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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초 명동 거리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무척 붐비네요
지금도 옛모습이 남아있는 곳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매주 일요일이면 차 없는 거리로 지정되어 마음것 활보할 수 있었지요
이곳은 외각 지역의 출근길 모습입니다
어딘지 잘 모르겠네요
모백화점 건물같습니다
지나가는 짚차가 아직도 다니는것 보면 무척 튼튼한 차인가 봅니다
세운상가? 신세계 백화점? 잘모르겠네요
서울 시내 한 복판인것 같습니다
남산 어린이 회관이죠?
당시 여의도 개발 조감도 입니다
출 퇴근길에 교통정리 자원 봉사를 하시는 분입니다
남여 공학=중학교 추억의 교복이네요
육교를 건너는 여고생들의 교복이 청순해 보입니다
군사훈련 중인 여군들의 모습입니다
72년 당시의 미스터 코리아 입니다..진짜 멋잇죠
잘아시죠 영화배우 신성일님 = 젊었었을때 멋진 모습입니다
퇴근 길이면 대포집에 들러 막거리 한잔 쭈~악 커억! ㅎㅎㅎ
카바레에 내부 모습입니다
무작정 시골에서 상경한 소년입니다.. 순경이 사연을 듣고 있나봅니다
이분도 아마 지금쯤 40대 후반이겠지요..돈벌로 서울로~서울로 많이들 모여들었지요
전화국 안내하시는 분들입니다
생활이 어러울때라 직장이나 종교 단체에서 합동 결혼식을 많이 올리던 시절이었습니다
아이낳고 오래살다가 나이들어 결혼하신분도 많았지요.웨딩드레스는 꿈도 못꾸고 한복차림의 결혼식이 많았답니다
매년 열리는 전국 우량아 선발 대회입니다
예전에는 못먹어서 아이들은 무척 외소하던 때라 이런 대회가 무척 인기 었답니다
당시 셀러리맨들의 일상적이 사무 모습입니다
다이얼식의 전화기하며 앞에 보이는 타자기 무척이나 정겹지요
저때는 컴퓨터가 없는 시대라 타자기 자격증을 꼭따야 했답니다~
오월 단오절 모습입니다
창포에 머리감고 액운을 �고 개울에 멱감으며 ~아련한 추억들이지요
신나는 수학 ㈖敾都求?/P>
이때는 열차를 몇칸씩 전세내어 수학여행를 떠나곤 했지요
사실은 돈이없어 못가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수학 여행지에서 신나게 고고를 추고 있는 단발머리 여학생들 모습이 무척이나 예쁩니다
이당시 전국에 휘몰아 첫던 고고 열풍 대단했었지요
아침 출근길 많원 버스 한번 탈려면 필사적으로 버스에 달라 붙어야 했습니다
노약자들은 밀려서 다음버스 또 다음 버스 ~ 줄서기가 없었던 시절이 었습니다
어느 보육원의 밀가루 죽만 준다는 당시 기사 내용입니다
영양실조로 폐결핵에 걸린 어린이입니다
못먹어서 오는 병이며 주변에 너무도 많았습니다..위에 저분도 지금 50세정도는 되셨겠네요
하하~
피곤한 서민들의 피로를 씻어주시던 분들입니다
좌측 송해/000/김상국/서영춘/000선생이 시네요
그때는 외그리도 겨울이 추웠던지 마당에 있는 수도를 새끼로 동여매고 천으로 덮어서 어는걸 방지했지요 ,,, 뜨거운 물이나 종이에 불을 붙여 물이 나올때까지 녹이다 세수도 못하고 출근 하던일들....
서해안 백령도 어느 마을 모습입니다
충무로3가 액스트라들......영화가 번성하던 시절이라
아침이면 무작정 이곳에 모여 영화사에서 뽑아가 줄때를 기다리는 인력시장이었습니다
삼일로 빌딩=삼일로 고가도로옆이죠
33층인가요? 당시는 동양에서 3번째 높이의 빌딩으로 명물이었지요
예방주사= 여름철이면 장티푸스/수두/콜레라등 예방 주사를 보건소에서 일일이 찾아다니며
길거리에서 놓아주었지요~어른들은 모이고 아이들은 도망가고~ 그땐 전염병도 외그리 많이 성행했는지....
전화기 신청 공개 추첨 하는 모습입니다
전화 당첨되도 1년 이상은 기다려야 설치가 되던 시절이었습니다
한집에 자녀가 보통 7~8남매= 많은집은 10남매였지요
지금 돌이켜 보면 당시 아이를 많이 낳지 않았다면 우리나라 일손 부족으로 경제성장이 어려웠을것 같은 생각도 듭니다
직장 마다 학교마다 아침 조회 시간 국민체조 시간이지요
아침에 라듸오를 통해서 전국에 방송되면 구령에 마추어 하나 둘 셋넷 ~ ㅎㅎㅎㅎ
아마도 서민들 가슴속에 영원히 힘들고 슬픈 추억이 남아있을 연탄입니다
퇴근길에 한두장 사서 새끼줄에 꿔어 들고와 부억 아궁이에 피운던 시절을요
연탄 가스로인해 사랑하는 부모형제를 잃은 분들을 매면 겨울이면 접했었지요~
주조회사의 여공들입니다
모자가 무척 이색적이지요
놀이 기구가 많지 않던 시절 축구공 하나면 인기짱 ~최고의 놀이였지요
탄광 갱속에서 채탄 작업을 하는 모습입니다
지하 수천미터에서 목숨을 걸고 우리나라 경제발전을 위해 애쓰신 분들입니다
갱속이 무너지고 산소가 끊히고 가스가 폭팔하고 참으로 많은 분들이 돌아가셨답니다
일거리가 부족하던 시절이라 목숨걸고 일하시던 분들이 많았습니다
안전 장구는 했는지 아래쪽 안전 시설은 되있는지 무척 아슬 아슬 합니다
주택공사에서 발행하는 당시 주택 복권 한장에100원 일등700만원하던 시절입니다
길거리에서 이름도 짖고 풀이도 하고 토정 비결도 보고 오랜 추억으로 남아있는 장면이지요
명절 망우리 묘지 참배 길 모습입니다
우리나라 공산 품이 한창 생산되던 시절입니다
지금 신어도 멋에서는 뒤질 수없는 예쁜 구두죠?
길거리 구두 노점상들입니다
지금 아도 디자인이 유행에 밀리지 않을것 같은 구두들 많지요^^*
74년 북괴가 남한으로 파고 내려온 1차 땅굴 발견당시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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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저당시에도 구두가 엄청 많았네...
나도 연탄 가스 땜에 저승 갈 뻔 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