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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도읍지를 따라 역사의 향내를 맡아가며 (보완 자료)
추운 겨울 방학, 웅크리고 집에만 틀어 박혀 컴퓨터와 씨름하거나, 학교 공부의 연장선상에서 학원을 오가거나 학습지를 푸느라 다소 짜증나 있을 아이들과 하루종일 아이들 수발에 여념없을 어른들에게 ‘문화탐방 태(泰)‘의 겨울답사를 추천합니다.
책 속에 갇혀버린 박제화된 역사가 아닌 살아있는 역사의 현장으로 여러분을 안내합니다.
이번 겨울 답사는 백제의 도읍지를 따라가보려 합니다. 한반도의 중심지와 비옥한 영토를 차지하여 넉넉한 생활을 꾸려갔던 백제,
그래서 부드럽고 온화하게 다가오는 백제 문화, 하지만 무령왕릉과 금동용봉봉래산 대향로를 통해 새롭게 부각되는 백제의 세력. 한반도에 갇혀버려 늘 이웃의 침략에 대비하기에 급급했던 역사가 아닌, 일본의 역사를 세우고, 중국의 남쪽 지방까지 진출했을 대제국으로서의 가능성을 열어 놓은 우리의 역사, 백제의 역사를 여러분과 함께 찾아가보려 합니다.
단순한 유적 답사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풍부하고도 재미있는 역사 이야기와 비디오 자료 등을 통해 흥미로운 역사 추리도 함께 할 것입니다.
왜 백제는 서울에서 공주로, 공주에서 부여로 도읍지를 옮겼나?’를 생각하며 먼저 공주의 공산성(본래는 웅진성으로 조선시대에 석축으로 개축하며 부른 이름)으로 달려갑니다.
금강을 끼고 있는 이곳은 백제의 웅진 시절 왕궁터로 추정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인공연못을 볼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당시 농업을 발전시킨 백제인들의 보와 저수지 축조 기술을 엿볼 수 있습니다.
성내를 빠른 걸음으로 돌아본 뒤 우리나라 고고학계를 발깍 뒤집어 놓고 전국민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무령왕릉으로 갑니다. 이 무덤의 발굴로 공주가 우리에게 좀더 가까이 다가왔고,우리들은 비로소 백제 문화의 진면목을 알 수 있게 되었으며, 제국으로서의 백제를 조심스럽게 추정할 수 있게 되었답니다.
여기서 발굴된 유물은 모두 국립공주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으니 당연히 들려야겠지요?
유기농으로 차린 맛있는 점심을 남김없이 먹은 뒤, 힘을 내 박물관내는 물론 뜰도 꼭 둘러보아야 한답니다. 온통 보물 천지랍니다. 박물관 바로 앞에는 무령왕의 관으로 썼던 세계 유일의 1종1속밖에 없는 금송이 일본에서 건너와 늠름한 자태를 자랑하고 있답니다. 향내 맡기와 솔잎 관찰도 빼놓으면 안된답니다.
무령왕릉의 훌륭한 유물들과 금송 향기의 의미를 짚어가며 여정에 따라 부지런히 부여로 달립니다. 도중에 만나게 되는 조선말의 치열하고 처절했던 동학농민군들의 전투지였음을 기리는 우금치전투전적비에서 잠시 마음을 가다듬어야겠지요?
근처에는 동학농민군들의 곰나루 마지막 격전지로 결국은 참패한 농민군들의 시신이 골을 메웠다해서 지명마저 송장배미로 바뀐 전적지도 있답니다.
약 20분 정도 달리다보면 부여 시내에 닿게 됩니다. 욕심같아서는 1박2일 코스로 잡아 이것저것 차분하게 안내하고 싶은데 경제 사정이 어려워 형편이 펼 때로 미루었답니다.
대신 여러분들의 걸음걸이가 좀 바빠져야겠지요? 짧은 겨울 낮이라 마음이 급하네요. 그래도 부소산성에 올라서 석양에 물드는 백마강을 바라보며 백제 멸망을 추억해야겠지요?
산성내에는 백제의 마지막 3충신의 애국심을 기리는 삼충사도 있고, 지금도 땅을 파헤치면 탄화미가 나온다는 군창터도 있으며 그 옆에는 백제군인들의 움막터도 있답니다.
부지런히 둘러보고 삼천궁녀의 전설을 간직한 그 유명한 낙화암에 올라 애도를 표한 뒤 고란사로 내려가 고란초를 바라보며 목을 축이고, 백마강의 유람선에 몸을 싣고 나당연합군에 무너진 백제의 영화를 붉게 노을지는 백마강에서 찾아야겠네요.
상념에 젖다보면 구드래나루에 도착한답니다. 서울로 가는 버스가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있네요. 너무 늦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그래도 괜찮지요? 늦잠을 자도 방학이니까.
예전에 백제의 도읍지였을 때의 부여땅에는 탑이 매우 많다고 했는데 지금은 유일하게 정림사터의 오층석탑만이 백제 멸망의 아린 추억을 간직한 채 1,400여년 동안 비바람을 맞으며 장중하게 서 있답니다.
오는 길에 들릴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백제는 멸망 후 이곳저곳에서 부흥운동이 일어났지요?
부흥운동을 주도했던 흑치상지란 인물과 그의 ‘검은 이빨’이 시사하는 바는 무엇이며, 일본은 왜 2만7천의 군사와 4백여척의 배를 보내 백제부흥군을 도왔는가?
백제의 역사를 다시 보게 될 때 우리는 그들의 후예로서 가슴 뿌듯한 자긍심을 느끼며, 자신감있게 미래의 역사를 설계할 수 있지 않을까요? |
<출처 : 2004년 家苑 어린이.학부모 문화유적답사 안내 프로그램 자료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