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정부 수립이 불가피하다
- 글 / 허신행 박사(전 농림수산부장관)
- 지구촌의 문제들
옛날에는 사람 살기가 요즈음처럼 복잡하지 않았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국민의 대다수가 농업을 위주로 하여 농촌에 살았고 단순히 의식주를 해결하는 문제만이 그들 생활의 전부였다. 전통적인 농경사회, 자급자족적인 생계농업, 풍요롭지는 못해도 가족끼리 다소곳하게 살아가는 오붓한 삶들이었다.
전통적인 농경사회에서는 대부분이 손으로 직접 만들거나 가내수공업 형태를 유지하며 자연에 순응하고 살았다. 농작물 생산에서 생긴 부산물을 가축의 사료로 이용하고, 가축분뇨와 퇴비를 유기질 비료로 사용함으로써 환경오염이나 공해문제가 거의 없었다.
그러나 공업 중심의 산업사회로 오면서 의식주 문제에서는 더 많이 잘 먹고 잘 입고 좋은 집에서 편리하게 살도록 만들었을지는 몰라도 그에 부가하여 더욱 많은 문제를 배출시켰다. 우선 아침저녁으로 산더미처럼 쏟아지는 생활쓰레기와 산업쓰레기는 이미 자정능력을 벗어나 통제 밖으로 치달으면서 지구촌을 오염시킴으로써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바다로 흘러간 쓰레기는 지구촌 전체를 오염시키고, 폐기처를 찾지 못한 쓰레기들은 무국적 선박들에 의해 공해상이나 무인도처럼 취약한 지역에 함부로 버려지고 있다. 지구가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이다.
각 가정에서 쓰고 있는 냉장고나 자동차의 에어컨 등에서 배출되는 프레온 가스는 지구의 오존층을 파괴하여 인간의 안정된 삶을 위협하고 있다. 태양으로부터 직사되는 자외선을 차단시키지 못하면 각종 피부병과 함께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아프리카에 서식하는, 피부로 호흡을 한다는 황금개구리가 나타나지 않는 것도 오존층의 파괴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같은 일들 역시 어느 개인이나 국가에 속한 문제가 아니라 지구촌 전체의 숙제거리이다.
날로 늘어나는 자동차의 매연은 길거리에 다니는 시민들의 호흡기를 병들게 하고 폐렴이나 폐암을 유발시킬 뿐만 아니라 산성비를 내리게 하여 호수와 산지 등의 생명체를 위협하고 있다. 중국의 매연구름이 한국의 산성비로 떨어진다. 심할 때는 비의 40퍼센트가 산성이라니 중국의 공업화는 우리에게 엄청난 비용을 지불하도록 강요하고 있는 셈이다. 이것 역시 심각한 지구촌 문제임엔 틀림이 없다.
이외에도 개별 농가의 식량증산을 위해 사용한 비료와 농약의 무분별한 사용은 유기질 토양을 파괴하고 산성화시키며 잔류독성으로 지하수까지 오염시키고 있다. 집단화된 가축사육의 엄청난 오폐수 역시 시냇물을 오염시키고 환경을 파괴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지구촌 곳곳의 천혜의 밀림이 훼손당하고 있고, 생태계를 파괴하며 사막화 현상을 촉진시키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지구촌을 멍들게 한다.
게다가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핵무기이다. 개별 국가의 안보와 국민의 생존을 위해 방어적인 목적으로 만든다고는 하지만 능력 있는 국가들의 치열한 핵무기 개발경쟁은 드디어 지구촌 전체를 파멸로 이끌 수 있을 정도의 가공할 단계에 놓이게 되었다. 핵무기 보유국의 정신 나간 지도자가 버튼 하나 잘못 누르면 죄 없는 나라의 국민들은 이유도 모른 채 잿더미 속에 파묻힐 수도 있게 되었다. 인류의 생존뿐만 아니라 지구촌의 안전을 위해 범국가적인 핵 안전장치가 절박하게 필요한 시점이다.
또한 서로 다른 이異민족간에 별 까닭 없이 숱한 국지전들이 일어나 무고한 사람들이 살상되고 있다. 아프리카의 르완다에서는 종족이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불과 며칠 만에 수십만의 선량한 사람들이 잔인하게 살해되는 금세기 최대의 인간비극이 일어났다. 동구권의 보스니아와 중동 등지에서도 민족이 다르다는 것 때문에 서로 죽이고 죽는, 끝없는 살육전을 벌이고 있다. 누군가 이런 어리석은 싸움과 전쟁을 막아야 한다. 이것이 지구촌의 과제이다.
종교와 사상이 다르다는 것도 또 하나의 분쟁거리이다. 100년 간이나 치른 십자군의 종교전쟁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중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크고 작은 분쟁들은 단지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 하나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다. 어리석은 자들의 싸움은 물리적인 제재를 가하더라도 막아야 한다. 지구촌의 경찰력이 필요해진 때이다.
날로 극렬해지고 있는 범죄는 또 어떠한가? 과학과 기술의 발달로 각종 범죄에 신종 무기와 첨단장비까지 동원되면서 국제적인 범죄집단들이 늘어나고 있다. 마약밀매, 청부살인, 무기판매, 국경의 차등가差等價를 노린 각양각색의 밀수 등 각종 범죄가 날이 갈수록 지능화되고 다양화되어 개별국가들의 단속능력만으로는 근절되기 힘들다. 또 그들은 국가 간의 법망이나 관행 등의 허점을 교묘히 악용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범국가적 제어장치가 시급히 요망된다.
국적이 뚜렷하지 않은 소위 다국적기업들이 날로 팽창되고 있는데도 여기에 대한 제재가 거의 없는 실정이다. 다국적기업들은 비용절감이라는 명분 아래 지구촌의 사각지대를 누비면서 이윤극대화를 노린다. 물론 낙후지역에는 경제개발이라는 긍정적인 측면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때로는 노동력을 착취하고, 때로는 자원을 낭비 내지 고갈시키면서 개인들의 이윤추구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다국적기업에 의한 국민총생산과 탈세규모가 얼마나 되는지 아는 사람이 없다. 만일 독버섯처럼 확산되는 다국적기업들을 지구적으로 효과있게 관리할 수 있다면 인류의 복지증진에 크게 기여하리라 믿는다.
이외에 지구촌이 1일 생활권으로 변하고 있는데도 각각의 국가들이 제각기 다른 제도와 관습, 문화, 언어, 화폐 등으로 불편을 주는 사례는 허다하다. 국경을 넘을 때마다 언어가 틀리고 다른 화폐를 사용해야 하며, 생소한 법과 관행에 따라야 한다. 또한 지배자들의 권력유지를 위해 인권을 침해하거나 국력을 낭비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국가마다 다른 관세 및 무역정책 등으로 인하여 상품과 서비스의 국가 간 이동이 자유롭지 못함으로써 비능률과 높은 비용이 따른다.
이 모든 문제를 원만하게 그리고 효과적으로 해결하고 인류의 공존공영과 복지증진을 위해서는 어떤 형태로든지 하나의 세계정부 수립이 불가피해지리라 본다. 그렇지 않으면, 소탐대실小貪大失로 인하여 각 국가의 발전에도 한계가 있겠지만, 지구촌의 파괴를 막을 길이 없어질 것이다. 삶의 바탕인 지구가 파괴되거나 위기에 처한다면, 과연 어떤 국가인들 온전하기를 바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