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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如天 無比 큰스님 염화실 인터넷 법문]
2006년 03월 17일 證道歌 제16강 (龍象蹴踏潤無邊~)
증도가
반갑습니다. 오늘 3월 17일 염화실 인터넷 방송법문 시작하겠습니다. 증도가 어제 이어서 오늘은 용상축답윤무변龍象蹴踏潤無邊 하니 삼승오성三乘五性이 개성오皆惺悟로다 그랬습니다.
이글은 계속 뜻이 연결되어 있는데요, 그 앞 구절이 진법뢰 격법고震法雷 擊法鼓하면 포자운혜 쇠감로布慈雲兮灑甘露로다.
법의 우뢰가 진동하고 법의 북을 두드리며 자비의 구름을 펼치는 것이고 감로의 법비를 뿌리는 것이로다 그랬습니다.
영가 스님께서 그 당시로서는 참 정말 큰 깨달음을 얻으셔서 당시 불교에서는 아무나 주장할 수 없었던 획기적인 가르침을 펴셨습니다.
뭐 많은 말씀이 있겠지만은
증도가를 근거를 해서 우리 익숙한 말로 표현하자면 무명실성無明實性이 즉불성卽佛性이고 불성! 불성해서 우리의 진심, 참마음 이것을 상당히 알고 싶어 하고 찾고 싶어 하고
또 아득히 먼 곳에 있는 줄 알았는데 바로우리 번뇌 망상 누구나 다 사용하고 있는 일상생활의 그런 마음
이것이 그대로가 불성이다라고 하는 참 파격적인 말씀을 하셨고 또 법신 법신 하는데 법신이라고 하는것이 다름 아니라 이 육신이 바로 법신이다 환화 공신幻化空身이 즉법신卽法身이다
이것이야말로 법의 우뢰고 법의 북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이야말로 자비의 구름을 펼치는 것이고 감로의 법비를 뿌리는 것이다 이렇게 말씀을 드릴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불교의 안목으로 볼 때 최고의 어떤 경지에서 나오는 이런 말씀은 뭐 비유컨대
용과 코끼리가 사정없이 차고 밟고 앞으로 앞으로 실천해 나아가는 그런 모습과 같아서 그 차고 밟고 나아가는 그 어떤 영향력이 유는 이제 윤택함으로 해서 나아가는 영향력이 끝이없다, 그랬습니다.
무변하다. 영가스님께서 깨달음을 이루셔셔 증도가의 어떤 높은 가르침을 펼치므로 해서 이제서 비로소 진정한 불교가 무엇인지 부처님의 가장 높은 안목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모든 사람들이 다 눈을 뜨게 됐다 하는 거죠!
그런 것을 이렇게 아주 뛰어난 글 솜씨와 표현력으로써 그야말로 종도 설하고, 통하고, 종지도 통하고 설법도 통했다. 라고 스스로 자신있게 말씀하셨듯이
이와 같이 뛰어난 표현력으로서 이렇게 하는데 이러한
그 설법을 통해서 삼승오성 개오성이로다. 삼승은 그대로 성문. 연각. 보살. 여러 차원의 그 수행자들을 일컬을 수 있는 것이고 오성이라고 하는 것도 역시 선성, 악성, 정성, 부정성, 천재성해가지고
별의별 고정된 견해의 어떤 소유자들을 다섯 가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삼성이나 오성이나 중생들의 여러 가지 견해의 차별성 또 온갖 근기의 차별성 이런 것들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런 어떤 차별을 가진 견해와 근기라 하더라도 다 영가스님의 이러한 엄청난 가르침을 듣고서는 전부 다 깨친다. 이런 말입니다
성오
깰성 성자는 잠을 깨다, 꿈을 깨다, 술을 깨다. 이런 성자지만 성오라고 붙여서 우리가 마음을 깨닫다라는 뜻으로 같이 쓰기도 합니다.
어떤 수준의 견해든 어떤 수준의 근기든 간에 다 무명실성이 즉 불성이고 환화공신이 즉 법신이다. 라고 하는 이런 큰 가르침을 통해서 전부 눈을 뜨게 되고 전부 깨달음을 얻게 됐다하는 것입니다.
이 이상 더 얼마나 고구정령하게 말씀 드릴수가 있으며 이 이상 어떻게 또 드러내서 진리의 실상을 확연히 드러내서
우리 승가에선 화반탁출和盤托出이라고 그래요, 떡을 쪄서 꺼내서 썰어가지고 알맞게 쟁반에다 내놓는 것이 아니라 화반탁출이란? 솥에 다 드러내 놓는 그런 경우를 화반탁출 이라고 그래요.
떡 소반까지 건드리지 않고 그대로 다 손님에게 갖다 바쳤다.
그야말로 영가스님의 영가증도가의 가르침은 당신의 그 깨달음의 높은 경지를 가르침을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고
깨달음 경지를 그대로 다 드러내 놓았다 이대로 말씀을 드릴수가 있습니다. 그 높은 법문을 듣고 여기서 그야말로 귀가 열리고 눈이 떠져 야죠!
그렇게 안 되면 어쨌든 그 우리육신이 그대로 법신이고 망상이 다 그대로 진심이다라고 하는거 그
런거 불구진 부단망 여러번 나왔죠! 또 부대망상 불구진
여러 번 같은 표현이 있었는데 왜! 그렇게 그 망상을 제거해야 된다고 평소에 말했고 그래서 진심을 찾아내야 된다고 그렇게들 이야기 하셨는데
재대로 깨달으신 영가스님은 그게 둘이 아니다 이거죠.
그래서 망상을 제거할 필요도 없고 따로 진심을 구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알고 보니 그런 것이다. 이런 말씀에 우리가 귀가 열리지 않고 눈이 열리지 아니하고 다시 뭐 더 이상 어디 가서 열릴 길은 없습니다. 뭐 이걸 그저 증도가를 열심히 쓰고 읽고 쓰고 읽고 사유하고 잠잘 때 이런 구절 하나 머리에 딱 가지고 잠들고 그렇게 하다보면 저절로 귀가 열리고 눈이 열리지 않을까 그랬습니다.
여기 삼성오성이 개성오로다 온갖 견해 온갖 근기 들이 다 깨달음을 얻는다 그랬습니다.
그리고 또 영가 스님께서 깨달으셔셔 자신의 그 됨됨이 자신의 법기 법의 그릇은 여기서 이렇게 표현하고 있어요!
자신의 근기를 설산비니갱무잡이라 그랬는데 설산에 사는 흰소가 다른 풀을 먹지 아니하고 비니초라고 하는 풀만 먹어서 다시는 더 이상 잡초를 먹지 않는다.
설산비니 갱무잡이란 그 일곱자가 그렇게 긴 이야기인데 일곱자로 표현 되있어요.
설산에 사는 백우 흰소가 비니초만 먹고 더 이상 잡초를 먹지 않으리라 그래서 그 백우 흰 소는 비니 초만 먹었기 때문에 그래서 내놓는 어떤 젖을 제호만 내 놓는다. 순전히 제호만 내놓는다. 나는 제호만을 늘 받아들이도다.
제호는 보통 이제 우우를 짜가지고 여러 그 단계를 거쳐서 제일 하치는 뭐고 그다음 뭐고 그다음은 뭐고 해서 가장 맛있는 것으로 정제를 했을 때 그걸 가지고 제호라 한다.
제호산미! 이런 표현을 쓰기도 하는데, 제호라고 하는 것인데 글쎄요 내가 먹어본 경험으로는 연유! 연유라고 요즈음도 있는지 모르겠는데 옛날에 보면 깡통에 어린아이들 식용으로 연유라고 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걸 먹어보면 맛도 진하고 어릴 때 기억으로는 그렇게 가장 맛이 있을 수가 없어요! 그것이 제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상당히 여러 가지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낸 우유로서 만들어낸 것입니다 그렇게 이제 엇비슷하게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이 설산에 비니초만 먹고 자란 흰소는 아예 다른 뭐 초기단계 이단계 삼단계 거친 우유나 거친 치즈나 이런것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 아예 제호만 내놓는다.
순전히 제호만 내놓는다. 더 이상 가공할 필요가 없다 최고 산미인 제호만 순전히 내놓는데 나는 항상 그것을 받아들인다. 그 제호만을 받아들인다 이제 말은 그래요,
속 뜻은 뭔고 하면 바로 불성사상입니다. 불성사상!! 법화경에도 있지만 은 대 백우거라! 그러죠! 능엄경에도 대 백우라고 하는 흰 소 이야기가 나오고 법화경에도 대 백우라고 하는 이야기가 나오고 그러는데 바로
불성!! 부처의 경지!! 그러니까 이것은 그 불교에서도 많고 많은 그런 그 가르침 중에서 전혀 방편의 티가 거기 붙지 아니한 순수한 불성 사상. 일불성 사상, 그것만은 내가 받아들이고 그래서 부처님이 바로 그것을 내놓으면 나는 그것만을 받아들인다.
불교 안에서 나는 그것만은 받아들인다 이거예요 온갖 방편설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도 또 근기 따라서 사람들이 정말 진짜 좋은 것은 가질려고 안하고 방편설을 가지려고 하는 그런 경향들이 많은데
염화실 법우님들은 최상승 공부를 하시니까 불교에서도 그 최첨단의 견해를, 최고의 견해를 가지고 말하자면 순수한 불성사상으로 그렇게 이제 이렇게 불교를 이해해야 하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가르쳤으면 합니다.
이 증도가에서 영가스님 말씀이 바로 그거에요 나는 불교안에서 잡다한 근기 따라서 방편설이 많이 있는데 나는 그중에서도 불성사상만 받아들이고 내가 내놓는 것도 전부 불성사상 만 받아들이고 나도 내놓 는것도 전부 불성사상만 내 놓는다 그런 뜻이예요.
사람이 부처님이다 뜻이죠! 그런 것입니다. 그러면 망상 그대로가 뭡니까? 진심이고, 진리고, 그대로 육신그대로가 법신이다. 하는 사상 그대로입니다. 전부 그 하나로 연결되어있습니다.
불교에서 순전히 불성만 내놓는데 불법 안에서 그것만 내놓는데 나는 그것을 받아 들인다.
이런 형식으로 이제 표현을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설산에 있는 백우 흰소 에 빗대어서 그렇게 말을 하죠! 그 불성이라고 하는것은 그 한 부처의 성품이란 다른 말로 하면 일성이고, 일성이고, 그래서 일성이 원통이 원통일체성이다 일체성품에 다 통한다.
여기서 일성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하나의 성품 이것이 통일된 성품입니다. 일체성품의 다 원만히 통한다.
그리고 하나의 법은 일체법을 두루두루 다 포함한다. 일법이 변하면 일체법이다 그랬어요.
영가스님같이 깨달은 안목으로 볼때 한 개인의 성품이 모든 사람들의 성품과 원만히 다 통하고 있고 영가스님 안목으로 볼때 모든 사람성품이 다 통하고 성질이 같아서 알고 보면 공명하게 되있는거죠!
진리적인 그런 입장에서 볼때 사람 사람이 아무리 다르고 사람과 동물이 다르고 사람과 식물이 다르고 다르다고 그렇게 우리 눈에도 보이지만 사실은 그 내면으로 들어가면 하나의 성품이고, 그 하나의 성품은 모든 존재의 다양한 성품과 전부 원만하게 통한다.
자신의 한 가지 법이 또 일체 존재들이 살아가는 그 법과 역시 통하고 그래서 두루두루 포함하고 있다.
예컨대 비유로 들자면 일월一月이 보현일체수普現一切水 하니 일체수월일월섭一切水月一月攝 이로다
하나의 달이 일체의 물에 널리 나타난다. 천강유수 천강월이라 그러죠! 천강에 물이 있으면 천강에 달이 비춘다.
일체수월 일월섭一切水月一月攝이라 일체 물이 있는 온갖 곳에 물에 비치 는 달이 하늘에 있는 하나의 달에 다 포섭된다. 그와 같은 비유죠. 그와 같이 일체 그 밑에 확실하게 집고 넘어 가죠.
제불법신諸佛法身이 입아성入我性이요 아성환공여래합 我性還共如來合이라 그랬습니다.
모든 깨달은 사람의 법신이 내 성품에다 들어오고 나의 성품이 또한 같이 여래에 합한다. 아성이 환공여래합이라 제불법신이 입아성이요 아성환공 여래합이라.
우리는 낱낱이 독립된 존재로 있지만 전부 우리가 공통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고 좀더 깨어있는 눈으로 볼 때 전부 통일되 있는 세계에서 우리가 살고 있다 이렇게 보는 거죠.
가까이 있는 비유로 들자면 여기서 내가 지금 내 컴퓨터에 대고 방송을 하죠! 듣는 법우님들은 각각의 집에 있는 개인의 컴퓨터로 다함께 듣고 있습니다.
그런데 각각 듣고 있지만은 이십명 삼십명 사십명 오십명 듣고 있지만은 듣고 있는 그 소리는 내가 말하고 있는 하나의 이 소리는 내가 말하고 있는 하나의 소리에 다 포섭이 되죠.
일월이 보현 일체수하니 일체수월일월섭과 같고 제불법신이 입아성이고 아성환공여래합이라.. 여러분들이 듣고 있는 컴퓨터의 소리나 내가 말하는 것이나 전부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성질이 같은 것이고 그래서 서로 같이 울리고 있다. 공명하고 있다 이렇게 보는 것이다.
그것은 비유이고 부처님과 나와 부처님의 관계 나와 부처님과의 관계 나와 옆에 있는 사람과 관계들이 나와 먼 거리에 계시는 여러 법우님들과 이런 관계들이 지금 뭐 표면으로 보면 따로 따로 독립되어 있고 떨어져 있지만은 내면으로 보면 다 하나로 연결되어있다.
또 다른 비유들 들어보면은
산봉우리가 여기저기 많죠!! 따로 독립된 산입니다. 우리나라 큰 산 작은 산이 많은데 우리나라 산이 수 천 개 수 만개가 있겠는데 그게 전부 독립돼 있지만 산이 많지만 밑으로 내려오면 하나의 땅으로 통일되어 있죠!
하나의 땅에서 여기서는 이렇게 솟았고 저기서는 저렇게 솟았고 그래서 여기서는 지리산이라고 하고 여기서는 가야산이라고 하고, 여기서는 금정산 이라하고 여기서는 금강산 이라하고 여서서는 백두산이라고 이렇게 말합니다.
표면만 보고 우리가 하는 소리죠. 그렇습니다. 조금 밑으로 내려가 보면 하나의 땅으로 연결되어 있는 거죠.
그와 같이 각자 개체의 산으로 보는 안목과 통일된 하나의 땅덩어리로 보는 안목! 통일된 하나의 땅덩어리로만 볼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별개의 땅으로만 볼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별개의 달도 마찬가지 하나의 달과 연결되어 있고 그러면서 하나도 아니고 여럿이고 여럿이 면서 하나인 그런 입장을 우리가 이해해야 된다 하나의 달도 마찬가지입니다. 달도 여기저기 물의 그림자 비추는 그런 달이 하나의 달과 사실은 연결되어 있고 그러면서 또 하나도 아니고 여럿도 아니고 여럿이면서 하나고 하나이면서 여럿이고
제불법신이 내 성품에 들어오고 그래서 내 성품이 곧 제불법신이고 제불법신이 곧 내 성품이다. 뭐라고 할까요?
한 꺼풀 걷어내면 통하게 되어있고 통일이 되어 있다. 바로 그런 이야기죠. 이러한 문제를 우리가 사량분별로 이렇게 가름해 보아도 어지간히 짐작이 가죠.
이런 이야기는 그렇게 어려운게 아닙니다. 짐작이 가는데 영가스님같이 확철히 깨달으신 안목으로 볼때 손만 뻗으면 잡을 수 있는 펜과 다를 바가 없이 당연이 한 이야기처럼 보일 것입니다.
일지구족일체지 一地具足一切地 비색비심비행업 非色非心非行業이라 그런 말을 했습니다.
모든 존재의 존재 양상은 앞에 설명한것과 같이 조금 덧붙인다면 천지가 여아동근이고 만물이 여아 일체다 그런 말도있죠. 하늘과 땅이 나와 더불어 뿌리가 같고 만물이 나와 더불어 한 몸이다.
불교에서 흔히 쓰죠. 잘 생각해보면 설명한대로 짐작이 가고 조금 한 가지 더 눈을 뜨고 보면 쉽게 이해되지 않을까 그렇습니다.
그런데 또 우리가
전혀 캄캄한 중생의 입장과 수행을 많이 하고 눈을 많이 떠서 높은 경지에 있는 입장, 그런 관계는 또 어떨까? 그래서 시간과 공간, 종횡, 좌우 이런 관계는 어떨까 하는 것도 생각할 수가 있죠!
일지구족일체지하니 비색비심비행업이라 그렇게 이야기 한 것은 일지라는 것은
첫 단계 불교에 처음 입문해서 처음 아는 단계 그 다음에 일체지를 구족했다고 하는 것은 올라갈 대로 끝까지 다 올라간 단계 이것을 일체지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의 지위가 모든 지위를 다 갖추고 있다. 하나 속에 다 가 있다 사실은 편의상 그렇게 표현하는 것이고
모든 것이 하나 속에 다 포함되어 있고 그래서 불교의 수행의 점차를 십신, 십주, 십향, 십행, 십지, 등각, 묘각, 보통 52위 점차를 이야기 하는데 그것도 그런 근기에 맞도록 펼쳐 놓아본 하나의 가설이죠!
그런데 이것이 마음의 문제란 말입니다.
그래서 비색비심비행업이라 그랬습니다.
마음의 문제라고 하면서 육신을 떠난 마음이 따로 없고 마음과 육신이 무언가 작용을 일으키죠,
그것을 행업이라 말하는데 이 그 무엇도 하나만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뜻이다.
그래서 색 육신만도 아니고 비심 마음만도 아니고 비행업만도육신과 마음이 어떤 작용을 일으키는 것도 또한 아니다.
어느 특정적인 것만도 아니다. 우리가 수행을 해서 한 단계 한 단계 올라간다고 생각하는 것은 절대 틀린 말입니다.
이것은 도를 증득한 노래 영가스님께서 깨달은 그 당체, 경지를 조금도 수식 없이 고스란히 드러내 놓는 가르침이기 때문에 일체구족일체지 한다. 한 지위 속에 모든 것이 다 갖추어져 있다.
결정설!! 결정적인 설법을 관심 있게 듣고 깊이 사유해서 이해를 해야되지 않겠나 합니다.
그리고 불교공부를 하고 기도를 하고 참선을 하고 육바라밀을 열심히 닦고 한가지로 말하면 복도 유루복도 지어야 지혜도 갈고 닦아야 하고 그것이 팔만사천 공덕문이라 어떻게 하면 이루어지는가?
결정설!
탄지원성 팔만문 彈指圓成八萬門 손가락한번 튕기는 사이 찰나멸겁삼지겁 刹那滅却三祇劫! 찰나에 삼지겁 동안 닦아야 할 수행문도 (소멸,멸각 ) 없애버린다. 삼 아승지겁 동안 수행해야할 수행문도 다 찰나에 멸각해 버린다. 한 생각 속에 모든 것이 다 들어있는 거죠. 아무나 할 수 있는 말은 아니죠. 영가 스님이 확철히 깨달은 분이니까 이런 말씀을 하셨고 그래서 영가스님의 이런 표현을 뒷 조사스님들이 많이 인용합니다.
불교공부 한 사람치고
증도가를 못 외우는 사람이 없고 다 높이 칭찬 안한 이가 없고 법문할 때 인용하지 않는 이가 없습니다. 불교안목의 기증!! 증도가다 여기에서
조금이라도 소견이 잘못 되었다, 영가스님이 착각했다고 반기를 든 주장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워낙 투철한 깨달음을 하셔서 길게 설명하지도 않고 한 두 구절의 시 형식을 통해서 확실하게 드러내 놓습니다.
얼마나 시원합니까? 탄지원성 팔만문이요 찰나멸겁 삼지겁이다.
불교는 이렇게 시원한 것입니다. 갑갑하고 답답하게 만들면 잘 못된 것입니다.
이치가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에 이런 말씀을 하시는 거지 이치가 그렇지 않는데 이치와 달리 당신 마음대로 속시원 하다고 덮어 놓고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일체수구 비수구요 一切數句非數句 여오영각으로 하교섭가 與吾靈覺何交涉 일체수구!! 수구라고 하는것은
여러 가지로 차별한 법구. 문구, 경전 구절 어록들, 법수, 수구라고 하는 것은 법수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데 숫자로 전하는 경우가 많지요. 그래서 법수라 해서 표시하는데 큰 사전같이 한권으로 돼있습니다.
일승 삼승 삼보 이런 식으로 숫자가 들어가서 어떤 가르침의 뜻을 전한 것! 사홍서원, 숫자가 들어간 것이 전부 법수라고 하는데 숫자가 들어간 것과 아울러 일체 법구나 ,문구, 경전들 통틀어서 일체수구라 그런다
일체수구 여러 가지 구절들 이것이 여러 가지 구절이 아니다 말이 말이 아니다. 법문이 법문이 아니다.
내 신령스런 깨달음과 무슨 교섭이 있을 것인가!
팔 만 대장경하고 나 하고 아무 관계가 없다. 경전은 경전이고 나는 나다. 한 생각 잘 해보면 이해가 될 것입니다.
그것을 감동하는 내가 중요하다. 내가 있음으로 해서 경전의 말씀이 마음에 와 닿고 감동하는 것이니까
그렇게 보면 나 아닌 다른 아무리 현란하고 화려한 가르침이라 하더라도 내 신령스런 깨달음하고는 아무 관계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것을 이제 말씀하셨습니다.
훼방할 수도 없고 찬탄할 수도 없다. 내 신령스런 깨달음에 관계가 안 되니까 이것은 찬탄할 수 없고 그렇다고 무시할 수 없다. 그렇다고 훼방할 수도 없다. 찬탄할 수도 없다 일체수구들을~~
불가훼 불가찬 不可毁 不可讚 일체수구비수구 여오영각 하교섭이라
경전이나 어록이 고맙고 대단한 것이기는 하지만 내 마음자리 하고는 별개의 것이니까 그렇다고 꼭 별개라고 선을 그을 것은 아니예요. 이런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자성, 참나, 말하는 당체, 이야기 소리를 듣는 그 주인공에 무게를 싣고 관심을 가져야 된다고 하는 것, 이런 가르침 속에서는 그런 것을 마음에 새겨야 됩니다.
우리의 마음은 체약허공물애안 體若虛空勿涯岸이라 일체수구 온갖 팔만대장경 가지고는 이 드넓은 우리 마음의 본체, 당체자리 그것에 무슨 아무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당체자리는 체약허공물애안 體若虛空勿涯岸이라~
체는 허공과 같아서 애안이 없다. 저 허공은 어디가 한계가 없죠! 정말 무한합니다. 애안~ 한계, 어느 가 예 를 들어서 못이 있으면 못의 가장자리를 애안이라 하지요.
허공은 가장자리가 없어요. 지금 천체망원경을 가지고 수백억광년까지 볼 수 있다고 하지만 과학의 한계고 좀 더 발전하면 더 먼 거리도 볼 수 있겠죠.
아무리 그래도 더 먼 거리를 볼 수 있는 망원경이 개발된다하더라도 그래도 다 끝까지 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끝이 없으니까~~ 그와 같이 우리의 마음심체도 우리의 당체자리, 본체 자리도 그와 같다 그렇게 드넓은 세계가 나의 실체인데 참 나의 실체에 대해서 팔만대장경에서 설명해 놓은 것에 거기에 해당이 되겠는가?
불리당처상담연 不離當處常湛然!!
불가훼 불가찬!!
그런 가르침을 통해서 이만큼이라도 이해하고 당체자리, 참 나의 실체에 대해서 이 정도라도 짐작을 하고 이해를 조금이라고 이해하게 되니까 그렇다고 훼방 할 수 없는 것이죠! 그렇다고 칭찬할 만한 것이 못 된다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가스님의 차원이죠.
우리 같은 입장에서는 그렇게 할 것은 아니죠! 일체수구팔만대장경 그거 뭐 별거 아니다 이런 식으로 무턱대고 건방이 들어가지고 그렇게 할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영가스님도 극한 표현보다는 훼방할 것도 아니고 찬탄할 것도 아니다.
체약허공 물애안 體若虛空勿涯岸 불리당처 상담연 不離當處常湛然!
우리의 본체, 우리의 신체 나 자신의 당체자리는 허공과 같아서 한계가 없다.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내일은 주말입니다
젛은 주말 보내시기 바랍니다.
(정리:희견)
첫댓글 無明實性卽佛性 이요 幻化空身卽法身이라,최고의 경지에서 나온 이런 말씀은 용과 코끼리가 사정없이 차고 밟고 앞으로 나가는 모습과 같아서 그 영향력이 끝이 없다.삼승,오성,중생들의 온갖 근기와 견해가 차별성을 가졌더라도 엄청난 가르침(和盤托出)을 듣고는 다 깨친다. 하나의 성품이 모든 존재의 다양한
성품과 원만하게 통하며 하나의 달이 일체 물에 널리 나타난다,불교안에 순수한 佛性思相(일불승 사상)만 받아들인다.모든 깨달은 사람의 법신이 내 성품에 들어오고 나의 성품이 또한 여래의 성품에 합친다.본래 天地는 與我 同根이요,萬物은 與我 一體라.하늘과 땅이 나와 뿌리가 같고 만물이 나와 더불어 한 몸이라 .
한 지위속에 일체의 지위가 갖춰져 있다 그야말로 決定說이다.일체 數句(경전,文句,어록,法句)가 數句가 아니다.내 신령스런 깨달음과 더불어 무슨 교섭이 있겠는가? 8만 대장경하고 나(참 나,自性,주인공)하고는 관계가 없다.우리의 당체자리,體는 허공과 같아서 涯岸(한계)이 없다.
큰스님께 감사 드립니다. 미륵골님 고맙 습니다.
최상의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_()()()_
큰스님!감사합니다. _()()()_
화반탁출(和盤托出)...깨달음의 높은 경지...고맙습니다._()()()_
諸佛法身入我性이요我性還共如來合이라...큰스님! 감사드립니다._()()()_
미륵골님!!감사합니다~~마하반야바라밀 마하반야바라밀 마하반야바라밀 _()()()_
큰스님 감사합니다._()()()_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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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_()()()_
喪家에 갈 것인가 말것인가 揀擇之心은 非道라 알아었는데. 無明實性卽佛性이라하니 永夜淸宵何所爲라. 수리수리마하수리수수리사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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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_()()()_
八萬門是縛人底物
불교는 원래 시원한 것! 無明實性卽佛性 幻化空身卽法身
허공과 같아서 한계가 없다. 감사합니다.
오래도록 법체강령하시고 청안이 영원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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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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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성불하십시오.
탄지원성 팔만문 (彈指圓成八萬門) 손가락한번 튕기는 사이 찰나멸겁삼지겁 (刹那滅却三祇劫) 찰나에 삼지겁 동안 닦아야 할 수행문도 (소멸,멸각 ) 없애버린다. 삼 아승지겁 동안 수행해야할 수행문도 다 찰나에 멸각해 버린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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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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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_()()()_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_()()()_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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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