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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이의 진실11 – GMO 안됩니다
초여름이 시작되는 입하로 접어드니 비로소 온기가 가득해졌습니다. 봄이 한창이어야 할 4월 동안 좀처럼 추위가 가시지 않아, 왕소군은 아니어도 ‘춘래불사춘’을 뇌고 다녔습니다. 어떤 지역은 눈이 와 쌓이고 어떤 지역은 새벽마다 서리가 하얗게 덮여, 부지런히 심은 감자가 싹을 내자마자 죄다 얼고 못자리도 못낸 농가가 허다했으니 말입니다. 이제 날씨가 제자리를 잡아가니 작물들도 기를 펼 듯 합니다. 바야흐로 ‘오뉴월 하루 놀면 동지섣달 열흘 굶는다’는 속담대로 손이 열 개라도 모자라는 바쁜 농사철로 들어갑니다.
산마다 신록이 가득하고 이름모를 꽃들이 지천으로 피어나는 때, 따사로운 햇볕과 부드러운 바람이 사람들을 산으로 들로 불러냅니다. 수도권에서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천안논산고속도로를 거쳐 호남고속도로로 들어서는 길은 북에서 남으로 우리나라 서쪽을 거의 일직선으로 가르며 내리는 길입니다. 그 길을 달리다 보면 너른 들을 세 개 만나게 되는데, 안성 평택 들과 논산들, 그리고 곡창으로 일컫는 김제 만경 호남들입니다. 온 나라와 기업과 가정을 빚더미에 올려놓은 아파트건설 바람에 잿빛으로 뒤바뀐 풍경 속에서도 의연히 살아남아, 여름이면 초록빛이 가을이면 황금빛이 장관을 이루는 들입니다.
그런데 요즘 보면 한참 쟁기질로 바빠야 할 들의 풍경이 정신없이 빠르게 바뀌고 있습니다. 대형 비닐하우스 시설들이 어마어마한 면적으로 열지어 들어서고 있더군요. 한미FTA에서 유예되었던 쌀 완전개방이 목전에 닥쳐오면서 쌀농사 폐하고 채소농사로 살 길 찾으라는 정부의 농업정책의 현실을 목격하는 광경입니다. 쌀을 내는 논들이 비닐하우스로 바뀌고 쌀, 곡물 대신 채소 원예류 같은 환금작물들을 재배하게 되면, 이미 22%에 불과한 곡물 자급률이 어디까지 떨어질지 모르겠습니다. 식량이 되어주는 것은 곡물이고 채소는 아무리 해야 식량이 못됩니다. 식량을 외부에 의존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호주(176%), 프랑스(164%), 미국(150%), 캐나다(143%), 스웨덴(129%), 핀란드(126%), 독일(102%), 덴마크(98%), 오스트리아(98%), 영국(92%) 등, 소위 선진국이라고 하는 나라들의 곡물자급률을 보면 뭔가 보이지 않습니까?
식량이 무기로 된다는 것은 미래의 일이 아니라 이미 현실입니다. 현재 국제 곡물 유통은 카길, 아처대니얼스미드 랜드(ADM), 루이스 드레퓌스(LDC), 번지라는 이름의 4대 곡물 메이저가 수요량의 90%를 장악하고 있습니다. 옥수수 900만t과 밀 300만t, 콩 100만t 등 매년 1억5000만t의 물량을 수입하고 있는 우리나라도 이들 4대 곡물 메이저에 의존하는 비율이 56.9%에 달합니다. 이미 4대 메이저 곡물회사들은 국내시장에서 독과점 지위를 누리면서 가격 상승기나 불안정기에 시세보다 높은 가격을 요구하면서 우리들의 식량공급을 좌지우지하고 있는 상황이지요.
식량을 무기화하여 효과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관철시키고 있는 나라가 미국입니다. 미국은 전략물자인 식량을 틀어쥐고 세계를 통제하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들의 식량생산과 공급체계를 혼란시켜 식량형편을 의도적으로 악화시키는 방법으로 다른 나라를 자기들의 통제하에 두려고 합니다. 그래서 세계 각 곳에서 식량파동으로 정부가 전복되는 일이 드물지 않게 일어나고 있지요. 위의 통계가 보여주다시피, 공업과 첨단산업의 나라로 인식되어있는 미국을 비롯한 서구의 선진국들이 오늘날 세계 식량 생산의 대부분을 차지한 반면에 1960-70년대 주요 곡물 수출국이었던 많은 발전도상나라들이 곡물 수입국으로 전락된 사실은 식량이 얼마나 무서운 무기가 되어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우리나라처럼 극단적으로 식량을 외부에 의존하는 나라가 치르는 대가는 과연 무엇일까요? 건강은 물론 목숨까지 외부에 저당잡힌 것이 우리의 삶이 아닐까요?
하지만 이 정도는 약과입니다. 이것보다 더한 일이 현재 겁나는 속도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유통을 장악하는 방법을 넘어 식량이 되어주는 모든 생물 그 자체를 장악하려는 시도가 맹렬하게 이루어지고 있지요. 그게 어떻게 가능하냐구요? 가능합니다. 바로 씨앗을 장악하면 그 모든 일이 가능해집니다. 작물 생산의 원천인 씨앗을 조작하여 특허를 내고 라벨을 붙이면 생물 그 자체가 완벽한 그들의 소유가 됩니다. 그리고 이미 그들의 것인 거대한 유통망과 첨단 마케팅 기법을 이용하여 그 씨앗들을 전 세계의 농부들로 하여금 재배하도록 하면 불가능하게 보였던 모든 일들이 완벽하게 현실이 됩니다. 이건 앞으로 일어날 일이 아니라 이미 시작된 지 오래고, 그 점령의 영역이 확장일로에 있는 일입니다. 바로 유전자조작입니다.
물론 그 일을 위해서는 사전 작업이 필요했습니다. 자기 나라에서나 통했던 특허나 지적재산권에 관한 법률을 전 세계가 받아들이도록 하는 작업이었지요. 자신들의 이익을 전 세계적 차원에서 실현하기 위해 자기들의 법률체계를 세계 각국이 받아들이도록 하는 작업은, 1995년 탄생한 WTO체제의 무역관련지식재산권협정(TRIPS)에서, 그리고 FTA에서 성공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하하, 미제 껌, 미제 초콜릿에서 시작된 미제선호풍조가 이제 미제 법에까지 이른 건가요?
좀 다른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저는 소설을 무척 좋아합니다. 좋아하는 작가를 꼽으라면 주저없이 꼽는 작가 중 한 분이 김정한입니다. 구한말 한일병탄 직전에 태어나 일제 식민지 백성으로 반생을 살고 해방과 분단과 전쟁이라는 가장 변화무쌍했던 격랑의 현대사를 고스란히 살아낸 분입니다. 발표한 수많은 소설들에서 아쉬운 점들이야 없겠습니까마는, 저는 김정한 작가의 <사하촌>과 <모래톱 이야기>에 필적하는 소설이 아직 드물다 여깁니다.
<사하촌>은 고교 교과서에도 실렸으니 모르는 분이 없습니다. 일제의 비호를 받는 보광사 절 땅을 부치는 소작인들이, 말라붙은 땅에서 만신에 흙고물 칠을 해가며 버둥거리는 지렁이같이 벼랑 끝에 몰린 삶에서 분연히 일어서는 모습을 그려낸 수작 중의 수작입니다. 이 소설의 백미는 단연 ‘철없는 애색기들도 행렬 꽁문이에 붓터서 절 태우러 간다고 부산하게 떠들었다.’ 는 마지막 문장의 반전에 있지요. 소설을 처음 읽었을 때, 이 마지막 문장이 주는 감동과 희열을 여태도 잊지 못합니다.
여하튼지 여기에 상한이라는 아이가 있습니다. 마을 아낙들이 보광사 소유 산에서 버섯을 몰래 따고 있을 때 마을 아이들이 산지기에 쫓겨옵니다. 선불맞은 돼지새끼처럼 혼을 잃고 쫓겨오는 아이들의 등에는 까치집만큼씩한 삭정이를 해서 진 지게가 매달려 있습니다. 아낙들도 걸리면 버섯을 죄다 빼앗길 판이라 덩달아 뜁니다. 아이들의 도망질은 절박합니다. 자갈비탈에서 지게를 진 채 자빠지고, 그루터기에 발바닥을 찔리고… 자빠진 아이의 나뭇짐을 공차듯 굴려버리고 몽둥이를 휘두르며 쫓아오는 산지기를 피해 달아나던 아이들이 일순 멈춰섭니다. 밑빠진 고무신을 벗어들고 꽁무니에 쳐져서 허둥대던 상한이가 바위벼랑에서 누더기 날리듯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지게를 진 채로 모진 바위틈에 내려박혀 한 쪽 광대뼈가 불쑥 튀어나오고 알아볼 수도 없이 부서져 피범벅이 된 얼굴로 죽어버린 상한이 곁에는 끝까지 놓치지 않고 손에 쥐고있던 밑빠진 고무신이 엎어져있었습니다. 아이의 처참한 죽음 앞에서도 산지기는 변함없이 기세등등하고 미쳐버린 상한이 할머니를 우악스럽게 몰아내면서 산지기를 비호하는 것은 일제순사입니다.
19세기, 전 세계를 먹어치운 제국주의의 끝자락에 올라탄 일제의 조선지배는 가혹했습니다. 상한이는 저렇게 죽었지만 굶어죽고 얼어죽고 맞아죽은 상한이들은 얼마나 많았을 것이며, 죽음보다 못한 처절한 삶을 살았던 상한이들은 또 얼마나 많았을까요? 제 나라를 빼앗기고 노예처럼 살아야 했던 식민지 소년들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습니다. 제가 통계로 나열된 논문보다 소설을 좋아하는 까닭은, 한 시대를 건너는 사람들의 살아 움직이는 삶의 모습을 생생하게 재구성하여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하필이면 이 땅에 태어났다는 단 하나의 이유만으로도 제가 꼭 만나야 할 과거의 사람들이 거기에 숨쉬고 있기 때문입니다.
총칼로 다른 나라의 땅을 타고앉아 다른 민족의 삶을 피눈물 속에 잠구었던 제국주의가 노렸던 것은 결국 자원과 노동력입니다. 바로 부의 원천이지요. 자원과 노동력이 부의 원천이 되는 것은 19세기에도, 20세기에도, 우리가 살고있는 21세기에도 여전합니다. 또한 부의 원천인 자원과 노동력에 대한 무한정한 탐욕 역시 조금도 수그러들지 않은 채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19세기의 방법이 직접적이고 노골적인 것이었다면, 20세기를 지나면서는 감쪽같은 분장과 치장으로 은폐되어있다는 것, 그리고 보다 근원적인 것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것이 다를 뿐이지요.
자원과 노동력을 탈취하여 부를 축적한다는 하나의 목표를 위해 제국주의가 사용한 방법은 시대에 따라 변화해왔습니다. 최대한으로 단순화시켜보면, 과거 19세기에는 직접적인 침략을 통한 영토지배였습니다. 20세기 중반을 지나 직접적인 지배가 어려워진 조건에서는 전략물자를 독점하고 통제하는 방법으로 자기의 목표를 관철합니다. 20세기의 전략물자는 석유였고 전 세계 경제구조와 소비경향이 석유를 최대한 많이 소비하는 형태로 개편됩니다. 석유메이저의 등장, 오일머니를 이용할 거대금융시장의 출현, 그 작업에 재를 뿌리는 나라들을 효과적으로 제압할 첨단 무기체계의 등장 등이 모두 한 코에 꿰어있는 장면들입니다.
이제 21세기로 접어들면서 석유에 더해 그들이 선택한 전략물자가 바로 식량입니다. 키신저가 했다는 유명한 말 –“석유를 장악하라. 그러면 전 세계 국가들을 장악하게 될 것이다. 식량을 장악하라. 그러면 전 세계 인민들을 장악하게 될 것이다.”-이 현실로 되는 광경을 목도하고 있습니다. 석유통제가 기업에 의한 원유지배로 이루어졌다면, 식량통제는 기업에 의한 유통의 지배를 넘어 근원적인 생명체 지배로까지 나아갑니다. 땅에 대한 지배에서 씨앗에 대한 지배로, 영토의 식민화에서 종자의 식민화로, 이것이 바로 유전자조작생물체, GMO의 본질입니다.
GMO는 ‘외래유전자가 삽입된 생명체’입니다. 개념은 간단하지만 실제로 GMO를 상품으로 만드는 과정은 매우 어렵고 복잡하며 비용도 많이 듭니다. 한 종류의 GMO 제품을 만들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평균 10년, 비용은 1000만~1억 달러에 달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는 GMO를 생산해야 된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내세우는 논리는, GMO가 위기에 처한 식량문제를 해결하고, 농약사용을 줄여 환경문제를 해결하며, 기능성이 부가된 식품으로 영양결핍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입니다. GMO가 상품화되어 세계인의 식탁에 오른 지 20여년이 지나면서 그 논리의 허구성이 대부분 밝혀진 오늘날까지도 그들은 여전히 그 논리를 철회하지 않음은 물론, 반대자들을 공공연히, 또는 은밀하게 공격하고 매장하고 제거함으로써, 막대한 이익을 실현시켜주고 있는 GMO를 더욱 확장시켜 나가고 있습니다. GMO생산의 선두에 서있는 몬산토는 벌레를 죽이는 살충제와 식물을 죽이는 제초제를 생산해 팔면서 동시에 그 살충제와 제초제에도 죽지 않는 작물을 생산해 팝니다. 또한 존재하지 않았던 새롭고 특별한 물건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특허권을 낚아채면서 동시에 안전성 검증에서는 이미 존재하는 자연상태의 물건과 조금도 다름없다는 동등성 원리를 내세워 승인을 요청합니다. 창과 방패를 함께 파는 셈이고, 창의 논리와 방패의 논리가 동시에 성립한다는 어처구니없는 말인데, 동양의 옛 현자들은 이러한 행위를 일러 ‘모순’이라 하고, 사기에 해당하는 일로 여겼습니다. 지당합니다.
식량문제는 이상기후로 인한 식량생산의 감소, 식량의 에너지 생산으로의 전용, 육류와 육가공품의 지나친 생산, 세계농산물 시장에서 성행하는 투기와 식량의 금융화 등으로 인해 나타나는 문제로서 GMO가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초기에 반짝 보여주었던 증산능력마저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빠르게 정점을 넘어 오히려 후퇴함으로써 말짱 허구임이 밝혀졌습니다.
농약사용을 줄여 환경문제를 해결한다는 주장도 이미 십리도 못가 발병이 나고 말았습니다. 슈퍼잡초와 슈퍼버그의 출현으로 농약과 제초제 사용이 오히려 빠르게 증가한다는 사실이 밝혀졌지요. 아르헨티나 GMO재배지에서 암과 백혈병과 기형아 증가로 나타난 참혹한 비극은 이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기능성 부가로 인한 영양문제 해결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양결핍의 문제는 기본적으로는 양의 문제이며, 질의 문제는 오히려 산업화된 화학농업의 출현이 야기시킨 것입니다. 영양결핍의 질적 문제는, 근본적인 화학농업의 문제를 그대로 두고 유전자를 조작하는 비싼 꼼수에 의해서는 결코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식량을 골고루 나눔으로써, 자연적으로 재배된 건강한 음식을 골고루 먹음으로써 깨끗하게 해결됩니다.
GMO의 문제가 그들이 내세우는 논리의 허구성에 국한된 것이라면 그다지 심각할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GMO는 그것이 가져오는 건강에 대한 치명적인 위험성, 생태환경에 대한 파괴적인 위해성, 그리고 GMO를 지렛대로 하여 이루어지는 식량독점과 통제가 야기하는 전 세계 사람들의 노예화와 인간지위의 박탈, 사회의 황폐화 등 그야말로 전면적이고 총체적인 피해를 노정하고 있습니다. 과연 전 세계 사람들에 대한 지배를 목표로 설정된 ‘마법의 키’답지 않습니까?
건강에 대한 위험성은 1998년 영국 푸스타이 박사의 GM감자실험에서 시작하여 최근 프랑스의 세랄리니 박사의 실험에 이르는 여러가지 임상실험과 관찰을 통해 그 치명성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면역체계의 이상과 알레르기 유발, 종양의 발생과 수명단축 등이 이미 확인되거나 예측되는 최소한의 위험성입니다. 농업이 발생한 1만년 동안 가장 근본적이고도 급진적인 변화라고 인정되는 것이 유전자혁명입니다. 진짜 놀라운 것은 그렇게 커다란 변화로부터 생산된 식품의 안전성을 검증하는 실험이 4개월 이상 이루어져본 적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몬산토가 FDA로부터 승인받은 안전성 보고서의 실험기간은 불과 4개월도 못됩니다. 작년에 발표된 세랄리니 박사의 실험만이 유일하게 2년에 걸쳐 이루어졌고, 실험의 유의미한 반응이 4개월 이후부터 나타났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한 점을 시사합니다. 내가 먹은 것이 삼대를 간다는 것이 음식이니, 지금 우리가 먹고있는 유전자조작식품이 어떤 결과를 갖고 올지 그 누가 알겠습니까?
생태환경에 대한 위해성은 더욱 광범위하고 파괴적일 것이라고 과학자들은 예측합니다. GMO 재배를 위한 농약과 제초제 사용의 증가를 예외로 할지라도 문제는 GMO가 자연환경에 방출되었을 때 나타날 생태계의 교란과 혼돈입니다. 닐 슈빈이 쓴 <내 안의 물고기>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인체의 팔 다리 눈 코 귀 등 각 기관의 발생의 기원을 밝혀내는 기나긴 논문입니다. 그 책은 기관발생의 기원을 유전학적으로 밝혀내기 위한 갖가지 DNA실험을 보여줍니다. 유전자조각을 자르고 떼어내고 재배열하고 덧붙여 거울처럼 마주보는 날개와 지느러미를 가진 닭과 홍어를 만들어내고, 등이 두 개인 개구리를 만들어내고, 눈이 몸통이나 더듬이에 달린 초파리를 만들어내면서, 생물체란 ‘유전자조리법’에 의해 ‘조리’되는 것이라 말합니다. 그가 밝혀낸 사실들은 매우 흥미로운 것이었지만, 생명체를 바라보는 그의 환원론적인 관점과 유전자를 다루면서 신이라도 된 듯 여기는 기고만장함, 그리고 이 조작된 동물들이 자연에 방출되었을 때 일어날 일에 대한 상상으로 읽는 내내 마음이 불편하더군요. 유전자조작 동물은 아직은 실험단계에 있지만 유전자조작 식물은 이미 광범위한 면적에서 상업적으로 재배되고 있습니다. 그것이 유전자조작 동물의 식물버전이라는 것을 누가 부정할 수 있습니까? 스타워즈 같은 SF영화에 등장하는 괴이한 형태의 생물체들이 식물계에서는 이미 나타나고 있는 것이지요.
식량독점과 통제가 야기하는 전 세계 사람들의 노예화와 인간지위의 박탈, 사회의 황폐화는 나라를 빼앗겼던 상한이와 사하촌 사람들의 삶에서 우리는 이미 경험했습니다. 자신들의 땅을 거대자본의 플랜테이션 단작재배에 빼앗기고 주기적으로 식량파동으로 고통을 당하는 아프리카 사람들의 삶에서도 보고 있습니다. 부의 원천을 빼앗기고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아무런 수단도 갖지 못한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상상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상한이의 비극은 끝난 걸까요? 상한이는 적어도 자기가 무엇 때문에 죽는지는 알았을 겁니다. 자신의 삶을 벼랑으로 내몰고 죽음에 이르게 하는 자가 누구인지는 알았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 이토록 넘쳐흐르는 것처럼 보이는 풍요의 시대에 삶의 벼랑 끝으로 내몰려 스스로 목숨을 끊는 하루 46명에 달하는 자살자들은 자신이 무엇 때문에 죽는지, 자신을 죽음으로 내모는 것이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합니다. 부의 원천을 빼앗긴 사람들의 삶입니다.
우리나라는 아직 GMO재배국가가 아닙니다. 하지만 GMO를 먹는데 있어서 만큼은 앞에서 수위를 다투는 나라입니다. 몬산토가 GM콩을, 노바티스가 GM옥수수를 상업적으로 재배하기 시작한 1996년 바로 그 해부터 우리나라는 즉시 수입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시작된 GMO 수입이 해마다 늘어나 지금은 가공용과 사료용으로 수입되는 옥수수, 콩, 면화, 카놀라의 거의 대부분이 GMO가 되어버린 실정입니다. 이것은 대체 누가 선택하고 결정한 것일까요? 우리 중 누구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럼 정부인가요? 미안하지만 우리 정부도 그런 것을 주체적으로 선택하고 결정할 만큼 힘도 없고 의지도 없습니다. 그것은 25%도 안되는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과 대부분의 식량을 수입해야만 하는 상황, 그리고 수입 대상국의 편중이 불러온 상황입니다. 수입해야 먹을 수 있는 주제에, 수입대상국이 GMO를 만들어 팔겠다는데 용빼는 재주 있습니까? 이쯤 되면 이미 국가적인 차원에서 먹거리를 선택하고 결정하는 권한을 빼앗기고 있는 셈이지요. 먹을거리조차도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정부와 그 구성원이 과연 사람다운 삶을 살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상식적인 정부라면 당연히 이 지경에 처한 식량상황을 개선하고 식량에 대한 결정권을 장악하기 위해 노력해야 마땅할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의 정부는 구성원의 삶에 가장 중요한 토대인 식량상황을 개선하는데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위에서 말했다시피 오히려 곡물자급률은 낮추고 채소나부랭이나 재배하고 수출길이나 운좋게 뚫어 팔자 고치라고 부추깁니다. 왜 그러냐구요? 그것이 우리의 법을 깔아뭉개고 상석에 올라앉은 한미FTA의 요구니까요.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상업적인 GMO재배는 아직 허용되지 않았지만 연구용 재배는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출처를 알 수 없는 GM농산물이 국내 경작지 곳곳에서 자라고 있다는 사실이 2010년에 밝혀졌습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어쩔 수 없지 않냐’는 논리가 고개를 들기 딱 좋은 상황이 조성되고 있는 것이지요.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에서 일찍이 겪었던 일입니다.
사실상 국내에서 상업적 GMO재배 허용이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신호들이 여기저기서 감지되고 있습니다. 정부는 2011년 경쟁력있는 GM종자를 개발해 반도체 같은 수출산업으로 키우겠다는 계획을 제시했고, 그 계획에 따라 농촌진흥청은 차세대바이오그린21사업단 산하에 GM작물실용화사업단을 설립했습니다. 농촌진흥청 산하 농업과학기술원에서는 오래 전부터 벼, 고추, 양배추, 담배, 토마토, 오이, 들깨, 8개 농산물의 유전자조작 실험을 수행해왔고, 벼 세 종과 고추 한 종, 배추 한 종이 안전성 평가단계에까지 이르렀다 합니다. 이 안전성 검증을 수행하기 위한 기관이 그 동안 정체를 알 수 없다는 말을 들어온 바이오안정성센터가 되겠군요. 결국 경쟁력있는 GM작물이란 선발업체들이 남겨놓은 채소종자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곡물도 모자라 채소까지 GMO를 먹이겠다는 건가요? 하지만 여기에 우리의 주곡인 벼가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 더욱 충격적입니다.
어쨌든 국민 대다수가 도무지 알 수 없는 가운데 모든 일이 이 사업에 특별한 이해관계를 갖고있는 전문가들에 의해 조용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바로 농림수산식품부가 추진하는 ‘골든시드프로젝트’입니다. GMO재배를 대규모로 현실화하는 사업이라는 우려를 받고 있지요. 일반 사람들이 알아먹을 수 없게 약어로 ‘GSP’라고 불립니다. 높으신 분들은 말도 미제를 좋아하지요..
이 사업은 2009년 대통령의 지시로 ‘생명공학육성법’과 ‘종자산업법’의 개정을 수반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지난 2월, 5개 분야 사업단장 선정과 함께 본격적으로 착수한 이 사업의 골자는 종자산업을 세계적 수준의 수출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것입니다. 글로벌 종자강국을 실현한다는 목표는 그럴 듯 하지만, 실제 핵심은 민간기업을 끌어들여 종자산업의 민영화를 추진한다는 것입니다. 즉 세계적 수준의 민간종자기업을 육성하기 위해 10년에 걸쳐 4,911억원의 예산을 투입한다는 말이지요. 그렇다면 이 녹색혁명 이후 최대라는 거창한 사업의 시혜를 받는 기업은 누구일까요? 사업보고서에는 신규 대기업으로 ‘삼성’과 ‘LG’의 이름이 또박또박 쓰여져 있습니다. 이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이 사업은 농촌진흥청과 산림청이 공동으로 추진하고, 전라북도가 ‘골든시드밸리’라는 민간육종연구단지조성 사업으로 파트너의 역할을 합니다. 내용을 살펴보면, 농촌진흥청과 산림청은 오랜 세월 축적해온 종자연구의 성과들을 제공하고, 전북은 김제 백산면에 연구단지를 조성하여 민간종자기업들에게 사업부지를 제공합니다. 농진청이 최근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는 ‘동북아종자허브선포식’이나 민간종자 무료 장기보존 사업으로 농가나 대학으로부터 종자수집에 열을 올리는 풍경이 이 사업추진의 일환으로 보이는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또한 전북발전연구원이 제출한 사업보고서를 보면 시드밸리 유치를 목표로 하는 선도기업군에 ‘몬산토코리아’, ‘신젠타종묘’, ‘사카타코리아’ 등 초국적 종자기업의 이름이 선명합니다. 자 이것들이 모두 어쨌다는 것일까요?
이 모든 것은 소수 초국적 기업에 의해 진행되어온 종자독점과 사유화의 한국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종자독점의 기관차에 우리도 올라타는 것이니 환영할 일일까요? 이 사업을 추진하는 주체들은 그렇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아닙니다. 이 사업은 밖에서 영업하는 종자기업들을 안에다 들여놓겠다는 것입니다. 저 놈이 도둑질로 부자가 되었으니 나도 도둑질로 새끼부자라도 되어야겠다는 말입니다. 물론 새끼부자가 되는 것도 소수 대기업에 국한된 것이지요.. 그것도 우리의 건강과 환경을 담보로 말입니다.
이 일의 의미는 자명합니다. 이미 수많은 문제점들이 노출된 GMO의 재배와 상품화는 그 모든 공포스런 문제들이 이 좁은 땅에서 압축적으로, 폭발적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국민의 세금으로 이루어져 공공의 영역으로 축적되고 공유되어온 종자연구의 성과들이 모조리 소수 민간기업의 사유로 전이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농민들이 가랑비에 옷 젖듯 소수 농기업에 종속되어온 상황이 심화되어 자주적인 소농은 사라지고 농업노동자로 전락되리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직 그나마 남아있는 토종종자가 사라지고 건강하고 깨끗한 먹을거리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모조리 사라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GMO를 단순히 건강에 대한 안전성의 관점에서만 바라보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GMO를 반대론자들이 주로 앞장에 세우는 이유는 안전하지 않다는 것이고, 또한 GMO 옹호론자들이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것도 안전하다는 것입니다. 현재 상황에서 GMO의 안전성 여부를 완벽하게 밝혀내는 것은 매우 지난한 일입니다. 반대론자들은 안전성이 증명되지 않았으니 먹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고, 찬성론자들은 위험성이 증명되지 않았으니 먹어도 된다고 주장합니다. 반대론자들 가운데 보다 타협적인 이들은 선택권 문제로 후퇴하여 표시제에만 관심을 가지기도 합니다. GMO는 위에서 밝힌 것처럼 보다 근원적인 이유로 철저히 거부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환경과 우리의 운명과 우리의 미래를 결정적으로 흔드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GMO는 인류가 한번도 먹어본 적이 없는 물질입니다. GMO를 탁월하게 정리해낸 마틴 티틀과 킴벌리 윌슨은 현재의 상황을, 신형 제트 여객기가 사람들을 가득 싣고 이륙하여 처음으로 여객기의 안전성 여부를 시험하는 상태로 비유합니다. 하지만 신형여객기의 승객들이 안전할 확률은 있지만 GMO가 안전할 확률은 0에 가깝지요.
무력한 관람자가 되지 맙시다. GMO를 먹지 않는 것부터 시작합시다. 사실상 GMO를 피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결코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관심을 가지고 의식적으로 행동하기만 한다면 얼마든지 해낼 수 있습니다. 도둑질로 황폐화되어가는 사회에서 스스로를 지키는 일은 또다른 도둑질로는 결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힘을 합해 도둑질을 없애는 일만이 우리 자신을 지키는 유일한 길입니다.
긴 이야기였지만 하고 싶은 말의 반도 못한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행동방침을 얘기해 볼게요.
1. 콩, 옥수수, 카놀라, 면화를 재료로 한 모든 가공식품을 먹지 맙시다.
2. 수입사료로 키워진 소, 돼지, 닭고기, 달걀, 우유, 유제품을 먹지 맙시다.
3. 책을 읽읍시다. 그들의 절친인 신문지나 미디어 매체는 결코 진실을 말해주지 않습니다.
제가 읽은 여러 책들 중에서 엑기스로 추려낸 3권의 책입니다.
먹지 마세요 GMO / 마틴 티틀, 킴벌리 윌슨 / 미지북스
자연과 지식의 약탈자들 / 반다나 시바 / 당대
맛있는 식품법 혁명 / 송기호 / 김영사
4. 개마고원 카페에서 유전자조작공부 메뉴를 참고합시다.
그 메뉴의 글을 보면 위에 쓴 이야기들의 구체적인 내용을 알 수 있습니다.
2013년 5월 개마고원에서
첫댓글 아기다리고기다리던편지! ㅎㅎ 일단 무조건 스크랩이요... 그리고나서 찬찬히 읽어보겠습니다. ^^
먹거리가 점점 심각해짐을 느낍니다.
자주 들리지 못했지만 늘 생각하고 있는 좋은 카페라고 여깁니다
등업좀 부탁드리구요, 펌해갑니다^^
우리 블로그로 퍼갑니다요~~
까페로 스크랩하고 다른분들과 글 공유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