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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디모데전서5장1~16절
제목 : 다양한 성도를 대하는 태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귀한 목회적 지혜를 전수합니다.
군림하는 지도자가 아니라,
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을 가족처럼 대하는 목회자가 될 것을 권고합니다.
어리고 내성적인 사역자 디모데에게,
바울은 다양한 연령과 성별의 성도들을 대면하는 지혜를 가르쳐줍니다.
연로한 성도들은 부모님 대하듯 존경으로,
동년배라면 형제 대하듯 평등하게,
이성이라면 자매 대하듯 순결하게 권면해야 합니다(1,2절).
궁핍하고 경건한 ‘참 과부’에게는(5절),
교회 차원의 존대와 재정적인 도움을 주어야 합니다(3,7절).
하지만 가족이 있는 과부라면 교회가 도와야 하는 ‘참 과부’라 할 수 없습니다.
가족들이 먼저 어머니를 책임져 마땅히 신앙과 효의 의무를 다해야하기 때문입니다(4,8,16절).
교회의 사역을 담당하는 과부를 임명할 때는 연륜과 결혼생할의 신실함과 선행의 증거를 잘 심사해야 합니다(9,10절)
섣불리 사역자로 헌신했다가 재혼을 하거나 게으름을 피워, 교회의 사역을 어려움에 빠뜨릴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11~15절)
1. 다양한 성도들에 대한 목회자의 태도(1~2절)
“[1] 늙은이를 꾸짖지 말고 권하되 아버지에게 하듯 하며 젊은이에게는 형제에게 하듯 하고[2] 늙은 여자에게는 어머니에게 하듯 하며 젊은 여자에게는 온전히 깨끗함으로 자매에게 하듯 하라”
1) 늙은이를 꾸짖지 말고 권하되 아버지에게 하듯 하라.
'늙은이'('프레스뷔테로')는 다른 곳에서 교회의 직책을 나타내는 '장로'(elder, presbyter)로 사용되었으나(17, 19절 ; 딛 1:5) 여기서는 문자적인 의미가 그대로 적용되어 '노인'(older man, NIV)을 뜻합니다.
또한 '꾸짖지'는 본래 '주먹으로 치다'의 뜻인데 여기서는 '말로써 때리다'는 뜻으로 공격적인 심한 질책을 나타냅니다.
디모데는 비록 연소하였으나(4:12), 한 교회의 목회자로서 때에 따라서는 자신보다 훨씬 나이 많은 연장자라 할지라도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고쳐주어야 했습니다.
그럴 경우 바울은 온유한 태도로 권할 것을 충고하였습니다.
'권하되'는 '올 것을 요구하다', '충고하다', '위로하다'의 뜻으로 자신에게 오게 하여 충고하며 위로하는 따뜻한 권면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권면은 나이나 성별에 관계없이 디모데가 그의 교인들을 향해 지녀야 할 태도로서 2절까지 이어집니다.
아비에게 하듯 하며 - 연장자를 권면할 때에는 모든 예의와 겸손함을 갖추고 신중히 해야 함을 말합니다.
인간적인 예의범절은 종교나 시대, 공간을 막론하고 지켜져야 할 영속적인 규범이며 특별히 노인을 존대하는 것은 부모에 대한 효와 마찬가지로 기독교의 기본적인 윤리입니다(레 19:32).
2) 젊은이를 형제에게 하듯하라.
'형제'라는 말 속에는 기독교의 '평등 사상'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또한 교회 내에서 누구를 불문하고 '형제'라고 부르는 것은 하나님을 영적 아버지로 모시고 사는 교회의 구성 상태를 가장 적합하게 나타내는 말입니다(고전 12:26, 27).
모든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피로 연결된 한 형제이며 따라서 서로 간에 분열과 반목을 피하고 선을 이뤄야 합니다.
3) 늙은 여자에게는 어머니 대하듯 하라.
이것은 1절의 '늙은이'와 서로 짝을 이루는 말로서 그 말이 '장로'를 뜻하는 말이 아니라 단지 '노인'을 뜻하는 것임을 분명히 해줍니다.
4) 젊은 여자를 일절 깨끗함으로 자매에게 하듯 하라.
'깨끗함'은 '성적 순결'을 뜻하는 말로 바울이 디모데가 젊은 여자를 대할 때 느낄 수 있는 성적 욕망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성적인 순결뿐만 아니라 마음과 육체를 통틀어 아무 흠이 없는 상태를 나타내는 포괄적인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보다 타당합니다.
2. 참 과부의 자격과 그들을 향한 태도(3~5,7~10절)
1) 참 과부와 그렇지 않은 과부(3~4절)
(1) 참 과부인 과부를 존대하라(3절)
'참과부'에서 '참'에 해당하는 헬라어 '온토스'는 '실제로', '진실로'라는 뜻으로 '참과부'란 남편이 없을 뿐만 아니라 아무도 돌보아줄 사람이 없는 과부를 말합니다.
당시에는 남편과 사별한 여인들과 더불어, 일부다처제의 성행으로 인해 남편에게 버려져 혼자된 여인들도 많았으며 당시 교회는 이들을 돕는데 적극 참여하였습니다(행 6:1).
성경에서는 이곳뿐 아니라 과부를 보살펴 줄 것을 여러 곳에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구약성경에서는 과부를 억울하게 하지 말라고 명하고 있으며(신10:18; 24:17; 시68:5). 특별히 하나님은 그들의 보호자가 되신다고 하였습니다(사 1:17).
신약성경에서도 과부에 대한 관심은 계속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 대한 사랑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막12:42,43; 눅7:11-17;18:3-5).
더욱이 초대 교회 안에 집사 제도가 생기게 된 큰 원인으로서 과부를 보살피는 일을 들 수 있습니다(행6:1-6).
그런데 때로는 과부를 돕는 일로 인해 많은 문제가 발생하여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으므로(행6:1) 교회는 진정으로 도움이 필요한 과부에 대한 규정을 정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존대하라는 '존경하다'의 뜻으로 본 구절에서 과부들의 당연한 권리로서 그들이 받아야 할 연금(pension)을 바울이 언급한 것이라고 봅니다.
따라서 본 구절은 과부들에게 예의를 갖추어 존경하라는 의미와 아울러 그들에게 필요한 경제적 도움을 주라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2)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거든 배우게 하라(4절)
“[4] 만일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거든 그들로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 이것이 하나님 앞에 받으실 만한 것이니라”
본절의 '과부'는 '참과부'가 아닌 자들로서 자손들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자들입니다.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 - 이것은 집안에서 효를 행하는 일이 무엇보다도 우선되야 할 중요한 일임을 나타냅니다.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 -'보답하기를'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모이바스 아포디도나이'의 문자적인 뜻은 '되돌려 줄 것을 주다'입니다.
이러한 의미에 따라 '그들이 자신들의 부모로부터 받은 것을 보상하라'는 의미로 해석합니다.
특히 '되돌려 주다'는 뜻을 지닌 헬라어 '아포디도나이'는 현재 능동 부정사로서 되돌려 주는 행위가 그치지 않고 계속되어야 함을 나타냅니다.
2) 참 과부는 하나님께 헌신된 자(5,7절)
(1) 참 과부는 주야로 항상 간구와 기도를 합니다(5절)
“[5] 참 과부로서 외로운 자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 주야로 항상 간구와 기도를 하거니와”
참과부로서 외로운 자 - '외로운'은 '홀로 남겨진'의 뜻을 갖습니다.
이것은 '참과부'의 특성으로서 돌보아줄 자녀나 친척도 없음을 의미합니다.
혹자는 자신이 돌보아야 할 어린 자녀를 둔 과부도 여기에 포함시킵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 주야로 항상 간구와 기도를 하거니와 - 바울은 참과부의 또 다른 자격을 제시합니다.
그것은 육신적으로 자신을 돌보아 줄 사람이 없을뿐만 아니라 영적으로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 주야로 간구와 기도를 하는 자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참 과부의 실례는 눅2:36, 37에 성전에서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한 과부 안나를 들수 있습니다.
(2) 책망할 것이 없습니다(7절).
“[7] 네가 또한 이것을 명하여 그들로 책망 받을 것이 없게 하라”
네가 또한 이것을 명하여 - '또한'은 본절이 6절과 연결됨을 나타냅니다. 그러나 본절의 '이것을','이것들'이 6절에만 국한된 것으로 볼 수 없으며 3-4절의 내용 모두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즉 참과부를 존경하며 물질적으로 도와줄 것과(3절),
자녀들이나 손자들은 과부인 어머니나 할머니를 잘 봉양(奉養)할 것과(4절) 연고자가 아무도 없는 참과부로서 경건한 생활을 하는 자들과 그렇지 못한 자들을 구별할 것(5, 6절) 등을 포함합니다.
3) 과부로 명부에 올릴 수 있는 사람(9~10절)
(1) 과부로 명부에 올릴 자(9절)
“[9] 과부로 명부에 올릴 자는 나이가 육십이 덜 되지 아니하고 한 남편의 아내였던 자로서”
과부로 명부에 올릴 자 - '명부에 올릴'로 번역된 헬라어 '카탈레게스도'는 신약성경에서 이곳에만 나오는 말로서 당시의 과부들에 대한 물질적 원조가 제도적으로 확립되었음을 나타냅니다.
명부에 이름이 올라 제도적으로 생계를 보장받은 과부들은 특별한 자격을 구비(具備)한 자들이었다는 것이 학자들의 지배적인 견해입니다.
또한 혹자는 당시 과부 제도가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하며, 이성간의 접촉이 엄격히 제한되었던 상황 속에서 교회에서 남자들이 하기 곤란한 일들을 이들 과부들이 담당하였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① 나이 육십이 덜 되지 아니하고 – 나이를 육십으로 제한한 이유에 대하여 혹자는 재혼할 의도나 재혼할 가능성이 없는 나이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또한 노령으로 인해 남의 도움 없이는 살아가기가 불가능하다는 측면에서 이러한 규정을 두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② 한 남편의 아내이었던 자 – 본문은 결혼 생활 중에 남편 외에 다른 남자와 관계가 없던 자로 결혼 생활에 충실했던 자를 뜻합니다.
(2) 선한 행실의 증거가 있습니다(10절)
“[10] 선한 행실의 증거가 있어 혹은 자녀를 양육하며 혹은 나그네를 대접하며 혹은 성도들의 발을 씻으며 혹은 환난 당한 자들을 구제하며 혹은 모든 선한 일을 행한 자라야 할 것이요”
선한 행실의 증거가 있어 - 과부의 명단에 올려 구제해야 할 참과부의 조건으로는 구체적 선행이 제시된다.
① 자녀를 양육하며 – 본절은 문자적 의미보다는 어머니다운 품성을 지녔는가 하는 점을 강조한다.
혹자는 바울이 참다운 모성애를 실천하는 것은 여자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일 가운데 하나라고 간주하였기 때문에 그가 이런 말을 하였다고 한다.
② 나그네를 대접하며 – 초대 교회에서는 나그네를 접대하는 일이 하나의 공식적인 일이었으므로 이런 일을 잘 감당할 수 있는 자들이 필요하였다.
나그네를 대접한 과부의 실례로서 사르밧의 과부(왕상 17:9), 수넴 여자(왕하 4:8-11), 루디아(행 16:40) 등을 들 수 있습니다.
③ 성도들의 발을 씻기며 – 이것은 종이나 하는 천한 일로서 여기서는 이웃과 나그네를 위한 겸손하고 헌신적인 봉사를 의미하는 비유적인 표현이다.
이러한 정신은 그리스도께서 친히 모범을 통해 가르치신 바이다(요 13:14).
*요13:14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④ 환난당한 자들을 구제하며 - '환난'은 초대 교회 성도들이 신앙으로 인해 받은 박해를 가리킨다(살전 1:6 ; 살후 1:4).
*살전1:6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모든 사람의 본이 되어야 합니다.
*살후1:4 “그러므로 너희가 견디고 있는 모든 박해와 환난 중에서 너희 인내와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우리가 친히 자랑하노라”
⑤ 모든 선한 일을 좇은 자라야 할 것이요 - '좇은'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페콜루데센'은 '추구하다', '헌신하다'의 뜻입니다.
결국 '선한 일을 좇는다'는 것은 단순히 선한 양심과 신앙을 갖는다기보다는 실제 생활에서 선행을 추구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3. 부도덕한 과부(6,13절)
1) 향락을 좋아합니다(6절)
“[6]향락을 좋아하는 자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
'향락을 좋아하는'은 '방탕하게 살다'의 뜻입니다.
당시에는 사회 전체가 물질적으로 풍요롭지 못하였으며 고용의 기회도 거의 없었던 때이므로 많은 과부들은 매춘 등의 부도덕한 방법으로 생계를 유지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혹자는 바울이 '스파탈로사'를 사용한 것은 당시 생활이 궁핍했던 과부들이 매춘의 유혹을 받고 있었음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살았으나 죽었느니라 - 바울의 역설적인 표현으로서 육체적으로 살아 있으나 영적으로는 죽은 것을 뜻합니다.
2) 게으를 뿐 아니라 쓸데없는 말을 합니다(13절)
“[13] 또 그들은 게으름을 익혀 집집으로 돌아 다니고 게으를 뿐 아니라 쓸데없는 말을 하며 일을 만들며 마땅히 아니할 말을 하나니”
그들은 게으름을 익혀 - '게으름을 익혀'('아르가이 만다누신')을 혹자는
'게으름을 배워 게으름뱅이들이 되었다'로 번역하여 젊은 과부들의 게으름은 무의식적으로 몸에 배인 습관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배운 것임을 나타냅니다.
집집에 돌아다니고 - 이것은
명부에 올라 있는 과부들의 임무 중에 교인들의 집을 방문하여 신앙적인 상담과 조언을 하는 일이 있었는데 그것을 악용한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쓸데없는 말을 하며 일을 만들며 마땅히 아니할 말을 하나니.
'쓸데없는 말을 경박하게 늘어 놓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일을 만들며'('페리에르고이')는 '자신과 관계없는 일들에 간섭하기 좋아한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마땅히 아니할 말'이란 교회에 덕이 안 되는 해로운 말로 해석하는 것이 무난합니다.
바울은 젊은 과부들이 모두 게으름을 부렸다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그들 중의 일부는 신앙생활과 자신의 일상생활을 게을리 하기 때문에 마음이 항상 긴장되어있지 못하고 쉽게 남의 말이나 교회 전체의 문란을 초래하는 악담을 하고 비밀이 지켜져야 하는 사적인 이야기들을 집집마다 하여 교회 내에 문제를 야기 시켰을 것을 염두에 두고 한 말입니다.
3) 젊은 과부(11~12절).
“[11] 젊은 과부는 올리지 말지니 이는 정욕으로 그리스도를 배반할 때에 시집 가고자 함이니[12] 처음 믿음을 저버렸으므로 정죄를 받느니라”
젊은 과부는 거절하라 - '젊은 과부'는 60세 이하의 과부들을 지칭합니다. 바울이 이들을 명부에 올리지 말라고 한 이유는 일단 명부에 이름이 오른 과부는 그에게 맡겨진 임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온전한 헌신이 요구되었는데 젊은 과부는 다시 재혼할 가능성이 컸기 때문입니다.
이는 정욕으로 그리스도를 배반할 때에 시집가고자 함이니-'정욕으로'의 헬라어는 '성적인 욕망에 사로잡히다'라는 의미를 갖습니다.
젊은 과부가 남편을 원하여 재혼하는 그 자체는 죄가 아니나
자신에게 맡겨진 직분을 외면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배반하는 것'이 됩니다.
처음 믿음을 저버렸으므로 - 과부의 명부에 이름이 오르기 위하여 그들은 다시 재혼하지 않고 평생 동안 그리스도께 헌신할 것을 서약하였을 것입니다.
혹자에 의하면 후대에 이런 사람들을 '그리스도의 배우자'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따라서 본절의 '처음 믿음'이란 '젊은 과부들의 처음 서약'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것이 학자들의 일반적인 견해입니다.
'저버렸으므로'('에데테산')의 문자적인 뜻은 계약이나 법률 따위를 '폐기하다', '위반하다', '따로 떼어두다' 등입니다.
결국 이 말은 젊은 과부가 그리스도께 헌신하겠다는 서약을 파기한다는 의미입니다.
심판을 받느니라 - '심판'은 KJV에서 '저주'(damnation)로 번역하고 있으나 이것은 다소 과격한 표현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옳은 것과 그른 것을 가리는 '심판'으로 해석하여 그들의 잘못을 책망 받는다는 의미로 보아야 합니다.
4. 우리에게 주는 권면
1) 가족을 돌보지 않으면 불신자 보다 더 악합니다(8절)
“[8]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1)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자기 친족'은 구체적인 범주를 정하기는 어려우나 '자기 가족'은 '직계 가족'을 의미합니다.
'돌아보지'('프로노에이')는 문자적으로 '미리 생각하다', '준비하다', '공급하다'의 뜻을 갖습니다.
(2)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혹자는 기독교의 사랑은 모든 사람들을 향한 것인데 자기의 직계가족조차 돌보지 아니하는 자는 불신자보다 못한 자로서 전혀 복음에 참여할 수 없다는 뜻으로 본 구절을 해석합니다.
또한 여기에서의 '믿음'은 개인의 주관적 믿음이 아니라
교회에서 공식적으로 고백되는 신앙 고백을 일컫는 것으로 해석하여,
'믿음을 배반한 것'을 '교회의 가르침을 저버린 것'으로 보기도 합니다.
결론적으로 본 구절은 일반 성도 전체를 향한 교훈으로 볼 수 있으며,
그들의 신앙 고백이 어떻든 간에 가족을 돌보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섬기고 교회에 봉사할 만한 기본적인 자세가 되어 있지 않을뿐더러,
인간의 원초적인 책무를 무시하는 자이므로 정죄 받아 마땅하다는 의미입니다.
2) 대적에게 비방할 기회를 조금도 주지 말라(14,15절)
“[14] 그러므로 젊은이는 시집 가서 아이를 낳고 집을 다스리고 대적에게 비방할 기회를 조금도 주지 말기를 원하노라”
그러므로 젊은이는 - 본절이 접속사 '그러므로'로 이어지는 것으로 보아서 바울이 지금까지 해왔던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음을 알 수 있으며 또한 11절의 '젊은 과부'가 언급된 것으로 보아 여기서의 '젊은이'는 '젊은 과부'를 말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시집가서 - 바울은 여기서 젊은 과부들에게 재혼할 것을 권면하였는데 이것은 고전7:25-29의 내용에서 결혼을 금하지는 않았으나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고전7:26)고 한 말과 사뭇 다릅니다.
이에 대해 (1)혹자는 바울이 고린도에 편지할 때와는 달리 지금 본 서신을 쓸 때에는 그의 인생의 말년으로 '임박한 파루시아'에 대한 신념을 포기하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2)이와는 다른 견해로 본절의 '젊은이'는 이미 자제심을 잃은 자이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두 견해 중(1)의 견해가 보다 타당합니다.
왜냐하면 후대 교회, 즉 2, 3세기의 교회에서는 금욕주의의 결과로 독신으로 지내는 것을 가치있게 생각하였으나 바울은 금욕주의에 반대(4:3)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를 낳고 집을 다스리고 - 하나님께서 여자들에게 허락하신 특권이자 사명이라 할 수 있는 출산하는 일과 집안을 관할하는 일을 바울은 적극 추천하였습니다.
혹자는 '집을 다스리고'라는 말에서 아내에 대한 인식과 그들의 영향력이 높이 평가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대적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안티케이메노'는 '반대자', '대항자'의 뜻으로서 일반적으로 '기독교를 적대시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대적' 앞에 관사 '토'가 붙었다고 하여 이 단어가 '마귀'를 나타낸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후자의 경우도 마귀가 '사람'을 통해 역사한다는 해설을 덧붙여 말함으로써 두 견해가 궁극적으로는 동일한 견해임을 알 수 있습니다.
비방할 기회를 조금도 주지 말기를 원하노라 - '비방할'에 해당하는 헬라어 '로이도리아스')는 '욕하다', '매도하다', '조롱하다'의 강한 뜻을 갖는 말로서 젊은 과부들의 그릇된 행동으로 인해 교회가 받을 수 있는 비난에 대한 바울의 우려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또한 '기회'('아포르멘')은 '진격 기지'를 뜻하는 군사 용어로 바울은 이러한 표현을 즐겨 사용하였습니다(롬7:8,11; 고후 5:12; 11:12; 갈5:13).
그는 늘 교회가 외부 세계로부터 악평의 대상이 되지 말 것을 경고해 왔는데 그당시 교회가 불신자들에게 비난의 대상이 되지 아니하고 참된 진리를 소유하고 있다는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무기는 성도들의 사랑과 변화된 생활이었습니다(약2:7,8; 벧전2:12; 4:4,14,15).
“[15] 이미 사탄에게 돌아간 자들도 있도다” '사단'에 대하여 글자 그대로 '대적자'의 의미로 받아들이거나, 혹은 11절의 '그리스도'와 정반대되는 개념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혹자는 보다 구체적으로 복음을 통해 얻은 자유를 남용하여 젊은 과부들이 천박하고 부도덕한 행위에 빠지는 것을 뜻한다고 봅니다.
따라서 본 구절은 젊은 과부 중에 일부는 이미 '처음 믿음'(12절)을 저버리고 여러 부도덕한 행위에 빠져 교회에 물의를 일으켰음을 나타내며, 아울러 믿음의 생활을 떠난 자는 반드시 사단의 노예로 전락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3) 참 과부를 도와 주어라(16절)
“[16] 만일 믿는 여자에게 과부 친척이 있거든 자기가 도와 주고 교회가 짐지지 않게 하라 이는 참 과부를 도와 주게 하려 함이라”
'믿는 여자'가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가에 대해 논란이 많습니다.
왜냐하면 앞의 8절에서 '누구든지...돌보지 아니하면'이라고 기록되어 있는 반면에 본절에서는 '믿는 여자'로 국한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믿는 여자'가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지에 대해 여러 견해가 있으나 포괄적인 의미로 해석하여 친척 중에 과부가 있는 자로서 친척 과부를 돌보아 줄수 있는 능력을 갖춘 여자로 보는 것이 가장 타당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도움을 줄 능력이 있는 여자가 자기 친척 과부를 도와줌으로써, 교회는 아무 연고가 없어서 반드시 도움이 필요한 '참과부'를 도울 수 있습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성도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그리고 어려움을 격는 이들과 가족들은 어떻게 대할 것인가을 교훈합니다.
바울 사도는 디모데에게 성도를 가족처럼 대하라하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한 가족입니다.
가족처럼 사랑으로 허물을 감싸주고 덮어주고 돌보고 섬깁시다.
가족과 친지들을 잘 돌아보는 것은 유교적인 관습이 아닙니다.
믿지 않는 사람보다 더 나쁜 사람을 명시한 기독교야말로
가정을 중시하는 종교입니다.
명절이 다가옵니다.
오늘은 소홀히 했던 친척들의 안부를 물어보는 건 어떨까요?
참 과부만이 경건의 명부에 올렸습니다.
우리도 경건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빈둥거림과 게으름에서는 수다가 나옵니다(13절).
하지만 경건의 맹렬한 연습에서는 참된 삶이 나옵니다.
오늘 내 만남들을 점검해봅시다.
바울이 젊은 과부에게 재혼을 권하는 이유는
대적에게 훼방할 기회를 주지 않기 위해서입니다(11~15절)
교회와 성도는 사탄의 훼방을 사전에 예방하는 지혜를 지녀야 합니다.
오늘도 그리스도 안에서 경건한 삶을 살아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하루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나(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 사역자는 나이와 성별이 다른 교인들을 대할 때 ‘가족처럼’대해야 합니다(1,2절).
나이든 분에게는 온유한 권면으로 대하고, 젊은이는 형제처럼, 젊은 여성에게는 자매를 대하듯 깨끗함으로 다가서야 합니다.
지도자라고 해서 위압적인 권위를 행사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이처럼 교회를 온전하게 하는 것은 선한(바른) ‘교훈(1:100과 일꾼(4:6)과 관계’입니다.
2) 참 과부를 존대해야 합니다(3,4,8,16절).
여기서 ‘참 과부’는 물질적으로 궁핍하여 ‘참으로 도움이 필요한 과부’를 가리키며, ‘존대’는 말뿐인 존중이나 동정이 아닙니다.
인격적인 예우와 함께 재정적인 도움까지 포함합니다.
과부를 재정적으로 돕는 일은 우선 친족들의 몫이지만, 친족이 없는 과부는 교회가 책임지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리스도인 경건은 약자를 대접하는 것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공동체 안에 우리의 관심과 사랑에서 제외되는 분들은 없습니까?
3) 과부의 친족들에게는 ‘부양의 책임’을 과부들에게는 ‘경건의 의무’를 다하도록 지도합니다(5~7절)
목회자로서 디모데는 참 과부의 필요와 정서만 아니라 경건을 도와야 했습니다.
잠깐의 쾌락이 아니라 영원하신 하나님께 마음을 두어 영적으로 죽은 상태에 빠지지 않도록 가르쳐야 했습니다.
4) ‘과부의 명부’에 올릴 수 있는 요인으로 세 가지를 제시합니다(9,10절).
나이는 ‘육십’이 넘어야 하고, ‘한 남편의 아내’로 결혼 생활에 신실했던 사람이어야 하며, 착한 행실을 인정받는 사람이어야 했습니다.
‘과부의 명단’은 단지 형편이 어려운 이들의 명부만이 아니라 어려움 속에서도 올곧은 믿음을 지키고 올바른 삶을 이어간 ‘경건의 목록’임을 보여줍니다.
5) 바울이 젊은 과부에게 재혼을 권하는 이유는 대적에게 훼방할 기회를 주지 않기 위해서입니다(11~15절).
사탄이 그들의 정욕과 시간과 쓸데없는 한담을 이용하여 관계를 이간하고 공동체를 어지럽히고 자신이 믿음마저 잃게 되는 일이 없게 하라고 조언합니다.
교회와 성도는 사탄의 훼방을 사전에 예방하는 지혜를 지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