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子夜)> (2): 1930년대 사회 성격
<한밤중(子夜)> (3): 공채거래소의 자본가
개항 이후 중국의 새로운 중심으로 부상한 상하이의 주인공은 더 이상 사대부와 지주가 아니었다. 소설에서 우쑨푸의 부친 우나으리가 자본주의 물질문명에 대해 아무런 방비도 없이 급습을 받아 풍화되었다면, 강남(江南)에서 피난 온 지주 펑윈칭(馮雲卿)은 자본주의의 그물망에 뛰어들었다가 서서히 침몰되는 형상을 보여주고 있다.
‘동방의 뉴욕’으로 표기되는 이민과 금융의 도시, 그리고 ‘동방의 파리’라는 기표가 전달하는 유행과 대중문화의 중심, 조계로 대표되는 상하이 도시문화의 특징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그것은 바로 서양 자본주의 외래문화를 수용한 상업문화라 할 수 있다. 상업문화가 주류였던 상하이에서 새로운 주체는 단연 상인이었다. 이들은 19세기 시행착오를 거쳐 20세기 들어 어엿한 자본가로 성장했다. 이들은 공장을 운영하는 산업자본가로 발전했고 나아가 공채에 투자하는 금융자본가로도 장성했다. 이제 상업문화가 주도하는 상하이에서 전통 신사(紳士)와 지주는 생존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식민지 반봉건 중국의 자본주의를 대표하는 상하이에서 경제의 심장은 공채거래소였다. 1930년대 상하이 공채거래소에서 산업자본가와 금융자본가는 치열한 헤게모니 쟁탈전을 벌였다. 『한밤중』 11장에는 공채거래소의 풍경이 아래와 같이 묘사되어 있다.
증권거래소는 청과물시장보다도 훨씬 떠들썩했다. 꽉 들어찬 사람들로 거래소 안은 질식할 것 같은 땀 냄새로 가득 찼다. … 테이블을 두드리는 사람, 전화통을 붙들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이 벌겋게 열을 올리고 있었다. 그들은 손을 쳐들고 입을 크게 벌리며 외쳐대고 있었다. 칠팔십 여 명 되는 중개업자, 그들의 보조원들 백여 명, 그리고 무수한 투기꾼들이 숫자를 부르는 왁자지껄하는 소리가 마치 천둥치는 소리 같아서 어느 누구의 귀에도 확실히 들리질 않았다.
요즘이야 인터넷상에서 온라인으로 거래하지만 당시 오프라인 거래는 모두 거래소에서 이루어졌다. 그리고 주식시장을 재현한 대부분 영화에서 표상된 바와 같이 거래소는 전쟁터를 방불케 하고 있다. 투자자/투기꾼들뿐만 아니라 중개인과 보조원들로 북새통을 이루어 정보를 수집하고 일분일초를 다투어 사고파는 거래소의 풍경은 전쟁터에 다름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자금은 ‘총알’로 비유되었고 총알이 떨어지면 전장에서 물러나야 했던 것이다.
텍스트에서는 ‘후방병원’처럼 ‘공채전선에서 패배하여 후퇴한 사람들이 한숨을 내쉬며 모여 앉은’ ‘기다란 목제의자’의 풍경을 아래와 같이 묘사하고 있다.
벌건 얼굴에 핏발 선 눈을 부릅뜬 채로 쑥덕거리며 서로 얘기하고 있는 그들의 관자놀이에는 지렁이 같은 푸른 핏줄이 튀어나와 있었다. 그 가운데 혼자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이 없는 한 사람은 실패한 사람임에 분명했다. 그의 얼빠진 듯한 눈앞에 땅 팔고 빚에 쫓겨 도망가는 비참한 환영이 어른거리고 있는 듯했다.
『한밤중』에서는 바로 거래소를 배경으로 우쑨푸와 자오보타오(趙伯韜)의 운명을 건 한판 승부가 벌어진다. 먼저 우쑨푸를 보자. 그는 한밤중에 출현하는 수많은 인물들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 도입부에서 묘사된 그의 외모는 강인한 인상을 주고 있다. 쑨지런(孫吉人)과 왕허푸(王和甫) 등의 대자본가들로부터 합작을 제의 받아 이중(益中)신탁회사를 설립하여 그 결정권을 행사할 뿐만 아니라, 주인추(朱吟秋)나 저우중웨이(周仲偉) 등의 중소자본가로부터는 구원의 요청을 받을 만큼 재계에서 능력과 신망이 높았다. 이처럼 그의 “재력과 수완, 매력에 대해 그들은 오래전부터 앙모해왔었다.” 심지어 그의 주요한 경쟁상대인 자오보타오로부터도 끊임없이 합작 제안과 회유를 받기도 한다.
그는 민족공업의 발전에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나라를 발전시키겠다는 이른바 ‘산업구국’의 포부를 가지고 있었고, 이를 위해서는 가정생활조차도 사업에 종속시키는 인물이었다. 그의 경영관 역시 독특했다. 그는 “견식이나 수단, 담력이 없는 사람들이 그저 무사안일하게 기업을 이끌어 가는 것을 매우 증오했다. 이런 기업가들에 대해 우쑨푸는 늘 가차 없이 욕을 퍼부었고, 그런 기업들을 자신의 ‘철로 된 손아귀’에 넣어 버렸다.” 그러므로 대자본을 소유하고 있지만, 판단력과 담력이 뒤지는 두주자이(杜竹齋)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 토지와 금괴와 공채를 전문으로 하는 일에 손을 대는 것은 반대했다.
민족 자본가이면서 산업자본가적 철학이 철저한 그에게 자오보타오처럼 외국과 은밀하게 손잡고 국내 시장을 조종하려는 행위는 반민족적, 반국가적인 매국행위로 보였다. 한밤중은 강인하고 능력 있으며 사업에 헌신적인 데다가 산업입국의 고귀한 포부까지 겸비한 산업자본가 우쑨푸가 매판 금융자본가 자오보타오와 벌이는 한판 대결을 이야기의 주선으로 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