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사람
( 9 )
그는 내가 선물로 준
손목에 차고 다니는 합장주를 보이며
이걸 보고 누군가 뭐냐고 물으면
고집멸도(苦集滅道) 사성제를 말하고
도에 이르는 8가지
바르게 보고, 바르게 생각하며, 바르게 말하며,
바르게 행하며, 바르게 생활하며, 바르게 정진하며,
바르게 기억하고, 바르게 머무는 법을 말해준다며
세속에서도 머리 기르고
얼마든지 법을 전할 수 있는 거라며
큰 도인인 구산스님과 어느 스님(기억이,,)은
주지직을 맡지 않겠다고 서로 고집하는 통에
재판까지 벌어졌는데
눈의 결정체처럼 아름다운 일화가
수행의 꽃인데
요즘은 서로 주지하겠다고 싸우니
이상한 세태가 되어 버렸다며
직책을 탐하는 게 무슨 수행자냐고 혀를 찬다.
몇 번이나 벌어졌던 조계종 총무원장을 비롯하여
반복되는 큰 사찰 주지직 싸움은
거룩한 부처님을
마구니에게 바겐세일의 굿판을 벌이는 거와 다름 없지 않은가!
오물에는
파리 모기 노래기 지렁이 바퀴 벌래 등
날아다니고 기어다니는 무수한 벌레들이 사는데
재래식 변소에 구데기가
그 향과 맛이 좋아 버글거리는 것처럼
고귀한 시주 물이 오물이 되어
아귀들의 다툼 장소 되는지 모르니
큰 절 찾지 말고
청정하고 법이 높으신 큰스님 찾는 건 어떨지,,
참회합니다.
참회합니다.
다생 겁 지은 죄를 참회합니다.
( 10 )
발그레 단청하는
맑은 곡차를 잔에 따루면서
지금 가 있는 곳 물으니
충청도 민가에서 떨어진 산 속이란다.
추운 겨울에 파릇파릇 자라는
겨우살이 군락을 발견해서
푹푹 빠지는 하얀 눈 속을 헤집으며
높은 참나무에 기생하는 약초를 따서
잘게 썰어 말려서
팔아 용돈으로 쓰는 모양으로
힘들게 고생해 번 돈을
보살의 사연에 불쌍하다며
맛있는 저녁도 사주고
공부하라 책도 사주고
가정에도 충실하라는
훌륭한 법문까지 들려 보내고는
돈을 다 썼다며 지갑을 열어 보이는
장발의 스님에게
멀리까지 가려면 경비가 많이 들텐데
빈 지갑이 걱정되어 말하니
빙그레 웃으며
불쌍한 사람을 보면 참을 수가 없다며
필요한 돈은 어떻게든 생기더라고
그의 스승 얘기를 하늘거리는 깃발처럼 펼친다.
사월 초파일은 불가의 큰 명절이라
쌀이 열 가마니나 들어왔다고 하는데
그런데 며칠도 지나지 않아서
쌀이 다 없어져
어디로 갔는지 궁금해 하는데
주지 스님이 팔아 치부한다는 소문이 떠돌더라는 것이다.
성인군자처럼 말하더니
양산군자라며 내심 못마땅한데
하루는 조용히 부르더니
어디를 다녀오자고 해서
졸졸 따라 나서며
쌀판 돈으로 맛있는 음식을 사주려나 기대했는데
찾아 간 곳은
혼자 사는 노인이나
쓰러져 가는 초막에서 병들고 어럽게 사는 사람들
어떻게 사느냐 불편한 게 뭔지 물어 보는 방안에
쌀가마니가 놓여있고
거동이 불편한 집 부엌에
연탄이 수북히 쌓여 있더라고
몰래 표시를 해놓아
절에서 온 쌀인 줄 알 수 있었다며
못된 장난하다 들킨 아이처럼
계면쩍게 끼득끼득 백합꽃을 피운다.
첫댓글 원본 게시글에 꼬리말 인사를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