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을 絶交(절교)해 버리면 근심이 없어진다 대답에 있어선 '어'하고 '응'차이의 거리가 얼마이던가 묻고 대답하는 차이가 얼마이란 말인가 매끄럽게 참여한다 할 것인가? 선함과 악의 서로간 거리 차이가 얼마란 말이던가 사람들이 敬畏視(경외시)하는 것을 두렵다 아니타 못할 것이니 , 거칠은 황무지 중심점 아닌 깨어나질 못한 변방인데도 그런데 사는 사람들은 희희락락 하길 봄의 賞春祭(상춘제) 祝祭(축제)가 열리어선 봄 樓臺(누대)에 오르는 것처럼 즐거워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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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惟獨(유독) 풍랑 없는 고요한 港口(항구)에 정박한 배이던가 그러한 조짐이 아니로다 어린애처럼 자라지 못해선 배를 乘船(승선)하고선 돌아갈 데가 없는 것 같고나 모든 이들은 다들 여유가 있거늘 나만 유독 버림받은 것 같음이여 나를 남이 어리석게 여기게 하는 마음이로다, [내가 남을 어리석게 여기는 마음자세로다] 밝고 어둠이 갈라지지 않은 혼둔한 상태여 , 세상 사람들은 깨어나고 깨어나선 모두가 밝고 밝거늘 나만 유독 혼미함 같음이로다, 세상 사람들은 안목이 밝고 드넓어선 자세하게 관찰을 잘하거늘 나만 유독 번뇌 잡념 속에 번민 함이로다 또는 바보처럼 행동하는 狀(상)이로다
할망 하기가 달 없는 그믐날 밤 같고 적적하기가 머무를 데가 없는 것 같음이여 여러 사람들은 다들 잘 사용하는데도 나만 유독 둔자이고 아둔하고 비천함 같음이로다 나만 유독 사람들과 달라선 귀한 먹음을 어머니게 만 하도다
所以(소이) 無爲自然(무위자연)의 質朴(질박)한 삶을 산다는 의미인데 祝祭(축제)가 생기면 자연 그런 것은 언젠 이던가 끝나게 마련이고 시들게 마련이라는 것이리라 세상 사람들은 그렇게 발전 번영을 갈구하여선 그런 데로 마음을 몰아가지만 오직 자신만은 그 조용한 항구에 정박한 배처럼 베를 승선하고선 指向(지향)할 목적지를 잃은 것 럼 없앤 것처럼, 그렇게 들뜬 기분이 아니고 그렇게 世人(세인)처럼 渴望(갈망)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리라 소이 목말러 하고 매마른 모습을 그리지는 않는다는 것이리라 그러고 세인은 여유가 있고 자신은 그런 풍요 여유로운 삶 속에서 벗어난 것만 같아선 버림받은 모습을 갖는다는 것이리라
中心(중심)을 모른다 변방이다 하는 것은 그 無爲(무위)한 自然(자연)의 道(도)를 모른다 그와 거리차이가 많이 난다, 道(도)라 하는 것은 메아리 중심과 같다는 것이고 황무지 개척하지 않는 곳은 오히려 그 繁榮(번영)을 謳歌(구가)하는 것처럼 描寫(묘사) 된다는 것이리라
어린애 처럼 자라지 않아선 그 歸所(귀소) 할 데가 없다는 것이리라 소이 무언가 자라 야지만 그 歸根(귀근)을 하듯 돌아갈 곳이 있는데 本然(본연)에 根本(근본) 兒(영아)인지라 그 돌아 갈 곳이 또 어디 따로 있을 수가 없다는 것이리라 그러니깐 그 細分化(세분화) 되지 않은 訛傳(와전) 되어 굴르지 않은 본연에 道(도) 자체라는 것이리라
한치건너 두치라고 그 길을 가듯 전파되다 보면 본연 근본 道(도)와는 점점 거리가 멀어진다는 것인데 그 兒(영아)처럼 자라지 않는다면 곧 그 道(도)에서 멀어질 수가 없고 그 한치의 道(도)라 할 것이라는 것이리라 衆人(중인)은 멀리 퍼져선 그 여유로운 삶을 營爲(영위)하지만 소이 그 발전된 삶을 살지만 그렇게되면 爲的(위적)인 것이 많아지는 것인지라 그 본연에 道(도)와는 거리가 점점 멀어진다는 것이라 그래서 자신은 그런 것을 추종하지 않게 되어 자연 그 무리에서 버림받은 상태가 된다는 것이리라
남들이 나를 어리석게 볼 정도로 바보나 둔자 처럼 그렇게 생겨먹었고 ,세상 사람들은 그 昭察(소찰)하다 못해 영악할 판이나, 자신은 할망한 어둡기가 그믐날 밤처럼 되어 있어선 그 누구가 보살펴 주지 않으면 그 생존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는 것이고, 그 자신의 고요한 상태가 그 潛寂(잠적)하다하는 의미 조차 그 돌아 갈데가 없는 것처럼 만든다는 것으로서 그만큼 靜寂(정적)이 감돌 정도라는 것이리라
세상 사람들은 여러 가지 편리한 것을 推究(추구)하여선 그것을 사용하여선 혜택을 보지만 오직 자신만은 아둔한 둔자 처럼 그렇치 못해서 그 세상 사람과는 완연히 달라서는 그 희귀한 먹음을 어머니에게만 메어 달리는 것 같다는 것이다 그런데 가만히 그 文脈(문맥) 구성 흐름을 볼 것 같으면 어떠한 理想的(이상적=유토피아)인 鬼神(귀신)을 숭상하는 말처럼 들리기도 하는데 도대체가 道(도)라 하는 것이 그렇게 菽麥(숙맥)처럼 하여선 어느 분이 돌봐주지 않으면 생존치 못할 그런 位相(위상)이라면 그 귀신에게 살려 달라고 애걸 복걸 메어 달리는 상황을 그려주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떨칠 길 없다 할 것인데 所以(소이)그런 거와 별반 차이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여기서 母(모)라 지칭하는 것은 그 귀신의 괴수두목 所以(소이) 谷神(곡신)이라 하는 그 陰凶(음흉)한 귀신을 추종한다는 말로도 들린다 할 것임에 그렇게 된다면 그 道(도)라 하는 老聃(노담)이 주장하는 것도 별 볼일 없는 주장이 아닌가하는데 결국 無爲自然(무위자연)이라 하는 것이 그 귀신 추종하여선 거저 얻어먹고 살겠다는 말인가
노담이 그렇다면 귀신 졸자 귀신 추종세력에 불과하다 할 것이다 일체의 무슨 사상이 그렇게 무언가 내세우다 보면 그 宗主(종주)라 하는 것이 결국은 괴수두목이 되고 마는 것이라할 것이다
애들을 하루라도 신령이 그 부모처럼 돌보지 않으면 베겨날 것인가 이다 여기선 그렇게 譬喩(비유) 描寫(묘사)하는데 그러니 그런 애들 되고 無爲自然(무위자연)이라 하는 귀신두목에게 보살핌 받고자 하는 말이 된다 할 것이다 그렇다면 필자 너 자신도 그 너그 부모를 귀신두목이라 指稱(지칭)할 텐가 하는 말의 矛盾(모순)이 생겨나는데 누구던 자신의 부모는 귀신두목이라 못 할터 이래서 그 말의 矛盾(모순) 닭과 계란의 시비가 생겨나는 것이고 그 해결 방안이라는 것이 말을 자루처럼 뒤잡는 방법이 동원되게 되는데 세상을 알[卵(란)] 밖으로 보지 않고 제 어미도 그 알속에 품고 있다 하는 그 어찌 보면 궤변 같은 논리가 정해지는 것이다 모순의 해결은 行(행) 그 作用(작용)에 있는 것이니 오른손을 펼제엔 왼 주먹을 감쌀수 있고 왼손을 펼적에는 오른 주먹을 감쌀 수 있고 양손을 펼 적에는 마주치는 울림이 일고, 다같이 주먹을 쥘제는 그 쥐어박는 맞수가 되는 것이라 이러한 융통 변화의 행위에 모든 것은 있는 것이지 그 무슨 주장을 내세우는 곳에서만 원리가 존재하는 것만은 아니라 할 것이다
*本文 第二十章= 배움을 끊어 버리면 근심이 없어진다 대답에 있어서 '예'함과 '응'함의 서로 거리 가 얼마이던가? 선과 악의 사이가 얼마라 하듯이 사람들이 두려워하는걸 바르게 두려워 아니하지 못할 것이니 황량함이여- 그 중앙이 아니리요? (*황무지 같은 그 거칢을 뜻함일는지......) 모든 사람이 밝고 밝아 온 누리 속에서(* 큰 희생에 소를 잡아 제사지내어 흠 향케 하듯) 향유하는 듯 하고 봄철의 누대에 오르는 듯 하건만 내- 유독 그 증험의 싹을 보지 못함이여- 금방 난 아기 미처 웃기도전의 어린앨 붕- 띄우듯 함이여- (* 인식도가 낮은 어린애에게 만물의 이치를 깨치라 하면 뭔들 제대로 할 것인가? 만물의 이치를 타게 하면 그 만물이란 말(馬)을 몰고 가겠는가?) 어디로 돌아 갈데가 없는 듯 함이로다 모든 사람은 다 여유가 있는데도 나만 홀로 버림받은 듯 함은 내 남을 어리석게 여기는 마음에서 그러함이리라 띙- 하고 틩-한 머리여 世人(세인)은 밝고 밝은데 나만 홀로 흐리멍텅한 듯 하도다 세인은 모두 자세하고 자세한데 나만 유독 우울함에 빠진 듯 함이여 정신이 멍- 해짐이 그믐인 듯 하다 고요한 나락으로 쳐지는 듯함이여 머무를 데가 없는 것 같도다 모든 사람들은 다 풍요롭것만 나만 유독 우직스러워 비천(鄙賤)함 같다 내 유독 남과 달라서 길이란 어머니에게만 희귀한 먹음을 찾도다
* 배움을 끊어버리면 근심할게 없다, 대답함에 있어서 '어'와 '응'의 차이가 서로 거리가 얼마란 말인가? 착함과 더불어 악함의 서로간 거리가 어떻단 말인가 다른 이 들의 두려워하는 것을 그렇게 두려워하지 아니치 못할 것이라
거칠은 황야가 그 중앙이 아님이라서 그런가 모든 사람은 밝고 밝아서 태뢰[ 큰 회생의 소를 잡아선 제사 흠향 하는 모습]를 향유하는 것 같아선 봄 누대에 오른 것 같은데 , 나만 유독 절박함이여 그 조짐이 좋지 못해서 인가 어린 아기의 아직 가르침 받지 못함 같고 나,
승승장구 오르고 오름이여 돌아 갈데가 없는 것처럼 모든 사람이 다 여유가 있거늘 나만 유독 버림 받았는가, 내 어리석은 마음 일진져- 우울함이여, 세속 사람들은 다 밝고 밝거늘 나만 유독 혼미하고나, 속인은 살피고 살피거늘 나만 유독 바보 같고나 홀황 함이여 [어둠 상태를 뜻하는 말] 그믐 같고 나, 고요함이여 머무를 데가 없는 듯 하다
모든 사람들은 다들 씀이 유여 하거늘 나만 유독 완악 하여 더러움 같고 나, 내 유독 다른 사람들과 달라서 귀한 먹음을 어머니에게만 하도 다
* 소씨는 주석하대. 배움이 날로 증진되면 길은 날로 덜게 된다 본성에 부여된 命(명)의 바름을 모르고 배움을 더욱 구함으로써 듣지못한 바를 쌓기를 말지 않고 하나로써 함이 없으면 (* 중심을 지켜 하나로 절충 융화함이 없음 상반 양극이 서로 해친다) 둥그럼이 모남을 해롭게 하고 곧음으로서 휨을 해롭게 한다 그런 가운데 어지러워져서 그 근심을 이기지 못함이라 무릇 배우는 자 이러함에 이름을 근심한다 그래서 말하길 배움을 끊어 치움 근심이 없다 한다 이렇틋 성인이 일찍이 배우지 아니함이 없고 길로서 주안점을 삼아 배우지 아니함이 적지 않았으며 많이 배웠어도 어지럽지 않으니 확 튀 여서 근심이 없는데 뭘- 배움을 끊어 버린다 할 것인가? 배우는 자 듣는데 빠지면 (치우친 견해로) 하나를 (* 절충융화 시킬 줄 모르면 중심을 지길줄 모른다) 씀이 없다 곧 대답에 있어서 '예' 하는 공손한 말과 '응' 하는 건성으로 대답함도 같은 날의 말이라 할수 없을 것인데 하물며 선악의 서로 상반됨이야 말할 나위랴? 오직 성인이라야 만물이 한가지로 본성에서 나서 다-망녕됨을 이룸을 앎이라 소 말 을 그리는 듯함과 범 돼지 를 새기는 듯함이 모두 그 진실 됨은 아니다 흐려지면 옳고 그름과, 같고 다름의 분변이 없는데 누가 그 서로의 거리가 얼마인가를 알 것인가? 진실로 이러함을 알면 곧 만물과 아울러 키운다 해도 서로가 해롭지 않으며 길이 어울러 실천해도 서로 어지럽힘이 없어 족히 괴이함이 없어지리라 성인이 저와 나를 고르게 함, 같고 다름이 하나가 되어서 그 마음에 거듭 머무를 데가 없다(*장애적인 요소가 다 풀려 무애하다 구애될게 없다는 뜻) 그런데 어째서 이를 소홀히 해서 세상에 지킬 법을 버리고 분수를 범하고 이치를 어지럽혀서 돌아보지 않음인 것인가? 남들이 두려워하는걸 내 역시 두려워하고 남이 위하는걸 내 역시 위한다면 비록 군신이 벌려선 자리와 어버이 자식사이라도 예악(禮樂)과 형정(刑政= 형벌의 정치)의 경계를 실천해서 천하 그 달름을 모르리라 그 物事에 얽혀 들지 않음도 그 마음일 따름이라 사람이 다 그 아는 데를 쫓음이라 그런 까닭에 크게 그 구역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성인은 있고 없음을 겸하여 건넸음이라 (*있고 없음이란 걸 벗어치워 구애되지 않는다는 뜻) 그 들어가는 데가 옳치 아니함이 없으면 그 바른 중심처가 아님을 황량(*황무지 거친 곳처럼)이 여긴다 사람이 각 각 그 좋아하는데 빠지게되니 그 미려함이 온 큰 누리를 향유하는 듯 하고 그 즐거움이 봄 누대에 한가함을 쫓는다 해도 그 그릇됨을 모른다 성인이 그 망녕됨을 탐구함이 배가 항구에 정박하듯 움직이지 않음을 만남이라 언린아기에게 미쳐 가리켜 주질 않았는데 만물에 이치를 깨치라 하면 제혼자 터득해나간다 할 것인가? (*不自私=제스스로 마음대로 사사롭게 못한다는 뜻으로 못 터득하는 걸로 번역했? 그러므로 돌아 갈데가 없는 듯 하다 함인 것이다 모든 사람이 그 아는바를 지켜 각각 스스로 다 여유가 있음이나 성인은 모든 만물을 천거하고 포용해서 하나에 얽매인 주관을 삼지 않으니 초월하심이 그 버림 받은 듯 하다 沌沌(돈돈)이란? 어리석은 듯 해도 어리석지 않음이다 세속이 분별로서 지식을 삼으나 성인은 모든게 망녕된 것으로 보임이라 흡족하게 분별치 못할 것을 안다 그러므로 그 밖은 혼미 한듯하고 그 가운데론 번민하는 듯 한다 흐리멍청한게 (*忽=홀=홀황 하다는 뜻은 뭔가? 딱 부러지고 맑은 그런 상태가 아니다) 바다인 듯 해서 그 배를 댈 나루와 언덕을 보지 못해 정처 없이 표류하는 듯 그 머물러 유숙함을 보지 못한다 사람이 각 각 유능함이 있음이라 그러므로 세상사람은 다 얻어 쓰나 성인은 재질이 온전하고 덕을 갖추었음이라 펼 대가 없는 듯 하다 그런 까닭에 우직스럽고 비루 한 건가 의심 낸다 길이란 건 만물의 부모다 모든 사람들이 물질만 쫓고 길을 망각하지만 성인은 만물의 얽어맴에서 벗어나고 버려 치우셔서 길로서 원천에 비길 언덕을 삼는데(*宗=종= 으뜸으로 기댈 곳 의지 처) 비유컨대 아기가 잡식하는 바가 없고 어머니 젖만 먹는 것과 같을 따름이다
* 여씨 주석 하대. 위로는 聖智 仁義란 좋은점을 절기하고 아래로는 巧利란 나쁜 점을 절기 해서 그 마음에 얽매임이 없으면 배움을 끊어 버린 게 되리라 배움을 끊어버리면 함이 없는 것이요 함이 없으면 神(신)이라 할 것이다 신이란 것은 만물을 북처럼 울려서 성인과 더불어 근심치 않는 자이다 그러므로 말하길 학문을 끊어버리면 근심이 없어짐이라 함인 것이다 '예' 대답과 '응'대답은 소리는 한곳에서 나는 것인데 그 서로 거리가 얼마라 할 것인가? 선 과 악이 길이란 것의 한곳에서 떨어져 나왔으니 그 서로의 거리는 어떤가? 이를 본다 면 비록 성지라도 끊어 버릴 것 같으면 그 마음에 얽매임이 없다 할 것이다 근심과 뉘우침 모멸감을 받는 것 등은 물사를 확대시키게 된대서 존재케 된 것이고 진동 치더라도 탈이 없게 되는 것은 반성함에서 기인된 것이라면 곧 사람들의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 아니하지 못할것이라 할 것이다 거칠음(*황량함) 이여 그 끝간데 가 아니리요 하는 것은 그 큼을 말로선 다 표현 할 수 없기 때문에 그렇게 말해보는 것이며 남의 두려워하는 바를 두려워함을 유별나다(*독특하다) 여기지 아니할 따름이다 어떻게 하면 남의 두려워하는 바를 두려워한다 할 것인가? 그것은 남과 같이 처신하는 것이다 거칠음이여 그 끝간데가 아님이리요 하는 건 하늘과 같이함을 뜻함이다 모든 사람들이 밝고 밝다는 것은 통달함과 (*정신영역의 깨친문) 열린 문을 폐쇄 할줄 모른다는 뜻이요 큰 소를 잡아 제사지내어 향유한다는 것은 담백해서 그 맛없음을 모른다는 뜻이며 봄날의 누대에 오르는 듯 하다함은 대저 안목이 부족해서 제대로 보질 못한다는 뜻이요 내 유독 증험치 못함이 영아가 아직 웃기전이란 함은 그 통함을 막고 그 열린 문을 닫아서 맛없는 것을(*없는것의 맛) 족하게 즐긴다는 것이요 제대로 볼줄을 모름을 갖고 유족하게 즐거 워 함이다 타고 타서(*乘乘=승승)돌아 갈데 가없는 듯 하다함은 오직 만물의 이치를 탐을 말할진데 몸에 있어 머물를 데가 없음을 뜻한다 여러 사람이 큰 소를 잡아 향유하는 듯 하고 봄 누대에 오르는 듯 함이라 그러므로 모두가 여유가 있는데 나만 유독 그 증험치 못한걸 두려워하길 영아가 웃기 전과 같다 함이라 그래서 유독 나만 버림받은 것 같다 함은 대저 물사를 버리고 형용함을 떠난 것을 뜻함이이다 내- 남을 어리석어 여기는 마음이리요? 함은 그 무지(*미련) 함을 말함이다 純純(*순순= 순전하다) 하다함은 그 잡되 지않 음을 말한다 (*여기서 純純은 沌沌과 그 의미가 통한다는 뜻이다 순박 순진 한자는 흐리멍청 한 듯 하게 보인다는 뜻에서 그잡다한 것에 물들지 않은 그런 상태를 뜻한다 할 것이다) 세속에 사람은 밝고 밝은데 내- 유독 혼미 한 듯 하다함은 세속사람의 밝고 밝다는 것과 다른걸 뜻함이다 세속 사람들은 자세하게 살피는데 나만 유독 번민한다함은 세속 사람의 자세 살피는 것과 다름이라 홀연한 것이 그믐인 듯 하다함은 그믐이면 도대체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도대체 볼때. 볼 수가 없다는 것은 특별나게 혼미한 것은 아니지만 번민스러 울 따름이란 뜻이다 그 움직임이 들떠 띄운 듯 함이여 돌아갈데 가 없는 듯 하다함은 그 고요하기가 적막감이 감돌아 머물 곳 없는 것 같다는 뜻이다 여너 사람은(*昭昭 察察) 밝고 자세한지라 그런 까닭에 다들 가진 것이 있지만 나만 유독 혼미한 듯 하고 나만 유독 번민하는지라 그래서 우직스럽고 비루함처럼 여겨진다는 것이다 대저 이러한 것은 그 지혜를 버리고 마음을 망각한 것을 말함이니 보고 듣고 생각하는 길이 저절로에서 나오는 것인지라 그러므로 길(*道)에 자식됨인 것이고 길인즉 어머이가 됨인 것이다 모든 사람들은 물질을 쫓길 즐겨 마음을 혹사시킴으로써 그 보고 듣고 생각함을 키운다 곧 그 자식을 기를 따름이나 나만은 그러함을 버리고 떠나보내고 무릇 어머니에게 양육 받음을 찾는지라 그런 까닭에 내- 유독 여너 사람들과 달라서 희귀하게 어머니에서 먹는 다 함인 것이다 대저 노자는 神(신) 이리리라 (*譯者言= 옛사람들은 귀신에 의탁해 봉양 받는 걸 꽤나 좋아 했던 모양이다 사람도 신격화하고 모든 의문 나는 점과 막히는 점이 있으면 신성시로 몰아가서 귀신에게 떠넘기려드는 신비주의 사상에 깊이 빠진 것 같다) 뭘 갖고 양육 받는 일이라 할 까 만은 여 너 俗人(속인)과 처신함이 다를 따름이라(*처신함이 달름 대접받는 것도 달라질 것이다) 하여금(그래서) 길을 위하고 자 하는 자 이 같음을 안 후라야 바르게 길에 이른다 할 것 이리리라 그렇게 됨 배움을 끊어버리는 큰 가리킴을 바르게 안다 할 것이다 지난 儒生(유생=선비)들이 사람더러 배우지 않음 비록 근심이 없다 했더라도 뭘 나꿔채야만 그 배움을 끊음 근심이 없어지는 뜻인지를 미처 간파 해지 못했다 할 것이다
*박씨 주석하대. '예'와 '응'이 모두 대답하는 뜻의 말이다 배우는자 착함을 위하고 악함을 버리고자하나 그선악의 서로간 거리를 모른다 오직 '예'와 '응'의 차이(사이=間)일뿐이다 뭘 기준하여 유족한 뜻을 삼아 진실한 선과 악과 禍害(화해)를 분별하려 들것인가? 반드시 (*自覺이) 이러함에 이르면 사람들이 똑같이 두려워 하는 것을 역시 두려워 아니치 못할 것이다 오직 배움을 끊으면 분별하는 마음이 없어 져서 해로움이 몸에 미치지 아니하게됨으로써 근심이 없어지게 됨인 것이다 荒(황=거칠다는 뜻) 이란 것은 忽(*홀=소홀하다는 뜻) 하게 여기는 곳이란 뜻인데 그것은 소위 미개척 분야 여지 것 등한히 해서 아직 거기까지 미처 이르지 못한 곳을 뜻한다 央(앙=다외다 끝장나다) 이란 극한 경계를 뜻함이니 끝간데를 뜻한다 兆(*조=조짐 점치다 는 뜻) 란 아직 풀싹과 같은 것을 뜻한다 (*譯者言= 나물될 잎(배추 제대로 될잎)은 어린 싹일 때 부텀 알아보게 한다는 뜻 등으로 유추 해석 해볼 수 있다) 여너 사람들은 세상맛을 즐겨 희희덕 거리는 데 그 모습이 큰 소를 잡아 향유하는 듯 하고 봄 누대에 오르는 듯 하지만 나만 유독 담백해서 그렇게 백가지 생각을 싹 틔우지 못함이 어린 아기 웃기전과 같아 사람들로 하여금 황홀하게 해서 (*譯者言= 귀여운 초롱초롱한 언린 아기를 보면 누구든 귀여워하고 좋아하는 표현을 어쩔 줄을 몰라한다 그만큼 길이 황홀하게 한다는 뜻임 또는= 들뜬 기분을 황홀하다 하는데 그렇게 됨 판단력이 흐려져서 갈피를 못잡게 되니 곧 흐리멍청 해짐과 같아진다 할 것이다) 그 끝간데를 보지 못하게 한다 乘乘(승승=타다 오르다) 이란? 泛泛(범=뜨다 띄우다 물을 붓다 물을 부어 차다. 들떠 떠돌아다님 따로 놀음)으로써 들뜬 상태를 말한다 돌아갈 데가 없는 듯 하다 함은 물사에 얽매이지 아니함을 뜻한다 모든 사람이 有餘(유여) 하다는 것은 다들 부귀 명리 가 있음을 뜻한다 내 -유독 버려 진 듯 하다 함은 나만 유독 이와 더불어 함이 없어 버려짐을 만난 듯 함을 말함이다 그 떠서 따로 놀아야(*따돌림 받아서야만) 물사에 얽매이지 않게 된다 여기서 沌沌(돈돈=어둡다. 만물의 생성 근거가 아직 나누어지지 않은 모양)이란? 어리석은 모습이다 (민민=썩여 혼합함을 뜻함) 이란? 명쾌하게 밝게 나누지 못하는 뜻이다 사람들이 다들 昭昭察察(소소찰찰) 한대 내 유독 혼미해서 번민한다 그 돈돈 하다 말함은 어리석은 듯한 사람의 마음을 이처럼 표현한다는 뜻이다 담백하기가 그 바다 인 듯 하다함은 담백한 모습을 그 끝간데를 보지 못한다는 뜻이다 높은 바람처럼 그 머무를 데가 없는 것 같음으로써 떠돌아다니는 모습을 해서 물사에 얽매이지 않음을 말한다 여러 사람들은 다들 부요로운데 자기만 유독 완악하고 또 비루해 보이고 내만 유독 우둔해서 어리석은 것 같다 대저 내가 위하는 바는 다른 사람들과 달라서 유독 희귀하게 어머니에만 먹음을 찾는다 어머니란 것은 길(道)이다 길은 만물을 생 하는 지라 그러므로 어머니라 한다 먹음은 몸을 길르는 것이라 어머니에게 먹음을 구한다함은 길(道)로서 스스로를 길름을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