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선현(先賢)들 중에는 독서광들이 참 많았다. 독서와 관련된 선현들의 ‘전설’은 우리 독서인들에게 귀감(龜鑑)이 되어주고 있다. 대표적인 독서광인 퇴계 이황은 책을 한 번 읽기 시작하면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다시 읽어서 그 책 속에 담겨 있는 의미를 완전히 터득하기 전에는 그 책을 결코 내놓지 않는 정독(精讀)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퇴계가 서울에서 유학 할 때 주자전서(朱子全書)를 처음으로 읽게 됐는데, 하루에 식사할 때 이외에는 일체 방을 나오지 않고 그 책을 되풀이하여 읽었다고 한다. 그야말로 밤낮없이 책읽기에 몰두한 것이다. 더욱이 그 해 여름은 몹시 더워서 보통 사람들은 독서는커녕 시원한 물가를 찾거나 나무그늘을 찾아다니기 바쁜 상황이었지만 퇴계는 방안에 갇혀 책과 씨름을 했던 것이다. 그러자 한 친구가 걱정이 되어 퇴계를 찾아 와서 “이 사람아! 이 무더위에 방안에 갇혀 책만 읽다가는 몸이 성치 않을테니 책은 날이 좀 서늘해지면 하고 나하고 어디 계곡에라도 놀러갔다 오세!” 하고 한 마디 던졌다.
퇴계는 껄껄 웃으며 “책을 읽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깨달음이 느껴져서 저절로 시원해진다네. 책속에 담겨있는 진리가 하도 좋아서 읽으면 읽을수록 정신이 상쾌해 지고 마음에 기쁨이 솟아오른다네. 자네도 한번 읽어보게나”하고 응수했다고 한다.
우리는 여기에서 위편삼절(韋編三絶)을 떠올리게 된다. 위편(韋編)은 가죽으로 맨 책끈을 말하는데, 그 가죽끈이 세 번이나 닳아 끊어졌다는 뜻이다. 이것은 《사기(史記)》의 <공자세가(孔子世家)>편에 “孔子晩而喜易 讀易…韋編三絶(공자가 늦게 역을 좋아하여 역을 읽어 가죽끈이 세 번 끊어졌다).”이라고 한 데서 비롯된 말로서 공자 같은 성인도 학문 연구를 위해서는 피나는 노력을 한다는 비유이다. 또한 후인들의 학문에 대한 열의와 노력을 나타내는 말로도 인용된다. 책을 얼마나 반복해서 읽었으면 가죽끈이 다 끊어진 것일까? 더구나 퇴계는 아무리 피곤해도 책상 앞에 정자세로 앉아 책을 읽었다고 한다. 우리가 독서를 하다보면 누워서 읽거나 엎드려서 읽는 등 자세가 흐트러지는데, 선생은 70세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꼿꼿한 자세를 흩트리지 않았다고 한다.
위편삼절(韋編三絶)을 떠올리게 하는 선현들의 독서법
역시 독서광으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세종대왕 역시 한 권의 책을 여러 번에 걸쳐 읽은 것으로 유명하다. 이른바 백번 읽고 백번 익힌다는 ‘백독백습(百讀百習)’이다. 어떤 책이든지 한번 읽어서는 그 책에 담겨있는 내용을 다 파악할 수는 없다. 여러 번 반복해서 읽어야 비로소 저자의 메시지를 파악할 수 있다. 물론 읽은 책을 또 읽으려면 싫증이 날 수도 있다. 그러나 책 속에 담긴 뜻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복해서 읽는 것이 필요하다. 오랫동안 기억되는 ‘각인효과’ 를 위해서도 반복해서 읽는 것은 필요하다. 물론 소설처럼 한 번 읽어도 무방한 경우도 많지만 대부분의 책은 반복해서 읽어야 소화를 시킬 수 있다.
다산 정약용은 책을 읽기 전에 그 책을 읽는 목적과 이유를 정했다. 목적의식이 뚜렷했던 것이다. 그리고 막상 책을 읽기 시작하면 핵심내용을 간추려 메모를 하고, 앞뒤 문맥과 배경을 샅샅이 살펴보며 분석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책읽기가 끝나면 자기가 그 책을 읽기 전에 정했던 ‘독서의 목적’에 맞춰서 전체적인 내용을 되짚어 보면서 다시 천착(穿鑿)의 과정을 밟았다고 한다.
마쓰오카 세이고의 『창조적 책읽기, 다독술이 답이다』라는 책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독서는 누군가가 쓴 문장을 읽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극히 당연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감정이나 의식을 '제로'에 두고 책을 읽을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절대 불가능한 일입니다. 독서란 누구나가 체험하고 있는 것처럼 읽고 있는 도중에도 여러 가지 것들을 느끼거나 생각하게 되는 행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때로는 초조해 하기도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기도 합니다. 이 말에 담긴 속뜻은 독서는 저자가 쓴 것을 이해하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저자와 독자가 만나 작용하는 일종의 협업이라는 것입니다. 편집 공학 용어로 말하자면, 독서는 '자기 편집'인 동시에 '상호 편집'입니다.❞
그의 말처럼 독서는 저자와 독자가 만나는 협업(協業)이다. 그러므로 저자가 무슨 메시지를 던지려고 하는 것인지를 이해하기 위해 긴밀하게 저자와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독서는 '자기 편집'인 동시에 '상호 편집'인 것이다. 다산선생이 책을 그토록 꼼꼼하게읽었던 것은 바로 '자기 편집'인 동시에 '상호 편집'인 독서의 의미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독서는 '자기 편집'인 동시에 '상호 편집'이다
여기서 우리는 수불석권(手不釋卷)이란 사자성어를 떠올리게 된다. 수불석권은 항상 손에 책을 들고 글을 읽으면서 부지런히 공부하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이것은《삼국지(三國志)》 의 '여몽전(呂蒙傳)'에 나오는 말로, 원래는 어려운 환경에서도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항상 책을 가까이 두는 것을 가리켰다.
중국에서 후한(後漢)이 멸망한 뒤 위(魏)·오(吳)·촉한(蜀漢) 세 나라가 정립한 삼국시대에 오나라의 초대 황제인 손권(孫權)의 장수 여몽(呂蒙)은 전쟁에서 세운 공로로 장군이 되었다. 손권은 학식이 부족한 여몽에게 공부를 하라고 권하였다. 독서할 겨를이 없다는 여몽에게 손권은 자신이 젊었을 때 글을 읽었던 경험과 역사와 병법에 관한 책을 계속 읽고 있다고 하면서 "후한의 황제 광무제(光武帝)는 변방일로 바쁜 가운데서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으며[手不釋卷], 위나라의 조조(曹操)는 늙어서도 배우기를 좋아하였다"라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래서 여몽은 싸움터에서도 학문에 정진하였다. 그 뒤 손권의 부하 노숙(魯肅)이 옛친구인 여몽을 찾아가 대화를 나누다가 박식해진 여몽을 보고 놀랐다. 노숙이 여몽에게 언제 그만큼 많은 공부를 했는지 묻자, 여몽은 "선비가 만나서 헤어졌다가 사흘이 지난 뒤 다시 만날 때는 눈을 비비고 다시 볼 정도로 달라져야만 한다[刮目相對]"라고 말하였다. 여기에서 ‘괄목상대’라는 사자성어도 나온 것이다.
독서의 계절, 가을이다. 우리 모두 ‘수불석권’의 자세로 이 가을에 몇 권의 책이라도 읽어서 영혼을 기름지게 만들어야 하겠다.
첫댓글 독서의 계절, 가을이 왔습니다. 우리 모두 책을 읽읍시다!
정말 책을 열심히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새삼스럽게 드네요,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다---정말 마음에 새겨야 할 말이지요,
독서가 얼마나 중요한가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한달에 20권의 책을 읽는다는 사장님도 있더군요. 정말 존경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