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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앤롤링의 하버드대 졸업연설
The first thing I would like to say is ‘thank you.’
우선 하버드 대학 측에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Not only has Harvard given me an extraordinary honour, but the weeks of fear and nausea I’ve experienced at the thought of giving this commencement address have made me lose weight. A win-win situation!
하버드 대학 졸업식 연설이라는 무척이나 영광스러운 기회를 얻었을 뿐만 아니라 지난 몇 주 동안 연설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 때문에 체중이 줄어 자연스럽게 다이어트도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야말로 제게는 일석이조가 아닐 수 없습니다.
Now all I have to do is take deep breaths, squint at the red banners and fool myself into believing I am at the world’s best-educated Harry Potter convention.
이 제 저는 호흡을 가다듬고 펄럭이는 붉은 깃발을 흘끔거리면서 제가 최고의 교육을 받은 해리 포터 마법사들 모임에 참석했다고 생각하려 합니다.
Delivering a commencement address is a great responsibility; or so I thought until I cast my mind back to my own graduation. The commencement speaker that day was the distinguished British philosopher Baroness Mary Warnock. Reflecting on her speech has helped me enormously in writing this one, because it turns out that I can’t remember a single word she said.
졸업식에서 연설을 한다는 것은 아주 책임이 무거운 일입니다. 적어도 제가 대학을 졸업하던 당시에는 저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제가 졸업하던 날 연설을 한 분은 저명한 영국 철학자 메리 워녹 남작부인 이었습니다. 그 분이 당시에 한 연설은 제 연설을 준비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This liberating discovery enables me to proceed without any fear that I might inadvertently influence you to abandon promising careers in business, law or politics for the giddy delights of becoming a gay wizard.
왜냐하면 그 분께서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전혀 생각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여러분도 제 이야기를 곧 잊어버릴 것이라고 생각하니, 제가 드리는 말씀 때문에 졸업생 여러분이 경영, 법조계, 정치 분야에서의 전도유망한 장래를 포기하고 동성애자 마법사가 되겠다고 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덜게 되어 안심이 됩니다.
You see? If all you remember in years to come is the ‘gay wizard’ joke, I’ve still come out ahead of Baroness Mary Warnock. Achievable goals: the first step towards personal improvement.
몇 년 후에 여러분이 오늘 제가 드린 말씀을 모조리 잊고 기억하는 것이라고는 ‘동성애자 마법사’에 대한 농담뿐이라고 해도 졸업식 연설자로는 제가 워녹 남작부인보다 한 수 위가 되는 겁니다. 저는 남작부인의 연설을 한마디도 기억하지 못하니까요. 도달 가능한 목표를 세우는 것이 자기발전의 첫걸음입니다.
Actually, I have wracked my mind and heart for what I ought to say to you today. I have asked myself what I wish I had known at my own graduation, and what important lessons I have learned in the 21 years that has expired between that day and this.
사실, 저는 오늘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나 싶어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제가 졸업하던 당시에 제가 알고 싶었던 것은 무엇인지, 졸업 이후 지금까지 21년 동안 제가 깨달은 소중한 교훈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I have come up with two answers. On this wonderful day when we are gathered together to celebrate your academic success, I have decided to talk to you about the benefits of failure. And as you stand on the threshold of what is sometimes called ‘real life’, I want to extol
그리고 두 가지 답을 얻었습니다. 우선 여러분의 학문적 성취를 기념하는 이 감격스러운 날, 저는 실패하면 어떤 이점이 있는지에 대해 얘기하기로 했습니다. 두 번째로 이제 ‘현실 세계의 삶’에 막 발을 들여놓게 된 여러분께 저는 상상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These might seem quixotic or paradoxical choices, but please bear with me.
현실적인 삶을 시작하는데 상상력에 대해 얘기한다는 것이 모순이 아니냐고 생각하시는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제 말씀을 끝까지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Looking back at the 21-year-old that I was at graduation is a slightly uncomfortable experience for the 42-year-old that she has become. Half my lifetime ago, I was striking an uneasy balance between the ambition I had for myself, and what those closest to me expected
제가 마흔 둘이 된 지금, 지금 나이의 절반인 스물한 살 졸업식 당시를 되돌아보는 것이 그리 달갑지는 않습니다. 21년 전 저는 제가 품고 있는 야망과 제 가족들이 저에 대해 갖고 있는 기대 사이에서 절충점을 찾으려고 애쓰고 있었습니다.
I was convinced that the only thing I wanted to do, ever, was to write novels. However, my parents, both of whom came from impoverished backgrounds and neither of whom had been to college, took the view that my overactive imagination was an amusing personal quirk that could never pay a mortgage, or secure a pension.
제가 하고 싶은 일은 오로지 소설을 쓰는 것뿐이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대학 문턱에도 가보지 못하신 제 부모님께서는 제가 갖고 있는 지나친 상상력은 흥미롭고 독특하기는 하나, 주택융자금을 갚고 노후 연금을 모으는 데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고 여기셨습니다.
They had hoped that I would take a vocational degree; I wanted to study English Literature. A compromise was reached that in retrospect satisfied nobody, and I went up to study Modern Languages. Hardly had my parents’ car rounded the corner at the end of the road than I ditched German and scuttled off down the Classics corridor.
부모님께서는 제가 직업학교에 가기를 원하셨고, 저는 영문학을 공부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부모님과 저는 현대 언어를 전공한다는 절충안을 찾았는데, 이제 돌이켜보니 그 절충안은 부모님이나 저나 아무도 만족 시키지 못한 해결책이었습니다. 부모님께서 학교에 저를 데려다 주시고 자동차가 학교 모퉁이를 돌아 사라지기가 무섭게 저는 독일어를 포기하고 고전 문학부로 달려갔습니다.
I cannot remember telling my parents that I was studying Classics; they might well have found out for the first time on graduation day. Of all subjects on this planet, I think they would have been hard put to name one less useful than Greek mythology when it came to securing the keys to an executive bathroom.
제가 부모님께 고전을 공부한다고 말씀 드린 기억은 없습니다. 부모님께서는 아마 제 졸업식 날 그 사실을 알게 되셨을 겁니다. 부모님께서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학문가운데 대기업 중역이 되는 데 있어서 그리스 신화보다 더 무용지물인 것은 없다고 생각하셨을 겁니다.
I would like to make it clear, in parenthesis, that I do not blame my parents for their point of view. There is an expiry date on blaming your parents for steering you in the wrong direction; the moment you are old enough to take the wheel, responsibility lies with you. What is more, I cannot criticise my parents for hoping that I would never experience poverty. They had been poor themselves, and I have since been poor, and I quite agree with them that it is not an ennobling experience. Poverty entails fear, and stress, and sometimes depression; it means a thousand petty humiliations and hardships. Climbing out of poverty by your own efforts, that is indeed something on which to pride yourself, but poverty itself is romanticised only by fools.
저는 그런 생각을 하시는 부모님을 조금도 원망하거나 비난하고 싶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내 인생이 잘못된 방향으로 나가게 된 것이 부모님 탓이라고 원망하는 태도는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버려야 합니다. 자기 인생의 운전대를 스스로 잡는 순간 어느 방향으로 갈 지는 자신이 결정하고 그 결정에 대해 본인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제 부모님께서는 제가 가난으로 고생하지 않기를 바라셨을 뿐인데, 제가 부모님을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부모님도 저도 가난을 겪었고, 가난이라는 것이 그리 달가운 경험은 아니라는 데에 저도 부모님과 동의합니다. 가난하면 삶이 두렵고 버거워지며 때때로 심한 우울증을 느끼게 됩니다. 스스로의 힘으로 가난에서 헤어 나오는 것, 그것은 진정 자랑스러워할 만한 일이지만 가난 자체를 낭만적이라고 여기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What I feared most for myself at your age was not poverty, but failure.
제가 여러분 나이에 가장 두려워한 것은 가난이 아니라 실패였습니다.
At your age, in spite of a distinct lack of motivation at university, where I had spent far too long in the coffee bar writing stories, and far too little time at lectures, I had a knack for passing examinations, and that, for years, had been the measure of success in my life and that
여러분 나이에 저는 학교강의는 거의 출석하지 않고 커피집에 죽치고 앉아 소설을 썼습니다. 저는 학교공부를 등한시 했지만 시험을 통과하는 데는 일가견이 있었고, 몇 년 동안 저와 제 친구들은 시험을 통과하는 것을 성공의 척도로 생각했습니다.
I am not dull enough to suppose that because you are young, gifted and well-educated, you have never known hardship or heartbreak. Talent and intelligence never yet inoculated anyone against the caprice of the Fates, and I do not for a moment suppose that everyone here has enjoyed an existence of unruffled privilege and contentment.
여러분처럼 젊고 재능 있고 제대로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어려움이나 가슴 아픈 일을 겪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할 만큼 제가 아둔하지는 않습니다. 재능과 지적 능력이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도 변덕스러운 운명의 여신으로부터 자유롭지는 않습니다. 저는 오늘 이 자리에 있는 여러분이 아무 어려움 없이 순탄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살아왔다고는 한 순간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However, the fact that you are graduating from Harvard suggests that you are not very well-acquainted with failure. You might be driven by a fear of failure quite as much as a desire for success. Indeed, your conception of failure might not be too far from the average person’s idea of success, so high have you already flown academically.
그러나 여러분이 하버드를 졸업한다는 사실에서 저는 여러분이 실패하는 데 익숙하지 않다는 점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성공하고자 하는 욕망 못지않게 여러분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요인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일 것입니다. 최고의 평판을 지닌 대학에서 공부한 여러분이 실패라고 여기는 것을 보통사람들은 성공이라고 여길지도 모릅니다.
Ultimately, we all have to decide for ourselves what constitutes failure, but the world is quite eager to give you a set of criteria if you let it. So I think it fair to say that by any conventional measure, a mere seven years after my graduation day, I had failed on an epic scale. An exceptionally short-lived marriage had imploded, and I was jobless, a lone parent, and as poor as it is possible to be in modern Britain, without being homeless. The fears my parents had had for me, and that I had had for myself, had both come to pass, and by every usual standard, I was the biggest failure I knew.
결국 무엇이 실패인지는 우리 스스로 결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스스로 실패가 무엇인지를 규정짓지 않으면 세상이 만들어놓은 성공과 실패의 기준에 좌지우지 됩니다. 졸업한 후 겨우 7년 만에 제 삶은 어느 모로 보아도 대단히 실패한 삶이었습니다. 결혼생활은 얼마 못 가서 파탄이 났고 저는 졸지에 직장도 없이 자식을 키우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노숙자를 제외하고는 현대 영국사회에서 더할 나위 없이 가난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제 부모님께서 그렇게 걱정하셨던 것, 제가 그렇게 두려워했던 것이 현실이 되었고, 통상적인 기준에 비추어볼 때 제 삶은 제가 알고 있는 그 어떤 사람의 삶보다 실패한 삶이었습니다.
Now, I am not going to stand here and tell you that failure is fun. That period of my life was a dark one, and I had no idea that there was going to be what the press has since represented as a kind of fairy tale resolution. I had no idea how far the tunnel extended, and for a long time, any light at the end of it was a hope rather than a reality.
이 자리에서 실패가 달가운 경험이라고는 말씀 드리지 않겠습니다. 당시 제 삶은 너무나도 암울했고, 해리포터 성공 후 언론에서 제 삶을 일컬어 동화 같은 인생이라고 했는데, 저는 그런 동화 같은 인생이 제게 찾아오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어두운 터널의 끝이 어디인지, 얼마나 오랫동안 어두운 삶이 계속될 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터널 끝에서 빛을 보게 되는 것은 그저 희망사항일 뿐 현실과는 너무나도 거리가 멀게 느껴졌습니다.
So why do I talk about the benefits of failure? Simply because failure meant a stripping away of the inessential. I stopped pretending to myself that I was anything other than what I was, and began to direct all my energy into finishing the only work that mattered to me. Had I really succeeded at anything else, I might never have found the determination to succeed in the one arena I believed I truly belonged. I was set free, because my greatest fear had already been realised, and I was still alive, and I still had a daughter whom I adored, and I had an old typewriter and a big idea. And so rock bottom became the solid foundation on which I rebuilt my life.
그런데 왜 실패를 하면 얻는 것에 대해 말하려 하느냐고 물으시겠죠? 바로 실패는 삶에서 불필요한 것들을 모두 벗겨내 버리기 때문입니다. 저는 실패한 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었고 제가 가진 모든 열정을 제게 가장 소중한 한 가지에 쏟아 붓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소설 이외에 다른 것에 성공했었다면 제가 진심으로 원했던 일에서 성공하겠다는 굳은 의지를 다지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미 제가 그토록 두려워했던 실패를 경험했기 때문에 마침내 저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로워졌습니다. 그런 엄청난 실패를 겪고도 저는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었고, 제가 너무나도 사랑하는 딸이 곁에 있었고, 제게는 낡은 타자기 한 대와 원대한 꿈도 있었습니다. 제가 추락할 때 부딪혔던 딱딱한 바닥을 주춧돌 삼아 그 위에 제 삶을 다시 튼튼하게 지을 수 있었습니다.
You might never fail on the scale I did, but some failure in life is inevitable. It is impossible to live without failing at something, unless you live so cautiously that you might as well not have lived at all - in which case, you fail by default.
여러분은 제가 겪은 정도로 엄청난 실패를 겪게 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살다 보면 누구나 실패하기 마련입니다. 극도로 몸을 사리고 조심하면 실패를 면할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사는 것은 삶이 아닙니다. 실패가 두려워 아무 시도도 하지 않는다면 실패한 것이 없어도 삶 자체가 실패입니다.
Failure gave me an inner security that I had never attained by passing examinations. Failure taught me things about myself that I could have learned no other way. I discovered that I had a strong will, and more discipline than I had suspected; I also found out that I had friends whose value was truly above rubies.
실패함으로써 저는 시험을 통과해서는 얻을 수 없었던 마음의 안정을 찾았습니다. 실패를 통해서 저는 저 자신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실패하지 않았다면 도저히 깨달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저는 제가 의지가 강한 사람이고 제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자기 관리에 철저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보석보다도 소중한 친구들이 제 곁에 있다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The knowledge that you have emerged wiser and stronger from setbacks means that you are, ever after, secure in your ability to survive. You will never truly know yourself, or the strength of your relationships, until both have been tested by adversity. Such knowledge is a true gift, for all that it is painfully won, and it has been worth more to me than any qualification I ever earned.
실패를 겪고 나서 더 강인하고 현명해지면 앞으로 어떤 일이 있어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됩니다. 우리 자신이 얼마나 강한지, 우리가 맺고 있는 인간관계가 얼마나 끈끈한 지는 시련을 겪어보기 전에는 알 수가 없습니다. 이를 깨닫게 되는 것은 진정 소중한 선물입니다. 이 깨달음을 얻기 위해 저는 혹독한 대가를 치렀지만 그것은 제가 얻은 그 어떤 자격증보다도 가치 있는 소득이었습니다.
Given a time machine or a Time Turner, I would tell my 21-year-old self that personal happiness lies in knowing that life is not a check-list of acquisition or achievement. Your qualifications, your CV, are not your life, though you will meet many people of my age and older who confuse the two. Life is difficult, and complicated, and beyond anyone’s total control, and the humility to know that will enable you to survive its vicissitudes.
타임머신을 타고 스물한 살이던 때로 되돌아간다면 저는 젊은 제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삶이란 무엇을 얻고 성취하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행복할 수 있다고 말입니다. 여러분이 갖춘 자격요건, 화려한 이력서가 여러분의 인생은 아닙니다. 제 연배나 저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 가운데는 이 두 가지를 혼동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앞으로 그런 사람들을 수없이 만나게 될 것입니다. 삶은 힘들고 복잡하고 우리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이 사실을 알고 겸허히 받아들이면 그 어떤 고난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You might think that I chose my second theme, the importance of imagination, because of the part it played in rebuilding my life, but that is not wholly so. Though I will defend the value of bedtime stories to my last gasp, I have learned to value imagination in a much broader sense. Imagination is not only the uniquely human capacity to envision that which is not, and therefore the fount of all invention and innovation. In its arguably most transformative and revelatory capacity, it is the power that enables us to empathise with humans whose experiences we have never shared.
제가 상상력의 중요성을 오늘 제가 하고자 하는 두 번째 이야기로 삼은 이유는 제가 삶을 다시 추스르는데 상상력이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이라고 여러분은 생각하실 겁니다. 그러나 그 것이 다는 아닙니다. 부모님께서 잠들기 전 어린이들에게 동화를 읽어주시는 것이 소중한 경험이라는 주장은 제가 누구보다도 적극적으로 옹호합니다만, 제가 경험한 상상력의 가치는 더욱 넓은 의미에서 상상력이 갖는 가치입니다. 상상력은 인간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능력으로 인간은 상상력을 통해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생각할 수 있고 따라서 상상력은 모든 발명과 혁신의 원천입니다. 그러나 상상력의 가장 큰 위력은 우리가 직접 경험하지 않고도 다른 사람들의 경험에 공감할 수 있도록 해주는 힘입니다.
One of the greatest formative experiences of my life preceded Harry Potter, though it informed much of what I subsequently wrote in those books. This revelation came in the form of one of my earliest day jobs. Though I was sloping off to write stories during my lunch hours, I paid the rent in my early 20s by working in the research department at Amnesty International’s headquarters in London.
제 삶을 형성하는데 가장 큰 영향을 준 경험 가운데 하나는 제가 해리 포터를 쓰기 전에 한 경험입니다. 물론 이 경험이 해리 포터 내용에 많이 녹아 들어가긴 했지만 말입니다. 제가 졸업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얻은 직장에서 얻은 경험입니다. 20대 초반에 저는 런던에 있는 국제사면위원회(Amnesty International) 본부에 있는 연구부서에서 일하면서 생활비를 벌고 점심시간에는 짬짬이 소설을 쓰고 있었습니다.
There in my little office I read hastily scribbled letters smuggled out of totalitarian regimes by men and women who were risking imprisonment to inform the outside world of what was happening to them. I saw photographs of those who had disappeared without trace, sent to Amnesty by their desperate families and friends. I read the testimony of torture victims and saw pictures of their injuries. I opened handwritten, eye-witness accounts of summary trials and executions, of kidnappings and rapes.
저는 코딱지만 한 제 사무실에서 독재정권 하에서 탄압받는 사람들이 서슬이 시퍼런 권력의 눈을 피해 몰래 밀반출한 편지들을 읽었습니다. 목숨을 걸고 자기 나라의 상황을 바깥세상에 알리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다급하게 손으로 휘갈겨 쓴 편지들이었습니다. 저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사람들의 사진을 보았는데, 이 사진들은 실종된 사람들의 가족과 친구들이 절박한 심정으로 저희에게 보낸 사진이었습니다. 저는 끔찍한 고문을 당한 사람들의 증언도 읽었고 고문이 남긴 상처를 찍은 사진도 보았습니다. 저는 즉결심판과 처형, 납치와 강간 등에 대해 증인들이 직접 쓴 기록도 읽었습니다.
Many of my co-workers were ex-political prisoners, people who had been displaced from their homes, or fled into exile, because they had the temerity to think independently of their government. Visitors to our office included those who had come to give information, or to try and find out what had happened to those they had been forced to leave behind.
제 동료들 가운데는 과거에 정치범이었던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단지 권력자와 다른 의견을 표명할 용기가 있다는 이유로 삶의 터전에서 추방당하고 망명한 이들이었습니다. 우리 사무실을 찾아온 사람들 가운데는 정보를 제공하려는 사람들도 있었고, 고국에 남겨둔 가족친지나 친구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아보려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I shall never forget the African torture victim, a young man no older than I was at the time, who had become mentally ill after all he had endured in his homeland. He trembled uncontrollably as he spoke into a video camera about the brutality inflicted upon him. He was a foot taller than I was, and seemed as fragile as a child. I was given the job of escorting him to the Underground Station afterwards, and this man whose life had been shattered by cruelty took my hand with exquisite courtesy, and wished me future happiness.
그 가운데 저는 고문당한 한 아프리카 인을 절대로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는 당시 제 나이보다 많지 않았고 고국에서 겪은 고통의 후유증으로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가해진 폭력에 대한 증언을 카메라에 녹화하는 동안 끔직한 기억에 대한 두려움에 몸을 부들부들 떨었습니다. 그는 저보다 키가 30센티미터 가량 컸는데 마치 아이처럼 나약한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증언 녹화를 마치고 저는 그를 지하철까지 안내해 주었고 잔인 무도한 정권에 삶이 산산이 조각난 이 젊은이는 깍듯이 예절 바르게 제게 악수를 청했고 작별인사를 했습니다.
And as long as I live I shall remember walking along an empty corridor and suddenly hearing, from behind a closed door, a scream of pain and horror such as I have never heard since. The door opened, and the researcher poked out her head and told me to run and make a hot drink for the young man sitting with her. She had just given him the news that in retaliation for his own outspokenness against his country’s regime, his mother had been seized and executed.
한번은 텅 빈 사무실 복도를 걷고 있는데 갑자기 문이 닫힌 어느 사무실에서 고통과 두려움에 찬 비명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 저는 그렇게 고통스러운 비명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 소리는 아마 제가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겁니다. 그런데 그 비명소리가 흘러나온 사무실 문이 열리고 연구직 여직원이 머리를 문 밖으로 내밀더니 따뜻한 음료를 갖다 달라고 했습니다. 그녀가 비명을 지른 그 청년에게 막 비보를 전했던 겁니다. 그가 고국의 정권에 대해 거침없이 비판을 한 데 대한 보복으로 정권이 그의 어머니를 처형한 것입니다.
Every day of my working week in my early 20s I was reminded how incredibly fortunate I was, to live in a country with a democratically elected government, where legal representation and a public trial were the rights of everyone.
20대 초반에 그 일을 하면서 저는 하루도 빠짐없이 제가 얼마나 행운아인지 절실히 느꼈습니다. 민주주의적 절차에 따라 선출된 정부가 나라를 통치하고 국민 누구나 법적 대리인을 선정하고 공개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는 나라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운인지를 말입니다.
Every day, I saw more evidence about the evils humankind will inflict on their fellow humans, to gain or maintain power. I began to have nightmares, literal nightmares, about some of the things I saw, heard and read.
매일매일 저는 권력을 얻고 유지하기 위해 인간이 인간에게 얼마나 극악무도한 폭력을 가하는지 그 증거를 보았습니다. 제가 보고 듣고 읽은 이런 끔직한 내용들 때문에 저는 말 그대로 악몽까지 꾸기 시작했습니다.
And yet I also learned more about human goodness at Amnesty International than I had ever known before.
그러나 동시에 저는 국제사면위원회에서 일하는 동안, 인간의 선한 면에 대해서 이전보다 더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Amnesty mobilises thousands of people who have never been tortured or imprisoned for their beliefs to act on behalf of those who have. The power of human empathy, leading to collective action, saves lives, and frees prisoners. Ordinary people, whose personal well-being and security are assured, join together in huge numbers to save people they do not know, and will never meet. My small participation in that process was one of the most humbling and inspiring experiences of my life.
국제사면위원회에서 일하는 수천 명의 직원들은 그들 자신은 신념 때문에 고문을 당하거나 투옥된 경험이 없지만 그런 고통을 겪은 사람들을 위해 일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인간적인 공감을 바탕으로 함께 힘을 모아 위기에 처한 생명을 구하고 속박당한 사람들에게 자유를 되찾아주는 놀라운 힘이 있습니다. 편안하고 안정된 삶이 보장된 보통사람들이 힘을 모아서 자신들이 알지도 못하고 평생 만날 일도 없을 사람들을 구하려고 애씁니다. 그러한 일에 조금이나마 제가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은 제가 한 그 어떤 경험보다도 저 자신을 겸허하게 만들고 고무시켜주었습니다.
Unlike any other creature on this planet, humans can learn and understand, without having experienced. They can think themselves into other people’s minds, imagine themselves into other people’s places.
지구상의 다른 생물들과는 달리 인간은 직접 경험하지 않은 것을 배우고 이해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인간에게는 타인의 마음을 읽고 타인의 처지에 자신을 놓아 이해할 능력이 있습니다.
Of course, this is a power, like my brand of fictional magic, that is morally neutral. One might use such an ability to manipulate, or control, just as much as to understand or sympathise.
물론 제 소설 속의 가상의 마법의 힘과 마찬가지로 이는 도덕적으로 중립성을 띤 능력입니다. 어떤 이는 이러한 능력을 다른 사람을 이해하거나 공감하는데 쓰기보다는 다른 사람을 자기 마음대로 통제하고 조종하는 데 쓸 지도 모릅니다.
And many prefer not to exercise their imaginations at all. They choose to remain comfortably within the bounds of their own experience, never troubling to wonder how it would feel to have been born other than they are. They can refuse to hear screams or to peer inside cages; they can close their minds and hearts to any suffering that does not touch them personally; they can refuse to know.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가진 이러한 상상력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사는 편을 택합니다. 이들은 자신이 직접 경험한 세상의 경계선 안에서 편안하게 사는 편을 택하고 자신이 지금과 다른 환경에서 태어났다면 어떠했을지 느껴보려고 애쓰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비명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귀를 틀어막고 속박당한 이들이 갇혀있는 감옥을 들여다보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삶에 직접 영향을 미치지 않는 한 남의 고통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마음의 문을 닫아버립니다. 그들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I might be tempted to envy people who can live that way, except that I do not think they have any fewer nightmares than I do. Choosing to live in narrow spaces can lead to a form of mental agoraphobia, and that brings its own terrors. I think the wilfully unimaginative see more monsters. They are often more afraid.
그렇게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부럽다가도 그런 사람들이라고 해서 저보다 악몽에 덜 시달리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면 부럽다는 생각이 사라집니다. 그렇게 자기만의 협소한 공간 안에서 살다 보면 정신적인 광장공포증에 시달리게 되고 이 증세로 인해 나름대로 엄청난 공포감을 느끼게 됩니다. 상상하지 않고 살려고 애쓰는 사람들은 더 많은 괴물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더 큰 두려움에 시달립니다.
What is more, those who choose not to empathise may enable real monsters. For without ever committing an act of outright evil ourselves, we collude with it, through our own apathy.
타인과의 공감을 거부하는 행위는 진짜 괴물들이 힘을 휘두를 능력을 갖게 만듭니다. 우리가 스스로 악을 행하지는 않아도 악이 행해지는 상황을 외면하면 악의 공모자나 다를 바 없습니다.
One of the many things I learned at the end of that Classics corridor down which I ventured at the age of 18, in search of something I could not then define, was this, written by the Greek author Plutarch: What we achieve inwardly will change outer reality.
열여덟 살 때, 그 때는 딱 꼬집어 말할 수 없었던 그 무엇을 찾기 위해서 제가 발을 들여놓은 고전 문학부 건물 복도 끝에서 제가 얻은 수많은 깨달음 가운데 하나는 그리스의 저자인 플루타르크(Plutarch)의 바로 이 구절입니다. “우리가 내면에서 성취하는 것이 우리 외면의 현실을 바꾸어놓을 것이다.”
That is an astonishing statement and yet proven a thousand times every day of our lives. It expresses, in part, our inescapable connection with the outside world, the fact that we touch other people’s lives simply by existing.
정말 놀라운 구절입니다만, 이 말의 진리는 우리 일상생활에서도 매일 수없이 증명되고 있습니다. 이 구절은 우리와 바깥세상이 연결되어있음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고, 우리는 그저 우리가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다른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는 뜻입니다.
But how much more are you, Harvard graduates of 2008, likely to touch other people’s lives? Your intelligence, your capacity for hard work, the education you have earned and received, give you unique status, and unique responsibilities. Even your nationality sets you apart. The great majority of you belong to the world’s only remaining superpower. The way you vote, the way you live, the way you protest, the pressure you bring to bear on your government, has an impact way beyond your borders. That is your privilege, and your burden.
그러면 오늘 하버드를 졸업하는 여러분들은 다른 사람들의 삶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게 될 것 같습니까? 여러분은 탁월한 지적 능력을 지녔고 성실하며 훌륭한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남다른 위치에 서있고 따라서 여러분이 짊어진 책임도 남다르다고 봅니다. 여러분의 국적조차도 여러분을 남다른 위치에 서게 합니다. 여러분 가운데 대다수는 세계 유일한 강대국의 국민입니다. 여러분이 행사하는 투표권, 여러분이 삶을 사는 방식, 여러분이 정부에 압력을 넣고 저항하는 방식은 미국 국경 너머 멀리까지 영향을 미칩니다. 바로 이 사실이 여러분이 가진 특권인 동시에 짊어져야 할 책임이기도 합니다.
If you choose to use your status and influence to raise your voice on behalf of those who have no voice; if you choose to identify not only with the powerful, but with the powerless; if you retain the ability to imagine yourself into the lives of those who do not have your advantages, then it will not only be your proud families who celebrate your existence, but thousands and millions of people whose reality you have helped transform for the better. We do not need magic to change the world, we carry all the power we need inside ourselves already: we have the power to imagine better.
여러분께서 여러분의 위치와 영향력을 바탕으로 힘없는 사람들을 돕는 길을 선택한다면, 여러분께서 힘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힘없는 사람들과 자신을 동일시하겠다는 선택을 한다면, 여러분께서 여러분만큼 혜택 받지 못한 사람들의 삶을 이해할 수 있는 상상력을 지녔다면, 여러분의 가족뿐만 아니라 여러분의 도움으로 더욱 나은 삶을 살게 된 수많은 사람들이 여러분께서 존재한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여러분을 자랑스러워 할 것입니다. 세상을 바꾸는 데 마법은 필요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 마음속에 이미 세상을 바꿀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는 더 나은 세상을 상상할 수 있는 힘을 지녔습니다.
I am nearly finished. I have one last hope for you, which is something that I already had at 21. The friends with whom I sat on graduation day have been my friends for life. They are my children’s godparents, the people to whom I’ve been able to turn in times of trouble, friends who have been kind enough not to sue me when I’ve used their names for Death Eaters. At our graduation we were bound by enormous affection, by our shared experience of a time that could never come again, and, of course, by the knowledge that we held certain photographic evidence that would be exceptionally valuable if any of us ran for Prime Minister.
오늘 제가 여러분께 드릴 말씀이 거의 끝나갑니다. 여러분께 제가 바라는 것이 한 가지 더 있습니다. 그것은 제가 스물한 살 때 이미 갖고 있던 것입니다. 졸업식 날 제 곁에 있었던 친구들이 지금까지 평생 친구로 남아있습니다. 그들은 제 아이들의 대부와 대모가 되어주었고 곤경에 처할 때마다 제가 도움을 청할 수 있었던 친구들입니다. 제 소설 속의 악당들의 이름을 이 친구들의 이름을 따서 지었는데도 저를 법적으로 고소하지 않을 정도로 너그러운 친구들입니다. 졸업식 날 우리는 다시는 오지 않을 학창시절을 함께 한 소중한 경험으로 똘똘 뭉쳐 우리의 끈끈한 우정을 확인했습니다. 우리 중에서 누군가가 훗날 영국 수상 자리에 오른다면 그날 같이 찍은 사진이 요긴하게 쓰일 것이라는 계산도 하긴 했습니다.
So today, I can wish you nothing better than similar friendships. And tomorrow, I hope that even if you remember not a single word of mine, you remember those of Seneca, another of those old Romans I met when I fled down the Classics corridor, in retreat from career ladders, in search of ancient wisdom
그래서 저는 오늘 여러분께 제가 지금까지 지녀온 우정 못지않은 우정을 간직하기를 바랍니다. 내일이 오고 여러분께서 오늘 제가 드린 말씀 가운데 한 마디도 기억하지 못하시더라도
세네카(Seneca)가 한 말만큼은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세네카는 제가 직장에서의 승승장구라는 목표를 내팽개치고 고대 현인들의 지혜를 찾아 고전 문학부 복도를 내달을 때 마주쳤던 로마의 현인 가운데 한 분입니다. :
As is a tale, so is life: not how long it is, but how good it is, is what matters.
세네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야기에서 중요한 것은 이야기의 길이가 아니라 그 내용이 얼마나 훌륭한가 하는 점이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I wish you all very good lives.
여러분께서 내면이 충만한 삶을 살기를 기원합니다.
Thank you very much.
감사합니다.
첫댓글 As is a tale, so is life: not how long it is, but how good it is, is what matters.
세네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야기에서 중요한 것은 이야기의 길이가 아니라 그 내용이 얼마나 훌륭한가 하는 점이다. 인생도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