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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대신 담배 든 전쟁 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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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은 MBC 아나운서·‘예술가의 방’ 저자 artattack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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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뉴욕은 세계 양대 경매회사인 소더비와 크리스티의 이브닝 세일에 온통 관심이 쏠려 있었습니다. 이 지면에 소개해드린 타마라 드 렘피카의 ‘장밋빛 속옷 I’(La Chemise rose I, 1927)은 크리스티 경매에서 예상가를 2배 이상 뛰어넘는 약 320만 달러(약 39억8000만원)에 낙찰됐더군요.
두 경매를 통틀어 가장 높은 낙찰가를 기록한 작품은 파블로 피카소(1881~1973)의 ‘파이프를 든 총사’(Mousquetaire a la pipe, 1968)였습니다. 무려 1464만2500달러(약 182억원)였지요. 피카소는 80대 중반에 알렉산드르 뒤마의 ‘삼총사’를 다시 읽으며 이 그림의 모티프를 얻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칼과 총의 달인인 17세기 기사의 초상에 칼과 총이 빠져 있는 점이 재미있습니다. 피카소는 동료 예술가들이 제1, 2차 세계대전에 참가할 때 파리에 남아 있었고, 모국인 스페인에서 벌어진 시민전쟁에도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적지 않은 비난을 받았는데요, 칼과 총을 버린 기사는 전쟁 영웅에 대한 조롱을 담은 피카소의 독특한 반전 메시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이 그려진 해가 1968년이라는 것도 의미심장합니다. 프랑스 파리에서 시작된 ‘68혁명’의 열기가 아직 가라앉지 않았고, 베트남전이 신문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었으며, 옛 소련이 체코슬로바키아를 침공한 해이기 때문입니다.
또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작품에 그려진 파이프입니다. 피카소가 최고로 꼽은 예술가는 반 고흐였습니다. 귀를 자른 뒤 붕대를 친친 동여맨 고흐의 자화상을 기억하시는지요? 그때 고흐가 물고 있던 파이프는 피카소의 걸작 중 하나인 ‘파이프를 든 소년’과 이 작품을 탄생시킨 배경이 됩니다.
아울러 이 작품의 탄생 시점이 피카소가 전립샘 수술을 받고 난 뒤였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그는 파이프 담배의 크기를 과장해서 그렸는데, 여기에는 성적 은유가 담겨 있습니다. 평생 화려한 여성편력을 자랑하던 피카소지만, 80대 중반을 넘기면서 스스로의 성적 능력이 시들어감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죠. 그는 담배를 사랑과 비교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이는 담배를 포기하게 만든다. 하지만 담배 피우고 싶은 욕망은 여전히 남아 있다. 마치 사랑이 그러하듯.”
이 작품이 들려주는 가장 놀라운 이야기는 피카소의 ‘자유’입니다. 그는 작품을 시작할 때 가진 아이디어에 스스로를 고정하지 않고 붓의 움직임을 따라가며 아이디어를 끊임없이 변화시켰다고 하는데요, 그래서인지 이 작품에서는 어느 시기의 그림보다 속도감 있고 자유로운 붓터치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파이프를 든 총사’는 한 스타일로 고정되기 쉬운 말년에 오히려 새로운 실험을 아끼지 않은 피카소의 ‘삼총사’다운 면모를 보여주는 자화상이기도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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