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사과밭을 지날 때면
국어선생님 생각이 나네
나를 만나면 가만히
사과 볼의 소녀야, 하고 불러주던
열다섯 살 생각이 나네
몰랐었네 그 때는
8월의 과수원에는 하얀 봉지를 쓴
프란체스코 묵언의 수사들이 산다는 것
견디며, 죽은 듯이 견디며 건너야 하는
폭약의 여름이 있다는 것
사과 볼의 소녀야, 불러주던
국어선생님의 기억이 슬픔일 줄은
한 알 사과가 탐스레 익기까지
발치아래 수많은 낙과와 몰린 짐승처럼 깜깜하게 우는
태풍의 밤이 있을 줄은
이 오랜 행려의 뒤
행여 그 국어선생님
사과 볼의 소녀야, 나직하게 나를 불러준다면
내 마음 크렁크렁 사과빛 붉은
눈물이 고일까
첫댓글
이 시가 참으로 아름답고 곱습니다.
제가 가져가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