전까지 저의 선교에 대한 정의는 “세상의 죽어가는 영혼들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고 그들을 구원받게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은 이후로 저의 선교에 대한 정의는 바뀌었다.
가장 간단하게 말하면..
“선교는 예배자들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것을 좀 더 풀어서 설명하자면..
“선교는 모든 족속 가운데 아직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예배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알게 하고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예배하도록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선교에 대한 관점이 사람에서 하나님으로 바뀐 것이다.
선교는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이다.
선교는 사람이 불쌍해서 동정심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열정으로 하는 것이다.
만약 선교의 동기가 동정심에서 비롯된다면 그 선교는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이 예배 받으시길 원하는 열정,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열정에서 시작된 선교는 어떠한 시련이 와도 지속될 수 있다.
예배의 참맛을 발견한 사람이 아직까지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고 있는 사람들에게 가서 그들에게 하나님을 전해주고 그들도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분께 예배하도록 하는 것..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예배다.
따라서 선교는 바로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예배이다.
선교는 바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다.
그래서 선교는 하나님은 모든 민족들로부터 예배받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러므로 선교사는 먼저 예배자 이어야만 한다.
선교는 예배에서 시작해서 예배로 끝난다.
다시 말해 우리는 먼저 예배자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아직까지 하나님께 예배드리지 않고 있는 사람들도 같이 하나님께 나아와서 예배드리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선교이다.
시편 67편 3절 말씀처럼 “민족들로 주를 찬송하게 하고 모든 민족으로 주를 찬송하게 하는 것”이 바로 선교이다.
선교는 구제사업이 아니다.
선교는 구호활동이 아니다.
선교는 세계 각지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들을 일으키는 것이다.
아직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예배하지 못하는 민족과 백성들에게 가서 하나님을 전하고 그들도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을 보는 것이 선교다.
때문에 선교는 선교 자체를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선교가 존재하는 이유는 예배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선교가 존재하는 이유는 아직 하나님이 꿈꾸시는 예배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Ⅱ. 하나님이 꿈꾸시는 예배
계7:9-10
세상의 모든 민족과 백성과 족속과 방언 가운데서 온 이루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 영원히 기뻐 뛰놀며 주님을 찬양하는 것..
그것이 바로 창세전부터 하나님께서 마음속에 품으신 꿈이다.
이 하나님의 꿈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바로 예배이다.
하나님이 꿈꾸시는 예배가 어떤 예배인가?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예배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이다.
이 예배 학교 가운데 계속적인 부흥이 일어나서 이 자리가 차고 넘쳐서 본당에서 학교를 진행하게 된다면 하나님은 너무나 기뻐하실 것이다.
더 나아가서 대구시 전체가, 아니 대한민국 전체가 복음의 물결로 뒤덮여서 전국 방방곡곡에서 예배의 소리가 울려퍼진다면 하나님은 정말 기뻐하실 것이다.
백여 년 전에 일어났던 평양대부흥과 같은 놀라운 부흥이 일어나서 온 민족이 주님을 예배하게 된다면 하나님은 기뻐 춤을 추실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하나님이 꿈꾸시는 궁극적인 예배는 아니다.
다시 말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2002년 월드컵 때 히딩크 감독이 남긴 유명한 말이 있다.
나는 여전히 목마르다.
대구시민 전체가 하나님께 나와서 예배하고 한민족 전체가 하나님을 예배한다고 하더라도 우리 하나님은 여전히 목말라 하신다.
여전히 2프로가 부족한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하나님은 대구시 보다 더 크신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한국보다 더 크신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온 우주 만물을 지으신 광대하신 하나님이다.
때문에 그분의 관심은 언제나 온 세상을 향해 있다.
하나님의 마음은 항상 세상의 모든 민족과 족속들을 향해 있다.
우리가 주님께 드리는 모든 예배는 영광스러운 예배이다.
주일 오전부터 오후까지 하루 종일 주님을 예배하는 것은 너무나 아름다운 것이다.
새벽마다 나와서 예배하고 수요일, 금요철야까지 나와서 주님을 예배하는 것은 너무나 귀한 것이다.
더 나아가서 우리가 일평생 동안 날마다 주님만을 생각하며 주님만을 예배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너무나 기뻐하시는 모습일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완전한 예배가 될 수 없다.
그것은 여전히 부족한 예배이다.
그것은 정말 아름다운 예배지만 하나님이 꿈꾸시는 예배는 될 수 없다.
하나님이 꿈꾸시는 예배는 모든 나라와 백성과 종족과 언어에서 아담 이래로 구원받은 모든 사람들이, 단 한 종족도 빠짐이 없이, 단 한 언어도 제외됨이 없이 함께 모여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꿈꾸시는 예배를 나도 꿈꾸는 것..
그것이 바로 선교이다.
하나님의 꿈이 우리의 꿈이 되는 그 순간 우리 삶에는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우리의 시야가 이 땅에서 영원으로 확장된다.
우리의 가치관이 달라진다.
하나님의 꿈이 우리의 꿈이 되면 우리의 나이와 상황과 형편에 상관없이 우리의 삶의 모든 것이 순식간에 달라진다.
우리의 좁은 마음이 하나님 아버지의 넓은 마음으로 변화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저희 부부에게 인도에 대한 비전을 주신 것은 2003년도에 인도로 전도여행을 다녀온 이후였다.
그 때 갠지즈강에서 본 풍경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강을 따라 배를 타고 여행을 했는데 강변에 수많은 힌두교 사원들이 줄을 지어 서 있었다.
강변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 더러운 물에 목욕을 하고 빨래를 하고 밥을 지어먹고 있었다.
그 물은 거룩한 물이기 때문에 그 물에 목욕을 하면 모든 죄를 씻음받고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사람들은 굳게 믿고 있었다.
또한 그 강변에서 죽은 사람을 태우고 그 재를 갠지즈강에 뿌리면 그 영혼이 천국에 간다고 믿고 있었다.
돈이 없어서 화장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냥 시체를 강물에 띄우기도 했다.
실제로 저희가 탄 배 옆으로 시체가 떠내려오는 것을 보기도 했다.
그 갠지즈강에서는 밤마다 거대한 힌두교 예배가 드려진다.
수많은 사람들이 강변에 모인 가운데 예배가 시작된다.
곳곳에 제단을 차려놓고 힌두교 사제들이 향을 피운다.
성가대원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고 누군가가 마이크를 통해 큰 소리로 주문 같은 것을 외운다.
그 광경을 보기 위해 수백명, 수천명의 사람들이 매일 밤마다 몰려든다.
한줄기의 빛도 보이지 않는 깊은 어두움에 잠긴 땅...
수천 년 동안 하나님을 철저하게 대적하고 다른 우상들을 섬겨 온 땅..
3억 3천의 신들을 섬기고 예배하는 땅..
정말 그 땅에도 소망이 있을까 하는 절망적인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저희 부부에게 하나님의 꿈을 심어 주셨다.
그 꿈은 수천 년 동안 헛된 우상을 섬겨 온 그 땅 가운데 하나님 한분만을 예배하는 예배자들이 일어나는 꿈이다.
갠지즈강의 그 더러운 물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정결케 되는 꿈이다.
날마다 힌두교 예배가 드려지는 바로 그 자리에 오직 한분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는 집회가 열리는 꿈이다.
그 자리에 서서 제가 찬양을 인도하고 말씀을 증거할 날이 올 것을 저는 믿는다.
그 꿈만 생각하면 저는 가슴이 뛴다.
예배는 선교의 시작이며 완성이다.
예배의 완성은 모든 족속의 백성들이 하나님께 나아오는 것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궁극적인 예배는 모든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온 사람들이 자신들의 언어로, 하나님이 그 종족에게 주신 달란트로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다.
때문에 예배의 완성은 오직 선교를 통해서만 이루어진다.
선교와 동떨어진 예배란 존재할 수 없다.
하나님은 그런 예배를 꿈꾸신 적이 없다.
예배자는 선교사이어야 하고 선교사는 예배자이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예배자들이 선교지로 가야한다는 것은 물론 아니다.
중요한 것은 열방을 품고 바라보며 예배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저는 이 자리에 모든 여러분 모두가 열방을 품는 예배자가 되길 소망한다.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소유하는 예배자가 되길 원한다.
그랬을 때 우리의 예배는 더 깊이 있고 더 열정적인 예배가 될 것이다.
오엠의 둘로스 선에서 사역한 한 선교사님이 이런 말을 했다.
태초부터 지금까지 단 한번도 쉬지 않고 하나님의 심장은 뛰고 있다.
그런데 그 심장의 박동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이런 소리가 들린다고 한다.
오 나의 세상! 오 나의 세상!
태초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의 심장은 독생자를 보내시기까지 사랑하신 이 세상을 향해 뛰고 있다.
우리가 만약 그 심장의 박동에 동참한다면 그 때부터 우리의 예배는 달라지게 된다.
우리의 가슴 속에 하나님의 심장 박동 소리를 느끼는 그 순간 이미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로 가장 깊숙이 들어가 있는 것이다.
Ⅲ. 선교지에서의 구체적인 필요들
1. 선교지에서의 음악사역의 중요성
음악의 힘은 정말 대단하다.
저는 1998년도에 영국의 OM Presentation team에서 사역한 적이 있다.
그 팀은 영국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선교에 대해 프리젠테이션을 하고 동원하는 상역을 하는 팀이었다.
제가 그 팀에서 한 사역 중 하나가 기타를 들고 찬양을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하루는 어느 교회 주일예배 때 사역을 하게 되었다.
며칠 째 계속되는 사역 가운데 그 날은 팀원들 모두가 지쳐있었다.
저희 팀의 선교동원 사역도 너무나 힘겹게 진행되었다.
사람들이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피곤하고 낙심한 상태로 예배를 마치고 숙소에 돌아왔다.
그런데 후에 이런 소식이 들려왔다.
그날 예배에 참석한 12살짜리 소년이 제가 찬양을 하는 순간에 생전 처음으로 주님의 만지심을 경험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소년은 주님께 자신의 삶을 드리고 영접했다는 것이다.
그 소식을 듣고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비록 나 자신은 연약하고 피곤한 가운데 있었지만 그 찬양을 통해서 주님이 한 영혼을 만지시고 그의 삶을 완전히 변화시키신 것이다.
선교지에서의 찬양의 능력은 이처럼 놀랍다.
앞으로 저는 인도의 캘커타에서 선교사역을 하게 된다.
지난해 12월에 저는 캘커타로 정탐여행을 다녀왔다.
정탐여행을 통해 저는 특히 찬양과 경배 사역에 대한 부담감을 더욱 더 가지게 되었다.
인도에는 지금 개방화의 물결이 거세게 일고 있다.
도시로 갈수록 젊은이들은 전통적인 문화가 아니라 새로운 문화에 대해 스펀지가 물을 흡수하듯이 열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캘커타 시내에 있는 한 빈민가를 방문한 적이 있다.
철로 주변에 천막으로 집을 지어놓고 사는 마을이 있었다.
그런데 철길 위에 앉아서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듣는 한 청년을 본 적이 있다.
심지어 빈민가의 청년들도 서양의 음악과 문화에 대해 열광하는 것이다.
그런데 안타까운 사실은 그들이 접하는 음악들이 대부분 세속적인 음악이라는 것이다.
새로운 모든 것에 대해 문을 여는 시점에서 세속적인 서양의 문화와 음악이 마구 그들 속으로 침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에 반해 그들이 들을 수 있는 크리스천 음악은 전무하다시피 하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찬양과 경배 사역, 음악 사역에 대한 필요성을 너무나 절실하게 느끼게 되었다.
현대음악을 즐기는 젊은이들에게 우리가 어떻게 다가갈 것인가?
찬양과 경배를 통해 그들의 마음을 열고 힌두교의 문화에 찌들린 그들, 세속적인 문화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 그들에게 기독교적인 문화를 심어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 알 수 없다.
이미 캘커타에는 그러한 사역을 감당하는 선교사님들이 있다.
총회선교회 소속의 조준래 선교사님이란 분이 계신데 그분은 캘커타 빈민촌에서 문화 사역을 하고 있다.
그 분이 사역하시는 교회에서 함께 예배를 드린 적이 있다.
그런데 그 예배를 드리면서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빈민촌 한가운데 허름한 건물로 지어진 교회인데 그들의 예배는 한국의 왠만한 교회의 예배 못지않았다.
상당한 실력의 찬양팀에다 여러 명의 싱어들, 댄싱팀까지 있었다.
예배가 얼마나 뜨겁고 충만하게 드려지는지 모른다.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은 앞에서 악기를 연주하고 예배를 인도하는 젊은이들이 모두 빈민촌 출신이라는 것이다.
캘커타의 빈민촌은 우리가 생각하는 빈민촌의 개념이 아니다.
거기 있는 집들은 그냥 판잣집 정도가 아니라 야자수 잎으로 지어진 구멍이 숭숭 난 집이다.
비가 왔다하면 그냥 물이 줄줄 새서 흘러내리는 그런 집이다.
그곳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발도 없이 살아간다.
그런 곳에서 자라나는 청소년들을 데려다가 학비를 보조해줄 뿐 아니라 그들을 신앙적으로 양육하는 일을 선교사님이 감당하고 있다.
그 아이들이 꿈과 비전을 가지고 대학에 진학하고 음악을 배워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하는 자로 세워지게 되는 것이다.
그 아이들이 깔끔한 옷을 차려입고 앞에 서서 온 맘을 다해 주님을 예배하는 모습이 얼마나 감동적이었는지 모른다.
선교사님이 훈련시킨 청년들과 함께 정기적으로 찬양집회를 가지는데 그 가운데도 놀라운 일들이 일어난다.
찬양집회를 통해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고 찬양 중에 질병이 치료되고 상한 마음이 치유되는 역사가 일어난다.
지금 인도를 비롯한 세계 곳곳의 선교지에는 이러한 사역이 너무나 절실하다.
준비된 청년들이 많이 있지만 이들을 이끌어줄 사역자가 없다.
이런 모습들을 보면서 찬양과 경배 사역, 음악 사역에 대한 비전을 구체적으로 꿈꾸게 되었다.
지금 한국에는 너무나 많은 찬양과 경배사역의 자원들이 있다.
그런데 안타까운 사실은 너무나 많은 자원들이 한국에서 썩혀지고 있다는 것이다.
여러분 가운데 혹시 찬양사역에 비전을 가지고 계신 분이 계신지 모르겠다.
그런 분들이 있다면 한번 눈을 더 크게 돌려보시기 바란다.
물론 한국에서 찬양사역을 하는 것도 너무나 귀한 일이다.
하지만 지금 한국에는 찬양사역자, 예배사역자가 차고 넘친다.
반면에 지금 세계 곳곳의 선교지에서는 사람이 없어서 울부짖고 있다.
선교지마다 찬양과 경배사역을 감당할 사람들이 없어서 아우성을 친다.
와서 우릴 도우라는 음성이 들리고 있다.
2. 구체적인 분야들
1) 찬양집회와 콘서트
저는 2004년 1년 동안 코나 열방대학에서 훈련을 받았다.
그런데 열방대학에 보면 태평양의 섬들을 순회하는 팀이 있다.
그 팀은 태평양의 섬들을 돌면서 주로 청소년이나 청년들을 대상으로 찬양집회를 한다.
그 팀의 음악을 보면 우리가 즐겨 부르는 예배 음악들이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모든 예배 곡들이 하와이안 스타일로 바뀌어서 불려진다는 것이다.
그 곡들을 듣기만 해도 같이 춤추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정도로 흥분이 된다.
그 팀의 인도자는 40대의 조그만 키의 하와이 원주민이다.
그 사람은 제가 하와이안 기타라고 부르는 조그만 기타를 들고 찬양을 인도한다.
그 사람이 순회 찬양집회 가운데 역사하신 하나님을 간증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나의 기타는 사탄이 가장 두려워하는 영적무기입니다.”
“제가 이 기타를 들고 나타나기만 하면 사탄이 두려워 떱니다.”
저와 같이 선교훈련을 받고 올해 태국으로 가는 목사님 한분의 꿈이 바로 순회찬양사역이다.
그 분의 꿈은 신동엽의 밥차와 같은 커다란 트럭을 사서 거기에 모든 악기와 음향시설이 완비된 무대를 싣고 다니는 것이다.
찬양팀을 만들어서 태국과 중국, 인도, 중앙아시아를 거쳐서 백 투 예루살렘 콘서트를 하는 것이 바로 그 분의 꿈이다.
이런 찬양집회를 통해서 이미 믿는 신자들을 접촉하고 그들을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로 이끌 수 있다.
또한 믿지 않는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콘서트를 통해서 음악에 굶주린 선교지의 청년들에게 복음의 접촉점을 만들어 줄 수 있다.
2) 예배를 통한 선포와 영적 전쟁
그런데 선교지 가운데는 공개적인 찬양집회가 어려운 지역이 사실상 많이 있다.
그런 지역에는 예배를 통해 중보와 영적 전쟁의 사역을 감당할 수 있다.
인도 같은 나라는 공개적으로 복음을 전하지 못하는 나라다.
선교사 비자를 가지고 입국을 하지 못한다.
2003년도 제가 갔던 지역은 델리와 바라나시였는데 이 두 지역은 엄격한 힌두교 원리주의자들이 있는 곳이다.
그래서 바라나시에서 저희 팀이 한 사역은 예배와 중보기도 사역이었다.
배를 타고 갠지즈강을 따라 올라가면서 힌두교 사원들을 바라보면서 찬양을 하고 중보기도를 했다.
배에서 내려서 저희가 한 것은 부채춤이었다.
거룩한 성전에 임하시며 라는 국악찬양을 틀어놓고 부채춤을 췄다.
부채춤을 춘 다음 우리가 한 일은 강가를 걸어가면서 중보 기도하는 일이었다.
마음속으로 그 지역을 묶고 있는 사탄을 대적하고 영적전쟁을 선포하는 것이었다.
지금 바라나시에서 사역하는 국제 YWAMer 중에도 갠지즈강을 돌면서 이런 예배와 중보기도 여행 사역을 하는 분이 있다.
2004년도에 제가 갔던 이스라엘도 공개적으로 복음을 전하지 못하는 나라다.
엄격한 유대교정통주의자들이 항상 감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때 저희가 한 사역 중 하나는 해변에 가서 기타와 봉고드럼을 가지고 찬양을 하며 예배를 드린 것이었다.
말로 복음을 전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지만 영어로 주님을 찬양하는 것까지는 금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때 저희에게 하나님이 주신 마음은 사람들에게 들려주기 위한 노래가 아니라 주님만을 찬양하고 예배하는 노래를 하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가 한 일은 온 맘을 다해서 주님께 집중하며 예배를 드린 것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예배하는 가운데 주님의 임재가 나타났다.
그 주님의 임재가 길 가던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한두 명씩 다가오고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먼저 복음을 전하는 것은 안 되지만 물어오는 사람에게 대답해주는 것은 가능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다.
그리고 유대인들이 주님께 돌아오는 아름다운 역사를 경험할 수 있었다.
때로는 선교지에서 그냥 하나님을 높이고 선포하고 찬양하는 것을 통해서도 놀라운 역사가 일어난다.
우리가 입을 열어 복음을 전하진 않더라도 우리가 하나님을 선포하는 그 자체만으로 그 땅 가운데 있는 어둠의 세력들이 물러가고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는 것이다.
때문에 선교지에서의 예배사역은 그 자체로서 강력한 영적전쟁의 무기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지역을 위한 놀라운 중보사역이 될 수도 있다.
또한 사람들의 마음 문을 여는 도구로 사용되어 질 수도 있다.
이런 부분은 장기 사역자가 아닌 단기사역자들을 통해서 오히려 더 효과적으로 감당되어질 수 있다.
3) 예배자 양성
선교지에서 감당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예배사역은 우리나라에 너무나도 풍부한 찬양과 경배의 자원들을 그들과 함께 나누는 것이다.
예수전도단 찬양사역의 경우 카작스탄과 같은 곳에 단기선교여행을 가서 그들과 함께 예배하고 그들에게 예배를 가르치는 사역을 한다.
코나 열방대학에는 SOW(School of Worship)이라고 하는 예배학교가 있다.
여기서는 3개월간 지금 여러분처럼 예배에 대한 강의를 듣고 삶을 나누고 저녁에는 팀을 구성해서 연습을 한다.
그리고 난 후 3개월간 전도여행을 떠나서 그 동안 배운 것들을 실제로 적용한다.
이런 예배학교가 현재는 스위스와 미국 등에 몇 군데 밖에 없는데 다른 여러 선교지에 예배학교를 시작하는 사역을 하고 있다.
인도의 Pune라는 지역에도 열방대학이 있는데 여기에도 SOW를 시작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이런 사역을 통해 현지의 젊은이들에게 예배를 가르치고 음악을 가르치고 그들을 예배자로 세우게 된다.
인도 하이드라바드에 갔을 때 그곳에 계신 선교사님이 저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선교사는 자기가 하고 싶은 사역이 아니라 선교지가 필요로 하는 사역을 해야 합니다.
지금 선교지에 필요한 것은 은혜로운 예배 한두 번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예배자를 양성하고 키우는 것입니다.
예배 인도는 선교사가 아니라 현지인들도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관심 있는 현지인들을 양육하고 예배인도자로 세워주는 것입니다.”
예배를 가르치고 예배를 위한 악기연주를 가르치는 것은 굳이 장기사역자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이 있다.
일주일만 와서 기타나 드럼을 가르쳐 주고 갈 수도 있다.
아니면 몇 달 이나 일년 정도 머물면서 그들을 섬기도 돌아갈 수도 있다.
캘커타에 단기로 와서 워십댄스를 가르쳐준 한국자매 덕분에 그곳에는 지금 워십스쿨이 생겨났다.
그들이 만든 CD를 본 적이 있는데 얼마나 영감있는 댄스를 하는지 모른다.
그 사역을 통해 수많은 인도의 젊은이들의 마음이 주님을 향해 열려지고 있다.
캘커타의 Agape Fellowship이라는 교회에서 드럼을 치는 청년은 원래 드럼을 만져보지도 못한 청년이었다.
그런데 단기선교를 온 한국 청년에게 3일 동안 드럼을 배워서 서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얼마나 영감 있게 드럼을 치는지 모른다.
또 다른 하나는 음악교육이다.
대부분의 선교지에서는 악보가 없이 찬양을 한다.
왜냐하면 악보를 읽을 줄 모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악보 보는 법을 가르쳐 주고 음악의 이론적인 부분을 가르쳐 줄 사람들이 많이 필요하다.
캘커타의 한 선교사님은 현지인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는 사역을 하고 있다.
그리고 선교사님의 딸과 한국에서 온 청소년들이 그곳에서 어학공부를 하면서 현지인들에게 바이올린이나 피아노와 같은 악기를 강습하고 있다.
선교지에서 가장 절실한 부분 중 또 다른 하나는 MK, 즉 선교사자녀를 위한 예배와 음악사역이다.
왜냐하면 선교사 자녀들이야말로 선교지를 변화시킬 예배자로서 너무나 좋은 조건들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선교하기 위해 언어를 배울 필요도 없고 문화를 익힐 필요도 없다.
부모선교사보다 훨씬 더 좋은 선교사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뿐만 아니라 많은 선교사 자녀들은 어릴 적부터 음악적 환경에서 자라났기 때문에 음악적 가능성을 많이 갖추고 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이런 아이들에게 예배를 가르치고 음악을 가르칠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4) 번역과 음반 사역
선교지에서는 새롭게 주님을 믿고 주님을 예배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지만 그들이 자신의 언어로 부를 찬양이 별로 없다.
우리는 그야말로 찬양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선교지의 사람들은 자신의 언어로 부를 찬양이 그다지 많지 않다.
지금 우리가 부르는 너무나 은혜롭고 영감 있는 찬양들이 그들의 언어로 번역되어서 그들의 입에서 불려진다면 현지의 교회 가운데 얼마나 놀라운 부흥의 역사가 일어날지 알 수 없다.
또한 우리나라에는 찬양음반, CCM음반이 차고 넘친다.
그럼에도 해마다 수많은 새로운 사역자들이 쏟아져 나온다.
반면에 인도 같은 경우는 자국어로 된 찬양음반이 전무하다시피 하다.
지금 우리가 듣고 있는 영감 있는 찬양들이 그들의 언어로 제작되어서 그들에게도 들려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저는 96년도에 독일 동베를린 지역에서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사역한 적이 있다.
그 때 제가 만난 친구 중 베트남 친구가 한 명 있었다.
그 친구에게 아무리 복음을 전해도 별로 효과가 없었다.
그러던 중 그 친구와 함께 크리스천 콘서트에 참석하게 되었다.
그 콘서트가 끝난 후 그 밴드가 부른 음반을 사서 선물해 주었다.
그런데 며칠 후에 만나보니 그 친구가 그 음반을 들으면서 ccm을 흥얼거리고 있는 거였다.
“나 주님을 더 알기 원합니다. 주님처럼 되기 원합니다. 주님의 뜻을 행하고 말씀을 순종하기 원합니다.”
5) 예배관련 분야
인도와 같은 선교지에는 교회마다 악기나 음향시설이 너무나 부족하다.
제대로 된 찬양팀을 갖춘 교회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교회는 풍금 한대나 북 하나로 예배를 드린다.
시골 교회는 아예 전기조차 들어오지 않는다.
때문에 이런 교회의 경우는 먼저 전기시설이나 음향시스템 같은 부분에서의 지원이나 협력이 필요하다.
하다못해 기타 한대도 선교지에서는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모른다.
여러분 혹시 단기 선교를 가시면 되도록 기타는 현지 선교사님에게 주고 오시기 바란다.
그리고 단기로 와서 파워포인트나 영상을 사용하는 방법을 가르쳐 줌으로 그들의 예배를 더 업그레이드시키도록 도와줄 수도 있다.
또한 예배관련 서적들의 번역과 보급도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선교지는 예배관련 서적들이 거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때문에 좋은 예배관련 서적들을 그들의 언어로 번역하는 일도 아주 중요하다.
또한 현지어에 능통한 선교사가 번역했을 때 그것을 출판해 줄 수 있는 사역도 필요하다.
어떤 의미에서 선교지에서의 예배사역은 총체적인 문화사역이 될 수밖에 없다.
관련된 분야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이러한 모든 분야들이 너무나 발전되어 있지만 인도와 같은 나라는 모든 것이 이제 시작되는 단계에 있다.
때문에 이런 분야에 있어서 앞으로의 무궁무진한 발전의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그야말로 희어져 추수하게 된 밭이라는 거다.
혹시 여러분들 가운데 찬양과 경배 사역에 대한 꿈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 있다면 시야를 좀 더 넓혀보시길 바란다.
여러분의 부서를 품고 교회를 품는 것도 중요하지만 열방을 품어보시길 바란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마음과 눈이 그곳을 향해 있기 때문이다.
Ⅳ. 예배의 완성을 바라보며
온 열방이 주님께 돌아오는 것이 바로 예배의 완성이다.
그 날이 오기 전에는 우리가 드리는 그 어떤 예배도 아직 하나님께 온전히 합당한 예배일 수 없다.
수천 만 원의 돈을 들이고 수만 명의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영광스럽게 예배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아직 하나님이 꿈꾸시는 예배가 될 수 없다.
하나님이 꿈꾸시는 예배는 온 열방이 기뻐하는 예배이다.
한민족만 기뻐해선 안된다.
하나님은 한민족을 너무나 사랑하신다.
하지만 하나님은 절대로 한민족을 편애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다.
누군가가 이런 말을 했다.
당신의 하나님은 너무나 작습니다.
Your God is too small!
여러분의 하나님은 얼마나 크신 하나님인가?
여러분의 인생의 꿈은 무엇인가?
여러분의 비전은 무엇인가?
한평생 하나님을 잘 섬기고 예배하다가 주님 품안에 가는 것인가?
여러분의 교회를 잘 섬겨서 그 교회가 부흥하고 성장하는 것을 보는 것인가?
그것은 물론 너무나 아름다운 꿈이다.
하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꿈은 아니다.
하나님의 꿈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우리 한민족 전체에 놀라운 부흥이 일어나고 우리 민족이 기독교 국가가 된다고 하더라도 아직 하나님의 꿈이 완성된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꿈은 세상 모든 민족과 백성과 언어와 종족 가운데 하나님을 예배하는 이들이 일어나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족속 가운데서 세상의 모든 언어로 찬양받으시는 것이다.
만약 하나님의 이 꿈이 끝나지 않았다면 우리의 꿈도 끝나서는 안된다.
우리가 잘되고 우리 가정이 평안하고 우리 교회가 부흥한다고 해서 결코 우리의 꿈이 거기서 끝나서는 안된다.
우리가 가져야 할 최고의 꿈은 하나님의 꿈이다.
하나님의 꿈에 우리의 꿈을 맞추어야 한다.
하나님이 계속 꿈꾸시는 이상 우리도 그 꿈을 꿔야 한다.
제가 선교사로 헌신하고 처음 외국에 전도여행을 갔을 때였다.
그 때 독일에서 세계 각국에서 온 천여 명의 젊은이들과 함께 수련회를 하면서 예배를 드린 적이 있었다.
난생 처음으로 수십 개 국에서 온 사람들과 함께 예배를 드린 것이었다.
서로 다른 민족과 언어에서 온 사람들과 함께 한 목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제 두 눈에서는 감격의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그 때 저는 천국의 모습을 조금이나마 그려볼 수 있게 되었다.
기껏 수십 개 국에서 온 천명의 사람들이 함께 예배드리기만 해도 그렇게 감격스러운데 만약 이만개가 넘는 종족에서 온 수십억도 더 되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칠천 개가 넘는 언어로 하나님을 찬양한다면 그 광경이 어떨까?
계시록을 기록한 요한은 이 소리를 가리켜서 많은 물소리와도 같고 큰 뇌성과도 같다고 표현했다.
어쨌든 인간의 머리로는 정말 상상이 되지 않는 어마어마한 모습일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꿈이다.
하나님은 예배의 꿈을 꾸고 계신다.
하나님이 꾸시는 꿈을 우리도 꾸고 있나?
하나님이 보시는 비전을 우리도 보고 있나?
지금 하나님의 꿈은 놀랍게 이루어지고 있다.
마태복음 24:14에서 주님은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 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는 예언의 말씀을 하셨다.
이 말씀을 믿고 주님의 다시 오심을 갈망하는 믿음의 사람들에 의해 온 세상을 향한 복음의 행진이 시작된다.
이것을 가리켜 흔히 복음의 서진이라고 말한다.
2천년 전 이스라엘에서 시작된 복음의 행진은 지는 2천년간 전 세계를 돌고 돌았다.
예루살렘에서 소아시아로 소아시아에서 유럽으로 유럽에서 미국으로 미국에서 아시아로 아시아에서 중동으로 복음은 놀랍게 행진하고 있다.
그렇다면 중동을 지나서 복음이 행진할 마지막 종착지가 어디인가?
그곳은 바로 처음 복음이 시작된 나라 이스라엘이다.
저는 2004년 여름 이스라엘 전도여행에서 성경의 예언이 생생하게 이루어지는 현장을 목격했다.
구약 예언서들을 보면 하나님께서 열방 가운데 흩어진 이스라엘 백성을 다시 모으실 것이라는 예언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신지 1950년이 지난 후 마침내 기적적으로 그 예언이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1948년 이스라엘 국가가 성립된 이후 세계 곳곳에서 유대인들이 성경의 예언대로 자신들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그 땅으로 돌아오고 있다.
그리고 최근 들어서 유대인 교회가 놀라운 부흥을 경험하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지난 이천년 동안 예수님을 영접한 유대인 숫자보다 지난 4년 동안 예수님을 영접한 유대인의 숫자가 더 많다고 한다.
바로 그들과 함께 주님께 예배드린 것은 저에겐 너무나 큰 특권이 아닐 수 없었다.
갈멜산 정상에 세워진 Carmel Assembly 라는 교회에서 몇 주를 묵으면서 예배를
드린 적이 있다.
그들의 예배는 정말 살아있는 예배다.
양각나팔을 불고 탬버린으로 소고춤을 추고 갖가지 색깔의 깃발을 흔들면서 예배가 진행된다.
거기에는 놀라운 자유함과 성령의 역사하심이 있었다.
또 텔아비브에 가면 24시간 예배센터가 있다.
그곳에는 “다윗의 장막”을 본 따서 24시간 동안 예배드리는 장소가 있다.
거기에는 누구나 가서 개인적인 예배를 드릴 수도 있고 함께 예배할 수도 있다.
그곳에 가면 모든 예배의 도구들을 볼 수 있다.
깃발로부터 시작해서 양각나팔, 성찬식 도구, 기도할 때 덮어쓰는 숄, 음악CD, 성경책, 마이크, 다양한 악기들..심지어 영적전쟁을 상징하는 검도 있었다.
누구나 거기에 있는 도구를 사용해서 자유롭게 예배를 드릴 수 있다.
일주일에 두 번은 그곳에서 공동예배가 드려지는 데 그 예배도 우리가 생각하는 예배와는 전혀 다른 예배이다.
찬양팀이 앞에서 Spontaneous Worship이라고 하는 즉흥적인 찬양을 부른다.
그러면 어떤 사람은 앞에서 나와서 마이크를 잡고 함께 찬양을 하기도 하고 성경을 낭독하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기도 천을 뒤집어쓰고 조용히 기도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깃발을 흔들고 어떤 사람은 춤을 춘다.
어떤 사람은 바닥에 편안하게 드러누워서 잠잠히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기도 한다.
전체적인 예배는 두세 시간 정도 계속되는데 때로는 폭풍처럼 불타올랐다가 때로는 호수처럼 잔잔해진다.
그러면서 어떤 사람은 불같은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비둘기 같은 성령의 온유한 만지심을 경험하기도 한다.
저도 그 예배에 참석해서 하나님의 깊은 임재를 경험할 수 있었다.
지난 2천년 동안 하나님을 멀리 떠나서 나라마저 잃고 살아가던 이스라엘에 지금 놀라운 예배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다.
그들이 가장 즐겨 부르는 찬양곡 중에 이런 곡이 있다.
Baruk Haba B'shem Adonai Hallelujah(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마23:39에 보면 주님이 죽으시기 얼마 전에 이런 말씀을 하신다.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
이 말씀은 주님의 재림에 관한 말씀이다.
복음이 온 세계를 돌아서 마침내 주님을 거절하던 유대인들이 주님께 돌아와서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라고 찬양할 바로 그 때, 주님이 다시 재림하시겠다는 말씀이다.
그런데 바로 이 찬양이 지금 유대기독교인들 가운데 불려지고 있다는 거다.
이천년 동안 온 세상을 돌고 돈 복음의 불꽃이 이제 다시 복음의 진원지인 이스라엘에서 타오르기 시작했다.
이 복음의 불꽃이 아직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세계 곳곳에 전해지고 마침내 세상의 모든 족속 가운데 주님의 영광스러운 교회가 세워지고 주님을 예배하는 그 날 우리 주님은 다시 오실 거다.
선교는 예배의 완성이다.
참된 예배는 선교를 통해서만 완성될 수 있다.
선교는 열방 가운데 하나님의 예배자를 일으키는 것이다.
혹시 하나님이 여러분을 찬양사역으로 부르고 있다면 기쁨으로 헌신하시기 바란다.
하나님이 어디로 부르시든지 순종하며 그곳에서 사역하라.
하지만 여러분이 어디서 사역하든지 여러분의 눈은 열방을 향해 있길 바란다.
왜냐하면 그곳이 하나님의 눈이 머무시는 곳이기 때문이다.
혹시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열방으로 부르신다면 주저하지 말고 여러분의 삶을 헌신하라.
온 세상에 예배자를 일으키고 주님의 재림을 앞당기는 것만큼 영광스러운 일은 없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이 꿈꾸시는 예배를 꿈꾸기 원하신다.
그 예배를 꿈꾸며 그 영광스러운 날을 위해 우리의 인생을 헌신하길 원하신다.
백이십 년 전 하나님의 꿈을 꾸며 조선 땅을 밟은 언더우드 선교사님은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오 주여,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주님, 메마르고 가난한 땅
나무 한 그루 시원하게 자라 오르지 못하고 있는 땅에
저희들을 옮겨 와 심으셨습니다.
그 넓은 태평양을 어떻게 건너왔는지
그 사실이 기적입니다.
주께서 붙잡아 뚝 떨어뜨려 놓으신 듯한 이곳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는 것은 고집스럽게 얼룩진 어둠뿐입니다.
어둠과 가난한 인습에 묶여 있는 조선 사람뿐입니다.
그들은 왜 묶여 있는지도, 고통이라는 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고통을 고통인 줄을 모르는 자에게 고통을 벗겨주겠다고 하면
의심하고 화부터 냅니다.
조선 남자들의 속셈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 나라 조정의 내심도 보이지 않습니다.
가마를 타고 다니는 여자들을 영영 볼 기회가 없으면 어쩌나 합니다.
조선의 마음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해야 할 일이 보이질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 순종하겠습니다.
겸손하게 순종할 때 주께서 일을 시작하시고
그 하시는 일을 우리들의 영적인 눈이
볼수 있는 날이 있을 줄 믿나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라고 하신 말씀을 따라
조선의 믿음의 앞날을 볼 수 있게 될 것을 믿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황무지 위에 맨손으로 서 있는 것 같사오나
지금은 우리가 서양 귀신이라고 손가락질 받고 있사오나
저들이 우리 영혼과 하나인 것을 깨닫고,
하늘나라의 한 백성, 한 자녀임을 알고
눈물로 기뻐할 날이 있음을 믿나이다.
지금은 예배드릴 예배당도 없고 학교도 없고
그저 경계의 의심과 멸시와 천대함이 가득한 곳이지만
이곳이 머지않아 은총의 땅이 되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주여 !오직 제 믿음을 붙잡아 주소서!
이 언더우드 선교사님의 기도는 백 이십년이 지난 지금 놀랍게 이루어졌다.
방방곡곡 마다 십자가가 세워지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소리가 울려퍼지는 나라가 된 것이다.
우리나라가 이처럼 축복의 나라가 된 것은 황무지와 같은 땅에 와서 언젠가 이 땅에 예배자들이 일어날 것을 꿈꾸며 자신의 삶을 드린 수많은 선교사님들의 희생 때문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우리도 그분들이 꾸었던 꿈을 꾸길 원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저와 여러분을 통해 열방 가운데 하나님을 찬송하는 소리가 울려퍼지는 것을 보기 원하신다.
이 하나님의 꿈이 저와 여러분의 꿈이 되길 원한다.
이 자리에 모인 우리 모두가 열방을 품는 예배자로 세워지길 원한다.
그래서 하나님이 꿈꾸시는 바로 그 예배가 저와 여러분의 삶과 헌신을 통해 이루어지길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