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철회장 대한민국 국가조찬기도회 회장 (주)신원 회장
전라남도 신안군 자은면 조그마한 섬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2학년 때 목포로 나와 고아원에서 생활하다 예수 믿게된다,박 장로는 전라남도 신안군 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마약에 빠져 재산을 탕진하고 가난하게 살았다. 먹을 것이 없어서 6살때부터 음식을 얻기도 했다. 목포에 가면 무료로 공부를 배우는데가 있다고 해서 따라나섰는데, 간 곳이 중앙국립감화원이었다. 지금으로 치면 소년원 같은 곳이다. 어느날 선생님이 불러 소년 박성철을 전도했다.
신문 배달을 해가며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고학으로 목포고등학교 졸업했습니다. 졸업 후 서울로 상경하기 위해 고등학교 졸억식 때 시상으로 받은 영어사전까지 팔아가며 여비를 마련해 서울로 상경했습니다. 그 후 한양대학교에 입학했으며 졸업 후 신문사에 입사해 정치부와 경제부 기자 생활을 했다. 국회취재를 하다고 동향이었던 당시 김대중 의원의 눈에 들어 공보비서를 했다. 그러나 박성철 회장은 섬유업계의 임가공 공장을 시작해 한 달에 약 20일 이상을 공장 기계 밑에서 새우잠을 자며 열심히 일을 해 오늘의 섬유업계 최고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지금(주)신원은 중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북한 개성공단 등에 공장과 회사가 설립되어 수천명의 직원들이 신원을 통해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주님의 위대한 나라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신원은 1973년 창립 이래 패션업계를 선도하며 지속적으로 성장해 올 수 있었던 것은 오직 ‘믿음’의 철학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회사명이 ‘최고의 믿음’을 뜻하는 ‘신원(信元)’인 것처럼 믿음은 경영자만이 아닌 모든 신원 가족이 함께 공유하는 기업이념이며, 오늘의 신원을 이룬 원동력이라고 박성철 회장은 고백합니다.
1975년도 부터 지금까지 35년 가까이 새벽기도를 한 번도 빠지지 않않다. 새벽기도가 쉬운게 아니다. 일어나지 못할까봐 시계를 둘을 놓기도 한다. 하나 울리면 발로 차서 못 일어날 수 있기에 둘을 놓고 잔다. 어떨 때는 새벽기도를 가야한다는 강박의식 때문에 벌떡 일너나 파자마를 입고 정신없이 교회 가다가 옷 입으러 다시 돌아오기도 하는데. 이런 내 모습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정신나간 사람이라고 하는데 내 생각에도 정신이 나가도 재대로 나간 것이다. 사람이 아무리 영리해도 하나님의 미련한 것보다 못하다. 새벽기도하면 지혜를 가져도 완전한 지혜를 가지게 된다. 나는 매일 하나님 오늘도 악한 사람을 피해갈 수 있는지혜를 주세요라고 기도한다. 믿음의 기업으로 알려진 신원 현재 중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이슬람권 공장에 교회, 목사님 파견 베트남에는 3700명이 근무하는 회사에 십자가 걸고 교회를 세웠다.
믿음경영을 모토로삼고 서울 사옥에 예배당과 기도실이 있고 매주 월요날 마다 예배로 시작하고 업무도 기도로 시작합니다. 현재 복한 개성공단에 35000명 북한 사람 한국 1000명 사람이 일하고 있다. 거기에도 교회가 있다.
일 년에 200명씩 전도한다. 주일 아침에 교회 갈때 택시 기사 하루를 산다고 그래서 교회로 인도한다합니다